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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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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쪽 | B5
ISBN-10 : 899129040X
ISBN-13 : 9788991290402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양장] 중고
저자 투퀴디데스 | 출판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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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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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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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 역사서이자 외교정책 텍스트를 읽다! 지식의 찬란한 첫새벽을 연 「원전으로 읽는 순수 고전 세계」 시리즈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고대 그리스 세계의 흐름을 뒤바꾼 기원전 5세기경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진실을 밝히는 고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원전을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 교수 천병희가 번역한 것이다. 역사방법론과 정치철학의 초석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리스의 황금기를 극적으로 끝내버린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사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진실을 종교와 도덕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밝혀나간다.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의, 사건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 평이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기술, 그리고 인간 본성을 파고드는 연설이 적절히 엮어져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변치 않는 지혜와 교훈을 찾아내게 된다.

저자소개

저자 : 투퀴디데스
저자 투퀴디데스(기원전 460년경~기원전 400년경)는 아테나이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한 번 이상 장군으로 선출되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나이군을 지휘했으며,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패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테나이에서 추방되었다. 20년간의 추방은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양쪽의 사료를 엄격한 기준으로 수집ㆍ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종교나 도덕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설명하였다. 국가 간의 관계를 패권에 기반하여 보는 정치적 현실주의 관점도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의 흐름을 뒤바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 그는 과학적 역사관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대의 역사 기술서 중 최고의 역사서로 일컬어진다.

역자 : 천병희
역자 천병희는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5년 동안 독문학과 고전문학을 수학했으며 북바덴 주정부가 시행하는 희랍어검정시험 및 라틴어검정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 교수로, 그리스 문학과 라틴 문학을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전 번역으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로마의 축제들』, 아폴로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헤로도토스의 『역사』,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및 호라티우스의 『시학』 등 다수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목차

005_ 옮긴이 서문 아주 특별한 비극,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026_ 일러두기


028_ 1~23장

서론. 초기 헬라스의 상황. 이 책의 주제, 방법, 목표
046_ 24~65장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 아테나이와 코린토스의 충돌
074_ 66~88장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이 라케다이몬에서 회동하다; 모두 아테나이의 공격을 비난하며 전쟁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다
093_ 89~117장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나이의 국력 신장
114_ 118~125장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이 라케다이몬에서 재차 회동하다; 전쟁 준비
120_ 126~146장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가 서로 불만을 토로하다; 퀼론, 파우사니아스, 테미스토클레스 이야기. 라케다이몬의 최후통첩을 아테나이가 거부하다


142_ 1~9장

테바이의 플라타이아이 공격과 전쟁의 시작(기원전 431년); 헬라스인들은 대부분 라케다이몬에 동정적이다
149_ 10~33장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앗티케 지방에 침입하자 아테나이인들이 다른 곳에서 대규모 반격을 가하다
166_ 34~46장
아테나이인 전몰자들을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사
176_ 47~70장
전쟁 2년차가 시작되다. 아테나이의 역병. 페리클레스와 그의 정책에 대한 개관. 전쟁 2년차가 끝나다
195_ 71~94장
플라타이아이가 펠로폰네소스인들과 보이오티아인들에게 포위 공격당하다. 코린토스 만 해전에서 아테나이인들이 승리하다
218_ 95~102장
아테나이의 트라케 동맹군이 마케도니아에 침입하다. 전쟁 3년차가 끝나다


228_ 1~35장

레스보스가 뮈틸레네의 주도 아래 아테나이에 반기를 들다. 포위 공격당하던 플라타이아이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탈출하다. 전쟁 4년차가 끝나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이 뮈틸레네인들을 지원하려다 실패하다. 뮈틸레네의 항복
250_ 36~50장
뮈틸레네인들의 처벌을 두고 클레온과 디오도토스가 아테나이에서 논쟁을 벌이다; 아테나이인들이 뮈틸레네 주민들을 대부분 살려주기로 결의하다
264_ 51~68장
플라타이아이의 항복; 플라타이아이인들이 재판받고 처형되다.
279_ 69~90장
케르퀴라 섬의 내전. 정치 변혁에 대한 심리 분석. 시켈리아에서의 아테나이인들의 활동. 전쟁 5년차가 끝나다
293_ 91~104장
데모스테네스 휘하의 아테나이군이 아이톨리아 지방에서 패하다. 아테나이인들이 델로스 섬을 정화(淨化)하다
304_ 105~116장
데모스테네스 휘하의 아테나이군이 암프라키아에서 승리하다. 전쟁 6년차가 끝나다


316_ 1~51장

아테나이인들이 퓔로스에서 승리하다. 라케다이몬인들이 평화조약과 동맹조약을 맺자고 제의하지만 거절당하다. 라케다이몬 군사들이 항복하고 아테나이로 끌려가서 구금되다. 케르퀴라의 과두정파가 학살되고 내전이 끝나다. 전쟁 7년차가 끝나다
351_ 52~74장
아테나이인들이 라케다이몬에 몇 차례 성공을 거두다. 시켈리아의 헬라스인 이주민들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되다. 메가라의 내전이 아테나이인들의 실패로 끝나다. 메가라에 항구적인 과두정부가 들어서다
367_ 75~116장
브라시다스 휘하의 라케다이몬군이 트라케 지방으로 원정길에 오르다; 그곳에 있는 몇몇 동맹국이 아테나이에 반기를 들다. 아테나이군이 델리온에서 보이오티아군에게 패하다. 브라시다스가 암피폴리스를 함락하다. 전쟁 8년차가 끝나다
397_ 117~135장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의 휴전협정. 트라케 지방의 헬라스인들이 계속 아테나이 동맹을 이탈하다. 전쟁 9년차가 끝나다


414_ 1~12장

아테나이인들이 암피폴리스를 탈환하려다 실패하다; 브라시다스와 클레온이 전사하다
424_ 13~39장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의 50년간 평화조약과 동맹조약. 전쟁 10년차가 끝나다. 불만을 품은 일부 라케다이몬의 동맹국들이 음모를 꾸미다. 전쟁 11년차가 끝나다
446_ 40~83장
아테나이와 아르고스와 일부 펠로폰네소스 국가들이 동맹을 체결하다. 전쟁 12년차가 끝나다. 아테나이의 지원을 받는 아르고스와 에피다우로스의 전쟁. 전쟁 13년차가 끝나다. 아테나이군과 아르고스군과 그들의 동맹군들이 만티네이아에서 라케다이몬군에게 패하다;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의 50년간 평화조약과 동맹조약. 전쟁 14년차가 끝나다. 아르고스가 다시 라케다이몬 쪽에서 아테나이 쪽으로 기울다. 전쟁 15년차가 끝나다
480_ 84~116장
아테나이의 멜로스 섬 원정. 아테나이 대표단과 멜로스 대표단의 대화. 멜로스의 저항. 멜로스의 항복. 멜로스 주민들이 처형되거나 노예가 되다


492_ 1~7장

아테나이가 시켈리아 침공 계획을 세우다. 시켈리아 주민들에 관한 개관. 전쟁 16년차가 끝나다
499_ 8~32장
아테나이가 시켈리아 원정에 착수하다. 니키아스와 알키비아데스가 장군으로 임명되다. 니키아스가 공개적으로 원정에 반대하다. 알키비아데스가 신성모독죄로 고발당하다
518_ 33~61장
아테나이 원정대가 출발했다는 보고를 접한 쉬라쿠사이인들 사이에 그 개연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다. 아테나이인들이 시켈리아에 도착하여 현지 지원을 받고 군자금을 구하려고 노력하다. 본국에서 소환하자 알키비아데스가 도주하고 망명하다
541_ 62~88장
쉬라쿠사이군이 아테나이군에 패하다. 헤르모크라테스가 쉬라쿠사이의 방어체계를 재정비하다. 카마리나 시에서 헤르모크라테스와 아테나이 사절 에우페모스가 서로 우군이 되어달라며 논쟁을 벌이다; 카마리나인들은 중립 노선을 택한다
563_ 89~105장
알키비아데스가 라케다이몬으로 망명해, 시켈리아와 앗티케에서 동시에 아테나이를 공격하도록 라케다이몬인들을 설득하다. 전쟁 17년차가 끝나다. 아테나이군이 쉬라쿠사이군에게 이기고 도시를 포위하기 시작하다. 귈립포스 휘하의 펠로폰네소스 구원병들이 도착하다


580_ 1~30장

쉬라쿠사이인들이 다시 전쟁 준비에 전념하다. 니키아스가 아테나이에 증원부대를 파견해주든지 아니면 군대를 철수시켜달라는 내용의 서찰을 보내다. 그의 요청에 따라 아테나이인들이 증원부대를 파견하다. 전쟁 18년차가 끝나다. 라케다이몬군이 앗티케에 침입하다. 라케다이몬인들이 데켈레이아를 요새화하다. 아테나이를 지원하러 왔다가 귀국하던 트라케인들이 도중에 뮈칼렛소스 마을을 약탈하다
603_ 31~49장
아테나이 해군이 쉬라쿠사이 항에서 쉬라쿠사이인들과 그들의 동맹군들에게 패하다. 데모스테네스 휘하의 아테나이 증원부대가 도착하다. 아테나이군이 쉬라쿠사이 요새를 함락하려고 야습을 감행했으나 함락 직전에 참패하다.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나이로 철군하자고 주장했지만 니키아스가 이를 뒤로 미루다
619_ 50~71장
아테나이군이 바닷길로 탈출하려고 절망적인 시도를 해보지만 쉬라쿠사이군이 그들을 결연히 저지하다. 쉬라쿠사이군이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다
637_ 72~87장
아테나이군이 육로로 철수하며 계속 적군에게 공격당하다. 수많은 군사들이 도륙된 뒤 아테나이군이 항복하다. 데모스테네스와 니키아스가 죽임을 당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채석장에 감금되다


654_ 1~6장

아테나이인들이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의하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이 곧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다. 이오니아 지방 도시들이 아테나이에 반기를 들려 하다. 펠로폰네소스군에게 페르시아 왕이 군대 유지비의 일부를 대주겠다고 제의하다. 전쟁 19년차가 끝나다
659_ 7~18장
전투 재개; 라케다이몬인들이 해전에서 패하자 사기가 꺾이다. 알키비아데스의 공작으로 키오스가 아테나이 동맹을 이탈하고 밀레토스와 다른 도시들이 그 뒤를 따르다. 페르시아 왕과 그의 태수 팃사페르네스와 라케다이몬인들과 그들의 동맹국들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다.
667_ 19~44장
주로 이오니아 지방에서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지만 승패가 가려지지 않다. 라케다이몬인들과 그들의 동맹군이 전에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영토의 일부를 양보하는 대가로 페르시아 쪽에서 그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하다. 라케다이몬과 페르시아 간의 협정이 수정되다
685_ 45~60장
라케다이몬과 알키비아데스 사이의 불화. 팃사페르네스에게 망명한 알키비아데스가 어느 한쪽 편만 들지 말고 헬라스 양대 세력의 군세가 호각을 이루어 서로 지치게 만들도록 하라고 페르시아인들에게 조언하다. 아테나이군 내의 과두제 지지 세력이 알키비아데스의 주선으로 페르시아의 보조금을 타내려고 음모를 꾸미다. 아테나이 민중이 마지못해 동의하다. 전쟁 20년차가 끝나다
698_ 61~88장
아테나이의 민주정부가 편협하고 과격한 과두정부로 대치되다. 아테나이 병사들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여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펠로폰네소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다
721_ 89~109장
아테나이 과두정부의 붕괴. 라케다이몬인들의 해군이 에우보이아 섬 서쪽 에리포스 해협의 해전에서 승리했으나, 모험정신의 결여로 아테나이에 결정타를 가하지 못하다. 아테나이가 헬레스폰토스 해협 퀴노스세마 곶 앞바다의 해전에서 모처럼 크게 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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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류사를 뒤바꾼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500년경 오리엔트를 제패하고 그리스를 호시탐탐 노리던 거대 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그리스는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후 50년간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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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를 뒤바꾼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500년경 오리엔트를 제패하고 그리스를 호시탐탐 노리던 거대 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그리스는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후 50년간 그리스의 과학 문학 예술의 번성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 문명이 로마 문화에, 훗날 유럽 문화에 심오한 영향을 끼치는 일도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448)이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 문명의 소멸을 막았기 때문이다(헤로도토스는 이 전쟁이 망각되지 않도록 『역사』를 썼다).
연합 대응으로 페르시아 전쟁에서 공동의 승리를 쟁취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그 후 그리스 세계의 두 강자로 떠오르는데, 맹수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법칙을 깨고 이들은 그리스의 패권을 놓고 또다시 길고긴 전쟁을 치른다. 내전이면서도 그리스인들에게는 세계대전이나 다름없었던 그리스 사상 최대의 재앙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이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 문명의 붕괴를 불렀기 때문이다(투퀴디데스는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다).
역설적이게도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는 외세의 침략보다 내부의 갈등으로 저물었다.

정치와 전쟁에서 인간 행동을 분석해내다
그리스를 주름잡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격돌은 그리스의 황금기를 극적으로 끝내버렸다. 이 전쟁은 통찰력 있는 역사가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투퀴디데스(기원전 460~400)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이 기록을 남겼다. 과거의 일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현재와 미래의 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나 도덕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고 전쟁의 모든 것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며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겪은 운명과 참상을 가장 엄격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증언해두었고, 모든 시대 독자들은 이 특별한 비극 속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았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그리스어 원전 번역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고전번역가 천병희 교수에 의해 번역 출간(도서출판 숲)되었다.
아테네의 번성과 스파르타의 질투가 부른 비극
아테네는 이와 필적하는 시대가 인류사에 다시없을 만큼 정치 문화 예술 분야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유산을 쏟아내던 때였다.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이 세워지고 소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헤로도토스 등이 각 분야의 학문을 탄생시키던 때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도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극작가들은 비극과 희극을 결코 넘어서지 못할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대페르시아 전쟁을 치루기 위해 결성된 ‘델로스 동맹’을 발판으로 아테네가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200여 개의 도시국가 중 절반이 아테네의 영향권에 들어가자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스파르타와 주요국들은 아테네의 번영과 과도한 팽창정책을 견제할 목적으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는다. 상업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코린토스는 아테네의 해상 진출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메가라 등도 아테네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코린토스ㆍ메가라 등은 펠로폰네소스 동맹회의를 열고 아테네와의 전쟁을 결의, 스파르타를 부추겨 개전(開戰)하게 만든다.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자유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그리스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국들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점점 동맹국의 자치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발전과 스파르타의 질투는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불렀다.
이 두 동맹에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거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육지에 기반을 둔 세력권과 아테네가 주도하는 바다에 기반을 둔 세력권으로 양분해 27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 전투는 그리스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벌어졌고 유례없이 잔인했던 긴 학살에 전염병까지 겹쳐 아테네는 쇠진상태에 이른다.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도움을 받아 아테네를 무장해제시킨다. 아테네는 함대를 스파르타에게 인도하고 긴 성벽들을 헐었으며, 델로스 동맹을 해산했다. 이 전쟁의 체험은 아테네인들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내면에서부터 붕괴시켰다.

정상에서 바닥까지 단숨에 내려오다
한때 동맹국이었던 아테네는 적국이 되고 적국이었던 페르시아는 승리를 위한 동맹국이 되어 아테네로부터 제해권을 빼앗았지만, 스파르타 또한 그리스 세계의 힘을 분열시키려는 페르시아의 의도에 농락당한 꼴이 되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그 잿더미 위에 상처뿐인 영광으로 서 있다가 다시 페르시아에게, 그 후 마케도니아에게 정복된다. 이 전쟁은 한 세대나 그 이상 지속될 수 있는 전반적인 평화를 낳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시대를 초월한 무서운 진리를 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출판되자마자 고전이 되었다. 투퀴디데스는 함축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부터 가장 심오한 역사가라는 평가를 받았고, 진리를 탐구하려는 그의 열정과, 사건을 합리적으로 보는 그의 통찰력과, 평이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기술과, 인간 본성을 파고드는 연설을 적절히 한데 엮는 능력은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경탄의 대상이며 인류에게 불멸의 재산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저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100여 편이 넘는 연설문이다(이 전쟁은 민주정 국가와 과두정 국가의 싸움이기도 했는데 아테네는 일련의 전투를 민회에서 연설과 의결을 통해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백미라 할 ‘멜로스인과의 대담’은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힘의 정치 논리를 여실히 묘사하고 있어 이 대담만으로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불후의 명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대담은 2500년 전 아테네인들과 멜로스인들 사이에서만 오갔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인간의 마음속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자리 잡고 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역사방법론과 정치철학의 초석으로, 현실주의 역사서이자 외교정책의 텍스트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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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토크로 여는] 살라미스 해전 승리의 최고 공로자는 테미스토클레스이다. 아테나이가 정착을 하기에는 워낙 척박한 땅이기는 했지만, 페르시아제국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선언한다. 문제는 사람이다. 국토는 어디에서라도 확보할 수 있지만(식민시들이 지중해 연안에 적지 않을 때이기는 했다) 국민(시민)들은 대체할 수 없다. 거의 모든 아테나이 시민들을 배에 태우고, 살라미스로 이주시킨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그 살라미스 섬을 '배수진(좀 이상하지만)'으로 삼아, 모 아니면 도 식의 총력전을 펼친다. 제2차 페르시아제국을 통쾌하게 물리친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배경은 이러하다. 오늘날, 그리스 문명이 화려하게 꽃 피웠던 시기를 '페리클레스의 전성기'라 얘기하지만, 사실은 입법자 솔론과 페리클레스 사이에는 위기의 시기에 빛난 테미스토클레스란 영웅이 있었다. 그는 그 대전을 미리 준비한 사람이다. 영화 <300>2는 그런 테미스토클레스를 영웅시 한 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민낯의 그를 고전을 통해 텍스트로 오롯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를 난세에 문득 출현한 영웅 정도로만 해석하기는 좀 그렇다. 그나마 테미스토클레스의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는 저술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일 것이다. 물론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훌륭한 자료다. 우리가 기댈 때는 바다(해양)일 뿐이다. 그 훌륭한 메시지를 전쟁 승리를 통해 던진 사람, 그가 테미스토틀레스다, 누구에게? 그 누구란 바로 페리클레스가 아니겠는가!  

    화려와 장엄, 페르클레스 전성기의 마중물, 테미스토클레스
    그리스 미술사에서는 기원전 450년경~400년경을 '전성기 고전시대(High Classical Period)로 분류(혹은 구분)한다. 이른바 페르클레스의 전성기라고 불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기 이전을 '초기 고전시대(Early Classical Period): BC 500년경~450년경'로 이후를 '후기 고전시대(Late Classical Period: BC 400년경~BC 323년)로 구분한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원정 중에 사망한다. 여기까지를 일반적으로 헬레닉 에이지(Hellenic Age)라 하고, 이후를 헬레니스틱 시대(Hellenistic Age: BC 323~30년)로 부른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고대 그리스-로마를 고전을 통해 읽으면서 특히, 그리스에 대해 오해하는 점이 상당히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후대의 시대착오적 입장에서 그리스가 오늘날과 같은 '단일 민족적 국가'였을 것이라는 관념이 강하다는 것(최혜영,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머리말). 신조어인 '적자생존(기록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의 원칙이 작용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아테네든 코린토스(성경의 고린도다)든 스파르타든 모두 '그리스'여기고, 그리스는 곧 아테네로 동일시한 데서 생긴 착오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정체에서부터 대조적인 사회였다는 정도는 공감하는 정도이다. 트로이 원정을 이끈 아가멤논의 고장인 아르고스는 관심 밖에 있으며, 테바이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관련하여 기억하는 정도이지 않을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웃나란일수록 이해관계는 복잡다단
    그러나, 고대의 그리스는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 폴리스들 사이의 관계는 복잡 미묘허였다. 앞서 소개한 시기 이전의 상고기, 페르시아 전쟁기, 델로스 동맹기, 펠로폰네소스 전쟁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출현 이후 등, 각각의 시기에 따라서 이들은 중층적, 복합적으로 관계를 맺거나 끊기를 반복하면서 역동적인 역사를 썼다. 어느 문명보다가 오래 전에 활자, 곧 기록문학으로서 역사를 남겼음에도, 우선은 그 역사들을 제대로 독해하지 않은 데서 오는 착오다. 우선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있다. <역사>를 읽으면 아테네, 테바이, 아르고스 등 당시 그리스 도시 국가들 사이의 국제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역사>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기까지 그 배경을 훑고 있는데 제국 페르시아가 어떻게 인근의 세력들을 결집하여 (그리스인들 입장에서) 두려운 존재로 부상했는지 그 배경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역사>에 비해 조금은 '하드'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꼼꼼히 읽어야만 한다. 페리클레스의 전성기는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이라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비극적 싸움으로 곧 쇠락하고 만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아테네가 모든 면에서 전성기에 이르는 '떠오르는 해' 동틀무렵을 담았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지는 해' 곧 저물 무렵의 그리스의 역사를 담고 있다. 로마사로 치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해당한달까, 다만 그것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아테네인 역사가의 입장에서 집필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리스 문명의 쇠망사라 할 수 있다. 계절을 막론하고 지상의 기온이 가장 낮은 때는 동틀 무렵이다. 그렇다면, 지상의 기온이 가장 높을 때는 해질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찬란한 꽃을 피웠던 문명이 소멸되기 시작하는 그 시점에 가장 역동적이고 안타까운데, 이런 깨달음은 그들이 이미 가졌던 것의 소중함을 인지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지상 온도도 가장 높은 해질 무렵의 찬란을 담은 <페로폰네소스 전쟁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델포이동맹으로도 불리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나이가 주도한 델로스동맹의 기나긴 혈전이다. 마침내 스파르테 세력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지만, 긴 전쟁에서는 승리자는 없다. 그리스 본토의 북쪽, 변방세력인 마케도니아가 본토 그리스의 거의 모든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흡수하는 것으로 전쟁은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이 전쟁의 배경쯤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여기는 것도 심각한 오류이다. 부상하는 마케도니아를 논외로 하더라도 '전쟁'은 그리스 내부의 양대 세력이 맞붙은 양상이지만, 거기 페르시아 제국이 있다. 산악 지형이라 농토도 비좁거니와(식량 자급이 힘든) 특산물도 별 것이 없는 아테나이가 힘을 쏟은 쪽은 바다였다. 또한 아테나이가 델로스동맹을 빌미로 동맹국들로부터 전쟁자금을 모금하고 운용하는 동안(정확히는 '전용'이다) 해군력을 눈부시게 증강시키는데 이것은 페르시아제국에 대한 아테나이의 식민시나 우호적인, 주로 해상권에 위치한 동맹국들의 두려움을 이용한 것이다. 작금의 미국 대통령 트럼프(만이 아니었다)가 중국, 러시아로부터 인접한 국가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면서, 미군을 주둔시키고 방위분담금 증액을 염치도 없이 요구하는 식의 행태가 당시에도 행해졌는데, 그 원형이 델로스동맹을 운영한 아테나이제국에서 찾을 수 있다.

    제국 페르시아의 침공에 대한 불안감, 제국 아테나이의 종자돈 방위분담금
    작금의 한일관계가 한-일 경제전쟁으로 변질되어, 혐한이다 반일이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다 험악한 위기 상태에 이르렀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북한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의 경제 제재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견뎌내고 있을까, 벤치마킹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대외무역(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그 때문에 이참의 시련을 견디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미-중, 중-미의 무역전쟁 혹은 경제전쟁의 근거를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을 꼼꼼히 읽는 동안 찾아낸 '투퀴디데스의 함정'이 화자되었다. 육군에서 강세이자 그리스 폴리스들의 맹주이던 스파르테가 해상세력의 맴주로 눈부신 성장을 하는 아테나이의 부상에 두려움을 느껴, 기원전 431년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급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불편한 심기'가 중미 혹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구현되었으며, 제 때에 제어하지 못하면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진단으로 이를 경계하는 학설이 '투퀴디데스의 함정'이다.

    중미, 미중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더니, 한일전에 '투퀴디데스의 함정' 상기
    남한과 북한, 한민족이 4대 열강의 각축전에서 처절한 슬픔을 맛본 역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일본이 동아시의 어느 나라보다도 일찍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을 선택한 것은 자잘못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원전을 충실히 읽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들은 서구의 오래된 그리고 못된 식민개척사를 배워, 메이지 유신이란 이름으로 변혁을 꾀하는데, 그 포장지를 벗기고 나면 그 실체는 정한론(征韓論)으로 드러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직접적인 요인 몇 가지가 있는데, 아테나이가 메가라에 가한 경제 제재로 기록상으로는 인류 최초의 기록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초반을 읽으면 그 내력을 알 수 있다. '밥을 먹을 때는 개라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속담이 있거니와 섣불리 밥의 문제를 건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메가라 칙령'으로 불리는 아테나이의 메가라 경제 제재가 오래 전쟁의 도화선으로, 피해자들을 결집시키고, 결과적으로 가해세력에게 참혹한 패배를 안겨주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부품 아닌 '소재 전쟁'이라, 카피가 아닌 응용력, 밉지만 부러운 원천 탐구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투퀴디데스의 함정'과 미중 무역전쟁을 운운하며, 그 근거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깊이 읽기를 지인들에게 독려했는데, 아베의 도발로 한미 경제전쟁에 당면하여 이 책,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대로 읽기를 독려할 것이라고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양대 세력이 갖춘 무력의 충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 출발에서부터 경제전쟁이다. 경제력 곧 무기와 식량 등 군수품을 지속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능력은 전쟁의 승패를 가름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것은 진리다. 끝으로 한 가지, 지금 당면한 한일전이 첨단제품인 반도체 생산의 핵심 부품이 아니라, 소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들은 문학상은 물론이고 과학분야에서도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은 열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보유한 국가이다. '메이지 유신'의 목적만 운운하지 말고, 그 과정의 디테일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책은 한 문명의 핵심을 기록한 고갱이다. 그것을 제대로 번역해야 응용도 가능하다. 단순한 카피가 아니라, 그 원천을 읽어야 제대로 된 카피도 응용, 곧 창조도 가능하다. 메이지 시대의 재현을 노리는 그들이 당시에도 지금도 나쁜 방향으로 기술(Tool)을 이용해서이지, 우리가 배워야 할 철저함, 거시적인 안목은 놀라울 정도로 작금의 우리 나라와 우리들 자신에게 경계하는 힘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아베가 고맙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을, 제 때에 잊지 말라고 깨우쳐 주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역사>와 고대 그리스를 아테네 임장에서만이 아니라, 사실은 친소관계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시기각각 변화되며, 역동적으로 작동했던, 지금은 '단일 민족적 국가'로 오해하는, 고대 그리스의 디테일을 담고 있다. 우리 그리고 동양사에서도 그러한 사례를 찾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아직은 미국이 헤게모니를 쥔 대표주자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양의 힘 때문이라도, 그들에게는 장기판의 공식처럼 작동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를 조금 깊이 읽기를 바란다.

  •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 ck**n320 | 2017.11.28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이 책을 구매하게된 계기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천병희의 카테고리를 보고난 뒤였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예전 다른 출판...

    이 책을 구매하게된 계기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천병희의 카테고리를 보고난 뒤였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예전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구매해 읽은 적이 있었는데 고전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더 알아보기 위해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구매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게된 것은 내가 구매해 읽었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의 각주에 천병희의 일리아스가 언급되어 있었던 것..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천병희의 책으로 구매할 걸 그랬나 조금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책의 두께는 상당한 편인데 마치 한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무난하게 읽혀 나간다. 인물명과 지명이 헷갈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명칭들이므로 그런 것일 듯 하다. 딱딱하고 읽기 어렵게 써있지 않으며 현 시대의 사람들이 읽기에 매우 쉬운 문체로 쓰여있다.

  • 역사 공부의 디딤돌 | tu**1029 | 2016.05.05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우선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번역해주시는 천병희 선생님을 존경하며 인생의 은인으로 사의를 표합니다. 동굴 속에서 밖으로 나와 ...

    우선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번역해주시는 천병희 선생님을 존경하며

    인생의 은인으로 사의를 표합니다. 동굴 속에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게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아무튼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는 수많은 지명이 등장하는데, 

    해당 장소의 위치를 잘 모르면 아무래도 상황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쪽 지리를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Classic 139: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Classic 139: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1), 800쪽.

     

    서평 전문 보기: http://pinepark.blog.me/220053426246

     

    그리스 세계가 힘을 합쳐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난후 내부의 균열이 생겼다. 3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전한 그리스 세계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같은 민족의 도시 국가 간에 패권 경쟁으로 분열되고 서로를 파멸과 쇠락의 길로 몰아넣었다.

     

    골리앗에 맞선 다윗과 같던 그리스 세계가 전력의 절대적 열세를 뒤엎고 페르시아에 굴종하지 않고 자유를 지켜낸 위대한 승리의 대가치곤 너무 가혹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은 전쟁 승리의 주역이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패권 다툼의 과정에서 발발했다.

     

    그리스의 많은 역사가들은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27년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가장 부질없고 참혹했던 소모전이라고 비판한다. 이 전쟁이 그리스 문명의 쇠락을 불러왔다는 데 대부분이 동의한다. 만개했던 그리스 문명의 힘을 전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소진시켜 결국 마케도니아에게 패권을 내주고, 곧이어 등장한 로마에 무릎을 꿇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각 나라 사이에는 동맹과 배신이 거듭되었다. 언제든지 국익을 위해 동맹의 주축국인 스파르타나 아테네와 연합하거나 돌아서는 일이 반복되었다. 불신과 교활한 계략이 판을 쳤다. 이로 인해 동존상잔의 전쟁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이 전쟁은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양분한 당시의 정치체제 간의 대결이기도 했다. 스파르타는 동맹국과 아테네의 동맹 도시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약속하여 과두정을 세우려 시도했다. 반면 아테네는 스파르타 지배 하의 도시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며 민주정을 도입하도록 추동했다. 한결같이 해방과 자유를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파르타와 아테네 어느 쪽이든 패권 국가의 영향아래 들어가게 됨으로써 결국 각 도시국가들에게 자유와 해방은 선전전에 불과했다.

     

    페르시아 전쟁이후 50년은 아테네의 황금시대였다. 하지만 동맹국의 뒷받침아래 이루어낸 아테네의 절정기는 아테네가 오만한 제국주의로 흐르면서부터 암운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몰고 왔고, 그리스 세계의 분열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국가 지도자의 포퓰리즘과 민중들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초래하는 비극적 결과에 대한 뼈아픈 교훈을 준다.

  • 연재 링크 보기 http://www.dailian.co.kr/news/view/428549 배신으로 벌 받고 서있는 여인들마...
    배신으로 벌 받고 서있는 여인들마저 아름다운...
    <박경귀의 ad Greece!④>한 지붕 세 신(神)의 성소 에렉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


    경귀 (사)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아담한 신전이 남아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관문인 프로필리아를 넘어 아크로폴리스로 입성하면 남쪽의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이 눈앞에 들어온다. 맞은편 서쪽에 위치한 에렉테이온(Erechtheion) 신전이 먼저 살펴볼 주인공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하고 압도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늘 눈에 그리던 아크로폴리스에 올라서서 성큼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잠시 멈춰 갖은 애환이 서린 아크로폴리스 전체 경관을 감격스럽게 한동안 바라본다.

    그리스 신전들은 전형적으로 직사각형의 반듯한 터전 위에 삼각 지붕을 든든하게 받치는 좌우 대칭의 우아한 기둥이 빚어내는 웅장미와 정제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에렉테이온 신전은 경사진 자연 바위 둔덕을 그대로 살려 언덕 위쪽과 아래쪽을 벽면과 기둥을 섞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건축되었다.

    지형의 높낮이가 다른 토대에 건축되다보니 대칭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 같다. 한 신전이 한 명의 신을 모시기 위한 성소라는 법칙도 이
    건물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한 신전 안에 세 개의 성소가 각기 다른 외양으로 건축되었다. 세 신(神)이 한 지붕 가족이 되어 더욱 이채롭다.

    남쪽에는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에렉테우스 성소, 동쪽에는 아테네 수호여신 아테나 성소, 북쪽을 바라보는 건물 아래쪽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 성소가 위치하고 있다. 3개의 성소가 2단의 토대 위에 하나의 신전 건물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다.

    ▲ 에렉테이온 신전을 복원한 모형이다.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왼쪽이 포세이돈 성소, 중앙이 아테나 성소, 여인 석주상이 있는 곳이 에렉테이온 성소다. 파괴되지 않았다면 매우 아름다운 복합 신전의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신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 박경귀

    ▲ 서남쪽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 왼쪽에 2개의 기둥이 보이는 부분은 포세이돈 성소다. 중앙의 여인 석주가 있는 곳이 에렉테우스 성소, 오른쪽 1개의 기둥이 보이는 동쪽이 아테나 성소다. ⓒ박경귀

    아테네의 역사를 연 인간 왕과 아테네를 축복하고 수호하기를 자처한 두 신을 한 건물에 모셨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역사와 신화를 결합시키고, 아테네의 영광의 지속을 기원한 아테네인의 지혜가 담긴 셈이다. 비록 아테나가 도시의 수호신이긴 하지만, 포세이돈의 가호가 없었다면 아테네가 어떻게 그리스 최강의 해상국가가 될 수 있었겠는가. 최소한 아테네인들은 그렇게 믿고 두 신을 공평하게 경배하지 않았을까?

    세 성소가 각기 다른 바닥과 기둥, 벽면으로 이어져 있지만 전체 신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파르테논 신전에 비하면 아담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파르테논 신전의 도리아식 기둥이 단순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는 반면 이보다 뒤에 건축된 에렉테이온 신전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보다 날씬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에렉테이온 신전 남쪽 중앙 바로 앞쪽에는 한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있다.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테네인들에게 선물 경쟁을 해서 아테나가 아테네인들에게 선물로 준 그리스 최초의 올리브 나무다. 다만 현재 남아있는 나무는 최초의 나무가 불탄 후 자라난 2세 나무다.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우선 에렉테이온 신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 서측면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 모습이다. 왼쪽 기둥 4개가 보이는 곳이 포세이돈 성소다. 중앙의 4개의 기둥이 있는 곳이 아테나 성소의 서측면이다. 오른쪽에 카리아티드가 보이는 곳이 에렉테우스 성소다. ⓒ박경귀

    에렉테이온 신전 구조물에서 포세이돈 성소의 웅장한 석주가 인상적이다. 지붕을 떠받치는 주두(柱頭) 양식은 양끝을 물결 문양으로 말아 우아한 느낌을 준다. 웅장한 석주에 부드러운 기교가 덧붙여진 느낌이다. 석주의 밑동은 섬세한 매듭 문양으로 수를 놓았는데 기둥 받침의 부드러운 S자 곡선과 세로 홈의 석주 가운데 접점에 위치하여 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엄청난 대리석 지붕과 석주의 하중이 쏠리는 팽팽한 긴장을 완화시키는 기교가 돋보인다.

    ▲ 포세이돈 성소의 측면이다. 웅장한 석주가 간결하면서 아름답다. ⓒ박경귀

    ▲ 포세이돈 성소의 천정은 사각의 기하학 문양을 여러 겹 겹친 모양으로 치장했다. ⓒ박경귀

    ▲ 포세이돈 성소의 이오니아 기둥의 섬세한 밑동 장식이 건축미를 더해준다. ⓒ박경귀

    에렉테이온 신전의 동쪽이 아테나 성소다. 아테나 성소 안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아테나 폴리아스(Athena polias)의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은 매년 아테나를 기르는 판아테나이아(Panathenaia) 축제를 성대하게 열었다. 아테네의 북서쪽에 있는 케라메이코스(Kerameikos)에서 출발하여 이곳, 아테나 성소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축제의 절정은 아테네 목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에렉테이온 신전의 규모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작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인의 아기자기한 사랑을 받았던 곳이 아닌가 싶다.

    ▲ 동쪽에서 들여다보이는 아테나 성소의 내부다. 지금은 페허가 되었지만 안쪽에 아테나 여신의 목상이 있었다고 한다. ⓒ박경귀

    에렉테이온 남쪽 측면이 에렉테우스 성소다. 이 성소 자체 보다 성소 입구를 장식한 여인상의 기둥이 더 주목을 받는다. 에렉테우스 성소의 수평 지붕을 여섯 명의 여인이 머리로 받치고 파르테논 신전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비운의 여인들이 관심을 끈다. 홈이 파인 석주 대신 지붕을 받치고 있는 여인상의 아름다운 조형미 때문이다. 이 여인상을 보는 관광객들은 대개 아름다운 건축 장식을 위해 여신상을 조상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이 아름다운 여인상 기둥에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슬픈 사연이 얽혀있다. 관광
    가이드조차 이에 얽힌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개 그리스 여신을 형상화했거나, 아름다운 여인상 기둥쯤으로 쉽게 보아 넘긴다.

    ▲ 남쪽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의 옆 모습이다. 에렉테우스 성소의 지붕을 여인상을 한 기둥 6개가 떠받치고 있다. 관광객들의 가장 즐겨 찍는 부분이다. ⓒ박경귀

    이 기둥역할을 하는 여인들은 여신이 아니다. 또 여성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부와 기쁨을 상징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들이 지붕을 머리로 받들고 이고 있는 건 징벌을 당하고 있음을 형상화한 것일 뿐이다. 사연은 이렇다. 페르시아 전쟁 당시 많은 그리스계 나라들이 그리스를 배반하고 페르시아에 부역했다. 에게해 동쪽 바다에 접하고 있는 지금은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 지역의 이오니아 도시 국가 중 여러 나라는 페르시아의 전쟁 징발 요구에 응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본토 및 펠로폰네소스 반도 내의 그리스 도시국가 중에도 페르시아와 내통하는 국가가 많았다.

    그들은 군사나 군량, 전쟁비용 등을 부담하고 참전하거나 아테네의 군사정보를 페르시아쪽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 카리아(Caryae)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이런 배신행위가 왜 일어났을까? 20만~30만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의 대군에 대적할 아테네의 병사는 적군의 10분의 1도 채 안 되는 소수였다. 현격한 전력 차이를 보자 그리스의 패전을 예측하고 자진하여 페르시아 편에 섰을 수도 있을 것이다. 훗날 적어도 아테네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테네의 배후 지역의 도시인 카리아가 배신했다는 점에서 아테네의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3차 그리스 침공은 아테네를 주축으로 한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괴멸시킴으로써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아테네는 승전 이후 페르시아에 부역한 도시국가들에게 합당한 죄상을 물었다.

    카리아 지방의 배반에 대한 책임은 더 혹독하게 물었다. 카리아를 정복하고 모든 남자를 죽이고 도시를 황폐화시켰다. 여자들은 노예로 끌어오고 개선행렬에서 모욕을 주었다.1) 또 이들의 배반의 죄과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카리아 지방 여인들 모습을 딴 여인상을 에렉테이온 신전의 기둥으로 삼았다. 카리아 여인들을 영원히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으로 상징화하여 동맹국들에게 배반의 징벌의 본보기를 보여 주고자 했던 것 같다. 여인상 석주가 카리아티드(caryatid)로 불리게 된 사연이다.

    결국 카리아 여인들은 자신의 나라 정치지도자들과 군대가 결정한 페르시아 참전과 부역의 벌을 대신 받게 된 것이다. 이 여인상은 페르시아 전쟁 당시 페르시아 편에 섰던 수많은 도시국가와 지방들의 죄업을 대신했다. 카리아티드는 아테네 시민들의
    가슴 속에 배신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아테네의 동맹국들에게는 배반을 예방하는 경고음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현재 아크로폴리스 에렉테이온 신전에 있는 카리아티드는 풍화와 훼손을 우려하여 복제품으로 대체되었다. 진품 카리아티드는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있는 신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소장되 어 있다. 카리아티드 6개중 4개는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고, 1개는 수장 중이며, 나머지 1개는 약탈해 간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다. 2013년 방문 시 박물관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카리아티드 진품을 보지 못해 아쉬웠었다. 2014년 1월에 다시 방문해서 기어코 진품을 확인했다. 보지 못했으면 내내 후회할 뻔 했다.

    2500년이 된 지난
    대리석 조상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매력적이다. 얼굴은 상당히 풍화되어 표정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여인들의 봉긋한 가슴과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 주름의 섬세한 조각이 놀랍다. 게다가 대리석 지붕의 하중을 견디는 기둥 역할을 하면서도 왼발을 살짝 내민 모습으로 조상한 자연스런 육체적 균형미를 만들어낸 건축적 역량과 예술적 기량이 감탄스럽다. 오랜 세월 동안 검게 퇴색된 대리석 표면은 레이저를 활용한 현대적 복원기법으로 때를 벗기고 뽀얀 대리석의 여인상의 아름다움을 복원시켰다. 카리아티드 한편에는 이들을 복원시킨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인들의 뒷모습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머리 부분에서 목선을 넘겨 가지런히 딴 머리를 늘어뜨리고 끝 부분을 소담하게 풀어내고 매듭 장식으로 묶었다. 머리를 굵게 땋아 뒤로 넘긴 것은 가는 목 부분을 보완하여 머리 위의 하중을 지탱하게 하기 위한 것 같다. 건축적 고려와 예술미의 결합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 신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4개의 진품 카리아티드가 전시되고 있다. 1개는 수장고에 보관중이라 한다. ⓒ박경귀

    ▲ 카리아티드의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머리를 땋아 내린 부분을 주목해 보라. ⓒ박경귀

    ▲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전시중인 1개의 카리아티드다. 물결 무늬의 머리와 전신의 균형과 옷매무새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경귀

    카리아티드를 보면, 우리나라의 유사한 사례가 생각난다. 전등사 대웅보전의 네 귀퉁이 보머리 사이에 끼워져 있는 목조 나신상(裸身像)이다. 목조 나신상이 머리와 손으로 대웅전 추녀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에렉테이온의 카리아티드처럼 우아한 멋을 자랑하는 입상(立像)이 아니라, 쪼그려 앉아 옹색하게 끼워져 있는 형상이다. 조각이 투박하여 남자인지 여자인지 형상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지만, 전하는 얘기로는 분명히 발가벗은 여자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전등사의 건축을 맡은 도편수의 사랑을 받던 아랫마을 주모가 도편수가 맡긴 돈을 챙겨 달아나자, 배신감과 원통함을 가누지 못한 도편수가 자신의 작품 속에 주모가 벌 받는 형상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았을 것 같은 그의 심사가 애처롭게 생각된다. 아테네의 카리아티드가 국가적 반역에 대한 징벌이라면, 전등사 나신상은 개인적 사랑의 배신에 대한 ‘예술적 복수’란 점이 다르다. 그의 애절함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해학적 느낌도 난다.

    ▲ 전등사 대웅전의 목조 나신상, 네 귀퉁이를 장식한 것 중 하나다. 이렇게 여인상을 끼워놓고 나서야 도편수의 원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을 것 같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margrina/5275107


    어쨌든 카리아 여인들의 비운의 운명을 알고 나면, 카리아티드(caryatid)라 불리는 이 여인상들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배경에 무관하게 에렉테이온의 카리아티드는 그 아름다움을 살린 건축적 효용으로 인해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계승된다. 이후 카리아티드는 여인상의 돌기둥을 지칭하는 서양 고전 건축양식의 한 이름이 되고, 로마시대는 물론 르네상스 이후 중세 건축에서도 자주 쓰이게 된다.  
     
    그리스 조각들을 모아 놓은 루브르 박물관의 ‘카리아티드 홀(Salle des Caryatides)’ 입구의 카리아티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건축 양식의 표본을 보여준다. 여인들의 표정에서 고통의 잔영을 전혀 볼 수 없고 아름다움과 기쁨에 충만한 모습이 강조되고 있다. 에렉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의 경우 두 팔을 자연스럽게 내린 형태를 취했는데, 여기서는 우아한 옷맵시를 강조하고자 두 팔을 완전히 제거했다.
     
     
    ▲ 루브르 박물관의 카리아티드는 여인 석주가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잘 보여준다.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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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주1 : 로마의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건축십서'에서 카리아티드의 유래를 설명하고, 기둥을 인간의 형상으로 한 건축 양식이 형성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포로주상도 그 한 예다.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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