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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2011.09.10 1판4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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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쪽 | A5
ISBN-10 : 8993952124
ISBN-13 : 9788993952124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2011.09.10 1판4쇄 중고
저자 이덕일 | 출판사 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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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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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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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금기가 된 김종서와 조선 전기의 역사를 새롭게 보다! 태종, 세종, 문종, 단종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운명처럼 마주선 수양대군과 김종서. 수양대군은 왜 김종서부터 제거하려 했을까?『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그동안 4군 6진을 개척한 장군으로만 알려졌던 김종서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 역사학자 이덕일이 이번에는 문신 김종서의 삶을 통해 태종에서 단종에 이르는 조선 전기의 역사를 새롭게 풀어냈다. 김종서가 수양대군에 의해 철퇴를 맞고 쓰러졌던 계유정난의 뒤에 감춰진 비극을 파헤친다. 굴곡진 조선의 역사에 휩쓸린 한 인간의 삶을 때론 무거운 역사로, 때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저자소개

저자 : 이덕일
저자 이덕일은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시작으로 뚜렷한 관점과 흡입력 있는 문체로 한국사의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풀어냄으로써 역사대중화와 동시에 한국역사서 서술의 질적 전환을 이뤄낸 우리 시대 대표적인 역사학자다. 《조선왕 독살사건》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 《조선 최대 갑부 역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선비 살해사건》 등의 조선사 관련 저술로 조선사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등을 통해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 패권주의사관에 의해 왜곡된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복원해냄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며, 시대와 인물을 읽어내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저술에 힘쓰고 있다.

사진 : 권태균
사진 권태균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뿌리 깊은 나무,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로 일했다. 일본 및 아시아권에서 사진을 요청해올 정도로 방대한 양의 한국사 사진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중·일의 역사 현장을 두루 섭렵하여 역사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춘 데다 발 빠른 취재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찍지 못한 역사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차

책머리에_ 조선의 꿈을 좌절시킨 이는 누구인가?
프롤로그_ 헌릉에서 엇갈리는 인연

1장. 5척 단신의 대호大虎
1_감찰어사 김종서
굶주린 백성 편에 서다 | 관료의 꽃, 이조정랑 | 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
2_양녕대군과의 악연
폐세자 되는 양녕대군 | 양녕대군을 탄핵하다 | 위협에도 변함없는 신념

2장.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1_세종이 내려준 활과 화살
항상 차고 있다가 짐승을 쏴라 | 조선 출신 명나라 사신의 횡포 | 우종서, 좌윤덕
2_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이리 떼 가득한 한양을 떠나다 | 세종의 깊은 신임
3_국경의 말썽꾼, 여진족
여진족, 조선의 건국을 돕다 | 조선을 침범하는 여진족
4_4군 6진과 어머니의 죽음
4군 6진 개척에 대한 반대들 | 이주를 꺼리는 백성들 | 변경에서 맞은 어머니의 죽음

3장. 북방강역을 넓히다
1_이를 용서하고 정벌하지 않는다면…
오랑캐가 모여 살면 화가 된다 | 병든 김종서의 아내를 외면하는 정인지
2_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김종서를 모함하는 박호문 | 위기에 빠진 김종서 | 서울로 돌아오다
3_김종서가 넓힌 강역은 어디까지인가?
공험진 이남은 조선의 경계이다 | 조선 강역에 대한 잘못된 지리 인식

4장. 못다 펼친 문종의 꿈
1_세종의 시신 앞에서
불행의 전조 | 재사 문종
2_태산북두
젊은 선비들의 지표가 되다 | 성리학자 김종서 | 흉악한 간신들이 번갈아 일어나서 |
당대 제일의 역사가
3_북방 전문가
북방문제는 반드시 김종서와 의논하라 | 몽골 대군의 침입 | 칠순의 도체찰사

5장. 조선의 운명 앞에 이는 회오리바람
1_문종의 와병과 수양의 야심
문종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 | 문종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
2_수양대군, 야심을 드러내다
어린 임금의 즉위 | 분경 금지에 반발하는 수양대군
3_한명회, 수양대군을 만나다
권력에 목숨 건 궁지기 | 잘못된 만남
4_수양은 왜 북경에 갔을까?
수양대군이 명 사신을 극진히 모신 이유 | 수양의 이현로 구타사건 |
수양대군의 북경 행적 | 하위지와 유성원의 반발

6장. 계유정난
1_조선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
안평대군은 과연 왕위를 꿈꾸었는가 | 수양의 이중플레이, 단종의 국혼 | 대호만 제거하면
2_운명의 10월 10일
대호 쓰러지다 | 살생부 | 논공행상

7장. 잠시 이긴 자와 영원히 이긴 자
1_끝나지 않은 피의 잔치
이징옥, 계유정난에 반발해 봉기하다 | 쫓겨나는 단종 | 상왕 복위기도 사건
2_공신들의 나라
공신들의 천국, 백성들의 지옥 | 세조의 종말 | 무오사화
에필로그_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 연표_김종서의 일생
● 참고문헌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김종서가 죽자 조선의 역사는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세종과 손을 잡고 조선의 북방 경계선을 넓혔던 대호 김종서. 젊은 선비들에게 태산북두로 추앙받은 문신이자 무신 못지않은 배포를 지녀 여진족을 벌벌 떨게 했던 김종서는 태종, 세종, 문종,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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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가 죽자 조선의 역사는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세종과 손을 잡고 조선의 북방 경계선을 넓혔던 대호 김종서. 젊은 선비들에게 태산북두로 추앙받은 문신이자 무신 못지않은 배포를 지녀 여진족을 벌벌 떨게 했던 김종서는 태종, 세종, 문종, 단종을 섬기며 역사의 현장에서 운명처럼 수양대군과 마주섰다. 무엇이 두려워 수양대군은 김종서부터 제거하려 했을까? 태종이 피의 숙청을 해가면서까지 막고자 했던 공신들의 나라는 왜 부활했는가? 수양대군의 가노 임어을운에게 철퇴를 맞고 쓰러질 때까지, 김종서의 삶과 죽음이 조선 역사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시대의 금기가 된 김종서와 굴곡진 조선 전기의 역사가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깨어난다.

역사대중화와 동시에 한국역사서 서술의 질적 전환을 이뤄낸 우리 시대 대표적인 역사학자 이덕일이 이번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종서의 일생을 통해 태종에서 단종에 이르는 조선 전기의 역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
김종서의 죽음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계유정난은 왜 우리 역사의 비극이 되었는가?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그동안 우리가 4군 6진을 개척한 장군으로만 알았던 김종서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며 김종서가 수양대군에 의해 철퇴를 맞고 쓰러졌던 계유정난, 그 뒤에 감춰진 진짜 비극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짚어준다.
저자는 이미 1999년에 김종서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10여 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자료, 새로운 현장 사진을 바탕으로 보다 촘촘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흡입력 강한 글을 써온 저자 이덕일은 이번 책을 통해 조선 역사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한 인간의 삶을 때로는 진중한 역사로 때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내며 독자들을 14세기 조선 속으로 이끌고 있다.

태종, 세종, 문종, 단종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현장에서 운명처럼 마주선 수양대군과 김종서. 수양대군은 왜 김종서부터 제거하려 했을까? 서른일곱, 연부역강한 수양대군이 일흔의 노인 김종서를 두려워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수렴청정을 할 대비도 없이 열두 살 된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왕위에 대한 수양대군의 야망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어리지만 총명한 임금이 있고 이를 보필할 충직한 신하들이 있었기에 수양대군은 피의 숙청을 단행해 공신들을 제거했던 태종과 같은 명분을 가질 수 없었다. 수양은 단지 왕위를 탐내는 야심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계유정난이 일어난 1453년 10월 10일, 수양이 무사들을 모아놓고 거사계획을 밝혔을 때 그곳에 모인 무사들이 보인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수양은 황보인, 김종서 등의 재상들이 어린 군주의 왕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거사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대의’ 운운하는 수양이 오히려 역적임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들은 수양의 거사를 국가의 위태로운 난리를 평정한다는 의미의 ‘정난靖難’이 아닌 ‘역모’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의 무리가 갑자기 대열을 이탈해 북문으로 도망갔다. 수양대군 측에 조금이나마 명분과 대의가 있었다면 도망가는 무사들이 나올 리는 없었을 것이다.

“계유년(단종 1)에 임금은 어린 나이로 왕위를 이었고 대군大君(세종의 아들들)은 강성하니 인심이 위태로워하고 의심하였다. 황보인·김종서·정분이 삼정승이 되었는데, 종서는 지략이 많아 당시 사람들이 대호大虎라고 지목하니 세조(수양대군)가 그를 먼저 제거하려 하였다.”
-명종 때 문신 이정형의 《동각잡기》에 묘사된 단종 즉위 초의 모습

명분 없는 쿠데타를 일으킨 수양에게 있어 나라의 기둥인 김종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단종 즉위 초 문종의 고명과 부탁을 받은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이 어린 임금을 보필했다. 이는 물론 단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운영되는 한시적인 체제였다. 삼정승 중에서 좌의정 남지는 병으로 휴가 중에 있었으므로 영의정 황보인과 우의정 김종서가 주도적으로 단종을 보좌했다.
단종 1년 8월 8일, 계유정난이 발생하기 약 두 달 전쯤의 《노산군일기》는 김종서에게 거의 모든 업무가 쏠려 있음을 보여준다. 영의정 황보인은 정부에서 의논할 일이 있어도 “영의정은 손님이오”라고 사양하면서 김종서에게 모든 일을 미루었기 때문에 홀로 출근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황보인의 겸양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김종서를 믿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어린 단종도 김종서를 믿었다. 쿠데타는 무력으로 일으키는 정변이었고, 이를 막는 것도 역시 무력밖에 없었다. 김종서는 문신이었지만 여진족과 몽골족 등의 준동으로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도체찰사를 맡아 북방으로 달려갔던 무장이기도 했다. 문文으로는 임금과 학문을 강론하는 지경연사이고, 무武로는 국경이 위태로울 때마다 말 타고 나아가는 도체찰사를 역임한 명실상부한 문무겸전의 대신이었다. 단종의 왕위를 노리는 자들이 대호 김종서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평생을 함길도로 평안도로 전선을 누볐던 김종서, 지방관들이 부임하지 않고 도망갈 준비를 하던 평안도에 기꺼이 도체찰사로 가 몽골군과 싸우기를 사양하지 않았던 김종서에게 기껏 사냥이나 다녔던 수양이나 한명회 등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오늘이 거사 날이니 그대들은 약속대로 움직이라. 내가 깊이 생각해보니 간당奸黨 중에서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자로는 김종서 같은 자가 없다. 만일 김종서가 먼저 알게 되면 일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두 역사를 거느리고 곧장 김종서의 집에 가서 그를 벤다면 나머지는 평정할 것도 없이 일은 성사될 것이다.”

수양의 이 말은 그가 김종서를 얼마나 큰 장애물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태종이 피의 숙청을 해가면서까지 막고자 했던 공신들의 나라는 왜 부활했는가?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태종은 자신이 조선사의 불꽃을 피우게 하는 밑불의 역할이란 사실을 자각하고 핏빛 숙청을 통해 각종 공신으로 가득했던 조정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따라서 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세종은 왕권을 위협하는 강신들이 없는 조정에서 안정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안정된 체제가 밑바탕 되었기에 세종은 북방강역을 확대하고 각종 문화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수양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세종이 발전시킨 정상적인 국가 체제가, 태종이 악역을 자처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으며 다져놓은 정상적인 국가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종이 피의 숙청으로 제거한 공신들의 세상이 계유정난에 의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수양이 되살린 공신의 수는 무려 2,300여 명이나 되었다. 심지어 정공신의 자제, 사위, 수종자들인 원종공신에게 줄 벼슬이 부족하자 우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겐 일은 없이 녹봉만 타가는 검직檢職을 제수하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신이 아니면 벼슬을 꿈꾸기 어려워졌고 백성들의 삶은 고달파져만 갔다. 1만 명이 넘는 공신과 그 가족들은 수양이 왕위를 꿈꾸지 않았으면 탄생하지 않았을 사회악이었다.
이들은 후에 훈구파가 되어 새로운 세력인 사림파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이는 이후 ‘당쟁’의 시초가 된다. ‘당쟁의 역사’라고 표현하는 조선 중·후기 역사의 폐해가 바로 이 계유정난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김종서, 우리가 몰랐던 조선사!

김종서가 넓힌 북방강역은 어디까지인가?

세종은 재위 21년(1439) 3월 6일 공조 참판 최치운崔致雲을 북경에 보내 공험진 남쪽은 조선의 영토라고 통보했다. 명의 태조 주원장이 홍무洪武 21년(고려 우왕 14년, 1388) “공험진 이북은 도로 요동遼東에 부속시키고, 공험진 이남 철령鐵嶺까지는 그대로 본국本國(고려)에 소속하라”는 조서를 내렸다는 사실을 명나라 조정에 국서로 상기시킨 것이다. 고려 우왕 14년 요동정벌군이 북상하려 하자 명 태조가 공험진까지 고려 영토라고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종은 공험진까지는 조선의 영토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공험진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였을까?
윤관이 ‘고려지경’이란 비를 세운 공험진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 있었다. 함길도의 남쪽 경계는 철령이며 북쪽 경계는 공험진인데 그 거리가 1,700리이다. 조선 초기에 작성한 각종 지도도 공험진까지가 조선의 강역이란 인식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발견된 조선 초기의 〈동국지도東國地圖〉는 세조 9년(1463) 정척鄭陟·양성지梁誠之 등이 제작했는데, 공험진 선춘령을 두만강 북쪽에 있는 속평강速平江(모사본에는 정평강定平江) 유역으로 그리고 있다. 속평강은 현재의 수분하綏芬下 및 목란강牧丹江 상류이다. 세종은 이 일대까지를 조선의 강역으로 확정했던 것이다.
조선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도 마찬가지로 기술하고 있으며 《북로기략北路紀略》 《북여요선北輿要選》 《북새기략北塞記略》 《북관기사北關記事》 《관북읍지關北邑誌》 등도 마찬가지로 공험진을 국경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일부 학자들과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윤관 9성의 위치를 길주 이남에서 함흥평야까지로 축소해 인식하면서 조선의 강역은 두만강 이남이라는 현재의 잘못된 지리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세종은 명나라에 공험진 남쪽은 조선의 강역임을 공식으로 통보한 후 김종서에게 공험진까지 강역을 확장하게 지시했다. 김종서가 세종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종실록》 〈지리지〉를 비롯해 〈동국지도〉 등에 조선의 강역이 공험진까지로 그려진 것은 김종서가 이곳까지 조선의 강역을 확대했음을 말해준다. 두만강에서 선춘령까지 700리 강역은 조선 초기까지도 조선의 강역이었으나 조선 후기인들이 역사 강역에서 지운 것에 불과하다. 김종서는 조선의 강역을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까지 확장했던 것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편찬자
김종서는 당대 제일가는 역사가였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편찬자도 김종서였다. 그러나 두 역사서에서 김종서의 이름이 삭제되었기에 김종서가 편찬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전하는 《고려사》의 가장 앞부분, 즉 〈고려사를 올리는 전문箋文〉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헌대부, 공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경연 춘추관사 겸 성균 대사성인 신臣 ‘정인지’ 등은 삼가 말씀드립니다. ‘신 등이 듣건대, 새 도끼 자루는 헌 도끼 자루를 표준으로 삼으며, 뒤 수레는 앞 수레를 거울삼아 경계한다고 하니 대개 이미 지나간 흥망의 자취는 실로 장래의 교훈이 되기 때문에 이 역사서를 편찬해 올리는 것입니다.’”
《고려사》의 주 편찬자는 정인지로 되어 있다. 그리고 편찬 날자는 문종 1년(1451) 8월 25일이다. 그러나 진실을 전해주는 것은 《고려사》 전문이 아니라 같은 날의 《문종실록》기사이다.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김종서 등이 새로 편찬한 《고려사》를 바치니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연표年表 2권, 열전列傳 50권, 목록目錄 2권으로 되어 있었다.”
“신 등이 듣건대, 새 도끼 자루는 헌 도끼 자루를 표준으로 삼으며, 뒤 수레는 앞 수레를 거울삼아 경계한다고 하니…”라는 전문은 정인지가 편찬한 것처럼 되어 있는 《고려사》와 같다. 김종서가 수양대군에게 격살당한 후 ‘김종서’를 ‘정인지’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시대의 금기가 된 김종서
김종서는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에 계속 역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긴 자의 시각일 뿐이었다. 김종서의 공은 누구도 지울 수 없었다. 선조 16년(1583) 율곡 이이는 상소문에서 “김종서는 드러나게 탄핵받았으나 자기 의견을 관철하여 6진을 개척하였습니다”라는 예를 들어 김종서가 6진 개척의 대업을 완수한 사실을 되새겼다. 인조는 재위 10년(1632) 청과의 충돌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자 함경감사 김기종에게 “옛날에 김종서는 아무것도 없는 땅에 창건하였는데, 지금 지키는 것은 이보다 쉽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김종서가 실제 역도였다면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가 되었을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는 물론 임금까지 그의 공적을 공공연히 언급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그를 역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김종서의 공식적인 신원은 쉽지 않았다. 수양대군, 즉 세조의 후손들이 계속 왕위를 이었기 때문이다. 세조의 직계인 예종(8대), 성종(9대), 연산군(10대), 중종(11대), 인종(12대), 명종(13대)은 물론 방계인 선조(14대)도 중종의 7남 덕흥군德興君의 셋째 아들로서 세조의 핏줄이었다. 광해군(15대)을 내쫓고 집권한 인조(16대)도 선조의 5남 정원군定遠君의 장남이니 세조의 핏줄이긴 마찬가지였다.
조선 국왕들의 이런 혈통 때문에 김종서의 신원은 두고두고 뜨거운 감자였다. 김종서의 신원은 자칫 세조 집권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죄였던 김종서는 결국 영조 22년, 그가 사망한 지 293년 만에 공식적으로 신원되기에 이른다.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을 밀어내며 수양이 건설한 조선은 공신들의 나라였다. 수양의 후예들이 계속 즉위하는 조정에서 김종서는 시대의 금기였다. 《고려사》 편찬자의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진 것처럼 권력자들은 그의 이름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세월이 비정상으로 흘러도 진실은 그 스스로의 목소리로 살아남음을 역사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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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박범석 님 2011.03.01

    김종서는 엄한 군율을 능사로 삼아 군사들을 두렵게 만드는 용장(庸將)이 아니라 군사들의 마음을 잡는 지장(智將)이었다. 가장 용감한 군사는 자신이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아는 군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장수였던 것이다. -p.113.

  • 임진영 님 2010.04.30

    김종서는 그 어두움을 막기 위해 목숨을 던졌고 상왕 복위기도 사건 관련자와 김종직, 김일손등 무오사화 관련자는 그 어두움을 걷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 그리고 김시습,남효온등 생육신은 그 어두운 세상을 거부했다 이들 모두는 현실에서는 실패했지만 역사에서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었던 것이다

  • 임진영 님 2010.04.30

    수양 측은 현실을 장악했지만 사육신은 정신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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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일 소장의 책은 항상 집중력을 높게 유지시키는 장점이 있다.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왕 독살 사건, 조선왕을 말하...
    이덕일 소장의 책은 항상 집중력을 높게 유지시키는 장점이 있다.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왕 독살 사건, 조선왕을 말하다 등 이미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 많다.  세조가 어떻게 김종서를 굴복시키고 정권을 잡았는지 그 시대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객관적 시각에서 세조를 비판하는 시각을 주욱 유지한다.  대중 역사평론가라는 타이틀이 손색이 없는 책이었다.^^* 
     
    최근 KBS에서 정통 사극으로 방영되고 있는 '정도전' 관련한 '정도전과 그의 시대' 라는 최근 출간된 책도 구해서 읽고 싶다. 
  •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옥당-2010) 세조에 대해 내가 알았던 사실은 무척이나 단편적이었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옥당-2010)
    세조에 대해 내가 알았던 사실은 무척이나 단편적이었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이를 뉘우치고 조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임금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책으로 읽고 난 뒤에는 (물론) 공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이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없애버린 임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한가람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의 2010년 작이다. 이 책에서 다룬 주인공인 김종서는 고려 말에 태어나 태종, 세종, 문종, 단종의 4명의 군주를 모시며 문과 무 양쪽에서 모두 공을 거둔 그 시대의 충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드라마화 된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 역을 맡은 이순재씨는 대호(大號)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체격은 그리 크지 않았던 그의 역할을 잘 맡은 것 같다.
    이 책은 시대의 금기였던 김종서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새로이 평가 받고 마침내는 복권되는 과정을 통해 권력의 무상함과 진실의 영원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3년 동안만 보위에 머물렀던 세조가 죽으면서 했던 말들, 권력의 중심이었던 한명회, 신숙주 등의 가졌던 참회의 마음 등 그들은 결국은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시간에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기에 읽기 편하다. 또한 기존 이덕일 소장의 책을 즐겨 읽었던 독자라면 이 책 역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덕일 소장은 내가 선호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인데, 그의 문체는 마치 소나무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남성적인 대나무와 같은 느낌을 주는 김훈과는 또 다른 읽는 맛이 있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가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3일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지쳐있었던 독서의 재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
  •      흔히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고 해석하는 자가 의미를 ...
     
       흔히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고 해석하는 자가 의미를 만든다.’ 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역사는 어떤 의미이든지 그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그 시대부터 이미 승자에 의해 역사 왜곡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후대에 해석하는 자가 나타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순수함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같은 역사가 두 번 왜곡된다는 의미다. 아마도 역사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쉽지 않음을 함축하는 말이 아닐까?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다룬 역사소설로는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김동인의 <대수양>이 있다. <단종애사>는 문종(文宗)이 정치적 기반을 닦아 놓지 못하고 승하하자 보위를 탈취 당해 어린 나이에 영월 청렴포에서 죽어야했던 적장자(嫡長子) 단종의 슬픈 역사를 다룬다. 반대로 <대수양(大首陽)>은 문종사후 대신들에게 빼앗겼던 왕권을 되찾아 강화하고, 조선을 구하고자 보위(寶位)를 찬탈한 수양대군에게 정당성을 두고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쿠데타 사건인 계유(癸酉)정란을 대하는 작가의 해석차이로 역사가 다르게 보이는 순간이다. 지금 그 수양대군이 바로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에서 다루는 인물 수양대군이다.
       역사란 가정(假定)을 세워보면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라고 한다. 역사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현재에 대한 아쉬움이 더할 때 그런 가정이 더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만약 조선에 계유정란과 같은 명분 없는 쿠데타가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당뇨병과 각종 성인병으로 치세 후반부를 병상에 누워 지내야했던 세종(世宗)은 모든 정치를 장남 향(珦)에게 맡겼다. 선왕(先王)이 승하(昇遐)하자 보위에 오른 그도 그만 세상과 일찍 하직하고 어린 아들 단종이 정치적 기반 없이 보위를 계승한다. 이때부터 조선의 비극은 시작한다.
       드세고 괄괄한 성품의 삼촌 수양대군은 어린 단종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수양대군의 곁에는 희대의 모사꾼 압구정(鴨鷗亭) 한명회(韓明澮)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권좌는 수양대군이 세조(世祖)로 조선 제7대 왕위에 오르면서 조선의 역사는 물줄기가 확 틀어져버린다.

       우리는 우리의 현대사에서 명분 없는 쿠데타가 부르는 잔인한 비극을 익히 보았다. 과거 조선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피바람을 몰고 와 왕위를 찬탈한 그가 권좌에 앉은 기간은 고작 13년 이었다. 그 13년은 향후 수백 년간 조선을 망치는 불씨가 되었다.

        문종(文宗)의 유언에 따라 어린 단종(端宗)을 보좌했던 황보인과 김종서가 왕권을 위협하며 사직(社稷)을 뒤흔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모사꾼 권람(權擥)과 한명회(韓明澮)의 주도로 쿠데타에 성공한 세조는 왕권강화의 정당성을 내세워 유교국가의 틀을 독재국가의 틀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쿠데타의 공신(?)은 친위대를 형성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잡고 단종에게 연민을 느꼈던 신하들은 혼백(魂魄)이 떠도는 불귀(不歸)의 객의 되어야 했다. 승자인 세조에게 손을 들어주는 역사의 기록은 쿠데타를 왕권강화 작업으로, 독재정권 수립과정을 각종 국가제도정비를 위한 그의 공으로 돌리고 있으나 그것은 그렇게 해석하기 나름이다. 정작 새로운 토지제도 및 조직제도에 의해 혜택을 본 자들은 계유정란의 주인공들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한 것은 세조가 왕과 신하의 수직적이며 보좌하는 관계인 유교국가에서 신하들의 힘이 커지는 신하중심의 국가로 물꼬가 바뀌는 역사적 정당성(?)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인조반정(仁祖反正)과 중종반정(中宗反正)에서 보듯 신하들이 왕을 선택하는 반정(反正)의 역사를 만드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태종이 그렇게 노력하여 외척(外戚)의 힘을 제거하며 왕권을 정비 강화하였다. 반면 세조의 쿠데타는 한명회를 중심으로 훈구세력들이 힘을 기르는 계기(契機)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인척과 정실 등이 벌족을 이루면서 부패의 온상으로 성장했다. 이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으로 훗날 각종 사화(士禍)의 빌미를 제공한다.
       단종을 죽이고 보위를 찬탈(簒奪)한 세조를 의제(義帝)를 죽인 항우에 빗댄 김일손(金馹孫)의 <조의제문(弔義帝文)>는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빌미를 마련했다. 이는 세조의 정란이 얼마나 명분이 없는 사건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연산군(燕山君)은 어머니 폐비(廢妃) 윤씨 폐위 사건 당시 이를 주장하거나 방관한 사람들을 찾아 죄를 묻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윤씨의 사사에 찬성하였던 윤필상(尹弼商), 이극균(李克均), 성준(成浚), 이세좌(李世佐), 권주(權柱), 김굉필(金宏弼), 이주(李胄) 등 10여 명이 사형되었고, 이미 죽은 한치형(韓致亨), 한명회(韓明澮), 정창손(鄭昌孫), 어세겸(魚世謙), 심회(沈澮), 이파(李坡), 정여창(鄭汝昌), 남효온(南孝溫) 등을 부관참시하는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난다. 연산군의 할아버지가 세조니 이는 또 한 번 꼬인 역사의 장난이 아니고 무슨 운명이겠는가? 
       또한 정란 당시 단종 복위를 주도하다 수양에게 죽은 사육신(死六臣)의 목숨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으리오.
       세조는 꿈에 나타난 단종의 어머니의 보복이 두려워 자신의 업보를 씻고자 국시가 유교인 조선에 불교의 뿌리를 다시 심었으니 이는 국가의 전통을 무너뜨리는 일에 왕이 두 팔 걷어 부치고 직접나선 꼬락서니가 되었다.

       아무튼 역사에 있어서 가정이란 후대의 사람들이 생각해보는 새로운 기준이지만, 세조의 찬탈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암흑으로 던져버린 정통성 없는 비극의 역사였다. 비록 이 일을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예견했다고 하지만......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위에서 말한 조선시대 최대의 비극적 역사 계유정란을 중심으로 태종, 세종, 문종, 단종에 이르기 까지 역사를 추적한 저작이다. 세조의 쿠데타를 왕권강화로 해석했던 과거의 관점이 많이 얇아지는 현실에, 세조(世祖)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사학자들이 속속 등장하는 점도 분명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지만 발전이라 생각한다. 지나간 역사지만 수양의 역사는 분명 부끄러운 역사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의 역사다.
       수양대군의 능인 경기도 광릉에 갔을 때 나는 묘역을 둘러보고 ‘한 일에 비해 너무나 좋은 곳에 묻혔구나!’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었다.
  •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 ko**a5232 | 2010.08.08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05년부터 읽은 도서를 기록해 오고 있는데 이 책은 315번째 책이자 이번년도에 20번째 읽은 도서   입니다. ...

    05년부터 읽은 도서를 기록해 오고 있는데 이 책은 315번째 책이자 이번년도에 20번째 읽은 도서

     

    입니다. 다른 책과 같이 읽다보니 속도가 많이 떨어져서 늦게 읽었는데 오랜만에 역사책을

     

    지루하지 않게 읽었던 책이였습니다. 이전의 책을 세계사를 읽었는데 모르는 내용이 너무 많으니

     

    지루한 편이였는데 우리나라 역사이고 조선 초기는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기에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독후감 같이 쓸려니 흐름이 잘 안맞을것 같지만 그래도 읽은 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쓴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깐요..ㅎ

     

    이 책을 읽기 전 김종서에 대해 아는거라고는 4진6군을 개척한 장군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문신이였으며 태종,세종,문종,단종으로 이어지는 4대의 왕을 섬겼고 오직 충으로만 일한

     

    신하였다는걸 알게 되었죠.  다른 똑똑한 인재들보단 늦게 출세하였지만 세종의 명으로 늙으신 노모의

     

    임종도 제대로 못지키고 아내의 임종조차 못지키면서까지 충을 따른 김종서. 하지만 안타깝게 세조의

     

    욕심에 의해 삶이 허무하게 마감되죠.  사람의 목숨이란게 인간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것이지만 만약

     

    문종이 조금도 오래 살아서 왕위를 유지하고 단종이 조금 나이 먹은 후 성인이 된 나이쯤 즉위하였으면

     

    김종서의 삶도 조선의 초기 역사도 많이 달라졌을테죠

     

    또한 한명회가 권력을 얻기 위해 수양에게 붙은걸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는 과거에 여러번 낙제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서 올바른 편에 섰다면 계유정난에 비극은 없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안타까웠던 것은 김종서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세조의 수하에 의해

     

    죽었다는 것인데 정승 집이면 사택에 약간의 군사쯤은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가네요; 군사들이 쫄아서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을수도... 어쨌든 조선초기 시대는 흘렀고

     

    다시 돌릴 수 없는 과거이기에 어쩔 수 없네요. 좋든 말든 받아들여야 하는게 역사이니까요. 다시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뿐이죠. 책을 읽으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것은 계유정난후 공신이 된

     

    한명회,신숙주 이런 인물들이 역적으로 죽게 된 자들의 부인,딸, 심지어 어머니까지 자신의 노비와 첩

     

    으로 삼았다는 내용인데, 아무리 그들이 죽어서 이승에 더 이상 없다지만 한때는 같은 임금을 모시는

     

    신하였고 생각하는 것이 달랐을 뿐 같이 일했던 동료인데 어찌 그런짓을 했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저라면 그냥 먼 곳에 집 얻어주고 살라고 할텐데..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봤을때 의문이 하나

     

    생겼는데 시대의 금기가 된 김종서와 굴곡진 조선의 역사가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깨어난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세조가 김종서를 역적으로 역사서에 기록하였기에 금기가 된건 이해가 되는데,,

     

    새로운 시각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네요. 제가 몰랐던 김종서의 문신, 4대의 왕을 모신점 말고는

     

    다 제가 알고 있던 내용인데.. 혹시 아시는분??? 또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종서의 어릴 적 삶을

     

    조금 묘사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입니다. 김종서가 죽은 뒤에는 세조가 공신들에게 자유를 너무 주어

     

    횡포를 부리고 다니는 내용이 주 였기에 이 부분을 조금 줄이고 김종서의 어릴적 삶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것 같습니다. 아마 뒷부분이 조선의 눈물일수도?? 아님 기록이 안남아있었

     

    을 수도 있지만요..

     

  •   우리가 김종서라는 인물을 기억하는 것은 '4군 6진'을 개척한 장군으로 알고 있다. 그 후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의 ...

      우리가 김종서라는 인물을 기억하는 것은 '4군 6진'을 개척한 장군으로 알고 있다. 그 후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의 빌미를 제공한 역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역사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세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최고의 문신이자 그 시대 최고의 학자였으며 수양대군의 야욕을 막고 단종을 보위할 수 있는 최후의 보류였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는 것이 승자의 왜곡된 기록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오래간만에 읽게 된 이덕일 선생의 역사서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김종서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고 권력욕에 빠진 수양대군의 명분없는 쿠데타인 계유정난이 조선의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헤친 역작이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집권한 태종은 재위기간동안 그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는 조선의 역사를 모두 뒤져봐도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백성을 위한 정치였다. 그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성군중의 하나였다. 태종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염려하여 해마다 5월이면 비를 내리겠다고 유언했다고 하고 그 유언대로 5월초에는 비가 온다고 한다. 해마다 그 시기에 내리는 비는 지금도 '태종우'라고 불린다. 골육살쟁의 콤플렉스릉 가지고 있던 그는 자신의 후대에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온갖 악역을 자청했다. 세종이 최고의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태종이 자신의 처남들은 물론 세종의 장인인 심온까지 제거하면서 외척과 종친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대호'라는 별칭을 가진 김종서는 세종시대에 변방을 개척하고 지킨 북방의 맹주였으며 성균관 유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최고의 학자였다. 그는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무관도 하지 못했던 북방개척을 이루었으며 올곧은 선비의 모습으로 그 시대 사대부들의 모범이 되었다. 7년에 걸친 북방의 생활에서도 개인의 생활 보다는 국가를 위한 충성을 다했고 세종의 옆에서 '고려사'를 편찬하는 등 최고의 문신의 역할도 해냈다. 그는 태종,세종,문종,단종의 시대를 걸쳐 문무를 겸비한 최고의 신하이며 학자이고 선비였다.

      세종이 세상을 떠난 후 문종이 즉위했으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면서 조선은 또 하나의 피바람을 준비하게 된다. 태종의 손자이자, 세종의 아들이며, 문종의 동생이고,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사로 잡힌다. 어린 단종의 운명은 위태로웠으며 단종의 보위를 지킬 수 있는 이는 오로지 김종서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종서는 결국 선제공격을 하지 못한다. 유학을 배운 학자로서 자신이 모신 주군의 손자이며, 아들이며, 동생이며, 숙부인 수양을 먼저 공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김종서는 수양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

      계유정난은 세조의 권력장악의 의미만 가진 것은 아니다. 태종이 모든 악역을 자청하며 정리한 공신들이 무더기로 다시 탄생하는 시발점이 된다. 공신들이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이 백성들에게 폐혜만 끼칠 뿐이라는 점에서 악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태종이 애써 만들어 놓고 세종, 문종이 확고히 만들어 두었던 유교정치릐 체제와 정상적인 국정운영의 방식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조선을 다시 공신들의 나라, 파행적인 국정운영이 이어지는 나라, 끊임없이 피바람이 부는 나라로 만들어 놓은 역사적 사건이다. 김종서의 죽음과 함께 조선의 이상인 유학정치과 정상적인 헌정질서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태종의 피바람은 조선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면 수양의 피바람은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에서 조선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결국 그 하룻밤의 운명이 이후 300여년에 걸친 조선의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역사의 만약은 없지만 김종서가 미리 수양을 견제할 수 있었다면, 사육신의 단종복위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책의 제목에서 '조선의 눈물'을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덕일 선생이 말하는 '조선의 눈물'의 의미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 또한 안타까움은 느낀다.

      역사를 읽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의 상황을 비춰보고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수양이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정상적인 헌정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에 조선이 짊어져야 했던 역사의 무게를 본다면 지금의 위정자들 또한 언제나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구에 대한 자제를 가슴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위정자들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단종의 시대에 왜 장군(?) 김종서가 영의정에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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