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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병소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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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쪽 | 규격外
ISBN-10 : 1158964420
ISBN-13 : 9791158964429
치병소요록 중고
저자 문저온 | 출판사 시인동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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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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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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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발견》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저온 시인의 서사시집 『치병소요록』이 출간되었다. 몸이 감내하고 있는 여러 고통을 언어로 펼치면서, 동시에 삶의 내막을 두드려 그 신음을 기꺼이 듣고 토해내는 시집, 단편적인 머무름이 아니라 온 몸을 매만지듯 퍼져나가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몸의 서사가 시(詩)를 만나 한 권의 서사시집이 되었다. 한의사이기도 한 시인의 경험과 몸에 대한 시적인 사유가 만난 것이다. 지금껏 시단에서 이토록 아름답고 생경하게 몸을 사유한 시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치병소요록』은 우리가 가진 아픔과 상처를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 병을 다스리며 보낸 시간들의 기록이다. 때로는 진찰하는 의사와 환자의 만남이었다가, 상처를 보여주는 사람과 상처를 들킨 사람이었다가, 떠나가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처럼 그려진다. 이 사실적이고도 환상적인 기록은, 우리가 당도해 있는 ‘몸’의 내밀함을 읽어가는 각주이자 동시에 ‘시’의 외연으로 흐를 수 있는 형식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발표작을 묶어 내는 방식의 작품집이 아닌, 시인 자신이 스스로와 끊임없이 사투하여 치밀하게 얻어낸 어디에도 없는 실험의 현장이다.

해설을 쓴 고봉준 평론가는 “‘한의사’와 ‘시인’, ‘몸’과 ‘말’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인간의 삶과 실존에 대한 사유를 펼쳐 보이는 것, 문저온 시의 힘과 매력은 정확히 여기에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대목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시편의 부제로 달려 있는 ‘사전적 정의’와 ‘시적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이며, 이 시집은 그 충돌을 통해 길을 내어 자신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한 시인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몸이 마음에게 내어주는 것, 마음이 몸에게 내어주는 것,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따로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 사람의 일이라면, 『치병소요록』이 한 권으로 일궈 세우는 이 시적인 서사를 통해 우리는 “‘몸’의 존재론을 부각시키고, 질병, 상처, 고통, 죽음 같은 부정적 요소를 경유하여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저자소개

저자 : 문저온
197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15년 《발견》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목차

프롤로그

아마 나는, 어쩌면 너는
서혜(鼠蹊) 12
울기(鬱氣) 14
삽(揷) 16

비밀과 거짓말
슬와(膝窩) 20
경련(痙攣) 22
구급(救急) 24

아득해진다
다몽(多夢) 28
요안(腰眼) 32
인설(鱗屑) 34

돌아보다
항강(項强) 38
조갑(爪甲) 40
향(香) 42

뼈와 칼
하악(下顎) 46
부종(浮腫) 48
기도(祈禱) 51

도착해서 죽는 말들
늑간(肋間) 56
난청(難聽) 58
고인(故人) 61

검은, 푸른, 흰
동공(瞳孔) 66
타박(打撲) 68
골(骨) 70

꿈같다는 말, 개 같다는 말
이륜(耳輪) 74
중독(中毒) 76
수장(水葬) 78

적어 넣다
소복(小腹) 84
병명(病名) 86
말기(末期) 88

이 긴 순간
오심(惡心) 92
애도(哀悼) 94
안검(眼瞼) 96

벌어지다
비익(鼻翼) 100
발적(發赤) 102
부음(訃音) 104

긴긴 착륙
견갑(肩胛) 110
장루(腸瘻) 112
임종(臨終) 114

않을 수 없는
대퇴(大腿) 118
열루(熱漏) 120
필사(必死) 122

우리는 개입한다
망진(望診) 126
문진(問診) 128
절진(切診) 130

해설 모든 상처는 내상(內傷)이다 132
고봉준(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아마 나는 삽처럼 네게 꽂혔을지도. 아마 나는 삽처럼 벼린 날을 내 옆구리에 꽂아 넣었을지도. 움푹, 벌건 생의 귀퉁이를 떠냈을지도. 서식과 이식. 아마 나는 삽처럼 꼿꼿하게 서 있을지도. 혓바닥이 혀끝이 내가 세계와 접하는 최첨단일지도. 첨단으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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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삽처럼 네게 꽂혔을지도. 아마 나는 삽처럼 벼린 날을 내 옆구리에 꽂아 넣었을지도. 움푹, 벌건 생의 귀퉁이를 떠냈을지도. 서식과 이식. 아마 나는 삽처럼 꼿꼿하게 서 있을지도. 혓바닥이 혀끝이 내가 세계와 접하는 최첨단일지도. 첨단으로만 나는 너를 만났을지도. 첨단을 다해 나는 너를 버렸을지도. 삽날에 묻은 흙을 털어내듯이 탕, 탕, 빈 바닥을 두드리며 나는 지금 서 있을지도.

-「삽(揷)」 부분

한 시간쯤 뒤에 너는 네 몸과 싸우다 지쳐 잠들었다. 동시에, 네 몸도 지쳐 잠들었다.
입 없는 분노가 일으킨 태풍과 해일을 보았지만, 나는 네게 다른 걸 캐묻지는 않았다. 네가 돌이켜 인지하였으므로, 마주하였으므로. 너의 정신이 맞서고 수습할 이후의 시간을 조용히 믿었다.
자해도 가해도 하지 않느라 너는 너와 싸움 붙었을 것이다. 지진이 일었을 것이다. 드디어는 네 몸이 너를 탈주하려는 그때, 네가 나를 붙들어 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태연한 척 네 눈을 맞추고 네 몸을 만지고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너의 자존을 위해 너의 참혹과 분노를 캐묻지 않았지만…… 이것 또한 거짓말이 아닐까- 내겐 네 분노와 참혹을 들어줄 용기도 능력도 없었던 게 아닐까-
나는 겨우 네 몸만 네게 돌려주고.

-「경련(痙攣)」 부분

해바라기가 말한다.
머리라면 제게도 있는 걸요.
나는 그의 목과 어깨에 박힌 나사를 풀어준다.
오른쪽, 왼쪽, 남은 슬픔을 확인하듯 해바라기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돌아본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어안(魚眼) 대신 우리는 가느다란 목을 가졌지만.
뒤란, 보이는 것일까-
긴긴 뒤를 데리고 걷는 사람, 우리는. 걸으면서 뒤를 낳는 사람, 우리는. 낳다가 멈춰서 잠시 돌아볼 때, 뒤란, 보이는 것일까- 등에 붙어 나와 함께 돌아보는 나의 뒤라는 것은-
나는 등 뒤로 돌아가 드는 칼로 내 등에 붙은 뒤를 발라낸다. 거죽을 발라내고 기름을 걷어내고 힘줄을 덜어내고 기기긱 칼끝이 뼈에 닿는 소리를 낼 때, 거기 세로로 박혀 있는 1미터 60센티의 나사못 한 개.
나는 첫 문장을 다시 수정한다.
뒤돌아보려 했으므로 인간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불가항력을 맞이하는 표정이 우리의 얼굴을 덮친다.

-「항강(項强)」 부분

나는 네게로 가는 말들을 붉은 종이에 겹겹이 싼다. 네 굽은 늑골과 늑골 사이에 끼워 준다. 딱딱한 불꽃들. 갓 죽은 것들. 죽고 아름다운 것들. 그래서 싱싱한 것들.
말은 가서 죽는다. 가서 죽으려고 태어나는 말들.
지상에 피어나는 것은 모두 홍등(紅燈) 아니면 조등(弔燈).
두 팔을 엇갈려 몸통을 감싸 안고, 나는 내 야윈 늑간마다 열 손가락을 포갠다.

-「늑간(肋間)」 부분

[프롤로그]
가슴을 쪼개 보이며 그가 말했다.
내 마음엔 부자(附子)가 들었으니 차게 식혀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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