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KYOBO 교보문고

금/토/일 주말특가
매일 선착순 2,000원
광주상무점신년이벤트
  • 낭만서점 독서클럽 5기 회원 모집
  • 교보아트스페이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5
* 중고장터 판매상품은 판매자가 직접 등록/판매하는 상품으로 판매자가 해당상품과 내용에 모든 책임을 집니다. 우측의 제품상태와 하단의 상품상세를 꼭 확인하신 후 구입해주시기 바랍니다.
292쪽 | 규격外
ISBN-10 : 8946066520
ISBN-13 : 9788946066526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5 중고
저자 손정목 | 출판사 한울
정가
17,500원
판매가
16,450원 [6%↓, 1,050원 할인]
배송비
2,500원 (판매자 직접배송)
지금 주문하시면 2일 이내 출고 가능합니다.
토/일,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 기준으로 배송이 진행됩니다.
2019년 5월 20일 출간
제품상태
상태 최상 외형 최상 내형 최상
이 상품 최저가
16,450원 다른가격더보기
  • 16,450원 책책북북 특급셀러 상태 최상 외형 최상 내형 최상
새 상품
15,750원 [10%↓, 1,750원 할인] 새상품 바로가기
수량추가 수량빼기
안내 :

중고장터에 등록된 판매 상품과 제품의 상태는 개별 오픈마켓 판매자들이 등록, 판매하는 것으로 중개 시스템만을 제공하는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해당 상품과 내용에 대해 일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교보문고 결제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은 직거래로 인한 피해 발생시, 교보문고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판매자 상품 소개

※ 해당 상품은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하여 안내하는 상품으로제품 상태를 반드시 확인하신 후 구입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판매자 배송 정책

  • 토/일,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 기준으로 배송이 진행됩니다.

더보기

구매후기 목록
NO 구매후기 구매만족도 ID 등록일
43 배송이 좀 느리긴 했지만 완전 새책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socce*** 2020.02.27
42 중고책인줄 알고주문했는데, 아주 깨끗한 새책을 보내줘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싶어서 전화했더니 전화는 안 받는군요. 참궁금해요. 5점 만점에 5점 co*** 2020.02.19
41 좋습니다!좋습니다!좋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dot*** 2020.02.19
40 감사해요 상태가좋아요 5점 만점에 5점 manja1*** 2020.02.18
39 자세한 정보가 적혀있고 아쉬운점은 이미지가 한장도 없어요 5점 만점에 3점 sujen*** 2020.02.18

책 소개

상품구성 목록
상품구성 목록

한국전쟁 이후 현재의 모습이 있기까지 서울 도시계획 반세기에 대한 증언 서울시의 공간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66년부터 1980년까지의 15년간이었는데, 지은이는 격변하는 시기의 한가운데-1970년부터 1977년까지-서울시에서 도시계획국장 등으로 근무하였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이 수많은 아파트 단지와 고층빌딩이 난무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된 배경, 즉 도시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입안되고, 수정되고, 시행되는 과정과 뒷이야기를 엮었다. 서울시 최초의 도시계획 수립에서 최근 수서사건의 전말까지 신문, 국회속기록, 용역보고서, 재판소판결문 등의 자세한 자료 인용을 통한 고증과 관련인물에 대한 얘기, 비사까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불쾌해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자는 오직 귀중한 역사이기 때문에 충실하게 후세에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써내려갔다. 7년간 23꼭지, 200자 원고지 7,200여 매의 방대한 분량으로 집필하면서 작업 막바지에 위암 수술도 한 차례 받았고, 교통사고도 있었다. 23꼭지 중 19꼭지는 국토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국토≫에 1996년 5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연재했던 내용이다. 군살을 뺀다고 했는데도 방대한 분량이다.
서울시나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부처에서처럼,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은 역사의 충실한 전달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손정목
192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중학(구제),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법과 전문부(구제)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에 편입하자마자 6?25 전쟁이 발발하여 학업을 포기하고 서울을 탈출, 49일 만에 경주에 도착하였다. 1951년 제2회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하고 1957년 예천군에 최연소 군수로 취임하였다. 3?15부정선거 관련자로 3년간 실직하고 1963년에 행정서기관으로 복직하였다. 1966년 잡지 ≪도시문제≫ 창간에 관여, 1988년까지 23년간 편집위원을 맡았다. 1970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특별시에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7년 서울시립대학(당시 서울산업대학) 부교수로 와서 교수?학부장?대학원장 등을 거쳐 1994년 정년퇴임하였다.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 『조선시대 도시사회연구』(1977),
『한국개항기 도시사회경제사연구』(1982),
『한국개항기 도시변화과정연구』(1982),
『한국 현대도시의 발자취』(1988),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연구』(1990),
『한국지방제도?자치사연구』(상?하)(1992),
『일제강점기 도시화과정연구』(1996),
『일제강점기 도시사회상연구』(1996)

* 8월 29일 KBS <인물현대사> ‘김현옥 전 서울시장’편 출연 예정
* ≪역사비평≫2002년 12월호 ‘나의 학문 나의 인생’ 대담 중에서

도시계획 이야기나 현대도시사를 정리하면서 절치부심하실 것 같은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도시계획국장이나 도시계획 행정가로서 도시계획을 평가하려면 아무래도 자기 일이기 때문에 후하게 평가하겠지만, 학자로서 평가하라면 객관적이고 냉정해져서 평가에 인색할 거거든요. 사람이 그렇게 되기 마련인데, 선생님께서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갖고 계시니, 만약 회고록을 쓰신다면 평가대상이 당신 자신이기 때문에 그런 데서 오는 갈등이나 고민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웃음)
-어느 저명한 교수가 미국유학을 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서 공식석상에서 우리 선배들은 무엇을 했느냐, 왜 도시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놨느냐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아주 혼이 났습니다. 작년에 일본 도시계획학회 50년사에서 글을 써보내라고 해서 내가 이렇게 썼어요. “토지가 있고 돈이 있으면 인구가 10배가 늘든 20배가 늘든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항상 일본의 1/10, 서울시 재정규모는 도쿄의 1/30, 서울시의 면적도 산을 빼고 나면 도쿄의 1/5밖에 안된다. 그런데 여기에 계속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 어떻게 도시게획을 했겠느냐”고 썼습니다. 대담, 기발, 강압, 부조리 이것이 서울시 도시계획입니다. 예를 들면 김현옥, 양택식, 구자춘 이 세 사람이 서울시정을 맡았던 12년 8개월 동안에 도로, 상수도, 지하철 등 서울시의 하부구조가 다 완성되었습니다. 이때 했던 일은 미국사람이나 서양사람, 일본사람들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할 것들이에요. 그렇게 안 하면 천만 명을 수용할 수 없는데 어떻게 했겠느냐는 거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당시 행정담당자로서의 입장이시고요.
-물론 문제가 있습니다. 1970, 80, 90년대 이 30년 동안 서울과 서울 주변의 아파트들이 다 지어졌습니다. 그러니 이것들이 수명을 다하는 때도 같이 오겠지요. 예를 들어 2030년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참 큰 문제입니다.

지금 청계천 복원 얘기가 나오면서 그때 왜 묻었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30년 동안 지은 아파트 양에 비하면 청계천 정도는 문제도 아니지요. 지을 것은 또 짓는다치고, 지은 것들 파괴한 쓰레기를 다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아무런 해답이 없어요.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는 그런 아파트들이 없거든요. 그래서 일본 학자들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요. 답변할 방법이 없지요. 그래서 웃으면서 “내가 죽고 난 뒤니까 내가 그런 데까지 머리 썩힐 필요가 없지”라고 대답하고는 속으로 국민소득 300불 시절에도 했는데 3만 불 시대에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는 낙관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잘했던가? 내가 다 책임질 문제는 아니지만, 참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워낙 많은 원고를 쓰셨는데… 원고량에서도 그렇지만, 원고료 액수로도 대한민국 1위가 아닐까 싶은데요.
-한 장에 5,000원씩 잡아서 20만 장이면 10억인데, 그 이자로 아들 둘 미국유학 보냈고, 내가 지금 가진 전재산이 10억 가까이 될 거예요. 그러면 맞죠?(웃음)

목차

①권

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한국전쟁과 서울의 피해
1. 7월 16일 용산폭격과 김용주 공사
2. 세기의 대도박-인천상륙작전
3. 1?4후퇴와 서울의 파괴
4. 만신창이가 된 서울

서울시의 전쟁피해 복구계획
1.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계획가, 장훈
2. 서울시의 전쟁피해복구
3. 시가지 고층화의 꿈-1953년의 건축행정요강

워커힐 건설-군사정권 4대 의혹사건의 하나
1. 베일에 싸인 워커힐 건설과정
2. 호화로운 워커힐의 적자운영
3. 워커힐이 미친 파급효과

박흥식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 전말
1. 기업가 박흥식과 불광­수색 신도시계획안
2. 남서울 신도시계획안
3. 계획 좌절의 과정

새서울 백지계획, 도시기본계획과 8?15전시
1. 새 행정수도 건설계획
2. 서울시 도시기본계획
3. 계획의 발표와 평가
4. 8?15전시

아 ! 세운상가여-재개발사업이라는 이름의 도시파괴
1. 방공법에 의한 소개도로
2.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이전의 사정
3. 종묘 앞­대한극장 간 재개발계획
4. 설계에서 건축까지
5. 짧았던 영광, 퍼부어진 비난
6. 아! 세운상가여-앞으로의 운명

한강종합개발-만원 서울을 해결하는 첫 단계
1. 1950~60년대의 서울과 한강
2. 한강종합개발계획
3. 한강개발과 강변도로
4. 한강제방공사로 조성된 택지지구

②권

여의도 건설과 시가지가 형성되는 과정
1. 개발되기 이전의 여의섬
2. 윤중제가 건설되기 이전의 과정
3. 윤중제 공사-110일간의 혈투
4. 김수근 팀에 의한 도시설계
5. 양택식 시장의 여의도 건설
6. 1971년 계획과 그 후의 발전
7. 건축규제-동고서저(東高西低) 현상

존슨 대통령 방한에서 88올림픽까지-도심부 재개발사업
1. 낡고 초라한 1960년대의 서울 도심부
2. 도시재개발 개념의 정착
3. 도심 재개발을 촉진한 ‘존슨 대통령 방한’
4. 소공동 화교들의 축출과정
5. 본격화되는 도심부 재개발사업
6. 1980년대 마포의 공간혁명
7. 86아시안게임?88올림픽이 촉진한 재개발
을지로1가 롯데타운 형성과정-외자유치라는 미명하에 베풀어진 특혜
1. 조선호텔 신축 개관
2. 1970년대 관광정책의 전환과 국영호텔 민영화
3. 일본 롯데자본의 한국유치
4. 롯데호텔 부지확보를 위한 배려
5. 외자유치라는 미명 아래 베풀어진 각종 특혜조치
6. 한국 최고의 호텔 롯데의 준공
7. 호텔지원시설로 지어진 롯데쇼핑센터
8. 산업은행 본점의 기구한 운명

③권

능동 골프장이 어린이대공원으로
1. 대한민국 최초의 골프장
2. 골프장을 옮기라는 대통령 지시
3. 온 국민의 성원을 담아 완공
4. 어린이대공원 건설이 주변지역에 미친 효과

경부고속도로 준공으로 시작된 강남개발
1. 제3한강교의 가설
2. 경부고속도로와 자동차시대 개막
3. 정치자금 마련을 위한 권력층의 강남 토지투기
4. 영동제2지구 개발계획 발표와 땅값 상승
5. 말죽거리 신화-땅값 앙등
6. 강남시가지 형성을 촉진시킨 요인들

잠실개발과 잠실종합운동장 건립
1. 잠실 공유수면 매립공사
2. 입체적인 도시설계에 의한 구획정리사업
3. 잠실 아파트단지 계획
4. 세계수준의 잠실종합운동장 건설

3핵도시 구상과 인구분산정책
1. 다핵도시 구상
2. 지하철순환선(2호선) 건설
3. 고속버스터미널의 입지
4. 영동아파트지구 건설과 아파트재벌의 영락
5. 인구억제계획 시안의 전말
6. 강북 명문학교의 강남 이전과 8학군 형성
7. 3핵도시는 이루어진 것인가

④권

황야의 무법자-3대공간 확충정책
1. 3대공간 확충정책을 표방하는 과정
2. 도로공간의 확충
3. 주차공간?녹지공간 확충

신무기 개발기지가 서울대공원으로
1. 입지결정과정-박 대통령과 김재춘
2. 공원계획의 내용
3.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인구집중방지책과 행정수도 전말
1. 서울인구 격증과 인구집중방지책의 전개
2. 수도권 인구재배치계획과 과천 신도시 건설
3. 행정수도-1977년 말까지
4. KIST 지역개발연구소에서의 작업
5. 행정수도의 종말과 유산

주택 5백만 호 건설과 목동 신시가지 개발
1. 전두환 대통령과 주택 5백만 호 건설 발표
2. 택지개발촉진법의 시행과 결과
3. 서울에서의 공영개발과 목동지구 설계
4. 생존권(주거권)이라는 이름의 저항
5. 서부지구의 핵이 되었는가

⑤권

88올림픽과 서울 도시계획
1. 88올림픽 개최지 결정까지
2. 86?88양대행사와 서울 도시계획
3. 올림픽공원 조성
4. 남겨놓고 싶은 이야기 1-상징조형물, 평화의 문
5. 남기고 싶은 이야기 2-롯데월드라는 괴물
6. 남기고 싶은 이야기 3-이름만의 올림픽대교
주택 2백만 호 건설과 수서사건
1. 주택 2백만 호 건설과 수서지구
2. 한보주택 정태수 회장과 26개 주택조합
3. 청와대, 정치권의 개입과 고건 서울시장의 항거
4. 주택조합에 특별공급 결정
5. 사태의 반전-줄줄이 구속되다

청계천 복개공사와 고가도로 건설
1. 청계천-조선왕조의 인공하천
2. 청계천 복개의 역사
3. 청계고가도로의 탄생과 소멸

남산이여!
1. 일제강점 말까지의 남산
2. 제1공화국시대의 남산훼손
3. 제3?4공화국 시대의 훼손
4. 남산 제모습찾기
5. 길이길이 건강하라

책 속으로

김현옥 시장은 기발한 쇼맨이었고 탁월한 연출가였다. ‘도시는 선이다’라는 슬로건이 시청 정문에 게시되었을 때는 그 말이 지닌 의외성?함축성에 온 시민이 놀라워했다. “8월 15일까지 교통난 31%를 완화하겠다”는 공약에 접했을 때 많은 시민은 왜 30...

[책 속으로 더 보기]

김현옥 시장은 기발한 쇼맨이었고 탁월한 연출가였다. ‘도시는 선이다’라는 슬로건이 시청 정문에 게시되었을 때는 그 말이 지닌 의외성?함축성에 온 시민이 놀라워했다. “8월 15일까지 교통난 31%를 완화하겠다”는 공약에 접했을 때 많은 시민은 왜 30도 35도 아닌, 31%여야 하느냐에 오히려 감탄할 정도였다.
주요공사의 기공식?준공식을 3?1절이니 5?16, 8?15 또는 개천절을 택한 것도 그가 최초였다. ‘몇 월 며칠까지 완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도 그였다. 세종로지하도도 무악재길도 삼일로도 그렇게 해서 개통되고 확장되었다. 그리고 가장 사람의 통행이 많은 시간에 이들 공사장 한가운데 헬멧을 쓰고 지휘봉을 든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한강개발을 할 때에는 시(詩)를 써서 각 언론기관에 돌리고 스스로도 그 시에 도취되는 그런 인물이었다.
▶ 1권 234쪽에서

45세 김현옥과 35세 김수근의 ‘일을 통한 최초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 단계에서 완전히 의기투합했다. ……김수근은 그 후의 시장들과도 매우 친숙한 관계를 맺었다. 구자춘 시장(1974~78년)과도 가까워 이른바 삼핵도시개발을 구상한 김형만은 김수근이 구자춘에게 소개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구자춘 시장 재임시에 김수근은 잠실대운동장(훗날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착수했고 그 작업은 그후 정상천?박영수?김성배?염보현 시장으로 이어지는 1986년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김성배 시장은 김수근을 대단히 좋아해서 김 시장이 목동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김수근을 불러 상의했고 그 결과 김수근과 그가 추천한 인물들에 의해서 오늘날의 목동지구가 실현되었다.
▶ 1권 268쪽에서

“청와대와 상공부장관이 돈을 내고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 하수인으로서 토지를 매점하고 서울특별시장이 땅값 빨리 올라라 깃발을 흔들고 많은 시민이 땅값 올리기에 동참을 했으니” 생각해보면 온 국민의 분통이 터지는 웃지 못할 만화요 연극이었다. 연극이라면 그것을 희극으로 볼 것인가 비극으로 볼 것인가. 여하튼 1970년 전반에 4,500∼6,000원이던 강남의 땅값은 1971년 전반에는 1만 4천~1만 6천 원이 되었다. ……1963년의 땅값수준(지수)을 100으로 했을 때 1970년 현재, 현 강남구 학동은 2,000, 압구정동은 2,500, 신사동은 5,000이었다. 7년간에 각각 20?25?50배가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에 중구 신당동과 용산구 후암동의 땅값은 각각 10배와 7.5배가 오른 데 불과했다. 그런데 1970년대의 말 즉 1979년 현재로 학동?압구정동?신사동의 지가지수는 각각 13만 3,333과 8만 7,500 그리고 10만이었다. 즉 1963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16년간에 학동의 땅값은 1천 333배가 오르고 압구정동은 875배 올랐으며 신사동은 1천 배가 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기간(1963∼79년) 중구 신당동과 용산구 후암동은 각각 25배씩 올랐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말죽거리 신화’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강남의 땅값 상승 즉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는 198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되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도 식을 줄 모르고 꾸준히 지속되었다.
▶ 3권 157-158쪽에서

구미 각국 또는 일본에서도 코너링(cornering)이라는 것은 있다. 직각이 되는 도로의 모서리 부분을 곡선처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리나라의 가각전제와는 그 발상과 기법이 다르다. 곡선처리에 그치지 사다리꼴로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가각전제는 보행자의 인권을 무시해버리는 처사이다. 그와 같은 보행자 인권무시가 마침내 시내중심부 횡단보도 폐지로 발전했다. 지하철 2?3?4호선을 건설 개통하면서 도심부의 도로횡단은 지하계단을 이용하게 하고 횡단보도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 시각장애자, 노령자들의 도심부 출입의 길이 봉쇄되어버렸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 4권 57쪽에서

모든 건축물은 업무?숙박?주거?판매 등 각각의 기능을 지니고 있고 건축허가?준공검사 등을 받을 때 건물이 지닌 기능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요즘 들어 주상복합건물이라는 것이 유행되고 있는데 단위건물이면서 아랫부분은 상업업무기능, 윗부분은 공동주택이 들어 복합용도를 지닌다는 뜻이다. 그런데 롯데월드처럼 5~6개에 달하는 기능이 동시에 들어가는 경우는 어떻게 표시할까 궁금해서 구청이 비치하고 있는 건축물대장을 뒤져봤더니 용도란에 ‘숙박?판매?위락?관람집회?운동?전시시설’로 기재되어 있었다. 아마 이렇게 긴 이름으로 건축허가가 되었고 준공검사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건물의 끝에서 끝까지의 길이가 얼마인지를 알기 위해 건설관계 책자를 아무리 뒤져봐도 알 수가 없었다. 5천분의 1 지도로 재어봤더니 가장 긴 부분으로 동서의 길이가 390m, 남북의 길이가 265m였다. 분명히 지금까지는 가장 큰 건물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무식한 건물은 쉽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 5권 78쪽에서

[책 속으로 더 보기 닫기]

출판사 서평

도쿄의 도시계획 120년의 역사를 ‘바람기가 전혀 없는 날의 남해바다’로 비유한다면 서울의 도시계획은 ‘태풍을 맞은 부산 앞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격동의 서울 50년을 도시계획의 차원에서 재조명하여 오...

[출판사서평 더 보기]

도쿄의 도시계획 120년의 역사를 ‘바람기가 전혀 없는 날의 남해바다’로 비유한다면 서울의 도시계획은 ‘태풍을 맞은 부산 앞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격동의 서울 50년을 도시계획의 차원에서 재조명하여 오늘날의 도시 구조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궁금증 유발과 함께 해답을 제시해준다. 그 내용을 여기에 요약해본다.

한국전쟁과 서울의 피해
서울에서만 9만 5천 명 이상 사망.학살.납치.행방불명되었다. 보통의 사망이 2만 9,628명, 학살이 8,800명, 납치가 2만 738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일반주택의 피해 연건평 182만 358평, 서울시청 청사는 외형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내부는 거의 파괴 소실되었고, 당시 9개 구청 중 3개 구청은 본관이 완전 파괴, 나머지는 모두 반소파, 277개 동사무소 중 62개는 완전히 불타 없어졌고 나머지 215개는 모두 반소파되었다고 기록되었다. 인적 피해와 함께 중요한 문화재의 피해를 눈앞에 두고 있던 서울은 주일대표부 김용주 공사의 노력으로 그나마 문화재의 폭격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워커힐 건설-군사정권 4대 의혹사건의 하나
1961년 멜로이 유엔군 사령관과 김종필 정보부장의 대화를 발단으로 미군장병 3만 명의 휴가 유치를 위해 건설된 워커힐. 사단법인 워커힐이 60억 환으로 출발하여 1962년 1월 5일 기공식이 거행되었으나 토목공사는 그보다 앞서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4대 의혹사건 국회 감사로 1961년 9월부터 1962년 2월까지 각 군 공병감 휘하 각종 장비를 동원하고 연인원 2만 4,078명을 무상노역케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가 워커힐 건설 비용과 관련하여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모두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19만 평의 부지 중 사유지는 얼마나 되었으며 그 매수대금은 얼마였던가, 국유지?시유지는 자동적으로 워커힐 소유로 전환되었는가. 둘째 건축위원 및 기타 자문위원?고문 등에 대한 사례는 어떻게 얼마나 지급되었던가. 셋째 삼환?대림?동아 등의 건설회사와는 어떤 조건으로 시공계약이 이루어졌던가. 군장병의 노임은 무상이었겠지만 이들 시공업체가 어느 부분까지 자체 노동력을 동원했던가. 넷째 개관준비 요원 다수를 일본에 파견, 사전교육시켰는데 그 비용도 6억 4천만 원 중에 포함되었던가.

박흥식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 전말
화신백화점, 그 후신 신신백화점 등 유통업으로 이 나라 최고의 부를 축적한 박흥식이 신도시계획을 처음 구상한 때는 화신백화점에 화재가 나던 1935년 봄이었다. 일제하에서 불광-수색 도시계획안을 수립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되면서, 육군 소장 이주일이 “수도 서울 인구증가에 대비한 주택건설계획을 구상해보라”는 과제를 하나 주었는데 그것이 후일 ?남서울 도시계획사업 인가신청서?가 되었다.

새서울 백지계획, 도시기본계획과 8?15전시
불도저 김현옥 시장이 불쑥 “인구 150만 명을 수용하는 새 행정수도를 만들어내겠다”는 말을 내뱉은 것은 그가 시장으로 부임한 지 약 50일이 지난 1966년 5월 27일이었다. 김 시장은 8월 15일을 기해서 도시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 마련해야 할 것이 새서울 백지계획과 도시기본계획이었다. ‘4천만 평 정도의 넓이와 상주인구 100만 내지 150만 명 규모, 그리고 도시의 외곽을 무궁화형으로 해달라’는 것이 새서울 백지계획의 작업 조건이었다. 이 그림의 작가는 1992년인가 93년에 밝혀졌는데 바로 저자와 허물없이 지내던 박병주였다. 그는 이 그림이 당시 엄청난 언론의 비판을 받아 부끄러움이 앞서 비밀에 부쳤다고 회술했다. 또한 도시기본계획안에 대해서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고무풍선”이니 “기술?과학성은 전혀 생각도 않고 세워졌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으나 저자는 그것이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둘째 이 계획에서 처음으로 도심부재개발이니 고도지구?미관지구니 하는 개념이 도입되고 일반에 공개되었다는 점, 셋째는 불완전하나마 20년 장기계획이라는 것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을 평가한다.

아 세운상가여!
전쟁 때 소이탄의 투하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공터, 속칭 ‘소개도로’라 불렸던 길게 뻗은 빈터에 세운상가라는 기막힌 건물이 들어서기까지.
소개도로 조성 당시 조선총독부가 그에 저촉된 토지?건물 보상비를 경성부 예산에서 지급하였다. 그 토지소유권은 당연히 경성부 즉 서울특별시에 있어야 했으나 일본인 소유토지의 등기를 경성부로 고치기 이전에 일본이 패전하고 광복을 맞았다. 이 종묘 앞-필동 간 50m 광로의 절반을 재무부 관재국은 민간인에게 불하해버렸다. 그리고 이 일대에는 ‘종삼’이라 불리는 나라 안 최대규모의 사창가를 이루고 있었다. 이 일대 무허가 판잣집촌을 본 중구청 6급주사 이을삼 계장의 행정연구서 ?대한극장 앞­
청계천 4가 간 계획도로 정비방안?을 본 김현옥 시장은 과히 불도저라 할 만한 추진력으로 이 일대 무허가건물을 철거하고,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반대에도 재개발지구로 지정하고 ‘세운상가’라 통칭하게 된 8개의 대형건물이 만들어내게 되는데...

여의도 건설과 시가지가 형성되는 과정
세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여의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20년 5월 로마를 출발하여 도쿄로 가던 2대의 이탈리아 공군 비행기가 로마를 떠난 지 104일 만에 서울 여의도비행장에 도착하면서다. 그리고 1922년 최초의 조선인 비행사 안창남이 고국방문비행하면서 여의도의 군용비행장을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당시 여의도의 중심부를 대부분 공군이 사용하고 있었으며 그 외는 대개가 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1966년 서울에 큰 홍수가 나면서, 그해 부임한 김현옥 시장에게는 하수도 정비는 등한시하고 도로 만들기에만 광분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해에 김 시장이 몰두하던 일은 세운상가, 낙원상가, 청량리 대왕코너 등 민자유치에 의한 재개발계획이었으므로 한강정비는 뒷전이었다. 그러다가 67년 제1한강교 남단에서 영등포 입구까지의 제방도로가 모습을 갖추어갈 무렵 김 시장은 강변도로 북쪽의 여의도가 눈에 들어왔다. “저 섬을 개발하면 엄청난 넓이의 택지가 새로 생기”고 그것을 팔면 무허가건물 거주자들에게 아파트를 지어 제공할 수도 있고, 평소에 하고 싶던 여러 가지 복지시설에 투자도 가능하다는 ‘경영행정’적 발상이 떠오르게 된다. 서울시는 당장 한강개발계획을 수립하였고, 김현옥 시장은 건설부의 여의도 건설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냈다. 건설부와 서울시는 샛강을 두는 윤중제 축조, 한강 본류의 강 넓이 1,300m 유지, 윤중제의 높이는 강바닥에서 15.5m, 택지의 높이는 강바닥에서 13m로 하는 것으로 ‘타협’하였다. 1967년 12월 27 기공식, 1968년 2월 10일 밤섬 폭파가 있었다. 밤섬이 폭파된 다음날 100일 작전이라는 것을 세우고, 김현옥 시장은 여의도에 이동시청까지 두면서 거의 반 미쳐서 진두지휘한다. 그때부터 110일간의 혈투가 펼쳐진다.
김 시장은 김수근에게 새로 조성된 여의도 도시계획안을 의뢰한다. 김수근 휘하에는 윤승중?박성규?김규오?김원?김석철?김환?김문규 등 20대 후반의 인재들이 모여있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여의도 도시설계는 ‘꿈’과 같은 것이었다. ?여의도 및 한강연안 개발계획?이란 제목의 용역보고서에는 이 계획을 완성하는 데 20년이 걸리며 이 기간에 1천억 원을 넘는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망하고 있다. 김수근 팀이 그린 여의도개발계획은 당시의 서울시 재정형편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 시장은 이상하게도 수정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이미 그의 관심은 시민아파트 건설구상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1970년 4월 8일 와우산 시민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4월 17일 김현옥은 시장자리에서 물러난다.
김 시장의 후임 양택식 시장 앞에 놓인 것은 반쯤 뚫린 남산1?2호터널, 반쯤밖에 안 된 한강강변도로, 허허벌판인 여의도, 남서울(강남)과 광주대단지 계획, 그리고 엄청난 재정난이었다. 양 시장은 부임 직후 얼마 안 되어 중앙공무원교육원에 있던 손정목을 서울시 기획관리관으로 불러들인다.
1970년 10월 말 여의도 중앙부 요지 12만 평을 나무 한 그루 없는 아스팔트 포장의 광장을 지으라는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김수근 팀의 여의도계획은 그 뿌리가 무너져내린다...

을지로 1가 롯데타운 형성과정
일제가 원구단의 석축을 헐어 이곳에 근대적 호텔을 지었으니 이것이 조선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일본인과 구미인 귀빈들을 위한 숙박시설에서, 광복 후 미군사령관의 거처, 한국전쟁 때 장병의 휴양소와 미8군 장교숙소로 쓰이다 1961년 한국정부에 반환된다. 그리고 1963년 한국관광공사가 정부로부터 인수하였을 때는 이미 시설이 낡을 대로 낡은 상태였다. 시설의 노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조선호텔의 개축이 결정되고 새 조선호텔은 17층의 대형호텔로 다시 태어난다. 이 조선호텔의 신축은 그후 소공동?을지로1~3가 일대 건축물 고층화를 선도했다. 1970년대 관광정책이 전환하면서 국영호텔이 민영화되기 시작하는데, 워커힐은 선경개발에, 영빈관은 삼성에 넘어가면서 호텔재벌들이 탄생한다.
신격호가 시게미쓰 다케오로 개명하고 일본에 건너간 게 1940년이었다. 그는 와세다 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여기서 만든 빨래비누?세숫비누?포마드?크림 등이 불티나게 팔려나가 주식회사 롯데의 밑거름이 되었다. 일본 모리나가 제과와 메이지 제과가 양분하던 제과시장에 롯데껌과 가나밀크초콜릿으로 그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신격호가 국내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1958년. (주)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를 설립하여 껌?캔디?라면류 등을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66년 동방알루미늄공업(주), 67년 롯데제과(주)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한국진출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정부 요인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신격호(시게미쓰 다케오)가 일본에서 모은 막대한 재산을 모국에 투자하게 하고 특히 부동산의 상태로 남겨두고 싶어했다.
저자는 당시 김종필 총리실에 양 시장과 함께 불려가서 호텔롯데 건설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김 총리가 ‘모국에의 재산반입’이라는 차원에서 다루어야지 결코 일개 기업을 지원한다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워낙 강조했기 때문에 저자는 한참을 신격호가 일본에 귀화한 줄로 착각했었다고 한다.
반도호텔과 함께 국립도서관이 롯데에 불하되고 외자유치라는 미명 아래 각종 특혜조치가 베풀어진다. 1966년 제정된 외자도입법은 한국에 자본을 투자하는 외국인에 대하여 엄청난 세자상의 특혜를 주고, 또 ‘대한민국 국민과 동일한 대우를’ 보장한다. 또한 제2조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는 자연인일지라도 외국에 10년 이상 영주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는 ‘외국인에 대한 조항’도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신격호는 외자도입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전액 출자한 (주)호텔롯데는 엄청난 부동산을 취득했음에도 부동산취득세, 재산세도 부과되지 않았고 외국제품을 비롯한 모든 비품, 장치에 관세도 물품세도 물지 않았다. ‘특정가구정비지구’라는 제도를 신설하고 ‘특정지구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까지 제정해 납부한 세금까지 되돌려주는 등 엄청난 특혜가 계속되었다.
호텔롯데는 처음에는 세계 최고의 설계수준을 자랑하던 일본 가지마건설에서 기본설계를 맡기로 했지만, 신격호 회장과의 잦은 의견대립 때문에 결국 도다건설로 넘어갔다. 신격호는 길이 후세에 남을 건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철골구조공법을 고집했다. 또한 법률을 고쳐서라도 45층은 되어야 한다는 김종필 국무총리의 주장도 있었지만 결국 지하3층, 지상37층으로 낙찰되었다.
3권

4권
5권에서는 88올림픽과 관련해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로 국내 최초의 상징조형물인 평화의 문, 서울에서 가장 덩치(용적)가 큰 단위건물인 롯데월드, 88올림픽이 개최 때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이름만의 올림픽대교를 다룬다. 또한 주택 2백만 호 건설과 수서사건의 전말, 청계천 복개와 고가도로 건설 과정, 한양 도읍의 안산, 시민들의 안식처 남산이 훼손되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써내려간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 ‘남산이여!’가 담겨 있다.

[출판사서평 더 보기 닫기]

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들

이 책이 속한 분야 베스트

교환/반품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환/반품안내
반품/교환방법

[판매자 페이지>취소/반품관리>반품요청] 접수
또는 [1:1상담>반품/교환/환불], 고객센터 (1544-1900)

※ 중고도서의 경우 재고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교환이 불가할 수 있으며, 해당 상품의 경우 상품에 대한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으며 교환/반품 접수 전에 반드시 판매자와 사전 협의를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중고도서의 경우 판매자와 사전의 협의하여주신 후 교환/반품 접수가 가능합니다.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반품/교환 불가 사유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이므로 단순 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는 판매정가의 20%를 적용

2) 중고도서 : 반품/교환접수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접수되어 상품 확인이 어려운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판매자
책책북북
판매등급
특급셀러
판매자구분
일반
구매만족도
5점 만점에 5점
평균 출고일 안내
2일 이내
품절 통보율 안내
29%

바로가기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