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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현대사 산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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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8959064262
ISBN-13 : 9788959064267
북한 현대사 산책. 4 중고
저자 안문석 | 출판사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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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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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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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루어 왔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북한 현대사 산책』은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집필한 책으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 기록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펼친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며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하고,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았다.

저자소개

저자 : 안문석
저자 안문석은 1965년 전라북도 진안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통일부, 국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로 외교·안보·북한 문제를 총괄했다. KBS 재직 중 영국으로 유학해 요크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워릭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부하다가 재미가 붙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치를 깊이 파고 싶은 생각으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2012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주요 관심사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외교정책을 관찰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관계, 북한의 내부 권력관계, 국제정치이론, 한국의 외교정책, 미국의 외교정책 등을 주제로 연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글로벌 정치의 이해』, 『오기섭 평전』, 『이제 만나러 갑니다』, 『김정은의 고민』, 『북한이 필요한 미국, 미국이 필요한 한국』, 『노무현 정부와 미국』 등이 있다. 「북미 불신 구조의 형성 원인과 극복 방안」(『한국동북아논총』, 2016년 9월), 「A Nuclear South Korea?」(『International Journal』, 2014년 3월), 「How Stable is the New Kim Jong-un Regime: a Revolution in North Korea」(『Problems of Post-Communism』, 2013년 1월) 등 북한과 국제정치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계속 발표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 5

제1장 김정일 후계 공식화 : 1980~1981년
총리회담 제안 17 · ‘후계자 김정일’ 공식 천명 21 · 고려민주연방제 제안 24 · 자주·친선·평화의 외교 이념 26 · 김정일 개인숭배 본격화 28 · 당 규율 강화 31 · 도경제지도위원회 설치 34
외교부장 허담의 1981년 · 36

제2장 김정일, 외교에 나서다 : 1982~1983년
수세적 대남 정책 41 ·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43 · 80년대속도 창조운동 46 · 법적 통제 강화 48 · 가까워지는 북한과 중국 50 · 김정일의 첫 중국 방문 53 · 아웅산 폭탄 테러 55 · 북한의 북미회담 제안 약사 59
공작원 김현희의 1982~1983년 · 63

제3장 경제난을 타개하다 : 1984~1985년
합영법 제정 69 · 연합기업소 전면 도입 72 · 제2차 7개년 계획 미완 74 ·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상봉 76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밀사들의 활약 79 · 소련의 경제적인 지원과 관계 회복 83 · 북한의 대남 활동 87 · 글로벌화의 상징, 고려호텔 89 · 핵확산금지조약 가입 92
외교관 고영환의 1985년 · 95

제4장 김일성의 준퇴진 : 1986~1987년
카스트로 방북 101 · 협력과 불신의 이중구조 104 · 비핵지대·평화지대 제안 107 · 제3차 7개년 계획 시작 109 · 첫 보트피플 김만철 가족 111 · 첫 골프장 개장 113 · KAL기 폭파사건 116 · 김정일로 권력이양 과정을 밟다 119
보트피플 김만철의 1986년 · 122

제5장 탈냉전과 체제 경쟁 : 1988~1989년
88서울올림픽 불참 127 ·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130 · 북미 베이징 채널의 탄생 135 · 세계청년학생축전 개최 138 ·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거부 141 · 최덕신,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묻히다 143
재독학자가 본 1988년 · 146

제6장 북한의 위기의식과 남북 해빙 : 1990~1991년
김정일의 군권 장악 151 · 한소 수교와 북한의 대미 접근 153 · 북일 수교 원칙적 합의 158 · 남북고위급회담과 남북기본합의서 탄생 161 ·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 165 · 남북통일축구대회 167 ·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170
타스통신 기자가 본 1990년 · 173

제7장 제1차 북핵 위기 : 1992~1993년
첫 북미고위급회담 179 · 국방위원장 독립·격상 181 · 한중 수교와 북한의 묵인 183 · 훈령 조작 사건 186 · NPT 탈퇴 190 · “내 청춘 통일에 묻어” 193 ·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발표 196 · 김정일의 국가기관 장악 198 · 제3차 7개년 계획 실패 201
남한 기자가 본 1992년 · 204

제8장 김일성 시대의 종언 : 1994~1995년
서울 불바다 발언 209 · 군사정전위원회 폐쇄 213 · 지미 카터의 방북 215 · 김일성 사망 218 · 북미제네바합의 221 · 미군 정찰헬기 격추 223 · 평양이 민족의 기원이다 225 · 남북 쌀 회담과 인공기 사건 227
미국 교수가 본 1995년 · 231

제9장 고난의 행군 : 1996~1997년
극심한 경제난 237 · 장마당의 확산 240 · 사회 전체의 병영국가화 243 · ‘남북미중’ 4자회담 제안 246 ·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249 · 황장엽 망명 252 · 이집트 대사 장승길의 망명 256 · 김정일 총비서 추대 258
20대 초반 청년의 1996~1997년 · 262

제10장 김정일 체제 공식 출범 : 1998~1999년
소떼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다 267 · 금창리 사건과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 271 · 김정일 시대의 헌법 276 ·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 278 · 국가 건설 목표, ‘강성대국’ 280 · 군이 가장 우선, ‘선군정치’ 283 · 햇볕정책과 서해교전 286
지방 공장 지배인의 1998~1999년 · 290

주 · 293
연표 · 298
찾아보기 · 305

책 속으로

1982년에 시작된 북한의 또 하나의 속도전은 ‘80년대속도 창조운동’이다. 1982년 6월에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책임일꾼협의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김정일이 혁명의 새로운 대고조를 일으킬 것을 주문했다. 새로운 속도전을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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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시작된 북한의 또 하나의 속도전은 ‘80년대속도 창조운동’이다. 1982년 6월에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책임일꾼협의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김정일이 혁명의 새로운 대고조를 일으킬 것을 주문했다. 새로운 속도전을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80년대속도 창조운동’이다. 현장에서 선봉대가 된 것은 함경북도 청진의 김책제철소였다. 1982년 7월 김책제철소의 근로자들이 결의 대회를 열고 ‘80년대속도 창조운동’의 기수가 될 것을 결의하고, 전국의 근로자들에게도 동참을 호소했다. 이후 전국의 생산현장에서 이 운동이 펼쳐졌다. 천리마운동선구자 대회, 전국청년열성자회의, 인민경제 부문별열성자회의 등이 잇따라 열렸다. 「제2장 김정일, 외교에 나서다」(본문 46~47쪽)

적십자회담은 큰 성과를 보았다. 1985년 5월 서울에서 열린 본회담에서 광복 40주년을 기념해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교환 방문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평양에서 열린 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남한 대표단에 대규모 체제 선전 매스게임을 관람하게 하는 등 적십자회담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면서 회담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은 성사되었다. 결국 9월 20일 남한의 고향방문단 35명, 북한의 고향방문단 30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신의 고향을 찾았다. 남북의 이산가족이 처음으로 상봉한 것이다. 그 밖에도 남북한 국회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이 두 차례 열렸고, 88서울올림픽 공동 개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체육회담이 네 차례나 열리기도 했다. 「제3장 경제난을 타개하다」(본문 78쪽)

1986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12월에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 회의가 열렸다. 김일성은 다시 국가주석으로 선출되었다. 강성산이 물러나고 총리는 개혁 성향의 리근모가 새로 선임되었다. 김일성은 남포의 서해갑문 준공식과 같은 주요 행사에 참석하기는 했다. 하지만 전보다 빈도는 줄었다. 외국의 주요 방문객들은 김일성뿐만 아니라 김정일에게도 선물을 가져왔다. 정부 운영에서도 김일성에서 김정일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었다. 1987년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2차 회의가 열렸다. 제3차 7개년 계획을 채택하고 실행을 선언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김일성은 여기서 연설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김일성은 국내 활동이나 외유도 줄이면서 김정일로 권력이양 과정을 밟고 있었다. 「제4장 김일성 준퇴진」(본문 120~121쪽)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관계에서 핵심적인 것을 모두 망라한 합의였다. 그대로만 지켜지면 통일로 가는 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정치분과위원회, 군사분과위원회, 교류협력분과위원회, 핵통제공동위원회 등 4개 분과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이행 방안들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진행되도록 되어 있었다. 이후 1992년 말까지 고위급 본회담과 분과위원회가 진행되어 협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행 방안에 대한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제8차 고위급회담(1992. 9. 16~17) 이후 남한에서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이 발생하고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자, 북한은 1993년 1월 29일 남북 대화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제6장 북한의 위기의식과 남북 해빙」(본문 165쪽)

1994년 7월 7일 김일성은 평양에서 묘향산 여름 별장으로 이동했다. 16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다. 찌는 듯한 여름 날씨였다. 가는 길에 한 협동농장에 들러 농민들을 격려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별장에 도착한 김일성은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욕실, 침실 등을 자세히 살피고 냉장고도 열어보았다. 7월 25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 후 김영삼 대통령이 묵을 곳이어서 세밀히 살핀 것이다. 그러고는 저녁식사를 했는데 곧 심장 발작이 왔다. 의사들이 뛰어왔다. 응급 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후송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침 폭우가 쏟아져 헬기가 뜰 수 없었다. 결국 김일성은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 「제8장 김일성 시대의 종언」(본문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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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출판사서평 더 보기]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켰다. 보수 정부는 대화하자고 말로는 했지만 대화를 위해 북한이 요구한 어느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세운 이후 제2공화국 11개월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해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발가벗은 채 손들고 나오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도록 할 것인지 골몰해왔다.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남은 북한은 “굶을지언정 무릎 꿇진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니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북한 현대사 70여 년을 탁월한 안목으로 꿰뚫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1권 : 해방과 김일성 체제 (1945~1949년)
북한의 1940년대는 김일성의 역사라 해도 좋을 만큼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민주기지론을 제기하고, 북한을 사회주의화한 뒤 남한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부 수립 이후 국토완정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을 깊이 보면 아쉬움이 많다.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뒤늦게 참전해 북한에 들어오게 된 것이 답답하고, 미군 대령 2명이 한반도 위에 그은 선 하나로 분단이 되었다는 것도 원통하다. 패전국 독일이 분단된 것처럼 패전국 일본이 분할 점령되었어야 했는데, 한반도가 나뉘었다는 것도 분한 일이다. 하지만 1940년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점은 남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통일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좌우 합작을 이루고 통일임시정부를 마련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먹을 것이 많은 데로 몰리는 것이 정치의 생리 아닌가. 이들 곁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결국 둘 다 권총을 맞고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로 처연히 사라져갔다. 하긴 이들보다 먼저 간 이가 있었다. 현준혁이다. 누구보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도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협력하다가 총을 맞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2권 :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1950~1959년)
북한의 1950년대는 전쟁, 김일성 권력 공고화, 숙청, 종파투쟁, 독자성 추구의 역사였다. 하지만 민족의 단일성과 동질성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가치를 잃었고, 북한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어느 것에 못지않은 가치도 상실했다. 1953년 휴전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승만은 반대하고,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협정에 서명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 정치 회담은 당시 세계를 지휘하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굳어진 정전 체제가 지금도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김일성 세력의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해 연안파와 소련파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은 세력들도 있었다. 북한의 1950년대 후반은 김일성 세력이 이들 반대파에 대한 제거 과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세력이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3권 : 주체사상과 후계체제 (1960~1979년)
북한의 1960∼1970년대는 전제정치 체제와 세습 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에는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와 김일성 유일지도 체계를 세웠고, 197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여러 혁명 이론과 대중지도 방법 등이 보태져 ‘김일성주의’가 되었다.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 과정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유일체제를 만들어가면서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해갔다. 그래서 김정일은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버지를 세우는 것은 곧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다. 갑산파를 비롯한 유일체제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을 주도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을 지휘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수교를 확대하면서 비동맹 외교에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깊이와 폭에서 한계가 많았다. 북한의 관심은 북한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는 데에만 있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 핵심에는 물론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주변에는 가산제 국가 체제하에서 권력과 부를 분여받은 항일빨치산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바람직했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도 나쁘지 않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4권 : 김정일과 고난의 행군 (1980~1999년)
북한의 1980∼1990년대는 권력 이양기이면서 체제 위기의 시기였다. 1980년 김정일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후계자로 확정되어 군권과 국가기관을 장악했다. 김일성의 권력은 김정일로 서서히 옮아갔다. 김정일은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권력을 이어받으면서 1983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지도부와 대면 교류도 시작했다. 1990년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고, 1991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권을 장악했다. 1990년대의 북한 경제는 훨씬 어려워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특히 식량난이 극심했다. 배급 체계는 붕괴되고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산으로, 심지어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과 악전고투를 요구했지만, 당국의 장악력은 떨어지고 사회 이완 현상은 점점 심해졌다. 서구와 중국의 지원으로 위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5권 : 김정은과 북핵 위기 (2000~2016년)
북한의 2000∼201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진전도 있었다.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은둔의 세계에서 탈출했다. 그 자신도 그렇게 말했다.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을 은둔에서 벗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남과 북이 이야기하는 통일 방안이 유사한 점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 논의를 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남북이, 그것도 남북의 정상이 통일 방안을 놓고 진지하게 논의한 것은 처음이고, 합의도 처음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이후 세 차례의 핵실험은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고 남북 관계를 경색시켰다. 2016년 북한은 ‘자강력 제일주의’를 부쩍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생산 현장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1960년대의 자력갱생과 같은 모토다. 자력갱생은 주민의 노력 동원에 이용되었고, 외부와의 교류를 방해했다. ‘자강력 제일주의’도 같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주체사상탑은 김일성의 70회 생일인 1982년 4월 15일에 완공되었다. 150미터의 높은 화강암 탑신 위에 20미터 높이의 횃불 모양 봉화탑이 있고, 탑신에는 ‘주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체 높이가 17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으로 김정일이 주체사상탑의 건설을 발기하고 건축 과정을 총괄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평양의 중심을 김일성광장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김일성광장 맞은편에 건설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곳에 세워진 것이다. 개선문의 건축 양식은 민족적 양식을 반영하도록 했다. 개선문의 본체를 세운 뒤, 탑의 남쪽 면에는 김일성이 제시한 건당, 건국, 건군 노선에 따라 국가 건설에 앞장서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부각상이 새겨졌고, 북쪽 면에는 개선 연설을 하는 김일성에게 환호하는 유격대원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부각상을 새겨 넣었다. 높이 60미터, 너비 50미터, 폭 36.1미터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보다 10미터나 높다.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다

북한은 평양 북쪽 10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영변에 5메가와트 원자로를 건설했다. 미국은 소련에 압력을 넣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소련은 북한에 NPT 가입을 설득했고, 북한은 1985년 12월에 가입했다. 전문과 본문 11개조로 구성된 NPT는 핵무기 비보유국에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게 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등 핵보유국에는 핵무기와 그 관련 기술을 제3자에게 양도하지 못하도록 했다. 핵보유국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성격을 갖고 있어 지금도 불평등성을 지적받고 있다. 북한도 NPT에 가입함으로써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피력했다. 그러나 북한은 1986년 영변에 50메가와트와 200메가와트 원자로를 건설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러한 영변 핵단지의 활동을 1989년 프랑스의 상업위성 SPOT2가 촬영하고, 국제원자력기구와 북한과 미국이 관여하는 북핵 위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결국 1993년 3월 북한은 NPT를 탈퇴했다.

국방위원장 독립·격상

1992년 4월 ‘1972년의 사회주의 헌법’이 개정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국방위원회를 독립국가기관으로 분리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외부세계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또 국방위원장을 국가주석에서 분리해 최고인민위원회에서 별도로 선출하는 ‘국가주권의 최고 군사기관’으로 독립·격상시켰다. 일체의 무력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으로 공식화했다. 이렇게 국방위원장을 독립국가기관화하고 그 지위를 격상한 것은 김정일 후계체제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해 일체의 무력을 통할하면서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가의 지도이념도 주체사상으로 규정하고, 외국 기업과의 합영·합작을 권장하고, 농촌기술 혁명을 강조하는 조항들을 마련했다. 이처럼 1992년 헌법은 북한의 위기의식을 반영해 권력 구조와 지도 이념을 바꾸고, 경제적 생존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일성, 사망하다

1994년 7월 9일 낮 12시 텔레비전에 등장한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 아나운서는 김일성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해방 후 한반도의 절반을 지배하며 한반도 질서에 그 누구보다 많은 영향을 끼치고, 한쪽에서는 불세출의 영웅, 한쪽에서는 민족의 비극을 안겨준 전범으로 극단적인 평가를 받아온 김일성은 그렇게 사망했다. 북한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울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평양 거리로 나왔다. 만수대 언덕에는 삽시간에 수만 명이 운집했고,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도 많았다.
김일성 사망 발표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전군에 비상경계태세를 발령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와 국무회의도 소집했다. 애도 행위를 금지하고, 학생들의 조문단 파견도 막았다. 7월 20일에는 6·25 전쟁에 관한 구소련 문서도 공개해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김영삼 정부의 일련의 행위는 애도 분위기 속에 있는 북한을 자극했다. 그렇게 남북 관계는 더욱 얼어붙어 김영삼 정부 내내 회복되지 못했다.

금창리 사건과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

1998년 8월 10일 『타임』은 북한 영변의 동북쪽 4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금창리에서 거대한 지하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주일 후 『뉴욕타임스』의 외교안보 전문기자인 데이비드 생어가 이 사건을 면밀히 취재해 8월 17일자에 장문의 기사로 보도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산에 굴을 파고 있고, 그 굴 속에 원자로와 폐연료봉 재처리시설이 건설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핵시설이 있으면 북미제네바합의 위반이라며 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은 주권 침해라고 맞섰다.
그 와중에 8월 31일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1호를 동해상에 시험 발사했다. 첫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였다. 1,500킬로미터를 날아가 일본 열도를 넘어서 떨어져 일본은 패닉 상태가 되었다. 미국도 격분했다. 공화당 주도의 의회와 보수 언론들을 중심으로 북미제네바합의를 폐기하고 경제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결국 1999년 3월 합의에 이르러 미국이 현장조사를 하고 대신 60만 톤의 식량을 제공하기로 했다. 현장 방문은 실현되었고, 핵시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7월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 시험 발사, 2009년 4월 3번째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인 2012년 4월 4번째, 12월 5번째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실시했다. 이후에도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시험 발사를 계속했다.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미국을 자극해 협상의 장을 마련하고 협상이 시작되면 개발된 미사일이 자신들의 협상력을 강화시켜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추천사

사드 배치, 북핵 위기, 대북전단 살포, 개성공단 폐쇄, 3대 세습,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 등은 한반도의 어두운 그림자들이다. 21세기 평화와 협력의 시대에 우리는 왜 아직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총을 겨누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는 시대 분위기를 만드는 길을 찾아야 한다.
- 정세현 (제29대, 제30대 통일부 장관)

어떻게 3대 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가 형성되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도 김일성 일가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왕정국가를 통치할 수 있을까?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다. 이 책에 그 답이 있다. 우리 삶의 안정을 끊임없이 흔들고 위협하는 불량국가 북한, 그 북한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 책은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해서 객관적으로 서술했다는 점이 장점이다. 기자 출신답게 글은 막힘이 없고, 학자답게 이론과 실제를 접목한 지점에서 글에 신뢰감을 준다. 특히나 북한 현대사 70년을 꿰뚫고 있는 안목과 인식은 여타 북한 관련 책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 권홍우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책속으로 추가]

전반적인 경제난을 생존의 위기로 파악한 북한은 1996년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로동청년』 등 북한 3대 신문에 실은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고난의 행군’ 기간으로 설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민들의 내핍과 희생을 요구했다. 공동사설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사회주의 3대 진지(사상적·경제적·군사적 진지)를 튼튼히 다지며 백두밀림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살며 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난의 행군’은 1938년 말에서 1939년 사이 김일성의 항일유격대가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에 쫓길 때 굶주림과 혹한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강인한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사례를 이르는 말이다. 「제9장 고난의 행군」(본문 238~239쪽)

‘강성대국’이라는 용어는 1998년 4월 8일 김정일의 자강도 현지 지도를 보도한 조선중앙방송에 처음 등장했다. “혁명 정신으로 일어날 때 조국은 강성대국으로 만방에 위력을 떨칠 것이다”라는 보도 내용이 들어 있었다. 1997년 7월 22일에는 『로동신문』 정론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를 개념화해 제시한 것은 1998년 8월 22일 「강성대국」이라는 제목의 『로동신문』 정론을 통해서였다. 이 정론은 “이념·정치·군사 강국에 기초해 경제강국을 건설해 강성대국을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9월 5일 김정일 체제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강성대국론’을 정식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후 강성대국론은 김정일 정권의 국가 목표로 북한의 공식 매체를 통해 빈번하게 제시되었다. 강성대국론은 ‘부강하고 융성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10장 김정일 체제 공식 출범」(본문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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