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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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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쪽 | 규격外
ISBN-10 : 8934969261
ISBN-13 : 9788934969266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 중고
저자 정광 | 출판사 김영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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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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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의 시작과 방법부터, 제도와 평가까지!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은 주로 ‘사역원’이란 기관이 전담했다. 사역원의 외국어 교육은 우리와 가장 접촉이 많은 중국의 한어를 학습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당시 한어는 오늘날의 영어와 같이 가장 중요한 외국어였다. 『조선시대의 외국어교육』은 원대에 공용어가 된 한어를 비롯하여 몽고어, 일본어, 만주어 및 여진어의 교육을 살펴본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전문 외국어 교육제도와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조기교육, 집중적인 반복교육, 생생한 회화교육, 끊임없이 수정 보완한 빼어난 교재 등 지금까지 불모지였던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분석하고 정리한다. 오늘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을 만큼 훌륭한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을 면면히 들여다본다.

저자소개

저자 : 정광
저자 정광은 세계 언어학계가 인정하고 경의를 표하는 정광 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사역원 역학서의 표기법 연구>로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사역원 왜학 연구>로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여하는 국어학 분야의 제1호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다가 정년퇴임하였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미국 콜럼비아대학 객원교수, 일본 교토대학 초빙 외국인학자, 일본 동경외국어대학 초청교수, 일본 간사이대학 초청연구원, 일본와세다대학 교환연구원, 미국 일리노이대학 언어학과 강의 초청, 중국 북경중앙민족대학교 초빙강사 등 해외에서도 활발한 강의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역락출판사, 2012), 『삼국시대 한반도의 언어 연구』(박문사, 2011), 『노박집람 역주』(태학사, 2011), 『몽고자운 연구』(박문사, 2009), 『역주 원본 노걸대』(김영사, 2004), 『역학서 연구』(제이앤씨, 2002) 등 다수가 있으며, 『蒙古字韻 硏究』(北京;民族出版社, 2013), 『朝鮮吏讀辭典』(東京;ペン·インタプライス, 2006), 『老乞大: 朝鮮中世の中國語會話讀本』(東京;平凡社, 2002), 『原本老乞大』(北京;外語敎學?硏究出版社, 2002), 『原刊老乞大硏究』(北京;外語敎學?硏究出版社, 2000) 등을 출간하여 전세계 중국어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譯學書硏究の諸問題”(일본 조선학회 제170호, 1990), “『노박집람』과 『노걸대』·『박통사』의 舊本”(진단학보 제89호, 2000), “훈민정음 중성자의 음운대립”(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朝鮮半島での外?語?育とその?材: 司?院の設置とその外?語?育を中心に”(<譯學과 譯學書> 創刊號, 2009), “훈민정음 中聲과 파스파문자의 모음자”(『국어학』 제56호, 2009), “『월인석보』의 舊卷과 훈민정음의 언해본: 正統 12년 佛日寺판 『월인석보』 옥책을 중심으로”(『국어학』 제68호, 2013) 등 국내외 250여 편이 있다. “薩摩苗代川傳來の朝鮮歌謠”(일명 ‘오나리 연구’, 일본 新村出記念財團, 1990, 京都), “韓國詩歌의 韻律硏究試論”(서울대 어학연구소 제7-2호, 1975) 등 문학 연구에서도 화제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한국어학회, 한국이중언어학회, 국어사자료학회, 한국알타이학회, 한국구결학회 등의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국제 역학서학회, 국제고려학회(ISKS)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고문으로 있다.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제1장. 조선시대 학교 교육과 역관 교육
1. 한반도에서의 학교 교육과 한자 학습
2. 고려 말 조선 초의 역관 교육
3. 조선시대의 역학과 이학
4. 조선시대 역관의 외국어 교육

제2장. 사역원의 설치와 외국어 교육
1. 사역원의 연원
2. 사역원의 조직과 그 변천
3. 역학서의 편찬과 외국어 교재
4. 사역원의 외국어 교육과 그 평가

제3장. 중국어 교육-한학
1. 한어 교육의 필요성
2. 한학서의 편찬과 그 변천
3. 한학서 <노걸대>와 <박통사>
4. 역과한학과 한어 시험
5. 한어 역관 최세진

제4장. 몽고어 교육-몽학
1. 몽고어와 몽고 문자
2. 몽학서의 편찬과 그 변천
3. 역과몽학과 몽고어 시험

제5장. 일본어 교육-왜학
1. 왜학서의 편찬과 그 변천
2. 왜학서 <첩해신어>의 등장
3. 왜학의 일본 가나문자 교육
4. <첩해신어>의 개수와 중간
5. <이려파>의 내용과 단행본
6. 역과왜학과 일본어 시험

제6장. 여진어와 만주어 교육-여진학과 청학
1. 여진학과 청학
2. 청학서의 만주어
3. 역과청학과 만주어 시험

제7장. 맺음말

참고자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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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에서 조선조와 같이 외교 통역관을 양성하는 국가 기관을 지속적으로 설치 운영한 예는 극히 드물다. 물론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나, 언어가 다른 이민족과의 접촉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분명히 기록되었고 또 간간이 통역에 관한 언급도 찾을 수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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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에서 조선조와 같이 외교 통역관을 양성하는 국가 기관을 지속적으로 설치 운영한 예는 극히 드물다. 물론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나, 언어가 다른 이민족과의 접촉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분명히 기록되었고 또 간간이 통역에 관한 언급도 찾을 수 있으나 근대 이전에 사역원과 같은 관청을 설치해 이민족 언어의 통역을 전담하는 관리를 제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양성한 나라는 별로 많지 않다. 따라서 사역원 제도와 그에 관련한 여러 역사적 사실은 우리 민족사의 서술에서 매우 특징적인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2장에서)

조선의 건국 초부터 <노걸대>와 <박통사>는 <직해소학>과 더불어 중국어 회화 교습서로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사역원 역관의 임무가 사행使行을 수행하거나 사신을 영접하는 것 이외에도 실제로 사행 때마다 공무역과 개인무역의 거래를 알선하는 일까지 맡게 되면서 상인의 중국어가 필요해졌고, 따라서 이 두 책의 가치는 점점 높아졌다. 또, 이 두 책은 정음으로 발음이 전사되는 번역을 거친 후에 다시 언문으로 언해되었으며 여러 차례 수정·증보되어 조선조 후기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3장에서)

몽고어의 교육은 고려 후기부터, 정확하게는 칭기즈 칸이 중국을 정복하고 원元을 세워 고려를 침략하는 사이에 국가적 사업으로 실시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의 사역원에도 한학과 동시에 몽학이 설치되어 몽고어의 교육은 조선조 건국 초기부터 시행되었으며 원이 망한 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중국의 동북방에 몽고족의 후손이나 몽고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많아서 이곳을 여행하거나 이들과 교역할 때 몽고어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조선조의 몽고어는 여행 중 접촉에서 상품의 교역에 사용되었으므로 몽고어 역학서, 즉 몽학서는 주로 상인들의 회화에 치중되어 교육되었다. (4장에서)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조는 일본을 교린국으로 삼고 외교관계를 성립했으며 7년 전쟁을 치르며 일본어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따
라서 사역원의 일본어 교육도 구태의연한 일본의 오라이모노나 교훈용 훈몽 교과서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실용적인 회화 중심의 학습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임진·정유의 왜란 중 납치되어 일본에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돌아온 사람 가운데는 상당 기간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어에 능숙해진 쇄환피랍인이 많았고 그들에 의해 보다 생생한 일본어 교육이 이루어졌음도 역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5장에서)

조선조에 들어와서 여진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비해 늦게 사역원에 설치되었다. 즉 여진학은 『경국대전』(1469)이 간행되었을 때 비로소 그 이름이 사역원에 보인다. 청학은 병자호란(1636) 이후 사역원에서 만주어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시행되었다. 왜란·호란의 양란을 겪은 조선조 중기에 대청·대왜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었고 청학과 왜학의 위상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청학은 만주족이 중국을 차지하고 교린국에서 사대국으로 바뀜에 따라 여진어를 배우던 여진학도 만주어를 배우는 청학으로 바뀌면서 사역원 사학에서의 서열도 한학 다음으로 격상되었다. (6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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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에 대한 최초 본격 접근. 세계 언어학계가 경의를 표하는 정광 교수 30년의 역작. 한어, 몽고어부터 일본어, 여진어 및 만주어까지. 조선의 주변국 언어교육 전반에 대한 탁월한 통찰, 철저한 분석.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은 ...

[출판사서평 더 보기]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에 대한 최초 본격 접근.
세계 언어학계가 경의를 표하는 정광 교수 30년의 역작.

한어, 몽고어부터 일본어, 여진어 및 만주어까지. 조선의 주변국 언어교육 전반에 대한 탁월한 통찰, 철저한 분석.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은 왜 필요했고,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습득한 외국어를 평가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당시 외국어 교육은 오늘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을 만큼 훌륭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전문 외국어 교육제도와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조기교육, 집중적인 반복교육, 생생한 회화교육, 끊임없이 수정 보완한 빼어난 교재 등 지금까지 불모지였던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분석하고 정리해낸 심도 깊은 역작.

[출판사 리뷰]

1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에 대한 최초 본격 접근. 한어·몽고어·일본어·여진어 및 만주어.
주변국 민족의 언어교육 전반에 대한 탁월한 통찰, 철저한 분석.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의 시작과 방법부터 제도와 평가까지.

한반도에서 외국어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원나라 이후 새로운 중국어가 생겨난 다음이다. 몽고가 중국을 정복하고 수도를 지금 북경지역인 연경으로 정하고 이 지역의 언어를 공용어로 삼았는데, 당시 연경에는 중국인과 다른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엉터리 중국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한아언어(漢兒言語, 줄여서 한어)가 통용되었다. 한어는 그 전의 중국어와 크게 달라서 ‘사서오경’의 한문으로는 배울 수 없었다. 거기에다 한반도에 인접해 있어서 역사적으로 접촉이 많은 몽고어와 여진어, 만주어를 배워야 했고 바다 건너 자주 우리를 괴롭혔던 일본어도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는 원대에 공용어가 된 한어를 비롯해 몽고어, 일본어, 만주어 및 여진어의 교육을 체계적으로 연구 정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은 사역원이 전담했다. 건국과 함께 외국어 교육기관인 사역원을 설치하고 한어(중국어)를 비롯하여 몽고어, 일본어, 여진어, 만주어를 교육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에 대해 방법, 제도부터 평가까지 모든 방면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은 역관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사역원은 고려시대 통문관의 전통을 이어받아 역관 양성뿐만 아니라 하급관리에게도 한어를 교육하고, 한문(漢文, 고문古文)과 한이문(漢吏文, 실용문), 한어(漢語, 회화)까지 구사할 수 있는 외교관 양성을 목적으로 했다. 역관들은 조선 초기에는 도래한 외국인을 상대하거나 사신을 수행하는 일을 맡아왔으나,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이에 국한하지 않고 국경에서 외국인의 입국을 단속한다든지 교역이 있을 때 이를 감독하거나 세금을 징수했다. 부산의 왜관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감시하고 그들과의 무역을 중개하기도 했다.
역관의 사회적 지위는 중인 계급이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 중요한 계층이었다. 허균의 『허생전』에 나오는 조선 제일의 부자 변승업은 실제 인물로 왜학 역관이었다. 역관들은 국제무역을 독점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문물을 견문하고 실제로 이를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 사회에서 외국문화 수입의 선두에 섰다. 조선의 개화에도 역관들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

역관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중국이나 일본에 보내는 연행사와 통신사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이 두 사행(使行)의 구성원에서 역관들은 당상역관, 상통사(上通事), 압물(押物)통사, 신체아(新遞兒), 원체아(元遞兒) 등 10여 명이나 되며 특히 사행을 수행하는 질문종사관(質問從事官)은 통역에 문제가 되는 난해구, 난해어를 질문하여 후일 역학서를 개편할 때 참고하도록 했다. 연행사나 통신사의 구성원은 역관들이 핵심이었고 이러한 사행을 통해 조선시대의 역학은 발전을 거듭한다.
또 중국과 일본에서 사절이 왔을 때 이들의 접대도 역관의 몫이었다. 특히 대마도에 파견되는 통신사는 당상(堂上) 역관이 정사(正使)로 가서 실제로 외교 실무를 그들의 책임 아래 수행했다. 이러한 사행에서 역관들은 공식 무역을 허가받기 때문에 많은 재물을 손에 넣을 수가 있어 우수한 중인 계급들이 역관이 되려고 애썼다. 조선시대 역학이 발달한 것은 이렇게 우수한 인재들이 역관으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역관의 임무 66~76쪽)

2
당시 외국어 교육은 오늘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을 만큼 훌륭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전문 외국어 교육제도.

세계 역사에서 조선조와 같이 외교 통역관을 양성하는 국가 기관을 지속적으로 설치 운영한 예는 극히 드물다. 물론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나 언어가 다른 이민족과의 접촉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분명히 기록되었고 또 간간이 통역에 관한 언급도 찾을 수 있으나 근대 이전에 사역원과 같은 관청을 설치해 이민족 언어의 통역을 전담하는 관리를 제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양성한 나라는 별로 많지 않다. 따라서 사역원 제도와 그에 관련한 여러 역사적 사실은 우리 민족사의 서술에서 매우 특징적인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79~80쪽)

조선조의 사역원은 사대교린(큰 나라는 섬기고 이웃나라와는 사귐)의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고 통역을 담당하던 역관을 양성하고 이들을 관장하던 정삼품 기관이다. 고려 충렬왕 2년(1276)에 설치된 통문관을 후일에 사역원으로 개명한 것이며 조선 건국 초기, 즉 태조 2년(1393)에 다시 세워져 갑오경장(1894)으로 폐지되기까지 500여 년간 유지된 외국어의 교육과 역관을 관리하는 관아였다.(79쪽)
조선시대 한어, 몽고어, 일본어, 여진어 또는 만주어 등 4개의 언어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민족의 언어로서 소통에 반드시 필요한 언어였다. 사역원의 외국어 교육은 오늘날의 언어 교육 이론으로 보아도 놀랄 만큼 잘된 교육이었다. 사역원과 같은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제도와 교육기관이 한 번도 중단되지 않고 700년간 계속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로서 세계사에서 이처럼 외국어 교육기관을 전문적으로 설치해 중단 없이 이어온 민족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또 당시 외국어 교육의 제도와 방법 또한 대단히 훌륭했다.
사역원의 실제 운영자는 교수, 훈도들이었고 교육을 담당한 역관으로 교회가 있었다. 교회는 부경사행이나 통신사행에 파견되어 학습교재를 수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교재의 난해어들을 주기적으로 질문해 수정하는 일을 전담했다. (사역원의 조직과 그 변천, 91~122쪽)
사역원 외국어 교육의 특징은, 첫째 언어의 조기 교육이다. 특히 5세의 어린 나이에 왜학 생도방(生徒房)에 입학한 왜학역관 현계근의 예는 인상적인 사례이다(5장. 413~415쪽).
둘째는 집중적인 반복 교육이다. 사역원에 소속된 역관들은 역과에 급제해 사역원의 정正이나 어전통사 같은 높은 관직에 있더라도 끊임없이 어학 교재를 외워야 하고 시험을 봐야 했다. 각종 관직의 채용시험인 취재와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원시가 있어 역관들은 외국어 학습을 중단할 수 없었으며 각종 고강을 통해 외국어 학습을 교재 단위로 점검했다.
셋째는 생생한 구어를 교육한 것이다. 문어가 아니라 실제로 통역을 담당한 역관들이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을 상정하고 그때 주고받는 대화를 교재로 하여 살아 있는 구어를 교육했다. 오늘날 문어 위주의 교육과 차이를 보인다. 사역원 한학의 교재로서 오랫동안 한어 학습의 왕좌를 지켰던 <노걸대>, <박통사>는 생생한 구어를 반영한 회화 교재였다.
넷째는 언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언어의 역사적 변천을 인식하고 한 번 편찬한 언어 교재를 계속해서 수정하고 보완해 새로운 언어 학습을 이어가게 했다. 외국에 보내는 사절에는 언어 교재를 수정하는 인원이 반드시 수행했다. 대다수 역학서들은 간행된 다음에 계속해서 수정본이 나왔다. 그렇게 신석(新釋), 개수(改修), 중간(重刊)이란 이름의 역학서가 뒤를 이었다.
다섯째,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서울만이 아니라 외국과 접촉이 있는 지방에도 교사를 파견해 현지에서 생도를 모집하고 교육을 수행했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 의 외국어 교육이 지방에서 어떻게 실시되었는지 자세히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사역원과 같은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제도와 교육기관이 한 번도 중단되지 않고 700년간 계속되었다. 세계 역사에서 이처럼 외국어 교육기관을 전문적으로 설치해 중단 없이 이어온 민족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의 외국어 교육은 오늘날의 교육제도와 교육방법에 비추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했다.

3
중국과 일본을 포함, 세계 언어학계가 경의를 표하는 정광 교수 30년의 역작.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은 전인미답의 분야로 관심을 둔 이가 많지 않았다. 이 책은 30년 넘게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하고 수많은 논저를 발표해온 정광 교수가 그동안의 연구를 새로이 한 권에 정리한 것이다. 이 분야의 연구서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편이지만, 이 책에서는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에 최선의 노력을 더했다. 전체 내용을 요약한 제7장을 먼저 읽고 전체를 조감한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에서 가장 우선에 둔 것은 중국어였고, 『노걸대』는 중국어 교육 대표 교재였다. 저자는 원본 『노걸대』를, 처음 찾아낸 서지학자와 함께 세계 학계에 소개하여 중국어를 연구하는 전 세계 학계를 들끓게 만든 장본인이다. 일본의 한 학자는 “세기의 발견”이라며 <요미우리신문> 1면에 소개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언어학자 다이어(Dyer) 여사는 당시 학계에 이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를 저서에 서술하고 있다.
『몽고자운』은 원(元)에서 몽고인이 한자 공부를 위해 파스파 문자를 제정하고, 그 문자로 만든 한자발음 사전이다. 그러나 명 태조 주원장은 파스파 문자를 철저히 파괴해버려 중국에조차 파스파 문자 책은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몽고자운』 한 권이 영국 대영도서관에 보존되고 있었고, 정광 교수는 이를 복사해 갖고 있다가 2009년에 파스파 문자와 한글을 비교한 책을 펴내면서 대영도서관 허락을 얻어 『몽고자운』을 영인해 첨부하였다. 2013년 7월, 저자가 <몽고자운>을 열람하겠다고 했더니 귀중서여서 도서관 회원으로 가입한 다음에 열람 신청을 해서 허가를 받아야 볼 수 있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회원 가입부터 하려고 원서에 기입하여 패스포트와 함께 제출했더니 그것을 보고 사서가 눈이 둥그레지면서 물었다. “Are you Professor Chung?” “Yes I am. My name is Kwang Chung?” 하고 대답했더니 그가 옆에 있는 보조 사서에게 말했다. “Nobody in the world except him can read and understand this book!” 하면서 저자 정광 교수를 특별 열람실로 안내해서 책을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단행본으로 출판, 일본어 어휘 교재로 사용하던 <왜어유해>는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일본의 가나자와 소우사브로가 소장했던 판본을 천하 유일본으로 인정했다. 일본 교토대학에서 이를 영인 출판했고 한국의 연구자들도 그 책을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서울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훨씬 선본의 <왜어유해>가 소장되어 있었고 그것도 1980년대까지는 일반 도서여서 누구나 대출이 가능했다. 정광 교수의 강력한 항의로 겨우 귀중도서로 지정되었다. 저자는 이를 영인하여 출판했고 일본인 연구자들이 가나자와 소장본을 이용하여 저지른 잘못까지 찾아 보강해냈다. 이제 일본인 연구자들도 거의 모두 정광 교수의 책을 이용하고 있다. 이 책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경의를 표하는 언어학자 정광 교수의 오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탄생한 이 분야의 최초 본격 저서이다.

<자료 1> 가장 유명한 역관은 최세진
한어를 학습하여 통역을 담당한 역관으로는 중종 때 최세진(崔世珍)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연산군 9년(1503)의 봉세자별시에서 2등 2인으로 합격하는 방에 이름을 올려 문신으로 오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중인 출신으로 역관이었으며 가업인 역관을 세습했다. 조선시대에 가장 출세한 역관이었고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동반으로 천전하여 문신처럼 학문의 길을 걸었다. 그가 추구한 학문적 목표는 세종과 같이 한글을 이용하여 자신의 전공인 한어와 한이문의 교육을 위한 올바른 교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걸대>, <박통사>를 번역하고 언해했다. 한어의 발음사전인 <사성통해(四聲通解)>도 편찬하여 이 운서로써 한어음의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을 구별하고 한어의 표준음을 교육했다. 『속첨홍무정운(續添洪武正韻)』도 그런 의미에서 편찬했으며, 『훈몽자회(訓蒙字會)』를 편찬하여 우리 한자음을 정리했다. 그가 『운회옥편(韻會玉篇)』과 『소학편몽(小學便蒙)』을 지은 것도 어린이들의 한자 교육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한자의 발음을 정리하고 이를 학습하는 여러 교재도 계발했다.

<자료 2> 역학서의 변천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교재의 편찬이다. 실제로 대상 언어와의 통역을 맡은 역관들은 현재 통용되는 언어, 그것도 생생한 구어의 교육에 이용할 교재가 필요했다. 따라서 사역원에서 편찬하는 외국어 교재는 서로의 언어가 변천함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개편되었다.
이 책에서는 역학의 교재를 셋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조선 건국 초기부터 『경국대전』까지의 역학서를 초기로 보았는데, 이때의 교재는 주로 상대국에서 아동을 상대로 사용하던 훈몽서를 수입하여 그대로 사용하거나 한글 발명 이후에는 이 문자로 주음(注音)하기도 하고 언해하여 사용했다. 이 시대에 특별히 주목할 것은 <노걸대>와 <박통사>라는 한어 교재. 고려 말 원의 대도(大都)를 여행한 고려 역관들이 편찬한 이 역학서는 모든 역학서의 귀감이 되었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이후 외국어 학습의 요구가 커져갈 때 거의 모든 역학서들이 이 <노박>처럼 사역원에서 자체적으로 회화 학습교재를 편찬하기에 이른다.
두 차례의 혹독한 전란 이후에 역학서는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때의 외국어 교재는 앞에서 언급한 <노박>처럼 사역원에서 한글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편찬하거나 앞의 <노박>을 번역, 언해해 사용했다. 이 시기 역학서를 중기로 볼 수 있는데 정착기라 할 수 있다.
이후에는 주로 이때 편찬된 역학서를 개정하고 증보하거나 개수하는 수정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후기의 역학서라고 한 외국어 교재들은 『속대전』 이후부터 구한말까지의 역학서를 말하는데 이 책의 제2장에서는 세 시기로 역학서를 구분하여 고찰하고 각 시대의 외국어 교재가 보인 특징을 살펴보고 있다.

<자료 3> 한어 교육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은 중국어가 중심이 된다. 원나라 수도인 대도(大都), 오늘날의 북경에서 통용되던 한어는 당시로서는 세계의 언어였으며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이 언어로써 외부 문물을 수용했다. 사역원에서도 한어를 교육하는 한학이 다른 삼학三學(몽학/왜학/여진학)과 비교하여 제도적으로 월등하게 중요시하고 있었다.
한어 학습을 위한 역학서의 편찬은 <노걸대>, <박통사>를 비롯해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와 각종 역사서들이 동원되었다. 특히 설장수(?長壽)가 한어로 풀이한 <직해소학(直解小學)>이 <노박> 못지않게 중요한 본업서의 교재였다.
한어의 교육은 주로 <노걸대>와 <박통사>에 의존하는데 이 두 한학서가 한어 역관들의 임무에 맞는 대화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두 한어 교재는 사역원이 폐지될 때까지 한학의 본업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두 교재는 언어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어 고려 말에 편찬된 원본을 수정한 <산개본>과 청대 북경 만다린으로 새롭게 해석한 <신석본>이 있었고 이것이 너무 속된 말을 썼으므로 <노걸대>의 경우에 이미 청조의 관리들에 의하여 정립된 관화로 수정하여 <중간본>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자료 4> 몽고어
몽고어 교육은 조선 건국 초부터 시행되었으며 원이 망한 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중국의 동북방에 몽고족의 후손이나 몽고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많아서 이곳을 여행하거나 이들과 교역할 때 몽고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선조 몽고어는 여행 중 접촉에서 상품의 교역에 사용되었으므로 몽고어 역학서, 몽학서는 주로 상인들의 회화에 치중되어 교육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몽고의 세력이 점차 쇠약해지고 주변의 다른 민족들, 예를 들면 만주족들이 세력을 얻으면서 몽고어의 수요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사역원에서 ‘이미 몽고어의 수요는 없지만 앞으로 몽고가 강해질 것을 대비하여 몽고어를 교육한다’고 한 것처럼 조선 후기에는 그저 관례에 따라 교육했다. 다만 연행사로 파견된 조선 역관들이 북경에서 많은 소수민족의 사절들을 만나서 그들의 사정을 정탐하고 교역도 해야 할 때에 몽고어의 필요는 있었다.

<자료 5> 일본어
일본어 교육의 왜학은 가나문자를 학습해야 하고 문자에 여러 자체가 있어서 배우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 가는 연행사에 비해 일본에 가는 통신사행은 배를 타고 가야 하므로 때로 파도에 생명을 잃는 일도 있어 왜학은 역관들이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일본을 교린국으로 삼고 외교관계를 성립했으며 7년 전쟁을 치르며 일본어에 대한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교재도 임진왜란 중에 일본으로 납치되었다가 쇄환된 강우성(康遇聖)이 저술한 <첩해신어(捷解新語)>로 초기 왜학서를 교체했다. 초기의 왜학서로 학습한 일본어가 일본인과의 접촉에서 쓸모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초기의 왜학서는 주로 일본에서 훈몽서이거나 서간문 작성용 교재였기 때문에 회화에는 부적당했다.
<첩해신어>는 강우성이 왜학 역관으로서 왜관의 일본인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대화나 3번의 통신사를 수행하면서 사행에서 주고받은 내용을 회화체로 정리하여 저술한 것이다. 이 책은 한학의 <노박>처럼 왜학 역관들이 가장 애용하는 교재가 되었다.

<자료 6> 여진어 및 만주어
여진학은 상대적으로 늦게 사역원에 설치되었다. 청학은 병자호란(1636) 이후 사역원에서 만주어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시행되었다. 왜란·호란을 겪은 조선 중기에 대청·대왜 관계는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었고 청학과 왜학의 위상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청학은 만주족이 중국을 차지하고 교린국에서 사대국으로 바뀜에 따라 여진어를 배우던 여진학도 만주어를 배우는 청학으로 바뀌면서 사역원 사학에서의 서열도 한학 다음으로 격상되었다.
주어 학습 교재로는 왜란과 호란 중에 불타지 않고 남은 5책, <구난>, <거화>, <상서>, <팔세아>, <소아론>을 신계암(申繼?)이 인조 17년(1639)경에 만주어로 재편하여 청학서로 사용했다. 헌종 갑진(甲辰, 1844)년에 실시한 갑진증광별시(甲辰增廣別試)의 역과청학에 응시하여 합격한 백완배(白完培)의 시권(試券)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청학의 만주어 역과 시험이 어떻게 실시되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24세 백완배의 시권은 현전하는 역과 시권 가운데 가장 완벽한 것으로 과제는 <삼역총해>에서 3문제, <청어노걸대>에서 2문제, <팔세아>, <소아론>에서 각기 1문제 도합 7문제가 출제되었고 각각의 아래에 답안이 적혔다. 6.5의 점수를 얻었고 2등 4인으로 합격했다. 『1등에 3명, 2등에 7명, 3등에 9명, 도합 19명이 합격했으며 백완배는 2등 7명 속에 4번째로 적혀 있어 이 증광별시의 역과초시에 2등 4인으로 합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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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 | su**est | 2015.04.0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정은궐 작가의 소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 보면 네 명의 주인공이 역관으로부터 청국어를 배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

    정은궐 작가의 소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 보면 네 명의

    주인공이 역관으로부터 청국어를 배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역사e 시리즈를 읽더라도 풍랑으로 인해 조선에 표류한

    외국인의 심문을 위해 역관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도 역관이란 당연히 있는 직책이라

    생각해서 그들이 어떻게 공부해서 외국어를 통역할 수 있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문점도 갖지 못했었다. 

    이 책의 소개를 읽으면서 문득 그 생각이 났고 흥미롭다 생각해서

    구매했었는데 이번에 겨우 읽게 되었다.

    이웃한 국가들과의 분쟁이나 조공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역관은 꼭 필요한 직책이었다.  본격적으로 외국어 교육기관을 만든

    것은 고려 말부터이고 그 후 700년 동안 기관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꾸준히 외국어교육기관이 있었던 사실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어느 일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새롭게 세력을

    잡는 민족이 누구냐에 따라 우리의 공부하는 언어도 달라진다.

    한어, 몽고어, 일본어, 여진어, 만주어 등 주변국의 변화에 맞춘 교재를

    발간하고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양에서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가 접촉이 있는 지방에 직접

    교사를 파견하여 사람을 모아 가르치며, 5세 때 왜학 생도방에 입학한

    기록도 있는 등 조기교육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교육교재 또한 해당 국가의 언어가 바뀔 때마다 개편해서 구어 위주로

    가르치는데 대표적인 책으로 '노걸대' '박통사'가 있다.

    역관을 뽑는 시험에 응시한 사람들은 교재를 외워서 쓰거나 뜻풀이를

    하는 등 오늘날과 다름없는 엄격한 과정을 거치는데, 다행인지 모르나

    그 시절의 과거시험용지가 제출이 안되고 전래되는 것이 있어 그 실상

    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역관들은 단순한 통역뿐 아니라 직접 무역까지도 할

    수 있게 되면서 큰 부를 쌓게 된다.

    모든 글이 논문처럼 되어 있어 읽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내게는

    신선하고 의미 깊은 책이었다.

    한 평생을 이런 부문의 연구에 바치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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