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KYOBO 교보문고

금/토/일 주말특가
2020책점운세보기
광화문점 초등 독서릴레이
오작교캐시
  •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
  • 북모닝 책강
  • 낭만서점 독서클럽 5기 회원 모집
세계문학의 천재들
* 중고장터 판매상품은 판매자가 직접 등록/판매하는 상품으로 판매자가 해당상품과 내용에 모든 책임을 집니다. 우측의 제품상태와 하단의 상품상세를 꼭 확인하신 후 구입해주시기 바랍니다.
928쪽 | A5
ISBN-10 : 8975275949
ISBN-13 : 9788975275944
세계문학의 천재들 [양장] 중고
저자 해럴드 블룸 | 역자 손태수 | 출판사 들녘
정가
43,000원
판매가
28,000원 [35%↓, 15,000원 할인]
배송비
2,800원 (판매자 직접배송)
30,000원 이상 결제 시 무료배송
지금 주문하시면 2일 이내 출고 가능합니다.
더보기
2008년 2월 5일 출간
제품상태
상태 상급 외형 상급 내형 상급
이 상품 최저가
20,000원 다른가격더보기
새 상품
38,700원 [10%↓, 4,300원 할인] 새상품 바로가기
안내 :

중고장터에 등록된 판매 상품과 제품의 상태는 개별 오픈마켓 판매자들이 등록, 판매하는 것으로 중개 시스템만을 제공하는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해당 상품과 내용에 대해 일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교보문고 결제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은 직거래로 인한 피해 발생시, 교보문고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중고책 추천 (판매자 다른 상품)

더보기

판매자 상품 소개

※ 해당 상품은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하여 안내하는 상품으로제품 상태를 반드시 확인하신 후 구입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판매자 배송 정책

  • 우체국택배를 이용하여 택배비가 2800원 입니다. 주말을 제외 주문한 다음날 받으실 수 있습니다.상품을 받은 후 기재한 상품 내용과 확연히 틀리지 않은 이상 단순변심으로 인한 이유로는 죄송하지만 반품이 되지 않습니다. 구매하 실 때 정확하게 확인 부탁 드립니다.^^

더보기

구매후기 목록
NO 구매후기 구매만족도 ID 등록일
309 빠른 배송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점 만점에 5점 sic*** 2019.12.31
308 배송 빨라서 좋았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iew*** 2019.12.30
307 새책과같네요. 빠른배송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lks*** 2019.12.21
306 책 상태 좋아요!! 포장도 잘해주셨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beom*** 2019.12.18
305 좋은 책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bulg*** 2019.12.12

책 소개

상품구성 목록
상품구성 목록

시대를 초월하는 세계문학의 천재들

<세계문학의 천재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언어적 천재 100명을 소개하는 책이다. 미국 문학 비평계의 거목이자 살아 있는 전설인 해럴드 블룸의 역작으로, 세계문학 천재들의 유사성을 포착하여 그들이 수세기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과정을 살펴본다. 성서와 소크라테스에서 셰익스피어와 단테, 헤밍웨이와 포크너, 그리고 랠프 앨리슨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종횡무진 넘나들고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천재들을 신의 위치에 놓고 각각의 천재성을 조명하면서, 그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어떻게 그 천재적인 빛을 공유해왔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영지주의와 카발라'라는 도구를 선택하였다. 영지주의는 신비한 영역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고, 카발라는 '생명의 나무'인 세피라에 의해 신이 현현한다는 교의를 따르는 종교이다.

영지주의자인 저자는 100명의 천재들을 10개의 세피라에 배치하고, 고유한 광채로 서로를 비추게 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천재들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대부분 문학적 천재들이지만 '언어' 천재들인 철학자와 종교작가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독자의 반응에서 창출되는 주관적 비평인 '독자반응비평'으로 자유분방하게 천재들을 다루고 있다. [양장본]

저자소개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코넬과 예일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지난 수십 년간 미국 문학 비평계의 거목이자 살아 있는 전설로 세계 문단을 주도해왔다. 1955년부터 예일 대학에서, 1988년부터는 뉴욕 대학에서 문학이론과 비평을 가르치고 있다. 1987년에서 88년까지는 하버드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로마와 볼로냐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5권이 넘는 문학 및 종교 비평서를 포함해 끊임없이 논문을 발표하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블룸은 상상력의 자율성을 옹호하며, ‘문학의 위대성’이란 영혼의 숭고함과 미학적인 강렬함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은 도덕이나 정치적 주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블룸은 신비평의 열기가 사라지던 1960년대에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문학과 전통에 대한 연구에 심취했고, 1970년대에는 해체주의 시론詩論을 정립했으며, 이후 자신이 정립한 시론을 수정, 보완, 발전시켜왔다. ‘예일 비평의 마피아’로 불리는 블룸은 ‘시적 영향’의 개념을 중심으로 비평이론을 전개했으며,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신역사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대항하여 문학에 대한 미학적 접근법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블룸은 예일대 인문대학 스털링 기금교수와 뉴욕대 대학원 영문학 버그 기금교수로 재직 중이며, 1999년 미국 예술원에서 주는 비평 분야 금관훈장을 비롯해 맥아더 재단이 수여하는 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시적 영향에 대한 불안The Anxiety of Influence: A Theory of Poetry』(1973), 『서구의 정전The Western Canon』(1994), 『셰익스피어: 인간의 발명Shakespeare: The Invention of the Human』(1998), 『어떻게 읽고 왜 읽는가How to Read and Why』(2000)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글_ 100명의 천재들을 모자이크하다
이 책의 구성에 대하여_ 천재와 카발라
광채_ 천재가 천재에게 나누어주는 광휘
영지주의란 무엇인가?_ 문학의 종교
서문_ 천재는 자신과 경쟁하면서 시대를 초월한다
천재의 개인적인 정의_ 독창성과 초월성, 보편성

I. 케테르 Keter 왕관
광채 1|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존 밀턴(John Milton)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광채 2|
루크레티우스(Lucretius)
베르길리우스(Vergilius)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us)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Ⅱ. 호크마 Hokmah 지혜
광채 3|
야훼스트(The Yahwist)
소크라테스와 플라톤(Socrates and Plato)
성 바울(Saint Paul)
무함마드(Muhammad)

광채 4|
새뮤얼 존슨(Dr. Samuel Johnson)
제임스 보즈웰(James Boswell)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토마스 만(Thomas Mann)

Ⅲ. 비나 Binah 사유 능력
광채 5|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새뮤얼 베케트(Samuel Beckett)

광채 6|
몰리에르(Molie're)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Ⅳ. 헤세드 Hesed 성약聖約의 사랑
광채 7|
존 던(John Donne)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제인 오스틴(Jane Austen)
무라사키(Lady Murasaki)

광채 8|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에밀리 제인 브론테(Emily Jane Bronte)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V. 딘 Din 엄중한 심판
광채 9|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T.S. 엘리엇(T.S. Eliot)

광채 10|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존 키츠(John Keats)
자코모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
앨프레드 로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

Ⅵ. 티페렛 Tiferet 아름다움
광채 11|
앨저넌 찰스 스윈번(Algernon Charles Swinburne)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Rossetti)
월터 페이터(Walter Pater)
후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광채 12|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제라르 드 네르발(Ge'rard de Nerval)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폴 발레리(Paul Vale'ry)

Ⅶ. 네자 Nezah 신의 승리
광채 13|
호메로스(Homeros)
루이스 바즈 데 카몽스(Luis Vaz de Camoes)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알레호 카르팡티에(Alejo Carpentier)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광채 14|
스탕달(Stendhal)
마크 트웨인(Mark Twain)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

Ⅷ. 호드 Hod 위엄
광채 15|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하트 크레인(Hart Crane)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루이스 세르누다(Luis Cernuda)

광채 16|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윌라 캐더(Willa Cather)
이디스 훠턴(Edith Wharton)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

Ⅸ. 예소드 Yesod 근본
광채 17|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주세 마리아 에사 데 케이로스(Jose' Maria Eca de Queiro's)
주아킴 마리아 마차도 데 아시스(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광채 18|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D.H. 로렌스(D.H. Lawrence)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에우제니오 몬탈레(Eugenio Montale)

X. 말쿠트 Malkhut 왕국
광채 19|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헨리 제임스(Henry James)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광채 20|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yevsky)
이사크 바벨(Isaak Babel)
파울 첼란(Paul Celan)
랠프 왈도 엘리슨(Ralph Waldo Ellison)

코다_ 천재의 미래

번역을 마치고 : 짙고 농밀한 고전의 향기
찾아보기

책 속으로

내 기억으로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여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은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였다. 그는 제인 오스틴이 고골리보다 형편없는 작가라고 주장하며, 194...

[책 속으로 더 보기]

내 기억으로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여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은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였다. 그는 제인 오스틴이 고골리보다 형편없는 작가라고 주장하며, 1947년에 코넬 대학의 강의실에서 나를 내몰았던 사람이다. 나보코프는(내게는 마치 그가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Humbert Humbert처럼 보이지만) 엘리자베스 베넷이 무미건조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자베스 베넷은 로잘린드처럼 기지가 넘치며 사랑스럽고 건전한 영혼과 감수성을 지녔다. 그녀에게서는 매혹적이면서도 동시에 규범적이라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품격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이건 역시 로잘린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오직 가장 위대한 천재만이 악의적인 자만심을 위협하는 유쾌함을 창조할 수 있는 법이다. C.S. 루이스가 제인 오스틴은 새뮤얼 존슨의 문학적 딸이라고 넌지시 말했던 적이 있다. 비평가인 나는 내 직업상 우상으로 여기고 있는 존슨을 존경한다. 하지만 누가 봐도 오스틴은 셰익스피어의 딸이다. 그녀의 여주인공들은 역사주의적 우연성을 거부하며, 내적 자유를 누리는 보기 드문 인물들이다.
― IV헤세드/제인 오스틴

[책 속으로 더 보기 닫기]

출판사 서평

『세계문학의 천재들』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언어적 천재 100명이 등장한다. 성서와 소크라테스에서 셰익스피어와 단테를 거쳐 헤밍웨이와 포크너, 랠프 엘리슨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학 비평계의 거목이자 살아 있는 전설인 해럴드 블룸은 이 책을...

[출판사서평 더 보기]

『세계문학의 천재들』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언어적 천재 100명이 등장한다. 성서와 소크라테스에서 셰익스피어와 단테를 거쳐 헤밍웨이와 포크너, 랠프 엘리슨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학 비평계의 거목이자 살아 있는 전설인 해럴드 블룸은 이 책을 통해 종횡무진 시대를 누비며 천재들의 유사성을 포착하고, 그들이 수세기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블룸 특유의 통찰력과 심미안으로 뽑아낸, 천재들의 작품에서 인용한 수많은 글들은 짙고 농밀한 향기를 뿜어내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영지주의와 카발라의 창을 통해 본 천재의 빛
블룸은 천재들의 작품과 일생, 일화를 시대 순으로 늘어놓는 평면적인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는 초월적인 신성인 천재를 신의 위치에 올려놓고서 각각의 고유한 천재성을 조명하는 한편 그들이 수 세대에 걸쳐 어떻게 빛을 공유해왔는지 입체적으로 탐구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천재들의 신성을 한눈에 조망하기 위한 도구로 ‘영지주의와 카발라’를 선택한다.
영지주의는 지성을 넘어선 통찰력, 신비한 영역에 대한 지식을 추구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비한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다. 블룸은 천재들이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신비한 통찰력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모두 다 영지주의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영지주의야말로 ‘문학의 종교’라는 것이다. 한편 카발라는 ‘생명의 나무’인 세피라, 즉 10개의 세피라에 의해 신 혹은 신의 빛(광채)이 현현한다는 교의를 따르는 신비한 밀교다. 이 10개의 세피라는 각각 고유한 빛을 내지만 서로 빛을 공유하며 결국 하나의 빛으로 모아진다. 영지주의자인 블룸은 100명의 천재들을 10개의 세피라에 각각 10명씩 배치하고, 고유한 광채로 서로를 비추게 하는 독특한 형식을 차용했다. 물론 100명의 천재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다.

‘영향에 대한 불안’이 구성한 천재들의 모자이크
하나의 세피라에 배치된 10명의 천재는 다시 ‘광채’라는 소제목 아래 다섯 명씩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블룸은 각 세피라를 열 때마다 왜, 그리고 어떤 기준에서 이 10명을 한곳에 모았으며 그들 간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간략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이 10개의 세피라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100명의 천재들은 그들이 속한 세피라 외에 다른 아홉 개의 세피라들에 의해서도 빛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자이크다. 예를 들면 새뮤얼 존슨과 괴테, 프로이트를 디킨스와 첼란, 엘리슨과 연관 짓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블룸은 천재란 언제나 이전의 천재로부터 받은 자극에 의해 독특하게 생성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을 택했다. 그는 최고의 천재인 셰익스피어조차 초서와 은밀한 서약을 맺고 있다고 귀띔하고 있다.
1973년에 블룸은 『시적 영향에 대한 불안The Anxiety of Influence: A Theory of Poetry』에서 작가가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이론화했다. 모든 문학 텍스트가 앞선 텍스트에 대한 반응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개념은 이후 해체주의와 후기구조주의 문학 이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향에 대한 불안’ 개념은 우선 창조적 오독(Misprision) 행위에서 비롯된다. 창조적 오독은 자신이 쓰고 싶어하는 위대한 시가 이미 씌어졌다는 해로운 인식을 피하기 위해, 선구자의 작품을 일부러 ‘오독(誤讀, Misreading)’함으로써 자신만의 상상적 공간을 획득하려는 행위다. 이러한 ‘뒤늦음’, 문학적 영향과 독창성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 작가들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해 또 다른 독창성을 낳게 했다는 게 블룸의 주장이다. 물론 ‘영향에 대한 불안’에서 중요한 것은 선구자가 준 영향이 아니라 후배의 작품에 드러나는 ‘영향의 흔적’이다. 키츠가 셰익스피어, 밀턴, 워즈워스를 읽지 않았다면 과연 그의 송가와 소네트, 히페리온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이 책, 『세계문학의 천재들』에서도 블룸은 자신이 정립한 ‘영향에 대한 불안’ 개념에 따라 천재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누가 누구의 선구자이며,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난 흔적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특화시켜 고유한 천재성을 획득했는가? 블룸의 안내를 따라 천재들의 세계를 탐구하다 보면, 결국 천재란 서로에게 빛을 반사하면서도 반드시 외따로 떨어져 존재하려고 몸부림치는 고독한 별들에 다름 아니다.

천재의 독창성, 초월성, 보편성
블룸은 전기 비평과 문학 비평을 뒤섞어놓긴 했지만 역사적인 설명은 의도적으로 피해간다.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문학성이나 숭고한 정신 또는 사상을 희석해버릴 뿐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압박감 속에서 겨우 한두 편의 명작이 나오며 태반은 값싼 시대물들만 양산될 뿐이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현실을 넘나든다. 시대를 초월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그러므로 블룸은 독창성과 초월성, 보편성을 지녀야 천재라고 정의한다. 천재들이 창조해낸 문학 속의 인물들은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가? 대중소설 속에서 생명력 있는 인물을 만난 적이 있는가?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시간이 지나면 대중소설들은 값싼 시대물로 전락해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무라사키나 옥타비오 파스, 카몽스, 케이로스, 카르팡티에 같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들도 블룸의 천재 그룹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100명의 천재들 중 문학적 천재들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언어’ 천재들인 철학자와 종교작가들도 일부 포함됐다. 니체와 키에르케고르, 프로이트, 야훼스트, 무함마드 등이 바로 그들이다.

[출판사서평 더 보기 닫기]

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책 출간에 관해 | so**tes | 2013.03.2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1
    책 출간에 관해...
    책 출간에 관해
     
     
    책을 출간한 이후 그간 여러분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조언 및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영미 비평계 거장의 저서를 우리말로 읽게 되어 좋았다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 원문과 비교해 번역서의 분량이 터무니없이 적고, 이와 관련 중간 중간에 누락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 그리고 일부 원문과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띤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모두 바쁘신 중에도 책을 읽고 검토하시고 의견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셨을지도 모를불편함에 대한 단순한 해명이라기보다 이 책을 옮기는 작업에 임했던 사람으로서 그 과정에서 있었던(그러나 그간 알려질 수 없었던 사실들을) 말씀드림으로써 그러한 불편함을 제공했으리라 생각되는 몇 가지 오해를 다소나마 완화해 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번역 의뢰를 받고 거의 모든 작업이(초벌 번역을 말함) 무척이나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출판사가 애초에 요구한 마감 기한이 1년이 넘지 않았습니다(일반적으로 출판사의 데드라인 요구는 번역가가 어기기 힘들며 또한 번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이 책의 번역자를 찾고 있었던 출판사는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A씨 등 여러 번역가에게 이 책을 의뢰했지만 모두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 의사를 표명하여 번역자를 찾을 수 없었고, 그 와중에 제게 의뢰를 했습니다
      
    당시 번역 의뢰를 처음 받고 일정을 고려해 거절한 바 있었으나 재차 요청하여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번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어려움을 발견하고 계약 후 얼마 지나고 다시 거절 의사를 밝혔으나, 나름 인문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저자의 책을 반드시 발간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간곡한 열정과 부탁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난이도와 작업에 요구되는 방대한 지식에 눌려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표현한자의적(arbitrary)”이라는 말은 결코 100명의 작가 선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의 다른 비평 이론서였다면 오히려 학문적인 접근법을 택해 공부하면서 원문의 의미에 맞게 책을 옮겼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면 파악하셨듯이 수록된 100명 각자에 대한 내용의 난이도 문제와 더불어 저자가 독자들이 100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읽고 일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일화 내지 인물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것도 전후 맥락 없이 구어체 형식으로 생각의 흐름대로 썼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일일이 따라가는 것 역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번역과는 무관하게 진행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몇 가지 추가 작업이 불가피해졌습니다.
     
    1. 
    내용 축소에 관해

     
    내용 축소 내지 원문 누락은 저 또한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물론 책 뒤에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애초에 원문 814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을 출판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출판사와의 협의에 따라 부득이 일부 내용을 담지 못했다고 다소 간략히 밝힌 바 있지만, 이 언급은 독자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도 있는 표현임을 인정합니다. “일부 내용이라는 말도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당시 계약에 따라 원문을 거의 모두 우리말로 옮겨 놓았고 원고를 임시로 출판사에 전달한 후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분량이 예상 외로 많아 두 권으로 출판해야 하겠지만, 출판사 사정상 한 권 분량으로 낼 계획이니 분량을 적어도 4분의 1 이상 정도를 줄여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물론 다년간 수많은 영어원서 번역서들을 출간해온 출판사가 미리 이러한 점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결국 출판사의 뜻을 받아들여 단권 출판에 맞게 광범위하고 힘든 재(
    )편집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2. 
    추가 문장 수정 작업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나서 한참 후에 다시 출판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번역은 나름 정리가 되었으나 그래도 원문의 방대함과 난해함 등으로 인한 독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판사 쪽에서 이미 선정섭외 했던 전문가의 윤문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출판사는 철학 등 인문과학 분야의 유명한 저자이자 번역가이며 출판사와 그 동안 번역저술 작업을 많이 해온 N씨에게 이를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N씨와 통화한 이후 책이 출간되기까지 그 사이에 그분이 작업한 사항들이 제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즉 그 분의 윤문 작업 이후 제게 별도로 수정사항이 반영된 원고를 보여주지 않은 채 출판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옮긴 이가 감수자의 피드백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거치지 않고 출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 분량을 편집 특성에 맞게 줄이는 과정에서, 또한 독자를 위한 윤문과정에서 이 작업은번역에서 일종의편역(編譯)”에 가깝게 바뀐 것인데, 이 점 역시 이 글을 이미 모두 옮긴 사람 입장에서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아마도 경기 내지 출판 현황 등을 고려하여 그 같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었던 출판사 측에 더욱 강한 어조로 반대의 입장을 적극 표명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지막에 저는 제 이름을 굳이 넣고 싶지 않았고, 같이 번역 작업을 도와준 이들과 공동 번역으로 나가기를 출판사에 제안한 적도 있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차라리편집부번역 내지 출판사 편집으로 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번역자의 이름을 넣기를 원했고 그 와중에 표지에는 “OOO 번역이 아니라 “OOO 옮김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번역이라기보다는편역에 더 가깝습니다.
      실 개인적으로 논쟁을 하거나 변명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 지면을 무슨 진실공방을 위한 토론장으로 발전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평소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굳이 남의 비평이나 비판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어떤 평가가, 받아야 하는 타당한 정도를 넘어섰을 때, 그리고 때로는 그 평가가 사실과 크게 벗어났을 때, 그 대 침묵은 금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죄악일 수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겪은 하나의 케이스는 단지 저로 끝나는 일이 아니고, 어쩌면 구조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유사한 일들이 다른 번역가들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므로, 나름 원인에 대한 모종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건 이 작업에 깊이 참여하게 된 옮긴이로서(편역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책임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번역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고 이 점에 있어서는 추호의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번역료나 챙기고 대충 하려고 이런 장르의 책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겠죠. “역자는 시한 내에 아무 것으로나 분량을 채우고 번역료를 받아 챙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는 식의 지나친 비방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또한 무슨 번역 기계를 돌렸다는 식의 표현도 그렇거니와(아마 애초부터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일일이 그 사례를 들어주신 것 같지만). 그 노력만큼은 감사하며 인정하겠지만, 극단적인 단정 등으로 개인적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앞의 분이 지적 하신 비평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누락 부분. 2) 오역은 아니지만 더 나은 표현 제안하신 부분. 3) 오역이라고 주장하사는 부분들. “누락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을 했고, “오역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제안은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모두 저의 번역에 대해서 귀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시며 심도 높은 분석과 지적으로 장문의 글을 통해 지적해 주신 것 역시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오역의 지적에 대해서는 번역 당시 원문의 의미를 정확이 파악하지 못해 적절한 표현으로 옮기지 못한 사항들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윤문과정을 통해 원 번역문과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그 중 몇 가지 사례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제가 애초에 출판사에 넘긴 마지막 번역이 윤문을 통해 전체적으로 바뀌었는데(다시 검토해 보니 사소한 것에서부터 제가 놀랄 정도로 앞뒤가 크게 바뀐 것) 그 변형된 문장들을 원문과 대조하여 오역이라고 평가 하셨기에, 제 입장에서 주요 사례들을 밝힘으로써 다소나마 오해를 풀고자 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윤문 과정에서 감수자의 표현이 강력하게 바뀐 것을 저도 여러 차례 발견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모두 다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사례들은 후반부에 소개했습니다.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름 능력을 발휘해서 양심껏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간 본의 아니게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끼친 점에 대해서는 저 역시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간 난해한 인문학 서적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지적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 드리며, 또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지적하신 열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드릴 말씀은 많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자세로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며, 혹 오해가 있었던 사항들을 정리한 선에서 마치겠습니다
    본서의 작업과정에서 출판사와의 몇 차례에 걸친 합의가 불가피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저자의 글들을 모두 지면에 실어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음에 많은 아쉬움을 느껴왔습니다. 다시 기회가 닿으면 미비한 점들을 보완하여 완역을 통해 책 전체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원래 원문에 실었던 모든 글들을, 출판사와의 협의 하에 부득이하게 단락 내지 문장, 혹은 일부 표현에 이르기까지 수정 및 삭제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과정을 본서에서 충분히 설명 드리지 못해 독자들에게 오해와 실망을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아쉽게 생각합니다. 지적을 받은 사항들을 검토해 보며, 이 모든 것들이 번역시 항상 논란이 되어 온 오역의 한계 규정 문제, 번역 외적 요인들이 번역에 미치는 영향들, 그리고 번역자와 출판사간의 관계 정립 문제 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저를 포함, 앞으로 번역자들이나 출판사가 더욱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번 계기를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앞으로 외국의 인문학 서적을 국내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작은 글이 독자들의 불편함과 오해를 다소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옮긴이>
     
     
    <<번역문과 수정된 문장 비교>>
     
    1.      번역문”: 파일상 일부 표현 등에 빨간 색 표시와 질문이 있던 것으로 보아, 제가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나서, 출판사 측에서 읽은 후 질문들 및 기타 다른 확인 작업들 하기 위해 보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역 이후 출판사가 한 번 확인을 거친 번역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윤문 작업 이전의 번역입니다.
    2.     번역서(출판사 수정):은 윤문을 마치고 나서 바로 출판되어 실린 것으로, 논평자가 지적한 텍스트입니다.
    3.     번역 제안: 논평자가 다시 번역한 글입니다.
    4.  논평자 코멘트: 논평자가 번역서(출판사 수정)를 보고 비평한 글을 다시 소개한 것입니다.
     
     
    p17
     
    [1]
     
    ▶ 번역문: 영지주의: 문학의 종교
    ▶ 번역서(출판사 수정):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문학의 종교
    ▶ 번역 제안: 영지주의: 문학의 종교
    [영어원문]: Gnosticism : The Religion of Literature
    (* 논평자 코멘트: 역자는 원문의 'Gnosticism'을 ‘영지주의란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론 영지주의에 대해서 대단히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의 내용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2]
     
    ▶ 번역문: 르네상스와 현대의 지류를 이루는 통칭 ‘헤르메티시즘Hermeticism(신비주의)’ 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여기에서 르네상스와 현대의 지류를 이루는 헤르메티시즘이 파생되었으므로 이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 번역 제안: 르네상스와 헤르메티시즘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지류를 구별하기 위함이다.
    [영어원문]: so as to distinguish it from its Renaissance and modern offshoots, generally called Hermeticism.
    (* 논평자 코멘트: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차라리 원서의 표현대로 옮기는 것이 더욱 정리된 문장으로 보입니다. 또한 헤르메티시즘 또는 헤르메티즘을 ‘연금술’로 변역하거나 해석을 붙였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3]
     
    ▶ 번역문: 카발라에서는 아담 캐드몬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은 ‘죽는 신’이라고 불렀던 최초의 아담(안트로포스Anthropos, 혹은 최초의 인간)에 관한 유대인의 사상을 발전시켜왔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그들은 카발라에서 아담 카드몬이라고 부르며, ‘죽는 신’이라고 자처했던 최초의 아담(안트로포스Anthropos, 혹은 최초의 인간)에 관한 사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 번역 제안: 그들은 카발라에서의 아담 카드몬이나 연금술사들(Hermetists)에게 ‘죽는 신’이라고 불리는 최초의 아담(안트로포스 혹은 최초의 인간)에 대한 유대인의 사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영어원문]: ~~, and who developed the Jewish speculation concerning the first Adam, the Anthropos or Primal Man, called the Adam Kadmon in Kabbalah, and "a mortal god" by the Hermetists: ~~
    (* 논평자 코멘트: 최초의 아담이 스스로를 ‘죽는 신’이라고 자처한 것이 아니라, 연금술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 책의 전체에 걸쳐 번역자는 원문에도 없는 단어를 임의로 삽입하여 오역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4]
     
    ▶ 번역문: 요나스는 탁월한 시인들이 항상 추구했던 것, 즉 창조적인 자아를 위한 자유와 정신적인 의식의 확장을 위한 자유를 설명해 놓았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요나스는 탁월한 시인들이 항상 추구했던 것, 즉 창조적 자아를 위한 자유와 정신적 의식의 확장을 위한 자유를 오래 전에 이미 설명해놓았다.
    ▶ 번역 제안: 그는 탁월한 시인들이 항상 추구했던 것, 즉 창조적 자아와 정신적 의식의 확장을 위한 자유를 설명했다.
    [영어원문]: he had described what strong poets always sought for: freedom for the creative self, for the expansion of the mind's consciousness of itself.
    (* 논평자 코멘트: ‘오래 전’이라는 주관적 표현은 원서에 있지 않은 표현이고, 글의 내용에서도 그런 뉘앙스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p21
     
    [1]
     
    ▶ 번역문: 그들 모두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인상적이었지만, 거숌 숄렘이 지니고 있는 화려함이랄지 권위는 없었다. 숄렘은 아이러니와 차원 높은 유머 감각을 구사하면서도 천재성이 그를 가까이 따라 다녔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그들 모두 나름대로 인상적이었지만, 게르숌 숄렘이 지니고 있는 화려함이랄까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숄렘은 아이러니와 격조 높은 유머감각을 구사하는 위대한 천재다.
    ▶ 번역 제안: 그들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수준 높은 유머와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천재성을 지닌 게르숌 숄렘과 같은 화려함이나 권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영어원문]: All of them impressive, in different ways, they lacked the flamboyance and authority of Gershom Scholem, whose genius attended him palpably, despite his irony and high good humor.
     
    [2]
     
    ▶ 번역문: 천재는 나에게 권위를 행사하기도 하는데 바로 내가 나보다 더 위대한 힘을 인식할 때이다. 내가 따르고 싶은 현자인 에머슨은 아마도 내가 이렇게 현실에 타협하여 굽히고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의 천재성은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 신뢰’를 그럴 듯하게 역설할 것이다.
    츨판사 수정: 천재는 나에게 권위를 행사한다. 나보다 더 위대한 힘이 있음을 인식할 때 가장 먼저 따르고 싶은 현자는 에머슨이다. 그는 내가 자기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의 천재성은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자기신뢰’를 그럴듯하게 역설할 예정이다.
    ▶ 번역 제안: 나보다 더 위대한 힘이 있음을 인식할 때 천재는 나에게 권위를 행사한다. 내가 따르고자 하는 현인 에머슨은 나의 실용적인 (이유 있는) 굴복을 안된다고 하겠지만, 그의 천재성은 자기신뢰에 대해 그럴 듯하게 설교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매우 광대하다.
    [영어원문]: Genius asserts authority over me, when I recognize powers greater than my own. Emerson, the sage I attempt to follow, would disapprove of my pragmatic surrender, but Emerson's own genius was so large that he plausibly could preach Self-Reliance.
     
    [3]
     
    번역문: 나는 46년간 쉬지 않고 가르치며 --
    츨판사 수정: 나는 50년 동안 쉬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 번역 제안: 나는 46년 동안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영어원문]: I myself have taught continuously for forty-six years, ~~
     
    p22
     
    [1]
     
    번역문: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천재를 새롭게 평가하면서 나는 일시적이나마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츨판사 수정: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 없다.(->이후 20줄 누락) 세계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 나는 천재를 새롭게 평가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천재성을 북돋워주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번역자가 임의로 붙여 넣은 문장??)
    ▶ 번역 제안: 나는 과연 내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천재를 새롭게 평가하면서 시시각각 (천재들로 인해 받은) 나의 정신적 상처를 떨쳐 냈다.
    [영어원문]: I cannot know whether I helped my student at all, but I momentarily held off my own trauma, by freshly appreciating genius.
    (* 논평자 코멘트: 역자는 원서에 없는 두 문장을 임의로 집어넣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의 누락된 20줄과도 무관한 것입니다. 번역이란 것이 단순히 직역만 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 책의 역자는 원서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기는커녕, 곳곳에 원서에 없는 표현을 삽입하여 본래의 표현을 왜곡하거나 오역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해럴드 블룸의 조심스럽고도 부드러운 표현을 아주 과격한 표현으로 과장하여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원저자가 알면 뚜껑이 열릴 만한 악질적인 번역습관입니다.)
    My comment: 역자는 원문 이외에 임의로 집어넣은 사실이 없습니다. 모두 편집 과정에서 추가 내지 삭제된 것들입니다. 뒤에도 나오겠지만 “원문의 조심스럽고도 부드러운 표현”은 나름 직역을 했었으나 비교해 본 바 거의 대부분이 강하고 과격한 표현으로 고쳐졌습니다.)
     
    [2]
     
    번역문: 문학적 천재는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지만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깊게 독서해야 한다. 독자들은 자아의 통일성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자아와 결합할 수 있는 자신이 위대성과 동일시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위대성’은 초월주의적이라는 말처럼 시대에 뒤진 말이지만, 비범함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없이 이 세상을 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문학적 천재는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지만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독서를 해야 한다. 깊게 독서하는 사람들만이 위대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위대함이 자아의 통일성을 깨뜨리지 않는다. ‘위대함’은 초월이란 말처럼 시대에 뒤처진 말이지만,~~
    ▶ 번역 제안: 문학적 천재는 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독서를 해야 한다. 독자는 자신이 (독서를 하면서) 느끼는 것과 동일한 것이 자아의 온전함을 깨뜨리지 않고도 자신과 결합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위대함’이란 말은 ‘초월적’이란 말처럼 시대에 뒤처진 것일 수도 있지만,~~
    [영어원문]: Literary genius, difficult to define, depends upon deep reading for its verification. The reader learns to identify with what she or he feels is a greatness that can be joined to the self, without violating the self's integrity. "Greatness" may be out of fashion, as is the transcendental, ~~
     
    p23
     
    번역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가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대표적으로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텍스트를 작가에 의한 오염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 작가의 죽음을 선언했다-옮긴이)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곧 부질없는 얘기가 되어 버렸다.
    츨판사 수정: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가의 죽음’(대표적으로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를 작가의 오염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 작가의 죽음을 선언했다-옮긴이-)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지금은 부질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 번역 제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지금은 부질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영어원문]: It was fashionable, quite recently, to talk about "the death of the author," but this too has become rubbish.
    (* 논평자 코멘트: ‘작가’는 포괄적으로 글을 쓰거나 창작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에 저자는 특정 작품에 연결되어 사용됩니다. 롤랑 바르트나 푸코가 말하는 것은 ‘작가’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 텍스트에 대한 ‘저자’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 My comment: 수정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책을 번역했던 10년 당시 관련 자료들을 찾았으나, 당시 제가 발견했던 바에 의하면 많이 통용되던 번역어가 작가의 죽음이어서 그대로 따랐습니다. “작가보다는 저자가 더 원문의 의미에 가깝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p24
     
    번역문: ‘감상’이라는 말은 내게 ‘적절한 평가’ 이상을 의미한다. 필요성이라는 개념 역시 여기에 등장하는데, 우리 안에서 부족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천재성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혹은 무엇으로 나타나든 간에 천재성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자극을 발견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감상’이라는 말은 내게 ‘적절한 평가’ 이상을 의미한다. 필요성이라는 개념 역시 이 책에 등장하는데, 우리 안에서 부족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천재성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혹은 그 천재성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자극을 발견한다는 의미로 쓰였음을 밝힌다.
    ▶ 번역 제안: ‘감상’이라는 말은 나에게 ‘적당한 평가’ 이상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결점을 고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천재성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천재성으로부터 자신의 힘에 대한 자극제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필요성이란 개념도 그것(감상)에 속한다.
    [영어원문]: By "appreciation" I mean something more than "adequate esteem." Need also enters it, in the particular sense of turning to the genius of others in order to redress a lack in oneself, or finding in genius a stimulus to one's own powers, whatever these may emerge as being.
    (* 논평자 코멘트: 역자는 'Need also enters in it'을 ‘필요성이란 개념 역시 이 책에 등장하는데’라고 하였으나, 문맥상 ‘이 책’이라고 해석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당연히 'it'은 앞 문장에서 화두로 내세우는 'appreciation'입니다.)
     
    §1. 셰익스피어
     
    P47
     
    번역문: 흰 망토를 입고 신비스러운, 두건을 쓴 이방인이 갑옷을 입고 빌헬름이 연기한 햄릿 앞에서 유령을 연기한다.
    츨판사 수정:
    ▶ 번역서(출판사 수정): 흰 망토를 입고 신비스러운 두건을 쓴 이방인이 갑옷을 입은 빌헬름의 햄릿 앞에서 유령을 연기한다.
    ▶ 번역 제안: 흰 망토에 두건을 쓰고 갑옷을 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방인이 빌헬름의 햄릿 앞에서 유령을 연기한다.
    [영어원문]: A mysterious hooded stranger, complete with white cloak, puts on armor and plays the Ghost to Wilhelm's Hamlet.
    (* 논평자 코멘트: 원문을 보아도, <햄릿>이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읽어 봐도,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은 햄릿이 아니라 유령입니다.)
     
    p48
     
    번역문: 『헨리 4세』의 1부와 2부를 같이 읽노라면 대표적인 희곡이면서 동시에 소설 같기 때문에 마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The Brothers Karamazov』의 전신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햄릿』이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의 선구先驅 작품이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헨리 4 1> <헨리 4 2>를 같이 읽노라면 희곡이면서 동시에 소설로 느껴지기 때문에 마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전신처럼 보인다. <햄릿> <죄와 벌>의 선구 작품이다.
    ▶ 번역 제안: <헨리4 1> <헨리4 2><햄릿> <죄와 벌>의 선구작품인 것과 마찬가지로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원형으로서, 함께 읽으면 뛰어난 희곡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소설이 된다.
    [영어원문]: The two parts of Hery IV, read together, are both a major drama and an extraordinary novel, as much the ancestor of The Brothers Karamazov as Hamlet is the forerunner of Crime and Punishment.
    (* 논평자 코멘트: -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헨리4>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선구적인 작품으로서, 희곡이면서 동시에 소설적 요소도 모두 갖추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단락의 내용과 관련되는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햄릿> <죄와 벌>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따로 떼어 말하는 것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p49
     
    번역문: 그렇다면 언제일까? 『햄릿』에 등장하는 부왕의 유령이 셰익스피어와 괴테, 그리고 그 이후 뛰어난 작가들을 낳았을까? 혹은 아벨을 죽인 가인의 죄와 같은 클라우디우스Claudius의 죄가 지난 2세기 동안 우리들을 낳았던 것일까?
    ▶ 번역서(출판사 수정):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엿듣기 시작하는가? <햄릿>에 등장하는 부왕의 유령이 셰익스피어와 괴테 그리고 그 이후 뛰어난 작가들을 낳았을까? 혹은 카인의 죄와 동일한 클라디우스의 죄가 지난 2세기 동안 우리를 낳았던 것일까?
    ▶ 번역 제안: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언제부터 시작하는가? 셰익스피어와 괴테 그리고 모든 위대한 저자들뿐만 아니라 <햄릿>에 등장하는 부왕의 유령 이후로부터? 또는 카인의 죄와 같은 클라디우스의 죄가 특별히 지난 2세기 동안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원인이 되었을까?
    [영어원문]: When do we begin? Did the Ghost in Hamlet father not only Shakespeare and Gothe and all strong writers since, or did the crime of Claudius, which is the crime of Cain, give birth to all of us, particularly in these last two centuries?
    (* 논평자 코멘트: - ‘우리는 언제부터 엿듣기 시작하는가?’라고 물으면서 뜬금없이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오역입니다. 또한 'when do we begin?'을 원문에 없는 표현을 넣어 ‘우리는 언제부터 엿듣기 시작하는가?’로 고쳐 번역한 것도 다음 문장과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2. 세르반테스
     
    p61
     
    [1]
     
    ▶ 번역문: 세르반테스는 소설 전반에 걸쳐 돈 키호테 외의 다른 두 주인공, 즉 산초 판사와 아이러닉한 화자話者보다는, 점점 돈 키호테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 개개인의 독자와 직접 대화한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세르반테스는 소설 전반에 걸쳐 돈키호테 외의 다른 두 주인공인 산초 판사와 아이러니한 화자보다 점점 더 돈키호테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는 마치 개개의 독자와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 번역 제안: 세르반테스는 소설의 다른 두 주역인 산초 판사와 아이러니한 화자보다 돈키호테와 더욱 자신을 동일시할 개개의 독자에게 소설 전체에 걸쳐 직접적으로 말을 건다.
    [영어원문]: Cervantes throughout directly addresses the solitary reader, who increasingly identifies herself or himself with the Knight, rather than with the two other protagonists, Sancho Panza and the ironic narrator.
    (- 터무니없는 번역입니다. 하나의 문장을 잘 못 해석하고 쓸 데 없이 두 문장으로 나누어 앞 뒤 문장과 전혀 연결이 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① 여기에서는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키호테와 자신을 동일시할 독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② 또한 소설 전반에 걸쳐서 돈키호테와 동일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소설 전반에 걸쳐 개개의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다는 것으로 역자는 무성의하게 수식관계를 아무 데나 가져다 붙여 버렸습니다. ③ 산초 판사는 그렇더라도 화자를 주인공이라고 한 것은 번역어를 잘못 선택한 것입니다.)
     
    [2]
     
    ▶ 번역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각각 이 두 기사들과 햄릿 왕자를 통하여 무한한 의식을 함께 모으는 기적을 극의 순서에 따라 행한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각각 돈키호테와 햄릿 왕자를 통해 부정형의 의식을 극의 순서에 따라 그러모으는 기적을 선보인다.
    ▶ 번역 제안: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각각 돈키호테와 폴스타프, 그리고 햄릿 왕자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의식을 극의 순서에 따라 불러 모으는 기막힌 연출을 한다.
    [영어원문]: Cervantes and Shakespeare each perform the miracle of bringing together an infinite consciousness -the two Knights and the Prince- with the order of play.
    (* 논평자 코멘트: 바로 앞의 두 문장에 이 문장의 번역을 위한 모든 실마리가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폴스타프를 빼 먹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형의 의식’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번역을 하였습니다. 바로 앞의 두 문장에서 이미 해럴드 블룸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셰익스피어의 <헨리4> <햄릿>은 읽는 독자들의 수만큼, 읽을 때마다, 연기하는 배우들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고 말하면서 그 중심적 인물로 돈키호테와 폴스타프, 그리고 햄릿을 언급하였습니다. 이런 번역을 보면, 원문은 읽지도 않은 채 일단 번역기부터 돌린 후 대충 말이 되게끔 고쳐 쓰기만 했다는 의혹이 강렬하게 일어납니다.)
     
    p62
     
    ▶ 번역문: 영국에 도착한 햄릿은 왕의 편지를 읽고 없애버리면서, 덴마크 군대가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영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햄릿은 덴마크 군대가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영국이 자신의 나라를 공격할 거라는 말을 듣게 되고.
    ▶ 번역 제안: 햄릿은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덴마크 군대가 영국을 공격할 거라는 말을 듣게 되고.
    [영어원문]: he hears that the Danish force is to invade England for non-payment of tributes.
    (* 논평자 코멘트: 덴마크 군대가 영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역자는 반대로 영국이 덴마크를 공격할 것이라고 오역했습니다.)
     
    p64
     
    ▶ 번역문: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무엇보다 기존의 관습을 극복하고 새로운 행동양식을 찾아내야 했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존의 관습을 극복하고 새로운 행동양식에 맞춰진다.
    ▶ 번역 제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존의 관습을 극복하고 새로운 행동양식을 창조했다.
    [영어원문]: Each movement he makes has first had to overcome custom and invent a new kind of gesture.
    (* 논평자 코멘트: 아마도 역자는 새로운 행동양식에 맞춘다는 것과 스스로 새로운 행동양식을 창조하는 것을 같은 의미로 착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는 새로운 유행을 ‘따라 간다’는 소극적 의미로 해석되어 원문의 본래 뜻을 왜곡시킵니다.)
     
    p71
     
    ▶ 번역문: 몽테뉴를 연구한 허버트 루시Herbert Luthy가 ‘진실하게 사는 기술’의 전형이라고 일컬었듯이 몽테뉴는 그의 책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몽테뉴를 연구한 허버트 루시가 그를 일러 ‘진실하게 사는 기술’의 전형이라고 일컬었듯이 몽테뉴는 그의 책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번역 제안: 그래도 그는 그의 연구자인 허버트 루시가 “진실됨의 기술”이라고 일컬었듯이, 그러한 하나의 전형으로서 그의 책이 세상에 공헌하기를 바랐다.
    [영어원문]: And yet he hoped that his book might serve the world as an example of what his scholar Herbert Luthy called "the art of being truthful."
     
    p73
     
    ▶ 번역문: 나는 몽테뉴로부터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수필 중에서, 이토록 자아의 형이상학을 심오하게 추구했으며 우리들에 대한 필연성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없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나는 몽테뉴로부터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여러 편의 수필을 읽었지만, 이토록 자아의 형이상학을 심오하게 추구하면서 그 필연성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 글은 아직 읽어 본 적이 없다.
    ▶ 번역 제안: 나는 몽테뉴에서 프로이드에 이르는 전통 중에서 이토록 심오하게 자아의 형이상학을 추구하면서도 이토록 설득력 있게 그 필요성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수필은 읽어 본 적이 없다.
    [영어원문]: I cannot think of another essay, in the tradition that reaches from Montaigne to Freud, that so profoundly searches out the metaphysics of the self, and that so persuasively urges to accept necessity:
     
    p74
     
    ▶ 번역문: 이것이 바로 미몽에서 깨어나며 또 속지 않으려는 욕구를 초월하는 지혜이다. 서양의 위대한 작가들 중 오직 셰익스피어만이 몽테뉴처럼 실제적으로 초월성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이것은 미몽에서 깨어나려는 욕구, 속지 않으려는 욕구를 초월하는 놀라운 지혜다. 서양의 위대한 작가들 중 오직 셰익스피어만이 몽테뉴처럼 초월성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번역 제안: 이것은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이나 속지 않으려는 마음을 넘어서는 지혜다. 서양의 위대한 작가들 중 오직 셰익스피어만이 몽테뉴처럼 초월성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영어원문]: This is the wisdom that goes beyond disenchantment, beyond the desire not to be deceived. Only Shakespeare, of the strongest Western writers, shows something like Montaigne's pragmatic distrust of transcendence:
    (* 논평자 코멘트: ~~ 또한 원문에 없는 ‘놀라운’이라는 표현은 이 글의 해석의 여지를 제한합니다. 즉 몽테뉴의 성찰 중 하나를 단순히 소개하는 경우와 주관적으로 크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문에 없는 하나의 단어 때문에 의미가 후자의 경우로 제한되어 버립니다. 해럴드 블룸이 각각의 문학적 천재들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긴 하지만, 이 문장들의 전후에는 그런 뉘앙스가 없으므로 독자가 두 가지의 경우를 모두 음미할 있도록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이 원문의 표현에 부합합니다. ~~)
     
     
     
    §3. John Milton
     
    p76
     
    ▶ 번역문: 우리 자신을 오르페우스의 새로운 재생이라고 보는 것은 우리의 천재성을 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밀턴을 오르페우스의 화신이라고 보는 것은 그의 천재성을 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 번역 제안: 자신을 오르페우스의 새로운 화신이라고 보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시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영어원문]: To see yourself as a fresh incarnation of Orpheus is to identify your genius with poetry itself.
    (* 논평자 코멘트: 이 문장에서의 'yourself', 'your'不定대명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밀턴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언급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 문장 자체가 밀턴의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p81
     
    ▶ 번역문: 문화전쟁에서조차 패배한 것은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니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나는 그가 문화전쟁에서까지 패배한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
    ▶ 번역 제안: 그가 문화전쟁에서까지 패배한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영어원문]: Losing even a cultural war is not good for the disposition:
    (* 논평자 코멘트: 별로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번역자는 '언제나' 해럴드 블룸의 표현을 과격하게 만들어 버리더군요. 다른 책에서라면 몰라도 이 책에서는 해럴드 블룸이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거의 보기 힘듭니다.)
     
    p82
     
    ▶ 번역문: 예수가 다시 무장을 한 지도자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을 것이다. 『실락원』에서 중요한 대목이 바로 십자가 처형 장면인데 어색하고 터무니없을 정도이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1문장 누락 후) <실낙원>에서 중요한 대목은 십자가 처형 장면이지만 내겐 너무 어색해서 터무니없게 보인다.
    ▶ 번역 제안: 이미 언급하였듯이 예수는 무장한 사령관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부분은 밀턴이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게 처리한 십자가 대속의 장면이다.
    [영어원문]: The next appearance of Christ, as armored commander, I have mentioned already. But the crucial passage, almost ludicrous in its uneasiness, is John Milton on the Crucifixion:
     
    p83
     
    ▶ 번역문: 『실락원』의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우아한 성적性的 대상물로 표현된 이브에 초점을 두며 밀턴이 이브의 강인한 주관성, 즉 그녀를 은근히 활기 넘치는(위험한) 의식을 지닌 인물로 창조했음을 외면한다.
    ▶ 번역서(출판사 수정):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실낙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우아한 성적 대상물로 표현된 이브에 초점을 맞추어 거세게 공격한다. 그들은 밀턴이 이브에게 강인한 주체성을 부여했고, 그녀를 은근히 활기 넘치는 (그리고 위험한) 의식을 지닌 인물로 창조한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 번역 제안: <실낙원>을 표면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이브가 화려한 성적 대상으로 표현된 것에만 집착하여, 밀턴이 이브를 강한 주체성과 활기 넘치는 의식을 지닌 인물로서 섬세하게 창조해 냈다는 점을 간과해 버린다.
    [영어원문]: Feminist critics of Paradise Lost sometimes tend to literalize the poem, center upon Eve's representation as a magnificent sexual object, and thus evade Milton's subtle creation of her powerful subjectivity, her lively (and dangerous) consciousness.
    (* 논평자 코멘트: 역자의 주관적 개입으로 해럴드 블룸이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즉 해럴드 블룸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실낙원>의 이브에 대하여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 그들이 거세게 공격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거세게 공격한다는 것과 그저 다소 유감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까요.)
     
     
    (기타)
     
     
     
     
     
     
     
     
  • 책 출간에 관해 | so**tes | 2011.04.17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책을 출간한 이후 그간 여러분들로부터 격려와 조언 및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영미 비평계 거장의 저서를 우리말로 읽게 되어 좋았다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 원문과 비교해 번역서의 분량이 터무니없이 적고 이와 관련 중간 중간에 누락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 그리고 일부 원문과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띤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책을 읽고 검토하시고 의견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셨을지도 모를 “불편함”에 대한 단순한 해명이라기보다 이 책을 옮기는 작업에 임했던 사람으로서 그 과정에서 있었던(그러나 그간 알려질 수 없었던 사실들을) 말씀드림으로써 그러한 불편함을 제공했으리라 생각되는 몇 가지 오해를 다소나마 완화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출간한 이후 그간 여러분들로부터 격려와 조언 및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영미 비평계 거장의 저서를 우리말로 읽게 되어 좋았다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 원문과 비교해 번역서의 분량이 터무니없이 적고 이와 관련 중간 중간에 누락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 그리고 일부 원문과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띤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책을 읽고 검토하시고 의견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셨을지도 모를 “불편함”에 대한 단순한 해명이라기보다 이 책을 옮기는 작업에 임했던 사람으로서 그 과정에서 있었던(그러나 그간 알려질 수 없었던 사실들을) 말씀드림으로써 그러한 불편함을 제공했으리라 생각되는 몇 가지 오해를 다소나마 완화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책의 번역 의뢰를 받고 거의 모든 작업이(초벌 번역을 말함) 무척이나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출판사가 애초에 요구한 마감 기한이 1년이 넘지 않았습니다(일반적으로 출판사의 데드라인 요구는 번역가가 어기기 힘들며 또한 번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이 책의 번역자를 찾고 있었던 출판사는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A씨 등 여러 번역가에게 이 책을 의뢰했지만 모두 거절 의사를 표명하여 번역자를 찾을 수 없었고, 그 와중에 제게 의뢰를 했습니다.
    당시 번역 의뢰를 처음 받고 일정을 고려해 거절한 바 있었으나 재차 요청하여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번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어려움을 발견하고 계약 후 얼마 지나고 다시 거절 의사를 밝혔으나, 나름 인문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저자의 책을 반드시 발간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간곡한 열정과 부탁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난이도와 작업에 요구되는 방대한 지식에 눌려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표현한 “자의적(arbitrary)”이라는 말은 결코 100명의 작가 선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의 다른 비평 이론서 였다면 오히려 학문적인 접근법을 택해 공부하면서 책을 옮겼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면 파악하셨듯이 수록된 100명 각자에 대한 내용의 난이도 문제와 더불어 저자가 독자들이 100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읽고 관련 일화 내지 인물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구어체 형식으로 생각의 흐름대로 썼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따라가는 것 역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번역과는 무관하게 진행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몇 가지 추가 작업이 불가피해졌습니다.
     
    1.       내용 축소에 관해
     
    내용 축소 내지 원문 누락은 저 또한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물론 책 뒤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애초에 원문 814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을 출판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출판사와의 협의에 따라 부득이 일부 내용을 담지 못했다”고 다소 간략히 밝힌 바 있지만, 이 언급은 독자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도 있는 표현임을 인정합니다. “일부 내용”이라는 말도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당시 계약에 따라 원문을 거의 모두 우리말로 옮겨 놓았고 원고를 임시로 출판사에 전달한 후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분량이 예상 외로 많아 두 권으로 출판해야 하겠지만, 출판사 사정상 한 권 분량으로 낼 계획이니 분량을 적어도 4분의 1 이상 정도를 줄여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물론 다년간 수많은 영어원서 번역서들을 출간해온 출판사가 미리 이러한 점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결국 출판사의 뜻을 받아들여 단권 출판에 맞게 광범위하고 힘든 재(再)편집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2.       추가 문장 수정 작업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나서 한참 후에 다시 출판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번역은 나름 정리가 되었으나 그래도 원문의 방대함과 난해함 등으로 인한 독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판사 쪽에서 이미 선정•섭외 했던 전문가의 윤문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출판사는 철학 등 인문과학 분야의 유명한 저자이자 번역가이며 출판사와 그 동안 번역•저술 작업을 많이 해온 N씨에게 이를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과 통화한 이후 제게 책의 출간이 알려진 그 몇 달 사이 그분이 작업한 사항들이 제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즉 그 분의 윤문 이후 저에게 별도로 수정사항이 반영된 원고를 보여주지 않은 채 출판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옮긴 이가 피드백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거치지 않고 출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 분량을 편집 특성에 맞게 줄이는 과정에서, 또한 독자를 위한 윤문과정에서 이 작업은 “번역”에서 일종의 “편역(編譯)”에 가깝게 바뀐 것인데, 이 점 역시 이 글을 이미 모두 옮긴 사람 입장에서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경기 내지 출판 현황 등을 고려하여 그 같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 출판사 측에 더욱 강한 어조로 반대의 입장을 적극 표명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지막에 저는 제 이름을 굳이 넣고 싶지 않았고, 같이 번역 작업을 도와준 이들과 공동 번역으로 나가기를 제안한 적도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편집부” 번역 내지 편집으로 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번역자의 이름을 넣기를 원했고 그 와중에 표지에는 “OOO 번역”이 아니라 “OOO 옮김”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번역이라기보다는 “편역”에 더 가깝습니다.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름 능력을 발휘해서 양심껏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간 본의 아니게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끼친 점에 대해서는 저 역시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간 난해한 인문학 서적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지적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 드리며, 또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지적하신 열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드릴 말씀은 많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자세로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며, 혹 오해가 있었던 사항들을 정리한 선에서 마치겠습니다.
    본서의 작업과정에서 출판사와의 몇 가지 합의가 불가피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저자의 훌륭한 글들을 모두 지면에 실어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음에 많은 아쉬움을 느껴왔습니다. 다시 기회가 닿으면 미비한 점들을 보완하여 완역을 통해 책 전체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원래 원문에 실었던 모든 글들을, 출판사와의 협의 하에 부득이하게 단락 내지 문장, 혹은 일부 표현에 이르기까지 수정 및 삭제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과정을 본서에서 충분히 설명 드리지 못해 독자들에게 오해 내지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 아쉽게 생각합니다. 지적을 받은 사항들을 검토해 보며, 이 모든 것들이 번역시 항상 논란이 되어 온 오역의 한계 규정 문제, 번역 외적 요인들이 번역에 미치는 영향들, 그리고 번역자와 출판사간의 관계 정립 문제 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저를 포함, 앞으로 번역자들이나 출판사가 더욱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번 계기를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앞으로 외국의 인문학 서적을 국내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작은 글이 독자들의 불편함과 오해를 다소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옮긴이>
  •        이 책의 번역은...

     

     

     

     이 책의 번역은 정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이런 책을 단 한 번도 검토하지 않은 채 출간한 [들녘]출판사의 부도덕한 상술도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책을 읽어 보지도 않고 [추천도서]로 선정한 교보문고 역시 부도덕한 공모자입니다.

     출판사측의 책임감 있는 태도를 요구합니다. 책임감 있는 새 번역자에 의한 재번역과 기존 구입자에 대한 리콜을 실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만약 썩은 음식을 팔았다면 당연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제대로 된 음식으로 교환을 해 주거나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 참을 수 없는 오역의 풍요로움과 부도덕한 공모 -2-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p56

    * 첫 단락과 둘 째 단락 사이 6줄 누락. 이 중 한 문장이 맨 뒷부분의 한 문장과 중복되긴 하지만, 맨 뒤의 넓은 여백을 미루어 보아 분량상의 이유로 누락된 부분이 있다는 역자의 변명은 믿기 어렵습니다.


    * 마지막 단락의 내용 중 4줄 누락. 이 부분은 'quijote'와 'quixote'의 번역어 선택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번역어를 선호한다는 내용으로, 누락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 부분입니다.


    p57

    * 문학 비평가인 해리 레빈은 30년 전 “문학적 영향력을 다룬 책, 혹은 문학적 영향력에 반대하는 책은 모두 지대한 문학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역설했다.

    --> 문학 비평가인 해리 레빈은 30년 전 “문학적 영향력을 다룬 책이건 혹은 문학적 영향력에 반대하는 책이건 간에 모두 광범위하고 결정적인 문학적 영향력을 누렸을 것이다”고 역설했다.

    (원문) Harry Levin, thirty years ago, remarked on the paradox "that a book about literary influence, and indeed against it, should have enjoyed so wide and decisive a literary influence."

    (- 역자는 영향력을 받았다는 내용을 행사했다는 것으로 반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에서 ‘should have +p.p’는 과거에 일어날 것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에 대한 예상의 의미로 해석해야 옳습니다. 이런 어이없는 오역이 이 책의 실제 번역자에 대한 의심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 <돈키호테>는 말 그대로 글 읽기에 미쳐버린 한 영웅을 다루고 있다.

    --> <돈키호테>를 오로지 표면적 의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그저 글 읽기에 미쳐버린 한 영웅을 다룬 책일 뿐이다.

    (원문) Don Quixote is a book about a hero crazed by reading, if we take it at all literally.

    (- 'Don Quixote'라는 이름 자체에 ‘글 읽기에 미친 영웅’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p58

    * 공작과 공작부인이 사는 쾌락의 궁전에 머물고 있었는데,

    --> 공작과 공작부인이 사는 끔찍한 궁전에 머물고 있었는데,

    (원문) after their long sojourn in the sadistic court of the Duke and the Duchess,

    (- 사실 반어적 의미에서 ‘쾌락의 궁전’이라는 명칭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궁전에서의 초반 생활에서는 정말 그렇게 여겨질 만도 했으니까요. 다만 이 부분에서 공작과 공작부인의 궁전에서 있었던 일들이 극히 제한적으로만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쾌락의 궁전’이란 명칭은 <돈키호테>를 읽어 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쾌락의 궁전’이라고 번역할 경우, 간단한 해설이라도 덧붙여 오해의 소지를 없애야 합니다.)


    * 우리 눈에는 천한 농부의 딸 알돈사 로렌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마법에 걸린 둘시네아가 만일 사악한 마술에서 벗어난다면, 돈키호테는 그가 추구하는 문제의 근원을 알아내려는 지난한 노력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 우리 눈에는 천한 농부의 딸 알돈사 로렌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마법에 걸린 둘시네아가 만일 사악한 마술에서 벗어난다면, 돈키호테는 그의 문제투성이인 모험의 근원(적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원문) ~~ might also release Don Quixote from his complex realization of the problematical basis of his quest.

    (- 바로 앞 문장이 <돈키호테> 2권 58장에서 “~~ 내 사랑 둘시네아 델 토보소가 풀려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고양되어 내 정신력도 더 강해질 거야. 그러면 지금 내가 가는 길보다 더 나은 길로 스스로를 인도할 수 있을 텐데”는 구절의 인용문입니다. 여느 기사의 원정이 그렇듯 돈키호테의 모험도 근원적으로는 정신적인 것인 것임을 말하는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가 추구하는 문제의 근원을 알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표현대로 ‘실현해야 한다는 강박증 또는 콤플렉스’가 적절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 quest : (중세 기사의) 모험 여행, 원정 )


    p59

    * 세무원이 되려고 했으나 계좌에 연체금이 남아 있다는 죄목으로 투옥된다. 이곳에서 그는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했다.

    --> 두 번째 투옥되었을 때 그는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했다.

    (원문) Don Quixote was begun during a second imprisonment.

    (- 세르반테스는 연체금이 남아 있다는 죄목으로 여러 번 투옥되었습니다. 해럴드 블룸은 그 중에서 두 번째 투옥되었을 때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역자는 이를 임의로 무시해 버렸습니다.)


    p60

    * 그러나 1613년부터 1616년에 사망할 때까지 레모스 백작의 후원으로 비교적 평온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 1613년부터 1616년에 사망할 때까지 뒤늦게나마 레모스 백작의 후원을 받아 비교적 평온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

    (원문) Only the belated patronage of the Count of Lemos, from 1613 until Cervantes's death in 1616, allowed a relative comfort at the end.


    * 세르반테스는 한없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자신이 <돈키호테>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고백했다.

    --> 세르반테스는 한없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자신이 <돈키호테>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었다.

    (원문) Cervantes, whose life was endlessly sorrowful and painful, knew that he had triumped in Don Quixote, and his awareness is very poignant: ~~


    p61

    * 세르반테스는 소설 전반에 걸쳐 돈키호테 외의 다른 두 주인공인 산초 판사와 아이러니한 화자보다 점점 더 돈키호테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는 마치 개개의 독자와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 세르반테스는 소설의 다른 두 주역인 산초 판사와 아이러니한 화자보다 돈키호테와 더욱 자신을 동일시할 개개의 독자에게 소설 전체에 걸쳐 직접적으로 말을 건다.

    (원문) Cervantes throughout directly addresses the solitary reader, who increasingly identifies herself or himself with the Knight, rather than with the two other protagonists, Sancho Panza and the ironic narrator.

    (- 터무니없는 번역입니다. 하나의 문장을 잘 못 해석하고 쓸 데 없이 두 문장으로 나누어 앞 뒤 문장과 전혀 연결이 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① 여기에서는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키호테와 자신을 동일시할 독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② 또한 소설 전반에 걸쳐서 돈키호테와 동일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소설 전반에 걸쳐 개개의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다는 것으로 역자는 무성의하게 수식관계를 아무 데나 가져다 붙여 버렸습니다. ③ 산초 판사는 그렇더라도 화자를 주인공이라고 한 것은 번역어를 잘못 선택한 것입니다.)


    *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각각 돈키호테와 햄릿 왕자를 통해 부정형의 의식을 극의 순서에 따라 그러모으는 기적을 선보인다.

    -->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각각 돈키호테와 폴스타프, 그리고 햄릿 왕자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의식을 극의 순서에 따라 불러 모으는 기막힌 연출을 한다.

    (원문) Cervantes and Shakespeare each perform the miracle of bringing together an infinite consciousness -the two Knights and the Prince- with the order of play.

    (- 바로 앞의 두 문장에 이 문장의 번역을 위한 모든 실마리가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폴스타프를 빼 먹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형의 의식’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번역을 하였습니다. 바로 앞의 두 문장에서 이미 해럴드 블룸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셰익스피어의 <헨리4세>와 <햄릿>은 읽는 독자들의 수만큼, 읽을 때마다, 연기하는 배우들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고 말하면서 그 중심적 인물로 돈키호테와 폴스타프, 그리고 햄릿을 언급하였습니다. 이런 번역을 보면, 원문은 읽지도 않은 채 일단 번역기부터 돌린 후 대충 말이 되게끔 고쳐 쓰기만 했다는 의혹이 강렬하게 일어납니다.)


    p62

    * 햄릿은 덴마크 군대가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영국이 자신의 나라를 공격할 거라는 말을 듣게 되고.

    --> 햄릿은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덴마크 군대가 영국을 공격할 거라는 말을 듣게 되고.

    (원문) he hears that the Danish force is to invade England for non-payment of tributes.

    (- 덴마크 군대가 영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역자는 반대로 영국이 덴마크를 공격할 것이라고 오역했습니다.)


    * 폴스타프와 일행이 그 뒤를 따르지만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제거될 거요.

    --> 폴스타프와 일행이 그 뒤를 따르지만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버림받을 거요.

    (원문) Falstaff and his crew follow but are, of course, cast off at the end.

    (- 'cast off'를 잘못 번역하였습니다. 이 부분의 내용이 <햄릿>과 <헨리4세>를 섞어 놓은 이야기라는 것을 고려해도 폴스타프와 그 일행이 제거될 것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p63

    * 그런 돈키호테를 무분별하다고 치부하다니!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 그런 돈키호테가 무분별하기는 불가능하다.

    (원문) ~ and an reflective Quixote is an impossibility.

    (- 오역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말하는 해럴드 블룸의 표현방식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p64

    *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존의 관습을 극복하고 새로운 행동양식에 맞춰진다.

    -->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존의 관습을 극복하고 새로운 행동양식을 창조했다.

    (원문) Each movement he makes has first had to overcome custom and invent a new kind of gesture.

    (- 아마도 역자는 새로운 행동양식에 맞춘다는 것과 스스로 새로운 행동양식을 창조하는 것을 같은 의미로 착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는 새로운 유행을 ‘따라 간다’는 소극적 의미로 해석되어 원문의 본래 뜻을 왜곡시킵니다.)


    * 그러한 삶은 끊임없는 고통으로, 습관에 자신을 내맡겼거나 현실 문제에 사로잡힌 자아로부터 끊임없이 그 일부를 떼어내는 과정이다.

    --> 그러한 삶은 끊임없는 고통으로, 습관에 내맡겼거나 물질에 사로잡힌 부분을 자신으로부터 부단히 떼어내는 과정이다.

    (원문) Such a life is a perpetual suffering, a constant tearing oneself away from that part of oneself which is given over to habit and is a prisoner of matter.

    (- 습관에 내맡겼거나 물질에 사로잡힌 자아 중에서 그 일부만을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 중 습관에 내맡겼거나 물질에 사로잡힌 그 모든 부분을 떼어낸다는 의미입니다. 원문의 뜻을 왜곡시킨 명백한 오역입니다.)


    p65

    * 세르반테스가 현실을 통찰하는 해석을 통해 ~~

    --> 세르반테스의 현실에 대한 통찰을 통해 ~~

    (원문) ~~ throughout Cervantes's vision of reality.


    * 돈키호테는 열심히 진리를 외치지만, 잠시 지하세계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 돈키호테는 열심히 진실을 외치지만, 그가 동굴 아래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그 자신의 이야기를 정말로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원문) Though the Knight is a fervent truth-teller, it is unclear whether he believes his own account of his sojourn in the world below.

    (- 다른 오역들과 마찬가지로 번역자의 한량없는 불성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명백한 오역입니다. 돈키호테가 외치는 것은 동굴 속에서의 모험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주장입니다. 자신이 동굴 아래에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면서 동굴 아래에서의 모험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다른 많은 오역들과 마찬가지로, 원문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기초적인 사실 확인이나 조사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이런 번역은 읽는 이로 하여금 화가 치밀도록 만듭니다. 그것은 이 책의 번역자가 「번역을 마치고 - 짙고 농밀한 고전의 향기」에서 너무나 태연하게 거짓말을 쏟아 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p66

    * 카프카가 쓴 우화 <산초 판사에 관한 진실>을 읽어보면 산초가 기사를 소재로 한 로맨스 소설을 너무 지독히 읽은 결과 그의 개인적 악의 화신인 돈키호테를 들뜨게 만들었으며, 결국 돈키호테는 편력 기사로 길을 떠나게 된다고 나와 있다.

    --> 카프카의 우화 <산초 판사에 관한 진실>에서는 산초가 기사소설을 과도하게 읽은 탓에 그의 개인적 화신인 돈키호테를 들뜨게 만들었고, 그 결과 돈키호테는 기사편력을 시작한 것으로 나온다.

    (원문) "The Truth about Sancho Panza," a Kafkan parable, tells us that Sancho was the obsessive reader of chivalric romances, which so diverted his personal devil, Don Quixote, that Don Quixote went forth in knight-errantry.

    (- 여기에서 'devil'은 '악의 화신'이 아니라 '투지의 화신'으로 해석하는 것이 내용에 부합합니다. 돈키호테를 악의 화신으로 볼 수 없고, 그런 견해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romance : 중세 기사 이야기 [보통 운문이며 로망스어로 쓴 이야기]

     - devil : [악덕 또는 투지 따위의] 화신 )


    * 산초는 자유분방하고 사려 깊게 그를 따라 다니며 자신의 나날을 즐긴다.

    --> 산초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침착하게 그의 화신을 따라 다니며 자신의 나날을 즐긴다.

    (원문) Sancho, freely and philosophically, followed his devil and was entertained all his days.


    * 세르반테스는 ~ ~ ~ 끊임없는 불운의 연속 가운데 삶을 마쳤지만, ~~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 세르반테스는 ~ ~ ~ 끊임없이 불운했지만, ~~, ~~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원문) Poor Cervantes - ~ ~ ~, endless unfortunate -has transformed into a world figure, ~~.

    (- 원서에 없는 표현을 덧붙여 오해의 소지를 두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삶을 마치기 전의 몇 년은 비교적 평온하였다고 밝혔었기 있기 때문입니다.)




    §3. 미셸 드 몽테뉴


    p70

    * 소크라테스는 모든 걱정이나 근심을 초월한다.

    --> 소크라테스는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초월한다.

    (원문) Socrates is beyond anxiety, or fear of any kind.

    (- ‘걱정’과 ‘근심’은 동의어입니다.)


    p71

    * 그는 자기의 삶이 자신이 아니라 전 세계에 빚지고 있다고 믿었다.

    --> 그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의 전례로서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의 삶을 살았다.

    (원문) He owed his life not to himself, but to the world as an example.

    (- 이 글은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평가 중 한 문장입니다. 따라서 역자가 원문에 없는 ‘믿었다’는 표현을 덧붙인 것은 오역입니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그렇게 믿었다는 것이 아니라, 몽테뉴가 소크라테스를 그렇게 평가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 몽테뉴를 연구한 허버트 루시가 그를 일러 ‘진실하게 사는 기술’의 전형이라고 일컬었듯이 몽테뉴는 그의 책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그래도 그는 그의 연구자인 허버트 루시가 “진실됨의 기술”이라고 일컬었듯이, 그러한 하나의 전형으로서 그의 책이 세상에 공헌하기를 바랐다.

    (원문) And yet he hoped that his book might serve the world as an example of what his scholar Herbert Luthy called "the art of being truthful."


    * <수상록>을 쓴 몽테뉴는 빈틈없고 신중하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즐거운 충격을 안겨준다. 그러나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에서 보면 화가 치밀어오를 것이다.

    --> <수상록>을 쓴 몽테뉴는 빈틈없고 신중하면서도 우리에게 즐거운 충격을 안겨주지만,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별로 환대받지 못한다.

    (원문) The author of the Essays is canny and modest, but also amiably shocking and is not always popular with our current feminists.

    (- 원문의 표현이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라고 할 정도로 과격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문장과 관련된 인용문이 가장 노골적인 부분의 내용임에도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에서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의 것은 아니라고 여겨 입니다. 다만 몽테뉴의 표현이 여성에 대해 다소 단정적인 부분이 있어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을 뿐, <수상록>의 어느 부분에도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할 정도의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정숙의 도덕을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남성들의 횡포와 여성의 종속성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립니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조사를 했다고 밝혔지만, 그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 1문장 누락

    --> 여기에서 몽테뉴의 가장 노골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문장을 보자.

    (원문) Here is a cento of passage that give the flavor of Montaigne at his most candid:


    p72

    * 누군가가 내게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적절하게 시간을 붙잡을 줄 아는 능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면, 나는 적시를 포착할 줄 아는 것이라고 답하였을 것이다.

    (원문) If someone asked me the first thing in love, I would answer that it is knowing how to seize the right time:

    (- ‘가장 적절하게 시간을 붙잡을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가장 적절한 시기를 포착할 줄 아는 것’이 옳은 번역입니다. 전자와 후자의 표현은 명백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이 순간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때이기 때문이다.

    -->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핵심적인 것이다.

    (원문) it is a point that can accomplish everything.

    (- 적시를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사항이라는 의미의 문장입니다. ‘~ ~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적절하게 시간을 붙잡을 줄 아는 능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때이기 때문이다’는 역자의 번역은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p73

    * “완전하지도 않은, 단편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만족하면서도 전혀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이게 바로 몽테뉴의 놀라운 점이 아닌가?”

    -->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것으로 스스로를 만족시키면서도 전혀 비통해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아마도 몽테뉴에겐 치욕일 것이다.”

    (원문) "this is perhaps the scandal of Montaigne: to content himself with the imperfect and the fragmentary, and yet to be so wholly untragic."

    (- ① 완전한 오역이지만, 그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문장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문장입니다. 번역기를 돌린 후 제대로 문장을 다듬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이 책의 오역을 더욱 치명적으로 만듭니다. 번역서의 문장을 읽는 것이 마치 모래를 씹는 것처럼 껄끄럽게 만드니까요. 때문에 저와 같은 영어 초보도 차라리 사전을 뒤져 가며 원서를 직접 읽는 것이 더 쉽게 느껴졌습니다.

    - ② 번역자는 이 문장을 전혀 반대의 의미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이 책의 표지 뒷면에 적혀 있는 번역자의 경력을 수십 번 읽어 봤으나, 도저히 영자신문 기자에 박사과정의 대학원 겸임교수가 번역한 것으로 믿어 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실체 또는 배후에 진짜 번역자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의혹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갑니다.)


    * 몽테뉴는 자기 자신을 터득하는 방법을 따로 갖지 않았다.

    --> [문학비평을 하는] 내가 문학비평을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 말고는 방법론이란 것이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믿는 것처럼(one hopes at its most intelligent), [자기성찰을 위해 많은 세월을 투자했던] 몽테뉴 역시 자기인식을 위한 방법론을 따로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문) Just as I believe there can be no method for literary criticism except oneself (one hopes at its most intelligent), so Montaigne has no method for self-knowledge.

    (- 앞부분에서 ‘몽테뉴는 심원한 자기인식에 따른 자기수용의 지혜를 풍부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보편성의 천재가 될 수 있었다’고 언급한 이후부터 계속되는 내용 역시 자기성찰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문학비평을 하는 해럴드 블룸 자신과 자기성찰을 추구한 몽테뉴를 비교하여 서로가 각자의 분야에 대해 특별한 체계적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괄호 안의 'one hopes at its most intelligent'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intelligent' 뒤에는 아무런 명사도 딸려 있지 않습니다.

    역자는 마지막 'so' 이후 부분만을 번역해 놓았으나, ‘자신을 터득한다’는 표현은 이해하기에 너무 껄끄러운 표현입니다.)


    * 그는 이웃을 보듯이 자기 스스로를 보았으며,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공직까지 거절했다.

    --> 그는 이웃을 보듯이 자신을 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한 객관적 탐구를 위해 성공과 명예를 가져다 줄 관직도 거절했다.

    (원문) He tried to see himself as he would a neighbor, and set aside his successful and honorable public career, in order to get at himself.


    * (1+1/2문장 누락 후) 몽테뉴는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 반드시 가장 어두운 면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 그러나 “나는 먼지(진흙) 같은 달빛을 지워버렸어요”고 노래하는 월러스 스티븐스의 지체 높은 ‘알프레드 우루과이 부인’과 달리, 놀랍게도 그는 환원주의자가 아니다. 낭만적이지 않은 몽테뉴의 성에 대한 견해는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에 달빛 같은 것은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 반드시 그의 가장 나쁜 면을 알아야 한다고 믿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원문) But he is wonderfully not a reductionist, unlike Wallace Steven's grande dame, "Mrs. Alfred Uruguay," who chants, "I have wiped away moonlight like mud." Montaigne, no romantic, gives you no moonlight, since his view of sex is so pragmatic, but he certainly does not believe that to know what he is really like, you must know the worst of him.

    (- mud : 진흙, 진창 <비유적> 하찮은 것, 찌꺼기 )


    * 몽테뉴는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기사처럼 차분하게 자기를 진정시키는 사람이었다. (1/2문장 누락)

    --> 그는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에 나오는 기사처럼 평정을 지닌 사람이다. 왜냐 하면, 우리는 항상 스스로 하지도 않은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몽테뉴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원문) He bears himself with equanimity, like Chaucer's Knight in the Canterbury Tales, because no one knows better than Montaigne that we are always keeping appointments we never made.


    * 약 40쪽에 달하는 <체험에 관하여>는 몽테뉴와 그의 인간 조건을 탐구한다.

    --> 약 40쪽에 달하는 <체험에 관하여>는 몽테뉴와 인간의 조건을 탐구한다.

    (원문) "Of Experience," in its about forty pages, surveys both Montaigne's and the human condition.

    (- ‘그(몽테뉴)의 인간 조건’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의 조건’을 의미합니다.)


    * 나는 몽테뉴로부터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여러 편의 수필을 읽었지만, 이토록 자아의 형이상학을 심오하게 추구하면서 그 필연성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 글은 아직 읽어 본 적이 없다.

    --> 나는 몽테뉴에서 프로이드에 이르는 전통 중에서 이토록 심오하게 자아의 형이상학을 추구하면서도 이토록 설득력 있게 그 필요성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수필은 읽어 본 적이 없다.

    (원문) I cannot think of another essay, in the tradition that reaches from Montaigne to Freud, that so profoundly searches out the metaphysics of the self, and that so persuasively urges to accept necessity:


    * ~~ 정도에서 벗어나 죽어간다고 생각하면서 ~~

    --> ~~ 그들에게 주어진 생에서 벗어나 죽어간다고 생각하면서 ~~

    (원문) ~~ thinking that they were on their way out and dying.


    p74

    * 이것은 미몽에서 깨어나려는 욕구, 속지 않으려는 욕구를 초월하는 놀라운 지혜다. 서양의 위대한 작가들 중 오직 셰익스피어만이 몽테뉴처럼 초월성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이것은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이나 속지 않으려는 마음을 넘어서는 지혜다. 서양의 위대한 작가들 중 오직 셰익스피어만이 몽테뉴처럼 초월성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원문) This is the wisdom that goes beyond disenchantment, beyond the desire not to be deceived. Only Shakespeare, of the strongest Western writers, shows something like Montaigne's pragmatic distrust of transcendence:

    (- ① ‘~~초월하는 지혜다. ~~ 몽테뉴처럼 초월성을 신뢰하지 않는 ~~’ 이런 번역은 초월성에 대한 욕망을 초월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긴 하지만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② 또한 원문에 없는 ‘놀라운’이라는 표현은 이 글의 해석의 여지를 제한합니다. 즉 몽테뉴의 성찰 중 하나를 단순히 소개하는 경우와 주관적으로 크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문에 없는 하나의 단어 때문에 의미가 후자의 경우로 제한되어 버립니다. 해럴드 블룸이 각각의 문학적 천재들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긴 하지만, 이 문장들의 전후에는 그런 뉘앙스가 없으므로 독자가 두 가지의 경우를 모두 음미할 있도록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이 원문의 표현에 부합합니다.

    ③ 더구나 Harold Bloom은 자신이 초월주의로 특징되는 Emersonian임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글 다음 부분에서는 몽테뉴를 선구자로 하는 에머슨도 결국 그의 초월성에 대한 회의적 입장에 한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거부한다는 내용이 언급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역자의 번역은 본래의 의미를 훼손한 오역으로 판단됩니다.)


    p75

    * <체험>에서 에머슨은 그가 몽테뉴식 회의론이라고 여긴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듯하지만, <체험에 관하여>에서 읽는 몽테뉴는 도널드 프레임이 말하듯이 바로 ‘전인(全人)’이다.

    --> 에머슨은 그가 몽테뉴의 회의론으로 받아들인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뜻으로 말하지만, <체험에 관하여>에서 읽히는 몽테뉴는 도널드 프레임이 말하는 바로 그 ‘전인(全人)’이다.

    (원문) Emerson means his own doubts and negations of what he takes to be Montaigne's skepticism, but the Montaigne we read in is what Donald Frame calls "the Whole Man."

    (- ① ‘몽테뉴식 회의론’이 아니라, ‘몽테뉴의 회의론’입니다. 즉 ‘초월성, 학문적 진리, 이성 등에 대한 몽테뉴의 회의적 견해’를 말하는 것이지, 회의론에 대한 몽테뉴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② ‘읽는’ --> ‘읽히는’ )




    §3. John Milton


    p76

    * 트라키아의 사나운 바쿠스 사제들이 오르페우스의 몸을 찢는 스파라그모스(바쿠스 축제 혹은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사제들이 제물을 산 채로 찢는 의식-옮긴이)는 밀턴의 작품에 병적인 불안감을 던져준다.

    --> 광란에 사로잡힌 트라키아의 바쿠스 여사제들이 오르페우스의 몸을 찢는 스파라그모스는 밀턴의 작품에서 과도한 불안을 나타낸다.

    (원문) The Sparagmos, the ripping apart of Orpheus by the wild Bacchantes of Thrace, is an obsessive anxiety in Milton's work..

    (-① Bacchantes는 주신 바쿠스의 ‘여사제들’입니다.

      ② 밀턴의 <실낙원>에서 언급되는 ‘스파라그모스’는 상징제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페우스가 몸이 찢겨 죽은 사건 그 자체를 말합니다. 따라서 스파라그모스에 대한 옮긴이의 설명은 독자를 오독으로 유도합니다.)


    * 오르페우스의 일체화는 두려움에 처해 있을 때보다 자신감이 넘칠 때 더 강해지는데, 이는 그의 어머니가 다름 아닌 영웅적 서사시의 뮤즈 칼리오페였기 때문이다.

    --> 그래도 오르페우스와의 동일시는 두려움 속에 있을 때보다 자신감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데, 그 이유는 영웅적 서사시의 뮤즈인 칼리오페가 바로 오르페우스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원문) And yet the Orphic identification is stronger in legitimate pride than it is in fear, for the Muse of heroic epic, Calliope, was the mother of Orpheus.

    (- 책에서 인용된 실낙원의 7편에서, 밀턴은 왕정복고 후에 겪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트라키아의 Bacchantes에게 찢겨 죽은 오르페우스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역자는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여 이 문장의 주어를 오르페우스로 오해하였습니다.)


    * 밀턴을 오르페우스의 화신이라고 보는 것은 그의 천재성을 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 자신을 오르페우스의 새로운 화신이라고 보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시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원문) To see yourself as a fresh incarnation of Orpheus is to identify your genius with poetry itself.

    (- 이 문장에서의 'yourself', 'your'은 不定대명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밀턴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언급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 문장 자체가 밀턴의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p77

    * 밀턴은 <실낙원> 9편에 나오는 기원문에서 자신의 수호성녀인 뮤즈에게 ‘답변할 수 있는 양식’을 달락 기원한다. 밀턴에게 ‘답변할 수 있는’이라는 말은 그가 구상하고 있는 거대한 주제에 필적하거나 부합할 수 있는 양식을 의미했지만, 그의 천재성과 신에 대한 매우 개인적이 심상에 응답할 수 있는 양식을 의미하기도 했다.

    --> 밀턴은 타락의 장(障)인 <실낙원> 9편의 기원문에서 자신의 수호성녀인 뮤즈에게 ‘걸맞은 양식’을 달라고 기원한다. 밀턴에게 ‘걸맞은’이라는 말은 그가 구상하고 있는 거대한 주제에 필적하거나 부합할 수 있는 양식을 의미하면서도 또한, 그의 재능과 신에 대한 그의 개인적 심상에 알맞은 양식을 의미하기도 했다.

    (원문) In the invocation to book 9 of Paradise Lost, the book of the Fall, Milton asks his celestial patroness, the Muse, for "answerable style." By "answerable" he primarily meant a style equal or corresponding to his great subject, but he meant also a style answerable both to his own genius and his highly individual conception of God.

    (- 이 문장의 바로 다음에 설명된 'answerable'은 ‘필적하거나 부합하는’의 의미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역자 역시 그렇게 해석하면서도 ‘답변할 수 있는’이라고 번역한 것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 1638년 유럽 여행을 떠난 밀턴은 ~~

    --> 1638년 5월 유럽 여행을 떠난 밀턴은 ~~

    (원문) In May 1638, Milton left for his grand tour of the Continent: ~~


    p79

    * 사실 이 세 명의 시인들은 마치 하나의 종파에 소속된 작가와 같으면서도 각자 나름대로 이단적이어서 그들이 과연 기독교를 신앙으로 여겼는지조차 의심스럽다.

    --> 이들 세 명의 시인들은 하나의 갈래를 이루면서도, 또한 과연 그들을 기독교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각자가 독창적으로 이단적이다.

    (원문) Each of the three is a sect of one, each so original a heretic as to call their Christianity into considerable question.

    (- 그들이 기독교 신앙의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고 ‘독창적’인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이지, 그들이 기독교를 신앙으로 여겼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내용은 원문에서 찾을 수도 없고 사실과도 배치됩니다.)


    * 그는 신의 창조설을 믿지 않았고, ~~

    --> 그는 ‘무(無)로부터의 창조설’을 믿지 않았고, ~~

    (원문) : rejection of Creation out of nothing; ~~

    (- 밀턴이 히브리 사유체계인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설’을 믿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책의 실제 역자는 박사과정 중의 겸임교수가 아니라, 독서경험이 거의 없는 학부생일 것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떠나질 않습니다.)


    * 더 확실한 것은 밀턴이 신체와 영혼을 엄격히 구분하는 성 바울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원론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히 이단적이다. 과격한 일원론자인 밀턴은 적어도 네 가지 이단을 수용했다. 그는 ‘무(無)로부터의 창조설’(역자-신의 창조설)을 믿지 않았고, 영혼과 신체가 같이 사멸해 다시 함께 부활한다는 설(역자-임종설)을 믿었다. ~~

    (- 이 부분은 역자의 오역으로 생각했으나, ‘신의 창조설’을 제외하고 오역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해럴드 블룸의 오해가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왜냐 하면, 분명히 해럴드 블룸은 밀턴이 성 바울의 이원론을 거부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밀턴이 부인한 네 가지 이단 중에서 영혼과 신체가 함께 사멸했다가 다시 함께 부활한다는 것은 바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서신에서 말하는 내용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즉 고린도전서 15장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바울이 이원론자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우리나라의 ‘몸’과 ‘마음’이란 단어가 원래는 하나의 단어였듯이, 히브리어에도 ‘영’과 ‘육’을 구분하는 단어가 없었고 이를 모두 아우르는 'nephesh'라는 표현만 있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 사유체계가 일원론에 기초하기 때문인데, 성경의 사유체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해럴드 블룸은 바울이 이러한 기독교를 이원론적, 분석적 사유의 전통을 가지는 헬라적 관점에서 오독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이 영과 육을 따로 서술하는 분석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바울은 영과 육이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다는 견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구교가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다신(多神)숭배에 익숙한 중국인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신(God)’이라는 용어 대신 ‘천부(天父)’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은 전략입니다. 따라서 해럴드 블룸의 바울에 대한 견해와 일원론을 이단적이라고 보는 견해는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의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이원론에 찌들어 있는 비성경적 기독교문화가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


    p80

    * 밀턴의 재능과 다작의 능력은 대단하고 중요하지만, 나는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는 다이몬적인 밀턴의 분신, 즉 사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더 흥미롭다.

    --> (<실낙원>에서 느껴지는) 그의 힘과 풍부한 표현력은 대단하고 중요하지만, 나는 특별히 비평가들에 의해 폄하된 다이몬적 분신, 즉 사탄에 대한 우리(독자)의 판단에 관심이 있다.

    (원문) His power and fecundity are overwhelming and primary, but I am particularly interested in our judgement of his critically maligned, daemonic alter ego, Satan.


    * C.S.루이스와 상충하겠지만(루이스는 매일 아침 사탄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실낙원>을 읽어야한다고 충고했다.-옮긴이), 이 시를 읽기 전에 아침부터 사탄을 증오하지는 말라고 권하고 싶다.(이후 7줄 누락)  (읽어야한다고 --> 읽어야 한다고)

    (- 옮긴이의 해설은 이 문장에서 이 시를 읽기도 전에 아침부터 사탄을 증오하지 말라는 해럴드 블룸의 표현에서 충분히 추론할 수 있는 것이기에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역자는 아침부터 사탄을 증오하지 말라는 해럴드 블룸의 표현이 ‘매일 아침 사탄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실낙원>을 읽어야한다’는 C.S.루이스의 표현으로부터 유래한 것처럼 해설을 붙였는데,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C.S.루이스가 어디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그 출처를 명시하지 않아, 신뢰가 가지 않는 역자의 번역에 덧붙여 이러한 보충설명까지도 믿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문장의 앞부분에서 해럴드 블룸이 언급한 C.S.루이스의 견해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가 그 출처인데, 일단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는 ‘매일 아침 사탄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실낙원>을 읽어야 한다’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밀턴의 <실낙원>이나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은 작품에서의 사탄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문학적 상징으로서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작품을 읽으면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의 경고는 있습니다. 해럴드 블룸은 이런 경고를 비롯하여 C.S.루이스의 전체적인 견해를 미루어 작품을 읽기도 전에 그 작품 속의 사탄을 증오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이 C.S.루이스의 입장에서는 반한다고 여기는 것이지, ‘아침부터 사탄을 증오하지 말라’는 표현 자체는 해럴드 블룸 자신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C.S.루이스의 작품을 모두 찾아보지 않은 채 내린 추측일 뿐입니다. 실제로 다른 작품 어딘가에 그런 표현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신뢰할 수 없는 이 책의 역자가 그 출처마저 밝히지 않은 탓에, 이 부분의 보충설명을 마치 자료조사라도 한 것처럼 속임수로 급조해 낸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p81

    * 밀턴이 제아무리 용감하게 저항했어도 눈이 멀고, 감옥에 갇히고, 책은 소각되었으며, 그의 적수이자 클래런던의 백작이었던 베리언까지 끼어들어 외교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권고한다.

    --> 밀턴이 아무리 용감했어도, 그의 책이 불에 타는 동안 눈이 먼 채 감옥에 갇혔던 것은 그에게 혹독한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악마 벨리알과 같은 클래런던 백작까지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밀턴을 구하도록 중재해야 했을 것이다.

    (원문) It also had to be an ordeal, courageous though Milton was, for a blind man to be locked up while his books were burned, and his enemy Belial, or the Earl of Clarendon, probably had to intercede, urging that Milton be spared out of diplomatic expediency.

    (- 역자는 ‘클래런던의 백작이었던 베리언’이라고 번역하였으나, 원문에는 ‘베리언’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도 없고, 실제 클래런던 백작의 이름이 ‘베리언’도 아니며, 클래런던 백작이 ‘베리언’으로 불렸던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베리언’은 역자가 자신의 비양심적인 번역에 더하여 악의적으로 오역을 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당시의 클래런던 백작인 'Edward Hyde'는 처음에는 찰스1세에 반대하는 의회파(후에 공화파)의 입장에 있었으나 후에 찰스1세의 조언자 역할을 하며 국왕의 편에서 일하게 됩니다. 때문에 끝까지 왕당파에 반대했던 밀턴에게는 그런 클래런던 백작이 ‘벨리알’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클래런던 백작은 왕당파의 일원으로 있으면서도 의회파(공화파)에 대해 일관되게 온건한 태도를 취하였는데, 특히 왕정복고 후 대법관으로 있으면서 왕당파의 보복으로부터 공화파 인사들 중 상당수를 구해내는 사면령까지 내립니다. 그래서 해럴드 블룸은 찰스1세의 처형을 적극 지지했던 밀턴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클래런던 백작의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왕당파의 인사들은 물론 청교도 혁명으로 부왕을 잃은 찰스2세조차 밀턴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의 책이 소각되고 행정상의 실수로 짧은 기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왕당파의 밀턴에 대한 복수심은 매우 소극적인 것이었습니다.)


    * 나는 그가 문화전쟁에서까지 패배한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

    --> 그가 문화전쟁에서까지 패배한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원문) Losing even a cultural war is not good for the disposition:

    (- 별로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번역자는 '언제나' 해럴드 블룸의 표현을 과격하게 만들어 버리더군요. 다른 책에서라면 몰라도 이 책에서는 해럴드 블룸이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거의 보기 힘듭니다.)


    p82

    * 젊은 시절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승리를 거두었던 때를 회상하면서 “언젠가 높은 가락으로 노래하고 찬양하며 신에게 헌납하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찬송가와 할렐루야 성가를 듣는다.

    --> 젊은 시절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승리를 거두었던 때를 회상하면서 밀턴은 “언젠가 새롭고 높은 선율로 노래하고 (승리를) 축하하며 신에게 헌납하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성자들의 할렐루야 성가를 말했다.

    (원문) Contemplating, when young, a Puritan triumph in England, Milton said of the hymns and hallelujahs of the saints, "some one may perhaps be heard offering at high strains in new and lofty measures to sing and celebrate."

    (- <실낙원>에서 밀턴이 말하는 부분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문장에서 밀턴은 말하는 주체이지 듣는 주체가 아닙니다.)


    * 아마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를 중심으로 한 켈트족의 전설이거나, 나라를 되찾은 기쁨을 노래한 스펜서의 로맨스였을 것이다.

    --> 그것은 아마도 영국의 문제에 대하여 나라를 되찾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스펜서의 소설일 것이다.

    (원문) it would have been a Spenserian romance on the Matter of Britain, raised to the ecstasy of a redeemed nation.

    (- 원문의 내용에 충실하기만 해도 이런 오역은 만들어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서 왕 전설이 켈트족의 전설에서 유래하였다는 과거의 학설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떠나서 이 문장에서 말하는 것은 켈트족의 전설이 아니라 스펜서:Edmund Spenser의 소설 [The Faerie Queen]입니다.)


    * (1문장 누락 후) <실낙원>에서 중요한 대목은 십자가 처형 장면이지만 내겐 너무 어색해서 터무니없게 보인다.

    --> 이미 언급하였듯이 예수는 무장한 사령관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부분은 밀턴이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게 처리한 십자가 대속의 장면이다. 

    (원문) The next appearance of Christ, as armored commander, I have mentioned already. But the crucial passage, almost ludicrous in its uneasiness, is John Milton on the Crucifixion:

    (- 해럴드 블룸은 스스로 아리우스파 계열의 이교도임을 밝히면서 삼위일체를 거부한 밀턴에게 이러한 십자가 대속은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이지만, 들뜨고 조급한 나머지 그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였음을 지적합니다.)


    p83

    * 그의 이 충족에 온당하게 의지하는 자를 다시는 해치지 않으려 하노라.

    --> 그의 대속을 진실로 믿는 자를 더 이상 해하지 못하리라.

    (원문) Never to hurt them more who rightly trust / In this his satisfaction;

    (-책에서 인용된 <실낙원>12편 415행~420행 중 418행과 419행입니다. 여기에서 ‘this satisfaction’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입니다. 415행~417행이 설명하는 'this satisfaction'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여 ‘이 충족(대속)에 온당하게 의지하는 자’로 어색하게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trust in~ (vi) 신용하다, 신뢰하다, 믿다)


    p86

    * 이성을 열렬히 사랑하는 밀턴은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내와 딸들에게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자신의 문학에서는 받아야 했다.

    --> 이토록 열렬한 이성애적 시인은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그의 아내들과 딸들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을 그의 소설적 창조물에게서 찾아야 했다.

    (원문) almost as though this fiercely heterosexual poet had to find in his fictive creation all the love that, for whatever reason, his wives and daughters had not given him.

    (- 'his fictive creation'이 ‘그의 문학’이 아니라 ‘이브’를 의미한다는 것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학에서는 사랑을 받아야 했다는 것과 그의 창조물에게서 사랑을 찾아야 했다는 것은 명백한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다.)


    * 사탄 이후에는 이브가 <실낙원>의 미적 중심이 된다. 이브는 밀턴의 천재성에 나타난 타자성의 진정한 발현이다.

    --> 사탄 이후에는 밀턴의 천재성에서 비롯된 진정한 타자성의 발현으로서 이브가 <실낙원>의 미학적 영예의 대상이 된다.

    (원문) After Satan, Eve is the aesthetic glory of Paradise Lost, the true manifestation of an otherness in Milton's genius.

    (- 역자의 번역은 정리되지 않아 전후 문장의 연결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실낙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우아한 성적 대상물로 표현된 이브에 초점을 맞추어 거세게 공격한다. 그들은 밀턴이 이브에게 강인한 주체성을 부여했고, 그녀를 은근히 활기 넘치는 (그리고 위험한) 의식을 지닌 인물로 창조한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 <실낙원>을 표면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이브가 화려한 성적 대상으로 표현된 것에만 집착하여, 밀턴이 이브를 강한 주체성과 활기 넘치는 의식을 지닌 인물로서 섬세하게 창조해 냈다는 점을 간과해 버린다.

    (원문) Feminist critics of Paradise Lost sometimes tend to literalize the poem, center upon Eve's representation as a magnificent sexual object, and thus evade Milton's subtle creation of her powerful subjectivity, her lively (and dangerous) consciousness.

    (- ① 역자의 주관적 개입으로 해럴드 블룸이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즉 해럴드 블룸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실낙원>의 이브에 대하여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 그들이 거세게 공격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거세게 공격한다는 것과 그저 다소 유감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까요.

      ② 원문에 없는 ‘은근히’라는 수식어를 넣어 오역을 만들어 냈습니다. <실낙원>에서의 이브는 은근히 활기 넘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주체적이고 활기가 넘칩니다. 그래서 해럴드 블룸은 이브의 이런 모습으로 인해 “아담은 신만을 위해 만들어 졌고, 이브는 아담 속에 나타난 신을 위해 만들어 졌다”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유감스러운) 구절을 잊게 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내가 읽은 밀턴은 역사 속에서 불타오르며 과거에도 있던 것처럼 항상 거기에 있지만,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절대로 보지 못했을 것을 보게 해준다.

    -->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내가 읽은 밀턴은 역사를 통해 타오르고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항상 있었던 것이 무엇이고 지금 항상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보게 해준다.

    (원문) Like Shakespeare, the Milton I read burns through history and allows us to see what was and is always there, but which we might never see without him.


    * 이브의 놀라운 선언에서 우리는 곧 이 비극적인 밀턴의 구절을 잊게 된다. “아담은 신만을 위하여 만들어 졌고, 이브는 아담 속에 나타난 신을 위하여 만들어 졌다.”

    --> 이브의 놀라운 선언에서 우리는 곧 유감스러운 밀턴의 이 구절을 잊게 된다. “아담은 신만을 위해 만들어 졌고, 이브는 아담 속에 나타난 신을 위해 만들어 졌다”

    (원문) In the shock of Eve's declaration we rightly forget the unfortunate Miltonic line: "He for God only, she for God in him."

    (- 인용된 밀턴의 구절이 뭐가 비극적인지 모르겠습니다.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 유감스러운 구절이라는 뜻입니다.)


    p88

    * 만일 당신이 맛보지 않으신다 해도

      우리들의 지위에 이미 차이가 생겼기 때문에

      설령 제가 당신을 위해 신성을 버리고자 해도 그때는 너무 늦어

      운명이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 만일 당신이 맛보지 않으신다면

         우리들의 지위에 이미 차이가 생겼기 때문에

         설령 제가 당신을 위해 신성을 버리고자 해도 그때는 너무 늦어

         운명이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문) Lest thou not tasting, different degree

           Disjoin us, and I then too late renounce

           Deity for thee, when fate will not permit.

    (- 신과 같이 되리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는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후 정말로 자신이 신성에 가까워 졌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만약 아담이 그녀와 같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다면’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지만, 만약 ‘먹지 않는다면’ 이미 신성에 가까워진 그녀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번역자가 ‘맛보지 않으신다 해도’라고 옮긴 것은 이러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였거나 우리말의 호응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 내가 이 시에 대해 즉석에서 토론을 벌여 관찰한 바에 따르면, 독자나 학생, 혹은 비평가 중 그 누구도 이 선언을 동일하게 해석하지 않았다.

    --> 내가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을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학생들 혹은 비평가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브의 이 연설을 동일하게 해석하지 않았다.

    (원문) No two readers, students, critics, take this speech in exactly the same way, as I rediscover each time I attempt to spur a discussion of it.


    * 아담은 이브에게서 사형선고를 듣자마자 매우 불길하게 여기고 그녀와 함께 죽기를 서약한다.

    --> 아담은 이브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를 듣자마자 매우 불길하게 여기고 그녀와 함께 죽기를 서약한다.

    (원문) Adam initially takes it very badly, hearing in it his wife's death sentence, and vowing that he will die with her.

    (- 이 상황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은 것은 이브이므로, 아담은 이브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브에게서 사형선고를 들은 것’이 아니라, 이브의 사형선고 즉 이브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를 들은 것’입니다.)


    * 나는 이제부터 모름지기 우리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남부 근본주의 신자인 C.S.루이스를 더 이상 혹평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브가 아담의 살인을 교사한 죄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브는 다른 이브로 대체될까봐 두려워한다.

    -->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남부 근본주의 신자인 C.S.루이스를 마지막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그는 이브가 아담의 살인을 교사한 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다른 이브로 대체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원문) I will give up battering C.S.Lewis (hero, by the way, of our current Southern fundamentalists) after this, but he does allow himself to say that Eve is guilty of plotting Adam's murder! It is true that she dreads being replaced by a second Eve, ~ ~

    (- 역자의 번역에 의하면 해럴드 블룸은 더 이상 C.S.Lewis를 혹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해럴드 블룸은 곧바로 C.S.Lewis의 우스꽝스런 주장 하나를 혹평하기 시작합니다. 즉 역자는 원문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고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뭐라고 하는지에 대해 자각하지도 않았습니다.)


    p89

    * 첫 줄 이후 둘째 단락으로 바뀌는 부분에서 4줄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밀턴의 이브에 대한 관심에서 화두를 돌려 밀턴의 사탄으로 관심을 돌리는 연결고리가 되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이 누락되어 화제가 급격하게 단절된 느낌이 듭니다. 번역서에서는 이런 부분이 너무 많은데, 이 때문에 처음 번역서만 읽었을 때에는 해럴드 블룸을 오해하였습니다.


    * (앞부분 누락) 그는 모든 현실이 감각으로 인지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러한 신념은 그가 실명한 뒤에 더 강해졌다.

    --> 자신에게 더욱 충실할 때 밀턴은 인간의 감각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에게 있어서 모든 현실은 감각으로서 인지되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신념은 그가 실명한 후에 더욱 강해졌다.

    (원문) When truer to himself, Milton would not accept that the human senses could be fallen, because for him all of reality was to be apprehended as sensation, a conviction only strengthened by his blindness.


    * 그래서 밀턴은 자연적이고 초월적인 것의 차이를 거부했다. 사탄이 그렇게 뛰어나게 표현될 수 있었던 이유다.

    --> 그래서 밀턴은 자연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의 차이를 거부했다. 이것이 사탄이 그렇게 뛰어나게 표현될 수 있었던 이유다.

    (원문) Miltonic genius refuses any distinction between the naturalistic and the transcendental, which is why Satan is so superb a representation.


    * 가톨릭적 이원론자인 사탄은 정신과 원기를 합친 밀턴을 이해하지 못했다.['which is his tragedy' 누락]

    --> 카톨릭 이원론자인 사탄은 정신과 원기가 혼합되어 있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그의 비극이다.

    (원문) Satan, a Catholic dualist, does not understand his own fusion of spirit and energy, which is his tragedy.

    (- 밀턴의 사탄이 밀턴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원문의 왜곡일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번역입니다.)


    * <실낙원> 5편, 865~61 --> <실낙원> 5편, 856~861




    §5. 톨스토이


    계속......

     

     

  •       ▣ 참을 수 없는 오역의 풍요로움,&nbs...

     

     

     

    ▣ 참을 수 없는 오역의 풍요로움, 그리고 부도덕한 공모 -1-


    1. 문학(적 천재들)을 통한 나의 발견


    “실존의 제1법칙: 나 아닌 자가 되지 말라” -S.A.Kierkegaard-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의 원서 제목은 [GENIUS-A MOSAIC OF ONE HUNDRED EXEMPLARY CREATIVE MINDS]입니다. 이 책에서 해럴드 블룸은 그동안 자신이 써 보고 싶었던(-"I wanted to write about these"-) 100명의 문학적 천재들을 통해 ‘무엇을, 왜, 어떻게’ 읽을 것인지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논하는 100명의 문학적 천재들은 저자가 밝히듯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저자의 자의적인 선택입니다. 문학비평이론을 각각의 인물과 그 작품에 적용한 일종의 각론으로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는 <겐지 이야기>의 무라사키 시키부를 제외하면 모두 서구의 인물들입니다. 마호메트까지 포함하면 두 명을 제외한 98명이 모두 서구권의 작가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란 이 번역서의 제목은 이 책의 내용에 별로 부합하지 않습니다. 해럴드 블룸 자신이 서구의 전통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고, 동양의 전통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어서 동양의 전통과 사상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의 작가이지만 동양적인 것에 대해 많은 묵상을 했던 ‘헤르만 헤세’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해럴드 블룸이 스스로를 영지주의자라고 고백하고 C.G.Jung과 거의 같은 생각을 펼치면서도, S.Freud는 언급할지언정 C.G.Jung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해럴드 블룸이 카발라의 인식체계를 이 책의 구조로 도입하고, 영지주의적 상상력을 문학비평에 활용하면서 Bently Layton의 <영지주의 경전:The Gnostic Scriptures>을 읽어 보라고 권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읽혀졌습니다. 오히려 해럴드 블룸의 독서에 대한 견해를 이해하는 데에는 해럴드 블룸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C.G.Jung의 '개성화의 과정(Individuation)', 특히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다이몬(Daemon)’과 관련하여 ‘자기(the Self)'의 개념과 이제는 너무나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페르조나(Persona)'에 대한 개념을 간단하게라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치 해럴드 블룸은 ‘타자는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라는 C.G.Jung의 견해를 패러디하여 ‘문학은 나의 거울’이라고 말하는 듯 하였기 때문입니다.

     해럴드 블룸에게 있어서 독서는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지혜는 우리의 배역(the role), 가면(Mask), 또는 ‘가짜 나(虛存)’인 ‘Persona'를 벗어 던지고 ’진정한 나’를 깨닫고 ‘참 나’로서 인생을 살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들려 오는 외부의 소리(권위적인 타자의 의견, 사회적․집단적 가치관 등)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의식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해럴드 블룸은 이를 ‘자기-엿듣기(Self-Overhearing)'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해럴드 블룸은 Marcel Proust의 글을 인용하며 자기를 엿듣는 방법의 하나로서 독서(Reading as self-overhearing)를 제시합니다.


    "Reading, Proust says, is not conversation with another."


    하지만 이상하게도 역자는 ‘왜 독서를 하는가?’와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이 내용을 임의로 누락하였습니다. 이 책 전체에 걸쳐서 이러한 임의적이고 무작위적인 누락은 방대하게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문학에 대해서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이 책의 원서를 읽으면서 너무나 많은 새로운 정보를 깨닫고 새로운 시각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책의 내용은 풍성하였습니다. 名不虛傳이란 말이 이 책(번역서가 아니라 원서)에 딱 어울리는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이 책은 ‘모든 천재는 반드시 선구자를 가진다:Every genius has forerunners’는 것이 각각의 작가들에 대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100명의 작가들을 따로 떨어뜨려 사전의 단어들처럼 파편같이 나열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영향력의 관계에 따라 퀼트 또는 모자이크 작품처럼 유기적으로 구성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관심 가는 작가들에 대해 사전처럼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2. 참을 수 없는 오역의 풍요로움 - 양심적인 재번역과 교환을 요구하며 -


     名不虛傳이라는 평가는 이 책의 번역서에는 결코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전문가의 번역이 아니라, 학부생이 학점을 위해 급하게 처리한 과제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문장은 물론, 기초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엉터리 번역어를 선택하거나, 기본적인 내용 이해도 무시한 번역이 너무나도 풍요롭게 펼쳐져 있어 신비감이 들 정도입니다. 더구나 원서의 문장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대충 대충 급하게 번역한 흔적도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저와 같은 영어초보도 파악할 수 있는 수식관계와 주어를 엉터리로 가져다 붙인 부분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입니다. 뛰어 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흠도 되지 않습니다. 차례에서 ‘Wallace Stevens, T.S.’로 인쇄된 것은 그저 있을 수 있는 작은 실수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편집과정 중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찾아보기]의 페이지가 1~2페이지씩 틀려 있는 것이 많은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역이 넘쳐 난다면, 그것도 번역자의 비양심적인 무성의로 인한 것이라면, 이 책의 구입자로서 어이없게 낚인 것만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만듭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태복음 4:19, 마가복음 1:17 中-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번역자는 예수님을 선구자로 두고 있습니다. 물론 유독 기독교 저자에 대한 부분에서 오역이 한층 더 많은 것을 보면, 이 책의 번역자가 기독교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라도(또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더욱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번역에서 비추어 지는 번역자는 아주 대담하게 비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책을 표지만 번드르한 양장본으로 만들면서, 정작 그 내용은 단 한 번도 검토해 보지 않았을 ‘들녘’출판사도 비도덕적인 장사꾼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그저 ‘해럴드 블룸’이란 이름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한 교보문고의 북마스터나, 단 한 줄도 읽어 보지 않고 추천의 기사를 쓴(물론 출판사측에서 대신 써 준 것이겠지만) 여러 신문사의 기자들도 이 부도덕한 공모에 연루되어 있겠지요. 그래도 이 책의 오역본이라도 읽고 오역본에 충실한 내용의 기사를 쓴 기자는 그 중에서 가장 양심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출판사에 이 책의 번역에 대해 항의하고 책임감 있는 번역자에 의한 재번역과 현 번역본의 구입자에 대한 리콜을 요청한 지 3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이 책을 추천도서로 선정한 교보문고 측에는 재검과 함께 추천도서로 더 이상의 사람들을 낚지 말 것을 요구했지만, 죄송하다는 전화와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변 후에도 그대로 이 책을 추천도서로서 내세우고 있습니다. 예전 어느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루었던 서점과 출판사간의 검은 커넥션에 대한 내용이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래도 서울과 부산의 ‘모든’ 대형서점을 이용해 본 결과, 단순히 책만 파는 장사꾼을 넘어 어느 직원에게라도 책에 대한 정보를 믿고 문의할 수 있는 곳은 교보문고와 서울문고(반디&루니스), 그리고 부산의 영광도서 뿐이었기에 정말로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교보문고와 교보문고의 북마스터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결국 양심 같은 것과는 무관한 장사꾼일 뿐이구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부도덕한 공모에는 재미있는 변명꺼리가 있습니다. 바로 해럴드 블룸 자신이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라고 말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가짜의 냄새가 하늘을 찌르는 내용이지만, 정말로 해럴드 블룸이 그렇게 말했다면 이 책의 번역자는 또한 해럴드 블룸의 정신을 문자 그대로 계승한 희귀한 번역자가 됩니다. 하지만 해럴드 블룸이 말하는 ‘오독’의 개념은 ‘창조적 오독’에 대한 것입니다. 그토록 내공이 깊은 문학비평계의 대가가 텍스트의 변형을 가져오는 오독과 텍스트의 변형이 없는 해석의 유희 또는 해석의 한계를 모를 리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남호 교수님도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에서 보르헤스의「돈키호테의 저자, 삐에르 메나르」에 대한 해설인 「오독의 풍요로움」을 쓰면서 그러한 오해를 범하는 실수를 합니다. 삐에르 메나르의 돈키호테는 시대만 다를 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글자 한 자의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즉 독해는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한계 내에서 다양하게 이루어 질 수 있지만, 주어진 텍스트와 자신이 받아들인 텍스트에 차이가 생긴다면 그것은 오독이 됩니다. 따라서 보르헤스가 말하는 것은 ‘수용미학’에 대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해럴드 블룸은 선구자적 천재로부터 영감을 받은 또 다른 천재의 의식적/무의식적 변주(Variation)를 일컬어 ‘창조적 오독’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의 기독교를 헬라적 기독교로 오독한 바울(Saint Paul)을 비롯하여 모든 문학적 천재들이 많든 적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창조적 오독을 행했다고 해럴드 블룸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천재에게는 선구자가 있다:Every genius has forerunners"고 선언합니다. 심지어 “오직 발명가 혼자만 빌려 쓴 방법을 알고 있다:Only an inventor knows how to borrow”는 Ralph Waldo Emerson의 말을 인용하며, 그 선구자가 누구인지를 우리가 모르더라도 반드시 그 선구자는 있다고 단언하기까지 합니다. 해럴드 블룸의 ‘오독’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창조’ 또는 ‘변주’를 말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라는 말은 해럴드 블룸의 말을 왜곡한 것이거나,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 책의 번역자가 아무리 오역의 ‘천재’라 할지라도 해럴드 블룸은 옹호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오역을 통해 더욱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면 옹호를 넘어 찬양을 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번역자는 오히려 해럴드 블룸을 횡설수설하는 분열증 환자에다가, 왕년에는 잘 나갔으나 지금은 기억력이 가물가물하여 자주 실수를 저지르는 퇴물 늙은이 정도로 인식케 하는 데에만 성공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에 역자가 써 놓은 「번역을 마치고 - 짙고 농밀한 고전의 향기」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번역자의 노고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가증스러움뿐입니다.


     작년에 ‘열린 책들’에서는 9쇄까지 찍어 냈던 책을 새 번역본으로 교환한다는 공지를 내걸고 실제로 교환을 실시하였습니다. 이전 번역본의 책에 이미 많은 내용을 기입한 독자에게는 책의 구입여부만을 확인하고 이미 구입한 책을 파본처리하지 않은 채 다시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 책의 오역은 한 페이지에 한 개 정도 될까 말까 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출판사 측에서는 책임을 지고 자진하여 교환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런 점이 그 출판사에 대한 신뢰를 얼마나 높였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책임감 있는 출판사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원서를 볼 실력이 없어 번역본을 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는 약간의 오역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열린 책들의 책임감이 더욱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들녘’이 출간한 이 책의 번역은 한 페이지에 한 두 개 정도가 아니라 원서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하자입니다. 지금까지 절반 정도 대조해 본 결과로 미루어 보아, 이 책의 오역사례에 대한 내용을 워드작업하면 약 270~280페이지 정도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앞으로 출판사 측에서 이 책을 책임감 있는 번역자를 통해 새로 번역하고 기존 구입자에게 교환을 해 줄 때까지 매주 이 책의 오역을 지적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시간의 여유도 많지 않고 오역의 분량도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매주 두 사람 정도씩 올릴 계획인데, 그렇게 하면 시위는 약 1년 정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물론, 영어초보인 저의 번역도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더 이상 이 걸레 같은 책에 낚이는 분들이 없도록 적어도 오역이 분명한 부분만이라도 지적하고자 합니다.



    3. 오역의 풍요로움 

    --------------------------------------------------------------------

    * -영자신문 기자출신에 박사과정중인 대학원 겸임교수의 번역-

    --> -영어초보 아마추어 독자의 번역 -

    (원문) -원서의 문장-

    (- 오역의 이유, 번역어의 선택 등 기타 사항 )

    --------------------------------------------------------------------


    P12 

    * 반신반인인 아담 카드몬이 추락하기 전

    --> 신인(the God-Man) 아담 카드몬이 타락하기 전

    (원문) Adam Kadmon, the God-Man, before his fall.

    (-아담 카드몬에 대한 내용에서 ‘추락’은 터무니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타락’입니다.)

    * 예외가 있다면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지녔던 루크레티우스다.

    -->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훌륭하게 계승한 루크레티우스를 제외하고, ~~

    (원문) except for Lucretius, who proudly stemmed from the philosopher Epicurus.

    p14

    * 여덟 번째 세피라는 호드Hod로, 화려함을 지닌 탁월함 또는 위엄을 나타낸다.

    --> 예언력을 지닌 탁월함 또는 위엄인 여덟 번째 세피라, 호드에서는 ~~

    (원문) Hod, the splendor or majesty that has prophetic force, is seen ~~

    (- 원문을 제대로 봤거나 'Hod' 아래에 나열된 작가들이 어떤 작가들인지, 저자가 그런 작가들에 대해 어떤 표현을 쓰고 있는지를 잠깐이라도 확인했어도 '화려함을 지닌 탁월함'같은 오역은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p15

    * 말쿠트는 세피라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으로 이 세상의 왕국에 신성함이 내재해 있음을 보여준다.

    --> 말쿠트는 세피라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으로 이 세상의 왕국에 내재하는 신성을 보여준다.

    (원문) Malkhut is, to me, the most fascinating of the Sefirot, since it displays divine immanence in the kingdom of this world.

    (- 없는 줄 알았던 신성함이 이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신성함을 드러내어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 나는 먼저 인간 희극을 쓴 작가들을 다양하고 흥미롭게 소개했다.

    --> 나는 먼저 다양하지만 흥미롭게 섞여 있는 인간희극(인생극) 작가들을 무리 짓기 위해 말쿠트를 도입했다.

    (원문) I employ it here first to group the diverse but curiously interfused sequence of those who created their own human comedies: Balzac, Lewis Carroll,~~


    * 천재적인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 ~~하나의 완전한 전형을 성취하였다.

    (원문) ~~ achieved a perfection in his Invisible Man,~~

    (- a perfection : 완전한 사람[것]; [...의] 화신, 모범, 전형

    ‘유감없이 발휘한’이나 ‘완벽하게 발휘한’ 모두 틀린 번역입니다. 원서의 문장을 읽으면서 억지로 그렇게 해석하려면 뭔가 어색했을 터인데,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p17 

    * _영지주의란 무엇인가?  문학의 종교

    --> 영지주의: 문학의 종교

    (원문) Gnosticism : The Religion of Literature

    (- 역자는 원문의 'Gnosticism'을 ‘영지주의란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론 영지주의에 대해서 대단히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의 내용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즉 이 부분의 내용은 영지주의의 발생과 문학과의 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한 것입니다. 역자의 제목은 영지주의의 본질적 정체성이 문학의 종교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고, 전체적인 내용을 대표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번역이란 것이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이 책의 전체에 걸쳐 거의 독해를 해내지 못하는 이 책의 역자 수준에서는 원문을 우리말로 충실하게 옮기는 것이 미덕이 되었을 것입니다.)


    * 여기에서 르네상스와 현대의 지류를 이루는 헤르메티시즘이 파생되었으므로 이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 르네상스와 헤르메티시즘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지류를 구별하기 위함이다.

    (원문) so as to distinguish it from its Renaissance and modern offshoots, generally called Hermeticism.

    (-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차라리 원서의 표현대로 옮기는 것이 더욱 정리된 문장으로 보입니다. 또한 헤르메티시즘 또는 헤르메티즘을 ‘연금술’로 변역하거나 해석을 붙였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 그들은 카발라에서 아담 카드몬이라고 부르며, ‘죽는 신’이라고 자처했던 최초의 아담(안트로포스Anthropos, 혹은 최초의 인간)에 관한 사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 그들은 카발라에서의 아담 카드몬이나 연금술사들(Hermetists)에게 ‘죽는 신’이라고 불리는 최초의 아담(안트로포스 혹은 최초의 인간)에 대한 유대인의 사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원문) ~~, and who developed the Jewish speculation concerning the first Adam, the Anthropos or Primal Man, called the Adam Kadmon in Kabbalah, and "a mortal god" by the Hermetists:~~

    (최초의 아담이 스스로를 ‘죽는 신’이라고 자처한 것이 아니라, 연금술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 책의 전체에 걸쳐 번역자는 원문에도 없는 단어를 임의로 삽입하여 오역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p19 마지막 문장

    * 요나스는 탁월한 시인들이 항상 추구했던 것, 즉 창조적 자아를 위한 자유와 정신적 의식의 확장을 위한 자유를 오래 전에 이미 설명해놓았다. (설명해놓았다-->설명해 놓았다)

    --> 그는 탁월한 시인들이 항상 추구했던 것, 즉 창조적 자아와 정신적 의식의 확장을 위한 자유를 설명했다.

    (원문) he had described what strong poets always sought for: freedom for the creative self, for the expansion of the mind's consciousness of itself.

    (- ‘오래 전’이라는 주관적 표현은 원서에 있지 않은 표현이고, 글의 내용에서도 그런 뉘앙스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p20

    * (제목) 천재는 자신과 경쟁하면서 시대를 초월한다

    --> 천재성이란 무엇인가?

    (원문) What Is Genius?

    (- 번역자가 제 멋대로 왜곡시킨 제목은 서문을 몇 번 읽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제목입니다. 서문은 천재가 자신과 경쟁하면서 시대를 초월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모든 천재는 천재적 선구자를 가진다는 것과 그 영향력의 관계, 즉 그 자신이 또 다른 천재의 선구자가 되는 것을 언급하면서 천재성 또는 천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모든 다른 사람들과 겨루어야 하는 창의적인 영혼의 괴로움과 고통:the vexations and anguishes of strongly creative souls, competing with all others’을 말하는 해럴드 블룸의 견해와 역자가 자의적으로 바꿔버린 제목은 서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 카발라적 체계 또는 틀을 채택하여 이 책을 구성하면서, 나는 카발라가 유대교 전통의 종교적 천재성이라는 게르숌 숄렘의 주장을 지지한다.

    --> 이 책을 구성하면서, 나는 카발라가 유대교 전통(에서)의 종교적 정신이라는 게르숌 숄렘의 주장에 기대어 카발라적 체계 또는 인식의 틀을 채택하였다.

    (원문) In employing a Kabbalistic grid or paradigm in the arrangement of this book, I rely upon Gershom Scholem's conviction that Kabbalah is the genius of religion in the Jewish tradition. (the genius : 정신, 특질)


    * 여기 소개된 100명의 인물들은 모두 각각의 영성으로 정확하게 향하고 있으며, 성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모든 영역을 망라한다.

    --> 성 바울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 모든 영역을 망라하여 여기 소개된 100명의 인물들은 아마도 영성을 향하는 100개의 다른 태도를 대표할 것이다.

    (원문) My one hundred figures, ~~, represent perhaps a hundred different stances towards spirituality, covering the full range from Saint Paul and Saint Augustine to~~.


    * 그래서 나는 천재의 명칭과 특성에 대한 개인적인 시각의 출발점에서 카발라를 안내역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 여기에서 나는 카발라를 출발점으로 활용하여 천재성의 명칭과 특성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시각을 펼쳐 보려 한다.

    (원문) Here I want to use Kabbalah as a starting-point in my own personal vision of the name and nature of genius.


    * 그의 작품에는 ‘정전의 강력한 빛, 완벽하게 파괴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

    --> 그의 작품에는 ‘정전의 강력한 빛이 있는, 그리고 완벽하게 파괴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한다.

    (원문) and so he concluded that Kafka's writings posses "something of the strong light of the canonical, of that perfection which destroys."


    * 이에 반하여 이델은 성서적인 것이든 카발라적인 것이든 정전에는 ‘흡인하는 완벽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서와 탈무드, 카발라의 완전함에 맞서려면 ‘흡인하는 완벽함’을 창조해야 한다.

    --> 이에 반하여 모셰 이델은 성서적인 것이든 카발라적인 것이든 정전에는 ‘최고의 흡인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서와 탈무드, 그리고 카발라의 절정을 대면하는 것은 ‘흡인력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원문) Against this, Moshe Idel has argued that the canonical, both scriptural and Kabbalistic, is "the perfection which absorbs." To confront the plenitude of Bible, Talmud, and Kabbalah is to work at "absorbing perfections."

    (- 'perfections'처럼 복수형으로 쓰이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완벽한 것들’처럼 가산 명사로 쓰일 때이고, 또 다른 경우는 ‘기술’, ‘기예’의 의미로 쓰일 때입니다. 이 문장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적합해 보입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실력에 대해 ‘천상의 기예celestial perfections’라고 말할 때처럼요.

    -the perfection 가장 뛰어난 성질이나 특질, 최고 품질, 특성의 극치.

    -work at~ ~을 배우다. : ~에 종사하다.

    -absorbing 흡인하게 하는, 몰두하게 하는, 열중하게 하는(O) / 흡인하는(X))


    * p20 마지막 문장과 p21 첫 문장 사이 30줄 누락.


    p21

    * 그들 모두 나름대로 인상적이었지만, 게르숌 숄렘이 지니고 있는 화려함이랄까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숄렘은 아이러니와 격조 높은 유머감각을 구사하는 위대한 천재다.

    --> 그들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수준 높은 유머와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천재성을 지닌 게르숌 숄렘과 같은 화려함이나 권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원문) All of them impressive, in different ways, they lacked the flamboyance and authority of Gershom Scholem, whose genius attended him palpably, despite his irony and high good humor.


    * 천재는 나에게 권위를 행사한다. 나보다 더 위대한 힘이 있음을 인식할 때 가장 먼저 따르고 싶은 현자는 에머슨이다. 그는 내가 자기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의 천재성은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자기신뢰’를 그럴듯하게 역설할 예정이다.

    --> 나보다 더 위대한 힘이 있음을 인식할 때 천재는 나에게 권위를 행사한다. 내가 따르고자 하는 현인 에머슨은 나의 실용적인 (이유 있는) 굴복을 안된다고 하겠지만, 그의 천재성은 자기신뢰에 대해 그럴 듯하게 설교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매우 광대하다.

    (원문) Genius asserts authority over me, when I recognize powers greater than my own. Emerson, the sage I attempt to follow, would disapprove of my pragmatic surrender, but Emerson's own genius was so large that he plausibly could preach Self-Reliance.


    * 나는 50년 동안 쉬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 나는 46년 동안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원문) I myself have taught continuously for forty-six years, ~~


    * 그들 안에 있는 천재성을 키워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단지 이해차원의 천재성만 주입할까봐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주목적은 바로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천재성을 북돋워주기 위해서이다.

    --> 나는 그들 안에 있는 천재성을 키워주고 싶었지만, 단지 감상을 위한 능력만을 전해줄 수 있었다. 할 수 있다면 나의 독자들에게 감상능력을 촉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쓴 주된 목적이다.

    (원문) I hope to nurture genius in them, but can impart only a genius for appreciation. That is the prime purpose of this book: to activate the genius of appreciation in my readers, if I can.

    ( -a genius : 비범한 능력, 재능, 소질[for])


    p22

    *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 없다.(->이후 20줄 누락) 세계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 나는 천재를 새롭게 평가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천재성을 북돋워주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번역자가 임의로 붙여 넣은 문장)

    --> 나는 과연 내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천재를 새롭게 평가하면서 시시각각 (천재들로 인해 받은) 나의 정신적 상처를 떨쳐 냈다.

    (원문) I cannot know whether I helped my student at all, but I momentarily held off my own trauma, by freshly appreciating genius.

    (- 역자는 원서에 없는 두 문장을 임의로 집어넣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의 누락된 20줄과도 무관한 것입니다. 번역이란 것이 단순히 직역만 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 책의 역자는 원서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기는커녕, 곳곳에 원서에 없는 표현을 삽입하여 본래의 표현을 왜곡하거나 오역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해럴드 블룸의 조심스럽고도 부드러운 표현을 아주 과격한 표현으로 과장하여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원저자가 알면 뚜껑이 열릴 만한 악질적인 번역습관입니다.)


    * 문학적 천재는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지만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독서를 해야 한다. 깊게 독서하는 사람들만이 위대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위대함이 자아의 통일성을 깨뜨리지 않는다. ‘위대함’은 초월이란 말처럼 시대에 뒤처진 말이지만,~~

    --> 문학적 천재는 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독서를 해야 한다. 독자는 자신이 (독서를 하면서) 느끼는 것과 동일한 것이 자아의 온전함을 깨뜨리지 않고도 자신과 결합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위대함’이란 말은 ‘초월적’이란 말처럼 시대에 뒤처진 것일 수도 있지만,~~

    (원문) Literary genius, difficult to define, depends upon deep reading for its verification. The reader learns to identify with what she or he feels is a greatness that can be joined to the self, without violating the self's integrity. "Greatness" may be out of fashion, as is the transcendental, ~~


    p23

    * 캐릭터라는 단어는 제일 첫 번째 의미가 알파벳 문자 같은 그림 부호라는 뜻이다.

    --> 캐릭터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가 알파벳 문자와 같은 그림 부호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원문) It is worth knowing that our word "character" still possesses, as a primary meaning, a graphic sign such as a letter of the alphabet, ~~

    (- 'character'의 ‘첫 번째 의미’가 아니라, ‘원래의 의미’가 그림 부호라는 것을 알 가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가의 죽음’(대표적으로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를 작가의 오염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 작가의 죽음을 선언했다-옮긴이-)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지금은 부질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지금은 부질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원문) It was fashionable, quite recently, to talk about "the death of the author," but this too has become rubbish.

    (- ‘작가’는 포괄적으로 글을 쓰거나 창작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에 저자는 특정 작품에 연결되어 사용됩니다. 롤랑 바르트나 푸코가 말하는 것은 ‘작가’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 텍스트에 대한 ‘저자’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 작가 : 문학이나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소설가.

      - 저자 : 책을 지은 사람.)


    p24

    *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삶을 찾을 것이다.

    -->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의 삶보다) 더 많은 삶을 찾아 책을 읽는다.

    (원문) We read in search of more life, ~~

    (- 해럴드 블룸이 의도하는 것이나 문맥을 고려하면, ‘더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더 많은 삶’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 천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대정신은 늘 있는 법이므로, 기억에 남는 인물과 관련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이 특정 시대와 무엇을 주고받았는가다. 하지만 이는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학문 영역에서든 대중 속에서든 우리 모두는 사회적 맥락에 의해 지배된다. 개인적 상상력마저 사회인류학이나 대중심리학에 지배되며, 또 그러한 것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 천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대정신은 늘 있는 법이므로, 우리는 어떤 기억할 만한 인물에 대해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그들이 특정 시대와 주고받은 것이라고 스스로 속이기를 좋아한다. 이런 기만 속에서 학문적인 면이건 대중적인 면이건 모든 사람은 사회적 요소들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으로 간주된다. 개인적인 상상력은 사회인류학이나 대중심리학에 종속한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정당화될 수 있다.

    (원문) What makes genius possible? There always is s Sprit of the Age, and we like to delude ourselves that what matters most about any memorable figure is what he or she shared with a particular era. In this delusion, which is both academic and popular, everyone is regarded as being determined by societal factors. Individual imagination yields to social anthropology or to mass psychology, and thus can be explained away.

    (- 역자는 배치되는 주장을 표현만 달리하여 동시에 주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번역하고 있는 내용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무엇인가 잘못 번역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을 것이고, 원문을 좀 더 제대로 살펴보려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자는 시한 내에 아무 것으로나 분량을 채우고 번역료를 받아 챙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plain away : [오류 따위]를 변명하다, 정당화 하다. : 교묘히 발뺌하다.)


    * ‘감상’이라는 말은 내게 ‘적절한 평가’ 이상을 의미한다. 필요성이라는 개념 역시 이 책에 등장하는데, 우리 안에서 부족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천재성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혹은 그 천재성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자극을 발견한다는 의미로 쓰였음을 밝힌다.

    --> ‘감상’이라는 말은 나에게 ‘적당한 평가’ 이상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결점을 고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천재성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천재성으로부터 자신의 힘에 대한 자극제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필요성이란 개념도 그것(감상)에 속한다.

    (원문) By "appreciation" I mean something more than "adequate esteem." Need also enters it, in the particular sense of turning to the genius of others in order to redress a lack in oneself, or finding in genius a stimulus to one's own powers, whatever these may emerge as being.

    (- 역자는 'Need also enters in it'을 ‘필요성이란 개념 역시 이 책에 등장하는데’라고 하였으나, 문맥상 ‘이 책’이라고 해석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당연히 'it'은 앞 문장에서 화두로 내세우는 'appreciation'입니다.)


    *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든 혹은 초자연적인 장소에 있든 우리의 고독한 자아가 깊이 갈망하는 것은 생존이다. 다른 이들의 천재성에 의해 우리의 의식이 확장된다는 것은 적어도 미래의 생존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후 19줄 누락)

    --> ‘지금 여기(the hear and now)’에 있든 초월적으로 다른 어디에 있든, 당신의 고독한 자아의 가장 깊은 욕망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다른 이들의 천재성에 의해 커지는 것은 적어도 현재나 가까운 미래의 생존 가능성이다.

    (원문) Your solitary self's deepest desire is for survival, whether in the here and now, or transcendentally elsewhere. To be augmented by the genius of others is to enhance the possibilities of survival, at least in the present and the near future.


    p25

    * 많은 천재들은 특정한 어느 천재가 등장하기 이전에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 특별한 한 사람의 천재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많은 천재들이 있었다.

    (원문) many men of genius must arise before a particular man of genius can appear.

    (- 바로 다음 문장에 있는  ‘모든 천재들에게는 반드시 선구자가 있다:Every genius has  forerunners'와 같은 의미의 문장입니다. 하지만 역자는 저자의 의도와 반대의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책 전체에서 저자는 ‘더 큰 뇌우를 만들어 내는 뇌우-또 다른 천재를 만들어 내는 선구자적 천재-’(S.A.Kierkegaard)와 같은 천재들 간의 영향력을 연결고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 새뮤얼 존슨은 호메로스가 최초이자 가장 독창적인 시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호메로스가 선구자들이 남겨놓은 표현 또는 형식을 공부한, 늦깎이 작가로 알고 있다.

    --> 새뮤얼 존슨은 호메로스가 최초이자 가장 독창적인 시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호머를 (상대적으로) 그의 선구자들의 형식과 표현을 통해 스스로를 더욱 풍요롭게 한 후계자로 본다.

    (원문) we tend to see Homer as a relative latecomer, enriching himself with the phrases and formulas of his predecessors.

    (- 문맥상 'latecomer'는 ‘늦깎이 작가’의 의미가 아니라 호머도 역시 선구자를 가진다는 것을 뜻하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 진정한 발명가만이 남이 쓴 것을 이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

    --> 오직 발명가 혼자만 빌려 쓴 방법을 알고 있다.

    (원문) Only an investor knows how to borrow.

    (-호머의 경우처럼 순수하게 독창적인 것 같은 작가도 알고 보면 선구자가 있다는 것을 에머슨이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입니다. 즉 오직 발명가만이 자신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빌려 썼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 발명품이 발명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인 줄로만 안다는 뜻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원서에도 없는 ‘진정한’이란 단어를 덧붙여 ‘발명가’의 의미를 한정지은 것은 오역입니다.)


    p33

    * 어떤 작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의식의 폭을 넓히는 데 얼마나 기여했으며 또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이루었는가?

    --> 우리는 어느 작가이던지 그 작가가 과연 우리의 의식의 폭을 넓혀주는지, 어떻게 넓혀 주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

    (원문) The question we need to put to any writer must be: does she or he augment our consciousness, and how is it done?

    (- 역자의 번역으로는 의식의 폭을 넓히는 주체가 작가 자신인지 독자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의식의 폭을 넓히는 주체를 독자가 아닌 작가로 오해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래도 직접 번역본의 내용을 곳곳에 인용하면서 기사를 쓴 것으로 보아, 그 기자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비록 오역본일 지라도 스스로 직접 읽고 기사를 쓴 것으로 보였습니다.)


    § 1. 셰익스피어


    p37

    * (소네트 129편 번역) ~~

    고의로 장치해 놓은 미끼를 미워하듯이 

    추구하다가도 광란에 빠지며 손에 넣고 나서도 그러하다.  

    --> 광란에 빠뜨리기 위해 놓아 둔

         미끼를 삼킨 듯 증오하며

         광기에 빠진 채 추구하고, 얻고서도 그러하다.

    (원문)Past reason hated as a swallowed bait

         On purpose laid to make the taker mad;

         Mad in pursuit, and in possession so;


    *154편의 소네트 중 어느 한 편에다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밝혔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 154편의 소네트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밝혔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원문) Whether he reveals his inwardness in his one hundred and fifty-four sonnets is disputable, ~~

    (- 역자는 원서에 없는 표현을 덧붙여서 오역을 만들어 냈습니다. 즉 셰익스피어가 154편의 소네트 중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사한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 중 어느 편에 그러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뜻으로 문장의 의미를 축소했습니다.

     하지만 원문의 의미는 -모차르트와 그의 작품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논의가 있듯이- 과연 소네트라는 시편이 셰익스피어의 내면을 투사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역자가 번역한 의미보다 훨씬 더 폭넓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 의지, 욕망, 심지어 혐오감마저도 이 시에서는 비인격화되어 있다.

    --> 의지, 욕망, 심지어 혐오감마저도 이 시에서는 비개인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원문) Will, desire, even revulsion are impersonalized, ~~

    (-앞의 내용에서 소네트에 셰익스피어의 개인적인 내면을 투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과 계속해서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의지, 욕망, 혐오감 자체가 본래 비인격적인 것인데, 역자는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이 시에서 비인격화되어 있다’고 옮겨 번역어를 잘 못 선택하였습니다.)


    * 그러나 이 14행시에 담겨 있는 격렬한 힘은 놀라운 웅변으로 성적 절정에 도달한 결과가 ‘수치스런 낭비’가 되어 버린 남성의 무차별적인 성적 욕구에 부정적인 심판을 내리고 있다.

    --> 그러나, 이 14행시에 담겨 있는 격렬한 힘은 비통한 목소리로 성적 절정이 곧 ‘수치스런 낭비’가 되어 버린 무분별한 남성의 정욕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린다.

    (원문) but the furious energy of these fourteen lines conveys, with terrible eloquence, a negative judgment upon the indiscriminate element in the male sexual drive, whose orgasmic culmination is "a waste of shame."


    p39

    * 언어 자원이 무궁무진한 소수의 영국 시인들과 비교해볼 때 셰익스피어는 종류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를 지닌 작가다.

    --> 언어 자원이 무궁무진한 영국의 다른 시인들과 비교해 볼 때 셰익스피어는 종류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를 지닌 작가다.

    (원문) he differs in degree rather than in kind from a handful of other poets in English whose verbal resources are virtually endless.

    (-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a handful of'를 ‘소수의’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문맥상 그런 뉘앙스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또한 역자는 언어 자원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시인을 수식하는 것으로 번역하였지만, 시인이 아니라 영국을 수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차별성, 즉 독특한 천재성은 그의 보편성에, 그리고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을 초자연적일 정도로 자연스런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로 채웠다는 설득력 있는 환상(과연 환상일까?)에 있다.

    -->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차별성, 즉 그 천재성의 특징은 그의 보편성에,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과 너무나 닮은 세상을 창조하고 그곳에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인물들로 채워 넣은 그의 설득력 있는 환상에(그것이 진정 환상일까?), 그리고 그 외에도 도처에 있다.

    (원문) The true Shakespearean difference, the uniqueness of his genius, is elsewhere, in his universality, in the persuasive illusion (is it illusion?) that he has peopled a world, remarkably like what we take to be our own, with men, women, and children preternaturally natural.


    * 벤 존슨(Ben Jonson)이 두 가지를 다 시도했지만, 우리는 그의 희곡 <볼폰>과 <연금술사>만을 기억할 뿐이요, <세자누스>만이 무대에 올릴 만하다는 동시대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 벤 존슨이 두 가지를 다 시도했지만, 우리는 그의 희극 <볼폰>과 <연금술사>만을 기억할 뿐이요, 비극인 <세자누스>는 무대에 올릴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동시대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원문) Ben Jonson ventured both, but we are grateful for his comedies, Volpone and The Alchemist, and agree with his contemporaries that Sejanus is scarcely playable.

    (-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향연>에서 ‘한 작가가 희극과 비극을 모두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진정으로 희극과 비극 모두를 성공적으로 쓴 작가는 셰익스피어뿐이라는 것이 해럴드 블룸이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또한 이 문장에서 <세자누스>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내용까지 고려하면, <세자누스>를 무대에 올릴 만한 작품이 아니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당시 <세자누스>는 상연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혹평 받았었으니까요.)


    p42

    * 폴스타프는 <헨리4세 2부>에서 빛을 잃고 지옥의 변방으로 추방당하는데, 그곳에는 샤일록이 살고 있으며 잠시 되에는 불쌍한 말볼리오가 합류한다.

    --> 폴스타프는 <헨리4세 2부>에서 빛을 잃고 감옥으로 추방당하는데, 그곳에는 샤일록이 있고, 후에는 불쌍한 말볼리오까지 합류한다. 

    (원문) Falstaff darkens in the second part, and ends an outcast, in that limbo inhabited by Shylock and which poorMalvolio will join.

    (- <헨리4세>의 1부이건 2부이건 폴스타프가 ‘지옥의 변방’으로 추방당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역자는 중의적 의미를 가지는 'limbo'를 내용을 고려하지도 않고 기초적인 자료조사도 하지 않아 잘못된 번역어를 선택하였습니다.)


    * 첫 단락과 두 번 째 단락 사이 39줄(4개 단락) 누락


    p43

    * 문학이나 드라마의 인물이 지닌 실체란 독자가 자신의 실체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속성이다.

    --> 문학이나 드라마의 인물이 지닌 사실성은 독자가 자신의 현실감각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 속성이다.

    (원문) The reality of literary and dramatic character is a necessary predicate, if the reader is to sustain a sense of her own reality.

    (- 'reality'를 ‘실체’로 번역한 것은 오역입니다. 이 문장은 이미 앞부분에서 ‘허구의 존재이지만 우리의 사실성을 능가’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물에 대해 언급한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로 앞 문장도 폴스타프와 클레오파트라의 사실성에 대한 놀라움을 언급하는 내용입니다. 오역의 수준이 이쯤 되면 영자신문 기자출신에 박사과정의 겸임교수는커녕 영문학 전공자의 번역도 절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 미셸 푸코의 주장과는 달리 작가의 죽음이란 없다.

    --> 미셸 푸코의 주장과는 달리 저자의 죽음이란 없다.

    (원문) There is no death of the author, contra the egregious Foucault.

    (- p23에서와 같은 오역입니다. 롤랑 바르트나 푸코가 말하는 것은 ‘작가’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 텍스트에 대한 ‘저자’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 첫 번째 단락과 두 번째 단락 사이 7줄 누락


    * 그래서 이제 존 폴스타프 경의 천재성을 언급해보려고 한다. 폴스타프가 지닌 명랑한 기질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천재성은 그 어떤 의미에서 보더라도) 그는 천재성보다는 카리스마에 속하는 인물로 보인다.

    --> 그래서 이제 존 폴스타프 경의 천재성을 언급해보려고 한다. 언제나 명랑한 그의 기질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그것은 천재성의 측면보다는 폴스타프 자신의 카리스마에 속한다.

    (원문) His continuous high spirits, though sublimely charming, belong more to Falstaff's charisma than to his genius, in any sense of "genius."

    (- 역자는 폴스타프 경의 천재성을 말하겠다고 한 후 곧바로 폴스타프는 천재성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각 없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주장을 옮긴 것이지 해럴드 블룸의 글을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원문에 의하면 폴스타프의 여러 측면 중에서 명랑한 기질에 한해서 천재성이 아니라 카리스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즉 이 문장의 주어는 폴스타프가 아니라 폴스타프의 기질이며, 또한 해럴드 블룸은 폴스타프가 천재성을 지닌 인물이라고 여러 번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 때론 위선적이며 마키아벨리적인 핼 왕자는~~

    --> 위선적이고 권모술수에도 능한 핼 왕자는~~

    (-'Machiavellian'을 그대로 직역하였으면 그에 대한 간단한 해설이라도 덧붙였으면 좋았으련만, 역자는 정작 문맥상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불필요할 정도로 해설을 붙이면서 정작 필요한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론’이란 원서에 없는 표현도 원래의 내용을 왜곡합니다. 핼 왕자는 개과천선하기 전까지는 ‘항상’ 위선적이었으니까요.)


    * 핼 왕자는 엉뚱한 폴스타프 교수를 보며 필시 교수대에 묶인 채 생을 마감해야 할 운명이라고 판단한다.

    --> 핼 왕자는 도가 지나친 폴스타프 선생은 필시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해야한다고 판단한다.

    (원문) the outrageous Professor Falstaff needs, in the Prince's judgment, to be terminated, perhaps with maximum prejudice upon the gallows.


    p44

    * 폴스타프보다 앞서 나가는 등

    --> 폴스타프보다 한 술 더 뜨는 등

    (원문) by overgoing Falstaff


    p45

    * 당황한 퀴클리 부인은

    --> 헷갈린 퀴클리 부인은

    (원문) the confused Mistress Quickly

    (- 퀴클리 부인은 성경의 시편 23편 2절과 5절의 구절이 헷갈려 잘못 말합니다.)

    * 폴스타프는 복수심에 가득한 핼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위대한 신이다.

    --> 그 천재성은 핼의 복수심이 미치지 못하는 신적인 것이다.

    (원문) and the genius is a god, beyond Hal's vengeful reach.

    (-역자는 주어를 혼동하였습니다.)


    p46

    * 중간 38줄 누락


    * 제임스 조이스는 셰익스피어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햄릿 부왕의 망령에서 찾았는데, 올바른 판단처럼 보인다.

    --> 제임스 조이스는 셰익스피어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햄릿 부왕의 망령에서 찾았는데, 그가 정말 옳은지도 모른다.

    (원문) James Joyce found Shakespeare most at home as the Ghost of Hamlet's father, and Joyce may indeed have been right.

    (- 해럴드 블룸은 제임스 조이스의 견해에 대해 그럴 듯하다는 뉘앙스로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조이스의 견해를 간단하게 기술한 후 ‘그러나 이 또한 사소한 문제다’고 말합니다.)


    p47

    * 그가 부분적으로 소설이라고 믿는

    --> 그가 어느 정도는 소설이라고 믿는

    (원문) that he believes to be partly a novel.

    (- <햄릿>은 원래 상연을 목적으로 한 희곡으로 쓰여 졌지만, 읽혀지기 위한 소설로서도 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즉 부분적으로 소설적 요소를 갖춘 것이 아니라, 희곡과 소설 양면적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 흰 망토를 입고 신비스러운 두건을 쓴 이방인이 갑옷을 입은 빌헬름의 햄릿 앞에서 유령을 연기한다.

    --> 흰 망토에 두건을 쓰고 갑옷을 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방인이 빌헬름의 햄릿 앞에서 유령을 연기한다.

    (원문) A mysterious hooded stranger, complete with white cloak, puts on armor and plays the Ghost to Wilhelm's Hamlet.

    (- 원문을 보아도, <햄릿>이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읽어 봐도,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은 햄릿이 아니라 유령입니다.)


    * 빌헬름은 이 유령이 죽은 아버지라고 확신하고 연기자로서 자신을 넘어서게 된다. 결국 그는 자아의 일부를 연기한다.

    --> 이 유령이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라고 확신한 빌헬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연기함으로써 배우로서의 자신을 넘어서게 된다.

    (원문) Wilhelm, convinced that this is his own dead father, surpasses himself as an actor, since at last he plays the part of his self.

    (- 빌헬름이 배역 또는 페르조나를 벗어 던지고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연기한다는 내용입니다. 역자는 ‘the part of his self'를 ‘자아의 일부’라고 번역하였으나, ‘the part'는 ‘배역’ 또는 ‘역할’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p48

    * <헨리 4세 1부>와 <헨리 4세 2부>를 같이 읽노라면 희곡이면서 동시에 소설로 느껴지기 때문에 마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전신처럼 보인다. <햄릿>은 <죄와 벌>의 선구 작품이다.

    --> <헨리4세 1부>와 <헨리4세 2부>는 <햄릿>이 <죄와 벌>의 선구작품인 것과 마찬가지로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원형으로서, 함께 읽으면 뛰어난 희곡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소설이 된다.

    (원문) The two parts of Hery IV, read together, are both a major drama and an extraordinary novel, as much the ancestor of The Brothers Karamazov as Hamlet is the forerunner of Crime and Punishment.

    (-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헨리4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과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선구적인 작품으로서, 희곡이면서 동시에 소설적 요소도 모두 갖추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단락의 내용과 관련되는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햄릿>은 <죄와 벌>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따로 떼어 말하는 것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p49

    *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엿듣기 시작하는가? <햄릿>에 등장하는 부왕의 유령이 셰익스피어와 괴테 그리고 그 이후 뛰어난 작가들을 낳았을까? 혹은 카인의 죄와 동일한 클라디우스의 죄가 지난 2세기 동안 우리를 낳았던 것일까?

    -->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언제부터 시작하는가? 셰익스피어와 괴테 그리고 모든 위대한 저자들뿐만 아니라 <햄릿>에 등장하는 부왕의 유령 이후로부터? 또는 카인의 죄와 같은 클라디우스의 죄가 특별히 지난 2세기 동안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원인이 되었을까?

    (원문) When do we begin? Did the Ghost in Hamlet father not only Shakespeare and Gothe and all strong writers since, or did the crime of Claudius, which is the crime of Cain, give birth to all of us, particularly in these last two centuries?

    (- ‘우리는 언제부터 엿듣기 시작하는가?’라고 물으면서 뜬금없이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오역입니다. 또한 'when do we begin?'을 원문에 없는 표현을 넣어 ‘우리는 언제부터 엿듣기 시작하는가?’로 고쳐 번역한 것도 다음 문장과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의 앞부분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Where do our selves begin?:'에 대하여 J.W.Goethe의 '자기기원설:self-orgin'과 W.Shakespeare의 '자기엿듣기의 자각:self-recognition of self-overhearing'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언제~?:When~?'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서의 ‘우리’는 생물학적 의미의 ‘우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 문장 이후 “우리가 새로운 자기인식으로 깨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자신이 스스로 생각했던 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인식하는 것일까?”나  Samuel Beckett의 [Endgame]에서 “오, 내가 호두껍질 안에 갇혀있을지라도 무한한 우주를 다스리는 왕이라고 자처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는 햄의 독백을 인용한 것 등을 통해 해럴드 블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무한한 우주를 다스리는 왕’은 ‘진정한 나’에 대립되는 '페르조나:Persona'를 의미하고, 그러한 왕으로 스스로 자처하는 것은 '인격팽창:Inflation'을 의미하는데, 햄은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깨달은 후 더 이상 자신에 대한 환상에 빠질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말을 내뱉습니다. 또한 분석심리학의 '자기:The Self'에 해당하는 ‘진정한 자기’에 대한 언급은 서문에서부터 핵심적으로 언급되었던 것입니다.)


    * 아버지의 유령과 맞부딪치지 않았더라도 햄릿 스스로 엿듣고 그 충격으로 돌변할 수 있었을까?

    --> 햄릿 부왕의 유령에서 예시된 것처럼,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아버지의 유령을 대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기 엿듣기를 통해 충격을 받고 변할 수 있을까?

    (원문) Would we overhear ourselves, and be shocked into change, if we were not confronted by our father's ghost, prefigured in the Ghost of King Hamlet?


    * 마지막 단락을 시작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내용이 누락(12줄)되어 있습니다. 즉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에게 있어서 자기엿듣기는 변화에 이르는 왕도’라는 말을 하기 전에 마르셀 프루스트가 ‘독서란 타자와의 대화가 아니라(not conversation with another) 자기엿듣기(self-overhearing)’라고 말하는 부분을 역자는 임의로 누락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왜 읽는가?’와 관련하여서도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p50

    * 셰익스피어의 자기엿듣기는 변화에 이르는 통로다.

    --> 셰익스피어에 있어서 자기엿듣기는 변화에 이르는 왕도다.

    (원문) Self-overhearing, in Shakespear, is the rayal road to change.

    (- 이 문장 후에 언급되는 내용으로 봐서 자기엿듣기는 변화에 이르는 왕도라고 하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경우로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해럴드 블룸이 자기엿듣기를 일반화하여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진술되는 내용도 햄릿의 경우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p51

    * 듣는 것과 자신을 엿듣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자기 자신을 ‘듣는 것’과 ‘엿듣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원문) Is there a difference between hearing and overhearing oneself?

    (- 내용상 ‘oneself'는 ‘엿듣는 것’만이 아니라 ‘듣는 것’의 목적어이기도 합니다.)


    * 나는 셰익스피어가 아마도 초서에게서 힌트를 얻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순간을 포착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그려낸 것이다.

    --> 초서로부터 힌트를 얻은 셰익스피어는 그 순간(자기를 엿듣는 순간)을 포착해 인간의 변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또 다른 해석(버전)을 만든다.

    (원문) Shakespeare, taking a hint I think from Chaucer, seizes upon that moment to fashion another version of the human will-to-change.

    (- 역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려는 인간의 의지’라고 번역하였으나, 이것은 오역일 뿐만 아니라 이 부분과 이 책의 내용에도 맞지 않습니다. ‘이 순간을 포착해’에서 ‘이 순간’은 ‘자기엿듣기의 순간’을 의미하므로, ‘변하고자 하는 의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변하려는 의지’로 해석해야 합니다.)


    * 그것은 과연 인간의 창조(혹은 재창조)를 말하기에 충분한 도입부일까?

    --> 그것은 인간의 창조(혹은 재창조)를 말하기에 충분한 도입방식일까?

    (원문) Is that fashioning of sufficient import to speak of the invention (or reinvention) of the human?

    (- 초서로부터의 ‘도입’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자의 ‘도입부’란 말은 터무니없습니다.)


    p52

    * 1600~1601년 <햄릿>의 판본을 공연할 때

    --> 1600~1601년 <햄릿>의 최종 판본을 공연할 때

    (원문) when he staged the definitive Hamlet of 1600-1601.

    (-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원문의 표현을 살리는 것이 내용을 더욱 명확하게 할 것 같습니다.)


    * 5막의 햄릿은 우리의 관점을 통제한다. 즉 우리는 그가 아는 것 이상을 알지 못하며 그 또한 우리가 많이 알지 못한다고 믿는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을까? 아니, 햄릿이 한 행동 이상의 것을 알고 있었을까? 헤겔적인 의미에서 보면, 햄릿은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로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자신을 대변하는 말을 더 많이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5막의 햄릿은 우리의 관점을 통제한다. 즉 우리는 그가 말하고 행하는 것 이상을 알지 못하고, 그 또한 우리가 그 이상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셰익스피어는 그가 말하고 행한 것 이상을 알고 있었을까? 헤겔적인 의미에서 보면, 햄릿은 그 자신이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로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자신을 대변하는 말을 더 많이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문) The Hamlet of act 5 controls our perspectives: we do not know more than he does, and he believes we know less. Did Shakespeare know more than Hamlet did? In the Hegelian sense, Hamlet is the freest artist of himself, and could tell us much more about what he represents, if only there were time enough.

    (- 이런 질문이 가능한 것은 해럴드 블룸이 ‘독자반응비평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해럴드 블룸이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저자의 죽음’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이런 의문이 가능합니다.

     해럴드 블룸은 햄릿이 너무나 놀라운 사실성을 지닌 나머지 단순히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소설 속의 인물을 초월하여 ‘현실의 존재를 능가하는 사실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햄릿은 작가이자 자신의 창조자인 셰익스피어를 능가할 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이런 질문이 가능해 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햄릿보다 많이 알지 못한다’거나 ‘셰익스피어는 햄릿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가?’는 질문은 뜬금없을 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럽습니다. 해럴드 블룸은 5막에서 드러나는 햄릿의 말과 행동이 햄릿을 온전히 파악하는 데에 충분한 실마리를 던져 주지 않아 더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해럴드 블룸이 햄릿을 ‘수수께끼의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p53

    * 에드먼드가 리어 왕과 코델리아를 비밀리에 처형하라고 명령할 때 이미 그는 자신을 뛰어 넘는다.

    --> 에드먼드가 리어 왕과 코델리아를 비밀리에 처형하라고 명령할 때 그는 자신을 뛰어 넘는다.

    (원문) Edmund surpasses himself when he orders the secret execution of Lear and Cordelia.

    (- 한국어와 영어 모두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번역자는 원문에도 없고 현재시제의 문장에 호응도 되지 않는 ‘이미’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오역을 만들어 냈습니다.)


    p54

    * 마지막 결론 4줄을 누락했습니다.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계속...... 

     

     

교환/반품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환/반품안내
반품/교환방법

[판매자 페이지>취소/반품관리>반품요청] 접수
또는 [1:1상담>반품/교환/환불], 고객센터 (1544-1900)

※ 중고도서의 경우 재고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교환이 불가할 수 있으며, 해당 상품의 경우 상품에 대한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으며 교환/반품 접수 전에 반드시 판매자와 사전 협의를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중고도서의 경우 판매자와 사전의 협의하여주신 후 교환/반품 접수가 가능합니다.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반품/교환 불가 사유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이므로 단순 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는 판매정가의 20%를 적용

2) 중고도서 : 반품/교환접수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접수되어 상품 확인이 어려운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판매자
동훈서점
판매등급
특급셀러
판매자구분
일반
구매만족도
5점 만점에 5점
평균 출고일 안내
1일 이내
품절 통보율 안내
3%

바로가기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