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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선생전서 전7권   /사진의 제품 ☞ 서고위치:ri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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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쪽 | B5

점필재선생전서 전7권 /사진의 제품 ☞ 서고위치:ri 6 중고
저자 점필재 김종직 | 출판사 계명한문학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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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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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집(?畢齋集)》 해제(解題)
 

강대걸(姜大杰)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1. 머리말
김종직(金宗直, 1431;세종 13~1492;성종 23)은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으로 자(字)는 효관(孝?) 또는 계온(季?)이며, 호(號)는 점필재(?畢齋)이고,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본관(本貫)은 선산(善山)이며 밀양(密陽)에서 태어났다. 정몽주(鄭夢周)와 길재(吉再)의 학통(學統)을 이은 부친 김숙자(金叔滋)에게 수학한 점필재는 일찍부터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사림(士林)의 종장(宗匠)이 되었으며, 조선 전기에 도학(道學)의 정맥(正脈)을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로 이어 주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후진의 교육에도 힘써서 김굉필과 정여창, 조위(曺偉), 남효온(南孝溫), 유호인(兪好仁), 김일손(金馹孫) 등 많은 인물들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이들은 의리와 절의를 숭상하여 성리학(性理學)의 앙양과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고, 정계에 진출하여 훈척세력과 대립하면서 사림파(士林派)를 형성하고 선조(宣祖) 대에 정국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김종직은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시(詩)를 정선(精選)한 《청구풍아(靑丘風雅)》와 문장(文章)을 뽑은 《동문수(東文粹)》 등을 편찬하였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찬수(纂修)에도 참여하는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러나, 그가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야기된 무오사화(戊午史禍)로 인하여 자신은 사후(死後)에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고, 문집도 소각(燒却), 훼판(毁板)되는 수난을 받아 많이 유실되었다.
김종직을 제향(祭享)하는 서원은 밀양의 예림서원(禮林書院)과 선산(善山)의 금오서원(金烏書院), 함양(咸陽)의 백연서원(柏淵書院), 김천(金泉)의 경렴서원(景濂書院), 개령(開寧)의 덕림서원(德林書院) 등이 있다.
본 해제에서는 먼저 《점필재집》의 간행 경위와 그 내용을 살펴보고 뒤에 김종직의 가계도(家系圖)와 행력(行歷)을 붙였다.

2. 점필재집의 간행과 무오사화(戊午史禍)
《점필재집》의 간행은 저자의 사후에 생질(甥姪)이며 문인(門人)인 강백진(康伯珍), 강중진(康仲珍) 형제와 처남(妻男)이며 문인인 조위(曺偉)를 비롯한 문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권31, 연산군 4년(1498) 9월 8일(신축) 조에 무오사화로 인하여 조사를 받은 조위의 말에 자세히 나와 있다.

김종직은 신의 이모자부(異母?夫)입니다. 지난 임진년(1472, 성종 3) 김종직이 함양 군수로 왔으므로 신이 찾아가서 《예기(禮記)》를 배웠는데 다 마치지는 못하였습니다. 김종직이 죽은 뒤 신이 도승지(都承旨)로 있을 때에, 강백진이 김종직의 시문(詩文)을 신에게 주면서 간행을 부탁하였습니다. 그 때 성종(成宗)께서 문사(文士)들의 유고(遺藁)를 들이라는 명을 내렸으므로, 신이 이승소(李承召)의 시문 6권과 김종직의 시문 17권을 교정하여 올렸습니다. 그러나 책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간행하지 못하고, 이에 문(文)만을 뽑아서 1권을 만들었습니다. 신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되어 비용을 모아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상(喪)을 당하여 후임자인 정석견(鄭錫堅)에게 부탁하여 간행하게 하였습니다.……(중략)……작년 겨울(1497,연산군3)에 신이 복(服)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오니 강백진이 김종직의 시집(詩集)을 신에게 주면서 간행을 부탁하였습니다. 신이 이에 초출(抄出)하여 전라도 관찰사 이인형(李仁亨)에게 주어 간행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선사(繕寫)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 염려되어 교서관 별좌(校書館別坐) 이수무(李秀茂)와 교리(校理) 유효산(柳孝山)에게 부탁하여 주자(鑄字)로 먼저 1권을 인쇄하였습니다. 신이 명(明) 나라에 가게 되어 그 나머지 4권을 참의 이창신(李昌臣)에게 주면서 이수무에게 부탁하여 인쇄를 마치게 하고, 그 인쇄본을 이인형에게 보내 주도록 하였습니다. 그 본고(本藁) 7권은 모두 이창신에게 주었습니다.
이 기록을 조위의 연보(年譜)와 비교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위는 성종 23년(1492) 도승지가 되었으며, 가을에 김종직의 상을 당하였다. 성종 24년(1493) 6월에 김종직의 시문을 찬집(纂集)하라는 왕명을 받아 17권으로 정리한 후에 성종의 을람(乙覽)을 거쳤으나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연산군 1년(1495) 8월에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후, 10월에 모친상을 당하자 후임자인 정석견에게 부탁하여 점필재 문집 1권을 간행하였다. 연산군 3년(1497) 10월에 복을 마치고, 12월 밀양으로 가서 점필재의 묘소에 제(祭)를 지내고 상경하였다. 연산군 4년(1498) 강백진의 부탁으로 점필재시집 1권을 주자로 인쇄하고 나머지 4권의 인쇄를 부탁한 후, 4월에 성절사(聖節使)로 명 나라에 갔다.
이상에서 《점필재집》의 문집은 1495년, 시집은 1497년에 각각 초간(初刊)되었음을 알 수 있다.(초간본) 이 초간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오사화로 인한 필화사건(筆禍事件) 때문이다.
이처럼 문인들에 의하여 간행된 《점필재집》의 초간본은 무오사화로 인하여 소각(消却), 훼판(毁板)되는 수난을 당하였다. 무오사화는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면서,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金馹孫)이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사초(史草)에 올린,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문제삼아 유자광(柳子光), 이극돈(李克墩) 등의 훈구파(勳舊派)가 점필재와 그 문인들이 주축인 사림파(士林派)를 공격한 정치적인 사건이다. 조의제문의 내용은 단종(端宗)을 의제(義帝)에 비기어 그 죽음을 슬퍼하고, 세조(世祖)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는 것이다. 《연산군일기》 권30, 연산군 4년 7월 15일(기유) 조에 따르면, 유자광은 연산군(燕山君)에게 조의제문을 구절구절 풀이하면서, 김종직의 죄를 다스리고 아울러 《점필재집》과 그 판본을 모두 불사르며 이를 간행한 사람도 죄를 다스리라고 요청하였는데, 이는 조의제문이 《점필재집》의 맨 앞에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연산군은 동년 7월 17일(신해)에 전라도 도사 정종보(鄭宗輔)에게 '전라도에서 간행한 《점필재집》의 판본을 소각하고 훼판하라.'는 유시(諭示)를 내리고, 또 예조(禮曹)에 '김종직의 문집을 소장한 자는 즉시 수납(收納)하게 하고, 수납하지 않는 자는 엄중하게 처벌하라.'고 전교(傳敎)하였다. 그 결과 《점필재집》은 소각, 훼판되기에 이르렀으며, 조위는 의주(義州)로 유배되었고, 정석견은 파직당하였다.
이와 같은 《점필재집》의 소각과 훼판은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 나타난 개인 문집 최초의 필화사건(筆禍事件)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지식층에 매우 큰 충격을 던져 주어 문인들의 저작활동이 많이 위축되었다. 그리고 이후 문집의 편찬과 간행에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되거나 분쟁을 야기시킬 수 있는 기휘문자(忌諱文字)를 되도록이면 문집에 수록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3. 점필재집의 여러 가지 중간본
김종직은 무오사화로 인하여 부관참시를 당하는 수난을 겪었으나, 중종과 명종 대를 거치면서 그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가 정국을 주도함에 따라 성리학의 종장으로서의 지위와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이와 함께 그의 문집도 필요하게 되어 《점필재집》을 중간하게 되었다.
《점필재집》은 무오사화 이후 22년만인 중종(中宗) 15년 경진년(1520)에 강중진(康仲珍)이 선산(善山)에서 목판(木板)으로 중간하였다.(중간본) 이때의 간행 경위는 경진년에 쓴 문인 남곤(南袞)의 서문(序文)이 있어서 그 전말을 알 수 있다. 그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진년 가을에 판교(判校) 강군 자도(康君子韜, 康仲珍)가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저의 외삼촌인 점필재의 시문(詩文)은 일찍이 찾아서 바치라는 성종(成宗)의 명을 받았으나 미처 올리기도 전에 임금이 승하하셨으며, 계속해서 무오사화를 만나 초본(抄本) 20여 질이 모두 불에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들보 위에 올려 둔 난고(亂稿)가 있었는데 가인(家人)이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하여 가져다가 불에 던졌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갈고리로 불 속에서 한두 편을 건져내어 모두 불에 타는 것을 겨우 면하였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열에 두셋도 못 됩니다. 제가 이를 상자에 보관해 두고 그리운 마음을 달래 왔으나, 언제나 물이나 불 또는 쥐와 좀의 피해를 받아 흩어지거나 없어지지나 않을까 염려해 왔습니다. 근래에 선산의 촌사(村舍)에서 읍재(邑宰)와 의논하여 판각(板刻)이 이미 이루어졌으나 제사(題辭)가 없으니 선생이 저를 위하여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이 서문에 따르면, 《점필재집》을 성종에게 올리지도 못하고 간행하지도 않았다고 하였으나, 이는 앞에 나온 조위의 진술과 《연산군일기》의 기록으로 볼 때 사실이 아니다. 아마도 무오사화로 인하여 입은 피해 때문에 일부러 간행된 사실을 숨기려 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서문에서 초본20여 질이 있었다는 말과 김종직의 연보에서 문집의 초본이 20여 질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애초에 강백진 등이 편집한 《점필재집》은 20여 질이었고, 이를 조위가 다시 17권으로 정리하여 성종에게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이 중간본은 경진본(庚辰本)이라고도 하는데, 시집 23권, 문집 2권 합25권 7책이며 앞에 남곤의 서문이 있다. 현전하는 최고본으로 현재 완질(完帙)은 없고 고려대학교 만송문고와 이원주(李源周), 김두순(金斗淳)이 각각 결본(缺本)을 소장하고 있다.
임진왜란 등으로 《점필재집》이 거의 전해지지 않자, 인조 27년 기축년(1649)에 경상도 관찰사 이만(李曼)이 다시 간행하였다. 이는 《이준록(?尊錄)》의 지(識)에 부기된 간기(刊記)에,

홍치(弘治) 10년 정사년(1497)에 처음으로 책을 간행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없어져 전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0여 년 후인 기축년에 문집은 방백(方伯) 이만이 다시 인포(印布)하였으며, 《이준록》은 예림서원에서 중간하였다.
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여기서 기축년은 이만의 생몰년(1605;선조 38~1664;현종 5)을 통하여 1649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간행한 기축본(己丑本)이 대체로 경진본의 체재를 따르고 있어 새로 판각한 것인지 아니면 보판(補板)한 후쇄본(後刷本)인지 분명하지 않으며, 간행장소는 《이준록》과 함께 예림서원에서 간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경진본과 다른 점은 남곤의 서문이 없으며, 두주(頭註)가 새로 추가된 것이다. 이 본은 현재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한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제12집(輯)에 표점 영인하여 수록하였다.
그 후 고종(高宗) 6년 기사년(1869)에 13대손 김식(金埴)이 문집의 판목(板木)이 완결(?缺)되었다고 하여 밀양의 예림서원에서 시집 8권, 문집 2권, 연보, 부록 합 9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기사본) 기사본은 앞서 간행된 경진본이나 기축본과는 달리 시집을 23권에서 8권으로 재편하여 시(詩)의 분량을 대폭 줄였으나, 문집은 대체로 기축본의 체제에 따라 보판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목록(目錄)을 만들어 각각 시집과 문집의 앞에 넣었으며, 시 2수(首)와 답박상사형달서(答朴上舍亨達書)와 사미정기(四美亭記) 등 문 2편(篇)을 추가하고, 두주는 삭제하거나 본문에 고쳐서 판각하였다. 한편 처음으로 연보(年譜)와 부록(附錄)을 합부(合附)하였다.
연보는 저자의 손자인 박재(璞齋) 김유(金紐)가 선조 8년 경진년(1580)에 제현(諸賢)의 기록을 채록하고 세상에 전하는 여러 서적과 전문(傳聞)을 수집하여 편찬한 것이다. 점필재의 연보와 무오사화 사적(戊午史禍事蹟), 문인록(門人錄), 김유의 후서(後序), 홍귀달이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정조(正祖) 13년 기유년(1789)에 사손(嗣孫) 김상도(金相度)가 이헌경(李獻慶)의 감정(勘正)을 받아 예림서원에서 간행하였다. 그 후 판목이 완결(?缺)되어 고종 6년에 13대손 김식(金埴)과 사손 김창현(金昌鉉)이 《국조보감(國朝寶鑑)》과 여러 문집의 기록을 추가하여 예림서원에서 목판으로 중간한 것이다.
부록은 이원(李?)의 시장(諡狀), 7대손 김시락(金是洛)의 복시소(復諡疏),예조 회계(禮曹回啓)와 예림서원 청액소(禮林書院請額疏) 등 예림서원에 관한 사적(事蹟), 안공(安▣)의 행록(行錄) 등 제현(諸賢)의 글이 있는데, 누가 언제 편집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기사본은 간행 과정에서 김식이 문집을 마음대로 중간하고, 또 문인록(門人錄)에 새로 문인을 추가하였다고 하여 분쟁이 야기되기도 하였는데, 《점필재김선생문도첨간변파록(?畢齋金先生門徒添刊辨破錄)》은 이에 대한 관련 문서를 수록한 것이다. 이 본은 현재 이우성(李佑成)이 소장하고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이조명현집(李朝名賢集)》 제2집에 실린 《점필재집》은 기축본의 시집 23권과 기사본의 문집2권 및 연보, 부록을 합편한 것이다.
고종 8년 신미년(1871)에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인하여 서원이 훼철(毁撤)된 후 많은 판본이 유실되자, 고종 29년 임진년(1892)에 후손인 김계현(金啓鉉)과 김창현(金昌鉉) 등이 기사본의 유실된 판본을 수보(修補)하고 《이준록》을 합부하여 밀양에서 간행하였다.(임진본) 따라서 임진본은 기사본과 편차에 별다른 차이가 없으나, 다만 연보와 부록은 문자의 출입으로 인하여 그 편차가 다르게 되어 있다. 1892년에 쓴 송병선(宋秉璿)의 발문과 이헌영의 지(誌)가 있다. 이 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계명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1938년 15대손인 김태진(金泰鎭)이 임진본을 양지(洋紙)에 후쇄한 것이 있는데, 김태진의 발문이 첨부되어 있다. 이 본은 현재 연세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이준록》은 저자가 부친인 김숙자에 대한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여기서 이준(?尊)은 《예기(禮記)》제통편(祭統篇)의 공회(孔?)의 정명(鼎銘)에서 '겨울 제사 때 이정(?鼎)에 새긴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선조(先祖)의 아름다운 일을 정(鼎)에 새겨서 후세에 전한다는 의미이다. 김종직이 부친상을 마친 세조 4년(1458)에 편찬하고, 성종 11년(1480)에 모친상을 당하여 다시 교정한 것이다. 저자의 생질인 흥해 군수(興海郡守) 강백진(康伯珍)이 연산군 3년 정사년(1497)에 흥해에서 간행하고, 판목(板木)은 선산으로 옮겨서 보관하였다. 그 후 인조 27년 기축년(1649)에 경상도 관찰사 이만이 밀양의 예림서원에서 중간하였으며, 문집에 합부되었다.
본 번역본의 저본은, 이만이 1649년에 간행한 기축본의 시집과 문집에, 동년에 중간한 《이준록》, 그리고 이헌경(李獻慶)의 교정을 거쳐 1789년 간행한 연보를 합부한 것이다. 기축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장본(奎579)이고, 《이준록》은 동 규장각장본(古3428-826)이며, 연보는 동 규장각장본(古3428-289)이다.

4. 점필재집의 구성과 내용
《국역점필재집》은 시집(詩集) 23권, 문집(文集) 2권, 이준록 2권, 연보 합 9책으로 되어 있다.
시집 권1~권23에는 각체(各體)의 시가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각 권에는 대략 40~60제(題)의 시가 실려 있어 모두 1,076제(題)나 된다. 이처럼 문집의 대부분이 시로 구성되어 있어 점필재가 시문에 주력한 문장가임을 알게 한다. 이 때문에 《퇴계집(退溪集)》 권2 한거차조사경구경서김순거권경수제인창수운십사수(閒居次趙士敬具景瑞金舜擧權景受諸人唱酬韻十四首)의 주(註)에서 퇴계(退溪)는 "점필재가 시문(詩文)을 주장하였으며 전아하여 도에 가까웠다."라고 비평을 하였는데, 이는 성리학에 대한 점필재의 저술이 남아 있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점필재의 시대는 아직도 성리학보다는 사장(詞章)이 더 성했던 시기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문집 권1에는 교(敎) 2편, 찬(贊) 1편, 책문(冊文) 4편, 제문(祭文) 1편,애사(哀辭) 1편, 사(辭) 1편, 부(賦) 3편, 서(書) 5편, 서(序) 13편 등이 있다.
교는 의정부(議政府)에 내리는 유교(諭敎)이고, 찬은 성종이 김흔(金?)에게 내려준 어찰에 대한 것이다. 책문은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애책문과, 예종 대왕(睿宗大王)의 시책문, 장순빈(章順嬪)의 애책문, 인수왕비(仁粹王妃)에 대한 봉숭옥책문이다. 서(書)는 진산군(晉山君) 강희맹(姜希孟)과 남효온(南孝溫), 표연말(表沿沫) 등에게 보낸 것이고, 서문에는 형재시집서(亨齋詩集序)와 신문충공집서(申文忠公集序), 윤선생상시집서(尹先生祥詩集序), 황화집서(皇華集序) 등이 있다.
권2에는 자설(字說) 1편, 설(說) 1편, 발(跋) 7편, 기(記) 14편, 지도지(地圖誌) 2편, 신도비명 1편, 묘지명 2편, 효문명(孝門銘) 1편, 묘갈명 1편, 유두류록(遊頭流錄) 등이 있다.
자설은 일본인 거사(居士) 중준(重俊)의 자를 세영(世英)으로 지은 것을 적은 글이고, 발송도록(跋松都錄)은 성현(成俔)이 채수(蔡壽), 허침(許琛), 조위(曺偉) 등과 송도를 유람한 기행문에 발문을 쓴 것이며, 또 새로 간행한 《주례(周禮)》와 《동국여지승람》에 대한 발문이다. 기문은 만권당(萬卷堂), 관해루(觀海樓), 안음(安陰)의 향교(鄕校), 내반원(內班院), 창경궁의 환취정(環翠亭), 상주(尙州)의 풍영루(風詠樓), 안동의 영호루(映湖樓) 등에 대한 것이다. 지도지는 경상도와 선산의 지도(地圖)에 대한 것이다. 묘도문자는 황치신(黃致身)의 신도비명, 이파(李坡)와 유음(兪?)의 묘지명, 김극일(金克一)의 효문명과 손소(孫昭)의 묘갈명 등이다. 유두류록은 점필재가 함양 군수로 재직 중이던 성종 3년(1472)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 동안 조위, 유호인, 승 해공(解空) 등과 함께 관내의 지리산(智異山)을 유람한 기록이다.
《이준록》은 상, 하 2권과 부록으로 되어 있다. 상권의 보도(譜圖), 기년(紀年), 사우(師友)는 각각 김숙자의 가계와 연보, 사우 관계를 기술한 것이고, 하권의 사업(事業), 제의(祭儀)는 학문과 출처, 봉제사(奉祭祀) 등에대한 내용을 담은 것이며, 부록은 저자의 외조부인 박홍신(朴弘信)의 전(傳)과 어머니 박 영인(朴令人)의 행장이다. 그리고 초간(初刊) 때 조위가 쓴 서문과 강백진이 쓴 지문(誌文)이 각각 실려 있다.
연보는 저자의 연대기를 환력(宦歷)을 중심으로 서술한 연보와 무오사화의 사적(事蹟), 문인록, 김유의 발문, 신도비명으로 되어 있다. 신도비명은 조위의 요청으로 홍귀달이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신도비가 훼손되자 인조 12년(1634) 밀양의 유림들이 다시 세웠으며, 이를 기록한 장현광(張顯光)의 지(誌)가 있다.

5. 맺음말
이상에서 《점필재집》의 간행 경위와 그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김종직은 정몽주, 길재, 김숙자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사림의 영수로서 그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사림파를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김종직의 사후에 간행된 《점필재집》은 그의 저작인 조의제문으로 야기된 정치적 사건인 무오사화로 소각, 훼판되는 필화사건을 겪었다. 그 결과 당시의 지식층에 큰 충격을 주어 저술활동이 많이 위축되었으며, 또 이후 문집의 간행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되거나 분쟁을 야기시킬 수 있는 기휘문자(忌諱文字)는 문집에 수록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 점이다.
현재 《점필재집》은 여러 번의 중간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후쇄본(後刷本)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오랜 시기에 걸쳐 《점필재집》의 수요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점필재가 시문(詩文)을 주장하였다는 퇴계(退溪)의 비평은 점필재를 조금 폄하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있고, 아울러 제현(諸賢)의 문집에서도 《점필재집》을 이용한 빈도가 많지않은 듯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대부분의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 《점필재집》을 많이 소장하고는 있었지만, 이를 읽거나 이용하는 빈도는 《퇴계집》등에 비교하여 상당히 낮다고 하겠다. 이는 영남 학맥에 있어서 김종직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종장(宗匠)으로서의 위상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고전 번역원에서 옮겨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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