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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인문학석강 민은기 교수 - 유튜브
  • 교보아트스페이스
저지대
548쪽 | 규격外
ISBN-10 : 8960901830
ISBN-13 : 9788960901834
저지대 중고
저자 줌파 라히리 | 역자 서창렬 | 출판사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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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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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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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세월에 걸쳐 기억된 사랑과 상처! 오헨리 문학상, 펜/헤밍웨이상,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줌파 라히리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저지대』.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선택으로 판이한 삶을 살아가는 두 형제와 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친밀한 두 형제와 이들의 아내가 된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4대에 걸친 개인사를 들여다본다. 6, 70년대 인도와 미국을 배경으로 시대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 캘커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15개월 터울의 형제, 수바시와 우다얀. 일탈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던 수바시는 미국 유학을 떠나고, 우다얀은 사회운동에 몰두하며 친구의 여동생 가우리를 만나 결혼한다. 어느 날 수바시는 동생이 혁명 세력을 제거하려는 경찰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음을 알게 되고 제수인 가우리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부모님이 출산 후 아이와 엄마를 떼어놓으려 한다는 걸 알게 된 수바시는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관습대로 가우리를 자신의 아내로 삼아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우다얀에 관한 기억은 아내 가우리와 딸 벨라, 나아가 벨라의 딸인 메그나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저자소개

저자 : 줌파 라히리
저자 줌파 라히리 Jhumpa Lahiri는 1967년 영국 런던 출생.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곧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바너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서 르네상스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을 출간해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2년 구겐하임재단 장학금을 받았다. 2003년 출간한 장편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 ‘뉴요커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로 꼽혔고 전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2008년 출간한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은 그해 프랭크오코너 국제단편소설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최우수 도서 10’에 들었다. 2012년 미국문예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두 번째 장편소설 『저지대』를 발표해 “보기 드물게 우아하고 침착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고, 맨부커상과 미국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에 각각 오르며 또 한 번 저력을 과시했다.

역자 : 서창렬
역자 서창렬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축복받은 집』 『토미노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제3의 바이러스』 『암스테르담』 『촘스키』 『벡터』 『쇼잉 오프』 『마틴과 존』 『구원』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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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영국인들은 물에 잠긴 숲을 없애고 도로를 깔았다. 1770년에 그들은 캘커타의 남쪽 경계 너머에 교외 주택 지역을 건설했는데, 초기에는 인도인보다 유럽인이 더 많이 살았다. 점무늬 사슴이 노닐고 물총새가 지평선을 가로지르며 휙휙 날아다니는 곳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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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은 물에 잠긴 숲을 없애고 도로를 깔았다. 1770년에 그들은 캘커타의 남쪽 경계 너머에 교외 주택 지역을 건설했는데, 초기에는 인도인보다 유럽인이 더 많이 살았다. 점무늬 사슴이 노닐고 물총새가 지평선을 가로지르며 휙휙 날아다니는 곳이었다.
윌리엄 톨리 소령은 아디강가 강의 일부를 파고 준설했는데, 그래서 이 지역의 명칭이 톨리 소령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으며, 아디강가 강은 톨리 수로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톨리 소령은 캘커타와 동벵골 간의 해운업이 가능하게 했다.
-29쪽

1967년에 신문과 전全인도라디오에서 낙살바리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다르질링 지역에 있는 여러 촌락 중 하나로 서벵골 북단에 있는 좁고 긴 마을이었다. 히말라야 산기슭의 언덕에 파묻혀 있는 이 마을은 캘커타에서 650킬로미터쯤 떨어졌는데, 톨리건지보다 티베트가 더 가까웠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차 플랜테이션 농장이나 대규모 토지에서 일하는 소작농이었다. 그들은 대를 이어 실질적으로 바뀐 게 없는 봉건제도 아래서 살았다.
부유한 지주에게 교묘히 이용당했다. 자신들이 경작해온 땅에서 쫓겨났으며, 자신들이 재배한 작물에서 나오는 소득을 받지 못했다. 돈놀이꾼의 먹잇감이 되었다. 생존에 필요한 임금을 착취당했고, 먹을 것이 부족하여 죽는 사람도 생겼다.
그해 봄, 낙살바리에 사는 한 소작인이 불법적으로 쫓겨난 땅을 갈아 일구려 했을 때 그 땅의 지주가 폭력배들을 보내서 폭행했다. 그들은 소작인의 쟁기와 소를 빼앗았다. 경찰은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이 일이 있은 다음 소작인들이 집단적으로 보복을 했다. 자신들을 속이고 부당하게 작성한 문서와 기록물들을 불태웠다. 강제로 토지를 차지했다.
-39~40쪽

네가 구호를 쓰니? 수바시가 물었다.
지배계급은 전국 각지에서 선전을 해대고 있어. 그들이 인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허락되고 그 밖의 사람은 허락되지 않을 이유가 어딨어?
경찰이 널 체포하면 어떡할 거야?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우다얀은 라디오를 켰다. 형, 문제가 있는데도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그 문제에 기여하는 게 돼.
-53쪽

왜 철학을 전공해?
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해?
플라톤은 철학의 목적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살아 있지 않다면 배울 것도 없어. 죽음 앞에서 우린 평등해. 그 점에선 죽음이 삶보다 나은 것 같아.
-93쪽

그는 그녀의 환심을 사려 했다. 가우리는 그가 거기 서서 그녀를 보며 말을 하면서도 마음을 정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마음속에 이미 그녀의 일부를 담아버렸다. 허락도 없이 그녀에게서 뽑아간 것이었다. 어떤 남자도 시도하지 않았던 행위인데 그녀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였기 때문이다.
-98쪽

지구 상에서 시간을 특징짓는 것은 태양과 달이다. 태양과 달의 회전이 낮과 밤을 구분하며, 이는 시계와 달력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계속해서 명멸하는 점이었다. 반짝이다 약해지는,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것이었다. 현재의 지속 시간은 얼마일까? 1초? 그 이하? 현재는 항상 변했다. 현재를 생각하는 동안 현재는 사라졌다.
-241~242쪽

고립은 자체적인 형태의 교제를 제공했다. 자신의 방의 믿음직한 고요, 저녁의 변함없는 정적,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게 될 것이며, 어떤 방해도, 어떤 뜻밖의 일도 없을 것이라는 약속 등이 친구가 되었다.
-376쪽

수바시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텔레비전을 껐다. 거실의 창을 통해 보이는 움직임에 시야가 산만해졌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이며 자꾸 날아다니는 새들이었다.
그는 좀 더 잘 보려고 창으로 걸어갔다. 마당에 심어진 나무의 꼭대기에 작고 시끄러운 검은 빛깔의 새 떼가 정신없이 날아오고 날아갔다. 이 겨울에 나무에 아직 남아 있는 자양분을 기를 쓰고 섭취하면서. 새들의 움직임에 화가 치밀었다. 살아남고자 하는 행동이 갑자기 몹시 불쾌하게 여겨졌다.
-391~392쪽

거미는 자신의 실로써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
-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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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2013년 맨부커상 결선작 2013년 내셔널북어워드 결선작 2014년 베일리스여성문학상 롱리스트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시카고트리뷴》 ‘최고의 책’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최고의 소설’ 《Goodreads》 ‘최고의 책’ ...

[출판사서평 더 보기]

2013년 맨부커상 결선작
2013년 내셔널북어워드 결선작
2014년 베일리스여성문학상 롱리스트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시카고트리뷴》 ‘최고의 책’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최고의 소설’
《Goodreads》 ‘최고의 책’
미국공영라디오(NPR) “엄청난 독서”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2013년 최고의 책’
반스앤노블 ‘최고의 신간’
애플 ‘탑 10 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연휴에 고른 책

퓰리처상, 펜/헤밍웨이상 수상 작가 줌파 라히리의 최신작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그리는, 떠난 이와 남은 이의 섬세한 일대기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의 2013년 최신작 『저지대』가 출간됐다. 『축복받은 집』『이름 뒤에 숨은 사랑』『그저 좋은 사람』으로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줌파 라히리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통산 네 번째 책이다. 단편집인 전작 『그저 좋은 사람』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정식 출간되기 전부터 사전 검토용 원고만으로 이미 미국 출판계의 권위 소식지인 《버즈북》을 통해 “2013년 최고의 소설”이라는 검증을 받았고, 퓰리처상에 버금가는 미국 최고 문학상인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과 영미권 최고의 공신력을 자랑하는 맨부커상 최종심에 각각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출간 당시 초판 35만 부를 발행하는 기염을 토했고, 《뉴욕타임스》 《오프라매거진, O》 《뉴스위크》 《뉴욕리뷰오브북스》 등 유수 언론과 대중의 극찬을 받았다.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2013년 최고의 책’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지대』는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선택으로 판이한 삶을 살아가는 두 형제와 가족의 70여 년간의 일대기다. 부조리와 사상과 혁명으로 어지러운 인도와 제3국 미국이 배경인 이 작품은, 누군가의 자식이자 형제이자 남편인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남은 가족이 어떤 상실감을 겪어나가는지, 거기서 어떤 선택이 비롯하며 어떤 인생행로가 뒤따르는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직선적으로 그려나간다. 지난 작품들에서 개인의 문화적 배경과 인간관계를 인종과 국적을 넘어 보편적 문법으로 파고든 작가답게, 줌파 라히리는 인도의 현대사를 작품에 끌어오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기억과 상처 그 인간적 정서를 정교하고 섬세하게 더듬는다. 이 작품이 특정 문화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그리고 수미일관 진중한 자세를 유지하는데도 막힘없이 읽히는 건 쉬운 언어로 물처럼 편안하게 틈입하는 줌파 라히리만의 문체와 스토리텔링 덕분이다.

“뛰어나다. 라히리는 지문을 전혀 남기지 않고 등장인물을 다룬다.”
- 《뉴욕타임스 북리뷰》

“『저지대』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의 운명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개인의 행복에 관한 것이다. 누구보다도 투르게네프가 그녀가 규정하는 문제를 잘 인식할 것이다. 라히리의 산문은 현재진행형처럼, 점묘파 그림처럼 전개된다.”
-《뉴욕리뷰오브북스》

줌파 라히리와 『저지대』는 영국의 명망 있는 상으로 영어로 작품을 쓴 여성 작가에게 수여하는 베일리스여성문학상에 현재 후보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2013년 맨부커상 수상자인 엘리너 캐튼,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 등과 예심을 다투게 되며, 수상자는 2014년 6월 4일 발표된다. 한편 줌파 라히리는 2010년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의해 예술인문대통령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되었다.

두 형제와 그들의 아내였던 여자가 이끌어가는
상실과 수용, 기다림의 현재진행형 삶

수바시와 우다얀은 인도 캘커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15개월 터울의 형제다. 쌍둥이처럼 친밀한 사이지만 성격은 달라, 수바시는 순종적이고 차분하며 우다얀은 자주적이고 열정적이다. 이들의 삶은 서로 다른 대학을 다니고부터 뚜렷하게 갈림길을 걷는다. 수바시는 형으로서 일탈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 미국 유학을 떠나고, 우다얀은 농민이 탄압당하는 인도의 현실을 목격하고 마오쩌둥주의를 받아들여 사회운동에 몰두한다.
형제는 편지로 소식을 전하며 인도와 미국, 서로 다른 대륙에서 젊은 시기를 보낸다. 그러는 사이 동생 우다얀이 친구의 여동생인 가우리를 만나 결혼하는데, 미국에서 사랑의 실패를 겪은 수바시는 이런 동생의 소식을 듣고 무언가 뒤처진 느낌을 받으며 이젠 서로가 정말로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실감해간다. 그러나 이런 이질감도 잠시, 시간이 흐르며 소식이 뜸해지던 어느 날 수바시는 우다얀이 죽었다는 짤막한 전보를 받는다.
캘커타의 고향 집을 방문한 수다시는 동생이 혁명 세력을 제거하려는 경찰들에게 목숨을 잃었음을 알게 된다. 아울러 제수인 가우리가 배 속에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도 듣는다. 가우리가 탐탁지 않은 수바시의 부모님은 출산 후 아이와 엄마를 떼어놓을 낌새다. 수바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마음먹고서, 관습대로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아 함께 미국행을 택한다……

친밀한 두 형제와 이들의 아내가 된 한 여자가 주축인 『저지대』는 인도와 미국을 배경으로 4대에 걸친 개인사를 농밀하게 들여다본다.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으로서 기반을 마련해가던 6, 70년대 인도와 미국이 주 배경으로, 시대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침착한 눈길로 묵묵히 따른다.
영국인이 드나들던 골프장과 인도인 촌락 사이에 자리한 저지대. 그곳은 식민지였던 인도와 독립국 인도를 가르는 상징적 경계이자 형제의 어릴 적 추억이 각인된 곳이며, 동생 우다얀이 끝내 목숨을 잃은 장소다. 우기가 끝나면 저지대에 고이는 물처럼, 형 수바시와 아내 가우리 그리고 부모님의 머릿속에는 동생 우다얀이 혁명 운동을 하다가 총살당한 기억이 깊게 고였다. 이들은 우다얀과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캘커타의 집에서, 또는 우다얀이 남긴 상처를 피해 멀리 미국 로드아일랜드에서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일을 다니고, 사랑을 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한번 각인된 상처는 지우기 어렵고, 산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다. 우다얀에 관한 기억은 아내 가우리와 딸 벨라, 나아가 벨라의 딸인 메그나의 삶에까지 대를 이어 영향을 끼친다.

톨리클럽의 동쪽, 데샤프란 사시말 로드가 둘로 갈라지고 나면 조그만 회교성원이 보인다. 회교성원을 돌아가면 조용한 주거지가 나온다. 좁은 길과 주로 중산층이 사는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곳이다.
한때 이 주거지 안에 길쭉한 연못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연못 뒤로는 그리 넓지 않은 저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우기가 끝나면 연못의 수위가 높아져서 두 연못 사이에 쌓은 제방이 보이지 않았다. 저지대에도 1미터 안팎의 깊이로 빗물이 들어찼으며, 물은 오랫동안 그대로 고여 있었다.
-13쪽

소설의 시작이 암시하듯 등장인물들의 삶은 얼핏 운명대로 정해진 길을 걷는 듯하다. 하지만 줌파 라히리의 이야기는 결론만을 향해 맹렬히 치닫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물들 각각의 삶을 장마다 번갈아 배치하여 특정인 중심의 서사에 제동을 걸고, 인생에는 다양한 관점과 기억, 다양한 기로의 순간이 있음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삶이란 시간과 기억이 쌓여 사후적으로 의미를 띠는 것이듯, 여러 인물의 관점을 모아 삶의 총체를 빚어내는 『저지대』 역시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는 저마다의 선택과 행동을 섣부르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각자의 삶이 옳았는지 말하기는 힘든데, “현재진행형처럼, 점묘파 그림처럼”(《뉴욕리뷰오브북스》) 지나온 장면들이, 기억의 속성이 그렇듯, 불쑥불쑥 튀어나와 아릿한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저지대』는 인물의 행동과 사건 모두를 인과관계의 도식에 무리하게 담지 않고 그 자체로 존중하는 미덕을 보인다.

수바시와 우다얀은 셀 수 없이 많이 저지대를 가로질러 걸었다. 축구를 하려면 놀이터로 가야 했는데, 이 길이 동네 변두리에 있는 놀이터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물웅덩이를 피하고, 제자리에 남아 땅에 엉겨 붙은 부레옥잠 이파리를 건너뛰며 걸었다. 숨을 쉴 때마다 습한 공기가 코로 밀려들었다.
어떤 생물은 건기를 견뎌낼 수 있는 알을 낳았다. 또 어떤 생물은 진흙땅에 몸을 묻고 죽은 체 지내면서 우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14쪽

인도계 미국인 경계자의 소설
그래서 더욱 보편적인 작품

1999년 첫 단편집 『축복받은 집』을 내기까지 줌파 라히리는 수년간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데뷔 후에는 첫 단편집으로 오헨리 문학상, 펜/헤밍웨이상,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지금껏 『저지대』를 포함해 장편 2권과 단편집 2권, 단 네 권의 책으로 미국의 대표 작가군에 합류했다.(2012년 줌파 라히리는 필립 로스, 폴 오스터 등이 등재된 미국문예아카데미에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불과 15년 만에 큰 성과를 이룬 줌파 라히리 저력의 동력은 작가 자신이 인도와 미국의 경계인이라는 점, 다문화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저지대』를 발표한 뒤인 2014년 1월, 《타임스오브인디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미국 출판계를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시장에 번역물이 적다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 미국 밖에서 살아보면 관점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혼란스러운 경험을 트인 관점으로 승화했다. 그러기에 지역과 인종에 갇히지 않는 작품들을 쓸 수 있었다. 『저지대』 역시 그 결과물이다. 『저지대』를 한창 집필할 때 그녀는 가족과 로마에서 생활했다. 고국이 되어버린 미국에서 벗어나 또 한 번 이방인이 된 일이 『저지대』를 쓰는 데 힘을 불어넣었고, 편견에서 벗어난 눈으로 인도의 거친 현대사와 개인들의 삶을 침착하게 스케치할 수 있었다. 그 성취는 유수 언론의 다음과 같은 찬사에서 드러난다.

“비범하다.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명료하고 투명한 산문.”
- 《뉴스위크》

“우아하고 한결같다. 참으로 정치하다. 라히리의 문장은 무자비할 정도로 명료하다. 그녀는 위대한 미국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 《시카고트리뷴》

“대단히 잘 쓴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랑, 혁명, 버림일 듯싶다. 그러나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 핍진한 이야기다.”
-《퍼레이드》

추천사

이것은 쌍둥이처럼 붙어 지내던 한 형제의 판이한 삶과 죽음의 궤적이자, 그들 형제의 아내였던 한 여자의 독특한 삶의 이력이자, 신생독립국 인도의 고난에 찬 역사다. “거미는 자신의 실로써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줌파 라히리는 자신만의 언어의 실로써 광활하고 다채로운 서사의 차원을 열어젖혔다. 담백하고 사려 깊은 문장들, 제 운명을 뒤흔들고 파괴하는 매력적인 인물들, 청춘의 신념과 고뇌가 낳은 사랑과 증오의 비극들은, 인도만이 아닌, 독립과 전쟁과 분단을 거친 이 땅의 비극과도 닮았다.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 고여 있다 어느 순간 마법의 반지처럼 우리의 현재 속에 고요히 맞물려 들어온다.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우다얀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을, 그가 죽어가면서 자기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여름날의 손차양을 떠올리는 결말을 잊을 수 없다. 오랜만에 마음 놓고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맑고 넓은 소설을 만났다.
-권여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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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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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의 책을 읽는다는 것. | ss**um | 2015.12.15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지금껏 살아온 세월 중, 다시 돌아가 새롭게 살아보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과연 언제일까? 결혼하기 전? 마지막 회사...

     지금껏 살아온 세월 중, 다시 돌아가 새롭게 살아보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과연 언제일까? 결혼하기 전? 마지막 회사를 관두기 전? 아니면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 볼 수 있는 그 시절? 예전에는 어떤 순간이 또렷하게 떠올랐는데 지금은 모든 게 두루뭉술하다. 콕 집어서 말할 수 없고 그 시절로 돌아간들 내 삶이 과연 크게 변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 것이다. 나의 성정은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과연 후회 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내 선택에 자신 있어 할 용기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이 작품 속의 주인공 수바시, 우다얀, 가우리라면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언제일까? 수바시라면 가우리와 결혼하고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전, 우다얀이라면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집으로 숨어들기 전, 가우리라면 우다얀과 결혼하기 전이나 수바시와 벨라를 두고 집을 떠나오기 전이라고 해야 할까? 잠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때로 돌아가 또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다른 갈등, 다른 고민, 그들이 살아온 삶과 크게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을 것 같지 않다. 내 삶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선택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가 열정적이지 않듯 그들도 당시에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반대의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 확신할 수 없었을 거란 뜻이다.

      수바시는 홀로 남겨진 동생의 아내 가우리를 그대로 집에 두었다간 부모님의 구박을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또한 앞으로 창창한 그녀의 삶과 그녀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인 애정을 떨쳐낼 수 없었다. 자신과 결혼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 믿었다. 형제의 아내가 된 가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우다얀을 평생 떨쳐낼 수 없었대도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살았으며 좋았을 것을. 그녀는 아주버니에서 남편이 된 수바시도, 유일한 우다얀의 흔적인 핏줄 벨라를 사랑하며 함께 살지 않았다. 자신의 시어머니가 내다보았듯이 그녀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냉담함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과하지도 들끓지도 않는 저자의 문체 속에서 그 모든 사건들을 예감할 수 있었다. 좌익 운동에 가담한 우다얀의 죽음도, 수바시와 가우리의 결혼도, 비밀을 간직한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가우리가 떠날 것이고 때가 되면 벨라가 그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그 모든 걸 예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건 자체에만 매달려 대충 읽어 내려갈 수 없었던 이유는 저자 특유의 섬세한 문장 속에 담긴 그들의 내면과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 들이었다.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대에 대한 이해를 위한 내면 묘사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궤적을 남겼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온전히 동조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지켜본 느낌이라 더욱 더 왈가왈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인물은 가우리다. 수바시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감으로써 인도를, 우다얀을, 가혹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시댁에서 벗어났지만 그녀는 헌신적인 수바시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우다얀을 너무 사랑했다기보다 죽음으로 갑작스런 단절을 요한 우다얀의 그림자 속에 평생 살았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도로 자신의 삶에서도, 위태롭게 지어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도 어떤 위안을 얻어내지 못했다. 외로움을 달래 줄 안락함, 서로를 이어 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뻔히 알면서도 극한 상황들을 선택했고 그 선택 때문에 오랜 시간 아파하고 힘들어했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깊은 공감과 안타까움을 드러낼 수 없었다. 자식을 버리고 떠난 여자,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남자를 배신했다는 꼬리표가 아닌 그녀 자체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끈끈하게 얽혀 살 수 없고 자유를 갈망하는 그녀의 본능을 어떤 식으로든, 어떤 누구든 막을 수 없고 자제시킬 수도 없었을 거란 깨달음 때문이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후회도 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빠져 나오려고도 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빌기도 하지만 이미 스스로 개척한 삶에서 무언가를 바로 잡는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녀를 비난하기보다 존중해야 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누구와 행복을 꾸리지 못하고 핏줄에게 외면당하고 우다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수바시도 마찬가지였다. 벨라를 사랑하고 자신의 딸이라고 여기는 마음을 가우리와의 결혼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긴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고통이 동반되었다. 다른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지극히 현실적인 그의 성정을 보건대 그럭저럭 보기 좋은 가정을 이뤘을 거란 아쉬움이 일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기에 충실히 살아낸 그에게 보상이라고 하듯 노년에 찾아 온 행복이 그나마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기도 했다. 잃을 수도 있었을 벨라를 다시 찾았고 손녀까지 만났다. 그가 말한 대로 더 젊었을 때 엘리스란 여자를 만났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란 말처럼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나보다. 그 시기란 것을 어떻게 기다리고 견디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걸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우다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시기가 닥쳤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옮긴이의 말처럼 이 작품은 주로 사적이고 가족적인 이야기를 다룬 그동안의 소설과 달리 1960년대 후반의 인도 좌익 운동을 배경으로 정치, 사회적인 내용을 중점으로 다뤘다는 점이 특기할만 하다. 또한 시간적 배경이 대하소설 급이라는 말에 동조하게 되는 게 우다얀과 수바시의 어린 시절부터 수바시가 할아버지가 되는 시기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을 뛰어 넘어야 하는 부분을 어떻게 써 내려갈까, 벨라에게 자신은 친아빠가 아니라는 고백을 어떻게 그려낼까란 궁금증에 어색함이 더하지 않는 자연스런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 저자의 문체와 잘 맞물려 책장을 덮을 땐 앞으로 살아내야 할 나의 미래를 이미 살아버린 기분이 들 정도였다.

      초반 30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낑낑대다 쉼 없이 넘어가는 책장을 주체 못하고 결국엔 다 읽어 버리는 게 아까워 조금씩 읽어대던 날 들. 유일하게 좋아하는 여류작가인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읽는다는 사실이 행복감으로 다가왔을 정도다. 책의 내용은 그다지 밝다고 할 수 없으나 인생은 결코 혼자 살아지는 게 아니며 마음속에 비밀과 피해왔던 일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음을 낱낱이 목도했다. 마음속에 거리낌을 오래 간직하며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낭비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작품 속 인물들 중 누군가를 오랫동안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고충을 여실히 드러냈기에 되도록 긍정적인 사고로 타인에게도 너그러워 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만 잘 지켜도 앞으로의 삶이 생각처럼 팍팍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느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복잡다단한 마음을 이렇게 뻔하게 마무리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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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디 총리 취임 이후 가파르게 성장중인 인도. 중국에 이어 제2의 세계 경제 성장 붐을 일으킬 나라로 지목됐지만, ...

     모디 총리 취임 이후 가파르게 성장중인 인도. 중국에 이어 제2의 세계 경제 성장 붐을 일으킬 나라로 지목됐지만, 아직은 약한 듯. 이래저래 인도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찰라 우연히도  인도 형제의 성장소설을 읽게 되었다.


     생각보다 인도는 우리나라와 닮아 있다. 일단, 독립기념일이 같다. 1947년 8월 15일 우리나라보다는 2년 늦게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당시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나뉘어 분쟁이 있었고, 결국 우리나라가 남과 북이 갈라졌듯 파키스탄과 인도로 나뉘어 독립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인 낙살바리 봉기. 인도 공산주의 운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으로 카스트 제도로 인한 부당 착취에 반발해 하층 농민들이 일으킨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학생운동이 일어나는데 이 과정이 우리나라 7,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연상케 한다. 

     


     

    뱅골만의 캘커타 작은 마을에 사는 우다얀과 수비시. 둘은 연년차 형제였지만 쌍둥이, 분신처럼 지낸다. 그러나 둘은 다르게 성장한다. 우다얀은 이상주의자로 낙살리스트가 되고(우리나라로 치면 학생운동 쯤?), 수바시는 공부를 계속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그리고 그들의 여자 가우리. 우다얀은 학생운동을 하며 만난 친구의 동생 가우리와 운명처럼 만나고, 결혼한다. 그러나 우다얀은 결혼한 지 2년만에 죽고 만다. 같이 살고 있는 우다얀의 부모님은 그녀를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고, 우다얀이 죽은 후에야 그녀가 임신중임을 알게 된다. 수비시는 그런 가우리와 결혼을 결심하고 같이 미국으로 떠나 우다얀의 아이를 함께 키운다. 그러나 가우리는 한 아이의 엄마, 수바시의 아내로 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삶을 찾아 홀로 떠난다. 


    그녀는 우다얀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수바시와 결혼했다. 쉽지 않은 일을 감행하긴 했지만 이 역시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쌍의 귀고리 중 한 쪽을 잃어버렸을 때 나머지 한 쪽을 간직하는 것이 소용없는 것처럼. ...P.205

     

    저지대는 형제의 어릴 적 놀이터였다. 우다얀은 그곳에 숨어있다가 죽었고, 그곳에 우다얀의 기념비가 남는다. 어머니는 매일 그곳을 청소하지만 그곳은 결코 깨끗해질 수 없는 고인물이 되어 갔다. 그들의 마음 속 쉼터였던 저지대는 상처로 얼룩진 곳이 되었고 결코 흘러가지 않는, 씻겨내려가지 않는 고인물로 가슴에 남았다.



    저지대가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면, 가우리는 우다얀이 남긴 "빚"이다. 수바시는 기꺼이 그 "빚"을 떠안는다. 우다얀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수바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희생을 자처한 우다얀에 비해, 본인만의 밝은 미래를 위해 미국까지 온 수바시였기에... 가우리와의 결혼, 우다얀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빚을 갚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면 우다얀의 행복을 가로챈 것으로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우리는 끝까지 수바시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결국 떠나면서 우다얀의 아이, 벨라만 남겨진다. 우다얀이 남긴 또하나의 빚 - 벨라. 사실 가우리도 수바시도, 우다얀을 특별히 그리워한 장면은 별로 없었다. 우다얀의 엄마만이 매일매일 저지대를 청소하며 그리워했을 뿐이었다. 가우리나 수바시에게는 닥친 현실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까. 다만, 수바시에게 남겨진 벨라를 키워낸 것, 그것으로 수바시도 우다얀에게 알게모르게 가졌던 마음의 빚을 갚은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미래가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펼쳐질 거라고 여기며 미래를 신뢰했다. 맹목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며, 실상과는 다르게 앞일을 그렸다.  ... 무지와 희망 속에서 의도적으로 기대를 하는 것,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시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증축한 집에서 수바시와 우다얀이 나이 들어갈 것으로 기대해다. 그분들은 수바시가 톨리건지로 돌아와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우다얀은 사회 자체가 바뀌기를 바라며 미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가우리는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그와 함께 결혼 생활을 꾸려가기를 바랐다. 수바시는 로드아일랜드에서 그와 가우리와 벨라가 한 가족으로 지내기를 바랐다. 가우리가 벨라의 엄마이자 그의 아내로 남기를 바랐다. ...P.243

     

    500페이지가 넘어 왠만한 사전 두께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차분차분 조분조분하게 사건을 진행시켜 페이지가 무색할만큼 순식간에 읽힌다. 충격적인 사건과 박진감 넘치는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문체. 전혀 정적이지 않은 줄거리이건만 정적이어서 지루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지만, 이건 완전한 내 스타일 소설이었다. (오바마가 휴가 때 읽은 소설이라서 유명해졌다는데 난 오바마와 같은 취향? ^^;) 하나의 큰 사건을 줄기로 몇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보석같은 문장들을 쏟아낸다. 읽는내내 줌파 라히리 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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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인생에 끼어든 그 짧았던 격정이 지금은 사소하게 느껴졌다. 로드아일랜드에서 열심히 모으다가 그만둔 돌멩이처럼 사소해 보였는데, 잠깐 돌멩이를 움켜쥐었다가 해변을 따라 걸어가면서 바다에 던져버리듯이 그는 그렇게 그녀를 보냈다. ...P.160


    그녀는 그 미래에 눈을 감고 싶었다. 자기 앞에 놓인 날과 달들이 끝나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신의 남은 생애는 계속해서 현재가 되어 나타났고, 시간은 끊임없이 증식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미래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P.179


    우다얀 같은 혼령이 몸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기는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우다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먼 곳에 있었다. 그녀는 아기를 의심쩍게 여겼다. 마치 우다얀은 떠났고, 지금 캘커타뿐 아니라 그녀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지구 상의 다른 모든 지역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직도 정말로 믿겨지지 않는 것처럼. ...P.200


    그녀의 이념은 실천과 괴리되었다. 대학에 오래 몸담은 탓에 실천력이 거세된 것이었다. 오래전에는 자신의 일이 우다얀의 뜻을 받드는 것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은 우다얀이 옳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배반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우다얀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주었던 많은 것들을 그녀는 자신의 지적인 이익을 위해서 약삭빠르게 발전시켰다.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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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캘커타 Tollygunge에는 두개의 저수지가 있다.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면  습지에 물이 차올...
     

    인도 캘커타 Tollygunge에는 두개의 저수지가 있다.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면  습지에 물이 차올라 서서히 두개의 저수지를 잠식시켜 하나의 커다란 저수지가 되버린다.

    한여름 저수지 위로 굵은 빗방울들이 쏟아지면 거대한 수증구름이 올라와 바로 눈앞의 사물이나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지만 비가 그치면 이내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또다시 두개의 저수지로 나눠진다.

    '어떤 생명체들은 가뭄으로 땅이 갈라질때도 악착같이 알을 품어 생명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살아남은 생명들은 어느순간에 질척한 땅속에 파묻혀 고통받아 차라리 비가 퍼부어 저수지로 휩쓸려가길 바랄것이다.'

     

    1960년 비하르주 낙살지역의 농민봉기를 계기로 인도 마오주의자들은 농민봉기를 계기로 활동영역을  웨스트벵갈과 오디샤주 등지로 넓히며 반란과 폭동을 이어나간다.

    마오사상만으로 인도가 계급의 차별로부터 해방될수 없다고 생각했던 형 Subhash는  동생 Udayan를 따라 낙살라이트 운동에 가입하지 않고 어수선한 고향땅을 등지고 머나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학업을 이어간다.

    1967년 서벵갈의 Tollygunge지역에서 수만명의 농민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군경찰은 폭동 주민들을 짓밟고 현장에 있었던 대학생 Udayan는 진압경찰들의 손에 참혹하게 처형을 당한후 저수지로 던져진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동생의 죽음 앞에 Subhash는 동생을 지켜주지 못햇다는 죄책감과 동생의 아이를 임신한 연인이자 정혼자인 Gauri를 폭동과 폭력,차별로 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미국으로 데리고 간다.

    동생의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하니 엄마는 하찮고 낮은 계급의 천민들은 절대로 자신들 처럼 높은계급의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지 않을것이라고 저주섞인 말을 퍼붓는다.

    동생을 잃은 슬픔과 부모의 싸늘한 시선을 뒤로하고  어떤 이들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결혼식을 올린 Subhash와 Gauri는 미국  Rhode Island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계급차별과 폭력,가난으로 부터 해방된  Gauri는 Subhash의 헌신적인 사랑 아래서 여자아이를 낳지만 더이상 세상에 존재 하지 않은 연인,아이의 아버지Udayan의 그림자, 죽기직전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Subhash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Gauri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땅에서 받았던 온갖 차별, 멸시,치욕들을 고스란히 Subhash,그가 태어날때부터 지니고 있던 지위,계급을 향해 폭언을 퍼부어대고 어떤 조건,슬픔,고난 앞에서도 사랑으로 Gauri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남편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

     자신의 철학,사상을 몸소 실천하고 차별에 맞서 싸웠던 연인Udayan와 달리 Gauri는 Subhash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한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이기적으로 미국으로 도피해버린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자신이 낳은 딸에게도 냉담하게 대하는 아내를 대신해 Subhash는 동생이 유일하게 남긴 혈육을 자신의 딸처럼 사랑해주지만 아이는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로 커간다.

     아내,어머니로도 살지 않는 Gauri는 '도대체 이곳, 이나라에서는 지금 캘커타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나 있을까? 미국인들에게 캘커타 빈민들의 현실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겠지. 그렇다면 이곳 사람들은 살아가는 이유가 대체 뭐야?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사냐고? 폭동에서 빠져나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내삶은 뭐지?'  라며 남편과 미국을 향해 소리친다.

     Gauri는 자신이 원해서 오지 않은 미국, Rhode Island땅을 벗어나 1년내내 뜨거운 햇살아래 온화한 기후로 눈부신 캘리포니아에서 철학박사를 받고 학문의 길을 걸어가고 제대로 온전하게 자신의 의사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딸Bela는 몸 곳곳에 문신을 새긴다.

     

    사랑을 잃은 슬픔,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대신해 남겨진 사랑을 보듬어 새로운 둥지로 보살피려고 노력했던  Subhash는 거대한 습지같은 과거의 환영속에서 배회하다가 사랑이 주는  공허감의 저수지속으로 잠식당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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