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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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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쪽 | 규격外
ISBN-10 : 897199651X
ISBN-13 : 9788971996515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중고
저자 정병준 | 출판사 돌베개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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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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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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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비극적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한 여인의 삶. 3.1운동이라는 독립과 혁명의 찬연한 빛에 매료되었던 한 여인은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하와이, 뉴욕, 도쿄, 서울, 로스앤젤레스, 프라하, 부다페스트, 평양으로 줄달음질치며 역사와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렵사리 다다른 평양에서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미 제국주의의 고용간첩‘으로 낙인찍히며 처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뒤로 그녀의 생은 ’한국의 마타하리‘로 호명되며 소설의 통속적 여주인공 이미지로 소비되어 진다.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는 ‘한국판 마타하리’, ‘박헌영의 첫 애인’ 등으로 잘못 소비되어온 현앨리스와 그 시대의 실체적 진실을 추적한 책이다. 독립운동, 재미한인 진보운동에 헌신했던 현앨리스의 비극적 삶과 그 시대를 다루며 4세대에 걸친 현씨 집안의 근대사를 조망한다. 대부분의 책에서 박헌영 간첩사건의 조연으로만 등장했던 그녀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재조명해 생에 드리워진 식민, 분단, 전쟁의 굴곡진 근현대사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소개

저자 : 정병준
저자 정병준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다. 서울대 한국외국어대 방송대 조선대에서 강의했고, 국사편찬위원회 목포대학교에서 근무했다. 『이화사학연구』 『역사와현실』 편집위원장, 『역사비평』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역사학연구』 『한국사연구』 편집위원, 한국문화연구원 부원장 이화사학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새로운 자료 발굴과 글쓰기가 주요 관심사다.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인물과 쟁점이 되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50여 권의 한국 현대사 관련 자료집을 기획 간행했다. 『몽양 여운형 평전』, 『미국 소재 한국사 자료 조사보고I NARA 소장 RG59?RG84 외』, 『우남 이승만 연구』,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광복직전 독립운동세력의 동향』, 『역사 앞에서: 한 사학자의 6?25일기』(편저), 『독도 1947: 전후 독도문제와 한·미·일 관계』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한국전쟁』으로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2007년), 『독도 1947』로 제36회 월봉저작상(2011년)을 수상했다.

목차

저자의 글

서장 한 장의 사진: 박헌영, 주세죽, 그리고 현앨리스(1921년, 상하이)

1장 하와이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다(1903~1920년)
아버지 현순, 하와이를 유람하다(1903~1907년)
현앨리스, 서울에서 자라다(1907~1919년)
1919년 현순, 상하이로 떠나다
현앨리스의 상하이행(1920년)

2장 3·1운동의 후예들(1920~1923년)
상하이에서의 조우: 박헌영 혹은 사회주의
어떤 결혼: 정준과의 결혼(1922년, 상하이)
극동피압박민족대회(1922년,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현앨리스(1923년)
3장 하와이와 뉴욕에서의 삶(1924~1945년)
하와이로의 가족 이주(1922~1925년)
웰링턴의 출산, 사라진 모자이크 조각(1924~1930년)
뉴욕에서의 대학 시절(1931~1935년)
하와이 노동운동, 공산주의 운동과의 조우(1936~1941년)
태평양전쟁기의 행적(1941~1945년)

4장 서울로의 짧은 귀환(1945~1946년)
현앨리스, 도쿄를 거쳐 서울로 부임하다(1945년 12월)
서울로 부임한 통역 현피터(1945년 11월)
현앨리스와 박헌영의 재회
주한미군 공산주의자들의 박헌영 회견
민간통신검열단의 현앨리스
현앨리스와 주한미군 내 공산주의 그룹
서울에서 추방된 현앨리스

5장 『독립』·재미한인 진보진영에 가담하다(1946~1949년)
로스앤젤레스로의 대이동 1946년
재미한인 진보진영: 중국후원회-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조선민족혁명당
미주지부-『독립』
『독립』·재미조선인민주전선에서의 활동(1946~1949년)
한줄기 빛: 체코의 한흥수
김일성·박헌영에게 편지를 쓰다(1948년)

6장 희망의 빛, 죽음의 길: 체코에서의 몇 개월(1948~1949년)
체코로 향하는 현앨리스와 정웰링턴(1948~1949년)
체코에서의 체류와 활동(1949년 2~11월)

7장 파국: 박헌영 간첩사건에 휘말리다 (1953~1956년)
북한에서의 나날들(1949~1953년)
이강국 재판: ‘미제의 스파이’ 현앨리스, 리윌리엄(1953년)
박헌영 재판: 알려지지 않은 현앨리스의 최후(1955~1956년)
남북한에 비친 현앨리스의 이미지

8장 그 후: 남겨진 자의 운명
청문회에 소환된 ‘마오쩌둥의 제1요원’ 현피터
16년간 추방 위협에 시달린 현데이비드
북한으로 추방된 김강, 파니아 굴위치 부부
평양에서 실종된 곽정순, 이춘자 부부
사리원에서 실종된 전경준, 송안나 부부
60세에 추방의 기로에 선 신두식

에필로그: 어떤 죽음
정웰링턴, 세상을 버리다(1963년, 체코)
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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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3?1운동은 현순과 그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근대 세계를 지향하고 해외 교육과 체류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독실한 기독교 목사는 한반도로 밀려드는 시대정신의 급류에 휩싸였다. 3?1운동은 기독교와 천도교의 운동이었고, 신사조 민족주의의 대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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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현순과 그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근대 세계를 지향하고 해외 교육과 체류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독실한 기독교 목사는 한반도로 밀려드는 시대정신의 급류에 휩싸였다. 3?1운동은 기독교와 천도교의 운동이었고, 신사조 민족주의의 대폭발이었다. 세계대세, 정의인도, 민족자결이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화두였다. (중략) 200만 이상이 동원된 거대한 민중적 에너지는 1894년의 동학 농민전쟁 이후 최대의 것이었다. 현순은 이러한 이글거리는 민족 에너지의 최첨단에 올라탄 셈이었다. (43쪽)

1920년대 초반 박헌영은 상하이에서 급격하게 사회주의자로 변모했다. 그의 출발점은 3?1운동이었고, 그 토양은 민족주의였다. 박헌영은 고려공산당이 운영하는 사회주의연구소의 직원으로 활동하며 사상과 생계 문제를 해결했다. 박헌영은 1921년 3월 고려공산당의 자매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 상하이 지회 비서가 되었고, 5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에 입당했다. 1921년 9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결성에 참석해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2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 제2차 중앙총국 회의에서 공청 책임비서로 선출되었다. 박헌영은 1922년 4월 국내로 잠입하려다 단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박헌영의 상하이 체류 기간은 1920년 11월부터 1922년 4월 단둥에서 체포될 때까지 1년 7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진정한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로 단련된 것은 상하이의 조직 생활이 아니라 경찰의 고문과 총독부의 감옥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55쪽)

현앨리스가 가족도 없고, 생계 방도도 명확하지 않은 중국 땅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여성의 몸으로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체나 조직에 속하지 않고서는 도움을 얻을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앨리스는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는 운명의 주인공이자 의지적 인간형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의 포로가 된 적이 없었다. 1949년 프라하로 홀로 떠날 수 있었던 결단력도 그녀의 삶 속에서 다져진 제2의 본성이었을 것이다. (91쪽)

[현앨리스와 현피터 남매는] 하와이에서 출생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식민지 한국에서 성장했고, 미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미국 시민이 되었지만, 이들의 정체성과 정신은 그들의 시민권이 속한 미국에도, 그들의 강제된 국적 일본에도, 미국 내 객관적 위치였던 동양계 이민에도 속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여타 한국인 이민 2세들과도 다른 정신세계에 속해 있었다. 이들의 정체성과 정신은 상하이 시절 받은 독립운동과 혁명 활동의 세례에서 발원했다. 이들은 진정한 한국인이길 희망했다. 하와이에서 남매의 삶은 여전히 1920년대 초반 상하이의 꿈결 같은 순간들이 계승되거나 변형된 형태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112쪽)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력한 힘이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경합하고 있었고, 한반도는 그 원심력에 빨려 들어갔다. 제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이제 강대국 도마 위의 생선과 같은 신세였다. 강대국의 결정에 그 운명이 달려 있었다.
미소라는 거대한 자기장은 한반도 주민을 책받침 위의 쇳가루처럼 힘의 서열에 따라 재배치했다. 보이지 않는 달의 인력이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 차이를 만들어내듯 한반도에서 두 힘의 파급력은 결정적이었다. 한반도가 양극단의 원심력에 의해 둘로 쪼개졌고, 두 힘의 마찰 면에 위치하고 있던 현앨리스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현앨리스의 비극적 최후는 그리운 해방 한국과 조우하면서 필연적으로 파국이 예정되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126쪽)

현앨리스는 1945년 12월 중순 서울에 부임했는데, 1946년 1월 11일 박헌영과 회견한 것이다. 1946년 1월 11일이라면 신탁통치의 대파동이 한반도를 휩쓸던 시기였다. 조선공산당 본부에서 공식 면담을 한 것인데, 양자의 접촉이 이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박헌영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공산당 당수로서 남한 공산주의 운동의 최고 지도자인 박헌영은 미군정 정보참모부 예하의 가장 민감한 정보기관인 민간통신검열단의 서울지구 부책임자를 만난 것이다. 또한 박헌영은 현피터와도 수시로 접촉했다. 현피터는 강원도지사 전속 통역관이자 경기도 공보과 고문으로 활동했는데, 미군정 내에서는 최고위급 한국인 통역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개인적으로는 수십 년 전의 친구이자 동지의 재회였으나, 객관적으로는 조선공산당 당수와 주한미군 정보책임자?고위 군속의 회견이었다. 개인적 관계와 객관적 직위?입장 간의 간극이 현저하게 컸다. 박헌영은 미국?미군이 해방군으로 평가되는 시대상황 속에서 청년 시절의 옛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만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산당 당수라는 직위의 무게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그에게 가혹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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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역사와 시대의 수레바퀴에 으깨진 한 여성의 비극적 운명 이 책은 일제하 중요 독립운동 인사였던 현순 목사의 맏딸로 제1호 하와이 출생 한국인이자 박헌영, 김단야 등과 독립운동, 재미한인 진보운동에 헌신했던 현앨리스의 비극적 삶과 그 시대를 조망한...

[출판사서평 더 보기]

역사와 시대의 수레바퀴에 으깨진 한 여성의 비극적 운명

이 책은 일제하 중요 독립운동 인사였던 현순 목사의 맏딸로 제1호 하와이 출생 한국인이자 박헌영, 김단야 등과 독립운동, 재미한인 진보운동에 헌신했던 현앨리스의 비극적 삶과 그 시대를 조망한 것으로 현앨리스의 개인사에서 출발해 현앨리스와 아들 정웰링턴의 가족사를 거쳐 4세대에 걸친 현씨 집안의 근대사를 다룬다. 더불어 재미한인사, 한국 독립운동사, 한국 현대사, 북한 현대사, 냉전사와도 일정한 교집합을 형성한다.
현앨리스는 다면적이고 중층적이며 경계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일본의 신민, 미국의 시민, 남한의 국민, 북한의 공민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경계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 좌익, 북한 첩자, 미국의 스파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극단적 정체성을 강요당했다. 그녀는 우연한 선택이나 돌출적 행동으로 비극적 결말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 그 경로에 도달했다. 그녀는 한국 근현대사가 세계체제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뿌리 뽑힌 존재였으며, 늘 조국을 찾아 방황하는 방랑자,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런 경계적 삶은 한국 근현대가 경험한 파국이 반영된 것이다.
이 책은 그간 ‘박헌영의 첫 애인’, ‘한국판 마타하리’ 등으로 잘못 소비되어온 현앨리스와 그 시대의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오랜 추적의 산물이다.

▶ 해방된 조국에 대한 열망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으나 남과 북에서 각각
‘공산주의자’와 ‘미제 스파이’로 지목되어 추방, 처형되었던 현앨리스 이야기


『독도 1947』로 제36회 월봉저작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정병준 교수가 오랜 시간에 걸친 추적 끝에 현앨리스와 그 가족, 당시의 상황을 복원해낸 신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를 펴냈다. 2000년대 초반 몇몇 일간지를 통해 ‘한국판 마타하리’로 소개된 바 있는 현앨리스는 실상 ‘마타하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며 그 삶을 추적해나갈수록 오히려 당대의 비극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생을 마감해야 했던 안타까움이 더 부각되는 여인이다. 정 교수는 처음엔 막연히 현앨리스가 미국의 스파이거나 박헌영의 애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매혹적 상상만 있었는데, 체코 프라하에서 중요한 문서들을 발굴하고 1921년 박헌영과 현앨리스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면서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모자이크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책은 위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2열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앳된 소녀가 바로 현앨리스다. 그리고 1열 가운데에 보타이를 맨 인물이 박헌형, 맨 오른쪽은 현앨리스의 동생 현피터다. 또한 그동안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으로 알려져왔던 인물(2열 왼쪽에서 세 번째)은 주세죽이 아니며, 2열 맨 오른쪽의 비스듬한 포즈로 앉아 있는 인물이 주세죽인 것으로 밝혀졌다. 1921년 겨울 상하이에서 중국에 유학 중이던 한국 학생들이 모여 찍은 것으로 확인된 이 사진은 원래 박헌영이 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재학 시절인 1929년에 각국의 혁명가들과 찍은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런데 거의 한 세기 만에 이 사진의 실체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북한에서 주장해온 ‘박헌영 간첩사건’의 실마리 하나가 풀리게 된다.
1955년 북한에서 김일성의 최대 정적인 박헌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현앨리스는 1920년 상하이 시절 박헌영의 ‘첫 애인’이자 미국 정보기관의 첩자로 등장했는데, 이는 현앨리스가 미국 정보기관의 공작원으로 북한의 부수상 겸 외무상인 박헌영을 포섭하는 ‘한국의 마타하리’ 역을 맡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실상 박헌영과 현앨리스는 어릴 때부터 독립운동의 꿈을 함께 키워온 오누이 같은 사이였으며 사랑과 결혼의 대상도 서로 달랐다. 이후 25년여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박헌영이 미군과 정보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던 현앨리스와 이사민을 북한에 입국시켜주고, 이들에게 외무성, 조선중앙통신, 조국전선 등의 일자리를 주선해준 것이 빌미가 되어 결국 혁명동지들의 손에 처형당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신민, 시민, 국민, 공민,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던 시대의 희생양 ‘현앨리스’를 통해 본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드라마

- 현앨리스와 그 가족의 파란만장한 일생


현앨리스의 아버지 현순은 ‘조선독립단’의 상하이 특별대표로 활동하며 3?1운동의 발발과 임시정부 수립 소식을 중국?미국?유럽 등지에 전하는 한편 해외 정보를 국내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던 주요 독립운동가로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도 기여한 인물이다. 1919~1920년에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이승만의 지지 세력이자 응원자의 한 사람이었으나 후에는 외교적 방략과 정치적 견해차로 이승만 진영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63년에 건국훈장을 받았고 1968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작고했다. 이후 1975년에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회고록인 『현순자사』玄楯自史를 남겼다.

현앨리스(현미옥)는 현순 목사의 여덟 자녀 중 맏딸로 1903년 하와이에서 태어나 교회와 기독교 학교에서 성장했다. 그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미국?기독교?민족주의가 그녀의 존재론적 기반을 이루었다. 다섯 살이던 1907년 가족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성장하며 이화고보를 졸업했고, 이화대학을 다니던 중 1919년 3?1운동 직전 상하이로 망명한 아버지를 찾아 이듬해 남은 가족과 함께 상하이로 건너갔다. 3?1운동의 진정한 후예였던 그녀는 상하이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러시아?혁명 등의 뜨거운 에너지와 대면했고, 이후 진보주의자와 혁명가로서의 삶을 열렬히 추구했다. 그녀는 상하이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하와이에서의 노동운동, 재미한인 사회에서의 공산주의 활동, 해방 후 남한 혁명운동의 민족주의적 에너지에 매료되었고, 진보운동에 헌신했으며, 강한 생활력과 의지력을 바탕으로 가족을 이끌었다. 특히 동생인 현피터와는 1930년대 후반부터 현앨리스가 체코로 떠난 1949년까지 인생의 행로를 함께했다. 남매는 1930년대 하와이에서 노동조합운동?미국공산당과 관련되었고, 해방 이후 재미한인 사회에서 가장 급진적인 집단에 속하게 되었다. 나아가 1948년에는 미국공산당 당원으로 기록되었다.

한편 개인적?가족사적으로 현앨리스에게는 불행이 끊이지 않았다. 행복한 대가족에서 성장한 현앨리스는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난 정준이라는 양반의 후예와 결혼했지만 봉건적 구식생활과 나태한 지주생활에 젖어 허송세월을 하는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택했다. 한때 독립투사였던 정준이 결혼 후 조선총독부 산하의 관리가 된 것도 네 살 난 딸을 두고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이혼 당시 그녀는 태중에 아들이 있었으며 하와이로 건너와 혼자 아들을 낳았다. 두 번의 임신과 출산, 이혼 과정을 겪으며 불행과 좌절을 겪어야 했던 그녀에게 남겨진 아들 정웰링턴은 불행한 결혼의 유산이었지만, 그녀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희망의 끈이기도 했다. 이후 외조부모의 손에 자라난 정웰링턴은 체코로 건너가 고투 끝에 외과의사가 되었다. 한때 어머니인 현앨리스와 함께 ‘사회주의의 이상향’ 평양으로 들어가기를 희망했으나 그 꿈은 끝내 이룰 수 없었으며, 1963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한국적 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상징

현앨리스는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되길 거부하고 해방 한국의 진정한 한국인을 꿈꾸었다. 이상주의자이자 비현실적인 낭만주의자였던 그녀는 상하이에서 사회주의를 접한 이래 서울과 상하이의 ‘혁명동지’들을 꿈꾸며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1930~1940년대 식민지 한국과는 격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1930년대 자유주의가 만연한 대공황과 뉴딜 시대의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고, 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국의 대소對蘇 포용정책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했다.

해방 후인 1945년 말 미군정의 민간통신검열단 소속으로 도쿄를 거쳐 한국에 들어온 현앨리스는 1946년 주한미군 내 공산주의자들인 제플린, 프리쉬, 클론스키 등과 박헌영을 면담했다는 이유로 북한의 첩자로 몰려 추방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독립』 신문과 재미조선인민주전선 등 진보진영에 깊숙이 관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친 현앨리스의 마지막 소망은 좌익 친구들을 따라 북한으로 가는 것이었다. 당시 그녀는 현실사회주의, 해방 후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입체적 경험과 판단을 갖고 있지 못했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체코 프라하를 거쳐 1949년 평양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마주한 것은 낯선 세계였다. 그곳은 그녀가 깃들고자 했던 이념과 사상의 조국이 아니었다. 북한은 그녀를 이질적 존재이자 위험 요소로 간주했고, 그녀를 통해 박헌영까지도 미국의 스파이로 규정한 후 제거해버렸다.

고향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떠도는 방랑자,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의 삶은 그녀가 맞닥뜨린 한국적 근대의 종착점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쓸쓸한 죽음은 그녀가 당면한 근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어디에도 동화되지 않고, 어느 나라에도 귀속될 수 없었던 그녀의 정체성과 부동하는 경계적 삶은 결국 그녀에게 스파이의 굴레를 씌우고 말았다. 일본의 입장에서 그녀는 ‘위험한 좌익 혁명분자’였고, 미군정의 눈에는 좌익과 소통하는 ‘악마적 존재’로 비쳤으며, 북한에서는 ‘미 제국주의의 고용간첩’으로 낙인찍혔다. 한국 근현대사의 경로는 그녀의 한 몸에 다중적이고 역설적인 정체성을 강요했다. 현앨리스를 투과한 근현대의 빛은 공존 불가능한 극단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 자기 의지로 생을 개척해온 그녀는 한국적 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 비극적 진실이 전하는 역사적 울림에 귀 기울여야

남북한의 누구도 현앨리스의 굴곡 많은 인생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박헌영 간첩사건의 조연으로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그녀가 인생의 주인공으로 조명받은 것은 아니었다. 북한은 현앨리스를 미국의 고용간첩으로, 남한은 그녀를 ‘한국판 마타하리’로 호명했지만 그녀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었다. 그녀는 미국의 간첩?이중첩자?역공작?미인계 등 첩보?애정 소설의 통속적 여주인공의 이미지로 소비되었을 뿐이다. 그 인생에 드리워진 식민?분단?전쟁의 굴곡진 근현대사는 전쟁, 첩보, 공작, 권력투쟁, 사랑, 배신, 여간첩 등의 현란한 표상에 가려지고 말았다.
3?1운동이라는 독립과 혁명의 찬연한 빛에 매료되었던 한 청춘은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하와이, 뉴욕, 도쿄, 서울, 로스앤젤레스, 프라하, 부다페스트, 평양으로 줄달음질치며 역사와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비극적 역사의 경로만큼 쓰라린 개인적 불행과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의지와 열정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마침내 이상향에 도달했다고 믿던 순간 샹그릴라는 죽음의 하데스임이 드러났다. 그녀와 비슷한 선택을 했던 많은 재미한인들도 같은 운명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 비극적 한국인들의 운명은 제대로 기억되지 않았다. 거친 시대가 남긴 상처라기엔 너무나 가혹했고, 그들에게 덧씌운 ‘스파이’라는 오명은 비극을 우화로 만듦으로써 치열했던 삶에 모욕적 기억만을 남겼다. 그리고 비극적 진실이 전하는 발현되지 못한 역사의 가능성과 교훈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갔다.

정병준 교수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이 비극적 삶들을 복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끝맺는다. “한국 현대사는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한 여성의 치열했던 삶을 스파이의 우극愚劇으로 마멸시켰지만, 미래 한국은 묘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그 삶이 전하는 역사적 울림에 좀더 진지하고 관대한 성찰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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