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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CD1장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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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쪽 | A5
ISBN-10 : 8959133914
ISBN-13 : 9788959133918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CD1장포함) 중고
저자 박민규 | 출판사 예담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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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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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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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옆에 들러리 선 우리의 자화상!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주목받아온 작가 박민규의 독특한 연애소설『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대 성장소설의 형식을 빌려,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 스스로 '80년대 빈티지 신파'라고 말할 만큼, 자본주의가 시작된 80년대 중반의 서울을 무대로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1999년의 겨울, 34세의 성공한 작가인 '나'는 언제나처럼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듣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 레코드를 선물했던, 잊지 못할 단 한 명의 여인을 추억한다. 스무 살이었던 1986년, 온 나라가 빠른 경제성장을 타고 부를 향해 미친듯이 나아가던 그 시절. '나'는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정신적 스승이 되어주었던 요한과, 사람들이 쳐다보기 싫어할 정도로 못생긴 그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나'와 그녀는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는 외모로 인한 상처를 안고 그를 떠난다. 세월이 흐르고 소설가로 성공한 '나'는 수소문 끝에 그녀가 독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데….

▶ 이 소설만을 위한 BGM CD를 함께 제공합니다.
CD는 이 소설에 대한 헌정 음반으로, 머쉬룸 밴드의 음악이 소설읽기의 색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저자소개

저자 : 박민규
1968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으며 2005년 소설집 『카스테라』로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2006년 소설 『핑퐁』을 출간했다.

목차

1.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 ............000
2. 무비 스타
3. 내가 처음 당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
4. 켄터키 치킨
5. 루씨,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
6. 겨울, 나무에 걸린 오렌지 해
7.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8. 달의 편지
9. 바람만이 아는 대답
10. 어떤 해후(邂逅)
11. 해피엔딩

* Writer's cut
*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그런 방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답고, 아름다울 수 있고... 해서 진심으로 사랑 받고... 설사 어떤 비극이 닥친다 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에요. 아무리 들어갈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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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그런 방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답고, 아름다울 수 있고... 해서 진심으로 사랑 받고... 설사 어떤 비극이 닥친다 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에요. 아무리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 해도 결국엔 문득 그 방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전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지만, 그래도 그 방문에 몸을 기대면... 기대어 울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죠. 방문을 활짝 연 채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도 있을 거예요. 언제든 손이 닿는 곳에, 혹은 현관과 마루 정도를 지나면 곧 방문을 열 수 있는 여자도 있을 테고... 하지만 길고 깜깜한 동굴을 지나,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야 겨우 자신의 방 앞에 다다를 수 있는 여자도 있는 거예요. 설사 열리지 않는 문이라 해도, 또 누구에게 그곳에 와주세요, 같이 가지 않을래요 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방이라 해도 말이죠. 손에 든 촛불이 꺼져간다 해도, 결국 꺼지기 전에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더라도 말이죠. 그 길이 너무 멀어... 그리고 점점 발걸음이 뜸해지는 여자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그런 방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여자가 있는 거예요. 줄곧 나 자신이 그런 여자라고 생각해 왔어요.
-208p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 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228p

11월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무 살이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사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 무렵 내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 그리고 끝끝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단 하나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길고 긴 인생의 터널을 생각하면 더없이 짧은 시기였지만 그 순간의 빛을 기억하면서, 나는 기나 긴 터널의 어둠을 지나왔다는 생각이다. 나는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무엇도 믿지 않았다. 따라 뛰는 사람들, 피리소리를 따라 어디론가 달려가던 사람들과...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세상의 풍경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워지는 여자들... 아름다워 <져야만> 하는 여자들과... 학력을, 차를, 또 집을... 말하자면 힘을 <가져야만> 하는 남자들... 서로에 의해, 서로에 비해, 올라선 서로를 위해 구축하던 프리미엄과... 올라서지 못한 서로에게 요구되던 또 그만큼의 스펙에 대해... 그러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삶의 성질에 대해... 오로지 스펙과... 프리미엄만 늘어날 뿐인 이 삶에 대해... 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30년만 지나면 허물어야 할 한 채의 집을 위해, 실은 조건과 조건... 이윤과 프리미엄에 의해 만난 서로에 의해... 하여, 실은 있지도 않았던 사랑에 내내 절망할 이 삶에 대해... 그 <생활>에 대해... 하여 자신의 자녀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이 삶에 대해... 다시 사랑이란 명목으로 가두고 사육하는 이 삶에 대해... 갖추고 올라섰다 한들, 이를테면 일병 7호봉 정도나 될 그 대단한 프리미엄에 대해... 실은 허망한, 하여 과시밖에는 할 게 없는 이 삶에 대해... 그러나 결국 죽음을 맞이할 이 삶에 대해... 고생하셨어요, 말은 하지만 실은 유산을 셈하고 있을 자녀들에 대해... 그래서 실은 그 무엇도 남지 않을 이 삶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3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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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그럴 듯한 것은 결코 그런, 것이 될 수 없다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고 욕망할수록, 결코 그런, 인생은 될 수 없다 대한민국 마이너리티들의 영원한 히어로 박민규가 돌아왔다. 더욱 섬세하고 예리해진 무규칙이종소설가의 리얼 로맨틱 귀환! ...

[출판사서평 더 보기]

그럴 듯한 것은 결코 그런, 것이 될 수 없다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고 욕망할수록,
결코 그런, 인생은 될 수 없다

대한민국 마이너리티들의 영원한 히어로 박민규가 돌아왔다.
더욱 섬세하고 예리해진 무규칙이종소설가의 리얼 로맨틱 귀환!


2003년 한국 문단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며 등단한 이후, 늘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주목받아온 소설가 박민규의 신작 장편소설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2008년 12월부터 2009년 5월까지 6개월 동안 온라인서점 예스24 블로그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연재 초기부터 ‘박민규의 색다른 연애소설’로 회자되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특히나 최근 몇 년간 실험적이고 장르적인 소재에 천착해 온 작가에게 내심 현실의 중력에 발을 디딘 박민규식 서사를 기대하고 있던 독자들이라면 더욱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소설은 박민규 비블리오그래피 중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계보를 잇는다는 관점에서 더욱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20대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 ‘80년대 빈티지 신파’라 일컬을 만큼 내용이나 스타일에 있어서 큰 변화를 보인다. 낯설고 기이했던 우주적 게임계는 본격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의 서울로 무대를 옮겼고, 백수, 왕따, 꼴찌 같은 한국산 남성 루저들의 자리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거부받을 정도로 못생긴 아가씨와 잘생기고 번듯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는 두 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백화점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만난 이들 세 명의 청춘들이 만들어가는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에는 기존의 전복적 세계관이나 키치적 유머 대신에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까지 함께 침잠해 들어가는 작가의 세심한 배려가 녹아 있다. 부조리와 편견 가득한 사회의 장벽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무참히 사회의 바깥으로 추방당한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서 박민규는 80년대의 변두리 골목으로 나섰다.

가혹한 세상 옆에 들러리 서 있던 우리의 자화상!
그래도 끝내 사랑의 주인공으로 아로새겨진 청춘의 환(幻)을 찾아서...


온 세상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데뷔곡 으로 가득하던 1999년의 겨울, 34세의 성공한 작가인 나는 언제나처럼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듣고 있다. 그리고 잊지 못할 단 한 명의 여인을 추억한다. 오래전, 우리는 눈 오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고, 그녀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선물했다. 우연찮게도 우리가 그날 함께했던 카페엔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메니나스>가 걸려 있었는데, 모리스 라벨은 그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그림 속의 아주 못생긴 여인, 하지만 자꾸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여인은 그녀와 동일시되어, 늘 나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뒤늦게 인기배우가 된 잘생긴 남자였고, 어머니는 그런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못생긴 여자였다. 성공을 거머쥐자, 아버진 결국 우리 가족을 떠났고, 어머니는 슬픔과 절망 속에 삶을 이어갔다. 그때 1986년 내 나이 스무 살. 온 나라가 경제성장의 가속도를 타고 부를 향해 미친 듯이 노력하던 그 시절, 나는 자본주의의 최전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내 인생의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민감했던 나의 청춘에 정신적 스승이 돼주던 요한이라는 인물과 그 누구도 쳐다보기 싫어하던 못생긴 그녀. 우리는 서로 사랑했고, 즐거웠으며 늘 함께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녀는 외모로 인한 사회적 소수자의 상처를 입고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요한도 가족에 대한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머나 먼 요양소로 떠나버렸다. 세월이 흐르고 소설가로 성공한 나는 수소문 끝에 그녀가 독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데...

외모 이데올로기에 대한 야심찬 반격!
우리는 모두 죽은 ‘왕녀’ 곁에 들러리 선 시녀와 마찬가지였다.


표제이기도 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죽은 ‘왕녀’ 곁에 선 ‘시녀’가 상징하는 것은 비단 주인공의 못생긴 연인만이 아니다. 그것은 80년대에 대한 추억 그 자체다. 그것은 록음악이기도 했고, 소설이기도 했으며, 늘 성공을 꿈꾸던 우리네 서민들의 삶 자체이기도 하다. 마돈나, 마이클 잭슨, 할리우드의 온갖 삼류영화들 틈바구니에서 문득 자신들의 비루한 삶에 눈물을 삼키곤 했던, 그래서 예뻐지고 싶고, 부유해지고 싶고, 세련되고 싶었던 지나간 우리의 모습들이다. KFC가 등장하기도 전에 시장골목 어귀마다 서 있던 켄터키 치킨집과 라 씌어 있었으므로 희망을 안주 삼던 변두리 호프집에서 백화점의 죠다쉬와 나이키와 자가용을 욕망하던 촌스럽고 시시했던 시절들 모두가 죽은 ‘왕녀’ 곁에 선 ‘시녀’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모리스 라벨이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했듯, 박민규는 죽은 왕녀 곁에 들러리 선 시녀의 모습에서 부와 권력의 시스템 안에 농락당한 애처로운 절대다수의 그림자를 발견해 낸 셈이다.
따라서 죽은 ‘왕녀’는 절대다수가 신봉해 온 자본주의의 꽃인 부와 아름다움이 된다. 사실 그 꽃은 소수의 권력자가 자신들의 지위와 부를 유지하기 위해 설정해 놓은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인 우리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꽃을 찬탄하며 부러워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주인공인 ‘나’는 이미 달콤한 성공의 꽃을 찾아 가족의 삶을 유기해 버린 아버지에게서 상처를 받은 바, 실체를 알 수 없는 꽃들의 향기에 염증을 느끼고 오히려 못생긴 ‘그녀’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토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주류ㆍ비주류의 역학관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이번에는 ‘외모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고 있는 여성의 입장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이 시대 모든 여성들을 위한 연서
소설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게 될 BGM 음반과 라이터스 컷 도입


“저는 늘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경쟁력 없이 살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남자들을 위한 소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여자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석에서 듣게 된 작가의 말처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외모 경쟁에서 뒤떨어진 여성들, 나아가 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이 시대 모든 여성들을 위한 일종의 연서이다. 또한 이 소설은 인간을 이끌고 구속하는 그 ‘힘’에 대한 문제제기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해 왔듯이,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를 사로잡아온 역사, 결국 극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시스템 오류에 대한 지적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모든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이다. 아름다운 어느 한 사람의 화려한 빛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 각자의 인생들이 자신감 있게 전원 스위치를 켜고 내면의 빛을 밝혀야 사랑도 세상도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이번 소설에서 특기할 점은 책의 말미에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을 도입한 것이다. 영화로 치자면 일종의 디렉터스 컷과 같은 장치로 독자들이 본 내용의 결말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려는 작가의 특별한 기획이다. 또한 이 소설만을 위한 BMG 음반이 제작되었다. 아련한 추억을 환기시키는 머쉬룸 밴드의 음악이 소설읽기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을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 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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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안은진 님 2014.04.03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 최재원 님 2014.03.20

    물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로 채워진 것이었 다

  • 정은하 님 2014.03.20

회원리뷰

  • 이 책을 2010년에 읽고 난 이후 정말 오랜만에 손에 들었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




    이 책을 2010년에 읽고 난 이후 정말 오랜만에 손에 들었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 책을 내게서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 애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 책을 2010년에 읽었을 때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주위에 많은 분들이 좋은 책 혹은 괜찮은 책이라고 품평을 한 까닭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나. 내가 봤을 때는 별로이긴 하지만, 다른 이들이 좋다고 하면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되는 것. 이번에도 좋지 않다면 내게서 떠나보내리라 작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너무나 우연하게도 유월에 같은 책을 읽고 편지를 나누기로 한 민정님이 이 책을 후보에 올렸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정돈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이 책은 시작되었다.




    내가 이전 서평에 이런 내용을 썼던가, 문장의 행간이 참 고집스럽다고. 고집스럽지만 이내 그곳에 빠져들었다고. 하지만 그 고집을 나는 내내 배타적으로 대했다.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지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컸다. 글을 쓴 것은 작가이지만, 내 호흡대로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만 나는 대립되었다. 문장의 행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중간 즈음에서였다. 어느 부분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부터 서서히 나는 그 속도대로 책을 읽고 있었다. 분해야 하는데, 분함보다 평온함이 더 컸다. 참 우스운 일이다.




    이 책의 어느 부분부터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


    올 줄 몰랐어요.

    하지만... 기다렸잖아.




    나는 이 부분을 책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분.이라고 믿고 싶다.

    진심으로.




    실은 나, 이 책을 2010년에 읽었을 때에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2010년에 썼던 서평을 보니, 자기 연민에 치우친 한 여자의 회고록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 찾아본 서평은, 무척이나 부끄러워 비공개로 전환해둘까 하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니,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우스운 점은, 그때의 시선이 지금은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배우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미남과 그 옆에서 어딘가 모르게 머뭇하던 박색의 여인의 전례가 있었기에 그는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여전히 하고 마니까.



    그렇기에 나도 묻고 싶었던, 131. 그 친구를.... 좋아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좋아해 주고 싶은 거니?

    나도 계속해서 의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아버지를 더 많이 닮은 그는, 어머니를 同情하기에 생긴 결과물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고마웠어요. 라는 말에 지구가 정지한 느낌이었다면,

    동정, 호의, 연민.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임에 틀림이 없었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거나.





    54.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인간처럼,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있다는 사실을...

    나도 몰랐다. 나는, 너는, 우리는, 항상 지금만을 사니까. 종착역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이 아직도 무수히 많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그 종착역에 도착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것. 하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 비밀이라는 게 생기면서부터는 완전히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어야 하고 믿을 수밖에 없고 믿고 싶은 사람의 경우에는 인정하려고 해본다. 책의 말처럼, 내가 그 사람의 종착역을 가본 것은 아니지 않나. 또 그 사람이 종착역에서 내렸는지, 내리지 않았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후회하는지, 후회하지 않는지, 하는 것들을.




    71. 절대 단련할 수 없는 급소가 몇 군데 있어. 그중 하나가 눈이야! 그중 하나가 눈이라고,

    나는 눈에 대한 콤플렉스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내가 그 콤플렉스를 말해버리면 타인은 내 눈을 유심하게 쳐다보았다. 지금은 전처럼 그렇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순간의 시선을 참지 못해 눈을 내리깔고 만다. 지금은... 정말 시시하게 여기고 있으면서 아닌 척하면서 살고 있지만, 어릴 때 받았던 눈에 대한 상처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때의 공격은 내 두 눈을 찌르다 못해 실명시키기에 틀림이 없는 사건이었다. 눈이라는 게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잔뜩 가졌던, 초등생 2학년.의 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어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눈이라고 말한다. 모순이래도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눈이다.




    모든 것이 시시하게만 여겨지는 여름,에 아버지는 새로운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는 추녀를 만난다.

    추녀라니. 누가 누굴 보며 추녀라고 단언하는 거야.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그것이었다. 왜, 예쁨을 강요하지. 왜, 예뻐야 하는 거지. 그렇다면 못생김의 기준은 뭐지. 누구라도 와, 저 사람 진짜 못생겼네. 라고 할 만한 사람인 건가. 그럼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 거지. 1980년대의 美의 기준과 2019년의 美의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이 불쾌함은 뭐지. 정말 별로다.




    156.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나는 자족하며 산다고 말하지만, 정말 자족하며 살고 있을까 의심을 할 때가 있다. 가지고 싶으면 나도 가지면 되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왜인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때도 분명히 있기는 있다. 그게 때에 따라 좀 다를 뿐이지.

    나는 부러움은 인간이 지닌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질투나 시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부러움은 부러움으로 그쳐야지, 질투나 시기로 번지면 비교가 되고 결국 나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그러면 인생은 결국 늪에 빠져버리고 만다. 켄터키 입간판의 작은 <희망>이 흐릿하게 보이다가 결국 점멸하고 마는 것처럼...




    164.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세계가 그렇게 좁아터졌던가, 라고 반발하려다가 내 세계는 어떻지? 하고 생각해보니 결국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내 세계는 그리 넓지 않으니까. 오히려 편협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래서 자조 섞인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괜찮다는 생각이, 서평을 쓰며 문득 들었다. 경험이 늘어야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세계도 결국 편협한 거 아닌가. 어쨌든 자기의 경험치잖아. 이래도 편협하고 저래도 편협하다면 넓고 좁은 것은 아무 차이가 없네. 편협한 세계 속에 옹그리며 살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나의 신념을 때때로 들여다봐주는 것. 그것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반질반질 투명하게 닦아내어 나의 갈 길을 가는 것.



    244.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다.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라지만,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은 고아원의 일원이었다.

    그것도 무척 친밀한.




    185.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설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192.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겨울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해줄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보잘것없는 기억의 편린조차도 더없이 눈부신 순은(純銀)의 반짝임으로 떠오른다.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 왜 인간은 지금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니 망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2174. 영원한 장소도 영원한 인간도 없겠지만, 영원한 기억은 있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느린 마차처럼 서울로 돌아오던 버스와... 그 속의 지친 공기, 누군가 벗어둔 신발의 말똥 냄새마저도 그저 인간이 발할 수 있는 인간의 체온으로 느껴지는 밤이었다.


    214. 모든 인간은 투병(鬪病)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228.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299.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328.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살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서로를 스치거나 만나야만 했던 것이다. 왜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런 이유로 우리는 겨우 이곳에서의 외로움을 견디고 모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포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이다. 신의 기대대로 살 순 없다 해도, 그래서 인간은 끝까지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한은, 말이다.



    내 사랑은 어떤 형태인지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했던 문장들.

    덩달아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던 문장들.이기도 했다.

    사랑은 사랑으로써 아름다워야지. 사랑이니까,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378. 당신이 무사해서... 당신이 무사하니까 이제 저도 무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느릿한 몇 곡의 재즈와 함께 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었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자 다시 사소한 말들, 아무것도 아닌 말들이 필요한 시간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터널이 느릿느릿 올 수도, 길게 올 수도, 시시때때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이 순간들이, 이 시간들이 나를 고여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필요한 것이라는 것. 모를 리가 없지만, 난 또 모르겠다. 잃지 않으면 지금의 소중함들도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게 바로 인간일 테니까. 소중하다고 생각해야지, 하면서도 나는 금세 잊을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확신한다.


    오로지 진실인 이유로 평범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늘 곁에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읊조리는 말들이지만,

    진심이 아닌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고.









    책 속의 밑줄_




    55. 인생은 늘 막연하면서도 확연한 안개와 같은 것이었다.


    68. 젊은 아버지의 얼굴 앞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해 온 인간의 마음은 오래 신은 운동화의 속처럼 닳고 해진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빨래로도 그것을 완전히 되돌리진 못한다... 변형되고, 흔적이 남은 채로... 그저 볕을 쬐거나 습기를 피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115. 누구에게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시절이 있는 법이다.


    140. 사람의 웃음이...창(槍)처럼 사람의 배를 찌를 수 있다는 걸 믿으세요? 믿어...하고, 나는 뿔이 잘린 트리케라톱스처럼 고개를 끄덕였었다.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152. 버스는 오지 않고 여전히 달이 자신의 이면(異面)을 감춘 채 하늘의 서편에 머물러 있는 새벽이었다. 인간은 끝끝내... 자신의 내면을 감춘 채 사라지는 저 달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164. 태양과 바다와 꽃들은 실은 언제나 이 세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에겐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테크닉이 필요할 뿐이었다.


    174. 그게 인간이야.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미모를 준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ㅡ하고

    부끄러워하기 때문이야.


    217. 그 사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의 후회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그때>의 인간처럼 무능한 인간은 없다.


    220.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346. 추억이란 이런 것이다. 결국 인간의 추억은

    열어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는 녹슨 상자와 같은 것이다.


    360. 잠을 자고 난 머릿속이 멸망해 버린 세계처럼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사라진 세계다.


    361.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242. 숙제처럼 밀려 있던 날과, 아무런 검사도 받지 못한 지난 날들이 엎드린 시체처럼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누워 있던 밤이었다.







  • 박민규의 사랑학 개론 | hs**9 | 2018.04.06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전체적으론 못생긴 여자와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작가 박민규의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전체적으론 못생긴 여자와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작가 박민규의 독특함은 이번 멜로드라마에도 여실히 나타났다. 외모 지상주의 현실을 꼬집는 반면 사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매우 많이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소설 전반에 걸쳐 나타난 작가의 생각이 너무 많아 글을 읽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글 속에 작가의 의식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이번 소설은 작가의 생각이 구구절절하게 느껴져 흐름이 끊어질 때가 많았다.

    그래도 박민규의 몇몇 생각은 동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 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그 순간〉이 지난 후의 사랑은... 사랑이란 이름의 경제활동으로 변해 있기 마련이다.'

    참으로 독특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매우 동감이 되었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가 아닌 내가 바라는 상대방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사랑이라니 절로 고개가 끄떡여 졌다. 그래서 그 상상력이 소멸 되었을 때 헤어지는 것이리라.

    작가의 이전 소설에서 매료되었던 특이함이 이번 소설에서는 그저그런 독백의 편린들로만 느껴졌다.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 처음으로 두 번 읽은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6년 전 도서관에서 제목과 표지그림에 이끌려 읽었다가 이...

    처음으로 두 번 읽은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6년 전 도서관에서 제목과 표지그림에 이끌려 읽었다가 이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 박민규 작가의 모든 책을 다 읽었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 또한 알게되었다. 얼마 전 소장하고 싶어서 구매해 다시 한 번 읽은 이 책은 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 동안 수없이 읽어온 다른 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른 묘한 매력이 있다. 남녀의 러브스토리라는 평범한 소재를 평범하지 않게 특별하게 그려나가고, 읽는 내내 소설이 풍기는 몽환적이고 먹먹하고 아련한 느낌이 날 휘감는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낀다는것이 참 신기했는데 시간이 꽤 흘러서 다시 한 번 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박민규 작가의 모든 책들 중 단연 돋보이고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언뜻보기엔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소설같지만, 여자주인공을 못생긴 여자로 지정하면서 일반의 틀에서 조금 벗어나고, 이야기 속에 들어가있는 오브제들이나 단어들이 주는 느낌,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외모지상주의)에 관한것, 인간 본질에 관한 이야기 등 다른 이야기들도 한 데 잘 섞여있다. 개인적으로 반전이 있는 엔딩을 좋아하는지라 나에게는 반전이 주는 묘미또한 좋았고..  다른 책에 비해 두 배 가량의 분량임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소설 추천을 부탁받을때 꼭 얘기하게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한 동안 또 이 소설의 여운이 가시질 않을것 같다..

     

  • 고1이나 고2, 아님 중학생 시절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 제목이 너무나 ...

    고1이나 고2, 아님 중학생 시절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 제목이 너무나 멋있어보였다. '파반느'라.. 입에 착착 달라붙는 그 세련된 어감과 


    표지에 있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르가리타'라는 작품때문에 이 책을 집어든 것이다.


    박민규란 작가를 그 때의 내가 알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지금이라면 '박민규'라 적힌 책은 꼭


    관심 갖고 보았을 것이다. 고교 문학 교과서에 실린 작품의 작가이고, '핑퐁'이나 '카스테라' 등으로 


    유명했으니까. 또 그 책들 중 어딘가에 있던 저자의 사진, 큰 물안경 같은 것을 쓰고 괴짜같은 표정


    으로 있던 그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 엉뚱함과 특이한 문체, 그리고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정곡을 쿡쿡 찔러대는 그만의 이야기까지.


    허나 그 때의 나는 알았을까. 


    아직 펴보지 않은 이야기가 나의 마음 속에 깊이 깊이 자리잡을 것이라는 걸.


    수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책을 도서관에서 다시 집었을 때, 하긴... 예전에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설핏 읽지 못하고 외면한 것은, 내가 한 번 읽은 책은 다시는 읽지 않는 고약한 고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그 때만큼의 감성, 혹은 그 때 느꼈던 그 지독한 쓸쓸


    함과 슬픔, 그리고 '나'를 또다시 느끼고, 오래토록 잠식될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럼에도 다시 이 책을 펼치기까지에는 대출을 하고도 일주일 쯤이나 지나서였다. 


    아르바이트로 바빴고, 이미 책 대신 스마트폰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책상 위에 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치 독특한 냄새처럼 이 것은 문득문득 내 


    감각을 자극했고, 기필코 다시 읽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갖게 했다.


    마침내 이 책을 덮었을 때, 분명 당시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 때는 '소녀'였고, 지금은 '아가씨'니까.


    그 때는 지금보다 더 나의 못생김을 알았고, 그를 잊기 위해 웃긴 춤을 춰댔고, 아무렇지 않단 듯 견뎌


    냈으니까. 


    흐릿한 자아와, 여린 감성, 그리고 미와 추를 구별할 수 있는 것. 또 남녀의 관계 등에 대한 부끄러움


    까지.... 못난이 인형은 귀여운 맛이라도 있지, 나는 뭘까 하며 예쁘고 잘나기까지 했던 여자애들을 동


    경하고, 질투하고, 선망했던, 하지만 그런 티를 내는 순간 나는 끝장이다... 하는 유리갑옷까지 꽝꽝


    두른 그 소녀는, 여기 나오는 '그녀'와 얼핏 닮아 있었다. 


    밤에 혼자 가는 게 괜찮겠어? 하는, 하지만 그 뒤엔 아무렴, 설마? 하는 조소를 가린 그 질문에 


    그럼요! 저는 얼굴이 무기잖아요! 하면서 스스로 우하하 웃어보일 수 있어야 하는 그 일그러진 


    자신감. 그런 그녀를, 아니 나를 긍정적이라며 칭찬해주는 사람들.


    못생긴 여자에게도 로맨스가 있지만, 대신 아싸!를 외치며 우스꽝스런 막춤이라도 춰야 그나마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실. 


    스스로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리고 그래서 남자들의 시선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다름 아닌 내가 안다는 것은 바늘로 가슴을 꼭꼭 찌르는 것처럼 따갑고 애달픈 것이다.


    잘생긴 아버지와 못생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못생긴 어머니의 헌신 속에서도 아버지의 불륜을 목


    격해야만 했던 그는, 그래서였을까,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어머니처럼 못생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달리 죽을 때까지도 순애보를 간직한 채 말이다.


    절절하고 극적이게 키스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은 없었지만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오롯이 그녀를 그녀 자체로 바라봐주는 그로 인해 그녀도, 나도 위로를 받았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언니를 생각했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요한의 말처럼, 아니 요한이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생각을 듣는다


    면 요한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신보다 더 낮은 존재를 보면서 안도를 찾는 것이다. 


    그녀도, 그랬을까.


    애잔한 마음이 들면서도 ... 역시 나와 그녀 사이의 벽은 너무나 크고 견고하다. 


    .

    .

    .


    결말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두근두근할 만큼 떨리고 전율이 일었다. 


    그는 죽었을까, 정말.


    그녀는 요한과 결혼한 것일까.


    이것이 사실 그가 아닌 요한이 쓴 소설이고, 그의 '살았다면'을 쓴 것이라할지라도


    나는 그것의 답을 회피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는 내게 위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22살이 된 지금은, 여전히 쌍꺼풀 수술이 고민되고 턱이나 코를 손대고 싶고 다이어트를 어서 해야한다


    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긴 해도 당시만큼 괴롭고 실망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이 책을 읽어서라기보다는, 물론 이 책의 영향도 있겠지만 


    시간의 힘이 컸다는 것이다. 


    시간은 보다 많은 '나보다 아래'의 것들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런 나를 보았을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나를 돌볼 수 있었다.


    그녀가 34살이 되어, 안정을 찾았듯말이다.


    .

    .

    .


    그 때는 너무 슬프고, 내 치부를 들킨 것같아 괴로웠지만


    지금은 그 때의 나를 살포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 수척해진 봄 | su**ell | 2016.04.1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오른손에 들었던 커피잔을 왼손으로 옮겨 잡으면서 반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은 이미 ...

    오른손에 들었던 커피잔을 왼손으로 옮겨 잡으면서 반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은 이미 물에 풀어진 해면처럼 흐물흐물 기운을 잃었고 자판기에서 커피와 크림과 물이 일정한 비율로 혼합되어 나온 인스턴트 커피는 시간이 오래 지나 닝닝하게 식은 탓인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은 예전부터 알던 익숙한 맛이 아니라 설탕과 크림을 탄 느끼한 물에 중간중간 커피의 쓴맛을 풀어놓은 듯 제각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흐린 오후의 풍경에 묻혀 기억도 되지 않을 생각들에 골똘하였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은 느낌은 방금 전에 내가 마신 밀크커피처럼 닝닝하거나 밍밍했다. 박민규는 대개 세모나 네모처럼 비교적 단순한 구조 속에 몇 명 되지도 않는 인물들을 밀어넣고는 오직 자신만의 스타일로 채색을 하여 소설이거나 소설과 같은 어떤 것을 뚝딱(까지는 아니겠지만) 만들어내곤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기보다는 피카소의 베로니카에 가까운 것으로서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명확히 하기 위한, 소설이나 그림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그들만의 암호와 같은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민규는 오히려 단편소설을 쓸 때 더 과감해지곤 하는데 장편소설에서의 그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함인지 자신이 가진 빵조각을 조금씩 떼어 길 위에 뿌리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소설이 다 끝날 때까지 그의 발걸음 또한 아주 조심스럽구나, 느껴졌다. 소설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나와 그녀의 어설픈 사랑에서 시작하여 세 인물을 축으로 진행된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진 영화배우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와 함께 버림을 받은 '나'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그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회의 편견과 냉대에 저항하고자 스스로 마음을 닫은 채 생활하는 '요한'이 그들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세 사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헌사인 셈이다.

    "세상을 망치는 게 독재자들인 줄 알아? 아냐, 바로 저 넘쳐나는 바보들이야. 독재를 하건 누굴 죽였건... 여당이 돼야 이곳이 삽니다, 제가 나서야 집값이 오릅니다 하면 찍어주는 바보들 때문이지." (p.155)

    대학을 포기한 채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말엔 소설을 쓰는 '나'와 백화점 회장의 혼외 자식으로 태어난 '요한'은 지하 주차장 4층에서 함께 일한다.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나'와 '요한'을 형제처럼 묶는다. '그녀'가 '나'의 눈에 띄었던 것도 덩치만 크고 못생겼던 '나'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인 듯했다. '요한'의 주선으로 '나'와 '그녀'를 포함한 우리 세 사람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켄터키 치킨집에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곤 하면서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각자에게 있었던 서로 다른 어둠에 대한 납득이며 이해였다.

    이듬해 봄에 '나'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된다. 입학식이며, 수강신청이며 잡다한 일로 바빴던 '나'는 '요한'과 '그녀'를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이 자살 기도를 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그녀마저 연락도 없이 백화점을 떠난다. 그리고 대학을 휴학한 '나'는 그녀로부터 긴 편지를 받는다. '나'는 다시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해 가을에 그곳에서 일하는 '군만두'와 가까워진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사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 무렵 내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 그리고 끝끝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단 하나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길고 긴 인생의 터널을 생각하면 더없이 짧은 시기였지만 그 순간의 빛을 기억하면서, 나는 기나 긴 터널의 어둠을 지나왔다는 생각이다." (p.328)

    그리고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나'는 백화점 주임의 서랍에 있을지도 모를 '그녀'의 주소를 생각해냈고, '군만두'를 통하여 그 주소를 손에 쥔다. '나'는 그 주소를 들고 '그녀'를 찾아나섰지만 '그녀'를 만나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후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정확히 스무 살이 되는 '나'의 생일에 만나자고 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났다.

    "내가 간직한 추억이란 이름의 상자는 언제나 어김없이 그날 밤의 헤어짐을 끝으로 굳게 뚜껑이 닫힌다. 더는 열 수 없는 상자가 되는 것이고, 열어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상자가 되는 것이다. 그녀가 준 라벨의 LP를... 나는 그날 밤 잃어버렸다. 그녀를 잃은 것도, 하물며 나 자신의 삶을 잃은 것도 그날 밤의 일이었다." (p.347)

    어딘가 모르게 수척해진 봄볕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인근 공원을 잠깐 걸었고, 미세먼지가 양념처럼 섞인 봄햇살 몇 알갱이를 옷에 묻힌 채 돌아왔다. 뭐랄까, 툭툭 털어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추억이 양쪽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어제 밤 늦게까지 읽었던 피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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