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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쾌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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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쪽 | A5
ISBN-10 : 8959891630
ISBN-13 : 9788959891634
로마제국 쾌락의 역사 중고
저자 레이 로렌스 | 역자 최기철 | 출판사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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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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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맛있어..맛없어..맛있어..맛없어..맛있어..맛없어..맛있어..맛없어.. 5점 만점에 3점 anstjdp***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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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절정에 빠졌던 로마 100년을 그리다! 역사상 가장 강렬했던 쾌락의 기록『로마제국 쾌락의 역사』. 이 책은 현대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로마인들의 삶을 쾌락이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황제들의 쾌락부터 위풍당당한 도시 건축물,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는 빌라와 정원, 목욕, 섹스, 음식, 와인, 공연과 잔혹한 경기들까지 쾌락에 빠진 로마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쾌락의 역사로 살펴본 로마제국의 모습을 통해 쾌락이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정체성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살펴본다.

저자소개

저자 : 레이 로렌스
저자 레이 로렌스(Ray Laurence)는 로마의 역사, 폼페이, 로마 시대의 이탈리아에 대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대표 저작물로는 Roads of Roman Italy, Roman Pompeii : Space and Society가 있다. 영국 버밍험 대학교에서 연구 교수로 일하였으며 현재 켄트 대학교에서 고전과 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자 : 최기철
역자 최기철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고,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수료했다. 서울시 의전통역관, 문화방송 동시 통역사, 안양대 겸임 교수, 배화여대 영어통번역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역서로는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럭셔리 신드롬』, 『롱거버거 스토리』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 쾌락의 역사로 본 로마제국

1장 쾌락의 제국, 로마 23
2장 황제의 쾌락 51
3장 가장 아름다운 도시, 로마 79
4장 호화 빌라와 쾌락의 정원 111
5장 로마의 목욕문화 141
6장 로만 에로티시즘 171
7장 로마의 만찬 문화 201
8장 산해진미와 와인의 향연 229
9장 음악과 춤의 시대 259
10장 폭력과 잔혹성 285
11장 광적인 수집열풍 319
12장 쾌락이 로마 사회에 미친 영향 343

감사의 말 ㆍ366 / 주요 연표ㆍ368 / 인명ㆍ지명 및 용어설명ㆍ371

책 속으로

로마인들이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것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쾌락의 역사라는 관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쾌락의 역사라는 역사관은 두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첫째, 쾌락은 사회 효용성의 시각보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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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이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것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쾌락의 역사라는 관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쾌락의 역사라는 역사관은 두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첫째, 쾌락은 사회 효용성의 시각보다는 목적 없이 즐기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쾌락은 문화를 정의하려고 할 때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보게 될 것들은 로마인들 대부분이 자기들답고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한 문화에 대한 열정과 그렇게 열정을 바쳐 누린 즐거움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의 쾌락의 역사는 단순히 로마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가를 기술하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 P7

이 정원에서 로마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차지한 카이사르의 궁극적 승리를 축하하는 대연회가 벌어졌는데 당시 로마 시내 식료품 가게가 텅텅 비고 잔치가 끝난 후 식품가 인상이 뒤따랐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기원후 46년 9월에 벌어진 이 기념비적인 연회 자리에서 카이사르는 처음으로 와인 품질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새로운 방식에 따라 네 가지의 각기 다른 와인을 손님들에게 대접하였다. 카이사르는 6천 마리의 칠성장어를 기증한 친구 히르티우스의 도움으로 무려 19만8천 명의 손님을 대접하였는데 9인석 식탁이 2만2천 개나 차려졌고 식탁마다 최고 품질의 와인이 앰포라 병에 담겨 그대로 배달되었다. 역대 어느 나라 궁전에서도, 또 이집트 파라오의 궁전에서도 이런 잔치판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 P138-139

세상에 네로보다 더 역겨운 존재가 있을까? 그건 그렇고 세상에 네로가 지은 목욕탕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 마르티알리스 <에피그람마> - P141

왔노라, 했노라, 갔노라 - 고대 라틴 문헌집 - P171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과 폼페이의 발굴은 고대 로마인에 대한 18세기 사람들의 인식을 확 바꿔버렸다. 일찍이 키케로의 글을 읽고 마르티알리스나 유베날리스의 책도 들어봤기에 로마인들에 대해 무얼 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도 18세기 나폴리 왕의 박물관에서 드러난 사실 앞에서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왕의 밀실 벽은 노골적인 성애 장면과 남자의 성기를 그려 놓은 벽화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는 일반에게 공개되었지만 그전 100년 동안 폼페이 유적지의 사창가는 벽화의 내용이 너무 야하고 원색적이라는 이유로 여성 관광객들에게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그때까지 마르티알리스의 <에피그람마>를 영어 번역판으로 읽었던 사람은 노골적인 묘사가 가득한 마르티알리스의 라틴어 원문이 이탈리아어로는 번역이 되어 있지만 영어로는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 P173

로마제국의 십자가 처형은 잔학함에 대한 로마인들과 현대인 간의 인식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각 가정에서나 도심의 공공 장소에서 노예에게 형벌이나 상해를 가하는 일이 빈번했다. (중략) 기원후 61년에 일어난 세쿤두스 살해 사건은 용의자가 발견되지 않자 이럴 경우 그 집안 노예 전부를 사형에 처하는 법률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사학자인 타키투스가 쓴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당시 로마인들이 노예를 부리는 데서 오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안전대책을 마련하였는지 알 수 있다. 노예들은 걸을 때조차 항상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떼고, 언제 벌을 받을지 몰라 불안해하면서도 혹시 집안의 다른 노예가 주인을 공격할 것을 대비해 보호해야만 했다. 살해당한 세쿤두스의 집에는 노예가 400명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나이, 성별,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 무자비하게 처형당하였다. 처형이 실시되기 전 거리에서는 군중의 항의 시위가 있었지만 원로원은 이를 무시하였다. 또, 황제가 직접 파견한 병사들이 미리 세쿤두스의 집 도로변에 일렬로 늘어서 있어 군중들의 방해를 원천 봉쇄하였다. 그렇게 처형장까지 끌려간 노예들은 산 채로 화형당했다. - P292-295

콜로세움은 기원 후 80 년에 준공되었다. 마르티알리스는 준공을 기념해 5만 명의 관중 앞에서 펼쳐졌던 장관을 한 권의 시로 써냈다. 그 시의 이곳저곳을 읽어 보면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잔혹함의 장관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콜로세움에는 영웅이라고 불러 손색없을 인물들과 악한들이 관중들 앞에 내세워졌다. 야수 사냥꾼인 카르포포루스는 황소 20마리를 죽이고 나서 로마 제국 영역 안의 최북단에서 끌어온 곰 한 마리, 그리고 최남단에서 끌고 온 사자 한 마리를 더 죽였다. 관중들은 헤르쿨레스가 환생하였다며 환호하였다. (중략) 신화에 나오는 참혹한 상황들이 재현되거나 연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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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건축ㆍ목욕ㆍ수집ㆍ음식ㆍ와인ㆍ섹스ㆍ그리고 잔혹성. 쾌락의 절정에 빠졌던 로마 100년의 기록 쾌락의 역사로 본 로마제국 기원후 1세기, 로마제국에서 꽃피웠던 쾌락의 문화는 방대한 영토와 그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야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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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ㆍ목욕ㆍ수집ㆍ음식ㆍ와인ㆍ섹스ㆍ그리고 잔혹성.
쾌락의 절정에 빠졌던 로마 100년의 기록

쾌락의 역사로 본 로마제국

기원후 1세기, 로마제국에서 꽃피웠던 쾌락의 문화는 방대한 영토와 그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야만인들과 구분되는 문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뜨거운 분출이었다. 로마의 두 영웅,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일찍이 씨를 뿌리고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싹을 틔워 후대 황제들에 이르러 흐드러지게 피어난 쾌락의 문화는 로마에 이어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퍼졌다. 쾌락의 선봉에 선 인물은 다름 아닌 황제들이었다. 일찍이 인간이 근접하지 못했던 갖가지 쾌락을 향유하던 1세기 로마인들의 유산은 하나의 사고방식 혹은 문화 현상으로 남아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마저 유혹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효용의 가치와는 거리가 먼 쾌락이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얼마나 큰 힘으로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

2천 년 전, 로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방대한 영토의 지배자인 황제, 토가를 차려입은 귀족들과 검투시합을 보며 열광하는 시민들, 대리석으로 지은 목욕탕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대화와 거침없는 섹스, 그리고 반란을 꿈꾸는 노예와 검투사……. 고대 로마는 오늘날까지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다. 역사상 그토록 지배적이고,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폭력과 성이 난무했던 시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후대인들은 그런 로마의 ‘방탕’을 은근히 부러워하면서 제멋대로 상상하길 즐기고 그런 상상은 네로와 칼리굴라 같은 비이성적인 황제나 잔혹한 검투사들의 세계를 다룬 ‘19금’ 영화를 쏟아낸다. 우리가 보아왔던 것이 사실일까?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었을 수도 있다. 1세기 로마 사회가 열정적으로 쾌락을 추구했던 것은 드넓은 세상의 지배자 혹은 세련된 문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한 방식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 누구보다 앞장서 쾌락을 추구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황제들이었다. 로마 황제라는 자리는 사실상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자리로, 그들의 쾌락 추구에는 그 어떤 선이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남의 아내를 취하고 수많은 인명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네로나 칼리굴라 같은 황제들은 역사에 ‘악의 화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조차 쾌락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황제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황후 리비아는 원래 남의 아내였던 것을 빼앗은 것이며 나이 들어서까지 수많은 처녀들을 줄줄이 침실로 불러들였다. 황제를 위해 처녀들을 간택하는 일은 리비아 황후가 손수 맡았다. 현명하고 후덕한 황제로 백성들의 추앙을 받은 아우구스투스조차 개인적인 쾌락을 양보하지 않았으니 다른 황제들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회적인 쾌락의 추구는 먼저 눈으로 보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로마 전역에 대규모 건축물과 위락시설을 조성하였는데 거기에 들어간 돈은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카이사르의 후예인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새로운 로마시를 건설하는 데 더욱 공을 들였으며 후대 황제들은 자신의 위상과 치적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건축물을 선택하였다. 제국의 수도 로마의 모습은 당시에 이미 세계 도시로서의 위용을 뽐냈으며 판테온과 콜로세움을 비롯한 경이로운 건축물들의 유적은 오늘날까지 위용을 자랑하며 현대인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도시 건축의 열풍은 귀족들의 빌라와 정원으로 그대로 옮겨져 오늘날 발견되는 고대 로마의 빌라들은 현대인들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빌라에서 발견되는 각종 프레스코 벽화와 모자이크화, 그리고 조각 작품들은 이탈리아와 유럽 각국의 박물관들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이다.
이제 입이 즐거울 차례이다. 영화에서 자주 보아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의 만찬은 산해진미와 와인을 곁들인 하나의 거대한 행사로 주인과 식객들은 평상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식사를 즐겼다. 수많은 노예들이 동원되어 차례차례 음식을 들여오는 로마의 만찬은 오늘날의 그 어떤 최고급 코스요리와도 비교되지 않는 호화로움의 극치였다. 로마인들의 와인 사랑은 너무나 극진하여 오늘날 발굴되는 거의 모든 유적지의 지하에는 와인 저장고가 있으며 와인을 담는 술병인 암포라가 무더기로 나오곤 한다.
로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하얀 수증기로 덮인 목욕탕이다. 로마의 목욕 문화는 가장 빨리 제국의 구석구석으로 전파된 로마 문화였다. 로마가 점령했던 브리튼, 리비아, 예루살렘, 터키 등 거의 모든 지역에서 고대 로마의 목욕시설이 발견된다. 대단히 대규모로 화려하게 또 과학적으로 설계된 목욕탕은 오늘날과 같은 냉탕과 열탕, 사우나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목욕이야말로 그들을 야만인과 구분시키는 가장 문화인다운 습관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로마의 성(性)문화는 오늘날까지 호기심의 대상이며 끊임없는 이야기를 자아내는 주제이다. 노골적이고 질펀한 성애 장면 그림, 각종 욕설과 문구로 뒤덮인 폼페이 사창가 유적지는 최근까지 여성 관광객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가장 두드러진 그들의 성 문화 가운데 하나는 남색(男色)으로 이는 오늘날 말하는 동성애와는 다르다. 로마의 성인 남자들은 십대 소년들을 섹스 파트너로 두는 경우가 많았으며 주로 노예 소년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카이사르조차도 십대에 이런 경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매우 지배적인 성 문화였으며, 더욱 기이한 것은 이런 장면들을 유리병이나 청동컵에 새겨 넣어 집안을 장식했다는 것이다. 현재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명한 ‘워런 컵’에는 한 성인 남자와 소년의 성애 장면이 새겨져 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와 최근의 인기를 끌었던 <스파르타쿠스>에서 보듯이 로마의 잔혹성과 폭력성은 현대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영화에 그려진 것들은 실제에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들의 시합은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였으며 콜로세움과 같은 거대 경기장에서는 고대 신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공연도 펼쳐졌다. 물론 그 신화에서는 반드시 누군가 죽게 되어 있었고 때로는 맹수들이 등장하여 관람객들이 보는 앞에서 잔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기원후 80년 콜로세움 개관일에 목숨을 걸고 싸운 검투사들의 수는 무려 3천 명에 달했다. 로마인들의 잔혹성은 노예들에 대한 기록에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노예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끊이지 않았으며 가장 가혹한 것은 목숨을 끊어버리는 십자가형이었다. 십자가형이 얼마나 유행했는지 당시 십자가형을 대행하는 대행업자들이 성행했을 정도였다. 손님들 앞에서 술잔을 떨어뜨린 한 노예를 칠성장어 양식장에 던져 넣으라고 했던 귀족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로마 시 지사였던 세쿤두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범인을 찾지 못하자 그 집안의 노예 400명이 모두 화형에 처해졌다.

쾌락의 경제적 효과

오늘날의 럭셔리 소비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고급 소비가 전체 소비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1세기 로마의 쾌락문화는 그 자체로 지대한 경제적인 효과를 자아냈다. 우선 대규모의 건축 공사는 수많은 신축 공법과 건축기술의 발달을 낳았고 인력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런 건축 공사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또한 풍부한 물산과 대규모의 거래는 통화 경제의 새로운 큰 변동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8세기 산업혁명 이전까지 1세기 로마 시대만큼 인류가 자원을 대규모로 소비한 적은 없었다. 로마 제국은 유럽과 지중해 전역의 광산에서 금ㆍ은ㆍ동ㆍ납ㆍ아연을 대규모로 채굴하였으며 이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기오염 정도는 산업혁명에 이르러서야 그 기록이 깨질 정도로 높았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는데, 그린란드 대륙빙하 핵심부의 빙하 시료 분석에 따른 결과, 인구 6천만 명에 불과했던 로마 제국이 생산했던 금속의 양이 전체 인구 2억 명이 넘었던 1820년 유럽의 생산량과 맞먹는 것으로 나왔다. 기원후 1세기에 지중해의 난파선 수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았다는 사료 또한 이 시대의 풍요로움을 반증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금속이 막강한 로마 군단의 무기를 만드는 데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동전 주조와 수도관, 건축물의 지지물, 술잔과 그릇, 각종 화려한 장신구들에 모두 사용되었다. 1세기 로마제국의 경제력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풍부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시대는 2세기 말엽에 기울기 시작하여 기원후 4세기에는 스토아 철학이 대세를 이루며 과거의 쾌락과 방종을 비난하였다.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쾌락의 문화도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고 화산재에 묻힌 폼페이 시가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도에 넘치는 로마의 쾌락문화 역시 화산재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폼페이 유적지의 발굴과 함께 드러난 고대 로마의 흥미로운 유산은 20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을 강력하게 끌어들이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여죄수 하나에게 크레타 여왕 파시파에(Pasipha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스 왕의 아내. 신의 노여움을 사 소를 사랑하게 되어 반인반수의 괴물을 낳는다. - 편집자 주)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혀 황소에게 수간을 당하게 만들었다. 마르티알리스는 거기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사실이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On Spectacles : 5).” 다이달로스(Daedal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뛰어난 대장간. 미노스 왕의 명으로 미궁을 만들었으나 나중에 미궁에 갇혀 아들과 함께 날개를 달아 탈출한다. 그러나 태양 가까이 가면서 날개가 녹는 바람에 아들은 바다에 떨어져 죽고 다이달로스만 시칠리아로 도망간다. - 편집자 주) 역으로 죽어간 죄수도 있었다. 그가 날개를 잃고 경기장 바닥에 처박혔을 때 몸뚱이가 뭉개져 버렸는데 그 위에 수퇘지가 덮쳐 아예 누더기를 만들어 버렸다.’ - P300-302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손녀 율리아는 당시 기록에 따르면 살아 있는 성인 여자 가운데 가장 키가 작다는 어떤 여자 노예를 데리고 있다가 자유를 주어 내보냈다. 도덕군자인 세네카의 부인은 하르파스테라는 기괴하게 생긴 난쟁이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굉장히 비싼 값을 치르고 사들인 노예였다. 로마제국의 문헌들을 뒤지다 보면 평범하지 않고, 기이하고, 괴상한 사람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오늘날로 치자면 ‘믿거나 말거나’에 나오는 이상한 사람들, 특이한 쇼에서 소개하는 괴상한 생명체나 희한한 사람들, 또는 최근 미국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서커스 중간 중간의 촌극 순서에 등장하는 기이한 인물 등에 버금가는 특이한 사람들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로마에는 이런 특이한 노예들만을 사고파는 시장이 따로 있었는데 그런 노예들은 평범한 노예들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런 노예들을 웃돈을 주고 사들였다는 것은 로마인들이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기이함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꼈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통계를 보면 신생아 33명 가운데 하나는 선천적 기형아라고 한다. 그렇다면 로마제국 당시에도 선천적 기형아는 그리 드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이 아닌 노예들의 가격이 그토록 비쌌던 이유는 기형으로 태어나서 일찍 사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성인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부자들은 키가 아주 작거나 지독하게 못 생긴 노예 등을 사서 남들에게 보여주고는 했는데 마치 자기가 지닌 청동 조각상을 자랑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P338-339

‘폭군’ 네로와 ‘성군’ 하드리안 사이에는 그것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네로 황제에게도, 하드리안 황제에게도 남색 애인이 있었다. 하드리안 황제의 남색 애인인 안티노우스의 존재와 네로 황제의 남색 애인인 스포루스의 존재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안티노우스는 유명 인사 취급을 받은 반면 스포루스는 그렇지 못했다. 이런 차이는 아무래도 로마제국 문화의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한다. 네르바 황제와 트라야누스 황제 재위 기간 동안 네로 황제에 대한 전기를 썼던 사람들은 네로가 폭군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네로 황제가 쾌락에 탐닉했던 점을 마음껏 비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똑같은 쾌락에 후대의 황제와 로마 시민들은 똑같이 탐닉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수사학의 함정에 불과하다. 쾌락에 빠져 지낸 예전 황제를 잔뜩 비방해 놓았는데 지금 황제가 그런 쾌락을 은밀히 탐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누릴 수 있는 쾌락들은 어떤 쾌락들인지 규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결국 용인되지 못하는 쾌락이 무엇인가는 저마다의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 P351-352

유사 이래 인류가 금속을 생산하면서 유발한 대기 오염의 정도는 그린란드에 형성되어 있는 대륙빙하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린란드 대륙빙하 핵심부의 빙하 시료 분석에 따르면 고대에 대기 오염이 가장 심했던 시기는 약 2000년 전이라고 하는데 바로 기원후 1세기의 시발점이다. 이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이 못 된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린란드 대륙빙하 핵심부의 빙하 시료에 반영되어 있는 정도의 대기 오염을 발생시켰던 금속의 생산량이다. 그 정도의 대기 오염을 발생시키려면 납은 연간 5만 내지 8만 톤, 구리는 연간 1만 5천 톤, 아연은 연간 1만 톤을 생산해야 한다. 그런데 유럽 지역에서 그런 규모로 금속을 생산한 때는 1820년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기원후 1세기 로마제국 시대가 유일했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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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제국 쾌락의 역사 | sj**gik | 2011.10.25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개인적으로 역사가 재밌는 이유는 하나의 사물(국가, 민족, 개인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
      개인적으로 역사가 재밌는 이유는 하나의 사물(국가, 민족, 개인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이 흘러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면 나도 덩달아 흥분이 된다. 그래서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 취향상 옛 것을 더 좋아하고 바로 정답이 나오는 그런 스타일에 익숙치 못하다. 그렇다고 복잡한 것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지만.
     
      역사에 진리가 있다면 세상에는 과거의 일을 둘러싼 전쟁이나 다툼이 없어져야 한다. 이미 해답이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만 해도 동해, 독도, 이어도 등을 둘러싼 문제로 일본, 중국과 다투고 있지 않은가. 국제 분쟁을 보면 우리보다 더 심각한 일도 많지만, 아무튼 역사를 둘러싼 해석은 다양하고 쉽사리 정답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설령 정답이 나온다해도 수백 수십 녀간 믿어온 거짓 사실을들 내버릴 우리 인간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복잡다단한 역사 이야기가 재밌고 끌린다. 앞으로 또 어떤 주제와 논쟁거리들이 나올지 알 수 없기에 말이다.
     
      오늘 다 읽은 <로마제국 쾌락의 역사>는 그리 재밌는 책은 아니지만 '쾌락'이라는 주제로 기원후 1세기의 로마사회를 소개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국의 역사학계에는 솔직히 다양성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이 정치와 경제를 다룰 뿐 당시 인간들의 내밀을 면을 다루는 데는 익숙치 못하다. 물론 최근에 미시사의 소개나 사회사 등의 영향으로 개인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을 보라! '쾌락(pleasure)' 아닌가? 한국사에서 언제 이런 걸 다루었단 말인가. 요즘 '性'과 관련한 책이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역시 내용은 기대에 못미친다. 그 책들을 읽어보면 출전이 거의 비슷해(대체로 조선왕조실록) 반복되는 내용이 너무 많다. 
     
      쾌락이라고 하면 으례 성적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겠으나 이 책에서 다루는 쾌락은 성적인 것 외에 도시, 빌라, 정원, 목욕 문화, 에로티시즘, 만찬 문화, 산해진미와 와인, 음악과 춤, 폭력과 잔혹성, 수집 열풍, 황제의 쾌락 등 제법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미리 말하자만 성적인 부분은 기존에 상상하고 있던 부분에 비해 약하고 기대치에 못미친다고 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이 티비나 영화에서(특히 칼리굴라나 스파르타쿠스) 자극을 받은 탓으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그것을 마치 실인양 받아들이고 있던 우리는 영화 제작자의 의도에 잘 말려들어간 셈이다.
     
      여기서 일일이 책 소개를 다 할 수는 없다. 주제 하나당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신 로마인들은 어떻게 저런 쾌락에 빠졌을까 하는 점을 말하고 싶다. 기원후 1세기의 로마는 그 이전 공화정과는 다른 분위기의 사회였다. 또한 기원후 2세기의 로마와도 달랐다. 그것은 아무래도 시저에서 시작되어 아우구스트스 시기에 완성된 로마제국(황제 지배 시대)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국가의 모든 권한이 황제에게 집중되고, 그 황제는 모든 이들의 모범이 되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귀족과 백성들을 위해 쾌락을 선사하고 사회는 이를 꾸준히 즐기게 된다. 속국에서 들어오는 엄청난 조공, 황제의 넘쳐나는 재산이 이를 가능케 했다. 이것은 지방의 귀족과 유력가에게도 영향을 그들은 황제를 흉내내기에 이른다. 물론 쾌락의 절대다수를 황제와 귀족들이 누리기는 했으나 로마제국에 강력한 영향을 남겼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이후 현대 사회에도 면면히 이어져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엉뚱한 상상 하나. 책이 다루는 로마느 기원후 1시기 경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0년 전의 로마사회이다. 이 시기를 분석하는 데 있어 저자는 유물유적은 물론 당대의 사료들을 풍부히 이용하고 있다. 2000년 전의 것들을 말이다. 눈을 돌려 우리의 역사를 보자. 2000년 전이면 고조선이 망하고 초기 국가들이 세워질 무렵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당시의 자료가 전혀 없다. 당시인들이 사용했을 붓도 발견되었으나 그들이 남긴 글이 전혀 없다.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다. 이 시기를 알려주는 기록은 대부분 당대 중국의 기록이거나 후대 고려의 <삼국사기>, <삼국유사>정도일 뿐이다. 우리 선조가 문헌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을진데 우리에게는 왜 로마나 고대 중국만큼의 문헌자료가 없는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엉뚱한 상상한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 쾌락이 미친 영향 | mo**ardin | 2011.10.1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기원후 1세기의 로마를 생각한다면 단연코 쾌락으로 물든 시대였다.  쾌락이란 무엇인가?   사전...
    기원후 1세기의 로마를 생각한다면 단연코 쾌락으로 물든 시대였다. 
    쾌락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  감성의 만족,,, 
    그렇다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그 시대의 로마에선 쾌락을 어떻게 즐겼으며 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바로 이를 다룬 책이다.  
    기원전보다 기원후 1세기의 로마에서의 쾌락의 주인공의 중심은 무소불위의 황제였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표현을 보자면 유약하고 병약하게 생겼지만 정말로 의외의 욕정을 가진 남자로서 친구, 친척의 부인,노예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이런일에만 쾌락을 쏟았던 것은 아니다. 
     농신제란 나라의 축제일을 맞아서 온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으며 빈부의 차이를 구분하지않고 즐길 수있는 축제를 주도했다. 이후 그의 뒤를 이은 황제들도 여전히 그의행보를 답습하고 있고 여기에 덧붙여서 건축이나 기념물세우기, 화재로 인한 복구같은 선정적인 정치도 곁들여했다. 이런 쾌락은 네로황제에 이르러서 소수자들이 즐기고 있던 내실에서의 은밀한 즐거움까지 백성들에게 전이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면 쾌락엔 이런 정도에 그쳤겠는가가 작가의 토대로 이뤄진 다음의 내용이다.  
    로마인들은 우선 도시가 가질수 있는 기능에 충실함을 보인다. 즉, 도시의 아름다움을 주도했고 이는 폼페이우스의 최초의 석조극장 건설에 이어서 카이사르대에 이르러선 광장안에 그림을 전시함으로써 백성들이 찾아와서 즐길 수있는 볼거리의 쾌락을 주도했다.  
     그후 아그리파의 대규모 건축공사 , 네로 때의 대화재로 인한 빈민가의 재건축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베시파시우스 황제의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모토아래 콜 로세움과 평화의 신정 설립은 또 다른 이정표를 낳았으며 이는 로마의 도시계획이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게끔 새로운 길을 열게된다.  
    이런 황제의 주도아래 로마의 시는 점차 황제가 지닌 권력에 맞춰 화려한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고 이는 곧 황제의 정원, 시민들에게 개방된 정원이란 이분법적으로 갈린다.  
    그랬기에 귀족들은 황제에게 맞서지 않되 자신의 금권력으로 쉴 수있게 만든 지방의 빌라가 유행하게 된다. 이들 부자들은 빌라를 지음에 있어서 문화활동 외에 규칙적인 운동을 할 수있는 체력단련실을 마련함으로써 휴양의 목적과 함께 규칙적인 생활을 위시했음을 중요시 여겼다.  
    다음으로 누릴 수 있는 쾌락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목욕의 문화와 에로티시즘을 얘기 할 수있다.  
    목욕은 다름 사람과 어울릴 수있는 쾌락을 선사했으며 목욕탕의 종류도 냉탕, 열탕, 온탕으로 나뉠만큼 세분화되었다.  
    계급의 차이도 없을만큼 누구나 같이 옷을 벗고 할 수있는 유일한 문화였지만 이마저도 자신의 계급 위치에 따라서 본의 아니게 물의 온도차가 생기기 마련인 목욕탕에서 구분이 지어지게된다.  (한가한 귀족들은 한창 뜨거울 온도와 적정한 온도의 물을 즐길 수 있었으나 힘든 노동직이나 노예들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물의 온도도 내려간 이후에 사용할 수 있었다.) 
    과거의 어두운 면이 강조된 목욕탕과 함께 유리의 발달로 인한 환한 빛이 들어오는 신식 목욕탕이 공존해 있었고 목욕탕 안에서의 체력단련 소리, 마사지사의 소리,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소리까지듣게되었다.  
     이 목욕문화가 발달한 것에는 목욕이 주는 자체의 쾌감, 남들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 성적인 섹스를 좋아할 것이란 상대를 보고 느끼는 이상한 쾌감이 공존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목욕탕에서도 남을 의식하는 행동을 하지않을 수없는 현상이 발생하게되고 남,녀 혼탕도 존재했다.  
     미드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로마인들의 에로티시즘을 엿 볼 볼거리를 가지게된다.  
    로마인들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 동성간의 성이란 개념이 없었으며, 춤추는 사내아이란 뜻의 키나에두스를 혐오했다.  
    로마인들이 생각하는 성이란 것은 성 행위의 주도성을 중요시했기에 자신의몸을 상대방에게 허락함으로서 희열을 느끼는 수동적 행동의 이런 부류들을 이용하면서도 동급의 인간으로 생각을 안했다.  
    가장 큰 충격은 우리가 알고있는 로마의 대표적 인물인 카이사르조차도 어릴 적 친척들로부터 항문 삽입의 성을 당했단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린남아가 성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에 아무런 장애가 안됬으며 이로 인해서 결혼에 이르러서는 정착하는 과정이 된다는 당시의 사람들이 가진 성개념이란 사실이었다.  
    또한 폼페이의 프레스코화에 나타난 남녀간의 성 묘사는  여러 난잡한 혼교를 보여주는 그림이 있지만 실제론 로마인들의 성 생활은 은밀한 내실에서 이루어졋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은  현대들이 상상한 결과임을 작가는 말해준다.  
    이들이 느끼는 쾌락은 만찬문화와 산해진미, 와인으로 이어지며 음악과 춤으로 이어지는 연장선을 보인다.  
    즉, 생선젖을 이용한 감칠맛을 내는 음식조리법, 오늘날의 와인의 등급효시가 되는 과정, 귀족들에게까지 퍼진 가무의 연장은 거리의 온갖 소음으로 이어지는 폐단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뭣보다 가장 크게 즐겼던 것은 폭력과 잔혹성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남에게 고통을 가하고 괴롭게 만들고 굴욕감을 주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존재- P317  
    이 구절처럼 로마인들은 대형 원형경기장에서 예루살렘 정복후 포로가된 유대인들을 죄수로 삼아 온갖 잔혹함을 즐겼다. 더불어서 검투사라 불린 사람들의 존재도 인기가 급상승되는 시대를 연다.  
     이 밖에도 수집 열풍이 불어서 광적으로 모음으로써 또 다른 쾌락을 맛보게 되고  이에는 아주 다른 특이한 인간수집도 모으는 사례를 남긴다.  
    곱추나 난쟁이 같은 사람들은 노예로서도 아주 비싼 값을 치르는 수집대상이 되었으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존재로 살아갔다.  
     이처럼 기원 후 1세기인100년 동안 이루어진 로마의 모든 종류의 쾌락을 되짚어 본 작가의 내용은 그간 알고 있었던 다분히 상투적인 쾌락의 본질을 넘어선 전혀 다른 종류의 쾌락을 선사함으로써 독자를 끌어당긴다.  
     위의 쾌락은 결국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안에서 풍요롭게 경제를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작가는 말한다. 즉 건설로 인한 대규모 인원동원이나 자금의 흐름은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의 원리와 비교해보건대 가능함을 제시해 준다.  
    비록 폼페이의 사창가를 기준으로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의 성생활을 단정짓기에 무리가 있으나 로마인들이 생각했던 성에 대한 생각이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있는 계기가됬고 뭣보다 이런 쾌락의 진출이 브리튼 섬에서까지 받아들이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우리가 당시의 유적지와 유물을 볼 수있는 기회를 제공했단 점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금.은.동의 채굴과정은 지금의 지구 온난화와 대기오염을 유발시켰단 증거가 새삼 놀랍기만 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알 수도 없었거니와 그럴 의도로 행하진 않았을 행동들이 지금의 지구가 앓고있는 병에 원조란 생각을 해 볼땐 미래의 또 다른 우리의 모습도 생각을 한 할수가없게 한다.  
     비록 당시의 쾌락이 기원후4세기 접어들면서 스토아 학파와 그리스도 정신을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 폄하되고 재평가를 받는 과정과 서서히 몰락해가는 로마의 시대상 어쩔 수없이 후퇴의 길을 걷게됬지만 현재도 여전히 당시의 사람들이 즐겼던 잔혹성이 지금도 답습되고 있다는 작가의 주장엔 씁씁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언제나 읽어도 궁금한 로마시대의 각종 책들은 지루함을 모르게 만드는 , 캐어도 캐어도 계속 솟아나는 물줄기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도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책으로,특히 간간이 책 속에 프레스코화 벽화와 다시금 방문지를 생각케하는 장소는 읽는 재미를 더욱 쏠쏠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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