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KYOBO 교보문고

문화누리카드 매장결제 10%
오작교캐시
  • 낭만서점 독서클럽 5기 회원 모집
  • 교보아트스페이스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 중고장터 판매상품은 판매자가 직접 등록/판매하는 상품으로 판매자가 해당상품과 내용에 모든 책임을 집니다. 우측의 제품상태와 하단의 상품상세를 꼭 확인하신 후 구입해주시기 바랍니다.
| | 150*210*23mm
ISBN-10 : 8958271221
ISBN-13 : 9788958271222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중고
저자 옥영경 | 출판사 한울림
정가
15,000원 신간
판매가
12,600원 [16%↓, 2,400원 할인]
배송비
2,500원 (판매자 직접배송)
지금 주문하시면 2일 이내 출고 가능합니다.
토/일,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 기준으로 배송이 진행됩니다.
2019년 6월 27일 출간
제품상태
상태 최상 외형 최상 내형 최상
이 상품 최저가
12,600원 다른가격더보기
  • 12,600원 책책북북 특급셀러 상태 최상 외형 최상 내형 최상
새 상품
13,500원 [10%↓, 1,500원 할인] 새상품 바로가기
수량추가 수량빼기
안내 :

중고장터에 등록된 판매 상품과 제품의 상태는 개별 오픈마켓 판매자들이 등록, 판매하는 것으로 중개 시스템만을 제공하는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해당 상품과 내용에 대해 일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교보문고 결제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은 직거래로 인한 피해 발생시, 교보문고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판매자 상품 소개

※ 해당 상품은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하여 안내하는 상품으로제품 상태를 반드시 확인하신 후 구입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판매자 배송 정책

  • 토/일,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 기준으로 배송이 진행됩니다.

더보기

구매후기 목록
NO 구매후기 구매만족도 ID 등록일
38 배송이 빠르고 책 상태도 좋아요 5점 만점에 5점 hoogl*** 2020.02.16
37 책 상태 완전 좋네요. 대만족입니다! 5점 만점에 5점 bjhd*** 2020.02.14
36 책 상태 진짜 좋아요~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jksbmn7*** 2020.02.13
35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garf*** 2020.01.31
34 빠른배송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4점 bultin*** 2020.01.31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상품구성 목록
상품구성 목록

‘아이들은 저마다 가진 힘으로 충분히 생각하고 스스로 자란다.
그 곁에서 우리가 할 것이 ‘바라봄’ 말고 무엇이 있을까.’ 부모교육이 안 되어도 아이를 낳아 엄마 아빠가 되고, 쑥쑥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우리는 좋은 부모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부모로 살다보면 어제는 잘하는가 싶다가도 오늘은 아이에게 이래도 되나 순간순간 좌절하고 갈등하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아이를 키우며 교육문제로부터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한민국 전 인구가 다 관여하는 유일한 문제랄 수도 있는 주제가 바로 ‘교육’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는 30여 년 동안 ‘새로운 학교 운동’을 하며, 아이들의 학교이자 어른의 학교이기도 한 산골의 작은 배움터 ‘자유학교 물꼬’를 꾸려왔다. 산마을에 깃든 지 20년, 그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고 아이들의 농담을 이해하는 한 사람이며, 그들의 삶에 동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만나왔고, 스물둘이 된 아들을 두었다. 열여섯 살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친구 삼아 책 읽고 글 쓰며 지내던 저자의 아이는 열일곱 살이 되어 읍내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와 대전 소재 의과대에 합격했다. 이후에 사람들이 물어왔다, 아이를 어떻게 키웠냐고.

이 책은 산골에서 아이와 엄마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시간으로는 아이가 제도권 학교에 간 열일곱 살을 중심으로 전과 후를, 내용으로는 학습의 기초가 되는 밑바탕이 무엇이며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그 속에서 어른의 역할은 무엇이고 아이들에게 어떤 걸 허용하고 불허해야 할까, 아울러 우리가 결코 저버리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들을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 교육을 위해 산으로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바닷가에 사는 아이는 바다를 안고, 도시에 사는 아이는 빌딩을 안고 저마다 사는 곳에서 자기의 길을 만들어 가면 될 것이다.
교육은 결국 부모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담는 일이다. 교육을 탓하고 제도를 탓해도 세상이 어떠하든 결국 부모들 모두 자기가 선택하는 대로 아이를 교육시키지 않던가. 우리는 모두 주변 상황에 끌려 다니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연을 끊을 수도 없는 고민을 하면서 산다. 이 책은 그 어디쯤을 서성인 이야기이다.

내가 아이에게 적게나마 잘한 게 있다면, 그의 삶에 덜 개입한 게 아닐까 싶다. 대단한 교육 혹은 양육의 사유 안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저 나 살기가 바쁘다 보니 얻어진 결과이긴 하지만…. 한단을 봐도, 물꼬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봐도 덜 만질수록 빨리 낫는 뾰루지 같다는 생각이 아이들을 만나는 날들만큼 쌓였다.
(…)
아이들이 어디 가르치는 대로 되던가, 본 대로 한다. 그들을 둘러싼 것들을 통해 보고 들으며 배운다. 그들이 잘 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어른들이 잘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그런 생각도 한다. 우리가 손을 덜 대서 그나마 우리 아이들이 이 정도라도 자라주었다. 자꾸 뒤집어서 망치고 마는 부침개처럼 우리가 자꾸 뭔가 개입해서 멀쩡한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 본문 ‘아이 앞의 모든 어른은 교사다’ 가운데서

저자소개

저자 : 옥영경
자유학교 물꼬 교장

사회과학서점을 드나들며 80년대를 보냈고,
새로운 학교 운동 1세대로, 공동체 운동 2세대로 90년대를 보내다
산마을에 깃든 지 20여 년.
나이 스물두 살에 시작한 ‘공동체 실험’과 ‘새로운 학교 운동’을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뚜벅뚜벅 걸으며 하고 있다.

아이는 열여섯 살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산골에서 지내다
열일곱 살에 제도권 학교에 들어가 3년 뒤 의예과를 갔다.
태교는 엄마의 사람됨, 교육은 부모의 삶,
그래서 좋은 엄마이기까지는 어렵더라도 제 삶을 잘 살려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 세 가지,
물꼬 일을 하게 된 것, 남편과 혼인하고, 아이를 낳아 그의 생에 동행한 일.
하나 더 보탠다면, 사랑하는 벗들과 생을 노래하는 것도.
드러누워 우듬지 보기를 좋아하고, 도시에서조차 맨발로 다니는 걸 사랑한다.
좋은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만들므로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일하고 배우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기를 바란다.

목차

서문
여는글

1장. 자유로운 삶
"학교를 왜 가겠다는 거래?" 아이에게 물었다

2장 독립적인 삶
부모와 아이, 따로 또 같이 걷다

3장 가치를 찾는 삶
배우며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

4장 스스로 만드는 삶
아이들도 제 삶을 산다

닫는글

책 속으로

‘아이들은 강하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엄청. 세상의 모순을 다 견뎌내고 가방 둘러메고 학교 가고, 어른들 꼬락서니가 어째도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아이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력으로 힘차게 오를지니.’ 어느 날, 아이가 대...

[책 속으로 더 보기]

‘아이들은 강하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엄청. 세상의 모순을 다 견뎌내고
가방 둘러메고 학교 가고, 어른들 꼬락서니가 어째도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아이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력으로 힘차게 오를지니.’

어느 날, 아이가 대안학교도 아닌 제도권 학교에 가겠다고 말했다. 열다섯 살을 지나던 무렵이었다. 아니, 왜? 여태 잘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학교에….
“지금까지 잘 지냈잖아!”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힘들었다고 했다. 하기야 산골생활에서 그 많은 일이 좀 힘들었을까. 적은 일은 아니었다.
(…) 조만간 학교를 그만둔다는 소식이 들리려나 했는데 웬걸, 아이는 마침내 수능 앞까지 이르렀다. 아이에게 말했다, 그리 우뚝한 삶이란 것도 별 게 없더라고! 더하여 물었다, 대학을 가려는 까닭이 잘난 위치를 선점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저만 잘난 체하려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끝으로 덧붙였다.
“그래도 사유하므로, 끊임없이 흔들리므로 너는 건강하고, 잘 살고 있다!”
어디로 흘러갈지는 그의 일일 터, 내 일이 아니라!
- ‘열일곱 살, 학교를 가다’ 가운데서

영아기에 천재일지도 모를 것만 같았던 우리 아이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대개 평범합니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고, 흔히 우리가 원하는 성공을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대부분은 좋은 대학도 못 가고, 혹 운이 좋아 좋은 대학을 가도 그저 그런 월급쟁이로 생을 마감할 것이고, 그러다 그저 뒤처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수위를 낮추어도 그것마저 쉽지 않을 때가 있지요. “그러니 그저 좋은 사람으로 키워보는 건 어때요?” 한 소설가의 제안이었습니다. 가족 말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으로 키워보는 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오로지 절대적인 것에서 나온다. 상대적인 게 아니다. 불행이 거기서 나오지 않느냔 말이다. 성공도 그렇지 않은가?” (…) 성공이란 정녕 무엇인지, 우리가 우리의 성공 개념을 잘 따지지 못한다면 우리 새끼들도 불행을 안고 갈 것입니다. 내 새끼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다른 잣대를 가져야만 합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그래 이만만 하면 되었다, 괜찮은 사람이면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 기대해봅시다.
- ‘더 불안한 건 우리 어른들’ 가운데서

[책 속으로 더 보기 닫기]

출판사 서평

좋은 세상을 원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는 그 곁에서 좋은 어른을 보면서 배우고 자란다.’ 곳곳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내실화를 외치는 가운데,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가방 메고 학교로 간다. 그들 중에는 학교폭력과 친구관계, 학...

[출판사서평 더 보기]

좋은 세상을 원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는 그 곁에서 좋은 어른을 보면서 배우고 자란다.’

곳곳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내실화를 외치는 가운데,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가방 메고 학교로 간다. 그들 중에는 학교폭력과 친구관계, 학업문제로 학교에 계속 다니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고민하는 아이도 있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좋아서 학교가 즐거운 아이도 있다. 또 그 안에는 경쟁의 대열에 서서 자유로운 청소년기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공부로 앞만 보고 달리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그 아이 곁에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이 시대에서 어떻게든 내 아이는 살아남게 하려고 아이 등을 떠밀며 달려 나가는 학부모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교육계는 사람이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 그러니 교육을 잘하면 된다고 한다. 반면 사회의 생각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변한다고 한다. 어느 쪽이 중요하건 우리가 그런 논란을 벌이고 있을 때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서 학교에 간다.
저자가 처음에 ‘새로운 학교 운동’을 시작할 때는 이곳저곳이 곪아있는 제도권 학교에 반하는 학교를 꿈꾸고 실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절대다수의 아이들이 있는 제도권 학교 안에서 아이들의 고민을 함께하며 학교를 지원하고 보완하는 역할에 더 의미를 두고 배움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이들이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단한 노동까지 아니더라도 엄마 안 찾고 밥 한 끼 제 손으로 차려 먹을 수 있고, 자기 앞에 널린 것은 스스로 치울 줄 알고, 운동화도 제 손으로 좀 빨고…. 그는 ‘자기의 노동이 타인의 노동을 이해하게 하고, 타인에 대한 예의도 길러준다’고 믿으며, 아이와 함께 세계의 공동체 마을을 경험하고 산골마을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그 삶을 실천해왔다. 아이가 ‘몸으로 하는 일의 가치’를 배우면서 ‘건강한 사람’,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되는 걸 꿈꾸며!

이 책 가운데 등장하는 ‘날적이’는 저자가 날마다 적는 기록, 일기다. 그의 아들 한단의 날적이도 종종 등장하는데, 두 사람의 날적이에는 산골마을에서 서로를 기대고 살며 나눈 위로와 위안의 시간, 시골 어르신들에게서 배운 지혜와 가르침, 자유학교 물꼬의 바쁜 일상과 수행, 배우며 살아가는 데 중요한 책 읽기와 글쓰기 들이 담겨있다. 저자의 고단한 산골살이에서 아이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행자였고, 같이 배우고 놀고 일하고 사랑하는 존재였다.

세상의 성공을 꿈꾸고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부모의 불안은 아이들을 공부로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게 만들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껏 자유롭게 보낼 시간과 공간이다. 아이들도 제 삶을 살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를 위해 깊이 쓸, 방해받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고, 놀고, 한껏 해 보는. 그런 것이 경험이 되고, 자신감도 되고, 실력으로까지 간다. 거기에 우리 어른들이 더할 것이라면 그저 사랑 혹은 안전망, 그리고 우리가 잘 살아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게 아닐는지. 저자는 아이들이 좋은 어른을 보면서 배우고 그것이 아이의 삶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소극적 교육론을 지지한다. 가르치기보다 안 가르치기 혹은 덜 가르치기. 그리하여 제 길을 가도록 지켜보기. 우리가 아이들의 생각을 잘라내지만 않는다면, 자기를 둘러싼 세상과 만나면서 충분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란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곳이 학교든 바깥이든 그들 스스로의 방식으로 질서를 만들고, 그 속에서 극복의 가능성을 찾는다. 아이들은 저마다 힘이 세다! 부모가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고 아끼고 사랑한다면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제 삶을 잘 살 거라 믿는다.

>> ‘자유학교 물꼬’ 소개

자유학교 물꼬는 ‘아이들의 학교’이자 ‘어른들의 학교’로 같이 놀고 일하고 수행하며 배우고 익히는 곳입니다.

자유학교 물꼬는 진리에 이르는 길이 꼭 학교라는 제도 울타리에서만 가능한가를 고민하고, 사람 노릇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교육의 목표라고 할 때 그것 역시 학교 밖에서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주장합니다.

자유학교 물꼬는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생태라거나 공동체라거나 무상교육 같은 무거운 담론에 이제는 거리를 좀 두고 어디에서건 뿌리 내린 모든 삶의 수고로움에 찬사를 보내며, 이곳에서 나날을 살아가는 일 그 자 체가 결과이고 이곳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일 그 자체가 성과라 여깁니다.

자유학교 물꼬는 농산물 가공을 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으나 산골에 나고 자란 것과 그것으로 만든 몇 가지 물건으로 돈을 사기도 하고, 강연과 글쓰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교육 관련 일로 살림을 보태고 있습니다.

자유학교 물꼬는 ‘새끼일꾼’이라 부르는 중고생 자원봉사 활동가들과 ‘품앗이’라 일컫는 자원봉사 활동가, 그리고 ‘논두렁’이라고 하는 후원회원들의 도움으로 꾸려집니다.

자유학교 물꼬는 1989년 ‘열린글 나눔삶터’를 시작으로 방과 후 활동을 하다 1994년 첫 계절자유학교를 열어 163번째에 이르렀으며, 1997년부터 세 해 동안 도시공동체와 2004년부터 여섯 해 동안 상설학교를 실험하기도 했고, 10년 뒤의 생태공동체마을과 20년 뒤의 아이들 나라(아이 골)를 꿈꾼 적도 있으며, 2019년 현재에도 여전히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요. 아닌 줄 알지만 책무와 당위로만 가는 길이 되지 않도록, 날이 더워져도 벗지 못하는 외투가 되지 않도록 뚜벅뚜벅 걸어왔던 지난 시간처럼 잘 맞는 옷을 입 고 자신의 길을 향해 그리 또 발걸음을 떼려 합니다.

그리고 자유학교 물꼬는 굶주린 이가 먹어야 하듯, 아픈 이가 마땅히 치료받아야 하듯 아무 조건 없이 교육받을 아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낼까 하는 고민만큼은 놓을 수 없는 숙제로 변함없이 삼고 있습니다.

[출판사서평 더 보기 닫기]

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시렁 154 : 가려뽑는 입시, 함께가는 교육 《내 ...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시렁 154 : 가려뽑는 입시, 함께가는 교육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옥영경

     한울림

     2019.6.27.



    ‘입시’는 특정인을 선발해야 하고, ‘교육’은 보편에 대해 다루는 것이다. 입시는 선별이고, 교육은 포용이다. 입시는 경쟁이지만, 교육은 너그러움의 문제라고도 하겠다. (12쪽)


    아이들은 보는 대로 배운다는 의미에서, 또한 가르치는 대로만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아이들은 어떤 공간에 있건 배운다. (118쪽)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쓰는 것 역시 뭘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해야만 할 말을 쓰기도 할 테고. 우리는 못 배워서 못 쓰는 게 아니다. 못 읽어서 못 쓰는 것도 아니다. 쓰지 않았던 것이다. (167쪽)


    결국 시간이다! 떼쓰는 아이들한테도 마찬가지. 시간을 들이면 제풀이 꺾이기도 하고, 시간이 들어가면 다른 것에 관심이 생기기도 하고,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도 하고 …… (217쪽)


    그건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와 함께 겪을 수 있는 생의 신비이기도 했다. 또 다른 내 한계를 보게 되고, 나를 연민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사랑하게 되는 …… (253쪽)



      요즈음은 서울이든 시골이든 학교가 매우 달라졌다고 합니다. 서울에서도 학급에 스물이나 서른만 있곤 하며, 학년마다 반도 그리 많이 두지 않는다고 해요. 시골에서는 더더구나 학급이며 학년이 작습니다. 예전에는 학교마다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채우고 빈틈이 없었다면, 요즈음은 빈 교실이 넘치면서 이곳을 동아리칸이라든지 여러모로 달리 쓴다고 해요.


      고흥 어느 면소재지 초등학교는 서른이 안 되는 전교생 모두가 탈 수 있는 자전거를 마련했고, 피아노를 여덟 들이고 온갖 악기를 고루 갖추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처럼 조그마한 학교에 갖은 시설을 두루 갖춘다고 하더라도 중학교에 접어들면 대학입시에 맞추고,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입시하고 취업 사이에서 한쪽을 고른다지요.


      그래도 초등학교에서는 입시보다는 교육을 앞세우니 한결 나은 셈일까요. 아니면 중·고등학교로는 이어가지 못하고 초등학교에만 맴도는 교육인 셈일까요.


      충북 영동에서 어느덧 스무 해 넘게 ‘자유학교 물꼬’를 일구어서 이끄는 길잡이인 옥영경 님이 이녁 아이하고 살아온 나날을 갈무리한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옥영경, 한울림, 2019)를 읽었습니다. 옥영경 님도 이녁 아이도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고픈 길이 있기에 멧골자락 배움터에서 즐겁게 하루를 누렸다고 해요. 아이는 나중에 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키우면서 자유학교를 떠나 제도권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제도권학교에서 만만하지 않은 겨룸판을 치러야 했을 텐데, 어느새 이 울타리를 넘어서서 스스로 배우고 싶은 길에 새롭게 선다고 합니다.


      길잡이요 어버이인 옥영경 님이 갈무리한 책에 붙은 이름이기도 합니다만, “내 삶은 내가 살”고 “네 삶은 네가 살”아갑니다.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태어나고 삶을 꿈꾸면서 사랑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라고 살림을 그리면서 사랑하지요.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무엇을 가르치며 즐거울까요. 무엇을 배우기에 함박웃음을 지을까요. 무엇을 가르치기에 노랫가락처럼 신나는 목소리가 될까요.


      멧골에 깃든 숲배움터 ‘물꼬’는 자유학교라는 이름을 씁니다. 모름지기 학교라 하면 자유롭게 가르치거나 배우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일 테지요. 이 자유학교는 멧골에, 이른바 숲에 있습니다. 참말로 학교라 하면 숲에서 태어나 자라는 숨결을 늘 마주하면서 스스로 새롭게 하루를 짓는 길을 누려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숲에서 스스럼없이 스스로 배우는 길을 가는 물꼬는 손수 씨앗을 심어 손수 가꾸어 손수 누리는 살림길도 걷는다고 해요. 책으로 머리를 살찌울 뿐 아니라 몸으로 마음을 살리는 길을 나아갈 적에, 더없이 빛나는 배움마당이 된다고 합니다.


      배움책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뚜렷합니다. 앞으로는 제도권학교이든 자유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우리집학교이든 홀로서기(자유), 숲(자연), 살림(먹고 입고 자는)을 고르게 다루고 슬기롭게 나누며 사랑으로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가려뽑는 입시를 없애면 좋겠습니다.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들어가는 문턱을 가리는 틀이 아닌, 나오는 숨결을 살피는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대학교에 들어가도록 하되, 마치려면 다시 말해 졸업장을 얻으려면, 이때에 메우 깐깐하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면 되겠지요.


      살아남도록 길들이는 학교가 아니기를 빕니다. 어깨동무하면서 함께가는 길을 그리는 학교로 거듭나기를 빕니다. 더 큰 건물과 더 많은 시설을 들이는 학교이기보다는, 고스란히 숲이 되면서 스스로 살림꽃을 익히는 배움길인 학교로 나아가기를 빕니다. ㅅㄴㄹ



    내삶은내가살게_tn.jpg

  •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라는 책은 한 번쯤 가만히 생각해보게 하는 제...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라는 책은 한 번쯤 가만히 생각해보게 하는 제목을 가진 책이다. 처음 이 제목은 정말 그래도 될까?’ 의문을 갖게 했다. 하지만 하긴 내 삶을 올바르게 떳떳하게 살기도 힘들지...’라는 수긍이 금방 들었다.

    이 책은 작가가 산골에서 아이를 키우며 갖게 되는 경험과 생각을 담은 책이다. 육아를 하며 학생을 가르치며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낄 때가 많다. ‘혹시 내가 잘못 판단했으면 어쩌나...’ 불안해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작가가 얘기하는 것처럼 내 삶도 잘 살아내기 힘든데...너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내 삶은 내가 살게...네 삶은 네가 잘 살아보자.’ 전혀 무책임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을 잘 살려는 의지가 상당한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를 하며 가장 고민되는 순간은 옆 집 엄마는 이러이러한 교육을 시킨다더라...나는 늦은게 아닐까?하는 고민이 들 때이다. 책을 읽으며 육아를 할 때 기준을 맞춰야 하는 것을 고민해 보게 되었다. 정말 아이를 잘 키우고 잘 되기를 바란다면 아이 자체를 인정해 줘야한다는 작가의 생각에 상당한 공감이 든다.

    무수한 육아 정보가 쏟아져 불안한 이 시대 엄마들에게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각자의 삶에 집중해도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나저나 나는 누구인가? 교육을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교육을 하찮게 여기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비판하고 싶어진다. 또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눈 뒤 오로지 그러한 이분법적인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도 불쾌해지면서 또 다시 비판의 말들이 떠오른다. 물론 내 자신에게도 이기적인 면과 다른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중요한 것을 하찮게 여기는 면이 있다. 그런 모습이 보일 때면 누군가에게는 나도 비난받고 있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을 읽고 리뷰를 하면서 이렇게 안 좋은 말들만 늘어놓는 걸 보면 나는 별로 멋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것이든 명암이 존재하기에 이왕이면 밝은 면에만 집중해줄 수도 있을텐데... 어쩌자고 이렇게 어두운 면에만 눈이 가는지 모르겠다.   ...

    그나저나 나는 누구인가?

    교육을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교육을 하찮게 여기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비판하고 싶어진다. 또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눈 뒤 오로지 그러한 이분법적인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도 불쾌해지면서 또 다시 비판의 말들이 떠오른다. 물론 내 자신에게도 이기적인 면과 다른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중요한 것을 하찮게 여기는 면이 있다. 그런 모습이 보일 때면 누군가에게는 나도 비난받고 있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을 읽고 리뷰를 하면서 이렇게 안 좋은 말들만 늘어놓는 걸 보면 나는 별로 멋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것이든 명암이 존재하기에 이왕이면 밝은 면에만 집중해줄 수도 있을텐데... 어쩌자고 이렇게 어두운 면에만 눈이 가는지 모르겠다.

      <o:p></o:p>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책을 읽게 되면 나도 모르게 손으로 무릎을 치며 가슴 떨리는 감동에 붕 뜬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순간도 많이 있지만, 비판을 넘은 비난의 어휘꾸러미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솟아나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채 떠돌아 다니곤 하는 때가 더 많아지고 있다.

      <o:p></o:p>

    지금 시작하는 리뷰도 바로 그러한 비판과 비난 사이 그 어디쯤인가의 이야기이다.

      <o:p></o:p>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를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책이 과연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느냐를 인터넷 서점들을 통해 검색해서 찾아본 행동이었다. 클릭 클릭으로 검색되어 가는 그 짧은 여정 동안 나는 제발 교육도서카테고리에는 있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왜냐하면 만약 이 책이 교육도서로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으면 나의 리뷰는 비판 보다는 주로 비난으로 점철되어 버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o:p></o:p>

    다행히 이 책은 교육카테고리에 있지 않았다. 가정육아와 자녀교육 카테고리에 분류되어 있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리고 이런 책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의문이 풀렸다.

      <o:p></o:p>

    본격적으로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를 읽고 내 안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o:p></o:p>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판타지이다. 누구의 판타지냐면 바로 학부모들의 판타지이다. 언제나 고민과 걱정에 빠져있을 지금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해 줄 책이다. 물론 판타지라는 것은 조금 순화하긴 했으나 내 생각에 의한 의미부여인 것이고 책을 살펴보면 아이 한명을 키워낸 한 학부모의 실제 경험담을 매일 쓰는 일기를 기반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이다.

      <o:p></o:p>

    지극히 사실적인 한 학부모의 기록을 나는 왜 판타지라고 폄하하고 있는가?

      <o:p></o:p>

    학부모의 실제 경험담이긴 한데, 어떤 경험담이냐면 자기 아들을 서울대와 의대에 동시 합격시킨 그야말로 자식 자랑 이야기이다. 당연히 서울대와 의대를 합격했다는 것은 축하받을 수 있는 일이며,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은 그 마음도 공감 못하는 바는 아니다. 또 고생한 학부모로서 당연히 그럴 권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이런 책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상상해 본다면 결코 긍정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런 류의 학부모 판타지는 이제 그 유통기한이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o:p></o:p>

    나이 스물두 살에 시작한 공동체 실험새로운 학교 운동30년 넘게 실천하고 있는 실천가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참 많을텐데...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실제 자기 아이를 공교육에 보내지 않고 중학교까지 키워낸 확고한 태도의 학부모로서도 들려줄 만한 말이 참 많을텐데... 자신의 정체성을 짧은 문장으로 담아내야하는 저자 소개에 다른 말들을 다 제쳐두고 아이가 의예과를 갔다- 라는 말을 대표적으로 넣어두었다.

    그렇다. 바로 나 자식 의대 보낸 학부모야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자기 정체성 중 하나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책의 모든 이야기는 정확히 이러한 정체성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p></o:p>

    태어나서 중학교 3학년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정확히는 공교육을, 학습(여기의 학습은 저자가 사용하는 단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굉장히 전통적인 그리고 협의의 학습관에 바탕을 둔 개념이다.)과는 떨어져 산골에서 자연과 함께 16세까지 지냈던 아이가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딱 3년만에 서울대학교와 의과대에 합격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엄마는 공부가 힘들면 다시 학교를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하고,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대충하라는 태도를 취했으며, 학교의 행사 등도 관심이 없어 잘 모른 채 지나갔고 별다른 특별한 지원도, 노력도 해 주지 않고 무관심하기만 했는데 아이가 혼자 목표를 정한 뒤 스스로 최선의 노력을 하여 성적이 쭉쭉 올라 성적 상위권에 들어갔다는 전개. 그러다 1등도 했고 결국 의대를 갔다라는 결론. 아이를 믿어주고 응원해주기만 하면 알아서 잘 해낸다는 마무리. 이것이 판타지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내해야 하고, 수험생 자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하는 수많은 대한민국의 학부모들, 그러나 남들과의 경쟁을 해야하기에 생각만큼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좌절하고 성적에 목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과 같은 스토리는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판타지는 사실에 근거해서 사실적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과장되었다. 일단 학습과는 떨어져 지냈다는 것부터가 허구이다.

      <o:p></o:p>

    왜 항상 이런 식일까?

    나는 아이들을 믿어주고 응원해주면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해낸다는 이야기에서 바로 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아이들은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잘 배워나간다. 혹은 잘 해낸다. 라고 말하고 있는 그 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정말 안타깝게도 바로 그것!!! ‘서울대’, ‘의대진학을 의미하는 듯하다. 내가 저자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는 없기에 확실하지는 않으나, 책 곳곳에 그렇게 판단할만한 문장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한가지만 들자면 애초 내 아이가 말 잘 듣고 퍽 완벽한 아이였던 건 아닌가라는 오해를 살까 하여 덧붙이자면...’ 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사람들이 왜 그런 오해를 할 것이라고 생각할까? 완벽이라니... 서울대와 의대에 합격한 아이는 완벽하게 잘 해낸 것이라는 저자의 가치판단이 바탕에 없었다면 사람들이 그런 오해를 할 것이라는 친절한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o:p></o:p>

    왜 항상 이런 식일 수 밖에 없는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새로운 교육철학이나 교육방법 혹은 대안적 교육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잘 나가다가도 마지막에 가서 그러한 실천들이 좋은 교육이었는지 동의를 받아야 할 때나 또는 그런 교육을 한 후의 결과가 긍정적이었는지를 피드백 할 때가 되면 다시 기존의 교육철학, 교육방법으로 되돌아간 듯 닳고 닳은 어법으로서 높은 성적, 명문대 합격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o:p></o:p>

    경쟁주의, 심리주의, 물질주의 등의 주류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면서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야기된 교육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철학과 가치를 세워 그에 따른 실천을 했노라고 실껏 주장하면서도 피드백 단계에 와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또다시 경쟁주의, 심리주의, 물질주의에서 찾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는가하는 의문인 것이다. 매번 똑같다. 거의 정형구라고 봐도 무방하다. 새로운 교육방법을 실천했더니 성적도 잘 나오더라. 새로운 아동관으로 아동을 봤더니 스스로 동기를 갖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잘 나오게 되었다. 새로운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수업을 했더니 성적이 좋아졌다더라. 등등 이런 식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 중 끝판왕은 역시... 이 책의 저자처럼 그래서 명문대를 갔다. 라는 정형구이다.

      <o:p></o:p>

    나는 오히려 저자의 자식이 서울대와 의대를 간 일을 두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접근했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o:p></o:p>

    9년을 산골에서 자연과 함께 지낸 이 아이는 어쩌다 결국 의사가 되길 원했는가?

    의사를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왜 결국 의사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는가? 라고 말이다.

      <o:p></o:p>

    저자의 자녀가 의대에 간 일을 자랑처럼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신이 그동안 실천했던 것들에 정당성과 타당성이 자동으로 부여된 것 마냥 내용으로는 학습의 기초가 되는 밑바탕이 무엇이며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소개해 주려고 하고 있다. 나는 그것보다는 새로운 학교 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의사를 원하는 사람을 길러낸 것으로 수렴되어 버린 원인을 찾아가려고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학교운동과 그 결과가 새롭게 연결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태도이지 않을까?

      <o:p></o:p>

    물론 대안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홍대에만 모여 있어야 된다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대안학교를 나와서도 의사가 될 수 있고, 검사가 될 수 있고, 공무원이 될 수 있고,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요리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어야 한다. 출신학교가 장애물이 되고 등급화되어 계급으로 낙인찍혀서는 안 될 것이다.

      <o:p></o:p>

    하지만 새로운 교육운동은 물질주의에 찌들어 직업훈련소 같은 곳이 되어버린 기존 학교문화를 혁신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 통찰이 없다면 말만 새로운 철학, 대안적 교육, 혁신학교일 뿐 우리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의한 욕망들이 대안이라는 단어에 교묘하게 가려져서 더욱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교육문제를 크게 만들 수도 있겠다.

      <o:p></o:p>

    새로운 학교운동을 한다고 해 놓고도 그 성과물이라고 하는 것이란 결국 서울대, 의대 간 것뿐이라니... 그 외에는 자랑할만한 것 하나 내놓을 수 없다니... 너무 서글픈 일이다.

      <o:p></o: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b173fe77-ec46-4b11-9790-b9f8039b946f"> 저자는 아이들이 강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영리해서 세상을 살아갈 방법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잘 안다 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저자와 당사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내 멋대로 많이 비틀어서 이렇게 이해해 보았다.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e92f8700-bf78-48dd-8721-635645d5309f">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653c7072-d474-42cf-9954-d60f126e6c4d"> 저자의 자녀는 동물적으로 알아버린 것이다. ‘진정한 나’, ‘진짜 삶’, ‘자유로운 삶’ 같은 것은 없다는 걸 말이다. 이 세상은 제멋으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저 ‘자본’을 많이 소유하여 물질적 풍요속에 머무는 것이 잘 사는 것임을 말이다.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262a64f4-adc8-4abb-ba73-21431e05afd2">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20df8687-63a0-4d5d-8605-ae06b34041e2"> 저자의 아이는 순수하게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겨서 그걸 위해 선택한 학교에 가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내멋대로 하는 해석이 굉장히 실례가 되고 있으나... 입시를 바라보는 내 편견이 작용하고 있기에 저자의 말에 나는 쉽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a2013b0e-bdb4-4cd1-bfcd-f4422aa14e93">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01f893c8-1bd0-4136-95bf-d93d442024f5"> 입시판에서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aea7068e-0450-4ce1-8797-551f04d52a97">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7eebf055-8337-4f55-8aa8-d6d27bf88d57"> 의대지망=돈을 많이 버니까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02b83a8c-a7ca-4ae5-bb44-7d26787940e2"> 공무원시험준비=철밥통 때문에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6b1184cd-d60f-472e-9d36-7ec36dbf3fd4">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63104b2b-8550-4475-b994-b96a9c643d0e"> 등등의 편견은 많이 펴져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5da4ce35-a557-4b6a-a9d7-158b96db7aad"> 이 책에 나온 사례도 이러한 편견들과 함께 묶을 수 있을까... 일단 묶어두어 본다....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c1871b76-4908-4109-b77e-a0f24d2a28aa">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0f2da4a3-2a83-4f71-b1c2-c82ec19e1379"> 물론 선택의 동기가 정체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시켜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직업적 안정성 때문에 '교사'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교사를 준비하고 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우리 사회를 위한 긍정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선생님들을 너무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07847a85-7c50-44e8-9be4-586df71721e2">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4c9d325c-1661-4dc2-aa22-96be6d29f2b0">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기에 무언가를 선택하는데 있어, 단일한 욕망 하나만 작용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의대를 선택했다는 것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작은 동기(=돈을 많이 번다)하나만을 전부인양 확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내 비판이 오히려 더 비판받을 지도 모르겠다.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e6d6690e-4f0a-4d25-beda-102f930a6239">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824e901c-d143-45ec-84a5-dc3b9f8cce6d"> 하지만,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 준비에 점점 몰려드는 걸 사회적 문제라고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지망에 몰리는 것도 역시 문제라는 생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6b343538-4c79-4c1e-90a6-d2b971f38a3f">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111a7d1a-dd6d-4f65-86c6-bbd0a15b11ca"> 만약 새로운 학교운동, 새로운 교육운동이란 것도 주류이데올로기의 목표와 결국 같은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도 든다. 대안교육을 통해 경쟁이 잘못되었다라는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채 새로운 학교가 그저 경쟁의 승리를 위한 남다른 비법 전수장이 되어버릴 것이라면 말이다. </p> <div class="autosourcing-stub-extra" style="zoom: 1; opacity: 1;">         <o:p></o:p></div>

    2. 학교공부는 단순히 지식들의 기억일 뿐일까? 학습이 그렇게 편협된 개념인가? 진정한 공부는 어디에 있는가?

      <o:p></o:p>

    저자는 자신의 아이가 중학교 때까지 공립학교에 가지 않고, 학습과는 멀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16년동안 아이가 자라면서 무엇을 했는지 소개한다.

      <o:p></o:p>

    첫번째로는 농사가 있다. 어른들이 짓는 논밭에 일손을 거들기도 하고 조그만 밭을 하나 주어 직접 콩 한줄, 고추모 여남은 개, 땅콩 몇 알, 푸성귀 몇 가지 등을 키웠다고 한다. 12세에 유기농 농부 집에 가서 농사일을 배우게 하였다고도 한다. 고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에야 학습을 시작한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전국 모의고사에서 최상위권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의 배경으로 일을 하면서 단련된 힘과 어떤 일의 내용, 방법, 절차 등의 중요한 줄거리를 파악하는 일머리 그리고 몸을 쓰며 길러진 건강한 정신을 꼽았다.

      <o:p></o:p>

    두번째로는 집안일하기. 물이 새는 지붕 고치기, 누전차단기 바꾸기, 수도꼭지 교체하기, 사과잼 만들기, 풀매기, 청소하기 등등. 저자가 교장으로 있는 자유학교 물꼬에 명문대생이 자원봉사를 왔는데 가만보니까 청소도 할 줄 모르더란다. 그것을 보고 우리 교육의 현주소라며 안타까워하고는 자기 주변 건사 잘하는 이들이 일도 잘하고 다른 것도 잘한다고 말한다. 자기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시 집안일을 한 것이 중요한 바탕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중에서도 주말에 집에 왔을 때도 집안일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o:p></o:p>

    세번째로는 도서관에 주기적으로 다니면서 수많은 책들을 보고, 신문을 매일 읽었으며 그리고 문화센터에서 붓글씨를 익히고 수묵화도 그리고 유화도 그렸다고 한다. 책들을 보면 그것을 요약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정점이라고 말하는 5학년 때에는 500페이지짜리 총 열다섯 권에 이르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요약해서 어른들에게 발표회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넷 뉴스 매체에 서평도 썼다.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글쓰기는 강조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읽은 책을 자신의 말로 정리해보는 활동과 일기를 쓰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꾸준한 글쓰기의 힘으로 수시를 위한 자소서에서도 탄탄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

      <o:p></o:p>

    한편, 글쓴이는 어릴 때 받은 지나친 지적 훈련이 자라서 오히려 지적 손상을 가져오는 예를 여렷 보았다고 하면서 학습과 스트레스가 아직 뇌가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균형을 잡고 조절하려는 뇌의 능력을 떨어뜨리고, 아이의 뇌를 파괴한다는 의료계 진단도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받는 지적 훈련이 오히려 건강한 발달을 방해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외국에서 생활할 때 아이에게 한글공부를 시키면서 마음이 바빠졌다라는 반성도 한다.

      <o:p></o:p>

    학교에서 규격화된 교실에 앉아 일률적인 내용의 정보를 주입받는 것만이 지적 훈련일까? 저자가 진정한 공부라고 실천했던 신문보기, 책 보고 요약하기, 일기 쓰기 등도 지적 훈련일텐데... 학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히려 학교에서라면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해 보호해 줄 온갖 지적 자극들을 너무 일찍부터 아이에게 강요했던 건 아닐까? 학교를 보내지 않아 학습은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학교를 보낸 것보다 더욱 지나친 지적 훈련을 어렸을 때부터 시켜왔다고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저자는 책의 전반부에 산에서 자연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어떻게 보면 방임으로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별다른 것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웠더니 원래 가지고 있었을 생기를 잃지 않고 자라서 결국 그 힘으로 입시에도 성공한 것처럼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무엇을 했느냐를 살펴보면 오히려 지적 훈련의 조기 노출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삼았다구나 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 학교에서 쓸데없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싫어서 내가 필요한 것만 경제적으로 집중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교육이란 스승을 통해 내가 욕망하는지도 몰랐던 미지의 그 무엇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내가 현재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만을 위해 너무 어렸을 때부터 신문을 통해 날것의 사회를 접하고, 책을 보면서 요약하고, 줄거리를 작성해보고, 내 삶을 문자로 남기고 하는 것이 지나친 지적 훈련으로 지적 손상을 가져오는 것의 다름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에 가면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낭비하는 시간등으로 보호라도 받았을텐데... ‘지적 훈련에만 몰두했을 그 시간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했을지 의문이다.

      <o:p></o:p>

    사고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선은 아닐 수 있다. 사고라는 행위도 아동의 발달단계에 맞게 보호되면서 개발되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를 키우면서 굳이 아쉬움을 하나만 말하라면,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데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폭력에 대한 감수성에 대한 교육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사고교육(글쓰기, 신문읽기 등)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감성이 영글 시간없이 보호받지 못하고 너무 일찍 세상 밖으로 나와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원인을 찾아본다.

      <o:p></o:p>

    3. 현대 사회를 휩쓸고 있는 진정한 찾기 이데올로기는 과연 올바른 것인가?

      <o:p></o:p>

    저자가 자기 아이의 고민에 응답해 준 여러 문자 중 몇개를 소개하고 있다. ‘나는 네가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혹은 세상에서 한 공부가 결국 네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믿는다. 이 시대 숱한 이들처럼 그저 남들 쫓아가느라 가랑이 찢어지지 않고, 즐겁게 삶을 이러갈 수 있는!, 네 삶을 남들처럼 아니라, 네 것으로 창조적으로 그리길!’ ‘세상사람 다 소용없다.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지. 내가 행복해야 한다.’ 등등.

      <o:p></o:p>

    최근에 우리 사회에 소위 보편이 되어버린 진정한 나 찾기 이데올로기’, ‘행복 이데올로기’.

    진정한 나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에 대한 것도 중요한 질문이지만 우선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진정한 나 찾기라는 말을 어디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진정한 나 찾기라는 말은 주로 광고에서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어구이다. 광고의 핵심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다른 사람 신경쓰지 말고 나에게만 집중해서 판단한 뒤 소비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구매할 때 고려하는 할 기회비용이 참 많다. 나 혼자만 신경쓰면 충분히 지출을 할 수 있지만, 가족을 생각하고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의 연대 등을 생각하면 쉽게 소비행위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광고에서는 나를 둘러싼 그러한 연대를 모두 끊고 나만 생각하는 것이 주체적인 것이고, 바로 그것이 진정한 내가 바로 서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소비행위가 나를 규정해 주기 때문에 남들이 쉽게 결정 못할 지출을 통해 남들이 인정해 주는 나를 만들라고 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점점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고 결국 진정한 나를 찾으려고 하면 할 수록 진짜 나와는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되는 역설이 생기는건 아닐까? 그리고 주변에서 진정한 나를 찾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면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거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곳에 나오는 자연인의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는 듯 하다. 진정한 나 찾기라는 이데올로기가 우리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인간을 더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o:p></o:p>

    그래서일까? 정작 지은이가 물꼬라는 공동체를 구축하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변화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진정한 나 찾기 이데올로기아니였을까? 원리적으로 진정한 나 찾기 이데올로기와 행복 이데올로기는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공동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철학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자녀가 결국 의사를 선택한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o:p></o:p>

    4. 교육 공급자에서 가장 큰 변수는 사실 부모가 아닌가 싶다라는 이야기... 대안학교들이 많은 경우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세워지게 될텐데... 교육은 부모의 됨됨이, 결국 부모 사는 대로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거다. 뭘 그리 가르치려 드는지... 등등. 결국 부모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교육의 관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러한 대안교육이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처음부터 결정지어져 있었던 건 아닐까?

      <o:p></o:p>

    최근에 학생중심 이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을 넘어 진리가 되었다. 교육은 학생중심이어야 하는가? 기존의 교육은 교사중심이었기 때문에 문제투성이였나? 문제는 교사중심, 학생중심이 아니라 중심에 있다. 어딘가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관점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대안교육이 학부모 혹은 수요자 중심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 또한 같은 맥락으로 교육을 입체적, 역사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o:p></o:p>

    https://www.facebook.com/dongseop.park/posts/2456930897699110(박동섭 교수님 페이스북)

      <o:p></o:p>

    교육은 교사중심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사태이다. 먼저 공급이 있는 것이다. 먼저 어쨌든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다. 물론 이 말을 내뱉은 시점에서는 그리고 실제로 가르침을 기동하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배우고 싶은 사람'이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을 리스크도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가르치고 싶으니까, 무상(無償)으로라도 가르쳐 줄테니까 내가 지금 흔들고 있는 깃발 아래로 모여라.라고 하는 것이다.

      <o:p></o:p>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교육의 모든 것은 또 아니다.

      <o:p></o:p>

    가르치는 사람이 홀연히 나서고 난 다음 단계는 이제 배우는 자가 움직일 단계이다. "내가 지금부터 무엇을 배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아니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 무엇을 알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한번 배워보겠다"는 어떻게 보면 별 이유같지 않은 이유이지만 그래도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 뭔가 미지를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감각으로 그 깃발 아래 모여드는 것이다.

      <o:p></o:p>

    그런데 한참 배우다 보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한번도 뇌리에 떠올리지 못한 욕구, 욕망, 동기 흥미, 관심사 그리고 한번도 뚫어보지 못한 사고의 회로(아니 뚫고 싶은 사고의 회로가 있는 것 조차 몰랐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가 있다는 사실을 사후적으로 발견하면서 하나의 교육이 완성된다. , 학생중심으로 나게 되는 되어 있다.

    (박동섭 교수님 페이스북 인용)

      <o:p></o:p>

    그렇기 때문에 학생중심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교육은 시작되지 못한다. 물론 교사중심으로만 교육하면 시작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완성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사실이다. 교육은 시간과 함께 하는 긴 호흡의 과정이다. 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한다느니, 학부모의 인식이 아이 교육의 가장 큰 변수라느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사중심으로 시작되어, 학부모들이 그걸 지지하고 지원해주고, 학생중심으로 마무리 될 수 있게 학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저자가 지적하듯 지금까지 대안교육이 실패를 거듭했다면 그것은 정확히 이 지점에 있으리라...

      <o:p></o:p>

      <o:p></o:p>

    나는 이 사람의 성공담이 좀 아쉽다. 이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판타지이다. 여전히 경쟁의 승리라는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라는 기존의 가치만 강화될 것이다. 한단이라는 아이는 대입에서 실패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어디 적응할만한 곳이던가요?”라고 말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주었어야 했다. “경쟁의 승리를 중요한 가치로 다루는 책은 넘쳐난다. 굳이 대안교육으로 위장하지 않고도 대놓고 욕망들을 자극시켜주는 것들은 많다. 새로운 학교운동마져 이래야 되는가... 하지만 결국 한단은 서울대와 의대에 합격해 버렸다. 당연히 기쁜 일이긴 하지만... 그걸 자랑삼아, 본인의 교육관과 실천이 보증되고 보상받은 것처럼 성공 경험담을 늘어 놓음으로서 결국, 인생의 성공이란 역시 단순하다.”라는 이데올로기만 재생산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도 우리 나라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대학 아닌 길을 선택해도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가 또한 가능해야 한다.’라고 하고 있다. 나는 바로 정확히 그 지점에서 이 책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방해한다. 결국 서열화판타지이다. 차라리 10년정도 더 늦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의대를 간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후에 어떤 의사가 되어 어떤 실천들을 하고 있는지를 유년기의 새로운 교육실천과 연결시켜서 소개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책이 너무 일찍 나와버렸다. 이런 책은 더 이상 안 나왔으면 하는것이 내 바람이다. 그 빈자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신선하고 청량감있는 것들을 소개하며 우리들의 상상력을 키워줄 그런 책들을 간절히 바래본다. <o:p></o:p>

      <o:p></o:p>

    저자는 나는 이리살았고, 당신은 또 당신대로 그리살겠지. 생각하기를 놓지 않고 그 생각대로 살아가면 될 일이다. 라고 말한다. 내 비난에 가까운 서평도 생각하기를 놓지 않으려는 나의 발버둥으로 여겨져서 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이기적으로 바라보며 서평을 마친다.

      <o:p></o:p>

    아참,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자신의 아이를 고등학교 전까지 한국 공립학교에는 5학년 한달을 보낸 것 말고는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유아 때에는 어린이집에 오래 다녔고, 외국에 있을 때에도 시카고에서 1년 공립 유치원에 보냈다고 한다. 또 시카고에서는 4주동안 여름학교에 나가기도 하였다. 또 유명 외국계 학교의 신청이 넘치는 환경캠프에도 지원해서 참여하였다. 결국 공교육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 보인다. 공교육 전체가 아니라 한국의 초중등 교육에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ea66a9aa-6788-479d-ba03-78dd896dbf5a"> </p> <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 " id="SE-ea901073-f76d-4508-b6ed-4ec801f3356f"> 도대체 우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나는 이미 이 속에 들어와 있으니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저자는 우리 교육에서 어떤 문제를 발견했던걸까?.... </p> <div class="autosourcing-stub-extra" style="zoom: 1; opacity: 1;"> </div> <p class="0" style="letter-spacing: 0pt;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p> <p> </p>

  • 아이가 유아기때에는 오직 엄마를 의존하지만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차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멀어지는 느낌을 갖게 되네요.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거...

    잘 키우고 싶다는 거...

    부모라면 다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와는 다른 생각들에서 빚어지는 갈등속에서

    과연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때가 많답니다.

     

      부모도 처음인 나에게...

    부모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가 성장할수록 뼈져리게 느껴지고 있어요.

       갈등속에서 현명하게 이끌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며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답니다.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한울림]

     제목에서부터 와닿는 느낌...각자의 인생을 살아라(?)

     

    01.jpg

     

    그건 아닐꺼라 생각하며 책 한장 한장를 펼쳐 읽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저와의 인생과는 현저하게 다른 삶을 살고 계신듯하네요.

    젊은시절부터 시작하신 교육의 삶을 시골에서 펼치고 계시더군요.

    답답하지만 익숙한 삶속에서 사는 저에게는 쉽게 와닿을수 없는 작가를 보면서 그럼 그렇지

    나와는 다른 더 똑똑한 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살짝 책에 대한 거부감도 들었어요.

    02.jpg

     

    특히나 산마을에서 살면서 아이는 제도권 학교가 아닌 홈스쿨..

    산골에서 지내다 열일곱 살에 제도권 학교에 들어가 3년 뒤 의예과를 갔다는 작가의 자녀를 보면서

    유전자가 남다른가 보다 하는 선입견까지 들게 되더군요.

    유전이 아닌 후천적 학습으로도 창의력도 생기고 똑똑해 질수도 있다고 하지만

    부모를 닮은 유전자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가 어릴때에는 몰랐지만 고등이 된 시점에서는 자꾸 현실로 다가오는 요즘이랍니다.

    약간 삐둘어진 시선으로 책장을 넘기다 읽으면서 좋은 말...

    당연한 말...사실로 와닿으면 느끼는 말들...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바라던 생각들도 일치하면서 다소 누그러지는 듯한 이 느낌...

    역시 사람의 마음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그래도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도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네요.

    이 책을 읽을때에는 정말 나 자신이 힘들면서 아이를 과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던 때였어요.

    그래서 앞부분을 읽으면서 괴리감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아이를 처음 세상에서 만나서 생각했던 그 느낌...

    우리아이가 정말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져갔답니다.

     

    03.jpg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도록...

    서문의 시작에서 아이는 좋은 어른을 보면서 자란다는 말이 마음에 굳게 와닿게 된답니다.

    이책은 4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자유로운 삶, 독립적인 삶, 가치를 찾는 삶, 스스로 만드는 삶

    각 장마다 작가의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세월의 흔적과 아이와의 생활들...

    자유학교 물꼬에서의 생활들 하나하나 따라가보면서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기도 하게 되네요.

    04.jpg

     

    모든 교육을 허(許) 하라

     

    05.jpg

     

    1장 자유로운 삶

    "학교를 왜 가겠다는 거래?" 아이에게 물었다

    2장 독립적인 삶

    부모와 아이, 따로 또 같이 걷다

    3장 가치를 찾는 삶

    배우며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

    4장 스스로 만드는 삶

    아이들도 제 삶을 산다

     

    00.png                      

    대한민국의 학생을 둔 부모들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떠날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피할수 없다면 즐겨야 함을, 정녕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아이의 삶과 내 인생의 삶을 돌아보게 한답니다.

    저마다 사는 곳, 각자의 길이 다르지만 나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삶을 위해 응원하면서

    세상을 쫓아가느라 힘을 뺄 게 아니라,

    저마다의 삶을 잘 챙기는 것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은 그들의 생명력으로 힘차게 날아오를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게 되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기록의 삶도 느끼게 되는데요.

    저자의 낱적이에 공감하며 하루하루 나를 돌아보는 기록을 해 보는 것도 좋을꺼 같아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내 삶이 소중한 것 만큼 우리 아이의 삶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오늘도 아이와 실랑이를 버리지만 이 또한 부딪히며 성장하는 시간이라 생각을 하게 되네요.

     

     

  •   <p></p> <p>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p></p> <p>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p> <p></p> <p> 제목만 보고 그냥 심리학책인가 싶었는데 전혀 엉뚱했다. </p> <p></p> <p> 이 책은 중학교 3학년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산골에서 지내던 저자 옥영경의 아이가 열일곱 살이 되어 읍내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p> <p></p> <p>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와 대전 소재 의과대에 합격한 뒤로 </p> <p></p> <p> 산골에서 아이와 엄마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p> <p></p> <p> 시간으로는 아이가 제도권 학교에 간 </p> <p></p> <p> 열일곱 살을 중심으로 전과 후를, </p> <p></p> <p> 내용으로는 학습의 기초가 되는 밑바탕이 무엇이며 </p> <p></p> <p>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p> <p></p> <div style="opacity: 1;"> </div> <p></p> <p> </p> <p></p> <p> 예전에 내 아이들이 한참 초등학교를 다닐때 지리산의 무슨 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p> <p></p> <p> 커다란 이슈였고 그 뒤로 그 학교의 전학문의가 쇄도했으며 실제도 간 이도 있었다. </p> <p></p> <p> 문득 이 책의 서두를 읽으며 그 일이 생각나는 지 모르겠으나 </p> <p></p> <p> 아마도 저자의 말처럼 모두 산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아닐 것이다. </p> <p></p> <p> 바닷사에 사는 아이는 바다를 안고, </p> <p></p> <p> 도시에 사는 아이는 빌딩을 안고, </p> <p></p> <p> 저마다 사는 곳에서 자기의 길을 만들어 가면 될 것이라는 것. </p> <p></p> <p> 제도권 교육, 대안교육, 홈스쿨링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가 아닌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의 문제라는 것. </p> <p></p> <p> </p> <p></p> <p> </p> <p></p> <p> 저자 옥영경은 엄마이자 자유학교 물꼬 교장으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p> <p></p> <p> 나이 스물두 살에 시작한 '공동체 실험'과 '새로운 학교 운동'을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뚜벅뚜벅 걸으며 하고 </p> <p></p> <p> 있다는 그녀의 소개가 그 어떤 화려한 스펙보다 눈에 들어온다. </p> <p></p> <p> 자발적 가난, 공동체 같은 이름으로 젊은 시절을 함께 했고 산골로 가게 됐으며 신념이나 용기가 아니라 살아가다보니 그리 되었다는. </p> <p></p> <p> 그렇다 엄마들은 이게 최선이겠지 어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다 오늘은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며 하루하루 산다. </p> <p></p> <p>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바로 그러하기에 매일 정신없이 산다. </p> <p></p> <p> 그러다가 아이가 대학을 잘 보내면 성공한 교육이요.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교육이 되어버린 현실을 대한미국에 사는 학부모는 다 </p> <p></p> <p> 공감할 것 같다. </p> <p></p> <p> </p> <p></p> <p> </p> <p></p> <p> 일반적인 자녀교육서와는 다르다. </p> <p></p> <p> 저자는 의예과에 간 아이의 교육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일반적인 사교육, 학원, 학습지 등등 어떤 것도 없다. </p> <p></p> <p> 책은 에세이처럼 그냥 읍조린다. </p> <p></p> <p>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자꾸 웃음이 났다. </p> <p></p> <p> 저자가 이런 삶을 원해서 산 것은 아니었다지만 본인이 바빠서 아이의 교육에 대해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일반적인 교육의 </p> <p></p> <p> 대열에서 경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었다니 말이다. </p> <p></p> <p> 물론 잘 자라 주었기에 가능하다지만 맞다. 저자의 말처럼 부침개처럼 이리저리 뒤집어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한다. </p> <p></p> <p> 학부모 교육을 가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일희일비 하지 말고 줏대 있는 부모가 되라고. </p> <p></p> <p> 그러나 우린 공교육, 사교육, 교육서, 여기저기 주어들은 소리로 하루에도 열번은 맘이 바뀌곤 한다. </p> <p></p> <p> 주변에 끌려다니기 싫고 그렇다고 혼자 살 수도 없는 세상, 저자는 이 책은 그 어이쯤 서성인 이야기라고 했는데 책을 읽으며 </p> <p></p> <p> 자꾸 웃음이 난다. </p> <p></p> <p> 그래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이 말이 정답이다. </p>

     

교환/반품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환/반품안내
반품/교환방법

[판매자 페이지>취소/반품관리>반품요청] 접수
또는 [1:1상담>반품/교환/환불], 고객센터 (1544-1900)

※ 중고도서의 경우 재고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교환이 불가할 수 있으며, 해당 상품의 경우 상품에 대한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으며 교환/반품 접수 전에 반드시 판매자와 사전 협의를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중고도서의 경우 판매자와 사전의 협의하여주신 후 교환/반품 접수가 가능합니다.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반품/교환 불가 사유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이므로 단순 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는 판매정가의 20%를 적용

2) 중고도서 : 반품/교환접수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접수되어 상품 확인이 어려운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판매자
책책북북
판매등급
특급셀러
판매자구분
일반
구매만족도
5점 만점에 5점
평균 출고일 안내
2일 이내
품절 통보율 안내
28%

바로가기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