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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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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쪽 | A5
ISBN-10 : 8993119252
ISBN-13 : 9788993119251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중고
저자 김영두 | 출판사 역사의아침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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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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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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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올바른 정치를 논하다!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는 퇴계와 율곡의 정치적 경륜이 담긴 건의서인 「무진육조소」와 「만언봉사」를 통해 두 사람이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지 가늠해본다. 조선 유학계의 양대 거두인 퇴계와 율곡은 성리학을 공통의 이념으로 공유하면서도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과 지향은 달랐다. 퇴계는 자신의 소명을 은거와 강학에서 찾은 반면 율곡은 관료로서 나라에 헌신하는 데서 찾았다. 그럼에도 퇴계와 율곡이 시대를 구하기 위해 내린 처방인 상소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저자소개

저자 : 김영두
저자 김영두는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고 「조선 전기 도통론道統論의 전개와 문묘종사文廟從祀」라는 논문으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수상)와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가 있다.

목차

저자서문 | 5

1장 역사 속의 퇴계와 율곡 | 15
1. 퇴계와 율곡의 첫 만남 | 19
2.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 문답 | 35
3. 퇴계와 율곡의 시대인식과 소명의식 | 47

2장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 61
머리말 | 65
1. 첫째, 왕통의 승계를 중요하게 여겨 인仁과 효孝를 온전하게 할 것 | 70
2. 둘째, 참소와 이간을 막아 양궁兩宮이 친하게 지낼 것 | 77
3. 셋째, 성학聖學에 힘써 다스림의 근본을 세울 것 | 84
4. 넷째, 도술道術을 밝혀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을 것 | 96
5. 다섯째, 심복이 되는 대신을 두어 눈과 귀를 통하게 할 것 | 107
6. 여섯째, 수양과 반성을 정성스럽게 하여 하늘의 사랑을 이어받을 것 | 115
맺음말 | 126

3장 만언봉사萬言封事 | 131
선조의 구언교서 | 136
머리말 | 145

1. 때를 맞춤 | 151

2. 실질에 힘씀 | 161

첫째, 위아래가 서로 믿는 실상이 없음 | 163
둘째, 신하들이 일을 책임지려는 실상이 없음 | 170
셋째, 경연이 아무것도 이루는 실상이 없음 | 176
넷째, 어진 이를 거두어 쓰는 실상이 없음 | 179
다섯째, 재이를 만나도 하늘에 응답하는 실상이 없음 | 183
여섯째, 여러 정책에 백성을 구제하는 실상이 없음 | 187
일곱째, 사람들의 마음이 선善을 지향하는 실상이 없음 | 191

3. 자신을 닦음 | 198
수신의 첫째 조항: 성상의 뜻을 분발하여 삼대의 융성함을 되돌리기를 바람 | 199
수신의 둘째 조항: 성학에 힘써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잡은 보람이 오롯이 이룩되도록 함 | 204
수신의 셋째 조항: 한쪽으로 치우친 사사로움을 버려 지극히 공정한 도량을 넓힘 | 209
수신의 넷째 조항: 어진 선비들을 가까이하여 온 정성으로 깨우쳐주는 보탬을 마련함 | 215

4. 백성을 편안케 함 | 220
안민의 첫째 조항: 정성된 마음을 열어 신하들의 충정을 얻음 | 220
안민의 둘째 조항: 공안貢案을 고쳐 세금을 모질게 거두어들이는 해악을 없앰 | 229
안민의 셋째 조항: 절약과 검소함을 기려 사치하는 풍조를 개혁함 | 236
안민의 넷째 조항: 선상選上하는 제도를 바꾸어 공노비들의 괴로움을 덜어줌 | 239
안민의 다섯째 조항: 군정을 개혁하여 안팎의 방비를 굳건히 함 | 245
맺음말 | 259

부록
연보 | 264
주석 | 273
찾아보기 | 284

책 속으로

퇴계는 정치의 근본은 사람이니 수양을 통해 덕을 갖춘 인재가 정치를 행할 때야말로 백성을 살리는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수양을 통해 덕을 갖추는 내용과 절차가 바로 『대학』과 『중용』에 마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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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는 정치의 근본은 사람이니 수양을 통해 덕을 갖춘 인재가 정치를 행할 때야말로 백성을 살리는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수양을 통해 덕을 갖추는 내용과 절차가 바로 『대학』과 『중용』에 마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대학』과 『중용』은 사서의 핵심으로, 여기에는 주자학에서 말하는 성인에 이르는 길이 제시되어 있다. 퇴계는 이와 같은 주자학의 수양론을 정치에 직접 적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는 국왕의 공부가 무르익어 그 경지가 드러나면 여러 어진이들이 그 빛을 보고 모여들게 되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바로 키우고 백성을 어질게 살리는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 2장 「무진육조소」 94~95쪽 중에서

퇴계가 이 조목에서 제시하는 정치체제도 바로 국왕과 대신 그리고 삼사가 권력을 나누어 갖는 형태다. 그렇지만 퇴계는 임금이 대신과 대간을 중용한다고 해서 그대로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올바른 도에 말미암지 않으면 제도적으로 훌륭한 장치가 작동되더라도 정치가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퇴계는 국왕과 대신 그리고 대간의 관계가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길게 설명하는데, 이는 중종 말 김안로金安老의 집권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중략)
김안로 집권기에 대신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삼사가 주장하고 대신이 침묵하는 의제에 대해 국왕은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삼사의 변질은 삼사를 중심으로 언론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표출되는 사대부의 여론을 공론으로 삼아 정국을 운영한다는 사림정치의 이상으로 볼 때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가슴과 배, 눈과 귀에 독기가 끼일 수 있다는 퇴계의 주장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퇴계는 결론 부분에서 대신과 대간은 서로 어울려 쓰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렇게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되는 임금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한다. 대신과 대간이 권력을 분립하는 사림정치 체제를 이상적으로 제시하면서도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요체는 임금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퇴계의 정치사상에서 임금이 바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여기서도 살펴볼 수 있다.
- 2장 「무진육조소」 113~114쪽 중에서

율곡의 생각에 따르면, 하나의 시대에는 그 시대를 위한 법과 제도가 있다. 곧 하나의 제도는 한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때가 바뀌면 그것이 가진 장점이 단점으로 바뀐다. 율곡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나긴 중국 역사에서 각 시대에 고안된 제도의 지향점이 어떻게 폐단으로 변질되었으며, 또 그 폐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 새롭게 고안되었는지를 정리했다. 율곡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삼대부터 송대에 걸친 긴 기간 동안,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새로운 이념이 등장했다가 때가 바뀜에 따라 다시 폐단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퇴계는 삼대 이후의 역사를 도가 구현되지 못한 때로 보고 한쪽으로 밀어둔 반면, 율곡은 그 나름대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시대를 구제하려는 이념이 등장했다 변질하는 과정이 반복된 것으로 보고 자세히 살핀 것이다.
- 3장 「만언봉사」 158~159쪽 중에서

율곡은 먼저 선조가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 곧 정치는 백성을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칭송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말고 실제 백성들을 위하는 효과가 날 수 있도록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덧붙인다. 예를 들어 부역제도를 개혁한다면 실제 백성들이 공평하게 부역을 나누는 데까지 이르러야지, 제도를 고치고서도 세력 있는 집안에서는 부역을 빠질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개혁이다.
율곡이 보기에 개혁이 효과가 있으려면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이것은 앞에서도 나온 율곡 나름의 ‘경장론’이다. 당시의 정세를 보는 율곡의 시각이 그러했기 때문에, 율곡은 이미 나온 여러 방안을 “말단만 바로잡을 뿐, 근본을 헤아리지 않는” 개혁이라고 낮추어 보았다. 율곡이 보기에 당시에 선조와 다른 신료들이 추진하는 이른바 개혁이라는 것은 눈에 띄는 부조리한 현상만을 바로잡으려는 소극적인 대처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터였다.
- 3장 「만언봉사」 189~190쪽 중에서

율곡의 군정개혁은 대단히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율곡은 군적을 고쳐 군역을 질 대상자를 확보하고 각지에 배치하는 병력을 줄여 백성의 어려움을 줄여주려는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율곡의 주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 군역을 지는 병사들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승진과 포상 제도를 합리적으로 마련하려 했다. 이것은 길게 보면 군역을 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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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퇴계와 율곡, 올바른 정치를 논하다 조선시대는 학자와 정치가가 분리될 수 없는 시대다. 퇴계와 율곡은 성리학을 공통의 이념으로 공유하면서도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과 지향은 달랐다. 그들의 현실인식과 극복방안, 두 사람이 생각하는 정치의 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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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올바른 정치를 논하다

조선시대는 학자와 정치가가 분리될 수 없는 시대다. 퇴계와 율곡은 성리학을 공통의 이념으로 공유하면서도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과 지향은 달랐다. 그들의 현실인식과 극복방안, 두 사람이 생각하는 정치의 요체는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
퇴계는 자신의 소명을 은거와 강학에서 찾은 반면 율곡은 관료로서 나라에 헌신하는 데서 찾았다. 그럼에도 퇴계와 율곡이 시대를 구하기 위해 내린 처방인 상소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퇴계와 율곡의 정치적 경륜이 담긴 건의서인 「무진육조소」와 「만언봉사」를 통해 두 사람이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 퇴계와 율곡, 현실정치의 길을 묻다

서른다섯 살 차이가 나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명종 13년(1558) 처음 만난 다음, 퇴계가 세상을 떠난 선조 3년(1570)까지 십여 년 동안 교유관계를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나 일화를 살펴보면 그들은 결코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진 동지였다. 그들은 같은 학문을 하며 여러 주제를 놓고 서로 의견을 물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사림세력의 굳건한 지주로서 마주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보태었다.
퇴계와 율곡은 여러모로 비교해볼 부분이 많은데, 이 책에서는 정치에 대한 퇴계와 율곡의 생각을 살펴보기 위해 두 사람의 대표적인 상소인 「무진육조소」와 「만언봉사」를 심도 깊게 분석했다.
퇴계와 율곡이 상소를 올린 지 사백 년도 더 지났고, 그때와 지금은 서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세상이다. 하지만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의 안민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오늘날 우리 삶에도 가치 있는 교훈을 줄 것이다.

▶ 퇴계와 율곡, 목숨 걸고 임금에게 진언하다

조선 유학계의 양대 거두인 퇴계와 율곡은 성리학을 공통의 이념으로 공유하면서도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과 지향은 달랐다. 두 사람의 대표적인 상소인 「무진육조소」와 「만언봉사」에 나타난 그들의 현실인식과 극복방안, 두 사람이 생각하는 정치의 요체는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
「무진육조소」는 무진년(1567) 당시 갓 즉위한 열일곱의 어린 임금 선조가 국가를 잘 이끌어가도록 퇴계가 올린 여섯 개 항목의 상소다. 사림정치를 구현할 재목으로 당시 사대부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약관의 선조에게 퇴계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학문과 경륜을 전수하고자 했다. 그 결과로 나온 「무진육조소」를 통해 국정운영의 전반적인 원칙과 방향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밝히고, 퇴계 자신의 성학 이념 곧 올바른 임금이 유교정치의 이상인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만언봉사」는 선조가 신하들에게 내린 구언求言교서에 대한 답으로 율곡이 올린 상소다. 선조 6년(1573) 12월 서울에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괴변이 일어나자 며칠 뒤인 선조 7년(1574) 1월 4일 선조는 신하들에게 답을 구했고, 율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국왕의 개인적 수양과 국정운영의 요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11,600자에 달하는 상소로 올렸다. 율곡은 그저 하나의 괴변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당면한 여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처방안을 제시했다.
조선시대는 학자와 정치가가 분리될 수 없는 시대다. 퇴계는 자신의 소명을 은거와 강학에서 찾은 반면 율곡은 관료로서 나라에 헌신하는 데서 찾았다. 그럼에도 퇴계와 율곡이 시대를 구하기 위해 내린 처방인 상소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퇴계와 율곡의 정치적 경륜이 담긴 건의서인 「무진육조소」와 「만언봉사」를 통해 두 사람이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 배움을 가까이하여 통치의 원칙을 바로잡고
눈과 귀를 밝혀줄 어진 신하를 곁에 두시옵소서 - 퇴계 이황


퇴계 이황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해법을 「무진육조소」에 담아 선조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첫째 왕통의 승계를 중요하게 여겨 인仁과 효孝를 온전하게 하고, 둘째 참소와 이간을 막아 양궁兩宮이 친하게 지내고, 셋째 성학聖學에 힘써 다스림의 근본을 세우고, 넷째 도술道術을 밝혀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다섯째 심복이 되는 대신을 두어 눈과 귀를 통하게 하고, 여섯째 수양과 반성을 정성스럽게 하여 하늘의 사랑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선조가 성군의 자격을 갖추어 나간다면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고 퇴계는 전망했다.
퇴계는 스스로도 자신이 제시한 여섯 가지 조항에 새롭거나 놀라운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올바른 정치를 이루는 가장 떳떳하고 올바른 길임을 새삼 강조한다. 아마도 퇴계는 자신의 주장이 이론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모든 것이 지당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하기 어렵다고 선조가 생각할까 봐 염려했을 것이다. 예로부터 역대 제왕들은 늘 왕도정치의 이상을 높이 받들었으면서도, 현실정치에서는 법치에 바탕을 둔 부국강병책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는 늘 평범한 데 있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하찮고 흔한 일상을 벗어나지 않아도 실로 높고 깊으며 멀고 커서 다함이 없는 것이 거기에 있다”는 퇴계의 말은 시간을 초월해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 제도를 정비하여 백성의 어려움을 살펴주시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사로움을 버려 공정한 정책을 펴시며
덕으로 살펴 신하들의 신망을 얻으시옵소서 -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만언봉사」에서 당시의 현실을 진단한 뒤, 그에 따른 대책을 제시했다. 그는 위아래가 서로 믿는 실상이 없고, 신하들이 일을 책임지려는 실상이 없고, 경연이 아무것도 이루는 실상이 없고, 어진 이를 거두어 쓰는 실상이 없고, 재이를 만나도 하늘에 응답하는 실상이 없고, 여러 정책에 백성을 구제하는 실상이 없고, 사람들의 마음이 선善을 지향하는 실상이 없다고 현실을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크게 두 방향으로 대책을 제시했다.
먼저 율곡은 안으로 임금이 스스로를 수양하기 위해 네 가지 조항의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성상의 뜻을 분발하여 삼대의 융성함을 되돌리기를 바라고, 성학에 힘써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잡은 보람이 오롯이 이룩되도록 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사로움을 버려 지극히 공정한 도량을 넓히고, 어진 선비들을 가까이하여 온 정성으로 깨우쳐주는 보탬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어 율곡은 밖으로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해 다섯 가지 조항의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정성된 마음을 열어 신하들의 충정을 얻고, 공안貢案을 고쳐 세금을 모질게 거두어들이는 해악을 없애고, 절약과 검소함을 기려 사치하는 풍조를 개혁하고, 선상選上하는 제도를 바꾸어 공노비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군정을 개혁하여 안팎의 방비를 굳건히 하는 것이다.
율곡은 퇴계와 달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는 퇴계와 달리 국정운영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관직을 두루 역임한 율곡의 이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율곡은 당시가 국정의 모든 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할 중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당시 조선 사회의 전반적 난맥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율곡은 근본적이면서도 전면적인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율곡이 제기한 선조의 편협한 태도에 대한 지적이나 고식적인 태도로 개혁을 미루던 지배세력에 대한 불평, 결함 투성이였던 각종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고발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직설적이다.
율곡의 제도적, 정책적 개혁방안은 관심의 폭이나 내용의 깊이에서 당시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율곡이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하면서 쌓은 경험,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경장更張이 필요하다는 시대인식과 만나 당시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세론을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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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유교가 정치이념이자 삶의 척도이며 지침이었던 국가단체에서 공자의 묘향 즉 문묘에 배향된다는 자체가 성현의 반열에...
     
    유교가 정치이념이자 삶의 척도이며 지침이었던 국가단체에서 공자의 묘향 즉 문묘에 배향된다는 자체가 성현의 반열에 올랐음을 공인하는 일련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화폐에 모델로 채택되었다는 자체만으로 그 위인에 대한 평가와 검증은 두말할 필요성을 갖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바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그 이름만으로도 역사적인 검증을 거친 세칭 위인의 한자리를 찾지 하는데 논박이 없을 정도의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메타포 이면의 세계에 대해서 세인들의 관심과 지식의 폭은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워낙 이 두사람의 후광이 크고 추구했던 이념적인 실체에 대한 전문성 요구로 인해 더욱더 일반인들에겐 허상 아닌 허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는 이러한 면에서 퇴계와 율곡의 사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보기드문 연구분야의 책으로 보인다. 역사서나 역사교육등을 통해서 한번쯤은 들어보았고 의무적으로 암기해 보았던 <무진육조소>와 <만언봉사>의 전문을 통해서 두 사람의 정치적인 생각의 틀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로 다가온다. 퇴계와 율곡이 활약했던 시기는 조선역사상 고종, 인조와 더불어 가장 최악의 군주였던 선조시대였고 선조가 즉위하여 치세를 열어나가던 초반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정치에 대한 담론을 상소라는 형태로 피력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시기까지는 당파성에 대한 확연한 구분이 없어 상대진영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나 폄하성에 가까운 정책의 비판등이 보이질 않고 자신이 생각하고 추진하고자하는 정책을 가감없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퇴계의 말년에 두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각자 추구하는 이념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었다는 점에서 이 두자료는 퇴계와 율곡이 지향하는 정치사상의 백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크게 퇴계와 율곡은 군주 자신의 성찰 즉 수신에 대해서 공통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퇴계가 성학과 더불어 성리학 전반에 입각한 큰틀의 정신적인 바탕에서 정치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면 율곡은 군정 및 노비제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례을 들어 군주의 올바른 정치관을 주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이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나 결국 퇴계나 율곡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의 맥락은 대동소이하다. 퇴계가 큰 맥락만을 집어주고 세세한 내용은 이러한 큰 맥락에서 스스로 터득하게끔 하는 교육방식이었다면 율곡은 그야말로 꼼꼼히 하나 하나 알아듣게 설명하는 타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양측의 장단점은 존재하지만 성리학에 기반을 둔 정치이념의 수립에는 공통적인 지향점은 동일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퇴계나 율곡이냐는 식의 이분법적인 판단은 불가할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이를 받아들여 치세에 어떻게 유용하는냐의 견지에서 본다면 향후 선조의 정치적인 행태로 판단하건데 두 사람의 충정어린 목소리는 되돌아 오지 않는 메아리에 머물고 말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반적으로 무진육진소나 만언봉사의 전문을 읽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퇴계와 율곡의 지향하는 정치적인 사상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 어떤 언어선택을 사용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의견을 이끌어 나가는가에 대한 논술적인 입장에서 상소를 읽어봐도 명문임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이 두사람의 상소 내용은 비록 그 의도를 논외로 한다고 해도 지금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직언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정치인들과는 사뭇 질적 양적으로 많은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 만큼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에 그 만큼 확고한 신념이 있었고 이런 정치적 신념과 더불어 개인적으로도 부끄러울것이 없는 삶을 몸소 실천했다는 점에서 퇴계와 율곡은 진정한 정치가로 그리고 학자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 퇴계와 율곡 | ai**85 | 2011.04.14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 퇴계와 율곡을 함께 비교연구한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외웠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 퇴계와 율곡을 함께 비교연구한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외웠던 이황과 이이의 업적과 사상이 약간 생각이  날 뿐이엇다. 두 학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몰랐던게 사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처럼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하고 비교하기전에 나는 퇴계와 율곡이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잘 알게 되었다. 퇴계는 율곡보다 35세나 많은 연장자였다는 점, 두 학자가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문헌을 통해 알 수 있었고, 율곡이 퇴계에게 학문에 대한 궁금점이나 정치에 대해 질문을 했고 퇴계가 대답을 하므로서 율곡이 퇴계에게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었다. 책의 전반부에서 이런 사실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퇴계와 율곡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읽고 나면 퇴계의 무진육조소라는 상소문과 율곡의 만언봉사라는 상소문을 자세히 읽어 볼 수 있다. 저자는 두 학자의 상소문을 비교하며 이들의 다른점을 밝히고 있었다.
    퇴계가 갓 왕위에 오른 선조임금에게 무진육조소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 책에서는 6가지 조항에 대해  한가지 조항씩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다. 상소문의 내용이 좀 어려웠지만 상소문의 내용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뒤를 이어 나오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퇴계가 왜 이런 조항으로 상소문을 올렸는지 시대의 상황을 알 수 있었고, 선조와 사림의 입장도 알 수 있었다. 퇴계는 성리학적 정치이념을 가지고 국정을 다스리고 싶었던 사림세력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퇴계는 주자성리학에 기반한 양반 사대부의 정치이념을 국왕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요청하고 있었다. 국왕이 성학을 성취한다면 어진재상과 강직한 언관들이 국왕의 주변에 모여 성대한 정치를 이룩할 수 있고 하늘의 뚯을 받들어 백성들을 살리는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퇴계의 주장은 여기에서 그친다. 그 당시에 긴급하게 처리해야할 문제들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언급할 뿐이었다.
    반면에 율곡은 당시의 문제점을 제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해결방법과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상세히 제시했다. 율곡은 만언봉사라는 상소문을 올려서 국왕이 성군이 되기위한 수양과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과 방향까지 제시한 것이다.
    저자는 퇴계와 율곡의 상소문을 가지고 두 사람의 다른 점을 비교 분석했다. 퇴계와 율곡이 정계에 있었던 시기가 달라서 상소문의 내용도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두 학자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임금이 백성들을 살리는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재야에서 교육에 주로 전념했던 퇴계는 임금에게 원칙을 강조했다면 실제로 정치에 참여해서 문제에 부딪혔던 율곡은 구체적인 방법들을 임금에게 제시했다라는 점은 당연한 것 같다.
    퇴계와 울곡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흥미로운 독서시간이었다.
  • ...
    우리시대에 이상적인 정치지도자는?
    정치는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어떤 지도자가 정치를 하는가는 중요하다. 정치지도자는 선거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선거는 우리의 현재 뿐 만아니라 미래의 삶을 결정한다. 하지만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07년 대통령선거의 투표율은 63.0%, 2008년 국회의원선거의 투표율은 46.1%에 불과했다. 이와같이 선거의 투표율이 낮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불신과 정치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에 이상적인 정치지도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퇴계VS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치지도자였던 퇴계와 율곡의 교류관계, 정치적인 사상과 행동을 비교하고 있다. 퇴계의 무진육조소와 율곡의 만언봉사를 통해서 퇴계와 율곡이 조선시대의 정치지도자로서 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퇴계와 율곡의 첫 만남은 율곡이 명종 13년(1558년) 2월에 퇴계를 찾아가면서 이루어졌다. 그 이후 퇴계와 율곡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교유했다. 율곡은 퇴계를 성현과 비교할 정도의 큰 학자로 존경했고, 퇴계는 율곡의 뛰어난 재주를 인정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성리학에 대한 올바른 공부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또한 퇴계와 율곡의 편지를 통해서 그들의 시대의식과 소명의식을 읽을 수 있는데, 퇴계와 율곡 모두 성리학에 충실한 사대부였지만 퇴계는 자신의 소명을 은거와 학문에서 찾았고(은거강학) 율곡은 현실정치인, 관료로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찾았다.(경세제민)
    퇴계는 무진년(1568년, 선조원년)에 당시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여섯 개 항목의 상소를 올렸다. 여섯 개 항목은 퇴계는 왕도정치를 실현을 이상으로 왕통의 승계를 중요하게 여겨 인(仁 )과 효(孝)를 온전하게 할 것, 참소와 이간을 막아 양욱이 친하게 지낼 것, 성학에 힘써 다스림의 근본을 세울 것, 도술을 밝혀 사람의 마음을 바로 잡을 것, 심복이 되는 대신을 두어 눈과 귀를 통하게 할 것, 수양과 반성을 정성스럽게 하여 하늘의 사랑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퇴계는 선조가 성리학적 정치이념에 따라서 수양을 통해서 덕을 갖추어 성학을 이루고, 성군이 되어 도학을 구현하고 실천하면 시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율곡은 선조 7년(1574년) 선조의 구언을 계기로 만언봉사라는 상소를 올렸다. 율곡은 때를 아는 것과 실질에 힘쓰는 것을 전제로 당대의 현실을 분석하여 7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임금이 자신을 수양하는 4가지 방법과 백성을 편안케 하는 5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율곡이 지적한 7가지 문제점은 위아래가 서로 믿는 실상이 없음, 신하들이 일을 책임지려는 실상이 없음, 경연이 아무것도 이루는 실상이 없음, 어진 이를 거두어 쓰는 실상이 없음, 재이를 만나도 하늘에 응답하는 실상이 없음, 여러 정책에 백성을 구제하는 실상이 없음, 사람들의 마음이 선을 지향하는 실상이 없음이다. 율곡도 퇴계와 같이 성리학적 이상 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임금의 수양 뿐 만아니라 붕당, 세금, 공노비, 군정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와 법령이 시대에 맞추어 변화되고 실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율곡의 이러한 주장을 경장론 또는 변통론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퇴계와 율곡은 조선시대 정치가, 사대부로서 유교적인 이상정치를 지향했지만 구체적인 태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퇴계는 관직이나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학문과 교육에 집중하였지만 율곡은 관료로서 끝까지 현실 문제를 고민했다.
    오늘날 진정으로 국민이 신뢰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치가가 없다고 한다. 정치무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퇴계VS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을 통해서 퇴계와 율곡과 같은 사표가 될 수 있는 정치가를 그려보았으면 좋겠다
  •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김영두 지음 역사의아침 출판   &nb...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김영두 지음
    역사의아침 출판
     
     
    퇴계와 율곡 
    위인전 목록에서 또는 교과서에서 늘 찾아 볼수 있었던 친숙한 이름이었다.
    이 두분을 난 십만양병설이니, 성학십도니 하는 외향적인 요소로서 "안다" 라고 생각하다가
    (생각에 대한 퇴계의 설 - 마음에서 구하여 경험하고 얻는것) 몇 년 전에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에 대한 서신을 짧막하게나마 풀어놓은 책을 보면서 감히 퇴계를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다라고 결론지었었다.
    그이유는 스스로 고매한 인격자이자 성리학자인 퇴계가 고봉과의 서신교류뿐만 아니라 그를 인정하고 그가 생각하는 그시대의 바른길로 이끌며 기대승의 학문적 욕구에 박차를 가해줄줄 아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는 점이었다.  이번기회에 다시 퇴계vs율곡을 통해 퇴계를 다시보매, 좀더 깊이 있게 조선의 성리학과 정치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쑤욱 훑어보매, 중간 중간 보이는 한자들과 궁서체로 인해 도서관에가서 공부하듯 봐야 할 책이란 생각이 있었다. 그리하여 차일피일 미루다 서평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한번이라도 훑어보자하며 체육관에서 자전거를 타며 읽기 시작했다. ^^ 그런데, 생각과는 반대로 그들의 실제 생활에서의 교류나 서로에 대한 생각과 주장을 그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삽입하여 비교적 쉽게 풀어놓아 몇몇 역사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장은 역사속의 퇴계와 율곡이란 부제로 사대부의 시대에 사대부로 살았던 두 사람의 생각과 행로과 왜 대조적이었는지, 또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시대의 사건과 결부하여 풀었고, 그들이 주고 받았던 서신을 원문과 풀이를 통해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하여 원문에서 부족한 것들은 다시 풀이에서 한번더 정리를 하도록 하였다. 또 2장에선 퇴계의 무진육조소의 6가지내용을 역사적 사건과 결부하여 왜 그러한 조항을 퇴계가 임금께 올려야 했는지 그때 퇴계의 생각을 작가시점에서 헤아려 작가의 생각을 첨가하였다. 3장에서는 율곡의 만언봉사를 역시 무진육조소처럼 전개하였다.. 실제로 나는 무진육조소와 만언봉사를 읽을때 작가의 시점과 나의 생각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부분은 일맥상통했고 어느부분은 물론 많이 달랐다. ^^
     
    퇴계와 율곡은 겸손한 사람들이었고, 성리학자들이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건 퇴계나이 58살, 율곡나이 23세 율곡이 퇴계를 찾아 도산으로 간 것이 시작이었다. 고봉과도 그랬듯이 퇴계는 율곡을 만난것을 크게 기뻐했을거란 생각에 동의한다. 새로안 사실을 덧붙이자면, 퇴계와 고봉이 사단칠정을 논할때 율곡은 성혼과 논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사실, 우매한 나로서는 지금도 주리파와 주기파의 어느편에도 맘을 기울리수가 없다. 당연한건가? 나만그런건가? 율곡은 영리하고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으며, 고집이 세고 생각이 많았던 사람인듯하다. 만약 현재에 율곡이 태어났다면 더 크게 대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율곡은 그시대에 할수 있는 다양한것들에게 관심이 많은듯하다. 불교에도 빠졌었고 시짓기에 능했다고 하니 작금의 시대엔 혹시 그가 유명한 배우나,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와반대로 퇴계가 율곡에게 보낸 서신들을 보면 시짓기를 멀리하라는 등의 뼈속까지 선생님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퇴계가 어쩜 작금의 시대에는 꽉막힌 학자로 평해지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조선시대속에선 퇴계가  현실에선 율곡이 더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조선시대에서 그들을 빼내와 현재에서 평하게 하는 재미있는 해석을 하도록 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율곡이 퇴계에게 조정에 나올것을 권하는 논리를 펼치는 내용을 봄으로서 둘의 명확한 다른점을보이는데 퇴계가 세상경영에 재주가 부족함으로 계속 거절하자, 자신이 화타와 같은 명의가 아니라도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내버려둘수는 없는일이다. 또 스스로 낮춘다하여 성현을 배우지 않았따고 할수다 없을거니, 물러나선 안된다. 마지막으로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를 한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감당하지 못할 낭패가 닥칠거란 경고까지, 율곡은 상당히 치밀하게 퇴계를 몰았지만, 퇴계는 결국 사양한다. 어쩜 퇴계는 권력이 주는 중독성을 스스로 견제한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점에서 난 퇴계를 정말 존경한다.
    결국 퇴계는 자신의 소명을 은거와 학문에서 찾았고 율곡은 관료로서 나라에 헌신하는 데서 찾았다.
     
    어째거나, 퇴계와 율곡은 조선시대에 거두였음은 분명한 사실이고 시대적과제를 타개하기위해 그들이 제시한 무진육조소와 만언봉사를 통해 작가는 공통점과 다른점을 한데 묶어 흥미와 교훈 두가지를 다 제공해 준셈이다.  만약 퇴계 따로 율곡 따로 였다면 이처럼 흥미롭지는 않았으리라 하는생각을 감히 해본다. 책을 다 읽은후 작가의 말처럼 공부를 하며 할수록 퍼내고 퍼내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은 깊은 우물처럼 두사람은 거듭해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는 존재였다는 말에 공감했고 작금의 나아니면 안돼 라고 외치는 현대의 정치인들은 그들의 모습은 좋은 거울이 될 듯하다.
     
    2011년 4월 7일..
  • 퇴계 VS 율곡 | ti**n082 | 2011.04.05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퇴계 VS 율곡 김영두 지음/ 역사의 아침/ 2011.03. &n...
     
    퇴계 VS 율곡

    김영두 지음/ 역사의 아침/ 2011.03.

      우리가 일찍 배웠던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만난다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이 책을 읽었다. 두 분은 조선 중기 명조와 선조 때 성리학 이념에 기반한 사림정치(士林政治)를 대표하는 ‘士大夫’였다. 퇴계는 이동설(理動說)·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등 주리론적 사상을 형성하여 주자성리학을 심화·발전시켰으며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던 분이다. 퇴계는 이이와 더불어 한국의 성리학(유학)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주자의 이기이원론적 사상 및 영남학파의 창시자인 이언적의 주리설을 계승하여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철저한 철학적 사색을 학문의 출발점으로 하여 연역적 방법을 채택,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학문에 임하여 어디까지나 독단과 경솔을 배격하였다. 그는 우주 만물은 이와 기의 이원적 요소로 구성되어 그 중에 하나라도 결핍되면 우주의 만상을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기의 도덕적 가치를 말함에 이는 순선무악한 것이고 기는 가선가악한 것이니, 즉 이는 절대적 가치를 가졌고 기는 상대적 가치를 가진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심성 문제를 해석함에도 역시 이러한 절대·상대의 가치를 가진 이기이원으로 분석하였다. 이것이 뒤에 기대승과의 논쟁이 벌어진 유명한 ‘사단칠정론’으로 이후 한국 유학자로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을 만큼 중요한 주제를 던진 것이다.

      반면, 율곡은 보기 드문 천재로서 성격과 태도가 이황과는 달리 기상이 호탕하고 도량이 넓어 학문에서도 분석적인 해석보다는 근본 원리를 자유롭게 종합적으로 통찰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의 사상은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로 대표되며, 그가 23세 때 지은 《천도책(天道策)》에 이미 그 바탕이 드러나 있다. 즉 율곡은 이황이 기(氣)와 이(理)는 서로 독립되어 있다는 데 이설(異說)을 제기하여 우주의 본체는 이기이원(理氣二元)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인정하나 이와 기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분리되거나 선후(先後)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와 기는 최초부터 동시에 존재하며 영원무궁하게 떨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이는 조리(條理), 즉 당연의 법칙으로 우주의 체(體)요 기는 그 조리를 구체화하는 활동이니 우주의 용(用)이라 주장하였다.

    그리고 도덕적 가치에서도 인간심리의 근본이 이와 기의 두 가지 근원이 있지 않고 일원적이라 하여 퇴계의 사단칠정(四端七情)설을 배격하였다. 이러한 학설은 서경덕과 이황의 설을 절충하여 집대성한 것으로 그는 자기의 주장을 발전시키면서 이 주장이 주자의 뜻과 어긋나면 주자가 잘못 된 것이라고까지 하는 자신을 얻게 된 것이다. 이같이 그는 학문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경세가(經世家)로서도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출처: 위키백과 참조)

      퇴계는 학문을 함에 있어 치밀하고 성실한 반면 주변 사람들과 교유할 때는 무척이나 부드럽고 온유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치가라기보다는 교육자 기질을 지닌 것이다. 율곡은 빼어난 능력에서 비롯된 자유로움과 당당함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기질의 차이가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행보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조선 중기 양반 사대부라면 누구나 두 가지 길을 놓고 고민했을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자신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임무가 무엇인지, 시대의 인식과 소명의식에 달려있다. 퇴계는 ‘은거강학(隱居講學)’의 삶을 살았고, 율곡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삶을 살았다.

      퇴계는 젊은 선조 임금에게 두 가지 글을 올렸다. 『무진육조소』와『성학십도 』가 그것이다. 『무진육조소』는 무진년에 올린 여섯 개 항목의 상소다. 제1조는 왕통의 승계를 중요하게 여겨 仁과 孝를 온전하게 할 것, 제2조는 참소와 이간을 막아 兩宮이 친하게 지낼 것, 제3조는 聖學에 힘써 다스림의 근본으로 세울 것, 제4조는 道術을 밝혀 사람의 마음을 바로 잡을 것, 제5조는 심복이 되는 대신을 두어 눈과 귀를 통하게 할 것, 제6조는 수양과 반성을 정성스럽게 하여 하늘의 사랑을 이어받을 것 등이다. 퇴계는 국왕이 성군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나가는 것과 국정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다. 국왕이 성군으로 성장한다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반면에 율곡은 당시의 문제점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떠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건의한 것이다.

      율곡은 선조 임금의 求言을 계기로 상소를 올린다. 그것이 『만언봉사(萬言封事)』다. 선조 6년 12월에 서울에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괴변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율곡은 국왕의 개인적 수양과 국정 운영의 요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 편의 상소로 올렸다. 율곡의 『만언봉사』는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당시의 현실에 대한 진단을 앞부분에 내세웠고, 그 진단에 따른 대책이 뒷부분에 제시되어 있다. 그는 변통의 시대라고 주장했으며, 일곱 가지 실질에 힘쓰지 않아서 근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현실을 분석했다. 그리고 두 가지 방향으로 대책을 제시했다. 먼저 안으로 임금이 스스로 수양해야 한다고 하면서 네 가지 조항의 대책을 내놓았고, 다음으로 밖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섯 가지 조항의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만인봉사는 머리말과 본문 맺음말로 구성되어 있는데, 진단으로 때를 맞춤과 실질에 힘쓰라고 강조했다. 대책으로는 자신을 닦음과 백성을 편안케 함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다.

      퇴계와 율곡의 생각과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백성을 아끼고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학문에 힘쓰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대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이 학자이며 정치가가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근본은 같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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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wooyup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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