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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즉통(멘토이야기시리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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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쪽 | 규격外
ISBN-10 : 8997714392
ISBN-13 : 9788997714391
궁즉통(멘토이야기시리즈 1) 중고
저자 유철진 | 출판사 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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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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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상품구성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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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즉통』은 티아이에스정보통신 유철진 회장의 이야기다. 창업 후 십수 년이 지났고, 그는 현재도 밴처사업가로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가 오늘 자신이 지나온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인재들이 일꾼으로서 희망을 갖기를 바라며, 멘토가 되기 위해 손을 내민다.

저자소개

저자 : 유철진
저자 유철진은
1942년 출생
* 동성중·고등학교 졸업 (1961)
* 한양대 기계공학과 졸업 (1968)
* 미국 앨라배마 주립대 산업공학과 석사학위 취득 (1990)
* 미국 앨라배마 주립대 경영과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2)

● 현대건설 입사 (1968)
● 현대양행 안양공장 건설 및 운영 (現 만도기계)
● 현대양행 군포공장 건설 및 운영 (現 LS그룹)
● 현대양행 창원공장 건설 및 운영 (現 Volvo Korea 및 두산중공업)
● 현대중공업 중장비 공장 건설 및 운영 (부사장)
● 현대정공 (現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현대그룹 36년 재직)
● (現) 티아이에스 정보통신 및 Yujin Metro 창업

- 미국 유학 중 앨라배마주 무역협회 고문
- 한국 자동차 공업협회 부회장
- 한국 CNC 공작기계협회 회장
- 국제 제20회 컴퓨터/산업공학 학회 (ICC&IE) 대회장

목차

머리말?
시작하는 글?
제1부 소년시절
1. 소년, 핵물리학자를 꿈꾸다
2. 어린시절의 교훈
3. 대학, 진로
4. 공군입대

제2부 직장생활
1. 현대건설 입사-연수부터 배치까지
2. 군산화력발전소
3. 타워크레인-조선호텔 건설
4. 깨장수-시장경제에 눈을 뜨다
5. 무역부 근무와 결혼
6. 현대양행 안양공장-남자의 의리
7. 60일간의 세계일주
8. 현대양행 군포공장
9. 현대양행 창원공장(현재의 두산중공업)의 태동
10. 현대양행의 못다 이룬 꿈-한라그룹의 탄생

제3부 미국유학과 가족
1. 트리플 R-미국 동양학 박사와의 인연
2. 나와 가족을 돌아보다
3. 가족과 떠난 유학길
4. 자녀교육
5. 나의 유학
6. 사회적 인간이 되기
7. 오, 앨라배마

제4부 다시 현대로
1. 현대중공업 건설중장비 사업 본부장으로 복귀
2. 미국 현지법인 지사장에 부임하여 미국시장을 개척하다
3. 현대정공 대표이사로

제5부 창업
1. 트래픽 인텔리젼스 시스템(특허와 회사설립)
2. 의료사무자동화 시스템 개발과 실패
3.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업

맺음말?
편집자의 글?
추천사?

책 속으로

제1부 소년시절 1 소년, 핵물리학자를 꿈꾸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국사 시간이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당시 국민학교 3학년생으로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대전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전쟁 중이라 학교에 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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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소년시절


1
소년, 핵물리학자를 꿈꾸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국사 시간이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당시 국민학교 3학년생으로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대전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전쟁 중이라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아버지는 한자와 삼강오륜을 직접 가르치며 배움을 이어 가도록 해 주셨다. 휴전이 될 즈음 대전 선화국민학교가 다시 문을 열게 되었고, 5학년으로 월반하여 이듬해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러야 했다.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서울에 먼저 올라가 계시면서 원래 살던 집 인근에 있는 중학교 몇 곳의 입시원서를 내려보내셨다.
담임선생님은 합격을 확신하고, 그중 전기 지원서만 써 주었는데 아쉽게도 전기 시험에 낙방하게 되어 후기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1955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동성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으로 낙방의 맛을 봐서 그랬는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한동안 새로운 환경에 별 기대도 하지 못한 채 겉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사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지난 한국전쟁사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는데, 어느 위인의 이야기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그 이야기는 잠시 방황하던 내 영혼을 깨우는 듯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인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처음엔 북한군이 우세하여 남한은 대구와 부산을 제외하고 모두 점령당한 상태였다. 그때 맥아더 장군을 사령관으로 둔 UN군의 인천상륙 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북진 통일이 가능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면서 1.4 후퇴로 전쟁 상황이 다시 역전되고 있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은 특유의 결단력으로 만주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렇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그로 인해 제3차 대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허락하지 않았고, 맥아더 장군은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끝내 옷을 벗게 되었다.

“그때 맥아더 장군의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우린 아마 이렇게 분단되지 않았을 거야.”
선생님은 담담한 어투로 수업을 마무리하셨다.
그 당시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과 몇 해 전 우리 땅을 헤치고 지나간 전쟁의 상흔(당시 나는 많은 민간인과 남북 군인들의 사망자를 목격하였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었다.
오늘날 맥아더 장군에 대한 평가는 더욱 냉정해지고, 다각화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 맥아더 장군은 우리에게 온전한 영웅이었다. 남북의 통일을 위해 애썼던 영웅. 그때가 사춘기에 막 접어드는 시기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선생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동요시킬 만큼 말씀을 잘하신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맥아더 장군’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았고, 그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곧장 서울시청 옆에 있는 미국대사관 공보원 도서관(USIS)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맥아더 장군에 관련된 책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다 장군의 사진이 실린 사진집 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이 실린 곳에 문의하여 맥아더 장군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은퇴하여 뉴욕 5번가 어느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빈국(貧國)의 어느 소년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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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생, 2라운드로도 끝나지 않는다. 언제나 또 다른 시작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궁(窮)’한 존재는 항상 우리 곁을 따라다닌다.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듯이, 궁하면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출판사서평 더 보기]

인생, 2라운드로도 끝나지 않는다.

언제나 또 다른 시작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궁(窮)’한 존재는 항상 우리 곁을 따라다닌다.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듯이, 궁하면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인생 2라운드와 3라운드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올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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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란 후, 황폐했던 이곳에 재건의 노력과 경제 부흥을 위해 힘써온 대한민국 일꾼들이 있었다.

맥아더 장군 이야기에 감명받아 핵물리학자가 되기를 꿈꾸던 사춘기 소년은 선진교육을 받고자 유학을 꿈꾼다. 대학을 졸업한 성년이 되어, 유학 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건설에 입사하게 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신입사원에게 반한, 현대그룹 회장님들은 그에게 풀어야 할 과제들을 척척 내놓는다. 저자는 유학을 잠시 보류하기로 각오하고, 특유의 판단력과 진행력으로 기술 불모지를 기술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편 정치 격변기에 휘말리는 기업의 운명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했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고, 가족과 자신의 유학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내게 된다. 그러나 이미 능력자가 된 저자는 현대에 문제가 생기면 슈퍼맨처럼 달려와야 했다. 그렇게 세 번의 사표를 내고 세 번 다시 돌아왔다. 돌아올 때마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고, 난관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의 곁에는 늘 소중한 인연이 있어 ‘궁즉통’의 역사를 이어나가게 했다.

나이 57세, 그대로 정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저자는 과거의 업적을 추억하는 퇴직자이기보다 Ing하는 창업인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한다. 수많은 경력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와 시련에 부딪히게 되지만 그는 다시 바닥부터 시작한다. 그 결과 주차유도시스템과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개발해 내고, 사업화하여 현재는 우리가 다니는 주차장이며 지하철에서 그의 노력과 결실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티아이에스정보통신 유철진 회장의 이야기다. 창업 후 십수 년이 지났고, 그는 현재도 밴처사업가로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가 오늘 자신이 지나온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인재들이 일꾼으로서 희망을 갖기를 바라며, 멘토가 되기 위해 손을 내민다.


? 추천사

페이지마다 문제 해결형 발상, 역발상, 신발상들이 즐비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궁즉통’의 경지를 다채롭게 담고 있으니, 절로 권하고 싶어진다.
● 차 동 엽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미래사목연구소 소장

나는 나의 자식들과 나의 회사 간부들에게 이 책을 반드시 읽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 회사에는 가끔 반디앤루니스 CEO 추천도서를 올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 도서를 기꺼이 선정합니다.
● 김 천 식 반디앤루니스 회장

평생을 성실과 땀으로 성공을 일궈내신 인생 선배의 저작으로서, 항상 가까이 두고 중요한 결정을 앞둘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책이다.
● 최 연 혜 한국철도공사 사장

나는 이 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 어떠한 상황변화에서도 걸맞는 창의적 대응능력을 제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Dr. Malcolm Portera 前 앨라바마주립대 이사장

우리가 희망을 찾아갔던 시절의 기록이다. 우리 젊은 날처럼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 재연되는 이 시기에 고민을 해결하고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 이 춘 림 前 현대중공업 회장

이것은 진하 디 진한 ‘남자’들의 얘기다.
쥐뿔도 없는 맨 손으로 허허벌판에서 집을 지어내듯, 6,70년대 한국경제의 시동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내달리기 시작한 젊은이들의 피 끓는 ‘개척’의 스토리다. 그래서 짜릿하고 감동적이다. ● 정 몽 원 한라그룹 회장

삶의 장벽을 넘어 아직도 꿈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제2의 인생! 그의 순발력 있는 삶과 슬기를 통해 오늘의 삶을 조명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해 나아가자!
● 한 규 환 현대 로템 부회장

항상 꿈을 꾸며, 열정적이고, 영원한 세계인이었다. 끊임없는 학구열은 창의력의 원천이었으며, 곁에서 모셨던 나에게도 큰 채찍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청년 실업 문제, 베이비 부머의 대책없는 노후로 고민하고 좌절하는 많은 사람들이 "궁즉통"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기 바란다.
● 강 경 호 DAS사장 / 변 정 수 한라그룹 前 부회장 / 강 병 원 동원그룹 前 부회장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궁즉통"의 창의력을 발휘해 오신 회장님의 깊고 넓은 지혜와 가르침을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자주 접해야겠다.
● 윤 용 로 스트래티직 마케팅 & 커뮤니케이션스 대표

직장이 소중한 만큼, 가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다.
● 윤 희 경 현대중공업 前 차장

시작하는 글
1998년 어느 날, 미수된 외상대금을 수금하느라고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다. 출장을 가기 위해 이른 새벽 자동차를 가지고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항 장기주차장에 차 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주차할 시간을 염두에 두고 온 길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진 않았다. 그러나 얼마간을 배회하고도 쉽게 자리를 찾을 수가 없자 나도 모르게 초조해지고 말았다.
오헤어 공항 장기주차장은 차량 2만 7,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에 나 하나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량의 행렬은 끊임없이 내 뒤를 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돌아보고, 얼마의 시간을 허비했을까? 겨우 구석 자리 하나를 찾아 차를 대고 나니 비행기 출발 시각이 몇 분 남지 않았다.
공항으로 이어지는 무인경전철에 뛰다시피 해서 올라타고, 겨우 숨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전철이 달리는 고가 철로 아래로 조금 전의 주차장이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찾기 힘들던 빈자리들이 옥수수 알갱이를 빼먹은 것처럼 군데군데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걸 모르고 여러 대의 차량이 무리 지어 그 주변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미로 속을 다녀온 모양이다. 저렇게 자리가 있었는데도 몰랐다니…….’
경전철에서 내려 터미널로 뛰어갔지만, 비행기는 이미 탑승을 마감한 후였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비행기를 예약해야 했다.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이 스타벅스에 앉아서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시대는 이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고 있고, 첨단 신기술이 넘쳐나는 세상에 주차공간을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차시스템 하나가 아직 없을까? 주차장에 들어서서 운전자가 마주치는 갈림길마다 좌우나 전진 방향으로 비어있는 주차 공간 개수만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면 시간 낭비 없이 주차하고, 여유롭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이것은 혹시 하느님이 내게 주신 사업이 아닐까?’하고 저절로 위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천정에 박힌 조명 하나가 반짝하고 나를 보고 웃는 듯했다. 비행기를 놓친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보게 했다. 그러나 곧 현업에 전념하느라고 그 일을 잠시 잊고 지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시카고 지역신문에 ‘오헤어 공항에 Valet Parking(대리주차)을 도입한다.’는 기사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내용은 오헤어 공항 이용객들이 주차할 곳을 찾느라 비행기를 놓치는데, 그것을 돕기 위해 400대 주차 가능한 대리주차장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동안 잊고 있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무릎을 쳤다.
‘이 주차유도시스템은 되는 사업이 틀림없겠다.’
드디어 사업성을 검토하기 위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나섰다. 현재의 일반 주차요금을 받는 주차장과 주차요금을 추가로 부담하지만, 주차유도시스템이 있어 주차가 편리한 주차장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과 추가주차요금의 한계를 묻는 조사부터 시작했다. 결과는 시간당 50센트까지 추가 지불하는 선에서 주차유도시스템이 있는 주차장을 선택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주차 면당 하루 평균 주차시간을 4시간으로 가정하면 1년 영업일을 300일로 잡아 한 개의 주차 공간에서 600달러의 추가 수입이 나오는데, 2년이면 1,200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주차장 운영업체와 주차유도시스템 공급업자가 시스템 설치 2년 만에 주차 면당 600달러씩의 수익을 나눌 수 있는, 상호 발전적인 사업이다. 그러므로 주차 면당 시스템 공급가격을 600달러로 책정해서 개발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사업성이 판단되자 곧바로 개발에 착수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 여파로 주가가 폭락한 반면 원화가 평가절하되어 한국의 모든 상장 기업의 가치가 300억 달러가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주차유도시스템 개발문제에 대해서 더 심도 있게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스템을 개발해서 미국에만 수출해도 미국의 주차면 수가 2억 면이라고 가정할 때 1,200억 달러의 잠재시장을 예측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 본격적으로 사업을 벌여서, 미미한 힘이라도 보태야지 않겠는가?’
그런 목표가 생기니 하루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1998년 10월, 한국에 있던 옛 현대정공 부하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스마트 파킹 시스템’을 개발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즉시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특허청에 발명특허를 출원하게 된다. 연이어 한국과 세계 18개국에도 국제 특허를 출원하였다.
연구개발이 끝나고 특허도 내면서 부쩍 목표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그러나 막상 나 스스로 사업을 하려니 걱정도 되었다. 그동안 대기업의 대표이사까지 올라가 산전수전 겪으면서 사회생활을 해왔지만, 오로지 현대만 알던 셀러리맨이라서 그런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이 낯설었다. 원대한 꿈만큼이나 그 뒤의 실체는 혼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흉흉할 수 있다. 그로인해 가정에 풍파가 들이닥칠 수도 있다.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의논하고자 동료들과 후배들 선배들을 모아서 이야기했다. 그때 내 나이가 58세였다.
그들의 답은 이러했다. 이대로 현대에 복귀하는 방법이 있고, 회사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현대로 들어가겠다면 어른들이 자리를 줄 것이지만, 일단 회사를 만들면 다시는 현대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미국지사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현대로 복귀한다고 가정하면 65세가 정년이니 7년 더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당분간 안정된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퇴임하고 나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현대의 처분만 기다릴 것인가? ‘어차피 특허도 냈으니 한 살이라도 젊어서 도전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수없는 갈등 끝에 결국, 홀로서기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그들을 다시 만났다.
“여러분 의견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늦은 나이이지만 벤처사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많은 격려와 도움 부탁드립니다.”
나의 공표를 들은 동료, 후배, 선배들은 일제히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었다. 그로써 오늘날의 ‘티아이에스 정보통신’의 모태인 ‘티아이에스 테크(TIS Tech, Traffic Intelligence System Technology)’를 설립하게 된다.
티아이에스 테크를 기업으로 단장하는 단계에서 CI 작업도 하게 되었다. 담당 디자이너는 CI가 단순히 회사의 표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터뷰가 필요하다며 나와 따로 만나줄 것을 요청했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가 나와 마주앉았다. 그는 디자이너였지만 그동안 여러 기업의 CI를 해온 경험 때문인지 기업의 생리를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는 듯했다.
“대표님, IMF 위기가 닥치고, 누구도 사업하기 꺼리는 이 시기에 회사는 어떻게 설립하게 되셨습니까?”로 시작해서 그와 나눈 대화는 생각보다 기업의 깊은 속까지 드러내 보여주는 단계로까지 진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그 언젠가 내가 던진 말 한마디에 고 정인영 회장님이 멈칫했던 것처럼.
“대표님, 그렇다면 티아이에스의 비전은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비전……이라.”
나는 이 질문을 받고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책속으로 추가
맥아더에게 편지를 쓰다

바로 편지를 썼다. 지난 피난시절, 한국은행에 다니던 누님이 가르쳐줬던 기초영어를 바탕으로 내용을 만들고, 중요한 단어는 영어사전의 도움을 받아서 써내려갔다.

General, MacArthur
저는 장군의 결단력 있는 행동에 많이 감동했습니다.
… 저는 원자력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교수를 소개해주세요.

전문(全文)이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부탁으로 마무리되는 어리숙한 글이었다. 편지를 보내고서 답장이 올까? 궁금했다. 과연 그런 위대한 사람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고작 13살 아이에게 답장을 해줄 것인가? 의문스러우면서도 기대가 됐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때 맥아더 장군은 투병 중이어서 몸이 쇠약해져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내 편지를 읽어보았는지 비서를 통해 내게 답장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는 원자력에 권위가 있는 교수를 수소문해서 내가 보낸 편지를 그분께 전달했고, 교수도 그 편지를 읽고 내게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는 당시 미국 퍼듀대학 원자력공학과 학장이었다.
당시 받은 답장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원자력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그림과 자료 수십 개가 동봉되어 있었다. 미국이란 먼 나라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소년이 보낸 편지 한 통을 받고 고심해주고, 세심한 배려가 담겨있는 답장을 보내주다니 영광이었다. 커다랗게 밀려오는 감동은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때의 기쁨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한다.
결국, 그 답장들은 소년에게 큰 목표를 세우게 해주었다. 핵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꿈을 실현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실천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특히 영어가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찾아다니면서 회화와 문법을 섭렵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훗날 엔지니어로서 드물게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미국의 원자력 공학과 교수님과의 인연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직접 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에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고 3이 되기 전, 서울대학교 공대 원자력공학과를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교수님에게 편지를 썼다. 얼마 후, 교수님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뜻밖의 장문 답장을 보내왔다. 진짜 원자력공학을 하려면 학부에서 원자력공학을 공부하기보다 기계공학이나 전기공학, 화학공학, 물리학과 같은 타 전공과목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기본으로 삼아 대학원 과정에서 원자력을 공부하는 게 순서다. 아니면 기초가 부족해서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의 조언을 지도 삼아서 목표 과목을 물리학으로 수정하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도 입시 준비에 전념해도 모자랄 고3 시절에 3.15 부정선거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학업보다는 시위에 휘말리게 되었다.


2
어린시절의 교훈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 하늘보다 넓은 인간의 마음)

중학교 1학년 시절. ‘맥아더 장군’의 이야기만큼 내게 큰 감동을 안겨준 영화 한 편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이 되었을 뿐인데, 우리는 스스로가 성숙하길 바랐다. 이제 어리지 않고, 뭔가 조금은 어른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교복을 입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삼국지를 읽었고, 고전을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그리 재밌을까 싶어서 나도 삼국지를 펼쳐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장편을 소화하기에 나는 조금 덜렁거렸고, 차분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돈암동이었던 집 근처에 있는 동보극장이라는 재개봉관을 지나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라는 영화 간판이 걸려있는 걸 보게 되었다. 친구 중 한 놈이 진중한 눈빛으로 읽어 내려가던 그 ‘레 미제라블’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 또한 책 두께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건만 영화로 본다면 얼마든지 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재개봉관에서 조조할인으로 보면 더없이 저렴하게 볼 수 있었다.
‘레 미제라블, 기다려라.’
일요일 이른 아침, 늦을세라 끼니도 거른 채 첫 상영시간을 맞춰 집을 나섰다. 왜 그런지 영화란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자꾸만 마음이 설?다. 친구는 부르지 않았다. 이미 책을 읽은 친구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서 알고 싶었다.
볼 것이 없던 시절의 영화관은 언제나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더구나 전쟁 직후, 누구나 주머니 사정은 얄팍하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개봉관의 반값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재개봉관은 학생들에게 그냥 인기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극장 안은 한산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없는지 극장 안을 대충 한 번 더 휘둘러보았고, 극장 안이 바로 어두워지자 자리에 털썩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흑백의 영상 뒤에 들리는 대사는 영어인지 프랑스어인지 귀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면 한쪽 세로줄로 달린 자막을 읽어나가며 열심히 내용에 집중하려 애썼다.
상영시간은 세 시간이 훌쩍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란만장한 장발장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사이, 조바심이 났다가도 뭉클해지고, 다행이다 싶을 때 슬퍼지는 전개를 따라가다가 프랑스 대혁명과 마주치는 전율을 느끼느라 그랬는지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이었다. 장발장은 죽었고, 그의 무덤가에 가랑잎이 날린다. 그리고 그 싸늘한 배경 너머로 내레이터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다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고,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마지막 내레이션에 마음이 먹먹해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바다보다 넓은 것은 분명 하늘이다. 사람의 마음이 하늘보다 더 넓을 수 있을까?’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그 말이 자꾸만 귓전을 울렸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마지막 상영시간까지 ‘레 미제라블’을 보고, 또 보았다. 그때는 지정좌석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관을 나서지 않으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영화를 계속 볼 수 있었다. 몇 편을 더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종일 굶고 있다는 사실도 밤이 늦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앉아서 다시 그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바다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니…….’
밤이 깊어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나서야 영화관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마음에 물음을 던지면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느새 자정이 가까운 시간. 영문도 모르고 밤이 늦은 시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 되었던 아버지는 퀭해진 아들 얼굴을 맞닥뜨리자 기가 막혔다. 그리곤 걱정했던 마음이 버럭 화로 돌변했다.
아버지는 매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어떤 이야기도 통할 것 같지 않은 그 단호함에 내 두려운 손은 회초리를 찾았다. 그제야 심하게 배가 고파오는 건 또 어쩐 일이었을까? 아버지가 조금만 내 사정을 들으려 했다면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어떤 걸 보고 왔는지를…….
그렇지만 끝내 아버지께 그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 두 종아리는 배가 ‘꾸루룩꾸루룩’ 고픈 신호를 보내오는 것도 외면한 채 벌겋게 달아오르기만 했다. 그렇게 ‘레 미제라블’의 그 마지막 울림을 가슴에 담게 되었고, 앞날의 지표로 삼았다.
그 후,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링컨의 게티즈버그(Gettysburg) 연설문과 함께 그 내레이션은 아직도 내 가슴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그 세월, 늘 나와 함께 하며, 에너지의 근원이 되기도 했던 그것.
최근에서야 미국인 지인을 통해 영어로 번역된 ‘레 미제라블’을 보게 되었다. 책을 받자마자 마지막 대목을 찾아 짚었다. 내 가슴의 문구가 의심할 것 없이 그 자리에 적혀있었다.
“There is a prospect greater than the sea, and it is the sky;
There is a prospect greater than the sky, and it is the human soul.”


부모님의 교육

내가 ‘레 미제라블’에 그렇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년시절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운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이 지나갔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그 가난한 집에 걸인이 문을 두드렸고, 스님이 시주를 받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장남인 내 손에 콩 한 줌, 보리쌀 한 줌이라도 들려서 바가지를 채우게 했고, 시주를 하게 했다. 피난 중일 때도 어머니는 늘 그렇게 하셨다.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고마움과 기특함에 내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주곤 하였다. 감동을 잘 받는 소년이었던 나는 그 칭찬이 너무 좋았다. 또한, 베푸는 것이 기쁨으로 보답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 당시 여느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게 많이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셨다. 그러나 요즘 자녀를 기르는 학식이 높아진 어머니들보다 분명 현명한 분이셨다. 먹고 사는 것에 전념하느라고 자칫 가정교육에 게으를 수도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사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이론적인 학습을 시켜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유교적인 사상은 꼭 이론이나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대로 선조 때부터 우리 정신에 깃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몸소 실천하는 것을 보여주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자녀들에게 교육적인 작용을 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어른과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친구와 이웃에게 배려하고 아무리 가난해도 서로 나누는 기쁨을 가르치셨다. 내가 옆집 아이와 싸워도 나를 혼내며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저절로 친구와 화해하고 화합하는 것을 배웠다. 나아가 사회와 회합하는 법을 배웠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 따뜻한 교육을 받고 자란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다.
어머니께서 부드럽게 보듬어주는 교육을 하셨다면, 아버지께서는 강직하고, 엄격하게 나를 가르치셨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이야기다. 하루는 다음 날 친구 집에 가기로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튿날 깨어보니 아침부터 장대 같은 비가 퍼붓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친구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다시 자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자 친구와의 약속을 알고 계셨던 아버지는 크게 화내며 나를 일으켜 세워 회초리로 꾸중하셨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고 하였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면 입에서 꺼내지도 말거라.”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이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그 후, 누구와의 약속이든 반드시 지키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늘 삼강오륜과 언행일치의 가훈을 잊지 않도록 당부하셨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있어도 나를 혼낼 일이 있으면 그에 개의치 않고 회초리를 들기도 했다. 오늘날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 나로서는 그보다 큰 가르침도 없었다고 회상하곤 한다. 더구나 당시 장남의 교육은 아끼는 만큼 엄격해야 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맏이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나도 어릴 때에는 두 살 어린 남동생에게 종종 샘을 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잠결에 부모님께서 나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철진이가 종손인데, 두 살 때 어린 동생을 보았기 때문에 너무 일찍 젖을 떼어 그런지 아우에게 양보심이 부족하여 근심입니다.”(당시에는 오늘날처럼 모유를 대체할 만한 분유나 우유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젖을 뗀다는 것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니, 이해합시다.”
어머니의 나지막한 우려의 목소리에 아버지는 그렇게 답하셨다. 짧지만, 그 대화 속에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후에도 우연히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 의논하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지고, 내 행동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부모님의 가장 큰 교육은 사랑과 관심이었고, 나를 훈계하는 것은 그것을 엄하게 표현하는 것일 뿐이었다.


‘데이비드 스완(David Swan)’-인연과 기회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등학생 시절 한창 대학입학 시험준비를 하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딕슨(Dixon) 북 시리즈가 꽤 유명했는데 그중에 ‘주홍글씨’와 ‘큰 바위 얼굴’로 유명한 ‘나다니엘 호손(Nathaniel-Hawthorne)’이 지은 “데이비드 스완”이라는 단편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 몇 번이나 책이 닳게 읽었는지 오래전에 봤던 책인데도 아직 그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완’은 미국 남부의 중농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20세의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문득, 그가 이대로 삶에 젖어 있다 보면 대대로 농부의 삶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집안 내력을 물려받아 그 또한 아무런 변화 없는 삶을 이어나가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은 자아를 찾기 위해 부모님 몰래 고향을 떠난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 거리를 걷고 걸어야 했다. 때는 여름날이어서 더위에 지치고, 목이 마르던 차에 마침 샘터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는 그동안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샘터 옆의 나무 아래에서 단잠에 빠져들고 만다.
그가 잠에 빠져 있는 사이, 나이 지긋한 부잣집 노부부가 마차 바퀴의 고장으로 잠시 그 샘터에 머무르게 되는데, 세상 모르고 잠이든 데이비드를 지켜보게 된 노부부는 그가 죽은 아들과 닮은 것이 신기해서 그가 깨면 자기들 양자로 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마차가 다 고쳐졌다고 하인이 갈 길을 재촉하자, 그에 정신이 들었는지 노부부는 그냥 돌아서게 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직 단잠에 빠진 데이비드에게 다음으로 그 지역 최고 상인의 딸인 어여쁜 처녀가 다가와 앉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반해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면서 그가 깨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가 좀처럼 깨지 않자, 그녀 역시 가던 길을 가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지나가던 2인조 강도가 잠든 데이비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베고 자는 배낭에 돈이 들어 있을 거로 생각한 강도들은 데이비드를 돌로 때려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개 한 마리가 짖으면서 데이비드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자, 그들은 도망을 가버린다.
그리고 곧 잠시나마 깊은 잠에 묻혀있던 데이비드는 깨어나, “아! 한숨 잘 잤다.” 하면서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가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데이비드에 비춰보고 지나쳐가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운명과 기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일 노부부가 양자로 삼겠다고 했을 때 데이비드가 눈을 떴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강도가 그를 죽이려 했을 때 개가 짖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의 운명이란 잠이 들건 깨어 있건, 행운과 불운이 겹치거나 교차하면서 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분명 그런 운명들은 데이비드가 집을 떠나겠다는 결심에서부터 발원한 것이니, 화살같이 지나가는 그 운명들도 결국은 개인의 순간순간 예지능력과 판단능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이 가르침 역시 내가 성장해서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마다 지표 역할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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