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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리(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6)
436쪽 | | 128*189*30mm
ISBN-10 : 8901223422
ISBN-13 : 9788901223421
산소리(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6) 중고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 역자 신인섭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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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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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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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제6권, 《산소리》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몽한 세계에서 마주한 노년의 회한과 금기의 욕망
50년 연륜으로 빚어낸 만년의 걸작과 만나다! 일본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문학을 엄선해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깊이 이해하자는 취지로 20년 만에 새 단장을 시작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의 여섯 번째 작품이 출간된다. 《설국》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자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마문예상 수상작 《산소리》다. 서정 소설의 원류를 이룬 거장이자 인생의 황혼을 맞이한 인간으로서, 그가 50년 연륜으로 빚어낸 만년의 걸작이 새롭게 출간된다.

소설은 초로에 접어든 신고가 죽음을 예견하는 ‘산소리’를 듣게 된 후 벌어지는 불행과 혼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루하루 소멸을 향해 치닫는 노년의 불안과 죽음의 공포를 담백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비트는 한편, 동경했던 여인에게 품은 금기의 욕망을 꿈이라는 공간을 빌려 과감하게 풀어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참전 후 외도와 폭력을 일삼는 슈이치, 술과 마약에 절은 아이하라,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기누코까지, 불행의 덫에 걸려 신음하는 인간 군상을 통해 패전이 일본에 가져온 충격과 황폐함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사를 던진다.

특히 탐미 문학의 상징이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소름 끼칠 정도로 기묘하고 아름답다”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한적한 산골 마을의 정경과 미묘한 계절의 변화를 섬세한 묘사와 농익은 문장으로 포착해낸 것은 이 작품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출간된 지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후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산소리》는, 성(性)과 죽음, 꿈이 어우러진 새로운 차원의 서정성을 선보이며 독자들을 다시금 전율시킬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899년 일본 오사카 출생. 일찍이 부모와 조부모를 여의었고, 그때 경험한 허무와 고독은 그를 문학 세계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국문과로 전과했다.
대학 시절 〈신사조〉, 〈문예춘추〉, 〈문예시대〉 등의 문예지를 창간했고, 1921년 발표한 〈초혼제일경〉으로 등단했다. 이후 기성문단의 상투성을 비판하는 신감각파를 이끌며, 〈이즈의 무희〉, 〈수정 환상〉, 〈금수〉, 〈말기의 눈〉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1947년, 12년간 심혈을 기울인 끝에 《설국》을 완간했고, 1952년 《천 마리 학》으로 예술원상을, 1954년 《산소리》로 노마문예상을 수상하며 서정 소설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68년, “일본의 정수를 표현해낸 완성도 높은 내러티브와 섬세함이 있다”라는 한림원의 찬사를 받으며,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로서 영예의 절정에 이른 시기였지만, 1972년 자택에서 가스를 마시고 돌연 생을 마감했다.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자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다.
《산소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50세부터 쓰기 시작한 장편소설이다. 〈이즈의 무희〉가 그의 청년기를, 《설국》이 중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산소리》는 농익은 문체와 삶의 연륜이 응축된 만년의 걸작이다.
미시마 유키오, 나카무리 미쓰오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이 극찬할 정도로, 꿈과 현실 세계의 기로에 선 한 노인의 생의 번뇌와 성적 갈망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전쟁이 초래한 죽음의 냄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기묘하고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어, 일본 전후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역자 : 신인섭
역자 신인섭은 1962년 출생.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졸업 후, 일본 홋카이도대학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전공했으며 〈아리시마 다케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대학교 아시아?디아스포라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연구로 〈The Multicultural Space of South Korea〉, 〈Ethics of Father and Son in Ri’s 流城へ and Kaneshiro’s GO〉, 〈A Narrative of Those on the Move : The Case of Takeo Arishima〉 등의 논문을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 《디아스포라 지형학》(공저), 《일본 근현대문학의 명암》이 있으며, 《산소리》, 《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소설론》 등을 번역했다.

목차

정사

산소리
-산소리
-매미날개
-구름 불꽃
-밤톨
-섬 꿈
-겨울 벚꽃
-아침의 물
-밤의 소리
-봄의 종소리
-새집
-수도의 정원
-상처 후
-빗속
-모기떼
-뱀 알
-가을 물고기

작품 해설 - 성(性), 죽음, 꿈의 하모니
연보

책 속으로

8월이 되려면 열흘이나 남았는데도 가을벌레가 울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밤이슬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문득 신고에게 산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없다. 달은 보름달에 가깝게 밝지만 작은 산 위를 수놓은 나무들의 윤곽은 습한 밤기운으로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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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되려면 열흘이나 남았는데도 가을벌레가 울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밤이슬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문득 신고에게 산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없다. 달은 보름달에 가깝게 밝지만 작은 산 위를 수놓은 나무들의 윤곽은 습한 밤기운으로 희미해진다. 그러나 바람에 움직이지는 않았다.
(……) 소리는 멎었다.
소리가 멎은 뒤에야 비로소 신고는 공포에 휩싸였다. 임종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났다. 악귀가 지나가다가 산을 울리고 간 듯했다.
-20쪽, 〈산소리〉

“어때, 멋있지? 위인의 머리 같잖아.”
기쿠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 꽃은 인간의 머리통 둘레보다 크다. 그 질서정연한 양감(量感) 때문에 신고는 순간적으로 인간의 뇌를 연상했을 것이다. 왕성한 자연의 힘이 지닌 양감에 신고는 또 한 번 거대한 남성의 상징을 떠올렸다. 그 꽃술로 가득한 원반에서 수술과 암술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남성을 느꼈다.
여름도 희미해지고 바람 한 점 없는 저녁 무렵이었다.
꽃술 원반 주위의 꽃잎이 여성인 듯 노랗게 보인다.
“나는 말이지, 요즘 머릿속이 매우 멍해져서 해바라기를 보아도 머리만 생각나. 저 꽃처럼 머리가 맑아질 수 없을까?”
-47~48쪽, 〈매미 날개〉

마을이 달빛으로 훤하여 신고는 하늘을 보았다.
달은 불꽃 속에 있었다. 달 주위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의 등 뒤에 타오르는 불꽃, 혹은 도깨비불같이 그림에 그린 불꽃을 떠올리게 하는 진귀한 형태의 구름이 있었다.
차가우면서 뿌연 구름의 불꽃, 차가우면서 뿌연 달의 모습에, 신고는 갑자기 가을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
“어젯밤에는 제대로 못 잤으니까 오늘 밤에는 일찍 자야겠구나.” 신고는 왠지 쓸쓸해지고 사람이 그리웠다.
드디어 인생의 결정을 내릴 시기가 온 듯했다. 결정해야 할 일이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84~85쪽, 〈구름 불꽃〉

눈과 입이 실로 생생하다. 우멍한 눈구멍에 검은 눈동자가 빛났다. 오렌지색 입술이 가련하게 촉촉해 보였다. 신고가 숨을 죽이고 코가 닿을 만큼 다가가자 검고 부리부리한 눈망울이 밑에서 떠오르고 아랫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하마터면 탈에 키스할 뻔했다. 숨을 깊게 내뱉고 얼굴을 떼었다.
그러자 모든 게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잠시 거친 호흡이 이어졌다. (……)
하늘의 사련(邪戀)이라고 느낄 만큼 신고는 두근거렸다. 탈이 인간 여자보다도 요염하게 다가온 건 자신의 노안 탓도 있지 않을까, 하고 비웃어보았다.
-138~139쪽, 〈섬 꿈〉

“염색은 속임수야. 속임수를 떠올리는 우리에게는 기타모토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 친구는 말했다.
“기타모토는 죽었다고 했잖아. 자네가 얘기한 것처럼 기적이 일어나서 머리카락이 검게 젊어졌다고 해도…….”
“부자연스러운 기적은 오래 가지 못해. 기타모토는 흰머리를 뽑아 세월의 운행에 반항하고 몰락의 운명에 반항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수명이라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 머리털이 검어졌다고 한들 수명은 늘어나지 않지. 흰머리 뒤에 검은 머리가 자라나는 데 굉장한 정력이 소모되어서 수명을 단축시킨 걸지도 몰라. 하지만 기타모토의 필사적인 모험은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겠지.” 친구는 결론을 내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벗겨진 정수리에 옆 머리카락을 발처럼 넘긴 모습이었다.
-176쪽, 〈아침의 물〉

미국 군용기가 낮게 날아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아기는 산을 올려다보았다. 비행기는 보이지 않지만 그 커다란 그림자가 뒷산 빗면에 드리워지며 지나갔다. 아기도 그림자를 보았으리라.
“이 애는 공습을 모르지. 전쟁을 모르는 아이가 벌써 많이 태어났구나.” 신고는 구니코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놀란 빛은 이제 수그러져 있었다.
“지금 구니코 눈빛을 사진에 담아뒀으면 좋았을걸. 산의 비행기 그림자도 넣어서 말이야. 그리고 다음 사진으로는…….”
아기가 공습을 받아 비참하게 죽는다.
공상 속 두 장의 사진 같은 아기는 현실에 수없이 있을 게 분명했다.
-266~267쪽, 〈새집〉

만일 신고의 욕망이 원하는 대로 허용되어 그의 인생을 고칠 수 있다면, 신고는 처녀 적의 기쿠코, 즉 슈이치와 결혼하기 전의 기쿠코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이 억압되고 왜곡되어 꿈에 초라한 형태로 나타났다. 신고는 꿈에서도 그것을 스스로 감추고 속이려던 것일까? (……)
비가 오는구나, 하며 가볍게 들은 빗소리가 지금은 폭풍우가 되어 집을 때리고 있었다. 다다미까지 축축하게 젖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바탕하고 갤 것 같은 빗소리였다.
-320~321쪽, 〈상처 후〉

“천 년이든 오만 년이든 연꽃 씨앗의 생명은 길구나. 인간 수명에 비하면 식물의 종자는 거의 영원한 생명이나 다름없네.” 신고는 끄덕이면서 기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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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968년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계를 전율시킨 가와바타 야스나리 50년 연륜으로 빚어낸 만년의 걸작과 만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일본의 정수를 표현해낸 완성도 높은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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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계를 전율시킨 가와바타 야스나리
50년 연륜으로 빚어낸 만년의 걸작과 만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일본의 정수를 표현해낸 완성도 높은 내러티브와 섬세함이 있다”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극찬을 받았고,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독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소설가’로 손꼽힌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정경 묘사와 유려한 문체로 세계를 전율시켰던 그가 50세가 되던 해에 써내려간 대작이 있으니, 바로 《산소리》다. 〈이즈의 무희〉가 그의 청년기를 《설국》이 중년기를 대표한다면, 단연 《산소리》는 삶의 연륜과 예술적 완결성을 두루 갖춘 만년의 걸작이다. 가와바타 문학의 저변을 이루는 짙은 허무와 고독,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고유한 미의식은 한층 더 깊어진 동시에, 전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성(性)과 욕망에 대한 절묘하고도 과감한 접근이 돋보인다. 대대적인 손질을 거쳐 15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산소리》는, 순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서정의 절정을 구현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건넬 것이다.

“나는 누구의 행복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타락한 퇴역군인, 가족을 잃은 전쟁미망인, 성불구가 된 가장……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시대의 얼굴

한적한 가마쿠라 산골에 사는 초로의 노인 신고. 예순둘이 된 그는 온몸이 낡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흰머리가 성성하다 못해 눈앞에서 세어버리고, 이유 없이 객혈을 하고, 40년 동안 손에 익은 넥타이를 두고 매는 법을 잊어버려 망연자실한다. 불안해하던 그에게 ‘산소리’는 죽음의 예고처럼 다가오고 평온했던 일상은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외도와 폭력을 일삼는 아들 슈이치, 술과 마약에 절어 자살 소동까지 벌인 사위 아이하라, 결혼에 실패해 내쫓기듯 친정으로 돌아온 딸 후사코, 부모의 불화 아래 고집불통으로 자란 손녀 사토코까지. 자식들의 불행을 방관했다는 압박과 회한에 사로잡힌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사람은 며느리 기쿠코뿐이다. 세월을 거스른 절절한 연정 그리고 사그라지지 않는 금기의 욕망이 꿈과 현실을 오가며 아슬아슬하게 피어오른다.
《산소리》는 1949년에 쓰이기 시작하여 5년간 세심한 손질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패전 직후 미군정이 실시되던 시기에 탄생한 만큼, 소설 곳곳에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충격과 또 다른 억압에 짓눌리는 공허함이 시대의 잔상처럼 남아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신고는 전쟁을 거치며 성불구자가 되고, 아들인 슈이치는 전쟁터에서 몸에 밴 폭력과 타락 때문에 기누코라는 여자와 불륜에 빠진다. 기누코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전쟁미망인이다. 그런가 하면 딸 후사코는 남편이 마약중독자로 폐인이 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온다. 퇴폐와 무력감에 취해 비틀거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은 곧, 폭력과 상실감로 점철된 근대 일본의 단면 그 자체였다. 전쟁이 초래한 죽음의 냄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으로 기묘하고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 《산소리》는 제7회 노마문예상을 수상하며 전후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자리매김했다.

꿈과 현실의 기로에 선 한 노인의 고뇌와 갈등
죽음과 욕망, 금기를 파헤치는 위험한 유희

일본에서 ‘산소리’는 죽기 전에만 들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처럼,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커다란 중추를 이루고 있다. 희미한 기억과 노쇠한 몸을 이끌고 친구들의 장례식을 가는 게 일상이 되고, “머리를 몸통에서 떼어내 세탁물처럼 병원에 맡기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온몸으로 인생의 무게를 버텨낸다. 유머러스하게, 한편으론 묵직하게 그려지는 노년의 고뇌는 유한한 인간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면서 마음 한구석을 슬프게 하는 차가움으로 텍스트의 저변에 드리워진다.
그러나 《산소리》에서 그려진 노년은 쓸쓸한 허무의 세계로만 수렴되지 않는다. 작품 곳곳에는 끝내 가지지 못한 여인을 향한 집요한 갈망, 그리고 가져서는 안 되는 여인을 향한 위험한 정열이 자리하고 있다. 주인공 신고는 꿈속에서 무인도에서 낯선 여인과 뒹구는가 하면, 낙태한 열네댓 살 소녀가 성녀(聖女)가 되는 소설을 읽고, 아들과 혼담이 오갔던 여인의 유방을 만지기도 한다. 몽환 세계에서 굴절되어 드러난 며느리 기쿠코에 대한 애틋한 욕망은 단순히 주책맞은 노인의 색욕이나 일탈로 매도할 수 없다. 엄격한 도덕의식에서 해방되어 즐기는 매혹적인 성(性)의 유희이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규범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본연의 고뇌인 셈이다. 《산소리》는 죽음과 욕망이라는 두 가지 오래된 금기에 과감하게 균열을 내며, 현실에서 쉽게 맛보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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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약 1년에 걸쳐 6권으로 이루어진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을 다 읽었다. 처음엔 시리즈를 다 읽겠다는 마음 없이 <마음>(나쓰메 소세키)과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를 읽었는데, 어쩌다보니 일문학에 빠져 연달아 읽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문학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제외하곤 전혀 읽지 않았는데, 어느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산소리>까지 완독했다. 이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의 '아름다운 일본의 나'라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 연설은 일찍이 읽었다. 그 연설을 읽을 때 '참 예쁜 문장을 쓰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그 아름다운 문장들을 다소 어두운 주제들을 다루는 <산소리>에서 보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산소리>는 62세 노인 신고가 산이 울리는 소리를 '죽음의 소리'로 받아들이면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그린다. 친구들은 기괴하게 죽어가고, 참전 후 아들의 행실이 괴팍해지고, 사위가 마약에 취해 자살 소동을 벌이는 등 끊임없는 혼란이 신고 주변을 감싸고, 주변이 혼란해질수록 신고는 꿈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해 드러나는 신고의 욕망은 장이 거듭날수록 더 솔직해진다. 16개의 개별적이면서도 이어지는 단편들의 모음인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참 많은데, 내가 발견한 가장 주된 소재들은 해설에서도 지적되어 있듯 성(sexuality), 죽음, 그리고 꿈이다.

책 속에는 오묘한 여러 장면들이 반복해서 그려진다. 동경하던 여인이 죽자 마음에도 없는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한 신고는 며느리 기쿠코에게서 처형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에 대한 욕망을 느낀다. 하지만 스스로가 시아버지임을 계속 상기시키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려 노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욕망과 허무, 밝은 빛과 쓸쓸한 어둠의 상태를 오간다. 심리묘사가 아주 섬세해서 때로는 거북할 지경이었지만, 그만큼 정확한 감정들이 책 속을 휘감는다.

의도치 않게 <산소리>와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집을 동시에 읽었다. 전후의 기괴한 상황을 애매하다고 표현하며 솔직하게 그린 오에와 대조되게 그 기괴함 마저도 아름답게 풀어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들을 읽으며 계속 감탄했다. 사실 가와바타 야스나리 하면 대부분이 <설국>을 읽는데, 나는 이 시리즈 덕에 비교적 덜 유명한 <산소리>를 먼저 읽어보게 되었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굳이 따지자면 시리즈 6권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야스나리의 다른 작품들과 더 출간된다면 웅진일문학선집의 다음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마음 에 이은 웅진 일문학선집 시리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숨겨진 명작, 산소리. 초로에 접어든 노인,...


    마음 에 이은 웅진 일문학선집 시리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숨겨진 명작, 산소리.




    초로에 접어든 노인, 신고는 산이 울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에게 산소리는

    '죽음의 예고' 로 다가오고 그의 일상은 하나둘씩 분열을 일으키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전쟁 이후 그로 인한 정신적 피폐와 고뇌를 표현하며, 신고 그를 둘러싸고

    그의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산소리를 들은 이후 죽음을 예상하는 신고

    참전 후 의지를 잃고 타락한 아들

    술과 마약에 절어 자살 소동까지 벌인 사위



    이로 인해 고통받는 (약한 표현이라 생각)

    남편의 외도에 슬픔 속에 사는 며느리

    남편에게 내쫓기듯 친정으로 되돌아온 딸



    그들의 얽혀버린 이야기를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풀어내고있다. (신고 위주)

    처음에는 제목과 간단한 해설만 읽고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던지

    조금 더 철학적으로 서술되기를 기대했다.

    생각보다 죽음에 관해 파고 들어가는 이야기는 없고 인간들의 추악하고 타락한 모습을

    들춰본 불쾌한 기분만 가득 든다.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라고 하기에는 노인 신고의 며느리를 향한 욕망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기억에 남는 문장이 없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다양한 내용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이러한 부적절한 생각의 나열은

    읽어나가는 것조차 나에겐 아직 버겨웠다.



    (한번 마음이 떠난 책을 다시 아름답게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다 ..

    책을 더 읽다보면 책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기기를 바란다)


    가을날 쓸쓸함을 자아내는 책,

    산소리.

  • 산소리 | wl**whdk | 2018.06.27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그 유명한 <설국>의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산소리>, 일본의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 중 하...

     그 유명한 <설국>의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산소리>,

    일본의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 중 하나라 커다란 기대감을 안고 읽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등장인물에 동화되기도 하고 작가의 문체에 감화되기도 한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이 <산소리>는 정말 독특한 감정들을 느끼게 하는 책 중 하나이다.

     

     <산소리>는 유속이 느린 넓은 강처럼 흘러간다. 그 만큼 이야기의 흐름이 잔잔하면서도 유유히 흐른다. 별반 커다란 사건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다. 62세인 오가타 신고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전부다. 그래서 요즘처럼 빠른 스토리전개와 자극적인 내용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보기엔 지루하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읽다가 보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산소리>를 끌어가는 주된 인물인 신고는 현재보단 과거에 매인 사람 같아 보인다. 어느 날 문득 들려온 산소리를 임종을 알리는 소리로 인식하고 죽음과 늙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젊은 날 동경했던 아내의 아름다웠던 언니를 잊지 못하고 며느리 기쿠코를 보며 첫사랑을 떠올린다. 이런 그의 성향은 젊음과 미모에 상반된 것들을 추함으로 단정지어 버린다. 하지만 그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이상과는 많이 다르다. 아들 슈이치는 아름다운 아내 기쿠코를 두고 바람을 피우고, 처형의 아름다움을 전혀 닮지 않은 딸 후사코는 태어날 때부터 실망감을 안겨주었으며, 결혼생활도 순탄하지 못하다. 그의 이러한 집착은 상념이 되어 어지러운 꿈으로, 며느리에 대한 다소 과한 애정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신고는 분명히 이들의 삶에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대로 둔다. 이 소설의 묘함은 여기서 기인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등장인물 모두가 타인의 삶에, 또는 자신의 삶에 무감각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의 감정에 무감각하고 마치 따로 떠있는 섬처럼 융합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빈곤하게 살다가 활복했다는 가잔의 그림 풍우효오도를 보며 가잔이 어떨 때의 기분을 나타낸 것인지 납득할 수 있었다.’ 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을 보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그 향량한 마음이 소설에 그대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소설 <산소리>는 전후 일본의 무기력함과 정신적인 마비를 잘 표현한 수작이라고 한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오가타 신고를 통해 그가 보여주고자 한 이야기를 정말 잘 풀어냈고 본다. 신고가 마지막 부분에 말한 자신은 누구의 행복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말이 깊은 울림이 되어 전해온다.

  • 산소리 | sh**sc21c | 2018.06.2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동양인으로는 두 ...

    동양인으로는 두 번째, 일본인으로는 첫 번째 노벨문학상(1968)을 수상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산소리>를 만나보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이 왠지 모를 설렘을 준 작품이다. 설렘을 안고 펼친 작품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16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진 이야기들은 전체적인 맥락은 이어지는 듯 한 데 조금씩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제목으로 연결된 이야기들이 소제목 하에서 조금씩 끊어진 듯 한 느낌을 받은 까닭은 책의 말미에 있는 작품 해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이 책은 각기 달리 발표되었던 16개의 단편소설을 모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니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해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62세 노인 신고가 자신 가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인지 한 노인의 에세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심해지는 건망증으로 조금씩 삶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한 노인이 점점 더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꿈이나 주위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서 마주하게 되고 그를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것 같다. 요즘이라면 60대 초반에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조금 이상하기까지 하겠지만 작품이 쓰인 1950년대에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거기에 1950년대는 일본이 전쟁으로 인한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을 때라는 점이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며느리 기쿠코를 두고 외도를 하는 아들 슈이치 그리고 마약중독으로 한 여인과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사위 아이하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딸 후사코와 손주들에 대한 일상들이 한 노인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많은 감정들을 보여준다. 그 속에는 아내의 언니를 동경했던 이야기도 등장하고 많은 이별들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생각도 보여준다. 16개의 이야기들은 정말 작은 이야기들이지만 그 이야기들을 통해서 작가는 깊고 커다란 생각 속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야기들의 잔잔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도 자식들 걱정으로 주름이 늘어나고 계실 부모님 집 앞에 서있게 된다. 일본의 한 작가가 그려낸 한 가정의 이야기 <산소리>는 가슴 속에 커다란 그리움을 남기고 있다. 점점 더워지는 뜨거운 날들을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시원하게 해 줄 느낌 좋은 작품이었다.

  • 지난시절 일본 거장들의 고전을 읽으면 왠지 큰 폭의 공감대가 생기곤 합니다. 우스꽝스럽고 헛웃음까지 나오는 서사나 설정 속에,...
    지난시절 일본 거장들의 고전을 읽으면 왠지 큰 폭의 공감대가 생기곤 합니다. 우스꽝스럽고 헛웃음까지 나오는 서사나 설정 속에,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보던 익숙한 풍속도가 생생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미처 챙겨 읽지 못했다뿐이지 저 무렵 창작된 한국 작가(이 중에는 타계하신 분들도 많죠)들의 문학 세계 역시, 그윽하거나 씁쓸하거나 애잔한 동아시아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잘 묘사된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하나가 다른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한 게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면 그처럼이나 짙은 공명이 이미 내면에서부터 이뤄졌던 이유가 그만큼이나 컸던 게죠.

    신고 오카타 노인은 아직 정신이 맑고 거동도 과히 불편치 않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그 주변에서 거론하기엔 그저 실례다 이 정도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과도한 처사입니다. "죽음"은 그의 주변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화제가 아니라(사실, 누구라도, 어떤 동기에서건, 남의 죽음에 대해 그리 큰 관심 없습니다), 그의 내면이 먼저 불안히 떠올리는 고민거리입니다.

    사는 곳은 벽지에 가깝지만 신고 노인은 궁벽한 촌구석에서 농사나 짓다 늙은 인생이 아니라, 젊어서는 도회지에서 직장 생활도 오래 거쳤고 인맥도 적당히 넓습니다. 늙었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보기에 판에 박힌 인식, 거동, 반응만 지니게 되는 게 아니라,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여정과 경로를 거쳐 자신의 영혼 빛깔을 형성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변의 지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귀의 객이 되기도 하고, 그 중에는 뜻하지 않게 이른 시점에서 인생을 등진 이들도 나옵니다. 역시, 한국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장년 인생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는 대목은, 어제까지 멀쩡하던 여느 지인의 가족으로부터 갑작스러운 부음을 받아드는 순간입니다. 신고 노인은 이런 이들의 추억과 잔영이 갑자기 제 꿈에 나타나 온갖 상념에 시달리기도 하고, 미처 풀지 못했던 자기 인생의 숙제에 새삼 침잠하는 계기를 삼기도 합니다. 정신은 여전히 맑고 늙은이답게 마음씀도 부지런하거나 이타적인 편이지만, "숙제"에 끌리는 게 어째 자발적인 과정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쿡쿡 눈치나 받은 양 개운치 않은 시작이었다는 게.... 영어로는 inkling,.혹은 hunch라고 부르는 불길한 예감 같은 것 말입니다. 게다가, 그 숙제의 결론은 어째 하나같이 상서롭지가 못합니다. 답이 나오면 개운하고 깔끔해야 할 텐데도요.

    정지용의 <향수>에 보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그 정도로 오래 전에 창작되거나 배경이 등장하는 건 전혀 아니지만, 여튼 신고 노인에게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늙은 아내"의 심상을 지닌 그런 배우자가 있습니다. 할머니 성함은 야스코인데, 젊어서 코를 심하게 골던 습관이 결혼하고 나서 고쳐졌다가(이게 신기하죠. 사람의 생리나 행동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묘한 심리적 동인이 작용을 한다는 게....), 오십이 넘어 다시 재발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신고 노인은 아내의 코를 흔들어 "교정"해 주는데, 이 대목에선 읽으면서 조금 아슬아슬해지는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부부만큼 서로를 잘 아는 사이도 없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건강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고 말이죠(코골이는 건강 이상의 전조이니 그 원인을 의사의 손으로 다스린다면 또 모를까) . 또 당사자 입장에선 그렇게 코를 골고 자야 그나마 뭔가 후련하지 않겠습니까. 남이 듣기 싫다고 이기적으로 고쳐 주는 건 좀...

    아무튼 마나님이 코를 골고 말고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이 가정은 아닐 것 같아도 숨은 문제가 제법 있습니다. 흔히 보던 대로 고부 갈등 같은 건 오히려 심하지 않아 그나마 흐뭇합니다. 자고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신고 노인은 기쿠코에게 꽤 잘 대해 주는 편이며, 야스코 할머니도 그저 무던한 분이니 말입니다. 부부 문제는 누가 되었든 밖에서 함부로 낄 건 아닌데, 아들인 슈이치가 아내와 사이가 좋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처에게 폭력을 마구 휘두른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고, 바람이 나면서 서서히 정이 떨어져 가는 수준입니다. 아들이 한심하기도 하고 며느리가 애처로운 건 부부가 함께 느끼는 감정인데다, 친정에서 귀염 많이 받고 자란 기쿠코가 싹싹하게 잘하는 터라(마음에 맺힌 게 많아서 이런 걸 잘 못하죠. 귀하게 커서가 아니라 말입니다) 세대 간 갈등은 아직 미미하거나, 아예 없는 쪽입니다.

    생활 속의 이런저런 과제를 해결하려면 장도 보고 외부와 접촉을 해야 하는 형편도 우리 한국의 중소도시 거주 은퇴자들의 모습과 아주 닮았습니다. 남자는 간신히 문지방 넘을 기운만 남았어도 그 생각이라고, 젊어서 건실한 가장이었으며(?) 지금은 손주 여럿을 본 할아버지인 신고 씨이건만 이런 상황에서 (역시 장을 보러 온) 기생들에게 눈이 간다는 게 신기합니다(물론, 당사자에겐 전혀 신기하지 않고, 내가 아직 젊은 증거로 받아들인다는 게 남 보기에야 참 우습습니다).

    "저런 게 요즘은 가마쿠라에도 늘어났지요."

    별반 심각한 어투가 아닌데도 싸늘한 경멸감이 확 드러나는 짧은 한 마디인데, 놀란 건 우리 독자뿐 아니라 신고 노인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앞서 이 생선 가게 주인이 (여튼) 손님들에게 친절히 하던 품이라 더 그랬던 듯하고, 노인은 생각도 않게(?) 그들 역성까지 들어 준 후에야 자리를 물러납니다.

    이런 식으로, 아주 사소한 사건, 사건이라 부를 것도 없는 시시한 일상이 희한하게 파동의 공명과 중첩을 일으켜, 등장 인물들에게나 밖에서 구경하는 우리 독자들에게, 놀랍거나 가슴이 싸하거나 소소하게 트집잡거나, 아니면 싸구려 훈수(주관적으로만 값진)를 두고 싶은 일들,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원 이런 소재로도 장편 소설 구성이 가능하거나 싶을 정도로요.

    소설 속에는 다분히 남성 중심적 시각이 자주 드러나 일부 현대 독자들에게는 불편하다 싶은 구석도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등을 숨김없이 드러낸, 요즈음의 매춘부였다" 등등, 아무 원색적 묘사 없이도 왠지 뭔가가 자꾸 궁금해지는(역시 남성 독자 입장에서?) 서술이 꽤 많은데, 이게 알고보면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그만의 솜씨가 또 맞습니다. 아침 드라마처럼 개연성 없는 갈등의 얼척없는 폭발을 통해 팍국으로 치닫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살피고 또 살피다 에둘러 건네는 한 마디, 표정, 거동 등이 사람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대목이 참 많습니다.

    제목인 "산소리"는 일종의 조짐, 전조입니다. 신고 씨 일생에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질라치면 산이 희한한 소리를 낸다는 건데, 산은 물론 저만치에 크게 버티고 선, 우리 한국에서도 흔히 보는 동네 산 같은 것입니다. 초자연적 현상이라기보다 다분히 불안한 내면의 감정 전이, 대상 투사에 가까운데, 해학적인 건 노인 부부 말고도 아직 젊은 그들의 자녀들조차 요 내력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은근히 신경까지를 쓴다는 사실이죠. 이 작품의 단연 빼어난 점은, 사연 전체를 큰 기복 없이 잔잔히 이어지는 서사로 볼 수도 있고, 인생을 통째로 매개관념으로 갖다 쓴 큰 덩치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는 그 고유의 성취와 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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