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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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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8983717467
ISBN-13 : 9788983717467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중고
저자 파울 페르하에허 | 역자 장혜경 | 출판사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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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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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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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요즘엔 왜 이렇게 싸이코가 많을까?” TV 뉴스와 신문 기사에는 하루가 머다 하고 잔혹한 사건 사고가 보도된다. 동서양을 막론한 왕따 사건, 묻지마 살인, 총기난사까지, 점점 더 많아지고 잔인해지는 심리장애의 징후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의 저자이자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파울 페르하에허는 그 원인을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찾는다. 특히 교육, 학문, 보건 제도처럼 간단히 효율성을 평가할 수 없는 분야를 간단히 평가하려고 하면서 생겨나는 문제점들은 치명적이다.

가령, 연구자나 교수들은 내담자들을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훈육이나 약물처방을 남용하고, 문제는 개인에게 있으며 개인이 바뀌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인식과 자기변화가 공동체의 자기인식이나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드러내며, 온갖 창의적이고 끈질긴 노력을 기울이는 전통적인 방법이야말로 지금의 시스템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소개

저자 : 파울 페르하에허
저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벨기에 헨트 대학의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1998년에 출간된 『고독한 시대의 사랑』은 학술서임에도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2008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2000년 출간된 『정상성과 장애들에 관하여』의 영어판은 괴테상을 수상했다. 2000년 이후로 세계정신분석학회(IPA)의 후원하에 신경과학과 정신분석학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0년에는 뉴욕에 거주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제안으로 그녀의 작품 세계에 관한 에세이를 집필하기도 했다. 2012년에 출간된 이 책은 여러 차례에 걸쳐 행해진 강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출간 즉시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역자 : 장혜경
역자 장혜경은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독일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 『나는 왜 너를 선택했는가』, 『바보들의 심리학』, 『사랑의 코드』, 『피의 문화사』, 『오노 요코』, 『누구나 혼자입니다』,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방황의 기술』, 『마지막 사진 한 장』, 『해적당』, 『권력의 언어』,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백일야화』, 『사물의 심리학』, 『어떻게 일할 것인가』 『날것의 요리, 매혹의 요리사』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

1부 정체성 형성 과정이 달라졌다

1장 정체성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체성이 있는가
정체성은 동화와 분리라는 양 극단의 긴장지대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우리의 뇌가 아니다
가족 서사와 민족 서사
자존감과 자기혐오
우리가 습득하거나 습득하지 않은 가치관 및 규범들
공격성과 공포, 동일성과 차이의 균형
정체성은 이데올로기다

2장 윤리
자아실현에서 자기부정까지
고대의 윤리: 좋은 관습이 좋은 성격이다
기독교의 윤리: 인간은 철저히 나쁘다
급진적 프로테스탄트, 급진적 상인, 급진적 과학자의 탄생
초월성과 자기부정의 의미와 효과

3장 인간과 과학(학문)
불변성에 대한 믿음이 깨지다
유토피아의 꿈
진화를 진보로 착각하다
측정 가능성, 향상 가능성
종교의 기능을 물려받은 과학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개인의 진짜 본성을 만개시키는 계발

4장 본성이라는 신화
생물학과 유전학의 극단적 전용
본성이냐 양육이냐
윤리와 생물학을 제대로 이어보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긴장 혹은 균형
그렇다면 본성은?

막간
심리장애는 사회적인 것이다

2부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사회

5장 엔론 사회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들
새로운 서사: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그렇게 똑똑한데 왜 돈을 못 버니
경제의 옷을 입은 사회진화론
지식 공장이 된 대학
건강 기업이 된 병원
품질은 왜 이렇게 떨어지는가
사회적 결과들

6장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
광고와 언론의 메시지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
이전까지 도덕적 발달의 일반적 과정
공갈젖꼭지를 못 뗀 아이들
만들거나 부수거나
공동체 윤리가 사라진 곳에 계약서가 들어서다
개인과 조직 간의 부정적 사이클
새로운 인성의 특징
무기력한 자유로움

7장 장애를 대량생산 하는 사회
심리학자들은 왜 모두 의사가 되려고 하나
질병 모델이라는 지배적 패러다임
다시 심리장애는 사회문제다
양극화는 건강에 해롭다
심리장애가 실패의 증거이자 실패가 곧 심리장애인 사회
훈육이 치료를 대체하다
아버지의 실종과 콜센터의 증가

8장 좋은 삶
지배자의 권력과 일하는 사람의 권한을 구분하라
효율성과 행복을 모두 고려하는 노동환경
양적인 평가보다 질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우리가 변하는 수밖에 없다
딥 프레임을 건드리면 행동도 바뀐다
자기배려를 이기심과 구분하기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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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도대체 요즘엔 왜 이렇게 싸이코가 많을까?” 정신분석학의 대가가 파헤친 신자유주의 경제의 심리적 부작용들 이 시대에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열려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단연코 이 책은 우리를 환영에서 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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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요즘엔 왜 이렇게 싸이코가 많을까?”
정신분석학의 대가가 파헤친 신자유주의 경제의 심리적 부작용들


이 시대에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열려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단연코 이 책은 우리를 환영에서 깨어나게 해줄 강력한 해독제가 될 것이다. _맹정현(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패러다임』)

아도르노와 동료들은 ‘권위주의적 인성’을 해부함으로써 무엇이 파시즘을 가능케 했는지 밝혀주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인성을 어떻게 해부할 것인가. 파울 페르하에허는 그 과제를 떠맡는다. 이 책은 정치적인 올바름에서 새로운 인종주의까지 우리를 휘젓는 은밀한 광기를 총체적으로 조감한다. _서동진(사회학자,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읽는 내내 지금 우리 사회가 닥친 문제를 거울로 비추어주는 듯해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요새 사람들은 왜 이런지 답답하고 궁금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_하지현(정신과 전문의,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점점 더 많아지고 잔혹해지는 심리장애의 징후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왕따에서 묻지마 살인, 총기난사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전의 공격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심리적 증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그 원인을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우리의 정체성 형성 과정, 인성 발달 과정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데서 찾는다. 철학사와 윤리학사, 종교사에서부터 뇌과학, 동물행동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언론 기사들과 개인적인 체험을 오가며 명쾌하게 입증해낸다. 그리고 이것이 왜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 ‘내 아이의 일’인지 섬뜩하게 납득시킨다. 또 이를 극복할 개인적이고도 공동체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우리는 인간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경제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

최근 심리적 문제의 양상들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 더 심각해지고 더 다양해지고 더 많아졌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지는 사실이다. 이전보다 더 고비용의 보육과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공격성과 부적응을 보인다. 모범생으로 분류되던 아이가 교실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일이 일어나고, 왕따와 이지매가 발생하는 연령대는 점점 낮아져 이제 유치원에서도 폭력 문제를 고민할 정도다.
게다가 이런 심리적 문제의 파장은 대단히 폭넓게 사회 전반을 아우른다. 육아는 놀라울 정도로 편리한 발명품들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직원들은 직장에 대한 만족도나 충성도가 이전보다 떨어진다.(‘팀 정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많은 경영기법들이 개발되고 적용되지만, 실제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형편없이 팀웍이 떨어지고 잘해야 같이 시스템을 욕하는 정도에서 동료애를 확인할 뿐이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소비재의 질은 점점 떨어진다. 외식업계와 식품업계가 온갖 메뉴를 개발하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적어지고 비용도 점점 비싸진다. 문화상품들은 큰돈을 투자해 겨우 ‘추억팔이’를 하는 데 만족하고, 자잘한 방송 사고와 신문기사의 오류들은 점점 많아지며, 책 속 오역이나 오탈자들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근본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웬만해선 사회 비판적 언급을 자제하는 저명한 정신분석가가 입을 열었다. 파울 페르하에허는 특히 ‘엔론 사회’라는 이름으로 직장과 학교와 병원에서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이 변화들은 줄여서 ‘신자유주의화’라고 부를 수 있고, ‘수량화와 성과주의(능력주의)의 도입에 따른 질적 퇴보’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교육, 학문, 보건 제도처럼 간단히 효율성을 평가할 수 없는 분야를 간단히 평가하려고 하면서 생겨나는 문제들은 아주 치명적이다.
학교에서는 연구자나 교수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지만 연구는 점점 더 부정확해지고 실험 결과 조작 같은 문제들이 야기된다. 정신 보건 업계에서는 유전학과 뇌과학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심리학자들이 모두 의사가 되려고 한다. 또 그런 과학적 권위를 앞세워 장애를 대량생산해내고, 내담자들을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훈육이나 약물처방을 남용한다.

플랑드르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집에서도 ‘발달 목표’를 정한다. “아이들이 갖추어야 할” 일련의 기본 자질이란다. 최근 내 친구는 어린이집 교사한테서 아이의 ‘가위 쓰는 능력’이 기준에 못 미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판결은 젊은 부모들의 공포심을 유발시킨다.(179)

동전에는 뒷면이 있다. 이 시대의 동전에도 피할 수 없는 이면이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는 현실이다. 열 살만 되어도 벌써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향후 정체성은 패배감 위에 세워진다(179)

연구자의 수업 능력과 참여도를 다방면에서 살펴보던 평가 방법이 불과 15년 만에 결과물, 요샛말로 ‘아웃풋’을 계산하고 평가하는 방식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평가에서 제외하고 그냥 포기해버린다. 교육과 사회적 유용성 같은 측면은 의미를 잃고, 중점은 거의 연구와 ‘프로젝트’ 쪽으로 옮아가 버렸다. 연구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온 출판물의 숫자만 중요하다. 그마저 자국 언어로 쓴 논문은 쳐주지도 않는다. 국제적인 출판물만 가치를 인정해준다. 여기서 ‘국제적’이란 ‘영어권’의 완곡어법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젠 ‘영어’만으로도 안 된다. 소위 ‘A1 저널스’로 불리는 한 줌의 최고 잡지들만 인정이 된다. 현재 국제적인(즉 앵글로색슨의) 요강은 이러하다. 학자들은 최고 랭킹의 잡지에서 득점을 해야 한다! 그사이 최신 기준이 보급되면서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최고의 학자는 제일 많은 연구 지원금을 확보하는 사람이며, 특허권도 제시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교육과 경제의 결합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143)

역설적이게도 이런 종류의 품질 감시는 네덜란드의 슈타펠 사건에서 독일 대학들의 박사학위 사기 사건에 이르기까지 엔론과 똑같은 거짓과 위조를 몰고 온다.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 교수 디데리크 슈타펠은 방대한 경험 연구와 최고 잡지에 발표한 수많은 논문 덕분에 최근까지만 해도 자기 전공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연구 대부분이 위조로 밝혀졌고 거의 모든 신문이 논문 발표에 대한 과도한 압박감과 살인적인 경쟁을 이 사건의 원인으로 꼽았다. 또 2009년 8월에는 독일에서도 박사학위를 둘러싼 대규모 사기극이 적발되었다. 여러 대학에서 약 수백 명의 교수가 연루된 사건이었다. 많은 대학 교수들이 이렇게 발각된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큰 소리로 털어놓지 못한다. 이런 구체적인 조작 말고도 더 큰 문제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가 부정확한 것이다. 이 역시 경쟁과 출판의 압박에 따른 것이다. 학자들은 곰곰이 고민하고 깊게 파고들 시간 여유가 없다. 스탠퍼드 대학의 유명한 전염병학자 존 이오애니디스는 2005년 「왜 출판된 연구 결과들이 대부분 위조인가」라는 획기적인 논문을 썼다. 그리고 2011년 4월 네이메헌 라드바우드 대학의 강연에서는 6년이 지났어도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144~145)

모든 직원들은 절약하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다. 하지만 정작 엄청난 돈이 쓸데없는 일에 낭비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다. 새 이름과 그에 걸맞은, 하지만 누구도 믿지 못할(“우리는 당신을 위해 여기 있습니다!”) 슬로건을 생각해낸 자문 위원, 혹은 새로운(전문가들에게서 절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뿐더러 비용도 예상보다 두 배는 더 들 거라는 경고를 받은) 회계 프로그램을 개발한 자문 위원에게 포상금이 쏟아진다. 최고의 간병 인력, 중점 연구, 전문가 집단 같은 미사여구를 폭탄처럼 쏟아붓는 것도 이들의 증상 중 하나이다. 정신과에선 그런 식의 증상에 나르시시즘적 인격장애라는 진단을 내린다.(151)

심리학 전성시대와 과학주의 함정들

앞서 언급한 심리학 분야의 변화는 최근 10여 년 동안 시장 상황이 (그나마) 가장 탄탄했던 심리학 분야 출판물의 제목들을 훑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독해지라거나 내려놓으라거나 단순해지라는 등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훈육하는 책들이 많다. 문제는 개인에게 있으며 개인이 바뀌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심리학 책과 자기계발서의 경계는 허물어진 지 오래다.
이 책 역시 심리학 책이고 어떻게 하면 지금의 불균형 상태를 되돌리고 행복한 삶, 좋은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제안도 담고 있다. 다만 그러한 자기인식과 자기변화가 공동체의 자기인식이나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차이다.
사실 사회적인 측면을 외면하고 개인에 집중하는 책들이 사회에 대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요즘 사람들이 너무 책임감이 없고 게으르고 나약하다거나 혹은 너무 이기적이고 신경증적이라는 여러 불평불만은 ‘복지국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리로 곧잘 사용된다. 이는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사회보장 시스템을 보완하려 할 때마다 등장하는 고전적인 반대 근거다. 게다가 이런 논리는 과학적인 외피를 쓰고 있지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진화를 진보로 오독하는 사회진화론의 논리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정신 보건 분야에서 유전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다. 또 뇌과학을 통해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신경장애들 역시 제한적이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판단 자체가 사회적 규범과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는 연구들이 적지 않지만 이미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과학주의라는 믿음을 깨뜨리기는 어렵다.
특히 과학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최근 심리학과 인문학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라고 부르는 교육 능력주의와 경제 능력주의의 결합은 ‘그렇게 똑똑한데 왜 돈은 못 버니?’라는 빈정거림으로 요약된다. 수량화 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성공, 즉 물질적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들은 모두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지성적’이라는 말은 욕설이나 다름없다고 일갈한다.

과학주의의 진실은 종교의 진실보다 토론을 덜 허용하며 과학주의자와의 토론은 종교인과의 토론보다 더 가망이 없다는 폴란드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말은 이 지점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소위 비판적 사고라는 명분을 내건 과학주의자들이 학문에 접근하는 일체의 다른 방식을 참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84)

이제 인간에게는 자신을 경험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고 심리학은 진짜 진정한 원초적 자아 같은 개념들을 남발했다. 안타깝게도 집에서는 자기 체험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기에 인도나 네팔 같은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곳까지 갈 형편이 못 되면 심리치료의 대안적 형태들과 결합된 각종 ‘의식 확장 기법’들을 이용하면 된다.(86)

새천년이 시작될 즈음 ‘자기 자신의 경험’은 ‘자기 자신의 창조’가 되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젊은 몸이다. 최신 트렌드(피트니스에서 줌바까지)를 놓치지 않으려면 피트니스클럽으로 달려가야 하며, 그래도 안 되면 보톡스와 성형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영원한 젊음과 섹시한 몸이 메시지이고, 서른 번째 생일은 재앙과 동의어이다. 이 시기엔 특정한 심리장애도 급증했다. 자해와 섭식장애, 우울증, 인격장애 같은 것들이다. 앞의 두 장애는 몸과 관련이 있고 뒤의 두 장애는 정체성과 관련된다.(86)

물론 몇 가지 심리장애에선 유전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많건 적건 입증이 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뺀 나머지 장애는 아무도 원인을 알 수 없다. 차라리 점쟁이한테 물어보는 편이 낫다. 더구나 심리적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항상 ‘비정상’의 의미를 암시한다. 즉 규범, 그것도 사회규범에서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준을 도외시한 채 심리의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를 밝혀냈다는 실험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전문용어로 말하면 생물학적 표식이 없는 실험이다. 그런데도 신경생물학과 두뇌에 대한 현재의 과민반응은 이런 현실을 외면한다.(117)

이런 형태의 원치 않는 친밀함은 주로 미국 의료 산업의 전략이다.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기사를 가장한 광고를 일간지에 싣거나,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의료 상담 프로그램을 맡거나(발기부전이라고요?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사이비 환자 협회를 결성하여 버스의 광고판을 돈을 주고 빌린 다음 특정 ‘장애’와 특정 의약품에 대중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당연히 우리의 건강에 해롭다. 최소한 우리 모두 조만간 집단 우울증 환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 것도 다 이런 이유 탓이다.(148)

내 전공 분야(심리진단학과 심리치료)는 불과 몇 십 년 만에 180도로 달라졌다. 진단 기준이 사회규범의 일탈 여부로 바뀌는 동안 치료의 목표로 다시 규범의 준수를 강요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증상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바로 인식의 변화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장애인이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진리에 더 근접한 사람이었다. 2008년에 나온 영화 「레벌루셔너리 로드」만 봐도 진리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입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요즘 환자들은 장애인일 뿐 아니라 철저히 위험하다. 노르웨이의 테러 사건 주범 브레이비크가 대표적인 모델이다.(222)

하지만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사고 모델은 이런 연구 결과를 불문에 부치고 원인 대신 이 현상의 결과에만 관심을 보인다. 구체적으로 말해 규범을 위반하고 장애 증상을 보이는 위험한 타자들, 정신병 환자, 마약쟁이, 청소년, 실업자, 외국인들만 물고 늘어진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분야의 시장이야말로 요즘 제일 잘 나간다. 교육 자문, 보충수업, 심리치료, 가족 상담, 그리고 무엇보다 심리사회적 문제의 약품화가 문제의 현장이다. 이 모든 것들이 많은 돈을 벌어주는 사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장의 공통분모는 훈육이다.(223)

실제 오늘날 미국에서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정신병 환자보다 감옥에 수감된 정신병 환자의 숫자가 세 배는 더 많다. 1840년대 수준으로 돌아간 셈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규범화와 훈육은 정신의학에 내재한다. 정신의학의 진단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늘 이런 평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정신의학이 더 많은 것을 제공해야 하느냐이다. 나는 심리진단학 강의를 할 때 소위 ‘법적’ 심리 진단과 임상 심리 진단을 구분한다. 전자는 집단과 사회의 보호에 기여한다. 필요한 경우 개인에 맞서 집단을 보호한다. 노르웨이 테러범 브레이비크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후자는 개인의 보호에 기여한다. 필요한 경우 사회에 맞서 개인을 보호한다. 제멜바이스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둘 다 필요하기에 임상학자들은 정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목표를 결합하기가 언제나 용이하진 않기 때문이다.(226)

정체성과 윤리와 행복과 좋은 삶은 무슨 관계일까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 황우석 사건과 같은 연구 결과 위조, 최근의 폭스바겐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모범생으로 분류되던 중학생의 교실 폭발물 설치, 온갖 증오범죄들, 묻지마 테러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오늘날, 이런 사회 현상들을 가로지르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고민하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윤리와 정체성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정체성’이라고 하면 오래 전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서 혹은 대학 때 교양 심리학 교재에서 본 것을 끝으로, 혹은 육아책(발달심리학)에서 본 것을 끝으로, 이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지 오래인 독자들이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체성’의 문제는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현실의 여러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 늘 호출해야 하는 평생의 과제이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쓰인 글귀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고양된 자기인식 없이는 어떤 사회적 과제도 담당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오랜 지혜를 담고 있다. ‘정체성’의 뜻을 제대로 회복시키는 것은 ‘윤리’의 의미를 회복시키는 것이나 거의 비슷하게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이 책에는 웬만한 부모들, 교육자들에게 유익한 실용적인 조언이 가득하다. 교과서에 나오는 발달이론이 오늘날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 변화된 정체성 형성 과정이 어떤 문제들을 가져오는지 생생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애착과 분리의 이론과 현실을 이렇게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정리한 육아책은 만나기 쉽지 않다.
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윤리관부터 기독교적 가치관, 계몽주의의 가치관, 기독교 체제의 해체 이후에 나타났지만 종교보다도 완고한 데이터에 대한 맹신을 불러온 과학주의의 발흥, 그리고 진화를 진보로 오독하고 사회 진보와 개인의 계발을 부추기는 새로운 다윈주의의 득세에 이르기까지 수 페이지 안에 일필휘지로 윤리의 역사를 일별하는 저자의 내공은 놀라울 정도다.
저자가 좋은 삶을 위해 제안하는 것들은 새롭지는 않다. 이기심과 구분되는 자기배려에 집중하기, 일하는 사람의 권한을 지배자의 권력과 구분하고 인정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결핍’을 ‘의미’로 바꾸기 위해 (학문이든 예술이든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온갖 창의적이고 끈질긴 노력을 기울이기. 인간의 조건을 끌어안는 이런 전통적인 방법이야말로 지금의 시스템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삶을 힘들게 하는 온갖 구질구질한 규정들 탓에 우리는 윤리의 원래 의미를 놓치고 있다. 정확히 말해 규범과 가치는 자신의 신체 및 타인의 신체를 대하는 방식이다.(49)

지금과 같은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에 도덕적 비판을 포함한 가치만단이란 모두가 애당초 의심스럽기에 그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49)

아이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올바른 결정을 배우는 과정에는 부모 외에 다른 규범과 가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수많은 책과 영화의 주제가 되는 그 유명한 ‘어른 되기(coming of age)’를 지원한다. 동시에 이런 책과 영화는 거꾸로 청소년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건 어려워, 저건 재미있어. 이런 실수는 할 수 있어. 이건 검고 이건 희지만 둘 사이엔 찬란한 무지개 색깔들이 있어. 이런 과정들을 거쳐 양육은 교양(Bildung), 즉 교육과 문화적 성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풍성한 문화일수록 동화의 팔레트는 더 넓다. 여기서 중요한 요인은 지식이지만, 도덕적이고 실존적인 결정이 뒤따르기 때문에 순수 자연과학적 지식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지식이다. 고대 그리스의 지혜(Phronesis)에 더 가깝다. 절대적인 대답이나 보편적 해결책은 어리석음과 공포의 다른 이름이다.(167)

부모와 가족의 영향력은 예전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이가 잘못되면 여전히 화살은 부모에게 돌아간다. 거기에 광고로 뒤덮인 언론은 올바른 제품만 사면 모든 욕망이 충족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쉬지 않고 송출해댄다. 이렇게 권위는 사라지고 환경은 광고로 뒤덮이니 아이들을 다루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다.(168)

내가 성숙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교육은 때가 되면 언젠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에 도달한다. 내가 약간 비장한 마음으로 ‘결핍’이라 부르고 싶은 힘든 상태를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순간이다. 엄마가 항상 옆에 있지는 않고 아빠도 슈퍼 대디가 아니다. 설사 부모가 곁에 있어도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애정을 갖고 자식을 대한다 해도 필연적으로 실망하는 순간이 온다. 어떤 현실도, 어떤 제품도 우리의 욕망과 욕구에 대한 완벽하고 확정된 대답은 줄 수 없다. 교육의 질은 한 아이가 이 피할 수 없는 실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171)

이런 실존적 문제들과 마주치는 순간 전형적인 인간의 특징이 고개를 들이민다. 가능한 모든 대답을 생각해내는 창조성 말이다. 인간은 집단일 때도 창조성을 발휘한다. 따라서 결핍의 해소를 위해 점점 더 큰 단위가 형성된다. 이중에서 종교와 예술이 가장 오래된 형태이며, 학문이 가장 최근의 형태이다. 물론 이 단위들 중 무엇도 최종 해답을 줄 수는 없다. 때문에 우리는 계속하여 대답을 찾는다. 결핍 상황에 대한 확정된 대답이 없다는 인식은 물론이고, 그럼에도 대답을 찾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성공한 교육의 징후이다. 부모가 자신들이 줄 수 있는 것에는 물질적인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모든 소망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식에게 가르친 것이다. 우리가 받거나 주는 것은 결코 최종 답변이 아니다. 라캉이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내렸다. “사랑은 갖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이다.”(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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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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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부 : 정체성 형성과정이 달라졌다   1. 정체성   "시간을 초월한 정체성이 있는가?" &nbs...

    1부 : 정체성 형성과정이 달라졌다

     

    1. 정체성

     

    "시간을 초월한 정체성이 있는가?"

     

    정체성은 존재보다 성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고, 성장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탄생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공포가 분리의 공포, 타인이 궁지에 빠진 우리를 모른 척하고 내버려둘지도 모른다는 공포이며, 가장 오래된 형벌이 추방, 집단에서 배척당하고 외면당하며 구석에 처박히는 것인데 이 역시 우연이 아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Friedrich Hegel)이 자의식의 기초가 타인의 시선에 있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우연은 아닌 것이다. 통제의 시선이건 사라으이 시선이건 타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사랑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발을 딛고 설 땅이 없다. 자신을 쌓아갈 수 있는 토대가 없다. 반대로 사랑의 시선을 받고 자란 아이는 안정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뇌가 아니다.

    우리는 뇌(조금 더 넓게 보아 유전자, 신경, 호르몬의 기초)와 우리 환경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이다.

     

    유전자는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소프트웨어의 특수한 내용과는 상관없이) 조절하고 제한하는 우리의 하드웨어라고 볼 수 있다. 정체성과 관련된 유전자 하드웨어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분명 인간의 특징인 언어 능력일 것이다.

     

    뼈아픈 소리지만 부모는 모든 자식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이를 알아차린다.

     

    자신감, 자존감 같은 특성의 발전을 되짚어보면 원래는 그것이 '타인의 신뢰', '타인의 존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타인에게서 받았던 신뢰와 존중의 정도는 성인이 된 우리의 자신감, 자존감에 반영된다. 또 타인을 대하는 나의 행동도 결정한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동안 내가 배웠던 꼭 그만큼만 나는 자신감이 있고 타인을 신뢰할 테고,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 우리와 너무 닮았으면 우리는 거리를 두고 싶고 달라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상대가 우리와 너무 다르면 그를 우리에게 맞추고 싶어지거나(통합), 반대로 그를 따라 하고 싶어진다.("If you can't beat them, join them.")

    이런 동일성(동화)과 차이(구분)의 게임은 그 무엇보다 강하게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다른 집단(다른 타인들)으로부터 등을 돌릴수록 내 집단(같은 타인들)에게 느끼는 소속감은 더 강해진다. 집단의 결합력이 사라지면 정체성은 약해지고 혼란스러워지며 자기 집단 내의 같은 타인을 향해서도 점차 공격성을 키워간다. 정치가들은 본능적으로 이를 이용한다. 국가가 불안하면 외부의 적을 만들고 이를 통해 다시 대오를 정비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정체성을 둘러싼 모든 논란의 당사자들은 동일성과 차이의 필수적 균형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을 최대한 똑같이 만들고 싶은 사회는 최대한 큰 차이를 만들려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전자) vs 현재 유럽 사회체제(후자)

     

    가장 중요한 결론 : 정체성은 항상 '당사자'와 넓은 환경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산물이요 구조이다.

     

     

    2. 윤리

     

    삶을 힘들게 하는 온갖 구질구질한 규정들 탓에 우리는 윤리의 원래 의미를 놓치고 있다. 정확히 말해 규범과 가치는 자신의 신체 및 타인의 신체를 대하는 방식이다.

     

    고대의 윤리 : 좋은 관습이 좋은 성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ethos), 즉 관습을 에토스, 즉 성격과 결합해, 좋은 성격의 원천은 좋은 관습이라고 보았다. 즉 윤리는 인간의 본성에 있다는 생각이다.

     

    고대에는 윤리를 고유한 성격의 발달, 즉 자아실현과 동일하게 보았다. 이런 본질주의적 인간관은 개인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기독교 시대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윤리는 밖에서, 신의 심급에서 우리에게 부과되는 것이다. 공동체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그리스 시민 쪽에서 내세의 구원을 바라며 스스로 고행을 택하는 신심 깊은 기독교인 쪽으로 바람직한 인간상이 이동한 것이다. 자아실혀닝 자기부정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기독교의 윤리 : 인간은 철저히 나쁘다.

     

    칼뱅파는 직접 신을 향하고 학자들은 직접 자연을 탐구했다.

    칼뱅파와 과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자기 단련은 이상하게도 양쪽 모두에게서 인간적 요소를 몰아냈다. 종교는 인간의 상을 투영하지 못하게 했고 과학 역시 엄격하게 객관적이고자 했다. 두 경우 모두 자기부정이 필요했다. 과학은 객관적 인식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종교는 신의 진실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말이다. 종교와 과학의 공통점인 유일한 '자기인식'은 인간은 나쁘고 더럽고 주관적이라는 진실이었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종교는 도덕적 힘을 잃었고 이제 과학이 방향타를 잡았다. 사람들은 낙관론에 젖어 이런 변화가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이성에 기초한 다른 규범과 가치를 낳을 거라고 생각했다.

     

     

    3. 인간과 과학(학문)

     

    '적자생존'은 다윈의 진화론을 상당히 쓰기 좋은 말로 바꾸어 사회에 적용한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말이다.

     

    다윈이 말한 적자(fittest)는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자였다. 그런데 스펜서를 거치면서 "가장 성공한", "가장 강한" 자로 의미가 변했다. 특정 집단이나 계급은 다른 것들보다 더 강하고 모든 것을 습득한다. 더 약한 것들은 점차 멸종하는데, 이는 세계의 자연적 흐름에 부합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사회의 각종 폐해는 사회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질병, 그중에서도 '악성 종양'이며,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싸워 무찔러야 하는 '기생충'이다.

    이런 단순회된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종양 같은 질병을 막는 비법은 명확하다. 약한 집단은 방해물이며, 심지어 전염의 위험까지 있으므로 자연도태를 통해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한다. 사회진화론의 실행판이라 할 우생학은 그렇게 탄생했다.

     

    19세기 이후 사회진화론은 인종주의와 권력 남용의 과학적 변명으로 이용되었다. 제국주의가 가장 대표적이다.

     

    사회진화론이 인용하기 좋아했던 토머스 맬서스(Thoma Malthus)가 영국 경제학자였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맬서스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번식을 못하도록 사회복지 제도를 없애라고 주장한 학자였으니 말이다. 맬서스의 영향 아래 영국에선 1834년 '빈민법'이 가결되었다. 가난을 도덕적 나약함으로 정의한 법이었다.

     

    오늘날의 과학(학문)은 과도하게 이성적인 뾰족귀 미스터 스팍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모든 열정이 제거된다. 학문(과학)이란 가치와 무관하며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공식 독법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주의는 둘 다 개인에게 분열된 정체성을 안겨준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쁘고 죄고 많다. 혹은 비합리적이고 우매하다.

     

     

    4. 본성이라는 신화

     

    계몽주의는 아주 중요한 새로운 견해를 발전시켰다. 변화가 가능하며, 가회는 만들 수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을 밟아가는 인간은 매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견해말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개인의 형성(계발) 가능성이 전면으로 부각된다. 기준은 경제적 성공이다.

     

    포르노 영화를 볼 때는 경제적 모험에 뛰어들 때와 같은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 그래서 성적으로 흥분한 남자들이 도박에 더 많은 돈을 거는 것이다. 카지노에 미녀들을 배치해두는 이유이다.

     

    신자유주이가 최신 버전의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프란드 드 발(Frans de Waal)은 <공감의 시대(The Age of Empathy)>에서 신자유주의가 일방적으로 생물학을 제멋대로 전용한다고 주장한다.

     

    추방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숲에서 고독하게 사는 고귀한 야만인 이미지는 낭만적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장면

     

    두 원숭이에게 같은 과제를 주고 같은 '상'(오이)를 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쪽에게는 더 맛난 음식(포도)를 주고 다른 한쪽에게는 똑같이 오이를 주면 후자는 협력을 거부할 뿐 아니라 오이까지 맏지 않는다.

    공평하지 않은 분배는 거부를 당한다. 원숭이는 똑같은 일을 하고 남보다 더 적게 받을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받지 않는 쪽을 택한다.

     

    원숭이들은 서로 나누고 서로에게 선물도 하지만, 분명 그들의 자선에는 한계가 있다.

    동료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교환 의지도 줄어든다. 컴퓨터 앞에 앉아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매우 불리한 결정을 내리라고 하면 눈에 보일 때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로 그렇게 한다.

     

    최후통첩 게임

    두 명이 참가한다. 한 사람이 돈의 분배를 결정하면 상대는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거부하면 둘 다 빈손이 된다. 양쪽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돈을 나누어 갖기만 하면 된다. 이 실험에서 두 번째 참가자는 상대가 자신보다 월등히 많은 돈을 가져가려고 하면 제안을 거부했다. '공정하지 않다'느 이유에서였다.

     

    우리를 속인 상대가 고통을 느끼면 소위 말하는 쾌감 센터에 불이 들어온다. 남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좋아한다는 신경학적 증거다. 게다가 이런 반응은 거의 남성에게서만 나타난다.

     

    공감은 실제로 사회관계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쇼펜하우어는 이성만이 윤리의 기초라고 주장한 다른 철학자들과 정반대로 공감을 윤리의 기초로 보았다. 사람들이 네게 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너도 다른 사람에게 하지마라. 이것을 인간의 성찰 능력,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살펴볼 수 있는 능력과 연관 지으면 이내 양심의 문제로 다가가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남이 무엇을 느끼는지 느낄 수 있다. "난 아무것도 몰랐어"라고 외치는 방관자들은 몰랐다기보다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런 변명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모든 정체성은 그것이 발달하는 공동체의 영향을 받으며, 따라서 이 특정 공동체 내의 전형적인 교환방식에도 영향을 받는다.

     

    일종의 집단 기억, 공유하는 잠재의식의 일부에 저장된 방향과 반응은 오늘날의 개인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집단 무의식을 프로이트는 우리를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상반된 기본 충동으로 인식한다. 바로 에로스와 타나토스, 즉 삶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이다.

     

    정체성은 대부분 환경에 의해 결정되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동체 동물이다. 또 인간의 진화롤적 유산에는 협력과 이기주의, 두 가지 성향이 모두 들어 있다. 어느 쪽이 우선권을 쥐느냐는 환경에 달려 있다. 모든 사회에선 교환이 중요하며, 식량과 섹스가 가장 중요한 교환 대상이다. 이런 교환을 규제하는 사회 규칙은 긴장의 축적과 해소의 균형을 꾀하는 신체 고유의 조절을 기초로 삼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는 타인과의 합일과 분리에서 볼 수 있는 균형과 똑같은 균형이다. 둘 다 우리 정체성의 기초를 닦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협력/긴장의 해소/타인과의 합일

    이기주의/긴장의 축적/타인에서 분리

     

     

    2부 :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사회

     

    5. 엔론 사회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 "개똥같은 세상에서 뒹굴어봐라"

     

    지금의 지구인들은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쁘다.

    우리의 한탄은 무엇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간이 무기력하다느 점에 집중된다.

     

    인간의 이성이란 불안한 직관을 덮는 얇은 칠에 불과하다.

     

    영국의 시어도어 달림플은 넘쳐나는 문제들이 다 응석을 받아주는 사회가 낳은 결과물이라고 한다. 특히 의료 부문에서 그런 현상이 심각하단다. "불평을 그치고 행동하라!" 이것이 그의 메시지이다.

     

    그들의 결론은 하나다. 옛날이 더 좋았어! 이런 생각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지를 절절히 깨닫게 된다. 특히 이런 기억이 오해를 기반으로 한 낭만주의와 결합될 경우 더 믿을 수가 없다.

     

    과거에는 경제가 종교, 윤리, 사회의 조직들로 이루어진 전체 조직에 끼어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선 그렇지가 않다. 윤리와 사회가 '시장'에 복종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이론으로 그치지 않는, 훨씬 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메리토그라시(Meritocracy), 능력주의!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원래 추구하던 바와 정반대 결과가 나타난다. 이런 실패의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 만인의 출발 기회가 동등하다는 가정인데, 이는 망상이다. 둘째 이 시스템은 자기 다음 차례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조심조심 문을 닫아버리는 새로운 엘리트들을 고용한다.

     

    경제능력주의와 교육 능력주의의 결합은 얼핏 보면 아주 매력적이고 이해하기 쉬워 보인다. 만인의 동등한 기회, 가장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큰 보상을 받는다!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발점이 다를 경우 이는 최종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경제 능력주의의 경우 기회의 균등은 완벽하게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경우 두 가지 출발점이 분리되지 않는다. 즉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 교육도 많이 받는다.

     

    사회진화론과 신자유주의 능력주의의 목표는 적자생존이라는 점에서 둘의 유사성은 쉽게 입증된다.

    최고에게 상을 주고 나머지는 추려 낸다. 사회진화론이 집단(백인이 우월하다.)에서 개인으로, 나아가 이기적 유전자로 강조점을 옮겨갔던 것을 상기해 보라.

     

    사회진화론과 신자유주의는 제일 잘 태어난 인간에게 살짝 더 이익을 얹어주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한다. 사회진화론도 신자유주의도 무엇을 적자로 볼지, 그리고 (실로 중요한 점인데) 어떻게 적자를 측정하는지를 자신들이 결정한다. 실제로 이들은 점점 더 그들 스스로가 정의한 제한된 현실을 만들어내면서도 '자연의 승자'를 지원한다고 우긴다. 그런 다음 승자에게 체계적으로 이익을 주어 이들이 꼭대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이런 '현실'을 구조적으로 정당화한다. 게다가 이 시스템의 옹호자들은 승자가 꼭대기에 있는 것이 자기 논리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확신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위 증거에 입각한 '자연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다. 처음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이 등장했고, 뒤를 이어 나머지 세상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이 등장했다.

    이들이 열등하다고 굳게 믿었던 백인 남성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들을 착취할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이다. 또 그런 실수를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회진화론의 출발점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떤 사회 형태가 최선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런 사회를 일굴 수 있을까?

    예전에는 한 사회 내에서 정치, 종교, 문화, 경제가 다소 동등하게 공존했다. 지금은 전 인류가 강요된 단 하나의 현실에 복종한다. 이름하여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다.

     

    엔론 모델이란 최고의 생산성을 올린 직원에게 보너스를 몽땅 몰아주고 생산성이 제일 낮은 직원은 해고하는 사회진화론의 실행 방안이다.

    미국의 대기업 엔론이 20세기 말 '등수 매겨 내쫓기(Rank and Yank appraisal system)'라는 이름으로 이 모델을 도입했다.

    연말에 하위 10%를 해고했다. 물론 해고하기 전에 공개적으로 모욕을 준다. 이름, 사진,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기업 사이트에 공개하는 것이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최단 기간 안에 거의 모든 직원이 수치를 조작했고 회사 전체에 공포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이미 실패했고 범죄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엔론 모델은 도처에서 이용되고 있다.

    '랭크 앤드 양크(Rank and Yank)' 혹은 '20/70/10룰'이라고 치고 5분만 검색을 해보면 충분하다.

     

    변화의 초기엔 후보의 수업 능력과 출판, 강연, 회의 경력 등으로 입증되는 사회적, 문화적 참여도가 성패를 좌우했다. 대학은 역동적인 환경으로 변했고, 젊은 강사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노력이 존중받는 세상이 왔다고 흡족해했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는 채 한 세대를 넘기지 못했다. 오늘날의 젊은 학자들은 자신의 경력을 자신이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행정의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친 듯이 일하지만 일하는 재미는 없다. 자기가 일하는 대학과 일체감도 없는 데다 동료 의식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원인은 능력주의 평가 시스템이 신자유주의 평가 시스템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내가 신자유주의라고 굳이 명시한 이유는 그 평가 시스템이 생산의 양적 측면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A1 저널스' 학자들은 최고 랭킹의 잡지에서 득점을 해야 한다!

     

    오늘날의 학문 세계에서는 모두가 익명의 글로벌 감시자에게 속박되어 있다. 이 감시자가 앞에서 말한 최고 잡지의 얼굴을 하고서 높은 말 잔등에 앉아 만인을 감시하고 처벌하고 줄을 세운다. 그러니 누구도 저항할 수 없다.

     

    스탠퍼드 대학의 유명한 전염병학자 존 이오애니디스는 2005년 '왜 출판된 연구 결과들이 대부분 위조인가'라는 획기적인 논문을 썼다.

     

    모든 '사장 관계자들'처럼 병원 역시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분야를 선택하고 수익이 낮은 업무에선 손을 떼버린다.

     

    하향식 경영의 확대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중요한 특징이다. 신자유주의 조직은 항상 비생산적인 상부 계층을 만들어 낸다. 이들의 최우선 업무는 다른 이들을 통제하면서 자기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규제가 봇물처럼 늘어난다. 실적 평가는 '투명성'이라는 꼬리표를 좋아한다. 판단 기준이 명확히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만 평가의 대상일 뿐 평가를 하는 사람들 자신은 평가에서 비켜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런 평가의 투명성을 비판한다. 사무실의 유리벽을 통해 누구나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지만, 바우만이 보기에 이는 한쪽에서만 보이는 유리창이다.

     

    그런 조직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통제 시스템 및 무겁기 짝이 없는 관료주의와 결합한 과도한 규제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결합은 창조성과 생산성에 치명적이다.

     

    마크 데스메트는 '한 의사의 공개 편지'에서

    첫 번째로 비판하는 대상은 반복되는 구조 개혁에서 최신 컴퓨터 프로그램과 새로운 업무 계획의 도입을 거쳐 다른 병원의 '합병'이나 서비스 통합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되는 변화이다.

    이는 곧바로 두 번째 문제를 낳는다. 지속적인 평가의 대상은 구조 개혁이 아니라 직원 면담, 감사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평가를 받는 직원들이다. 이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는 것이 쾌적한 업무 환경이다. 팀 정신이 사라진 부서가 한둘이 아니다.

    세 번째 문제. 행정, 관리, 통제가 점점 부각되면서 정작 핵심 업무에는 관심을 쏟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환자가 한 사람도 없으면 병원은 제일 잘 돌아갈 것이다. 환자와 학생은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너무나, 정말로 너무나 많이 잡아 먹는다.

    네 번째는 '용기를 꺾는 모순들'로 요약된 현상이다. 모든 직원들은 절약하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하지만 정작 엄청난 돈이 쓸데 없는 일에 낭비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다. 회계 프로그램을 개발한 자문 위원에게 포상금이 쏟아진다.

     

    평가 시스템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실적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다.

    특이하게도 이런 평가 시스템은 대부분 익명의 중앙에서 하달되며 외부의 '태스크 포스'와 '자문 위원'들이 만들어낸다. 자신들이 평가하려는 공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는 사람들이 말이다.

    병원은 갑자기 '건강 기업'으로 변신하고, 대학은 노동자 학자들이 최대한 많은 논문을 생산해야 하는 '지식 공장'으로 탈바꿈한다.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이 두 가지 형태의 유전을 결합해 돈과 결합된 학위를 중시하는 새로운 정적 사회를 가동한다. 상류층은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성실하게 방어할 뿐 아니라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확장해 나간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 중산층이 자취를 감추고 다수의 하류층을 디딤판으로 삼아 소수의 상류층이 혜택을 누린다. 사회관계는 날로 공격적으로 변한다. 소수의 상류층은 하류층을 경멸한다. 하류층이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은 다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잘못'이란 참여 결핍, 재능 결핍이다. 상류층이 혹시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는 반드시 자선의 형태를 띤다. 상류층이 보기에 하류층은 도와줄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회진화론이 부상하던 시대와 유사하게 19세기의 또 다른 원칙이 부활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바로 자선 사상이다. 부자는 가난한 자늘에게 선물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은 계속 가난해야 한다. 도움은 물질적 궁핍을 줄여주는 데 국한된다. 사회적 해방은 절대 안 된다. 자선 사상은 사회문제를 빈곤의 문제로 바꾸어 정의한다.

     

     

    6. 새로운 시대의 정체성

     

    환경이 결정적이지만 개인의 판단과 책임의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치를 좋아한다. 예의가 없고 권위를 무시하고 어른을 공경하지 않으며 일은 안 하고 수다만 떤다.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큰소리만 치며 스승을 거역한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그러나 유사 이래 한탄의 핵심은 똑같다. 요즘 젊은 것들은 규범과 가치를 모른다. 이런, 큰일 났다. 세상이 망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은 곳에 숨은 의미는 조금 더 가슴이 아프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그래서 쫓아갈 수 없다. 젊은 아이들은 나와 다르다.

     

    교양(Bildung), 교육과 문화적 성숙

     

    조직의 일부라는 느낌이 없는데 뭐하러 애쓴단 말인가? 사방에서 자신의 성공이 만물의 척도라고 말하는데, 뭐하러 사회적 의무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과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만 하면 된다. 공동체 윤리의 자리엔 계약서가 들어선다. 점점 더 많은, 점점 더 불리한 규정들을 담은 계약서다.

     

    능력주의를 통해 크게 고무되었던 소속감은 이제 완전히 실종되었다. 더구나 노동 인력을-기업 안에서도-'프로젝트'별로 고용하기 때문에 계약 연장의 희망을 품고 다들 처음부터 서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제한된 숫자의 '승자'에게만 보상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포와 질투를 불러온다. 당연히 팀 정신은 실종된다.

     

    연디감 대신 보편적 불신이 지배하다 보니 충성심과 소속감마저 고용주가 투자를 해야 얻을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축구장에서 열한 개의 주식회사가 뛰어다닌다. 선수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다음 시즌엔 어디로 가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렇게 하여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보편적 이기주의라는 애초의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돈벌기에만 급급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이 현실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남은 배려해줄 필요도 없고, 심지어 남을 희생시켜도 된다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더 올바르다. "한 번 사는 인생, 뭐 어때!"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사회가 문제다.

     

    모두가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외쳐대는 사회에서는 굴욕감과 죄의식,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꼈던 적도 없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해도 좋다.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자유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전무하다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불합리한 온갖 규제가 넘쳐난다.

     

     

    7. 장애를 대량생산 하는 사회

     

    1975년에 나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런데 이 질병 모델을 정신의학에서 실제 적용할 때는 이상한 이동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집중력 저하와 행동 과잉 같은 증상이 질병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 질병 모델에 따르면 열이 높고(HF) 땀을 많이 흘리는(SS) 사람은 HFSS라는 진단을 받는다. 즉 그 가엾은 사람이 고열과 과도한 땀 분비에 시달리는 이유는 그가 HFSS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주의력이 떨어지고(AD), 행동이 과잉(HD)인 이유는 그가 AHDH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대식 버전의 질병 모델은 늘 과학적 설명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순환논법에 사로잡히게 된다.

    "ADHD환자는 학교에서 주의력이 부족하다." "조울증 환자는 감정기복이 심해 변덕을 많이 부린다." 같은 말이 그 증거이다. 증상의 설명을 한 현상의 원인처럼 제시하고, 다시 약어를 통해 이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사고방식)은 학문 역사에서 패러다임의 영향을 연구했던 토머스 쿤(1970)이 처음 쓴 개념이다. 미셸 푸코(1975)는 '담론'이라는 말을 썼다.

    현실이 패러다임에 맞지 않으면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라 현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한 국가, 심지어 한 도시 내에서 소득 격차가 클 경우 사회관계의 질이 다른 곳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진다. 공격성이 늘어나고 신뢰가 줄어들며 공포가 커지고 공동체 생활에 대한 참여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한 국가 혹은 한 지역 내의 소득 격차가 클수록 심리장애, 10대 임신, 영아 사망률, 가정 폭력 및 일반 폭력, 범죄, 마약 및 피임약 소비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불평등이 클수록 건강 상태, 교육의 결과, 사회적 유동성이 나빠지고 안정감과 행복은 줄어든다.

     

    성공이 정상적인 정체성의 판단 기준이라면 실패의 판단 기준은 장애 증상이다. 오늘날의 심리 진단은 다양한 형태의 실패를 반영하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사이비 과학이나 다름없는 '등수 매겨 내쫓기'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ADHD, 일반 행동장애, 공격적-적대적 행동장애, 실패에 대한 공포까지도 학교와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대부분 이런 진단의 판단 기준은 사회의 과도한 기대의 다른 표현이며, 결국 학교에는 두 종류의 학생만 남게 된다.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과 장애아들. '정상' 아동은 보기 힘든 희귀자원이 된다.

     

    '범주(category)'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카테고레인(kategorein)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놀랍게도 이 말은 공개적으로 죄를 씌우다라는 뜻이다.

     

    분류 체계가 결코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다. 모든 범주화는 암묵적이든 노골적이든 정치적·도덕적 의미를 띠는 서열화이다.

     

    '구조적' 이유로 해고된 사람들이 해고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는 광경을 목격했다.

     

     

    8. 좋은 삶

     

    정체성의 발달은 두 가지 기본 방향, 즉 타인과 하나가 되고 깊은 욕망과 자율을 지향하는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공동체 의식이 실종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부상한 주요 원인은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서로 반목하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오늘날의 경제 모델이다. 따라서 동일성과 차이, 공동체 의식과 자율성의 균형을 찾고 싶다면 오늘날의 노동환경을 바꾸고 경제를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상적인 노동환경은 경제적 보상을 남발하지 않는, 품질 평가에 기초한 능력주의 체제를 발판으로 삼는다.

     

    질적 지속성을 위하여 양적 성장의 이념을 최대한 빨리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성장 이념'은 '더 많이, 더 높이, 남들보다 높이'를 추구하는 자연의 사다리가 물려준 최악의 유산일 것이다.

     

    정체성의 본질이 대부분 애정 생활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둥이 있다. 바로 직업 정체성이다.

     

    장인정신(craftmanship).

     

    자유시장은 구호일 뿐 신자유주의 조직은 생산성 향상과 경쟁을 목표로 쉬지 않고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중앙의 엄격한 정책을 통해 작동한다.

     

    독일기자 귄터 빌라프의 위장 잠입 취재 '멋진 신세계(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우리나라 출간 제목)'

    인간답지 못한 대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느낌이 더 견디기 힘들다. 그러다 보면 인생의 패자가 된 듯하고 수치심이 들며 최대한 남들의 주목을 받지 않으려 하게 된다. 한때의 침묵하는 다수는 이제 자신들의 힘겨운 상황을 최대한 외부에 알리려고 하지 않는 고립된 집단 속의 보이지 않는 다수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다는 원칙"

    숫자가 주연을 맡는 평가의 연극은 노동의 만족도와 의욕, 충성심, 회사와의 일체감에 치명적이다. 나아가 일체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짓밟고 모욕감을 주고 자존감을 훼손시킨다.

    평가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항상 똑같은 논리를 들이댄다. 첫째 품질이 오르고 둘째 최고의 인재가 보상을 받게 된다는 논리이다.

     

    노동의 품질을 높이기는 커녕 오히려 떨어뜨린다. 결국 관료주의가 심해지고 정작 핵심 업무에 쏟을 시간은 점점 줄어들며 노동 압박은 날로 심해진다. 할당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에게 품질을 돌볼 여유가 있을리 없다. 경찰은 치안에 힘쓰지 못하고 교사는 수업에 신경 쓰지 못하며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시간이 없다. 결국 일하는 사람들은 의욕을 잃어버린다.

     

    '객관적 측정'은 망상이다.

     

    당연히 평가는 불가피하지만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특히 직원들에게 각자 맡은 일의 부분적 측면들에 대해 물어보는 질적 연구가 꼭 필요하다. 직원들은 직속 상사와 협의를 하여 목표와 기준을 정하고, 이 기준에 맞추어 성공이냐 실패냐를 판단한다.

     

    가장 먼저 만연한 냉소주의를 버려야 한다. TINA신드롬(There Is No Alternative).

    "이러고 살다 죽지 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자" 같은 식의 숙명론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합리적 요인보다 정서적 가치를 통해야 한다. 두뇌는 소용이 없다. 직관이 유용하다.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개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공동의 가치를 부각시킬 용기를 내야 한다.

    마초 같은 경쟁의식은 자기배려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즐겁지도 않다.

     

     

     

    옮긴이의 말

     

    사람의 세포는 매일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하여 7년이 지나면 내 몸의 세포가 깡그리 새 것으로 바뀐다는 과학적 지식.

     

    한마디로 나라는 것,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만든 것은 나를 둘러싼 세상이라는 말이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든 사이라는 소리다.

     

    끝 모를 무한경쟁, 개인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버리는 비인간적 계산법,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는 물신주의는 세상을 비인간적 자본주의의 극한으로 몰고 가고, 그 이념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도 완벽주의와 패배감에 물든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정신, 나아가 정체성까지 자신의 논리대로 바꾸어 버렸는지를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사회가,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결국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과연 내가, 나의 정체성이 안정되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해 본다.

     

    세상의 행복을 위한 노력이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 적극추천! | yy**id | 2015.12.2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신자유주의와 정체성에 관한 비판과 조금은 자조적인 내용으로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었다. 처음엔 이 책만 붙잡고 있으면 졸음이....

    신자유주의와 정체성에 관한 비판과 조금은 자조적인 내용으로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었다. 처음엔 이 책만 붙잡고 있으면 졸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도 못했고, 알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무엇보다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어지는가-에 대한 부분에서는 정말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지 않았나 싶다.

    이해하면서 공부하면서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기에 책 장이 빨리 넘겨지는 책은 아니었다. (, 그렇다고 내가 끝까지 공부하면서 읽은 책은 아니다. ^^;;)  첫 도입부인 '정체성'에 대한 부분에서부터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마도 이 책이 더 재미없게 느껴진 듯 하다. 하지만 다행히 '정체성'의 형성과정에 대한 부분이 이해되면서 수긍가니 그 뒤부터는 참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잠시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도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1'정체성'에 대한 부분에서는  정체성의 형성과정에는 어떠한 부분들의 영향을 받는지 알려주고 있다. 정체성은 윤리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얘기하며 '윤리'로 이야기는 넘어간다. 난 윤리부분이 참 흥미로웠는데 윤리적 차원의 변화는 정체성 차원의 변화를 일으키고, 정체성 차원의 변화는 윤리적 차워의 변화를 초래함을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고대의 윤리와 기독교의 윤리에 대한 부분 등 아주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초집중하며 읽어야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을 그 시발점에서부터 내용을 전개하고 있기에 차근히 읽다보면 그제서야 그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기에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야 할 도서이다. (물론 그 시발점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과 관련 깊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모두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인격이 뭔지조차 모르리라.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나도 몰랐다. 세계적으로 만연한 신자유주의 인격에 대한 가감없는 내용을 통찰력 깊게 담고 있으며, 그에 따른 해결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기 무지 힘든 책이 될 것이고  독서가 습관이 된 사람이라면 새로운 내용으로 가득 찬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소설류만 즐겨 읽는다면 역시나 이 책이 재미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한 인격의 소유자들의 이야기를 종종 뉴스를 통해 접하곤 한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라며 흥분하며 떠들어 대곤 한다. 이에 이 책이 아주 많은 실마리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적극 적극 추천하는 도서이다!

    -죽기 직전 마지막 강연에서 푸코는 신자유주의(그의 용어로는 '아나크로 자본주의')의 강제 소비와 생산을 자유주의와 대비시켰다. 그가 말한 자유주의는 정당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잠식하는 훈육에 맞선 비판적 운동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바로 그런 비판적 운동이다. 우리에겐 다시 동일성과 차이, 집단과 개인, 지시되 동일서와 자유로운 선택의 힘겹지만 꼭 필요한 균형을 회복시킬 정치체제가 필요하다. 이런 사회질서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주도해서 말이다. 셰익스피어라면 뭐라고 했을까?

    인간은 때때로 운명의 주인이 된다네.

    우리가 아랫것 노릇 하는 잘못은,브루트수,

    별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니까. - [줄리어스 시저] 12장 중 카시우스의 대사  p263 ~ 264

  • 최근 서울대생이 유서를 쓰고 투신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유서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얼핏보니 '수저색깔론'이라고...

    최근 서울대생이 유서를 쓰고 투신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유서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얼핏보니 '수저색깔론'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뉴스에 글이 조금 나와서 내용을 읽는데, 합리적 행동이었나...

    글을 어렵게 써놨던데... 그런 면에서... 생각_논리의 역설에 빠져 죽은거 같아 아쉬웠다...

    나이가 어리던데... 현실을 더 겪어봤다면 직접 마주하는 삶은

    그렇게 머리 속으로만 돌아가다가 마침내는 암담한 결론으로 귀결되고 마는 논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텐데... 고졸도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인데 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좀 도를 넘어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

    많이들 했을 거다. 비극은 있는데 원인도 결과도 불분명한 세상...

    저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 이런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다.


    시작은... 의도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다. 급격하게, 그리고 나쁜 쪽으로.

    저자는 정체성이 주위를 향한 동화 작용과 자신의 자율성을 향한 분리 노력을 반복하며

    형성된다고 보고 있다.

    진화론, 이기적 유전자, DNA 등 검증하기 어려운 과학적 낭설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지만

    저자가 보기에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환경이다.

    (그리고 심리장애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대도시에 사는 것이다)

    인간에게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어떤 특징이 있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그것은 예를 들면 소심함과 과격함, 외적 성향과 내적 성향 등

    어떤 반응과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 선과 악, 윤리에 관해 정의를 내려주고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느긋한 성향'의 아이가 있다 급격한 산업화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아이의 성향은 '악하고 게으른' 것으로 규정될거다.

    한국 사회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주 만연했던 "빨리 빨리"라는 말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정체성은 한 사회가 공유하고, 민족이 공유하는 이야기_ 서사가 중요하다.

    이런 서사속엔 실존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기에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이 '신'이라는 절대자가 내려준

    계율에 기대어 있다. 사람들은 원죄 의식을 가지고 내세를 위해 일했다.

    문화가 풍성하다면 대답도 다양해지고 정체성도 더 다양해 질 것이다.


    서론을 넘어 책 속의 몇몇 인상적인 구절들로 가보겠다.


    p103

    공평하지 않은 분배는 거부를 당한다. 원숭이는 똑같은 일을 하고 남보다 더 적게 받을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받지 않는 쪽을 택한다.

    이런 결과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최후통첩 게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인간의 경우 공정한 분배가 상당히 보편적이고 또 규칙적이다.

    - 뒤에 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데, 즉 공평하지 않은 사회의 인간들은_특히 하층 계급의 인간들은_ 훨씬 더 큰 스트레스와 낮은 삶의 질, 높은 질병 위험에 노출되었다.

    사회는 공평할수록 더 건강해지는 성향을 보였지만, 극단적으로 공평한 것은 극단적으로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것처럼 나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필요했다.


    p229

    ... 신자유주의가 상징적 권위 및 이에 대한 신뢰를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만인은 만인을 불신하고, 이는 지속적인 통제와 끝없는 평가로 이어지며, 규저 철폐와 '자유'시장을 주장하는 온갖 외침에도 끝없는 규제와 날로 늘어나는 계약을 낳게 된다...

    - 위 문장은 책에서 몇 번 반복된 핵심 중 하나다. 능력주의를 주장하고 개인의 해방, 자유를 주장한 신자유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능력에 대한 평가의 노력 때문이다. 능력=경쟁력=효율성이 되어버리면서 사람들은 그 능력과 효율성을 평가할 객관적 기준이 필요해졌다. 이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사항들은 점점 사라지다가 마침내 평가할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주객이 전도된다.

    내가 바로 떠올린 것은 이런 평가가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인데, 바로 모험심을 없앤다는 것이다.

    일률적인 기준에 따른 평가방법은, 결국 실패를 하지 않는 만큼 점수를 따는 구조와 같아진다.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에 매달리게 되고, 리스크를 회피한다. 책임은 지지않으려 하고 이익은 나눠 먹으려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이익추구 현상이 교육에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사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아이들은 너무 당연하게도 무언가 시켰을때

    '그게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되냐'고 반문한다.

    충격을 받은 어른들은 가치와 윤리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추종하던 삶과 가르침이다.


    p177

    교육을 가치에서 해방시키고 일체의 도덕적 독재를 폐지하려는 노력을 통해 능력 지향적 수업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완벽하게 교실로 끌어들였다... 아이들이 알아서 '올바른' 규범과 가치를 체득할 거라는 생각은 틀렸다. 아이들은 주변 환경의 윤리를 받아들인다.

    - 예전에 어디선가 비슷한 글을 본 거 같은데, 확실히 인간은 성장하면서 보고 배우는 것들로부터 가치와 윤리를 전수받는다. 어린 아이들이 하는 말 중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우리 엄마(아빠, 형, 누나, 선생님 등의 권위를 가진 어른들)가 ㅁㅁ라고 했어!!!" 일 것이다.

    암튼 이런 신자유주의는 평가와 줄세우기를 불러오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는 현실'을 만드는데... p179 열 살만 되어도 벌써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향후 정체성은 패배감 위에 세워진다.

    - 사실 이 책은 유럽에서 나온 거고... 나는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라서 요즘 교실을 잘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이 말은 우리나라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 나는 네이버 지식in에서 아이들의 고민 상담을 몇 번 하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고민글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렇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엄청난 아이들이, 특히 시험을 망쳐서 자신은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가지 못할 것이고 그러니까 인생이 이미 망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대체 자신은 어쩌면 좋을지 묻고 있고, 고딩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님이 이런 직업을 가지라고 하시는데 이런 직업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당연하게도 그 직업들은 대개 안정적인 것으로 유명한 직업이다.


    p183

    초기에 긍정적 결과를 낳던 능력주의 정책이 하향식 품질 지침서로 바뀌면서 일체의 자기 주도성을 약탈하는 과정이 나온다.

    - 나는 성경의 놀라운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에 닿을 탑을 쌓던 인간들에게 서로 언어가 달라지게 하여 다투고 떠나가게 만든 신의 저주를...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대표되는 이상적 사회 실현의 실패와 마지막 남았다고 평가되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신자유주의는...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없다'고 생각되는 하늘에 닿을 탑이었다.

    그러나 이 탑마저도 내부에서부터 인간을 무너뜨리고 있다.


    p214

    과도한 불평등은 인간에 대한 존중을 사라지게 만든다. 자신에 대한 존중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어떤 사람의 집단 내 지위나 신분이 낮을수록 기대수명도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사회 형태와 증가하는 심리장애의 숫자는 확실한 관련성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확실히 예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p263

    개인주의는 유일한 존재이며 나름의 결정을 내린다는 망상에 젖은 소비자의 기능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엄청난 규모로 동일한 행동방식과 동일한 사고를 강요했던 시대는 없었다.

    - 이 책의 문장 중 가장 번뜩이는 날카로운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개인의 해방! 개성! 개별화! 자유로운 선택! 이런 구호를 내걸고 달려오던 사회의 아이러니!

    마침내 우리에게 자유롭게 허락된 것은 성공이란 조건을 전제로 한 소비다.

    저자는 그 소비마저도 모두가 비슷한 '개인'컴퓨터와 '한정판'상품을 들고다닌다고 하고 있지만,

    정말 그렇다... 특히 내가 먹는 것(수많은 먹거리 사진을 보라), 입는 것, 얼굴에 바르는 것, 타는 차 등.

    개인이 남과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거의 모든 것이 소비다.

    이에 반해 정말 대규모의 사람들이 동일한 행동방식과 동일한 사고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TV를 거의 안봐서 당장 떠오르는 최신 사례가

    엑시드라는 그룹의 '위아래'라는 음악인데, 정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위아래' 음악만 나오면 남자들 반 정도는 아주 열광을 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성인 평균 1년 독서량은 10권을 넘지 못한다.

    독서량은 10권이 되지 않는데, TV도 안보고 라디오도 듣지 않는 내가 '위아래'라는 음악을 아는 것만 봐도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손쉽게 대규모의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양식을 갖게 되는지는 뻔하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바뀌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고 적었다.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에게 공익을 실천할 의무가 있다면 우리 역시 공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자면 물질을 포기하고, 다시금 새로운 윤리를 키워나가야 한다."

  • 이 책은 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전반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외부의 환경의 영향의 결과임을 논하고 있으며, 후반...
    이 책은 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전반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외부의 환경의 영향의 결과임을 논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 경제사조에 의해 변화한 우리의 사고방식과 그 문제점을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책이 상당히 어렵고, 이야기가 논리정연하게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의 이론과 사례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책을 따라가기 무척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과 그 원인을 논하는 책이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한 번의 독서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고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보면 중구난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면도 있어, 옮기신 분의 해설이라도 많이 추가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결국 적자생존,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그 자체로도 (실적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조작하는) 엔론사회같은 비효율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 체제 상으로는 완전한 경쟁구도가 아니라, 상부의 지배자들의 이익과 지위 유지를 위해, 하부 구성원들간의 경쟁이 강요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상부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없어진 상태에서의 경쟁은 결국 자신만 희생자가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왕따 문화 등이 발생하고,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집안의 배경으로 인생이 정해져버리는 헬조선이 된 이유가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에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2차 세계대전에서 나찌가 패망한 후 나찌가 저질렀던 인종차별과 학살같은 일이 인류에게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지만, 현재 세계에서 벌러지고 있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갈등이나 미국에서 다시 심해지는 인종 간의 갈등 등을 보면, 신자유주의에 의해 인류는 다시 제국주의 시절의 심리상태로 돌아가고 있다고 이 책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입사한 지 1년만에 명퇴를 당하는 20대 신입사원이 있는가 하면,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수저 색깔이라는 말을 남기고 대학생이 자살하는 이 시점에서, 저는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처럼 인간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용기와 노력이 없이는 괴물 되지 않기가 결코 쉽지않습니다만.
  • 요즘 텔레비젼을 보면, 흉악한 범죄가 늘어...


    요즘 텔레비젼을 보면,
    흉악한 범죄가 늘어가고 있고, 밤에 나다니기가 무서우리만큼 사건사고가 많이 늘었다.
    또, 옛날같지 않은 지능범들, 각박한 세상인심들을 느낄수 있다.
    왜 이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한번 짚어보아야겠다.

    이책은
    정신분석학자가 쓴 신자유주의적 인격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쓴 책이다.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형성 이전에 정체성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우리에게 형성되어져 있는 지금의 정체성은 어디서 부터 온 것인지,
    정체성의 내적인 특성이 유전되어 졌다고 생각되지만, 외적인 환경에 의하여 형성되어진
    어떤것이다.
    본인의 정체성이 형성되어오는 외적인 환경으로 어린시절 부모의 가치관이나 규범
    어떤 생활양식들이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커오면서 외적인 종교에서 오는 어떤 가치관
    그로인한 윤리규범들,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끼친 어떤 외부적 요인들,
    기업의 광고로 포장되어진 어떤 부분들이 세뇌 또는 학습되어져 이어져서
    오늘의 진화과정을 거쳤는지도 모르겠다.
    사회관계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식량과 섹스도 중요하다.
    식량은 생존에 관한 것이고, 섹스는 본능에 관한 것이다.
    어찌보면 이 큰 두가지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익을 내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영장류의 예로든 실험에서 남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좋아한다는 신경학적 증거를 발견한다.
    이부분에서 진화 하였을때, 충동을 억제하는 심리적 압박은 우리의 유기체에 내제한다.
    영장류의 연구는 정체성 문제의 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인간은 안정과 협력을 보장하는
    사회적 서열이 필요한 동물이라는 결론을 얻을수 있었다.

    시대가 변화하지만, 아주 옛날에도 나이든 이가 젊은이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치를 좋아한다.
    예의가 없고 권위를 무시하고 어른을 공경하지 않으며 일은 안하고 수다만 떤다.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큰소리만 치며, 스승을 거역한다.
    2500년전 소크라테스가 한말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사람사는 모습은 시대가 변해도 흐름은 비슷하겠지만,
    인간됨, 공동체의식, 타인에 대한 배려하는 모습은 유지해야 겠다.

    이책은 7장까지는 우리의 정체성이 이렇게 흘러올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
    그에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들, 교육의 명목아래 인간미가 없어지고,
    개인적으로 변한 우리의 모습을 정신분석적인 관점으로 잘 설명되어 있고,
    8장 좋은 삶의 부분에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추구해야 할 방향들이 나와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공동체 생활을 할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으므로,
    이를 이끌어 갈 권위있는 훌륭한 지도자는 꼭 필요하다.
    공동체 의식에서 실종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부상한 주요 원인을 빨리 파악하고,
    공동체와 개인의 균형이 유지될 때 제 기능을 할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은 규제만 심하고 권위는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런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지 말고 자기자신에서 찾아야 한다.
    또, 영장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는 우리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터넷 포털에서 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연대의식을 키워 나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바랐다.
    그 예로 버스기사가 공격을 당할 경우 승객들이 함께 나서서 버스기사의 입장에서 대응해
    나가는 모습을 예로 들었다.
    정말 공감가는 부분이다.

    사실, 이책은 소설책이나, 자기계발서 책처럼 술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의 흐름이나 나아갈 방향을 심도있게 생각해 볼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인간미가 왜 없어지는지, 정체성의 확립에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제대로 볼수 있었고,
    이 사회가 행복해 지려면 개인주의의 모습으로는 행복해 질수 없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비난하는 그 체제의 일부이다.
    저항한다고 우익이나 좌익 정당에 투표를 하는 것으로 변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 자신도 변해야 한다.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다시 국민의 권리를 고민해야 한다.
    선거만 할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도, 아니 무엇보다 생활방식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우리 영장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인정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행복감이야말로 오늘날의 전형적인 상태, 즉 우울한 쾌락주의, 우울한 향락과 극명하게 대립된다.
    -파울 페르하에허-

    내 아이는 수학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왔지만 우리의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려면
    모든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옮긴이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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