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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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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쪽 | 규격外
ISBN-10 : 8950979926
ISBN-13 : 9788950979928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중고
저자 김태웅 | 출판사 아르테(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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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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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새책같이 깨끗한 책 감사합니다. 5점 만점에 5점 ski*** 2019.08.09
99 깨끗해서 만족입니다 5점 만점에 5점 yog*** 2019.08.08
98 조용헌이라는 작가의 지적 열정에호기심이 5점 만점에 5점 door***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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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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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을 파고드는 질문과 폭넓은 대답으로 진짜 한국 근대사를 만난다! 강력한 힘의 논리와 그에 저항하는 움직임의 연속이었던 한국 근대의 지배계급과 지식인, 민중 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격동의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변화에 대응했는지, 외세의 침입에 국가는 어떻게 반응했으며 무엇을 우선시했는지, 일제의 경제·정치·문화적 침략에 우리 민중들은 어떻게 저항하고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 다각도로 살펴보는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핵심 질문 29개를 던짐으로써 기존 역사적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우리의 근대를 들여다보기 위한 도구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담고 있는 질문 29개를 던지고, 큰 그림으로 다루면서 각 사건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대답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고자 했다.

정치사를 위주로 서술하되 사회 경제 변동을 자세히 다루면서 근대의 변화가 당시 한국인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일본과 중국을 통해 도입된 서구 문화가 오늘날 한국인의 삶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문화의 유입과 변용 과정을 소개하고, 학계의 통설을 바탕으로 삼되 되도록이면 최근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특히 국문학계와 미시사 연구의 성과도 활용하여 근대 한국인의 어문 생활과 대중문화도 담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김태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한국근대 지방재정 연구』(2013년 두계학술상 수상),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6-근대』, 『국사교육의 편제와 한국근대사 탐구』, 『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 『규장각』(공저), 『우리 역사, 어떻게 읽고 생각할까』(공저), 『신식 소학교의 탄생과 학생의 삶』, 『어윤중과 그의 시대』 등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논저를 저술했다.

저자 : 김대호
㈜지음교육 대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현재 교육 분야 큐레이션 사업을 통해 가치 있는 교육 정보를 공유하고 교육 문화를 개선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우리 역사, 어떻게 읽고 생각할까』(공저), 『야스쿠니 신사의 비밀』, 『중국 사신 장건, 실크로드를 개척하다』, 『통일신라의 혜초, 실크로드를 왕오천축국전에 담다』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1장 흥선대원군, 개혁가인가 망국의 원흉인가?
왕의 아버지는 어떻게 적폐를 청산하려 했을까? | 경복궁 중건은 대원군의 오판이었을까? | 대원군은 왜 통상 개방을 거부했을까? | 두 차례의 양요는 조선에 무엇을 남겼을까? |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왜 그렇게 나빠진 것일까?

2장 조선은 왜 닫힌 빗장을 열었을까?
일본은 왜 조선 정벌을 주장했을까? | 강화도조약의 원인이 운요호사건뿐이었을까? | 조선은 정말 ‘조약’을 몰랐을까? | 강화도조약, 무엇이 문제였을까? | 조선은 서구 열강 중 왜 미국과 가장 먼저 수교를 맺었을까?

3장 김옥균,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
개화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 급진 개화파가 정변을 준비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 갑신정변은 왜 삼일천하로 끝났을까? | 김옥균은 왜 상하이에서 암살당했을까? | 김옥균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4장 조선의 시장 개방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왜놈은 진고개, 장꼴라는 북창동’ 이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 한성 개방은 어떤 문제를 가져왔을까? | 일본 상인과 청 상인 사이에서 조선 상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 당대의 최고 히트 상품은 무엇이었을까? | 방곡령은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5장 운동인가, 혁명인가, 전쟁인가?
그들은 왜 따로 집회를 열었을까? | 민란은 어떻게 전쟁으로 변할 수 있었을까? | 농민군의 「폐정 개혁안」은 사실일까? | 농민군이 우금치에서 패배한 까닭은 무엇일까? | 1894년에 일어난 이 사건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6장 청일전쟁,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일본은 어떻게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을까? | 그 전쟁은 과연 조선을 위한 것이었을까? | 조선의 ‘독립’은 어떤 의미였을까? |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에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 청일전쟁의 승리는 일본에 어떤 부작용을 남겼을까?

7장 갑오개혁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갑오개혁은 왜 여러 개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 갑오개혁은 과연 자율적이었을까? | 국가 대개혁 구상을 통해 무엇을 바꾸려고 했을까? | 조선 사회는 왜 단발령에 그토록 강력하게 반발했을까? | 갑오개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8장 명성왕후는 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는가?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은 무엇일까? | 을미사변 당일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왜 왕비를 노렸을까? | 그 시절에 왕비는 어떻게 평가되었을까? | 우리는 명성왕후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9장 아관파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을미사변 직후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 아관파천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 아관파천 이후 조선 내부의 권력은 어떻게 변했을까? | 러시아 공사관에서 조선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 러·일이 맺은 세 개의 의정서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10장 대한제국은 어떤 나라를 꿈꾸었는가?
고종은 왜 환궁을 결정하게 되었을까? | 대한제국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 광무개혁은 무엇을 추구했을까? | 서구 문물은 우리의 의식주를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 대한제국은 왜 전제군주제를 지향했을까?

11장 만민공동회는 왜 ‘원조 촛불’이라고 불릴까?
서재필은 어떻게 독립협회를 세울 수 있었을까? | 『독립신문』이 큰 인기를 얻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 독립협회와 광무정권은 어떤 관계였을까? | 만민공동회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 주었을까? | 광무정권은 왜 만민공동회를 탄압했을까?

12장 고종, 현명한 군주인가 어리석은 군주인가?
고종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 고종은 왜 ‘암군’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을까? | 고종을 ‘현군’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 ‘광무개혁’ 논쟁은 왜 그토록 주목받았을까? | 대한제국 평가에서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13장 독도와 간도, 왜 ‘문제’가 되었을까?
‘간도 문제’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 대한제국은 어떻게 간도의 소유권을 다시 주장할 수 있었을까? | 독도는 왜 우리 땅일까? | 독도는 왜 분쟁의 대상이 되었을까? | 지금 우리에게 간도와 독도는 어떤 의미일까?

14장 대한제국은 왜 중립국이 되려고 했는가?
조선에서 ‘중립’은 언제 등장했을까? | 대한제국의 외교정책은 왜 중립화로 귀결되었을까? | 러·일은 대한제국의 중립화를 왜 거부했을까? | 대한제국은 어떻게 국외중립 선언을 할 수 있었을까? | 대한제국의 중립화 실패는 무엇을 남겼을까?

15장 러일전쟁이 대한제국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러시아는 왜 패배한 전투를 기념했을까? | 일본은 왜 그토록 뤼순 점령에 집착했을까? | 일본 해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 대한제국은 국제 질서에서 어떻게 고립되었을까? | 러일전쟁이 낳은 결과 이면엔 무엇이 있을까?

16장 을사늑약 이후 주권은 어떻게 상실되어 갔는가?
‘시정 개선’이 왜 비극의 시작이었을까? | 을사늑약은 무효일까? | 통감부 시기, 대한제국은 누가 통치했을까? | 고종황제의 양위식에 왜 환관 두 사람만 서 있었을까? | 대한제국의 주권은 어떻게 해체된 것일까?

17장 대한제국의 언론은 국망의 위기와 어떻게 싸웠을까?
「시일야방성대곡」은 왜 유명해졌을까? | 혈죽은 어떻게 '신화'가 되었을까? | 『대한매일신보』는 왜 국채보상운동에 주목했을까? | 『대한매일신보』는 왜 국채보상운동으로 위기에 빠졌을까? | 대한제국의 대표 신문은 어떻게 쇠락했나?

18장 ‘애국계몽’에 담긴 의미가 왜 서로 달랐을까?
을사늑약 이후에 수많은 정치단체와 학교가 만들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 애국계몽운동은 얼마나 ‘애국적’이었을까? | 신민회는 왜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까? | 신민회는 공식적으로 공화정을 주장했을까? | 105인 사건은 어떻게 신민회의 손발을 묶었을까?

19장 의병 전쟁은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
의병장 유인석은 왜 큰 공을 세운 부하를 죽였을까? | 최익현이 스스로 의병을 해산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 군대 해산 이후 의병 전쟁은 어떻게 변했을까? | 일제의 의병 탄압을 ‘제노사이드’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 당대의 한국인들은 의병 전쟁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20장 고종은 왜 헤이그 특사라는 승부수를 던졌을까?
고종은 왜 만국평화회의에 주목했을까? | 헤이그 특사는 국제사회의 외면을 어떻게 극복하려 했을까? | 우리는 왜 헤이그 특사 3인을 기억해야 할까? | 고종은 강제 퇴위 후에 국권 수호를 위해 어떤 활동을 했을까? | 고종은 왜 러시아 망명을 준비했을까?

21장 안중근은 마지막 순간에 왜 ‘동양의 평화’를 강조했을까?
안중근은 왜 하얼빈으로 갔을까? | 왜 1910년대 전후를 ‘암살의 시대 ’라고 할까? |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은 이토의 동양 평화론과 무엇이 달랐을까? | 안중근은 왜 한·중·일 모두로부터 존경받았을까?

22장 경술국치 당일은 왜 조용했을까?
안중근의 의거는 왜 일진회가 주장한 합방의 이유가 되었을까? | 일진회는 어떤 조직일까? | 일진회가 나라를 판 대가로 받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 강제 병합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 한일 병합을 가리키는 용어는 왜 그렇게 많을까?

23장 그때 우리는 조선인이었나, 일본인이었나?
왜 헌병이 경찰 업무를 담당했을까? | 조선 사람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한다고? |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려고 했을까? | ‘조선인’들은 왜 소학교가 아니라 보통학교에 다녀야 했을까? | 일제는 ‘이등 국민’을 어떻게 차별했을까?

24장 그것은 과연 개발이었는가, 수탈이었는가?
일제는 왜 ‘조선 엑스포’를 개최했을까? | 식민지 조선은 어떻게 개발되고 있었을까? | 토지조사사업은 왜 논란이 되었을까? | 일제가 한국의 산림에 눈독을 들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 일제는 한국의 산업을 어떻게 재편하려고 했을까?

25장 1910년대에 왜 소설과 영화가 유행했을까?
『매일신보』는 왜 소설을 신문 1면에 게재했을까? | 소설은 어떻게 ‘대설’을 대체할 수 있었을까? | 전통 공연물은 왜 신파극에 밀리게 되었을까? | 왜 변사가 극장의 스타로 부상했을까? | 1910년대 극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26장 식민지 조선에서 우리는 어떻게 싸웠을까?
일제강점기의 의병은 왜 한국 황실을 포기하지 못했을까? | 대한제국 황실은 어떻게 기울었을까? | 무단통치기 국내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대한광복회는 어떤 단체일까? | 대한광복회의 행동 강령은 왜 비밀·폭동·암살·명령이었을까? | 새로운 독립운동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었을까?

27장 그들은 왜 독립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이회영과 이상룡은 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로 거론될까? | 북간도는 어떻게 독립 정신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은 왜 외면받았을까? | 안창호·이승만·박용만은 왜 다른 길을 갔을까?

28장 무엇이 3·1운동을 ‘세계적인 경이’로 만들었는가?
민족자결주의는 해외 독립운동 세력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 왜 종교인들이 3·1운동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 3·1운동 당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이천만 동포의 함성은 어떻게 한반도를 울렸을까? | 일제는 3·1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어떤 만행을 저질렀을까?

29장 대한민국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
3·1운동을 왜 ‘혁명’이라고 불렀을까? | 왜 그렇게 많은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을까? | 「대한민국 임시 헌장」이 꿈꾼 국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임시정부 여러 개는 어떻게 하나로 통합되었을까? | 대한민국은 왜 1919년에 건국되었을까?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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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100여 년 전 선열들이 불굴의 의지와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미처 해결하지 못한 많은 과제들은 무엇일까요?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또 100년 뒤 우리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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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100여 년 전 선열들이 불굴의 의지와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미처 해결하지 못한 많은 과제들은 무엇일까요?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또 100년 뒤 우리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늘 들어 왔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법고창신法古創新을 다시 떠올리는 가운데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과 더불어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100년 전 선열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에 쟁쟁하기 때문입니다.
_머리말 p. 9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 개화파 인사들은 청의 내정간섭과 청에 의존하는 조선 정부의 사대 방침에 반발했습니다. 1882년 박영효가 임오군란을 처리하기 위해 일본에 수신사로 가게 된 뒤부터 이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김옥균, 서광범 등도 이 사신 행렬에 동행했습니다. 박영효 일행은 일본에서 융숭한 대접과 함께 임오군란의 배상금 탕감이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또한 이들은 일본의 대표적인 문명개화론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만난 뒤, 그의 지원 약속을 받고 일본의 문명개화론을 수용하게 됩니다. 이 선택이 그들을 온건 개화파와 갈라지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_3장 김옥균,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 pp.61~62

청은 시모노세키조약에 따라 조선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약에 명시된 ‘자주독립’이라는 표현은 청을 대신해서 일본이 지배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청일전쟁이 시작됨과 동시에 일본은 ‘조일잠정합동조관’을 체결해 경부선과 경인선의 철도부설권 및 군용전신선 관할권 등의 이권을 일본에 양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조일공수동맹조약’이라는 것을 체결해서 조선이 일본의 동맹국으로서 일본군의 이동과 식량 준비 등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했고, 일본 고문관과 군사교관을 조선 정부 내에 배치한다는 약속을 조선 정부로부터 받아 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모두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_6장 청일전쟁,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p.127

우선 왕비를 부르는 공식 명칭에 대한 문제부터 풀어 보겠습니다. 조선 시대의 왕비를 지칭하는 명칭은 바로 ‘왕후’입니다. 숙종 때 장희빈과 대립했던 인현왕후나 영조의 어린 아내이자 정조의 할마마마로 유명한 정순왕후에서 그 명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왕후의 명칭 뒤에 성을 붙여서 인현왕후 민씨, 정순왕후 김씨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전통에 따르게 되면 고종의 아내는 ‘명성왕후’ 또는 ‘명성왕후 민씨’가 가장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_8장 명성왕후는 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는가? p. 164

한·청·일 동아시아 삼국이 세계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식민지·반식민지·제국주의로 그 운명이 갈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까닭이 각 국가의 내부 역량 차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와, 국제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세 나라에 가해진 외압의 차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로 나뉘어 서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1960년대에 어느 일본 학자는 이를 ‘30년간의 논쟁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 논쟁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았고, 21세기가 된 지금도 우리는 이 문제를 여전히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일본에서 처음 제기되었던 때를 고려하면 조만간 100년을 바라보게 되고, 광무개혁 논쟁이 시작된 1976년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4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 논쟁은 과연 해결이 가능할까요? 만약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면 우리는 이 논쟁을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할까요?
_12장 고종, 현명한 군주인가 어리석은 군주인가? p. 261

원래 장지연은 이토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1902년 『황성신문』 사장에 취임한 후 한·청·일 삼국이 연대해서 서양의 군사적·문화적 침략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신 유학자로서 1898년 이후 청이 서구 열강에 분할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장지연은 가장 부강한 일본을 중심으로 황인종 삼국이 뭉치면 백인종의 침략을 능히 막아 낼 수 있다는 이토의 동양 평화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되었고, 『황성신문』을 통해 동양 평화론을 널리 전파시켰습니다.
_17장 대한제국의 언론은 국망의 위기와 어떻게 싸웠을까? p. 343

이후 의병 운동의 성쇠 여부는 이러한 신분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이었습니다. 이에 한말 의병 전쟁의 시기를 나눌 때 의병들이 봉기했던 연도를 기준으로 흔히 을미의병·을사의병·정미의병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시기 구분은 의병이 언제 일어났는지 파악할 때는 유용하지만, 의병 전쟁의 성격과 변화 과정을 제대로 보여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대기로 분류하는 것보다 이 의병 전쟁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의병 활동의 변화와 연속성을 유기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병 운동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1895년 전후 일어난 의병 활동은 아관파천으로 사실상 종료되기 때문에 이후 의병이 다시 등장할 때까지는 무려 7년이라는 공백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두 시기는 의병이 봉기했던 정치적 환경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의병 운동의 주도 세력과 참가층의 구성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_19장 의병 전쟁은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 p. 380

고종은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인해 곤경에 처했고, 통감부와 친일 내각의 ‘가짜 양위식’으로 강제 퇴위되었습니다. 우리가 역사 수업을 통해 알고 있는 고종의 활동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강제 퇴위 후에도 고종이 후기 의병을 적극 독려하고 지원한 사실이 통감부 문서에 자세히 전해집니다. “궁중의 잡배들이 (황제의) 밀칙을 받들고 재야의 야심가와 비밀히 공모하여 각 방면에서 종종의 운동을 하고 있다. …… 또 잡배들을 끌어들여 의병을 선동하여 음으로 일본에 반대 행위를 하였다.”에서 볼 수 있듯이, 고종은 밀칙으로 의병을 일으키고 활동 자금을 지급해 그들을 후원하면서 후기 의병의 전국적인 활동을 배후에서 지원했습니다.
_20장 고종은 왜 헤이그 특사라는 승부수를 던졌을까? p. 404

순종의 병합 조칙이 공포되었던 8월 29일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을사늑약이나 정미7조약 때와 대조적으로 전국이 조용했던 까닭은 선동자 한 사람도, 선동 문자 한 구절도 나오지 못하도록 데라우치가 지휘하는 통감부가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제는 강제 병합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이 나타날 것이 두려워서 군대와 경찰을 총동원해 항일 의병을 철저하게 진압했고, 애국계몽운동을 이끌며 국권 수호를 외쳤던 애국 인사들을 미리 투옥하거나 협박했습니다. 게다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언론·결사·집회·출판 등의 모든 자유를 박탈해 강제 병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조차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습니다. 국치 당일의 고요는 철저한 은폐의 결과였습니다.
_22장 경술국치 당일은 왜 조용했을까? p. 442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참여하는 계층의 저변이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비밀결사나 의병에 참여했던 유생·군인·지식인 외에도 학생·농민·노동자층의 항일 의식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교사와 학생으로 구성된 비밀결사의 경우, 일제의 민족 교육 탄압책에 저항하면서 항일 민족의식을 더욱 고양시켜 갔습니다. 협성학교의 ‘학우회’, 숭의학교와 기전학교의 ‘송죽형제회’, 경성고등보통학교의 ‘조선물산장려계’, 숭실학교의 ‘조선국민회’ 등 학생들이 결성한 비밀결사들은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키우는 일에 앞장섰으며, 자금을 모아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또한 농민들은 토지조사사업으로 경작권을 빼앗기고 지주제 강화로 생존마저 위태로워지자 저항에 나섰습니다. 처음 농민들의 저항은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수준이었지만, 1910년대 후반부터는 주재소·세무소·면사무소 등 일제의 통치기관을 습격할 정도로 정치적 색채가 강해졌습니다.
_26장 식민지 조선에서 우리는 어떻게 싸웠을까? p. 521

3·1운동의 출발은 파리강화회의나 고종의 국장 등 특정한 계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운동이 한반도 전역에서 장기간 지속되고 전 계층이 동참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일제와 맞서 싸웠던 1910년대 국내외의 모든 조직이 간직한 내적 역량 때문이었습니다. 초기에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종교인과 학생 들의 영향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농민과 노동자 들이 시위를 주도해 갔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어부·장꾼·지게꾼·인력거꾼·기생·거지 등 전 계층이 모두 참여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_28장 무엇이 3·1운동을 ‘세계적인 경이’로 만들었는가? p. 558

3·1운동이 혁명으로 평가되었던 것은 중국인의 평가나 5·4운동과의 연계성 때문만이 아닙니다. 3·1운동의 과정과 결과는 모두 혁명적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3·1운동은 이념과 계급의 차이를 초월해 전 민족이 함께 전개한 항일운동이었고, 황제와 지배층이 지켜 내지 못한 나라를 민중의 힘으로 되찾겠다는 자각을 통해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떠오르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종의 서거와 함께 시작된 이 운동을 통해 한국인들은 왕국이나 제국이 아닌 ‘민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것이 공화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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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863년 고종 즉위부터 1919년 임시정부 수립까지 우리가 알고 싶던 진짜 한국 근대사를 만난다! <말모이>(2018), <박열>(2017), <군함도>(2017), <밀정>(2016), <동주>(2016), <암살>(2015). 이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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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고종 즉위부터 1919년 임시정부 수립까지
우리가 알고 싶던 진짜 한국 근대사를 만난다!

<말모이>(2018), <박열>(2017), <군함도>(2017), <밀정>(2016), <동주>(2016), <암살>(2015). 이 영화들은 한국의 일제 강점기를 다룬다. 특히 일제의 엄혹한 지배하에서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지키고, 결국에 영토와 주권을 되찾기 위해 싸웠던 조상과 순국선열 들을 기리며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이 호평 끝에 종영하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의병 운동에 대한 관심도 치솟았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유관순 열사의 아우내 장터에서의 3.1운동 이후 1년을 담은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가 개봉하고, 곧 안중근의 일대기를 담은 드라마도 방영될 예정이다.
한국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당대의 사건과 인물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지만 한국 근대사의 과정은 조선 몰락의 역사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개항이 시작된 1860년대에서 대한제국시기를 거쳐 주권을 상실하게 된 1910년과 1919년의 3.1운동까지, 한국의 근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를 치밀하게 다룬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가 나왔다.
한국 근대사는 강력한 힘의 논리와 그에 저항하는 움직임의 연속이었다.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은 당시 한국의 지배계급과 지식인, 민중 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격동의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변화에 대응했는지, 외세의 침입에 국가는 어떻게 반응했으며 무엇을 우선시했는지, 일제의 경제·정치·문화적 침략에 우리 민중들은 어떻게 저항하고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 다각도로 살펴본다. 한국 근대의 동학dynamics을 큰 그림으로 다루면서도 각 사건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대답함으로써 당대의 복잡성을 잘 드러낸다.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과 폭넓은 대답으로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는 관점의 폭을 넓힌다!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 어렴풋이 알고 있던 근대사 지식을 훌쩍 넘어선다. 우선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가 다루는 시기는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까지 50여 년의 기간이다. 반세기를 겨우 넘은 이 짧은 기간에 우리는 왕조에서 제국으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한국 근대를 주제로 하는 많은 개설서가 1863년에서 1910년까지를 한 단위로 묶고 조선의 멸망을 통해서 해당 시기를 조명하면서, 한국 근대사는 망국을 초래한 어둠과 아픔의 역사로 여겨지곤 했다.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봉건과 외세라는 이중의 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으며, 무엇을 이루려 했나?”라는 질문에 답함으로써 한국의 근대가 품고 있던 많은 가능성들을 최대한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질문의 전환은 이후에 일어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기념비적인 순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핵심 질문 29개를 던짐으로써 기존 역사적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우리의 근대를 들여다보기 위한 도구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담고 있는 질문 29개를 던지고, 이 질문을 풀며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려고 노력했다.
‘조선은 왜 닫힌 빗장을 열었을까?(2장)’, ‘김옥균,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3장)’, ‘대한제국은 어떤 나라를 꿈꾸었는가?(10장)’ 등의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개방과 쇄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당대 개혁 세력의 복잡성, ‘망국’이라는 결과로부터 소급하여 근대사를 바라보는 결과론적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근대를 이해하는 폭넓은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정치사를 위주로 서술하되 사회 경제 변동을 자세히 다루면서 근대의 변화가 당시 한국인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보여 주려고 했다. 아울러 일본과 중국을 통해 도입된 서구 문화가 오늘날 한국인의 삶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문화의 유입과 변용 과정을 소개했다. 또한 학계의 통설을 바탕으로 삼되 되도록이면 최근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했고, 특히 국문학계와 미시사 연구의 성과도 활용하여 근대 한국인의 어문 생활과 대중문화도 담고 있다.

6300명이 구독한 오디오클립, <역사탐구생활>을 더 풍성하게!
검증된 콘텐츠로 쌓아 올린 한국 근대사 결정판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2017년 9월 7일부터 2018년 10월 25일까지 60회 연재한 네이버 오디오클립 <역사탐구생활>과 함께 기획되었다. “역사를 알고 싶었으나 책은 너무 벅차고 어디서부터 읽어야 제대로 읽는 건지 모르겠다.”, “역사 무지렁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고민을 지닌 많은 청취자들이 <역사탐구생활>을 반겼다. 이 책은 <역사탐구생활>에서 시도한 질문과 답이라는 포맷을 그대로 가져오되,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까지 충실히 담았다. 각 장의 끝에 배치한 ‘이것만은 꼭!’이라는 별도의 질문은 역사를 사유하는 감각을 하나하나 흔들어 깨우는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또한 책에서 언급된 관·외세·민간의 굵직한 사건들을 연표로 제작해 사건들의 얽힘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의 해’ 2019년.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를 통해 리얼 한국 근대사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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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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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아르테 팝콘양 네이버 포스트)


     어느 명절 즈음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외가에 있었다. 그때, 외할머니께 문안 인사를 하러 오신 분이 계셨다. 외가의 집안분이셨다. 외가는 전주 이씨인데, 그분의 자부심이 상당하셨다. 왕의 후손이라는 당당함. 그 언행의 바탕에 있는 힘이 느껴졌다. 그 뒷면에는 망국의 한(恨)도 드리워져 있었고. 물론, 왕실과 그분은 살짝 거리가 있었지만. 그 후로 조선의 아픔을 생각할 때면, 오래전 그분이 떠오르고는 했다. 그리고 고종 즉위부터 임시정부 수립까지의 발자취를 담은 글이 있다. 2019년인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글이리라. 우리의 근대사. 아픔의 역사다. 하지만, 이 글과 함께 그 아픔까지 감싸며 자부심을 갖고자 한다. 예전에 뵌 외가의 집안분처럼.


     글은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까지의 발자국을 담고 있다. 그 당시, 격동의 시기였다. 1910년, 조선은 국권을 상실했다. 이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했다. 어떻게 나라를 잃었으며, 어떻게 나라를 찾고자 했는지 그리고 있는 이 글. 29가지의 큰 질문을 던지며, 그 안에 작은 여러 질문과 함께 그 답을 꼼꼼히 새기고 있다. 3장 '김옥균,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 7장 '명성왕후는 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는가?', 27장 '그들은 왜 독립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등의 질문들. 깨닫기에 알맞은 질문들이었다. 그 질문 하나하나에 대한 답도 현답(賢答)이었고.


     '3·1운동의 출발은 파리강화회의나 고종의 국장 등 특정한 계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운동이 한반도 전역에서 장기간 지속되고 전 계층이 동참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일제와 맞서 싸웠던 1910년대 국내외의 모든 조직이 간직한 내적 역량 때문이었습니다.' -28장 '무엇이 3·1운동을 '세계적인 경이'로 만들었는가?' 중에서. (558쪽)


     살다 보면, 상처로 아픔을 받기도 한다. 조선도 그랬다. 결국, 조선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많은 분들의 소원이 대한의 독립이었다. 소원이 쌓여 3·1운동을 낳은 것이고.모두의 내적 역량을 담은 그때의 함성. 고귀한 외침이었으리라. 경건한 놀라움이었으리라.         


     역사는 삶의 스승.


    -마르쿠스 키케로의 '변론가론(De Oratore)' 중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정말 뜻깊은 해라고 생각한다. 이때, 이런 좋은 책을 만나서 행운이었다. 질문으로 호기심을 불러 나의 가슴을 뛰게 한 책. 그 질문의 답을 함께 풀며, 깨달음을 얻게 한 책. 우리 근대사를 담은 이 책은 내 삶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했다.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외우기만 했던 이 역사.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아픔의 역사인 근대사는 일부러 가까이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아프다고 멀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며 질문하고 이어가고 싶다. 또, 계속 답하고 싶다. 아픔 안에서 자부심을 가지며. 나의 삶 속에서. 스승으로 모시고. 그렇게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하리라.  




     덧붙이는 말.


     이 책은 2017년 9월 7일부터 2018년 10월 25일까지 60회 연재한 네이버 오디오클립 <역사탐구생활>을 바탕으로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까지 충실히 담았다고 한다.  

     

     

  •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네이버 플랫폼을 통해 소개되었던 팟캐스트 <역사탐구생활>의 내용을 정리해 출판한 책이다. 전문 역사학자가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출판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요즘 출판시스템의 한 측면을 적극 활용한 모습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딱딱한 글 형식이 아니라 팟캐스트 오디오 방식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보니 더욱 쉽게 내용들이 다가온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일 것이다.   ...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네이버 플랫폼을 통해 소개되었던 팟캐스트 <역사탐구생활>의 내용을 정리해 출판한 책이다. 전문 역사학자가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출판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요즘 출판시스템의 한 측면을 적극 활용한 모습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딱딱한 글 형식이 아니라 팟캐스트 오디오 방식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보니 더욱 쉽게 내용들이 다가온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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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제목 그대로 29개의 질문으로 한국 근대사를 훑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한국근대사의 시간적 범위는 조금 특이하다. 1863년 고종 즉위부터 1919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50여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시간적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역사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관점 그 자체를 드러내는 일이다. 1863년 고종 즉위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 다루면 조선은 왜 멸망했는가?’라는 주제에 자연스럽게 천착하게 된다는 저자들의 문제의식에 일정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1863년 고종 즉위부터 한국근대사의 범위로 다루는 문제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1863년부터를 근대사로 파악하면 고종 즉위와 흥선대원군의 집권시기를 근대화라는 당위성 속에서 역사를 해석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오히려 이 시기의 통치는 조선왕실의 권위를 되살리고 정조이전의 유교적 통치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 정조의 통치마저도 근대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역사서술이 난무했었기에 무슨 차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근대를 피할 수 없는 흐름이자 당위로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데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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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은 모든 챕터들을 질문으로 시작해 한국근대사의 주요 토픽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요 이슈들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계의 주요 논쟁지점들을 소개하고 그 추이에 대해서도 간략한 언급을 하고 있는 점에서 개설적이면서도 일정한 전문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더욱 높여주는 측면이 있다. 그런 책의 특징을 보여주듯, 부록으로 참고문헌 목록도 길게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조금은 아쉬운 점도 있다. 각 챕터별로 참고문헌을 나누어 소개하거나 논쟁별로 주요 논저를 소개해주는 형태를 가져갔다면 독자들에게 좀더 친절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등장한 이것만은 꼭!’ 보다도 이런 정리가 더 필요했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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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의 내용들은 정치사를 중심으로 서술되었지만 시대별 사회사, 문화사의 중요한 논의들도 빼먹지 않고 훑고 가고 있다. 그러나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게도 오류들이 보인다. 마지막 29번째 질문, ‘대한민국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에서는 일본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가짜로 몰기 위해 가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3.1운동 당시 격문에 가정부가 곧 수립될 것이라는 격문이 서울 시내에 뿌려지기도 했던만큼, ‘가정부는 거짓이나 가짜가 아니라 임시라는 뜻으로 해석하는게 옳다. 그리고 대한국민의회에서 손병희를 수반으로 한 별도의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는 설명은 최근까지도 교과서에 실려있지만 이미 1980년대 반병률 선생의 대한국민의회 연구에서 논박된 사실무근의 이야기다. 30년도 더 지난 오류를 전문 역사학자의 책에서까지 다시 본다는 점에서는 너무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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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자잘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은 쉽고 편하게 한국 근대사를 접하게 해준다. 이후에도 이런 작업이 다른 시대사, 다른 주제사로 확장되어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1. 대중은 아무래도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흑백이 명확하여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적은...

    1. 대중은 아무래도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흑백이 명확하여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적은 권선징악적 구도는 늘 시장성이 있다. 상업 예술의 성격을 띠는 영화 · 드라마 뿐만 아니라, TV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와서 똑똑한 체 하는 매체들조차 대개는 대중들의 머릿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는 상투족이고 도식적인 흑백논리의 구도에 도전하지 않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인기와 수익을 편안하게 얻는다.

      편찬 지침에 제약을 받는 역사 교과서의 목적론적 서술 또한, 일정 부분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는 면이 있어 차차 개선되어 가는 경향을 띤다고는 하나, 대체로 그 나름의 도식성을 띤다. '대중 역사학'과 공식 역사교육이 각기 보여주는 어느 정도 도식적이고 경직된 역사 이해는 가장 폐해가 큰 형태의 도식적 왜곡, 즉 민족주의의 탈을 쓴 사이비 역사학이 자라나는 토양이 된다는 점에서 문제는 한 층 더 복잡해진다.

      우리 시대의 주류 역사학이 지녀야 할 덕목은 이같은 도식적 이해들이 가져오는 폐해들 속에서 떠오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에, 현대의 주류 학문들은 학계라는 시스템의 검증과 비판을 거쳐서 생산되는 지식이라는 특성 때문에 역동성과 합리성을 지니게 되며, 재야의 개인들이 주류 학계를 편향성이나 보수성 등의 측면으로 비판할 수 있다 할지라도 결국 시스템 밖에 있는 한은 이 두 측면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주장컨대 주류 역사학은 역동성과 합리성을 무기로 대중을 유혹해야 한다. 즉, 주류 역사학은 흔히 사람들이 교과서에 대해 갖는 인식처럼 고정된 하나의 결론을 교조적으로 강요하는 경직된 상아탑이 아니라,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쟁점들에 관한 활발한 논쟁이 오고 가는 역동적인 '마당(場)'에 가까울 것이며, 바로 그 점을 통해 대중의 흥미를 자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논쟁의 마당에 제출될 수 있는 견해의 최소 원칙, 즉 사료 · 근거 중심의 합리성이라는 규칙을 매력적으로 소개하여, 대중의 역사에 관한 흥미가 생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 하나하나를 반박하는 것이 모기를 한 마리씩 잡아 죽이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면, 대중의 흥미를 주류 역사학으로 끌어당기는 일은 사이비 역사학의 토양 자체를 줄여가는 것으로서, 장구벌레가 자라는 웅덩이를 메우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내가 너무 사이비 역사학을 공격하는 문제를 많이 언급한 탓에 오해를 야기할 수 있을 듯한데, 이 리뷰에서 소개하려는 책이 실제로 사이비 역사학에 대한 문제 의식을 주제로 한 책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단지 내가 역사 교양서를 고르는 취향에 관해 말했을 뿐이고, 그와 관련하여 우리 시대 역사학의 당면 과제에 관한 생각을 말한 것이다.


    2. 이만하면 내가 역사학 관련 서적 가운데에서도 특히, 학계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쟁점들에 관해, 그 논쟁의 전선들과 입장들을 다양하게 소개해 주는 종류의 책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에 입각하여, 두 가지 점에서 이 책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이하 『질문 29』)를 칭찬한 뒤, 다시 네 가지 점에서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을 지적할 것이다. 내가 제시하는 이 책의 장점과 한계는 서로 대체로 대구를 이룰 것인데, 왜냐하면 장점으로서는 이 책이 내가 앞에서 제시한 과제들을 수행하고 있음을 지적할 것이고, 한계로서는 이 책의 모든 부분에서 그렇지는 않음을 지적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장점으로, 이 책이 도식적 이해의 타파를 시도하고 있음을 들고 싶다. 저자들은 이 책의 저술 취지를 '한국 근대사에 관한 결과론적 이해의 탈피'에 두고 있다. '실패하는 결말로 끝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읽을 때 우리가 빠지기 쉬운 결과론적이고 도식적인 이해를 벗어나기 위해, 저자들은 당대의 상황과 맥락에 밀착하여, 당대인들에게 있어 '할 수 있었던 것'과 '할 수 없었던 것'이 각각 무엇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하고 있다. 이같은 밀착을 통해 우리는 각각의 인물이나 사건들을 함부로 '좋은 것'과 '나쁜 것' 중 하나로 몰아 간단히 분류해버리려는 태도를 쉽사리 취할 수 없게 되며, '현실로서의 역사'가 갖는 복합적이고 모호한 속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 장점으로, 이 책이 논쟁의 지점들을 소개한다는 점을 들고 싶다. 사료가 부족하거나 연구 · 논의가 아직 덜 되어 학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쟁점들에 관해서, 교과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는) 언급을 피해버리고, 대중 매체는 구설이나 속설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곤 하며, 사이비 역사학은 상상력의 비약을 감행하여 성급한 결론을 강요하곤 한다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역사를 도식적으로 요약하는 이 세 입장들은 대체로 역사가 '완성된', '논쟁의 여지가 없는', '하나의 진실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조장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같은 지형에서, 이 책 『질문 29』는 주류 역사학을 소개하는 책이 지니면 좋을 미덕을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화법의 측면에서, 이책은 매 단락의 끝을 질문으로 맺음으로써 독자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계속해서 열어주고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이 책은 추론의 근거가 될 팩트를 디테일하게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의 상상력이 합리성을 잃지 않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인지를 섬세하게 안내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논쟁의 지점들과 쟁점들을 간략히 소개함으로써, 학계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역사학'이라는 분야가 완성된 채 굳건히 서 있는 성채 같은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성장해 가는 생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3. 이 책의 아쉬운 부분들을 지적하기에 앞서 미리 말하고 싶은 점은, 이 책의 장점들이 내 생각에는 비교적 보편적으로 동의할 만한 것인데 비해, 이 책의 한계라고 내가 지적하는 것들은 일부 특정 독자에게만 단점으로 작용할 듯하고 다른 어떤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이 부분은 이 책의 '한계'라기보다도 이 책의 '특징'이라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책을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 대해 내가 대체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한계 부분의 분량을 되도록 줄이려고 신경을 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량 상으로는 한계 부분이 더 많아질 듯하다.


    4. 첫 번째 한계. 나는 앞서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으로 '논쟁의 전선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이 '이런 쟁점들이 있다' 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기는 하나, 그 쟁점들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각 입장의 차이와 논박들을 밀도있게 살펴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독자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 책은 한국 근대의 통사를 의도한 책이 아니다. 한국 근대사의 지향점이 어떻게 변천하고 발전했는가를 추적한다는 테마에 비추어 중요한 사건 · 쟁점들을 뽑아 재구성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서술 범위로 설정한 1863년~1919년 사이의 굵직한 모든 사건들을 빼놓지 않고 모두 다룬 탓에, 어떤 챕터들에 있어서는 '논쟁'과 '재조명'이라는 흥미로운 요소들의 농도가 좀 옅게 느껴진다. 이런 챕터들에서는 새로운 관점이나 논쟁이 소개된다기보다는 단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사건들에 관한 추가적 사료와 디테일한 맥락이 소개되는 데 그치고 있어, 마치 이 책이 교과서를 보조하고 학습 흥미를 북돋기 위한 심화자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부분에 있어서는 그같은 '미지근함'이 더 심해지는데, 이는 이 시대의 역사 자체가 별다른 새로운 시각이 나올 여지가 없이 이미 사회적 합의가 굳건히 이루어진 역사로 여겨진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책이 교과서를 위한 심화 보조교재의 역할을 한다면 그게 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곧 그 책이 보다 다양한 교양 수준을 갖춘 폭넓은 독자들의 지적 흥미를 자극할 수 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깊은 수준의 논의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각자의 관심 분야를 찾아가기 위한 출발점이자 지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 책의 제목을 보면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들에 정면으로 도전할 듯한 진지함과 박진감이 느껴지는데, 그에 비해서는 내용이 다소 김이 샌다고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5. 두 번째 한계. 나는 앞서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이 '도식적 이해의 타파를 추구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고, 또한 이 책이 독자에게 단일한 결론을 강요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져주어 상상의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독자들에게 친숙한 현대사의 사건들을 비유나 예시로 들어 설명하는 방법을 자주 쓰고 있는데, 그 유비에 있어서는 또한 그 나름의 일관된 도식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돌리지 않고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들은 자유주의(리버럴)~범진보 스펙트럼을 정치 성향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며, 그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을 주 독자층으로 겨냥하고 있어서, 그 성향의 독자들이 자기 관점과 세계관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끔 글을 썼다. 이에 따라 저자들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상기시키곤 하는 현대사의 사건들은 일관되게 리버럴 성향의 독자들이 즐겁고 편한하게 읽을 수 있을 만한, 반면 보수적 성향의 독자라면 불편해 할 수 있을 듯한 사건들이다.

      분량 배분의 문제 때문에 구체적 예시는 되도록 생략하고자 하나, 한 가지 정도는 사례를 지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예컨대 저자들은 일제 강점기 무단통치 시기의 조선 총독 제령을 소개하면서 "유신 체제의 긴급조치처럼 모든 법 위에서 힘을 발휘"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런 식의 유비는 독자들이 한국 현대사의 보수 정치세력과 근대사의 일제 통치 당국을 연결지어 사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텐데, 이 유비가 담는 내용의 타당성과 더불어, 이같이 특정 정치세력에 관해 부정적 프레임을 부가하는 방식이 과연 정당한 토론 방식인가에 관해서는, 시각에 따라서는 이의가 제기될 수도 있을 듯하다.


    6. 세 번째 한계는 두 번째 한계와 양상이 동일하면서 방향만 반대쪽을 향하는 문제점이다. 즉, 저자들이 갖는 정치적 입장에 따른 도식적 유비는 오른쪽으로는 보수주의에 부정적 프레임을 부가하는 한편으로, 왼쪽으로는 급진주의 역시 겨냥한다.

      흔히 현대 정치를 보수 대 진보의 이파전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근대 정치의 발전사를 자유주의 사상과 제도의 발전사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른쪽으로는 보수주의와, 왼쪽으로는 급진주의와 바리케이드를 치고서, 각각의 진영과 화전 양면을 오가며 헤게모니 투쟁을 벌여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소위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패배가 입증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급진주의의 역사적 역할과 존재감을 비가시화해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별로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학자로서 취해야 할 과학적 접근 태도에 맞는 일인가 하는 점은 또한 별도로 생각해 볼 일이다.

      보수주의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대해서는 화낼 독자들이 많겠지만, 급진주의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제공한다고 해서 특별히 화낼 만한 독자들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그렇지만 저자들의 왜곡은 (저자들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무심코 한 것인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자유주의(리버럴) 정치 세력을 "우리 편"에, 그 외 나머지 모든 세력을 "저쪽 편"에 두는 이분법적 도식에 사실관계들을 끼워맞추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단지 급진주의에 대한 곡해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또한 이런 단순한 진영 구분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무수한 스펙트럼들에 대한 왜곡과도 관련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커진다.

      이 책 『질문 29』에서 급진주의와 관련한 도식적 이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은 두 곳이다. 하나는 김옥균과 갑신정변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변천을 다룬 3장 끝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11장에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운동의 실패 요인을 다룬 부분이다. 각각의 서술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며 또한 저자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같은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관해 이 서평의 초안에서 길게 서술했었는데, 한국 현대사의 정치 세력들에 관해 너무 많이 언급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 또 이 글의 전체적 논조가 잘못 이해될 소지가 큰 듯하여 퇴고 과정에서 생략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별도로 글을 써서 블로그에 게재하려 한다.


    7. 넷째 한계는 고증 오류가 의심되는 두어 개의 지점들이다. 먼저 27장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일대기를 다룬 이 장에서, 저자들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이 "민족주의를 배격"했고, 단지 극동 지역에서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군사적 · 지정학적 의도만으로 한인들의 항일 활동을 지원했다고 적고 있다. 내가 알기에는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볼셰비키의 입장과 방침은 레닌 시기와 스탈린 시기가 다르고, 각각이 집권했던 시기 속에서도 구체적 시점마다 변동이 있으며, 또 어느 한 시점의 방침을 살펴볼 때에조차 전술적 차원과 전략적 차원이 구별되기 때문에 각 지역 각 전선에 따라 살펴봐야 하는 등,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려운 성격을 띤다. 분량 상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디테일의 부족이 아쉬운 지점이다.

      일본 무단통치의 양상을 고발하는 23장에서, 저자들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일본처럼 고대부터 교류가 있던 주변 국가를 식민지로 만든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제의 통치가 다른 식민 제국의 통치와 구별되는 특수성과 잔혹성을 띠었다고 강조하고 싶은 듯한데, 정당한 논리인지는 고민해 볼 부분이 있다.

      타국을 점령해서 정치 · 경제 · 군사적 이들을 취하는 행태는 청동기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항상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대상은 당연히 어느 시기에나 주되게는 "고대부터 교류가 있던 주변 국가"였다. 예나 지금이나 물자 운송과 병력 동원은 거리가 멀 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세계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근대의 특정 시기에, 바다를 건너 이전까지 교류가 없던 '새로운 대륙'을 침탈해 식민지로 삼는 양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기술과 산업 생산력의 발달로 원양 무력 투사와 운송이 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럽 대륙 내부에는 이미 손쉽게 침탈할 만한 약소 독립국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식민 제국들이 "고대부터 교류가 있던 주변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주변 국가들은 대체로 해외 식민지 침탈이 본격화되기 이전 즈음에 이미 누군가의 속국이 되어 있었고, 대체로 '속국'과 근대적 '식민지'는 구별되는 개념이긴 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는 학자에 따라 그 기간의 규정이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해외 식민지 침략이 두드러졌던 시기만을 꼽아 '제국주의 시대'로 명명한다면 『질문 29』 저자들의 주장은 참이 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순환 논리의 소지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   ...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고종의 즉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 될 때까지의 기간동안 
    다양한 인물, 사건 등과 관련한 기존 역사적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은 

    1장 흥선대원군, 개혁가인가인가 망국의 원흉인가? 을 시작으로 
    29장 대한민국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 까지 
    총 29개의 질문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근대사를 다루었던 드라마, 영화들은 
    주로 특정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극적 재미를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첨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실제 역사로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은 단순한 역사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물,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과 평가를 담고 있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있고,
    좀 더 객관적이고 넓은 시선으로 근대사를 바라 볼 수 있게 해 준다.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역사탐구생활>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 했지만,
    방송에서 다루지 못했던 내용까지 잘 담겨있다.
    오디오 클립과 함께 읽으면 더 큰 재미가 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21장 안중근은 마지막 순간에 왜 
    ' 동양의 평화' 를 강조했을까?>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하게 된 배경, 
    안중근 의사 의거에 대한 다양한 평가, 
    안중근 의사가 죽기 직전 까지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동양 평화론>의 내용, 
    안중근 의사를 대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 평화론>을 주장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구체적인 내용은 잘 몰랐다. 
     
    안중근 의사가 주장한 동양 평화는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대등한 독립 상태에서 
    공존 하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어느 한 나라라도 독립하지 않으면 
    동양 평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양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였다.
     '동양평화회의' 운영, 
    동아시아 3국의 청년으로 군대를 편성하고, 
    공동 방위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 한 지 109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그가 주장 했던 <동양평화론>에 
    다시 한 번 깊은 감명을 느끼면서, 
    하루 빨리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뮤지컬 등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 되고 있고,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근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다.

    근대사를 쉽고,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있는 책으로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를 
    적극 추천한다.

    '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


  • -이 정도라도 잘 알 수 있다면 흔히 반만년이라고 부르는 한국 역사에서 근대사는 교과서 기준으로 정해봐도 약 1...

    -이 정도라도 잘 알 수 있다면

    흔히 반만년이라고 부르는 한국 역사에서 근대사는 교과서 기준으로 정해봐도 약 100년이 될까말까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 한국은 수많은 사건을 겪었고, 그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과거가 되어 연구와 교육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건을 인간이, 특히나 한국근대사 내지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 많은 사건을 다 알게끔 하는 것이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까요? '이 정도 질문쯤을 답할 수 있다면 충분하겠다'고 하려면 어느 정도 질문이 필요할까요? 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은 책이 여기에 있습니다.


    -두꺼운 분량, 가벼운 챕터
    이 책은 한국근대사에 중요한 부분 29가지를 집어내고, 그 주제의 제목을 질문으로, 내용을 답으로 설정하여 만든 책입니다. 29가지이고 간단히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분량이 꽤 두꺼워 보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실제로 이 책은 참고문헌 페이지까지를 합치면 무려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책입니다. 어찌보면 꽤나 두껍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제 서평을 여기까지만 보신 분들은 두려움에 읽는 것을 포기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걱정마십시오. 한 챕터만 떼놓고 봤을 때의 느낌은 이렇기 때문입니다.

    어떠신가요? 저 정도 챕터의 분량이라면 짬날 때 잠깐씩 잠깐씩 읽는다면 다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저도 이 책을 읽을 때 도서관에 각잡고 앉아 읽듯이 하지 않고, 그냥 심심하거나 시간날 때 조금씩 책 펼치는 식으로 해서 읽었었습니다. 즉 이 책은 모든 분량을 한꺼번에 묶어서 분량이 많은 것이지,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많은 양을 소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량의 압박은 잠시 잊으셔도 좋습니다.

    -친절한 한국근대사 번역서
    저는 비교적 최근부터 '역사도 번역이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역사적 맥락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배울 때에는 그 시기, 장소, 인간의 맥락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에 대해 잘못 이해하여 잘못된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맥락을 잘 배워서 이해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잘 전달해 줄 필요가 있죠. 둘째, 남의 역사적 평가가 진리가 아님을 인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번역은 최대한 그 의미를 잘 보존해서 전달하는 것이지만, 결국 번역자도 사람인지라 최종적으로는 번역자의 주관에 따라 완성되어 전달되게 마련입니다. 특히나 역사는 너무 한쪽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이전의 역사적 평가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의 역사적 평가를 할 것을 권장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처음엔 번역의 결과물로 역사를 배울지라도, 나중엔 번역의 결과물을 넘어서서 자기 스스로 나름의 역사관을 갖도록 하는 게 좋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근대사를 대중을 위해 잘 번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역사적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는 전통사회가 근대사회로 변모해가는만큼 두 모습이 혼재된 시기이고, 따라서 두 모습을 균형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점을 놓치지 않고 잘 설명했다는 점에서 좋은 책입니다. 가령 책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실시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쇄국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해금'이란 용어를 썼습니다. 해금은 중국 명나라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서 바다 출입을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한 후, 동아시아 모든 국가가 이 조치를 따르면서 확대되었습니다. (중략) 이러한 통상 정책은 조선 시기 내내 유지되던 방식이었고, 한중일 3국이 모두 시행했던 정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원군을 '쇄국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을 '민주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표현에 불과합니다. 해금은 보편적인 용어였고, '개국'과 '개방'이야말로 갑작스럽게 나타난 낯선 단어였기 때문입니다.'(pp. 24~25)

    또한 이 책은 한국근대사를 바라보는 것에 있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저자만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서 김옥균에 대한 챕터의 마지막 부분은 그러한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복잡하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 각자가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으로 쉽게 평가될 수 없듯이, 김옥균과 같은 역사적 인물도 한 면으로 단순하게 평가될 수 없다. 역사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김옥균을 이해하는 다양성과 깊이는 그만큼 우리 역사학이 성숙하게 된 증거가 아닐까?'(p. 74)

    -2권은 안 나오나요?
    이렇게 좋은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좀 의아했던 건, 이 책에서 한국근대사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 '1919년'을 마지막으로 끝난다는 점입니다. '한국사에서 근대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서로서로 다르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1945년까지를 근대로 정의하는데, 왜 그 이후에 대한 내용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한국근대사를 1919년까지로 정의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봤을 때에는 나중에 2권도 내려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내용을 한 권에 다 쓰긴 어려우니 두 권으로 나눠 내려는 것 같다는 것이죠. 이번에 이렇게 책을 잘 쓰셨으니 2권도 괜찮은 책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의 근대는 지금과 가까운 시기이긴 하지만, 그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기에 현재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런 의문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시려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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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이므로 단순 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는 판매정가의 20%를 적용

2) 중고도서 : 반품/교환접수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접수되어 상품 확인이 어려운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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