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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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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쪽 | 규격外
ISBN-10 : 8984059609
ISBN-13 : 9788984059603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중고
저자 윤덕노 | 출판사 더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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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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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좋습니다!좋습니다!좋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dot*** 2020.02.19
40 감사해요 상태가좋아요 5점 만점에 5점 manja1*** 2020.02.18
39 자세한 정보가 적혀있고 아쉬운점은 이미지가 한장도 없어요 5점 만점에 3점 sujen*** 2020.02.18
38 배송이 빠르고 책 상태도 좋아요 5점 만점에 5점 hoogl*** 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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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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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의 최전선,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음식 인문학 만찬
“식사는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신화와 민담, 떠도는 소문부터 정통 역사서의 기록까지
대륙을 만든 음식에 관한 권위 있는 분석

중국은 중화주의를 말하지만
음식은 진실을 말한다

14억 명에 육박하는 인구 대국 중국. 한때 ‘메이드 인 차이나’는 신용이 떨어지는 값싼 공산품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좀 달라졌다. 중국이 향후 경제, 문화 전반을 주도하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알리바바를 비롯해 IT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선진국 제품의 카피캣에 그쳤던 휴대전화, 컴퓨터 등도 점점 진일보한 성능을 보이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모른다. 퇴근 후 양고기 꼬치를 먹으며 꿔바로우를 주문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지만 우리에게 중국은 그저 붉은색을 좋아하는 넓디넓은 나라, 진시황과 만리장성으로 유명한 나라, 혹은 한때 우리가 큰형님으로 모셨던 나라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소설 『삼국지』나 고전 역사서를 통해 알게 모르게 중화주의 사상에 사로잡혀 중국을 바라보는 일이 많다.
일례로 우리는 서역의 흉노족을 오랑캐, 중원의 한족에 비해 문명이 뒤떨어진 야만적인 유목민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흉노족이 살았던 서역은 자원이 풍부한 땅이었고, 한 무제 때 개척한 실크로드는 중원의 앞선 문물이 서역으로 흘러간 경로가 아니라 서역의 풍부한 자원과 문화가 중국으로 흘러들어온 통로였다. 중국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은 역사만 해도 극히 짧다. 명나라 이전까지 웬만한 중국인은 돼지고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돼지고기는 서민의 고기, 천민의 고기였다. 중국인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게 된 과정을 보면 북방 유목민과 남방 농경민 간 대립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는 하, 은, 주 시대부터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중국인이 즐겨 먹은 음식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는 책이다. 생선, 양고기, 복숭아 등 중국인이 신성하게 여기는 음식. 훠궈, 동파육, 돼지고기 등 지배층의 통치 원리를 엿볼 수 있는 음식. 소주, 후추, 고구마 등 국제정세와 문화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음식…. 일반 백성부터 고관대작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의 식탁에 오르내렸던 음식을 통해 오천 년 중국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본다. 복잡한 연표나 황실의 계보 등이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중화주의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음식으로부터 출발해 ‘무엇이 중국인을 살찌웠는가’를 역추적하는 것이 중국의 진면모를 살피기에는 최적의 방법일 수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윤덕노
신문기자를 거쳐 음식 문화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해 사회부장, 국제부장, 과학기술부장, 중소기업부장과 부국장을 역임했다. 매일경제신문 중국 베이징 특파원과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학교 객원 연구원을 지냈다.
25년 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요리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고 공부했다. 그동안 모은 방대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음식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관련 스토리를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해왔다. 『음식잡학사전』 출간을 계기로 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선 시대의 각종 문헌과 중국 고전에서 원문을 확인하고 그리스 로마 고전에서 근거를 찾아 세계의 음식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음식이 상식이다』『하루 한입 세계사』『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차이나 쇼크』 외 다수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나쁜 세계사』『장자 내려놓음』『유럽의 세계 지배』 등이 있다.

목차

서문_ 모든 식탁은 역사로 통한다

1장 중국을 만든 음식
하은주_ 고대 중국에서는 요리사가 재상
하은주_ 중국인의 조상은 물고기?
춘추전국_ 귤 한 상자면 떼부자
한_ 황제는 하루 네 끼, 제후는 하루 세 끼
한_ 조개가 돈으로 쓰인 내력
위진남북조_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치다
수당_ 오랑캐는 우유, 한족은 차
송_ 송나라 경제와 국수 천국
원_ 월병과 토란, 중추절 음식이 까닭?
명_ 황제의 밥상에 오른 돼지고기
청_ 만주의 귀족들, 샥스핀에 빠지다

2장 역사를 바꾼 음식
하은주_ 중국, 식탁에서 이뤄지는 정치
춘추전국_ 서역에서 전해진 복날과 그 의미
한_ 한나라 경제를 일으킨 실크로드
한_ 서양보다 더한 향신료 열풍
수당_ 양귀비가 호떡 맛에 빠진 이유
원_동서 교류가 만들어낸 소주, 배갈
명_정화함대와 명나라의 후추 무역
청_13억 인구 증가의 일등공신, 고구마
청_몽골 귀족의 접대 음식, 훠궈

3장 오해와 진실을 밝히는 음식
하은주_ 양고기의 나라, 고대 중국
삼국_ 복숭아밭에서 도원결의를 한 이유
삼국_ 계륵으로 본 조조의 진짜 모습
삼국_ 제갈공명의 만두 발명설
위진남북조_ 송강 농어에 담긴 남북조의 역사
위진남북조_ 동지팥죽과 양쯔강 민초의 삶
수당_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 돼지족발
수당_ 두보가 소고기 과식으로 죽은 사연
송_ 12세기 송나라 여름은 빙수 천국
송_ 동파육을 통해 본 한족과 북방 민족의 갈등
명_ 갑자기 사라진 중국 생선회의 미스터리
청_ 만한전석과 청의 통치술

책 속으로

훠궈 중에서도 제일 독특하고 이색적이어서 인기가 높은 홍탕은 사실 최악의 조건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홍탕인 충칭훠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청나라 말기 도광제 때 발달했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 시절인 1920년대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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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 중에서도 제일 독특하고 이색적이어서 인기가 높은 홍탕은 사실 최악의 조건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홍탕인 충칭훠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청나라 말기 도광제 때 발달했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 시절인 1920년대에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양쯔강과 자링강(嘉陵江)이 만나는 쓰촨성 충칭의 부둣가에서 일하던 노동자, 특히 배를 밧줄에 묶어 흐르는 양쯔강 물결을 거슬러서 소처럼 배를 끌고 올라가는 선부들이 먹었던 음식이 홍탕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한마디로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고 가난했던 막일꾼들의 음식이었단 얘기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이들이었으니 제대로 된 고기를 사 먹을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때문에 내다 버리다시피 하는 소 창자와 천엽, 그리고 오리 내장 등 부스러기 고기를 긁어모아 잠깐 쉬는 틈에 펄펄 끓는 육수에 데쳐 먹고는 서둘러 일하러 갔던 것인데, 이런 전통이 남아 있기에 지금도 충칭훠궈의 재료로 소의 천엽과 내장 등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본문 211~212쪽

중국은 만두와 국수의 나라다. 그런 만큼 보통 중국인들은 만두와 국수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져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말한다. 심지어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도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를 다녀간 후 전파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원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에서 만두와 국수가 발달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다.
빵과 국수, 그리고 만두는 모두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다. 서양에서 최초의 빵은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어졌다. 원시적 형태겠지만 기원전 10세기 이전으로 추정한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도 빵을 먹었다. 중국에서 한나라가 세워지기 이전의 일이다. 그런데 같은 밀가루 음식임에도 중국인들이 국수와 만두를 먹은 시기는 훨씬 늦다. 우리가 아는 국수는 당나라 내지는 송나라 때 처음 생겼다. 만두 역시 한나라가 망한 후, 그것도 삼국 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만들어졌다.
-본문 247~248쪽

동양인은 언제부터 음식에다 시험 통과의 소망을 담아 먹기 시작했으며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남아 있는 기록은 없으니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를 토대로 추측해보면, 아마 당나라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 먹었다는 돼지족발이 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나라 때는 과거 시험이 끝나 장원 급제자가 나오면 붉은색 먹으로 급제자의 이름과 답안지 제목을 적어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에 있는 대안탑에다 붙였다. 이렇게 장원 급제자의 이름과 시제를 붉은 글씨로 적은 대자보를 ‘주제(朱題)’라고 했다. 중국어로는 ‘주티’다. 그런데 이 주티(朱題)와 돼지족발을 뜻하는 ‘주티(猪蹄)’가 발음이 같다. 그렇기에 과거를 보러 가는 당나라 선비들이 돼지족발을 먹으며 장원 급제해 자기 이름과 답안 제목이 붉은색 먹으로 쓰여 대안탑에 내걸리기를 소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나라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풍속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중국 일부 지방에서는 시험 볼 때 합격을 빌며 돼지족발을 먹는다. 돼지족발의 유래가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당나라 때 과거에 급제하면 붉은색으로 이름과 시제를 적는 주제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본문 269~270쪽

과거 중국에서는 어쩌면 나름 냉방장치를 갖춘 곳에서 빙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21세기의 우리 못지않게 더위를 잊고 시원하게 지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극소수의 황제와 귀족, 부자한테 해당되는 이야기다.
옛날에도 무더운 여름이면 제후와 귀족, 부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더위를 식혔다. 하지만 단순히 계곡을 찾아 찬물에 발 담그고 부채질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왕(韓王)은 여름이 되면 차가운 음식을 찾았다. 세자가 사재를 들여 얼음방을 만들고 국과 반찬을 저장했다가 차가워지면 왕에게 바쳤다.”
이는 『천록각외사』라는 문헌에 실린 내용이다. 여기서 한왕은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무렵 전국 시대 한나라의 왕이다. 2300년 전 여름에 지금의 냉장고처럼 얼음 가득 채운 방을 만들어 음식을 보관했던 것인데, 특히 주목할 부분은 사재를 들여 얼음방을 만들었다는 대목이다.
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벌써 시장에서 얼음이 유통되고 있었다는 것이니 돈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
요즘 호텔 연회장에서나 볼 수 있는 얼음 조각, 아이스카빙(ice carving)도 당나라 때 등장한다. 양귀비 덕분에 출세한 양귀비의 오빠 양국충과 그 아들은 분에 넘치는 부와 권력을 자제할 줄 몰랐다. 당나라사람 왕인유가 현종 때의 풍문을 모아 기록했다는 『개원천보유사』에 양국충 일가의 피서법이 실려 있다.
해마다 여름 복날 무렵이면 양국충의 아들이 얼음산을 만든 후주변에 좌석을 배치해 연회를 열었는데 자리에 앉은 손님들은 한여름 삼복더위에도 추위에 떨며 술잔을 기울였다. 또 장인을 시켜 얼음으로 봉황과 여러 동물 형상을 조각한 후 금띠로 장식해놓고 왕공대인들과 여름을 보냈다고 하니 얼음 조각이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한 셈이다.
-본문 291~293쪽

과거 시험이 평민들에게는 이무기가 용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황제에게는 인재를 발굴해 관리로 중용함으로써 세습 호족의 세력을 견제해 왕권을 강화할 기회이기도 했다.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면 당장 관청이나 황제가 마련한 잔치가 줄줄이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 신분이 달라졌음을 바로 느낄 수 있도록 극진히 대우했다. 당연히 선발 과정도 엄격했는데, 초창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쳐서 개그의 소재로 삼을 만한 정도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예전에는 공부는 많이 했지만 별 볼 일 없는 지식인을 비꼬아서 말할 때 먹물깨나 마셨겠다며 비아냥댔다. 오징어 먹물도 아니고 붓글씨 쓰는 먹물을 마신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지만, 이는 실제로 과거 시험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벌칙으로 먹물을 마셔야 했던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남북조 시대 북제 때 있었던 일이다. 북제는 550년부터 577년까지 불과 27년을 존속했던 나라지만, 수나라에서 과거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벌써 옛 북위의 제도를 이어받아 인재 선발 고시를 실시했다. 각 군현에서 인재를 추천받아 황제 앞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재와 효렴 같은 시험이었는데 이때 황당한 일이 있었다. 황제가 조정에 앉아 친히 시험을 주재했는데, 글씨를 제대로 못쓰는 자가 있으면 일으켜 세워 벌로 먹물 한 되를 마시게 했고, 글자 중에 문장이 제대로 안 될 정도로 탈자나 오자가 있으면 답안지를 추적해 역시 먹물 한 되를 마시도록 했다. 『수서』 「예의지」에 나오는 기록이니 먹물깨나 마셨겠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라 역사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문 273~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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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오천 년 중국사의 흐름이 보이는 32가지 음식 이야기 역사는 음식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생생한 입체감을 더하게 된다. 중국 황실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에 난데없이 호떡이 등장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756년 안녹산이 반란군을 이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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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년 중국사의 흐름이 보이는
32가지 음식 이야기

역사는 음식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생생한 입체감을 더하게 된다. 중국 황실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에 난데없이 호떡이 등장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756년 안녹산이 반란군을 이끌고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피란길에 나선 현종과 양귀비는 허기를 달래고자 양국충이 사다 바친 호떡을 먹었다. 왜 하필 호떡이었을까? 호떡의 뿌리는 서역의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난이라는 밀가루 빵인데,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 호떡이 전해지면서 중원의 상류층에는 오랫동안 호떡 열풍이 불었고 한나라 제12대 황제인 영제는 매일 호떡만 먹다시피 하고 살았다. 호떡이 길거리 간식이 아니라 상류층의 별미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실크로드가 열린 이후 서역의 문명과 문화가 중원보다 앞섰거나 최소한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이 책은 절대적으로 중국의 역사만을 잘라내어 마치 모든 문물이 중국을 기점으로 세계로 퍼졌다는 중국 중심주의 세계관을 지양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2장에는 소주, 후추 고구마 등 중국의 국경을 넘나든 음식들을 통해 당시 세계정세와 정치, 경제, 문화 교류의 역사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일례로 15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대항해 시대 개막은 향신료 무역이 직접적인 동기였고 그 중심에는 후추가 있었다. 중국에서도 후추가 서양 못지않게 귀하고 비싼 것은 마찬가지였고 후추에 열광했던 것 역시 서양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중국에서도 15세기에 후추를 찾아 대항해를 떠났고 그 결과 후추를 비롯한 대량의 향신료를 확보했다. 후추 덕분에 건국 초기의 명나라는 안정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지만, 후추로 인한 권력다툼 때문에 명나라가 쇠약해졌다. 후추가 중국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1971년, 중국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비밀 협상을 통해 화해와 수교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식사 자리에서 나온 베이징 오리구이 덕이 컸다. 팽팽한 긴장과 줄다리기 속에 깨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협상이 점심 식사를 기점으로 화해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미국 특사 헨리 키신저에게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밀전병에 오리구이를 싸주며 베이징 오리구이를 먹는 법과 유래에 관해 설명하면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이다.

문화와 철학, 풍속과 시대가 녹아 있는
본격 식사 인문서

이 밖에도 생선, 양고기, 복숭아 등 중국인이 신성하게 여기는 음식을 통해서 고대 중국부터 이어져 내려온 중국 문화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모습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반 상식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우리가 아는 중국은 어쩌면 진짜 모습이 아닌 고정 관념으로 보는 허상, 중국이 됐건 혹은 우리 스스로가 됐건 실체가 아닌 관념 속에서 빚어낸 가짜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규정한다는 뜻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한 시기를 풍미한 음식들은 그 자체로 긴밀하게 정치,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원초적인 코드가 된다. 음식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명동, 홍대 등 번화가 거리 곳곳에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중국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이 있다. 상식으로서의 중국사를 쉽게 공부하고 싶다면, 중국이란 어떤 나라이며 진정한 중국다움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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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kk**dol8 | 2020.01.1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 중 하나는 '만불은 드물면 귀하다'는 것이다. 귤이 왜 귀하고 드물었는지는 '강남 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 중 하나는 '만불은 드물면 귀하다'는 것이다. 귤이 왜 귀하고 드물었는지는 '강남 귤이 강북 가면 탱자 된다'는 고사에서 알 수 있다. 강남 귤과 강북 탱자는 춘추 시대에 초나라 영왕이 사신으로 온 제나라 재상 안영을 모욕하는 과정에서 나온 멀이다, 영왕이 안영을 만날 때 마침 포스에 묶인 죄인이 지나갔다. 죄목을 묻자 제나라 출신인데 도적질로 잡혔다고 했다.영왕이 보란 듯 "제나라 사람은 모두 도둑질을 잘하냐?" 고 물으니 안영은 "강남 귤을 강북으로 옮기면 탱자가 되는데 그건 토질과 물이 다르기 때문이다"라며 "제나라에서는 도둑질을 몰랐는데 초나라에서 도둑이 된 것을 보면 초나라 풍토가 나쁜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35-)


    우리가 보통 서쪽 오랑캐라고 알고 있는 서융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중국은 전통적으로 화하족 후예인 한족이 땅을 세계의 중심으로 봤고, 중원을 둘러싼 사방에 동이, 북적, 서융, 남만의 이민족이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날 그들의 이름이 주로 오랑캐를 말할 때 쓰이지만,실상은 후대에 중화사상의 뿌리가 깊어지면서 덧씌워진 편견일 뿐이고, 고대에는 단순히 동서남북에 사는 부족을 부르는 명칭이었다고 한다. (-137-)


    세사람이 도원결의를 한 장소는 장비가 살았던 탁군이다. 현재 지명으로는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허베이성 탁주이다. 지금은 이곳에서 복숭아밭을 찾아보기 힘들지만,예전에는 북숭아밭 천지였다고 한다. 그러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때는 봄날이고 주변은 온통 복숭아밭이었기에 그곳에서 의형제를 맺는 의식을 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인의 의식 구조에서 형제의 의를 맺는 장소로 사과밭이나 배밭, 대추밭이나 감밭은 어울리지 않는다.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에 맹세하는 의식이었기에 오직 복숭아밭이 적합하다. 성이 서로 다른 세사람이 형제의 의를 맺었다는 결의가 핵심인데 후세 사람들이 그레 못지않게 복숭아밭이라는 장소, 즉 도원을 강조하는 이유다. (-228-)


    만한전석은 산해진미를 모두 모아놓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화합과 단결의 잔칫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만주족인 청나라 황제가 지배 계층인 만주족과 관리자로 등용한 피지배 계층인 한족 관리의 화합을 위해, 만주족 전통 요리와 한족 전통 요리를 모두 차려놓고 즐겼다는 잔칫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와 달리 만한전석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적지 않다. 양적으로는 화려하고 풍부했을지 몰라도 질적으로도 최고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주족과 한족 화합의 잔치라는 지점은 당시 참석한 만주족과 한족이라면 모두 동의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319-)


    중국의 역사를 보면 흥미롭다. 그건 그들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와 겹쳐지기 때문이다.특히 중국은 13억 인구의 거대한 땅덩어리가 있으며, 50여 소수 민족과 함께 하고 있었다.그래서 음식도 지역마다 각기 다르고, 그 맛은 그 지역의 풍습과 기후, 그리고 그들의 삶의 양식을 따르게 된다. 2019년 5월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 보았고, 왜 중국의 음식에 관한 역사를 살펴 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사에서 아프리카 대륙은 가난한 나라들이 모인 거대한 땅덩어리 대륙으로 인식하고 있다.그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어느정도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 채 300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건 가난과 기아, 기근에 시달렸고,여기에 더해 전염병 출몰이 일어나면, 시체로 온 전역을 뒤덮은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가 된다. 특히 중국에서 청나라 때 고구마는 아주 중요한 작물로서 중국의 인구 팽창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기후 변화에 강하고, 밥과 쌀을 대신하는 구황작물로서 고구마가 가지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중국인이 즐겨먹었던 생선회는 그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에 전염병이 출몰하여,혹사병과 같은 질병이 나타나면,가장 먼저 가리는 음식이 생선회 수요였다.그만큼 중국인들에게 생선회는 중요한 먹거리지만, 죽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다의 해산물,지역에 따라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곳과 해산물을 먹기 힘든 곳이 있다. 지금처럼 냉장 보관이 어려웠던 그 시대에 해산물으니 휘귀 음식이며, 상류층이나 먹을 수 있었다.향신료도 마찬가지이다. 돈이 있었던 상류층이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릎쓰고 실크로드 길을 따라간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맛이 없었던 음식에 향신료가 주는 효과는 그 시대에 사람들의 욕구였고, 욕망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책을 읽으면,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청나라와 명나라의 화합을 위해서 그들은 음식을 활용하였고, 맛은 없지만 제비집은 그 시대의 상류층에게 허용되는 음식이었다.돼지고기를 즐겨 먹었고, 두보는 소고기를 잘못 먹어서 죽게 된다. 양고기가 귀했던 중국인들에게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대접하는 음식이다. 반면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을 보면 과거의 그들의 삶과 비교할 때 절대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로인해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환경 오염과 싸우고 있다.

  •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kk**dol8 | 2019.05.1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200년 전 조식이 아버지 조조에게 바친 전복 200개와 조비가 오나라 사신에게 준 전복 1000개의 가치를 미루어 ...


    200년 전 조식이 아버지 조조에게 바친 전복 200개와 조비가 오나라 사신에게 준 전복 1000개의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송나라 이후 또 1500년이 흐른 17세기 명나라 무렵,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으니 전복 구하기가 옛날처럼 어렵지도 않았을 텐데, 이때도 전복은 여전히 쉽게 먹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p52)


    "옛날 요순시대에 팽조는 800세까지 살았다는데 이는 얼굴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폐하 생일 잔칫상 국수를 보니 가늘고 긴 것이 평조 얼굴보다 몇 배나 더 긴지 모르겠습니다. 주방장이 폐하의 만수무강을 빌며 이런 국수를 만든 것 같습니다."(p79)


    기원전 2세기 장건이 서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를 처음 열었을 때 전해진 새로운 종자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참깨는 원산지가 중동이다. 장건이 서역엣서 돌아올 때 종자를 가져와 퍼뜨렸다고 하는데 이후 동양에서는 참깨가 불로장수 식품으로 통했다.조선 후기의 '산림경제'를 보면 참깨를 신선이 먹는 음식이라며 불로장생의 비약으로 여겼던 기록이 있다. (p154)


    필리핀 루손섬을 떠난 그는 일주일 동안의 항해를 거쳐 고향인 푸젠성으로 무사히 돌아와 고향 땅에 고구마를 심었다. 혹시 풍토가 달라 고구마 종자가 잘 자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와 달리 푸젠성의 기후와 토양에 잘 맞았는지 고구마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때가 명나라 신종 때로 15923년 무렵이다. (p203)


    15세기부터 향신료 무역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시작된 대항해시대의 중심에는후추가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른 인도 항로의 발견, 1519년 스페인을 출발해 필리핀을 찍고 1522년 스페인으로 되돌아온 마젤란의 세계일주가 모두 값비싼 후추를 비롯해 다양한 향신료를 찾아 떠났던 새로운 항로 개척 여행이었다. (p185)


    한자를 보면 조개 패가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부수에서도 많이 나온다. 과거 조개는 화폐대용수단이었고, 귀한 음식이다. 지금으로 치면 조개 하나가 건물 한채에 맞먹는다. 중국의 역사에서 조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삼국지에서 조식이 아버지에게 바친 조개의 값어치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고 있다. 조개의 경우에서 보듯이 지금은 널리 먹고 대중화 되었지만 처음에는 비싼 음식이었고,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후추는 중국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서 후추를 얻기 위해서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무역을 통해 돈을 벌려고 했던 상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콜럼버스는 미지의 땅에 상륙하게 되었고, 역사를 바꾸게 된다.그런데 유럽인들이 추구했던 후추는 중국에서도 비싼 제품이다. 그건 후추가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향신료였지만 사람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여서이다. 


    겨울이면 빠지지 않는 고구마가 우리의 식탁에 널리 사용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과거에 각 나라마다 종자를 사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고구마의 종자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책에서는 고구마가 중국의 인구를 증폭시키게 된 계기라 말하는데, 그 이유는 고구마가 보급됨으로서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되자 전쟁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게 되엇고, 풍복한 삶 속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전쟁과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으며, 이 책에는 전쟁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보고 있다.

  • ♡  재미있는 관점으로 중국사 훑어보기,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

    ♡  재미있는 관점으로 중국사 훑어보기,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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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책과 마주하다』

     

    한 나라의 문화·역사를 엿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장소, PLACE이며 그 외 또 다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음식, FOOD이다.

    시중에 역사책은 많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식이란 소재로 중국의 역사를 쭉 훑어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겠는가!

     

    춘추전국시대에 귤 한 상자만 있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만주의 귀족들이 푹 빠진 음식이 샥스핀이다?

    양귀비가 죽기 전 먹은 음식이 호떡이다? 청나라 시절, 중국의 13억 인구 증가의 일등공신이 바로 고구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실일까?

     

    홍콩, 광저우와 항저우 등지에서 사는 중국인들은 새해 춘절이나 중추절 명절에 귤과 유자를 먹는데 심지어 유자 껍질을 우려낸 물로 세수를 한다고 한다.

    왜 껍질을 우려낸 물로 세수를 하고 유자 분재를 선물하는 것일까? 알다시피 중국은 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황금을 닮은 유자와 귤이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어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의미에서이다.

    춘추 시대 이전에는 귤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과일이어서 중국에서 또한 남쪽 나라에서 나오는 귀한 과일이었던 귤은 최상의 과일이었다.

    또한, 전국 시대 초나라에서만 자랐던 과일이라 드물고 귀했기에 귤은 천자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

    감귤천수(柑橘千樹)라는 말이 있다. 후손을 위해 1000그루의 귤나무를 심었다는 뜻인데 「사기」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오나라 단양태수 이형이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귤나무 1000그루를 심어 남겼다고 한다. 당시 전란이 잦아 부자들은 재물을 뺏기고 목숨까지 잃었지만 이형의 후손들은 가진 재물이 없었기에 무사히 전쟁을 넘겼고 1000그루의 귤나무가 열매를 맺으면서 대대손손 부자로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고대 중국에서 귤의 위상을 생각하면 귤나무 1000그루는 재벌 수준의 자산 가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당나라 무렵, 중국에서 호떡과 두부는 크게 퍼져 역사책이나 시문집을 보면 왕과 귀족부터 문인들까지 호떡 맛에 푹 빠졌음을 알 수 있다.

    호떡과 두부가 당나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싶지만 당나라 때 실크로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호떡과 두부의 역사를 알면 중원과 서역의 관계뿐 아니라 음식 문화 교류의 역사 또한 알 수 있다.

    양귀비 또한 예외없이 호떡을 좋아했는데 얼마나 좋아했으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움식 중 하나가 호떡이라고 한다.

    안녹산과 반란군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급하게 피란길에 오른 현종과 양귀비 일행이 배고파하자 시장에서 호떡을 구해왔다는데 호화롭게 생활한 왕과 귀비의 마지막 식사가 호떡이라 초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이야 호떡은 길거리 음식에 속하지만 당시 호떡은 길거리 음식이 아니였기에 시장에서 호떡을 구해왔다는 것은 당나라 상류층의 음식 문화와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음식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중국의 역사를 훑어보는 내내 너무 재미있었다.

    이 외에도 실크로드, 향신료 그리고 복숭아밭에서 도원결의를 한 이유 등 음식을 통한 시대별 역사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음식이 중국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중국사를 재미있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다면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ck**09 | 2019.05.1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탕수육 과 꿔바로우 탕수육 부먹과 찍먹파들이 온라인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치루는 세상 입니다. 그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탕수육 과 꿔바로우 탕수육 부먹과 찍먹파들이 온라인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치루는 세상 입니다. 그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중화요리 입니다. 음식 하면 바로 중화 요리겠죠. 전세계적으로 탑으로 손꼽을 정도로 중국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명만큼이나 음식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중국 음식에 대한 역사서이자 반대로 음식으로 풀어본 중국사입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의 제목만 보고서 음식과 역사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바로 이 책이다’라고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아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저자는 신문사 특파원으로 경험한 중국 그리고 음식문화 연구를 하면서 공부한 중국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 혹은 문학과 문화를 통해 배운 중국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서 새로운 각도에서 중국 역사를 들여다보자고 생각하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즉 중국의 대표적인 음식 32가지를 중국을 만든 음식과 중국 역사를 바꾼 음식 그리고 오해와 진실을 밝히는 음식 등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2장 ‘역사를 바꾼 음식’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호떡의 뿌리가 서역의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난이라는 밀가루 빵이라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호떡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원의 상류층에는 오랫동안 호떡 열풍이 불었고 한나라 제12대 황제인 영제는 매일 호떡만 먹다시피 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안록산의 난으로 피란길에 오른 양귀비는 부하가 구해온 호떡을 먹은 뒤 죽을 때까지 호떡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나라 재상인 '천관총재(天官ņ宰)'가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쓸 음식을 마련하는 직책이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중국에서 재상(宰相)은 원래 요리사였다고 합니다. 먹는 것이 하늘[以食爲天]인 까닭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는 일이 재상의 역할이었고 보니 한자 '재상 재(宰)'자는 '집[Ů]' 아래에 '매울 신(辛)'자를 쓰는 주방을 맡은 사람이란 뜻이 있습니다.


     


    중국 음식 하면 떠오르는 돼지고기는 명나라 이전까지는 하층민과 서민들만이 즐기는 음식이었으나 서민 출신 주원장이 명을 세운 뒤 돼지고기가 황제의 식탁에 오름으로써 전 중국인의 음식이 됐었습니다. 주원장 이전에 중국 상류층의 대표 고기는 양고기였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16세기 명나라 말기 여러 경로로 중국으로 들어온 고구마는 기근으로부터 중국을 구해 내 현재의 인구 대국 중국을 낳은 음식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고구마로 기근을 넘긴 중국의 인구는 청나라 강희제때 1억 명을, 건륭제때 3억 명을 넘어섰고 도광제때 4억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이 책은 중국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생선·양고기·복숭아부터 통치 원리를 엿볼 수 있는 훠궈·동파육·돼지고기, 국제정세와 문화 교류 흔적이 남아있는 소주·후추·고구마 등 하(夏)·은(殷)·주(周)나라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식탁에 오르내린 음식을 통해 중국의 5,000년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무엇이 중국인을 살찌웠나’를 역추적해야 중국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음식이 가져온 변화와 역사의 변화가 반영된 음식 모두 담긴 흥미로운 책입니다.


     

  •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di**ni | 2019.05.15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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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난출판 /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윤덕노 지음



    몇 해전부터 음식과 관련된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음식과 관련된 책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흥미를 끌었던 것은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역사속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몇천년 전엔 황궁에서만 먹던 고급 음식이었거나 이름만 들어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좋아했던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 등은 두고두고 풀어도 지치지 않고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는 중국 역사 속에서 찾아보는 음식 이야기인데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마냥 우호적이지만도 않은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음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읽다보면 저자의 방대한 중국 지식에 감탄하게 된다.

    중국을 만든 음식과 역사를 바꾼 음식, 오해와 진실을 밝히는 음식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데 생선하면 중국보다는 일본이 떠오르는 이미지를 깨고 물고기에 대한 전설이나 물고기를 대하는 중국인들의 자세를 통해 먹는 음식으로서의 물고기의 이미지를 타파한 다양한 이야기가 중국 역사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조기를 선호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조기보다 황금빛을 더 띄며 크기도 큰 짝퉁 조기인 부세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이야기는 역시 중국인답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기도하지만 물고기를 통해 재앙을 점친다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황당할 수도 있지만 역사속에서 지구의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 동물들의 이상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했다면 터무니 없이 들리지만도 않을 이야기들이라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도 꽤 많았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물고기나 뱀이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모계 사회가 부계 사회로 바뀌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엔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라 더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서역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호떡이 양귀비가 마지막에 먹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다가왔는데 지금으로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호떡의 이미지와는 다른 중국식 화덕 호떡은 양귀비가 피난길에 올랐을 때 시장에서 사와 당시 시대로서도 흔하게 먹을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깨고 고위층이 먹었다는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다.

    같은 동양권이라 그런지 문화와 음식의 역사가 이질감없이 다가와 가까이 있는 차이나타운에서 보게되는 음식들을 볼 때마다 음식으로 보는 중국사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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