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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의 흡연
275쪽 | A5
ISBN-10 : 8984312487
ISBN-13 : 9788984312487
마라토너의 흡연 중고
저자 조두진 |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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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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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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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조두진의 신작 소설집. 현대인들의 일상의 이면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경찰서장과 어린 검사의 미묘한 심리 이야기부터 담배를 피기 위해 마라톤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 설날에 집으로 들어온 족제비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 손톱에는 암이 없다고 투덜대는 의사들의 이야기 등 현재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혹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표제작 <마라토너의 흡연>의 주인공 '채'는 돈이 거의 들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할 수 있다며 마라톤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써브 쓰리'(두 시간대의 완주)를 위해 식사 조절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까지 챙겨 먹지만, '채'는 영양소가 많고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맛이 없다며 거부하고, 몸에 안 좋다는 커피까지 열심히 마신다.

<7번 국도>는 가출소를 앞둔 소년원 아이들의 행사에 동행하게 된 경찰 서장과 어린 검사의 미묘한 심리를 그리고 있다. 회를 먹으러 가는 그들에게 교통위반 딱지를 떼는 대신 돈을 요구하는 교통경찰이 나타난다. 결국 작은 돈 때문에 차에서 내려 난리를 친 서장은 교통경찰의 명찰을 떼고는 가버리고, 교통경찰은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통사정하며 쫓아온다. 검사는 그 일련의 사건들을 흥미롭다는 듯 구경하며 이죽거린다. 이밖에 <족제비 재판>, <아름다운 날들> 등 위트와 유머와 허무가 뒤섞인 인물들의 독특함을 만날 수 있다.

저자소개

조두진
경북 안동의 400년 전 무덤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장편소설 《능소화》(2006)를 썼다. 임진왜란 당시 순천 왜교성에 주둔했던 일본군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마지막 1년’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도모유키》(2005)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을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의 창사기념 잔칫날 하루 이야기를 담은 〈게임〉(2001)으로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다.

목차

7번 국도
마라토너의 흡연
아름다운 날들
족제비 재판
정력가
돼지
손톱

해설 / 강유정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채는 출발 대포 소리와 함께 의붓아들의 인터넷 중독에 대해 생각했다. 또 종일 인터넷에 매달리는 아들의 습관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하는 아내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전에 카드로 치른 술값이 과하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으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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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는 출발 대포 소리와 함께 의붓아들의 인터넷 중독에 대해 생각했다. 또 종일 인터넷에 매달리는 아들의 습관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하는 아내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전에 카드로 치른 술값이 과하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으며, 어떻게 백만 원이 넘는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인터넷 중독과 아내의 아들 걱정과 카드로 치른 술값에 대해 그는 번갈아 가며 생각했다. 물론 어떤 결론이나 대책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10킬로미터를 넘어설 무렵엔 그 모든 생각이 희미해졌다. 그따위 생각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25킬로미터 지점을 지났을 때부터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는 바보처럼 달렸다. 왜 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달렸다. 마지막 2.1킬로미터를 남겼을 때 남은 거리가 꽤 멀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쯤에서 멈출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골인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골인 지점에는 아직 결승 테이프가 쳐져 있었고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채는 비교적 편안하고 여유 있는 얼굴로 골인했다. <마라토너의 흡연>(63p)
어느 날 문득 김영부 씨의 아내가 지겹다는 말을 꺼냈다. 김영부 씨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지겹다니?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자고 일어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일상은 얼마나 복된가? 해야 할 일이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늘도 굶지 않았고 내일도 굶지 않을 것이 명백한 날들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똑같은 일상이 지겹다니? 그만큼 아내의 삶이 복스럽다는 말이 아닌가? 김영부 씨는 내심 흐뭇해했다. 원래 제 복에 겨운 사람들이 지겹다고 하는 법이다. 아내가 지겹다고 말한다면 자신은 남편노릇을 잘해내고 있는 것이리라. 김영부 씨는 아내의 오만상 일그러진 얼굴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름다운 날들>(73~74p)

골목 입구는 한쪽으로만 나 있었다. 그래서 골목 초입은 마치 시골 마을의 동구 같은 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자전거를 탔고, 노인들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었다. 한쪽 끝이 막힌 골목이라 간혹 우편배달부와 택배 회사 직원들이 들락거릴 뿐 골목의 유동 인구는 대부분 이곳 주민들이었다. 낯선 이가 골목에 발을 들여놓으면 금방 눈에 띄었다. 그래서 도둑 걱정이 없었고 어느 집이나 대문이 열려 있었다. 누구 집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얼마나 취해서 몇 시에 귀가했는지 이튿날 오전이면 모두 알았다. 또 누구네 집 아들이 삼수 끝에 대학에 실패했다는 사실도 합격자 발표 당일 해가 지기 전에 모두 알았다. 그러니 50여 호에 가까운 이 동네에 비밀이란 존재하기 어려웠다. 십 수년 혹은 이십 년 넘게 이 골목에 살아온 사란들은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였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훤히 알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도 동네 사람들이 죽었다가 깨도 모를 개인적 비밀 한두 가지쯤은 있었다. <정력가>(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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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술맛이 나면 살맛도 난다” 《도모유키》 작가 조두진이 마련한 환상적인 술자리, 한판! 《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조두진의 색다른 빛깔을 엿볼 수 있는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현대인들의 일상의 이면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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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이 나면 살맛도 난다”
《도모유키》 작가 조두진이 마련한 환상적인 술자리, 한판!

《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조두진의 색다른 빛깔을 엿볼 수 있는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현대인들의 일상의 이면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 《마라토너의 흡연》에는 총 일곱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장편 역사소설 《도모유키》와 《능소화》와는 다른,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위트와 유머와 허무가 뒤섞인 인물들의 독특함을 맛볼 수 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혹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경찰서장과 어린 검사의 미묘한 심리 이야기부터 담배를 피기 위해 마라톤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 설날에 집으로 들어온 족제비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 손톱에는 암이 없다고 투덜대는 의사들의 이야기 등 처음부터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말이 안 된다며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좇아가다보면, 그만의 조근조근한 입담에 어느샌가 공감하고 빠져들게 된다.

〈7번 국도〉는 가출소를 앞둔 소년원 아이들의 행사에 동행하게 된 경찰 서장과 어린 검사의 미묘한 심리를 그리고 있다. 회를 먹으러 가는 그들에게 교통위반 딱지를 떼는 대신 돈을 요구하는 교통경찰이 나타난다. 결국 작은 돈 때문에 차에서 내려 난리를 친 서장은 교통경찰의 명찰을 떼고는 가버리고, 교통경찰은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통사정하며 쫓아온다. 검사는 그 일련의 사건들을 흥미롭다는 듯 구경하며 이죽거린다. 〈마라토너의 흡연〉의 주인공 ‘채’는 돈이 거의 들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할 수 있다며 마라톤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써브 쓰리’(두 시간대의 완주)를 위해 식사 조절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까지 챙겨 먹지만, ‘채’는 영양소가 많고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맛이 없다며 거부하고, 몸에 안 좋다는 커피까지 열심히 마신다. 그러나 마라톤만은 열심이다. 왜? 그는 기록이 아니라 담배를 더 맛나게, 평생 피우기 위해 달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날들〉은 순박한 농투성이 김영부 씨와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돈을 많이 준다는 터널 공사로 어느새 귀가 멀어버린 김영부 씨. 시골이 지겹다고 말하던 아내도 떠나고, 싸움꾼 큰아들도 조직원이 되어 도시로 나간다. 트렘펫을 잘 불던 착한 둘째 아들도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동네가 물에 잠길 때 김영부 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동생이 죽었을 때도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고향에 오지 못했던 큰아들은 한 손을 다친 채 이제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 동네를 찾아온다. 〈족제비 재판〉은 설날에 집으로 들어와 손자의 손에 상처를 낸 족제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다. 재미로 시작한 족제비와 진돗개의 싸움 이벤트. 그러나 김영부 씨네 마당에 모인 마을 사람들끼리 격한 논쟁이 벌어진다. 족제비를 풀어줘야 한다는 야생동물 보호협회의 송종호와 사법시험에서 계속 낙방했으나 나름의 논리를 펼치고 족제비 사건에 대해 말하는 박형조, 이 이벤트를 기삿거리로 만들고 싶은 한강이남 최고일보의 양상대까지 나서면서 사건은 커져 실제로 재판까지 열린다.
〈정력가〉는 이사 간 동네의 골목에 사는 정력가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틀니 2개를 해주면 정력의 비법을 말해준다는 영감과 그 비법의 효력이 있는지 염치없는 방법으로 확인하려는 나 사이의 묘한 심리전이 벌어진다. 영감의 비법을 확인해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은 110만 원을 들여 영감의 틀니를 해주고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비기를 듣게 된다. 〈돼지〉는 공원 앞에서 몸을 팔았던 갈보의 이야기이다. 힘들게 술과 몸을 팔아 딸 둘을 시집보내고 근근이 살던 그녀에게, 딸들은 더 크고 많은 것을 요구한다. 결국 그녀의 살까지 잘라서 가져간다. 상처 입은 그녀는 어느새 말도 생각도 가게도 잊어버리고, 결국 돼지가 되어 공원 근처를 헤맨다. 〈손톱〉은 고등학교 동창생 기호와 동조, 정수가 손톱에 관해 설전을 벌이는 이야기다. 손톱이 피부과냐, 정형외과냐부터 마지막엔 왜 손톱엔 암이 없냐고 술에 취해 진심을 말하는 피부과 의사와 정형외과 의사. 삶에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부인의 힘에 눌려 살지만, 최근 뒤늦게 빠진 연애에 정신이 팔려 술자리 내내 문자질을 해대는 성형외과 의사 이야기까지. 독자들은 이처럼 일곱 편의 환상적인 ‘술자리’에서 ‘살맛’이 밴 소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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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유능한 마라토너가 있다. 그의 이름은 '채'다. 그는 흡연을 한다. 마라톤에 최적의 음식이...
     
      유능한 마라토너가 있다. 그의 이름은 '채'다. 그는 흡연을 한다. 마라톤에 최적의 음식이라는 땅콩버터도 먹지 않고 치즈도 먹지 않는다. 대신 커피를 하루에 세잔 네잔씩 마신다. 담배, 커피, 그것들을 끊고 땅콩버터와 치즈를 먹으면 두 시간 대에 진입할 수 있다. 두 시간 대 진입은 마라토너의 꿈이다.
      이쯤 되면, 우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채, 저 사람, 미친 거 아냐?"
      하지만 채는 이상하다는 듯 대답한다.
      "담배 끊을 바에야 마라톤을 왜 합니까? 저는 평생 담배 피우려고 마라톤으로 몸 다지는 겁니다."(p.65.)
     
      [그러나 사장은 어째서 회사가 건강해져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누구나 회사가 건강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째서 회사가 건강해져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p.60.]
      ["적자를 타파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회사 문을 닫는 거야. 회사가 폐업하면 만성 적자는 하루아침에 사라져." "뭔 헛소리야? 회사 문 닫으면 적자 걱정 없다고? 그걸 누가 몰라? 사람이 죽으면 건강 걱정은 뭐 하러 해?" p.60.]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명제는 사실 주객전도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을 즐기기 위해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건강하게 살기 위해 되려 삶을 즐기지 못하고 족쇄가 채워진다. 채가 담배를 오래 피우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마라톤을 위해 담배를 당장 끊으라고 하는 것처럼.
     
      마라토너의 흡연을 비롯해 총 일곱개의 단편이 들어 있는 <마라토너의 흡연>은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세상이 과연 합리적인가 질문하는 책이다. 주객이 전도된 세상은 아닌가 하고.
      말하자면 다음의 질문과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 농부와 변호사가 있다. 이 중에서 세상에서 '없으면 안 되는' 직업은 무엇인가? 농부다.
      '중요한 직업은 더 나은 보수를 받는다.' 그런데 왜 농부보다 변호사의 보수가 나은가? 변호사는 희소하며 대체용이성이 낮기 때문이다.
      없으면 안 되는 직업은 농부지만 중요한 직업은 변호사이다. 이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합리적'인 일인가?
      표제작인 마라토너의 흡연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섯 개의 단편들도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는 세상은 과연 합리적인가? 라디오에서 들리는 만큼 아름다운가? 학교에서 배워온 만큼 멋진가?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찬탄할 만한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의로운가? 유행가 가사 한 줄이 말하는 것처럼, '살 만 한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에에이, 이 제기랄 놈의 세상."하면서 술 한 잔 들이키고 집에 들어가는 일은 진즉 없어졌을 것이다. 아무도 안 보는 골목길에서 "거지같은 인생이야."라고 홀로 낮게 욕지꺼리를 하지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믿고 있다. 세상은 합리적이고, 아름답고, 멋지고, 찬탄할 만하고, 정의롭고, 살 만 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살 맛이 안 나니까.
      조두진 씨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이다. 현실이지만 어딘지 내가 살고 있는 곳 같지 않은 묘한 낯섬이 감돈다. 거울 속의 순희가 되어 밖의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뀌어 있지만 거울 속 모릅과 밖의 모습은 주의하고 있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마라토너의 흡연>은 소설이다. 읽는 동안 현실을 상기시키며 줄곧 내가 서 있는 발 끝을 들여다보게 하는 글이 아니라, 소설처럼 읽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을 덮고 나면, 내가 발 디딘 현실을 방금 봤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 부조리함, 그 아이러니,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 그걸 느끼면 피식 하는 비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가치가 실은 그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두 눈으로 목격 할 수 있어서.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알게 되어서. 그래서인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한결 어깨가 가볍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있다면 우리 머리 속에나 폼잡고 들어앉아 있다.
      조두진 씨는 믿음과 체험 사이의 간격을 바늘로 콕콕 집어준다. 그 바늘 끝은 자못 유쾌하고 가볍지만,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듯이 깊은 자국이 남는다. 그리고 그 자국을 뒤늦게 가만히 쓸어보자면, 아프다.
     
      변호사는 농부보다 훌륭하다. 조두진 씨는 농부보다 훌륭하다는 변호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씩 웃으면서 묻는다. "정말 그럴까?"
     
     
     
     
    2008. 10. 15.
  •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사람살이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쯤이야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자주 사소한 것일 때, 그럼에도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우울해집니다.

    그가 이번 단편 소설에 발표한 7번 국도, 마라토너의 흡연, 아름다운 것들 등의 단편소설에 작가의 말이 잘 녹아 있습니다.  그의 소설은 꼭 유럽 영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난 후 뭔가 찜찜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세상현실이 교과서처럼 그렇지 않고, 살벌한 정글임을 느끼게 합니다.  언론이 아무리 세상은 살 맛 나는 곳이라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편을 맞은 것처럼 푯대를 향해 달려가지만 정작 가지는 사람은 소수의 자본가이거나 엄청 고난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낙오하는 것이 개인의 성향이라면 자본주의에 충실한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을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날들

     

    팔조령에 터널 뚫는 공사가 한창이다, 돈이 흔전만전이다, 똥 누고 밑 닦을 때도 만 원짜리를 쓴다는 소문이 이 마을에도 들어왔지만 김영부 씨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거기 공사장의 하루 일당이 남의 집 일을 거들어주고 받는 일당의 열 배가 넘는다는 말도 들렸지만 그는 관심 갖지 않았다.

    남의 집 헛간을 치우고, 남의 집 똥을 푸고, 남의 집 거름을 내고, 남의 집 과수원의 가지치기를 했지만 그 일은 모두 자신의 일이며, 자기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

    같은 일을 두고 아내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래서 김영부 씨는 동네에서 오십 리 떨어진 팔조령 터널 공사장으로 나갔다.

    김영부 씨는 다른 인부들처럼 요령을 부리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암반 깊숙이 구멍을 내고 다이너마이트를 묻었다.  다른 인부들은 발파 공사가 있을 때마다 터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드러누워 쉬었지만 김영부 씨는 쉬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귀가 먹먹했다.  그러나 김영부 씨는 병원엘 가지 않았다.  그깟 소리가 좀 안 들린다고 힘들게 번 돈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돈을 아껴 과수원을 사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돼 있었다.  김영부 씨가 아내와 짓겅르 위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책임감이 강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일 년쯤 지나자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공사장에 나가지 않았지만 상처 난 귀는 점점 멀어졌고 어느 날 부터인가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내는 지겹다는 말을 꺼냈지만 귀가 먼 김영부 씨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김영부 씨의 아내는 집을 떠났다.  아내가 떠나던 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에 젖은 아이가 사시나무처럼 떨었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김영부 씨의 큰 아들은 싸움꾼이었다.  작은 아들 민기는 형처럼 되지는 않겠다고 아버지 김영부 씨에게 여러 번 말했다.  민기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고, 큰 아들은 조직원으로서 싸움 중 한 쪽 팔목을 잃었다.

    김영부 씨는 작은 아들의 죽음으로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벌겋게 부어오른 그의 눈두덩은 가라앉을 날이 없었다.

    김영부 씨의 둘째 아들 민기의 야트막한 무덤은 댐이 생기고 물이 들어왔을 때 흔적 없이 사라졌다.  댐에 물을 가둘 때 면사무소와 군청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집집마다 헤집고 다니며 혹시 남은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나중에 김영부 씨의 주검이 발견됐을 때 공무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고향에 돌아온 큰 아들은 물에 빠져 죽기를 포기하고 댐 철조망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호랑나비는 어디나 마음대로, 질서 없이 날아다녔다.

     

    아름다운 날들을 읽으면 어느 시절이 아름다운 날들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날들이라면 복수형인데 김영부 씨의 아름다운 날들은 아마도 결혼 초기 돈이 어느 정도 모이고 자식들이 재롱을 부릴 때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순박함은 아름다운 날들이 머무르지 못하고,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욱 많이 그의 인생을 차지하고 말았다.  호랑나비는 어디나 마음대로 질서 없이 날아다니 건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호랑나비 만도 못한 인생일까?  조두진의 소설을 읽노라면 이처럼 속이 꽉 막히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그의 글들이 현실을 잘 반영한 소설이기에 그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제목을 '마라토너의 흡연'이 아닌 '7번 국도'로 했으면 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제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라토너의 흡연은 이 책에서 좀 별개의 주제처럼 다가왔다.

    왜냐하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에 좀 미흡하지 않나 생각한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7번 국도', '아름다운 날들', '손톱' 등이 더 현실이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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