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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역사인물찾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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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쪽 | B6
ISBN-10 : 8939204778
ISBN-13 : 9788939204775
문익환 평전(역사인물찾기 15) 중고
저자 김형수 | 출판사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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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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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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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통일의 꿈을 온몸으로 실천한 예언자로서, 우리 시대 중심의 불꽃 같은 생을 살았던 문익환의 이야기. 방대한 자료와 대담, 그리고 폭넓은 현지답사를 통해 현대사의 질풍노도를 헤쳐온 문익환의 가계와 그의 옹골찬 삶을 되살려낸 책이다. 엄혹한 '겨울공화국'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놓은 그의 위대한 생애를 피와 살과 숨결이 느껴지는 문학적 문체 속에 오롯이 담고 있다.

저자소개

지은이 김형수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 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에 소설로 등단했으며, 1988년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정열적인 작품활동과 치열한 논쟁을 통한 새로운 담론 생산은 그를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으로 불리게 했다. 작품으로 시집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빗방울에 관한 추억]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등이 있다.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 제1장 문익환의 선사시대 ]
원점 / 그의 기원을 찾아서 / 문익점에게서 / 19세기로부터의 망명자들 / 국경의 밤 / 북간도에 온 그리스도
[ 제2장 점화된 불꽃 ]
거장들이 태어나던 때 / 최초의 기억들 / 어린 날 / 릴케처럼 / 좌절을 배우다
[ 제3장 광야에서 ]
바람 속에 묻힌 삼촌 / 모진 바람에도 거세지 않은 용정 사투리 / 바람의 관측자 / 평양 시절 / 솥에서 뛰어 숯불에 내려앉다 / 신을 우롱한 대지
[ 제4장 외길의 시작 ]
동경에서 발견한 존재의 비참성 / 연분홍 코스모스에게 / 짧은 희망 긴 절망 / 윤동주를 잃고 / 8월의 카오스 / 슬픈 남하(南下)
[ 제5장 한없는 침묵과 고독의 성(城) ]
분단의 아침을 맞으면서 / 종교도 시대 위에서 집을 짓는다 / 침묵의 지대 / 미국행 여객선 / 그대들은 혼자가 아니다 / 1950년 여름, 서울 / 판문점으로 날아간 비둘기 두 마리 / 역사의 막다른 골목에서
[ 제6장 시(詩) 정신 예언자 정신 ]
세기의 방랑자 / 마지막 귀향 / 불치의 감탄사로 말하라 / 뼈아픈 후회 / 사월이 닫히는 소리 / 완전주의자의 꿈 / 한국인에서 히브리인으로
[ 제7장 두드려라, 부서질 것이다 ]
생의 반환점을 지나며 / 저잣거리로 나오다 / 새삼스런 하루 / 히브리서 11장 1절 / 야만의 시간, 1974/ 장준하 충격 /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 57년 만의 만세운동
[ 제8장 꿈을 비는 마음 ]
난형난제 / 신나는 법정 / 장미들의 반란 / 첫번째 감옥, 22개월 / 불발이 된 '생의 피날레' / 두번째 감옥, 15개월
[ 제9장 예언자적 질주 ]
겨울이 긴 나라의 봄은 아름답다 / 하, 그림자가 없다 / 지옥의 한 철 / 도봉산 1호 / 계엄령 속의 눈 / 세 번째 감옥, 31개월 / 오월의 양심
[ 제10장 고독 속에서 불타는 연대기 ]
재야의 사령탑에 오르다 / 네번째 감옥, 26개월 / 신랑이 신부의 방을 찾듯이 / 절정 / 때묻은 십자가
[ 제11장 거인(巨人) ]
잠꼬대 속의 시대정신 / 두 세기 사이의 아시아 / 일본에서 /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 파란과 신명의 축제 / 일파만파 / 발자국을 흐트러뜨리지 말자 / 다섯번째 감옥, 19개월
[ 제12장 황혼이 없는 생애 ]
통일의 르네상스 / 여섯번째 감옥, 21개월 / 발바닥으로 외칠 거야 / 폐허의 숲을 헤치며 / 비둘기들의 장례식 / 울지 않는 기념비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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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히브리서 11:1 개인의 생애가 학철지부(ƶ轍之...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히브리서 11:1

    개인의 생애가 학철지부(ƶ轍之ɮ)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고인 물에서 노는 물고기‘정도로 표현한 것처럼 미미한 것이다.(장자) 그렇다 치더라도 그는 대한민국 민주, 자주, 통일의 3대축의 거인 할아버지였다. 그의 인생 자체가 한편의 서사 드라마였다. 그 시대를 산 많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일제 식민지 치하 암울하기만 했던 시절 한반도 동북쪽 지역에 살던 4개 가문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이주한다. 이곳에 명동(明東, 조선을 밝힌다는 의미)마을을 세우고 학교, 교회 등을 설립하고 삶의 터전을 이룬다. 더욱이 독립군 지원의 전초기지 역할도 하게 된다. 이곳에 용정(龍井)이 있는데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우물. 용모양의 두레를 도르레를 사용하여 용두레 우물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난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한다. 당시 평양은 ‘한국의 예루살렘’으로서 기독교 교육의 온상이었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다. 학교장 등이 강제로 갈려가고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저항의 수단으로 동맹퇴학을 감행한다.(내가 나온 학교라 매우 자랑스럽다)

    현실에 투항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방외인으로 머물러야 하고 비극적 고독을 떠맡아야 한다.

    부득이 만주로 돌아간 그는 광명학교에 입학하지만 그곳은 황국신민화 교육기관의 전형이었다. 동창생 정일권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학교 학생들의 목표는 일본 외무성 순사나 만주 군관학교였지만 그는 신학을 위해 도쿄로 간다(아버지 문재린 목사의 영향)

    그곳에서 고향친구 윤동주와 송몽규를 만난다. 일제말기 강제 징용을 피해 문목사는 신학교 공부를 이유로 만주로 피신하게 되지만,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송몽규는 체포되고, 탈출직전 윤동주도 체포되어 생체실험을 당해 죽고 만다. 그 주사는 ‘당시 구구제대에서 실험하고 있었던 혈장대용 생리식염수 주사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증언이다.

    (만만디 : 중국인들의 기질, 晩晩的)

    ‘성서관‘에 대한 기독교 분열 : 종래의 성서문자무오설 - 성서는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이니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만, 성서를 그 기원과 원형과 원작자의 의도들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비평론이 일면서 성서의 문학적, 역사적 비판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주장이 대립한다. 글자 한자라도 비판을 할 수 있냐 없냐를 두고 따지는 것은 18세기 잠꼬대인 것 같다,

    국회 프락치 사건 : 반민분자들 처벌해야한다고 주장한 소장파 의원들을 오히려 간첩으로 몰아 반민특위 활동을 무효화시켜버린 사건

    불안은 대상이 분명치 않을 때 찾아오는 실존의식이고, 공포는 대상이 분명할 때 찾아오는 일상의식이다.

    6.25 종전후 남과 북 어느 쪽도 아닌 중립국을 택했던 86명의 포로는 인도 관리군의 배를 타고 떠나며 최후의 종전의 막을 내린다.

    4.19후 장면 총리의 가치는 낮달보다도 못했다. 모범생이나 유약함의 전형이었고 친미사대주의자였다.

    45세때 병약하기만 했던 문목사는 보약을 잘 못 먹고 열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한쪽 귀를 먹고 만다.

    무화과는 아무도 몰래 열매를 맺는다. 꽃을 보여주지 않고 열매 안에 꽃을 숨기고 있기 ˖문에 사람들은 꽃이 없는 과일이라고 말한다.

    동생 문동환의 부인은 페이 문(문혜림) 이라는 미국인이다.

    기적의 시간을 오랫동안 정열적으로 기다려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기복신앙처럼 선교에 장애가 되는 것은 없다.

    ‘내세의 축복을 과장함으로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하고, 가난을 하나님의 예정으로 믿고 참으라하고, 남이 잘사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니, 오직 가난 속에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마음의 평안을 구하고, 위로받으며,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식, 이렇게 되면 종교는 아편이 된다.‘ - 이건 형편없는 설교이다.

    권력에 아부하며 먹고 사는게 어디 사는 게야? 후퇴할 다리를 끊고 하는 거야.

    10.26 박정희 사망

    12.12사태 - 전두환파 vs. 정승화파 -전두환의 승리로 끝남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 예행연습과 달리 돌발변수가 발생. 열람실 안쪽의 학생을 보지 못하여 방화로 인해 그 학생이 질식사 한다. 이로 인해 재야나 운동권 어디에서도 여기에 내놓고 동조하지 못했고 재야 선배들도 이런 과격한 실천 형식에 경악하게 된다. 후배들을 후원할 수는 있지만 어깨를 걸 수는 없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서자다. 기회의 균등이라든지 분배의 균등을 나쁘달 사람은 없다. 비단 종교뿐 아니라 모든 인간사는 사회적 차원과 실존적 자원이 있는데 막시스트는 실존차원을 아주 무시한다. 평등 분배만 이루어지면 종교는 불필요하다는 식이다.

    한마음 정신 : 크고도 하나인 마음. 문목사는 교회가면 기도하고 절에 가면 부처님께 합장하고 큰절을 올렸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일이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지는 법이다. 1987년 박종철 물고문사건, 김근태 고문사건, 권인숙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4.13호헌 조치, 결정적으로 이한열 최루탄 사망 사건은 6월항쟁을 맞게 되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모든 시민의 환영을 받게된다,(나의 대학3년 시절의 투쟁)

    이후 대통령간선제(통일주테국민회의)에서 국민투표직선제로 개헌되면서 노태우를 이길 것으로 보았지만 끝내 야당후보 단일화는 실패한다.(김영삼vs.김대중) 민통련은 두 후보를 불러 정책세미나를 연다. 통일, 외교, 국방, 교육, 문화, 농수산 모든 국정에 걸친 정견을 묻는 것인데 김영삼은 대답도 제대로 못한 반면 김대중은 논리적으로 대답할 뿐 아니라 잘못된 질문을 지적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민통련은 김대중을 선택, 비판적 지지를 하기로 했다(비판적 지지란 김대중 대선후보를 지지하지만, 그의 정견을 전폭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민통련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지지하는 것)

    중립화 통일론 : 그는 북으로 가서 김일성을 만난다. 김일성이 오스트리아식 중립통일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실감했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중립통일을 전취하고 첫 선거에서 공산당이 참패하지만 거기에 구애 받지 않는다.

    작전계획 5027 : 1960년대부터 존재한 한국전 재발대비 시뮬레이션.

    클린턴의 지시로 1994년 실행결과 엄청난 결과가 나타난다. 미국군 50%를 투자해서 1조달러 경비, 미군 5.2만(3개월)사망(월남전 10년간 피해와 동일), 한국군 49만 사망(80%소멸), 민간인 1백만 사망(사상자 포함시 1천만명), 특히 핵발전소 공격, 북한의 핵무기 보유여부 등등으로 김영삼 정부는 전쟁을 포기한다.

    천 번을 만나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단 한 번을 만나도 심장에 남는 사람이 있다.

  • 우리말 옷을 입은 성서 | be**123 | 2006.08.15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우리말 옷을 입은 성서 늦봄 문익환! 그는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우리말 옷을 입은 성서

    늦봄 문익환! 그는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윤동주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늦깎이 시인이며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은 예언자다. 1918년 북간도에서 태어난 그의 ‘정서적 조국은 고구려고, 영혼적 혈통은 유목민’이다. 레닌은 ‘20세기를 전쟁과 혁명의 시기로 보고 그 속성을 ‘폭력’으로 바라보았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 분단과 근대화로 얼룩져 있다. 그 물결 한 가운데 문익환 목사가 있었다.


    『문익환 평전』을 읽으면서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근대사를 총체적으로 아우른 느낌이다.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좁게는 가족사(家族史)와 넓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배경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분의 발자취 중 ‘대한성서공회 신구약 공동번역위원장’ 은 한국 교회사에 큰 획을 긋게 된다.


    그는 성서번역을 통해 세 가지 측면에서 ‘여리고의 성’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첫째 신교와 구교의 벽이 허물어지는 경험, 둘째 신학적인 편견이 걷히는 경험, 셋째 히브리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교회와 사회를 갈라놓는 말의 담을 허무는 경험이었다. 성서 속 이스라엘의 민족사와 우리 나라의 민족사는 닮았다. 그래서 그는 ‘정신적인 히브리인에서’ 한국인으로 귀화가 이루어진 시기를 이 시기로 고백한다.


    번역가로서 문익환은 성서의 이미지를 가능한 한 한국적 표현으로 옮기려 했다. 그분이 가톨릭측 번역자인 선종완 신부와 상의하여 내세운 원칙은 “한국인 전체가 읽을 수 있는 번역”, “한국인의 생각을 무리 없이 움직여 생의 궤도를 바꿀 수 있는 번역”이었다. “한국인 전체가 읽을 수 있는 번역”이란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번역이 아니라 교회 바깥에서도 통하는 번역을 의미했다. 신구교의 장벽 안에서만 통하는 말이나 울타리를 못 넘어서는 말은 아낌없이 버리기로 했다. 다만 우리 나라 서민 대중이 쓰는 말로 번역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태일 노동자의 분신자살소식을 접한다. 이 일을 계기로 문익환은 ‘말씀의 수용자’가 아니라 ‘말씀의 창조자’가 되는 길을 결심한다. 그는 자기가 딛고 선 땅이 바로 ‘한국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임을 발견하고 예언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 주체가 되어 참여했다가 국가보안법에 묶여 수감되면서 성서번역을 도중하차하고 본격적인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 뛰어든다.


    그는 큰 빛이다. 성서번역을 중간에 그만두었지만 그분은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성서의 우리말 번역의 초석을 놓음으로써 민족사에 기여하셨다. ‘성서는 인류에게 보낸 하느님의 편지’이다. 성서에 우리말 옷을 입혀주신 그분들이 없었다면 여전히 히브리어나 다른 번역본으로 성서를 보고 있을 것이다. 성서를 통해 언어의 주권을 찾아주신 그분들이 계시기에 오늘 우리는 말씀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 문익환과 대륙인 | bm**l | 2005.08.08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언제부터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3주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평소에 일대기를 즐겨 읽는 까닭에 ...
    언제부터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3주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평소에 일대기를 즐겨 읽는 까닭에 문익환평전을 구입하게 되었을 때 별 부담은 없었다. 비록 책의 길이가 약 800페이지 정도는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저자의 오랜동안의 노력과 글쓰기가 경이스러울 뿐이었다. 나는 문익환을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한번도 직접 보거나 만난 적이 없다. 그는 비록 3.1구국선언을 통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지만, 나는 그때 아직 어린 나이였고 그래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그는 전두환 정권의 폭압 속에서 감옥에 있었고, 그 후 군대생활을 거치게 되기까지 나는 그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어느날 그가 서울대 캠퍼스에 강연하러 왔다가 분신하는 학생들을 보았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나는 그 현장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인간 문익환은 나에게는 어떤 목사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구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으로 이어진 나의 유학생활을 통해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차단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익환평전은 나에게 처음부터 그의 삶을 책에서 기술된 그대로 어떤 선입관이나 편견없이 따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제와서 그의 삶을 돌이켜 본다면, 한마디로 그는 대한민국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는 오히려 저자의 말을 빌리면, 고구려인이었고, 신라인이었고, 백제인이었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방의 만주지역에 걸쳐 삶의 괘적을 남긴 곳곳이 그의 삶의 공간이었지, 20세기 현대사에서 왜곡되고 잘못 규정된 공간만이 그의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우리들 특히 나와같이 1960년대 이후에 태어난 분단의 자식들은 한반도의 통일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고, 현재의 틀이 그 이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처럼 생각한다. . 당연히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었고, 가고 싶어도 그 곳은 갈 수 없는 곳으로 못박혀 있었으며, 그 좁은 울타리가 우리 세계의 전부인 양 생각했다. 바다 건너 미국을 경험하기 전까지 나의 세계는 참으로 좁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았을 뿐이다. 그러나 문익환은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한반도를 벗어나 있었다.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나 일본과 미국 그리고 분단 이전의 평양, 분단 이후의 서울, 다시 미국, 그리고 분단 이후 다시 평양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그가 바라본 한반도는 내가 알고 있는 한반도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갈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인식에는 갈라진 한반도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만큼 그는 다른 삶을 살았고, 닫힌 공간에서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산 (분단 이데올로기에 은연중에 물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우쳐 주었다. 그의 삶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고 그 이름 앞에 주눅들 정도의 사람들이 항상 그와 함께 했다. 명동소학교와 중학교 친구인 윤동주가 문익환과 친구였다. 그 사실은 나에게는 전혀 의외였다. 연결 될 것 같지 않은 서로 다른 두 인물. 그러나 그 둘은 너무나도 친했던 죽마고우였다. 장준하. 그는 비록 나이는 문익환과 비슷했지만 학교는 그의 동생 문동환과 같이 다녔다. 그러나 서로 많은 시간들을 함께 했으며 한 시대를 같이 아파한 적도 있다. 그 역시 문익환과는 매우 친한 인물이었으며 문익환으로 하여금 행동하는 삶을 사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등장하고 사려져갔다. 그러면 그의 가족은? 나에게는 특히 그의 가족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의 조부모들을 비롯해서, 그의 부모, 그의 부인, 그의 동생 문동환, 그의 다른 동생들, 그리고 그의 자식들...어떻게 그렇게 많은 가족들이 하나의 뜻을 향해서 함께 걸어갈 수 있었을까? 도대체 그것은 무슨 힘이었으며, 어떻게 그러한 모습이 가능했을까? 적어도 100년동안 그의 가족들은 민족이라는 단어를 한결같이 붙들고 살았고, 어떠한 역경에서도 서로를 이끌어주고 격려하고 부축해주는 정말로 대단한 힘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서 편안한 소시민적 삶은 발견할 수 없었다. 90살이 된 노모가 재판정에 선 문익환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은 참으로 말로 담을 수 없는 무엇을 느끼게 한다. "재판 시작하기 전에 내가 아들에게 부탁할 일이 있소. 아들은 72살이고 나는 95살이오. 익환아! 너는 우리 7천만 민족을 위해 일하고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를 향해 가는 심정으로 재판을 받아라! 익환아, 그것을 기억해라!" 문익환평전은 그래서 한번 꼭 읽어 볼 만하다. 그를 통해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어보자.
  • 20세기의 선지자 | me**stat | 2005.06.14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1. 중2때였다. 교회에 내가 무척이나 따르던 전도사님이 계셨다. 어린 중학생의 눈에 순수하고 여린영혼을 가진 분이셨는데, 이...
    1. 중2때였다. 교회에 내가 무척이나 따르던 전도사님이 계셨다. 어린 중학생의 눈에 순수하고 여린영혼을 가진 분이셨는데, 이분이 설교시 곧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애쓰시는 문익환 목사님같은 분들도 계십니다......" 얼마후 한 목사가 베이징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주석과 포옹하는 장면이 온 방송을 덮었다. 2. 고 문익환 목사를 딱 한 번 본적이 있다. 대학 1학년이었던 93년 5월 학교에서는 86년에 분신자살한 김세진, 이재호 열사에 대한 추모제가 열렸다. 중앙도서관앞 광장에서 초청연사로 걸걸한 목소리의 노인이 연설을 한다. 집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었고, 학생회관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다 본 것이다. 주름진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의 노인이 하는 연설을 잠시 들었다. 내용은 기억 안나지만, 피를 토하듯 하는 그의 연설을 들으며, '왜 그리 힘들게 연설하나...' 생각했었다. ---------------------------------------------------------- 신문과 언론을 제외하고 문익환목사를 접한 것이 위의 두 가지 경험이었다. 사실 '문익한평전'은 20세기를 살다간 한 인물에 대한 전기라기 보다는 제국주의와 이데올로기의 대립가운데에서 상하고 찢긴 한민족의 20세기 역사 자체라고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북간도 이주와 한일합방과 연합국의 전승에 의한 해방, 이념의 광기속에 동족끼리 살육하던 전쟁과 정전회담, 정치적 격변기와 군부독재의 수립과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속에 문익환 목사의 일가와 그 자신이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문익환'이라는 이름에, 레드컴플렉스를 들이대며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상당수를 차지한다. 수구냉전세력의 보루인 조선일보 인터넷에 실린 답글들을 보라.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은 늘어가는 반면에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이들은 한국인의 의식속에 여전히 잠재한 컴플렉스를 부치기며 자신의 입지를 잃지 않기위해 몸부림친다. 우리사회가 여전히 떠안고 있는 부조리과 불합리성이 어디에서 나온것들일까?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수립된 정부의 정전협정 이후로 정권의 안위를 위해 개인에 대한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시켜주는 명분을 준 분단상황이 두개의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이라는 과제는 냉전상황을 기반으로한 기득권도, 일반 민중들도 함께 해결해야한다. 문익환 목사는 분단상황을 종식시켜 민족이 번영할 수 있는 길을 트고자 노년의 삶을 바친 것이다. 아직도 교계에서는 문익환목사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보수교단에서는 기독교를 탄압하는 김일정정권과 손잡은 불순분자라고 얼굴을 붉히고, 한쪽에서는 (주로 기장쪽이겠지만...) 통일운동의 선구자로 선지자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로 평가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기장을 이단시하며 배척했던 예장측에 속해 있다. 지금도 남북경제교류와 대화를 이야기하면 빨갱이 집단과는 상종하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어른들이 여전히 많다. 질곡과 수난의 역사를 자식들 세대에까지 물려주려고 하는가에서 실망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시대의 선지자가 남겨두고 간 자취속에서 희망이 생겨났음을 깨닫는다. 문익환 목사의 삶을 접하고 난후 나는 문목사님에게서 화해와 사랑을 전염시킨, 그리고 민족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한다.
  • 05년 고난주간 '문익환 평전'의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부분을 아내와 백일이 갓 지난 아들과 함께 읽었다. 억지로 참...
    05년 고난주간 '문익환 평전'의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부분을 아내와 백일이 갓 지난 아들과 함께 읽었다. 억지로 참는 울음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것은 내 어릴 적 무지의 기억 때문이었다. 목사님께서 평양을 방문하셨던 때 기억하는 것은 왜 목사님이 저런일을 하셔서 기독교인이 욕을 먹게 하는냐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아직 세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고3이었다. 아무런 감흥과 마음의 동요없이 목사님의 죽음과 영결식 장면을 TV를 통해 봤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에 입학했을 95년도. 그 때부터 세상에 대한 눈을 조금씩 뜨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것 같다. 신학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고민들과 삶에 대한 방황은 지금까지 가져오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일순간에 무너뜨렸다. 아무런 답도 없이 선택한 군복무와 군에서의 특별하고 진저리 나는 경험들은 세상과 신앙에 대한 나의 갈증을 더욱 가중시키는 증폭제 역할을 했다. 제대 후 왜 이런 늘 갈망과 찬양의 대상이었던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는 답이 없고, 그 깊이를 모를 수렁과 같았다. 그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문제는 신의 존재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이 예수처럼 사는 것이고, 어떻게 예수를 따라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정말로 예수님의 제자처럼 살고 싶었고, 예수님을 따라 살고 싶었지만, 용기 없는 베드로처럼 늘 삶에서는 후퇴와 좌절의 쓴 맛을 봐야만 했다. 그러니 더욱 공부에 매달리게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방황의 폭도 더 커졌다. 그리고 그 방황의 폭만큼 내 삶은 더 흔들리며 위태로왔다. 어느 겨울 방학 후배들과 공부를 할 때 문익환 목사님의 다큐를 녹화해 둔 것이 있어서 함께 나누며 어린 시절 믿음이 없는 가정에서 곱지 않는 눈으로 기독교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에게 목사의 꿈을 꾸며 신앙을 지키던 나의 마음을 긴장시키던 그 목사님의 삶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모범 답안을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예수처럼, 민족을 넘어 세계를 생각할 줄 알았던 문익환 목사님을 보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만난 듯 나의 심장에 그 삶이 새겨져 버렸다. 책 후반부에 작가가 문익환 목사님을 "천번을 만나도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한번을 만나도 심장에 남는다..."는 말로 표현했는데 지금 문익환 목사님의 삶을 만난 나는 살아 생전 뵙지 못했어도 그분의 삶이 심장에 새겨지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목사님의 이야기 하나, 행동 하나는 갈릴리의 민중들을 돌보시며 언덕에서 팔복을 이야기 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암울한 시대의 예언자의 모습이다. 목사님의 삶은 하나를 죽이고 하나를 살리는 삶이 아니다. 그렇다고 둘 다 살리는 삶도 아니다. 그 둘이 실상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걸 깨닫게 하고, 스스로가 살아갈 길을 찾도록 하는 삶이었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길을 가려고 했던게 아니라 좌도 우도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꿈꾸었다” 작가의 표현처럼 민족도 하나로 보고, 그리스도와 나도 둘이 아닌 하나로 본 것이다. 하나가 죽으면 둘 다 죽는다는 ‘ 하나됨의 사랑’이 목사님의 행동 하나 이야기 하나에 철철 넘쳐나고 있다. 무엇보다 시대를 뛰어넘는 참다운 목자의 모습을 “어깨가 축 늘어진 생의 패배자들이 새로운 생의 의욕을 가지고 일어서게 하는 것, 생을 저주하던 사람들이 생을 축복으로 받고 생의 찬가를 부르게 하는 것, 산송장들이 생기를 받아서 목적을 가지고 활발히 움직이는 사람으로 소생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문익환 평전 p.350)“ 라고 표현하신 것은 후배 목회자들의 지침이 되고도 남는 것이다. 지금은 고난주간이다. 그러나 고난은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품는 자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고난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예수의 고난은 부활을 없었다면 아무 의미없는 개죽음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곧 고난주간은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요, 부활의 기쁨을 소망하는 기간이다. 예수가 무덤을 열어 젓히고 죽음에서 부활했듯, 문목사님도 고난의 시간을 넘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젊이이의 가슴 속엔 붉은 용암을 꿈틀거리며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폭발의 카이로스를 기다리는 활화산이 살아있다. 목사님의 삶은 우리 젊은이들의 활화산 속에 살아있다. 그리고 이 활화산이 폭발하는 그 날, 예수가 무덤문을 박차고 나와 부활의 아침을 맞이했듯, 목사님도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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