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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sam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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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글씨풍경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192쪽 | | 124*188*21mm
ISBN-10 : 1196075174
ISBN-13 : 9791196075170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고
저자 박준 | 출판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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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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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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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준의 첫 산문
‘2020년 2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2017년 7월 1일에 출간한 박준 시인의 첫 산문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2020년 같은 날에 2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으로 다시금 선보입니다. 출간 후 3년이라는 시간 속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박준 시인의 글 틈에 스며주신 거지요. 그 스밈 가운데 사랑으로 번져주셨다는 사실, 덕분에 시와 산문 어디에도 기울지 않고 팽팽히 두 장르의 문학에 균형을 잡고 있는 시인에 대한 우리들의 안도와 기대는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그만큼 부담으로 어깨가 굽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 시인의 그늘은 속속들이 깊어갔겠지요……
2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은 초판 때 표지로 삼았던 것처럼 기드온 루빈의 작품 가운데 골라보았습니다. 이이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요. 보이지 않는 시선 너머를, 그 풍경을 살피고 있을 이 사람의 표정을, 혼자인 밤, 문득 시작될 그 이야기를 상상하게도 합니다. 또한 시인의 신작 산문 「바둑이점」을 커버에 수록해 반가움을 더합니다. 책을 열자마자 마주하는 면지에는 특별한 문구와 친필 사인이 인쇄되어 펼쳐보는 설렘이 있고요.
시인 박준은 2020년 삼월 봄밤부터 라디오 디제이가 되어 CBS 음악 FM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마침 2020년 7월 1일은, 100번째 밤을 맞이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아직 떠나지 않은 어제의 여운과 오늘의 첫을 함께하는 시간 자정,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맑고 부드러운 언어로 청취자의 이야기를 함께 앓으며 밥처럼 약처럼 시와 음악을 내어주는 그인데요. 자정이 되면 라디오를 켜보세요. 시와 음악 속에서 차분한 시인의 음성으로 하나하나 발음되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삶의 순간들에 아직 연약하게 빛나고 있던 불빛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
그냥 옆에 있는 책.
마냥 곁이 되는 책.

가끔 사는 게 힘들지? 낯설지?
위로하는 듯 알은척을 하다가도
무심한 듯 아무 말 없이
도다리 쑥국이나 먹자,
심드렁히 말해버리는 책.

1.
박준, 이라는 이름의 시인을 압니다. 2008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지난 2012년에 첫 시집을 상재한 바 있다지요.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시집 제목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들어본 적 있으실 것도 같은데요, 그래요『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초콜릿색 시집이요. 뒷면에 한 여인의 뒷모습을 짐짓 무심한 듯 그러나 뭔가의 사연을 짐작케 하는 포즈로 새겨넣었던 바로 그 시집이요. 참으로 큰 관심 속에 이 시집은 세상에 선을 보인 지 5년을 향해가는 지금까지도 꾸준한 여러분의 사랑을 먹고산다지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박준 시인은 뭐든 잘 잊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 마음들을 확인할 때마다 제 안에 꼬깃꼬깃 접어 숨겨놓았다가 뭔가 아리송한 바람이 저를 덮칠 때면 외따로이 숨어 앉아 몰래 꺼내보고는 한다지요.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나요.

2.
그런 그가 오랜 준비 끝에 첫 산문집을 들고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첫 시집 제목이 열여섯 자였는데 그보다 한 자 더 보태 열일곱 자 제목으로 짓고 기운 책으로 말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가만, 제목이 좀 길죠? 네, 좀 길다 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그래도 그리 어렵게는 안 느끼실 거다 자신했던 데는 우리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해봤거나 들어봤을 경험의 소유자들이라는 까닭에서였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더는 울지 마, 하는 사람이 나였다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더 좀 울어, 하는 사람이 너였던 상황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놓여 있었던가요.

3.
앞서 ‘편지’라는 단어를 살짝 꺼냈었는데요, 이번 박준 시인의 산문집이 어쩌면 편지라는 설명 불가결의 의미심장함과 참으로 닮아 있다 싶기도 해요. 왜 편지가 그렇잖아요. 억지로 쓰게 되면 빤하고 밋밋한 소리만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되는데 자발적으로 쓰게 되면 손에 펜을 쥔 자가 예측 불허의 무한 에너지로 제 안의 이야기들을 마구 터뜨리게 되는 게 사실이잖아요. 왜 이렇게 쓰고 있는지 저도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런 구절들을 중간 중간 추임새처럼 섞어가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타고나길 진실인 편지, 그런데 그렇게 생겨먹길 진심인 편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박준 시인이 그간 제 시를 함께 읽어주고 함께 느껴주고 함께 되새겨준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한 권의 답서(答書)이자 연서(戀書)가 아닐까 해요. 그런 둘 사이의 편지는 필시 길게 이어질 운명이라는 것도 실은 조금 알겠어서 이 한 권의 책을 여러분들에게 내미는 마음이 보다 덜 부담일 수도 있던 바, 분노나 미움보다 애정과 배려에 가까운 것이 편지이기에, 그리하여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이 실은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쓰고 싶다는 마음과 동일한 다짐임을 알기에, 시인은 타고난 부끄러움을 돌로 살짝 눌러놓은 채 이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써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다 퍼내서요, 더는 남음이 없어요! 원고를 마무리 지으며 시인이 뱉은 말을 끝끝내 원고 마지막 페이지에 압정으로 꽂아두었던 저라지요.

*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가난한 남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이별을 앞둔 연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죽음을 공유한 부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시인 박준’이라는 ‘사람’을 정통으로 관통하는 글입니다. 제 호흡 가는대로 총 4부로 나누긴 하였지만 그런 나눔에 상관없이 아무 페이지나 살살 넘겨봐도 또 아무 대목이나 슬슬 읽어봐도 우리 몸의 피돌기처럼 그 이야기의 편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드러낼 작정 없이 절로 드러난 이야기의 어린 손들을 우리들은 읽어가는 내내 잡기 바쁜데 불쑥 잡은 그 어린 손들이 우리들 손바닥을 펴서 손가락으로 적어주는 말들을 읽자면 그 이름에 가난이 있었고, 이별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이라는 생활, 이별이라는 정황, 죽음이라는 허망, 이 셋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들 모두에게 바로 직면한 과제라 허투루 들리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웬만하면 마주하려 하지 않았던, 가능하면 피하고만 싶었던 우리들의 민낯, 그 가난은 힘들고 또 힘들게 하고, 이별은 아프고 또 아프게 하고, 죽음은 슬프고 또 슬프게 하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맞장을 뜨듯 이 삶의 곤궁더미들을 미리 대면하면 좋을 이유가 우리 몸에 내성이라는 것을 생기게 함으로써 끝끝내 삶을 밀어 삶 너머로 나아가게 할 것을 아니까요, 그 원동력으로 삶과 죽음의 쳇바퀴를 더욱 자신 있게 굴리게 해줄 테니까요. 우리가 왜 책을 읽어야 하나 하는 물음에 우리가 왜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이 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과 확신, 이 책으로 말미암을 수 있었다니까요.

5.
더불어 이 책은 시와 산문의 유연한 결합체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어느 날 보면 한 권의 시집으로 읽히고 또 어느 날 보면 한 권의 산문으로 읽힙니다. 문장 하나 허투루 쓰인 것이 없으니 내가 그은 밑줄 속에 내가 걸려 넘어지는 날 잦게 합니다. 이상하지요. 강요하는 말씀이나 주저앉히는 감상을 싹 다 걷어낸 담백한 글인데 울음 끝에 웃음이거나 웃음 뒤로 울음인 그 둘의 뒤섞임이 왕왕입니다. 특히나 이번 산문집에서는 그만의 세심하면서도 집요한 관찰력이 소환해낸 추억의 장면들이 우리를 자주 눈물짓게 하였는데요, 이를 구성케 한 그만의 특별한 기억력에 나는 뭔가 들킨 적이 없나 놓친 것은 없나 몇 번이나 되새김질을 해야 했답니다. 장난감처럼 보여도 실은 고성능으로 무장된 레이더를 제 안에 장착한 것만 같은 시인 박준. 아이처럼 말하는데 어른처럼 보는 시인 박준. 어쩌면 조금 이르다 싶게, 제법 익숙하다 싶게, 터무니없이 갑작스럽다 싶게 겪은 세상의 풍파 속에 시인이 앳된 나이부터 노출이 된 까닭도 있다 싶은데요, 그럼에도 시인은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그 누구를 미워하지도 않으며, 그 누구를 불신하지도 않는 삶의 태도로 씩씩합니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겠냐는 듯 우리가 누구나 홀로인 것은 맞으나 언제나 혼자인 것은 아니라는 식의 메시지를 껌 종이에 적은 메모처럼 쥐어주기도 하지요. 속고 속으면서 살다 가는 것이 또한 삶이 아니겠냐며 울다 웃고 또 웃다 우는 것이 인생 아니겠냐며 지친 우리들의 등을 말없이 쳐주다 슬쩍 사라지기도 하지요. 아무래도 우리와는 다르게 눈 하나를 더 가진 사람, 그래서 일반인으로는 저주를 받았다 할 수 있겠으나 시인으로는 복을 받은 이가 바로 박준 시인이 아닐까 해요.

6.
이 책은 읽는 내내 우리와 보폭을 정확히 맞춰줍니다. 까만 뒤통수를 내보이며 앞서 가는 책도 아니고 흰 얼굴로 흐릿하게 멀어지며 뒤로 가는 책도 아닙니다. 그냥 옆에 있는 책입니다. 마냥 곁이 되는 책입니다. 가끔 사는 게 힘들지? 낯설지? 위로하는 듯 알은척을 하다가도 무심한 듯 아무 말 없이 도다리 쑥국이나 먹자, 심드렁히 연인에게 말하기도 하는 책입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벤허〉 단체관람을 간대. 나는 못 갔지. 돈이 없으니까”, 하는 아버지에게 “나도 수학여행 못 갔네요. 돈 없어서.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때가 딱 IMF 때라 못 가는 친구들이 많았어. 다행이지. 가난도 묻어갈 수 있다니”, 의기양양 아버지와 대화를 섞게 하기도 하는 책입니다. 몇 해 전 사고로 누나를 잃고 누나의 편지를 정리하며 누나의 여고 시절 편지 속 “오늘 점심은 급식이 빨리 떨어져서 밥을 먹지 못했어”라는 구절에서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10여 년 전 느낀 어느 점심의 허기를 10여 년 뒤 느낌으로써 거미줄 같은 세상사 연연의 끈을 계속 쥐게도 해주는 책입니다. 어쨌거나 울 사람은 우는 그대로 안 울 사람은 안 우는 그대로 그렇듯 내키는 그대로 살게 하는 책. 울든 안 울든 네가 발 딛고 선 그 지점이 언제나 출발선이니 언제든 너는 자유야, 하는 아리송한 전언을 주는 책. 그렇게 희망이 되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저자소개

저자 : 박준
저자 박준은 시인이다.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편운문학상,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들어서며-그늘

1부
그해 인천
그해 경주
두 얼굴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이문재 시인
기다리는 일, 기억하는 일
편지
그해 여수
아침밥
환절기

그해 협재
희고 마른 빛
벽제행
울음과 숨
꿈방
몸과 병
다시 지금은
고독과 외로움
여행과 생활

2부
내가 좋아지는 시간
그해 화암
그해 묵호
낮술
마음의 폐허
기억의 들판
해남에서 온 편지
울음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
소설가 김선생님
그해 혜화동
소리들
관계
답서
사랑의 시대

3부
봄 마중
작은 일과 큰일
다시 떠나는 꽃
그해 행신
알맞은 시절
일상의 공간, 여행의 시간
광장의 한때
극약과 극독
첫사랑
우산과 비

취향의 탄생
그해 삼척

4부
일과 가난
불친절한 노동
어른이 된다는 것
고아
초간장
그만 울고, 아버지
손을 흔들며
축! 박주헌 첫돌
중앙의원
순대와 혁명
죽음과 유서
내 마음의 나이


나아가며-그해 연화리

책 속으로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지 않아도 더없이 말갛던 그해 너의 얼굴과 굳이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개지던 그해 나의 얼굴이 서로 닮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 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

[책 속으로 더 보기]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지 않아도 더없이 말갛던 그해 너의 얼굴과 굳이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개지던 그해 나의 얼굴이 서로 닮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 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_p17「두 얼굴」부분

소금기 진한 바람은 식당의 빛바랜 간판을 바꾸기도 합니다. 오래전 ‘이모네 식당’은 ‘모네 식당’이 되었습니다. 곰치국의 간이 조금 진해졌지만 여전히 수련睡蓮 같은 고명들이 가득 들어간 일이나 한해살이풀이 죽은 자리에 같은 한해살이풀이 자라는 일, 어제 자리한 곳에 오늘의 빛이 찾아 비치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그리 큰일도 아니었습니다.
_p133「그해 삼척」전문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_p19「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부분

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래서 모두 틀리기도 모두 맞기도 하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언제나 참일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여전히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다면 그 이유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_p95「사랑의 시대」부분

이 글을 쓰면서 그 시기의 일기장을 펴보았는데 내가 화장터에 간 날은 2000년 4월 5일이었다. “만약 다시 벽제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최대한 아주 먼 미래였으면 한다”라는 문장이 있었고 “그래도 사람의 마지막이 크고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관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라는 문장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희망과는 달리 나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벽제로 가야 했다. 슬프지만 앞으로도 몇 번은 더 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어느 깊은 숲에서 잘 자란 나무 한 그루와 한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슬픔 속에 우리들의 끝이 놓인다는 사실은 여전히 다행스럽기만 하다.
_p38「벽제행」부분

증상과 통증은 이제 미병이 끝나고 우리 몸에 병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대부분의 장기와 기관들은 통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위통이 시작된 후에야 위가 여기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아픈 곳은 허리인데 손발이 먼저 저려올 때 온몸의 신경이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에서도 다시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남은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앓는다. 특히 서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의 끝을 맞이한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후회될 만큼 커다란 마음의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_p44~45「몸과 병」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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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2017년은 가히 박준 시인의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2년 12월에 출간한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2017년 7월에 출간한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작년 12월을 기점으로 ...

[출판사서평 더 보기]

2017년은 가히 박준 시인의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2년 12월에 출간한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2017년 7월에 출간한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작년 12월을 기점으로 동시에 10만 부 판매를 넘긴 것.
물론 어떤 수치에 그의 문학성을 전적으로 기대는 마음이었다면 서두부터 진즉에 이런 얘길 꺼내지도 않았으리라.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박준 시인의 글 틈에 스며주셨다는 사실, 그 스밈 가운데 사랑으로 번져주셨다는 사실, 덕분에 시와 산문 어디에도 기울지 않고 팽팽히 두 장르의 문학에 균형을 잡고 있는 시인에 대한 우리들의 안도와 기대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는 사실, 반면에 그만큼 부담으로 어깨가 굽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 시인의 그늘은 속속들이 깊어졌다는 사실……
하여 뭔가 환기의 적기가 이즈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가을과 겨울과 봄을 통과하여 다시 여름을 마주하기까지의 1년, 유난히 계절성을 담보로 하는 작품들을 많이 써내는 박준 시인에게 사계절을 처음으로 살아낸 제 산문집의 한해살이에 대해 혹여 물으니 글쎄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어쩌죠? 이 책 곁에 시를 껴주고 싶어졌어요. ……욕심일까요?”
새로 쓴 시라 했다. 그가 아끼는 시라 했다.

선잠 2
-박준

그해 여름 당신에게는 까닭 없이 손끝이 상하는 날이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다 손을 베인 당신은 아픈데 가렵다고 말했고 나는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했다. 여름빛에 소홀했으므로 우리들의 얼굴이 검어지고 있었다. 어렵게 새벽이 오면 내어주지 않던 서로의 곁을 비집고 들어가 쪽잠에 들기도 했다.

읽었다. 읽으니까 어떻게든 이 산문집에 이 시가 머물 거처를 마련해줘야겠다는 마음밖에는 안 먹어졌다. 새롭게 표지 디자인에 착수한 것도 다 이 시에서 비롯함이었다. 더부살이처럼은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지의 변화가 우선순위였다.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순간 이 시의 뉘앙스를 그대로 머금은 듯한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시인 박준의 시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왔을 것만 같은 여인, 그의 뒷모습.
이 그림 또한 원래의 책 표지를 장식해준 이스라엘 출신이자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기드론 루빈의 작품이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그에게 이런 답장이 왔다.

“벌써 1년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네요. 제 표지를 담은 책이 사랑을 받았다니 저도 정말 기뻐요. 자랑스러운 마음입니다. 다시 봐도 책은 정말 아름다워요. 제가 읽을 수 있었다면 더 사랑스러웠겠지만요. 우리 만날 때 저에게 조금 번역해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리커버 산문집에 제 새 이미지를 쓰시는 것도 물론 기쁜 마음으로 허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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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시인 박준, 그의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
그냥 옆에 있는 책.
마냥 곁이 되는 책.

가끔 사는 게 힘들지? 낯설지?
위로하는 듯 알은척을 하다가도
무심한 듯 아무 말 없이
도다리 쑥국이나 먹자,
심드렁히 말해버리는 책.

1.
박준, 이라는 이름의 시인을 압니다. 2008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지난 2012년에 첫 시집을 상재한 바 있다지요.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시집 제목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들어본 적 있으실 것도 같은데요, 그래요『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초콜릿색 시집이요. 뒷면에 한 여인의 뒷모습을 짐짓 무심한 듯 그러나 뭔가의 사연을 짐작케 하는 포즈로 새겨넣었던 바로 그 시집이요. 참으로 큰 관심 속에 이 시집은 세상에 선을 보인 지 5년을 향해가는 지금까지도 꾸준한 여러분의 사랑을 먹고산다지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박준 시인은 뭐든 잘 잊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 마음들을 확인할 때마다 제 안에 꼬깃꼬깃 접어 숨겨놓았다가 뭔가 아리송한 바람이 저를 덮칠 때면 외따로이 숨어 앉아 몰래 꺼내보고는 한다지요.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나요.

2.
그런 그가 오랜 준비 끝에 첫 산문집을 들고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첫 시집 제목이 열여섯 자였는데 그보다 한 자 더 보태 열일곱 자 제목으로 짓고 기운 책으로 말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가만, 제목이 좀 길죠? 네, 좀 길다 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그래도 그리 어렵게는 안 느끼실 거다 자신했던 데는 우리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해봤거나 들어봤을 경험의 소유자들이라는 까닭에서였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더는 울지 마, 하는 사람이 나였다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더 좀 울어, 하는 사람이 너였던 상황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놓여 있었던가요.

3.
앞서 ‘편지’라는 단어를 살짝 꺼냈었는데요, 이번 박준 시인의 산문집이 어쩌면 편지라는 설명 불가결의 의미심장함과 참으로 닮아 있다 싶기도 해요. 왜 편지가 그렇잖아요. 억지로 쓰게 되면 빤하고 밋밋한 소리만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되는데 자발적으로 쓰게 되면 손에 펜을 쥔 자가 예측 불허의 무한 에너지로 제 안의 이야기들을 마구 터뜨리게 되는 게 사실이잖아요. 왜 이렇게 쓰고 있는지 저도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런 구절들을 중간 중간 추임새처럼 섞어가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타고나길 진실인 편지, 그런데 그렇게 생겨먹길 진심인 편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박준 시인이 그간 제 시를 함께 읽어주고 함께 느껴주고 함께 되새겨준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한 권의 답서(答書)이자 연서(戀書)가 아닐까 해요. 그런 둘 사이의 편지는 필시 길게 이어질 운명이라는 것도 실은 조금 알겠어서 이 한 권의 책을 여러분들에게 내미는 마음이 보다 덜 부담일 수도 있던 바, 분노나 미움보다 애정과 배려에 가까운 것이 편지이기에, 그리하여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이 실은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쓰고 싶다는 마음과 동일한 다짐임을 알기에, 시인은 타고난 부끄러움을 돌로 살짝 눌러놓은 채 이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써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다 퍼내서요, 더는 남음이 없어요! 원고를 마무리 지으며 시인이 뱉은 말을 끝끝내 원고 마지막 페이지에 압정으로 꽂아두었던 저라지요.

*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가난한 남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이별을 앞둔 연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죽음을 공유한 부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시인 박준’이라는 ‘사람’을 정통으로 관통하는 글입니다. 제 호흡 가는대로 총 4부로 나누긴 하였지만 그런 나눔에 상관없이 아무 페이지나 살살 넘겨봐도 또 아무 대목이나 슬슬 읽어봐도 우리 몸의 피돌기처럼 그 이야기의 편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드러낼 작정 없이 절로 드러난 이야기의 어린 손들을 우리들은 읽어가는 내내 잡기 바쁜데 불쑥 잡은 그 어린 손들이 우리들 손바닥을 펴서 손가락으로 적어주는 말들을 읽자면 그 이름에 가난이 있었고, 이별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이라는 생활, 이별이라는 정황, 죽음이라는 허망, 이 셋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들 모두에게 바로 직면한 과제라 허투루 들리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웬만하면 마주하려 하지 않았던, 가능하면 피하고만 싶었던 우리들의 민낯, 그 가난은 힘들고 또 힘들게 하고, 이별은 아프고 또 아프게 하고, 죽음은 슬프고 또 슬프게 하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맞장을 뜨듯 이 삶의 곤궁더미들을 미리 대면하면 좋을 이유가 우리 몸에 내성이라는 것을 생기게 함으로써 끝끝내 삶을 밀어 삶 너머로 나아가게 할 것을 아니까요, 그 원동력으로 삶과 죽음의 쳇바퀴를 더욱 자신 있게 굴리게 해줄 테니까요. 우리가 왜 책을 읽어야 하나 하는 물음에 우리가 왜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이 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과 확신, 이 책으로 말미암을 수 있었다니까요.

5.
더불어 이 책은 시와 산문의 유연한 결합체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어느 날 보면 한 권의 시집으로 읽히고 또 어느 날 보면 한 권의 산문으로 읽힙니다. 문장 하나 허투루 쓰인 것이 없으니 내가 그은 밑줄 속에 내가 걸려 넘어지는 날 잦게 합니다. 이상하지요. 강요하는 말씀이나 주저앉히는 감상을 싹 다 걷어낸 담백한 글인데 울음 끝에 웃음이거나 웃음 뒤로 울음인 그 둘의 뒤섞임이 왕왕입니다. 특히나 이번 산문집에서는 그만의 세심하면서도 집요한 관찰력이 소환해낸 추억의 장면들이 우리를 자주 눈물짓게 하였는데요, 이를 구성케 한 그만의 특별한 기억력에 나는 뭔가 들킨 적이 없나 놓친 것은 없나 몇 번이나 되새김질을 해야 했답니다. 장난감처럼 보여도 실은 고성능으로 무장된 레이더를 제 안에 장착한 것만 같은 시인 박준. 아이처럼 말하는데 어른처럼 보는 시인 박준. 어쩌면 조금 이르다 싶게, 제법 익숙하다 싶게, 터무니없이 갑작스럽다 싶게 겪은 세상의 풍파 속에 시인이 앳된 나이부터 노출이 된 까닭도 있다 싶은데요, 그럼에도 시인은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그 누구를 미워하지도 않으며, 그 누구를 불신하지도 않는 삶의 태도로 씩씩합니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겠냐는 듯 우리가 누구나 홀로인 것은 맞으나 언제나 혼자인 것은 아니라는 식의 메시지를 껌 종이에 적은 메모처럼 쥐어주기도 하지요. 속고 속으면서 살다 가는 것이 또한 삶이 아니겠냐며 울다 웃고 또 웃다 우는 것이 인생 아니겠냐며 지친 우리들의 등을 말없이 쳐주다 슬쩍 사라지기도 하지요. 아무래도 우리와는 다르게 눈 하나를 더 가진 사람, 그래서 일반인으로는 저주를 받았다 할 수 있겠으나 시인으로는 복을 받은 이가 바로 박준 시인이 아닐까 해요.

6.
이 책은 읽는 내내 우리와 보폭을 정확히 맞춰줍니다. 까만 뒤통수를 내보이며 앞서 가는 책도 아니고 흰 얼굴로 흐릿하게 멀어지며 뒤로 가는 책도 아닙니다. 그냥 옆에 있는 책입니다. 마냥 곁이 되는 책입니다. 가끔 사는 게 힘들지? 낯설지? 위로하는 듯 알은척을 하다가도 무심한 듯 아무 말 없이 도다리 쑥국이나 먹자, 심드렁히 연인에게 말하기도 하는 책입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벤허〉 단체관람을 간대. 나는 못 갔지. 돈이 없으니까”, 하는 아버지에게 “나도 수학여행 못 갔네요. 돈 없어서.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때가 딱 IMF 때라 못 가는 친구들이 많았어. 다행이지. 가난도 묻어갈 수 있다니”, 의기양양 아버지와 대화를 섞게 하기도 하는 책입니다. 몇 해 전 사고로 누나를 잃고 누나의 편지를 정리하며 누나의 여고 시절 편지 속 “오늘 점심은 급식이 빨리 떨어져서 밥을 먹지 못했어”라는 구절에서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10여 년 전 느낀 어느 점심의 허기를 10여 년 뒤 느낌으로써 거미줄 같은 세상사 연연의 끈을 계속 쥐게도 해주는 책입니다. 어쨌거나 울 사람은 우는 그대로 안 울 사람은 안 우는 그대로 그렇듯 내키는 그대로 살게 하는 책. 울든 안 울든 네가 발 딛고 선 그 지점이 언제나 출발선이니 언제든 너는 자유야, 하는 아리송한 전언을 주는 책. 그렇게 희망이 되는 책.

7.
마지막으로『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표지 속 그림을 자세히 봐주십사 요청을 드리는 바입니다. 좀 묘하죠. 강 위를 떠가는 배 위에서 여자는 노를 젓고 남자는 하모니카를 부는 가운데 두 사람의 얼굴 속 이목구비가 몽땅 지워져 있으니 말입니다. 왜 눈을 지우고 왜 코를 지우고 왜 입을 지웠을까요. 그럼에도 왜 눈에서는 눈물이 고이고 왜 코에서는 콧물이 맺히고 왜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할까요.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가난한 남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이별을 앞둔 연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니 죽음을 공유한 부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림 속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유추해보는 가운데 이목구비 없이도 눈을 타고 코를 타고 입을 타고 흐르는 슬픔의 어떤 기저가 강에 떠 살다 가는 우리네 한 생을 참도 잘 대변한다는 확신만은 분명히 들게 하네요. 그래서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한 번씩 표지로 시선을 옮겨보십사 다소 건방질 수 있는 팁도 이렇게 드리는가보아요. 참고로 표지 속 그림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중인 화가 기드온 루빈의 작품이고요, 제목은 무제라네요. 2018년 9월 한국에서의 대규모 첫 전시가 있다고 하니 미리 눈에 익혀두셨다가 내년에 반가이 뛰어가 실물로 확인하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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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내 또래 연배의 사람들에게 가난은 익숙지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이 부모의 뒷바라지 덕에 풍족했다. 원하는 걸 ...
    내 또래 연배의 사람들에게 가난은 익숙지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이 부모의 뒷바라지 덕에 풍족했다. 원하는 걸 손에 넣기까지는 시간이 더 혹은 덜 걸리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IMF가 닥치기 전까지는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나이가 들면 과거가 그리움이 된다던데, 어쩌면 지금보다 지난날이 더 풍족했기에 되돌아가고픈 마음이 강렬한 듯도 하다. 저마다 각기 다른 배경을 타고 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따금 접하곤 하는 이야기에 난 놀란다. 지금은 의무교육이 된 중학교, 의무교육까진 아니어도 당연히 졸업해야 한다 여겨온 고등학교를 끝마치지 못한 사람들이 내 나이대 사람들 중에도 있었다. 단지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가 아닌 가난 때문에, 가정을 지탱하려면 자신이 일을 해야 해서 그들은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그들이 그려온 삶의 궤적은 내 것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드넓게 만들어준다는 말은 철없음의 증거와도 같다. 당장 먹고 사는게 힘든 사람의 시선은 지금 이 순간에 멎어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알고는 있었지만 글로 현실을 접한 것만 같은 기분이 낯설었다. 박준 작가의 글이 처음은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아무리 치밀하게 굴어도 글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란 힘들다. 단 두 권의 책을 읽었으니 난 그를 모른다. 막연히 짐작할 따름이다. 적잖이 힘들었고 쓸쓸했던 거 같다. 성장하면서 조금 밝고, 또 남들과도 잘 어울리게 됐다고는 했지만 한 때 그는 외로웠다. 사람과의 어울림이 쉽지 않다는 거, 인생이라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꽤 일찌감치 깨달았다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들었다. 중간에 야트막히 접한 슬픔도 그의 이른 철듦에 일조했을 수도 있다. 피붙이를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난 아직 알지 못한다. 충분히 긴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나 글에 얼핏 등장하는 걸 보면 은은하게 아픔이 삶 전반에 녹아들었지 싶었다. 
    겉과 속이 항상 같을 순 없다. 그는 여림을 타고 났고,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이들이 다른 분야로 떠나는 걸 바라보면서 고민했지만 결국 지금에 이르렀다. 우유부단함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딱히 자신 있는 혹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일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글에 쏟아 부은 이제까지의 시간들을 배신 않고픈 의지가 강했을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선택의 방식이다. 그는 자신이 택한 방식에 입각해 시인이 됐다.
    글만 써 가지고는 먹고 사는 게 어렵다. 운 좋게 등단을 하고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출판하는데 성공하더라도 사정이 180도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고용된 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가 시인에겐 주어진다. 충분히 많은 시간을 갉아먹으며 쓰는 게 글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마냥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과도하게 많은 일을 받아들이고는 후회하는 저자의 모습이 낯설었다. 혹자에게는 한낱 끄적임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쉽게 쓰여진 글은 어디에도 없다. 요청받은 분량을 감안해가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무슨 내용으로 이를 채우면 좋을까, 충분히 매력적인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자판을 두드리거나 종이에 꾹꾹 글씨를 눌러 쓰는 것만이 글 쓰기는 아니다.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부여잡고자 안간힘을 쓰는 순간부터 이미 집필은 시작된다. 글을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장소를 바꾼다 하여 안 써지던 글이 급작스레 술술 터져 나오진 않는 모양이다. 주변이 낯설면 호기심부터 인다. 책상머리를 박차고는 세상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야만 할 거 같은 충동에 몸을 내맡기다 보면 글은 안중에도 없다. 온갖 유혹 한가운데로 자신을 내던지는 게 어쩌면 작가에게 있어 여행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떠나고픈 마음이 드는 건 글 쓰기를 업으로 삼지 않은 자의 여유인 것도 같다. 
    글을 읽으며 뜬금없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단지 글을 쓰는 행위가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블랙홀과도 같은 블로그 관리에 내가 공을 들이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써온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들이 어디서 책 출판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는지 나는 모른다. 그야말로 그들은 소리 없이 빨랐고, 난 요란한 빈 수레 마냥 글을 여기저기 흩뿌리다가 제 풀에 지쳤다. 그것이 직업 작가와 뜨내기의 차이이려나.
    나의 글 안에는 온통 어설픈 뾰족함으로 무장한 내가 있었다. 언제나 지금보다는 젊은 나의 부모가 있었고, 한 때 함께였으나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알 길 없는 이들도 존재했다. 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쓰고 쓰고 또 쓰는 까닭은 글이 좋아서다. 아니, 내가 정녕 글을 좋아한다고 믿고 싶다. 
  • 글이 편하다 | ss**08 | 2020.03.23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의 살아온 경험치와 노력의 산물임이다. 극빈의 삶을 산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M...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의 살아온 경험치와 노력의 산물임이다.

    극빈의 삶을 산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에 공감이 간다.

    꾸밈없는 글들이 편안함을 주었다.

     

    *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p18
    *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어떤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p19
    * 자신이 말을 하는 시간과 상대방의 말을 듣는 시간이 사이좋게 얽힐 때 좋은 대화가 탄생하는 것이다.p74


    *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다.p26
    *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도 어떤 정량이 존재한다.p49
    * 상대가 누구든간에 정중함과 예의를 잃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를 좋아했다. p74

    * 골라온 책은 끝까지 읽을 것, 역사나 철학이나 사회과학 도서 외에도 원예, 무속, 의학처럼 기본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한 분야의 책들을 잡히는 대로 읽었다. p178
    * 사람이 사람을 잃은 세상, 노동이 노동을 잃은 세상, 법이 법을 잃고, 강이 맑음을 잃은 세상에서, 도처가 죽음으로 가득하지만 애도와 슬픔에까지 정치성을 들이대는 세상에 살고 있다. p183

    * 시를 짓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p181
    * 미리 유서를 써두어여 한다. p182
    *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2005.05.01. 권정생 유서글 중- p185

  • 에세이를 선택할 때 저자가 시인인 경우를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짧고 압축적인 시를 쓰던 작가들이어서 그런지, 군더더기 없...
    에세이를 선택할 때 저자가 시인인 경우를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짧고 압축적인 시를 쓰던 작가들이어서 그런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형식의 에세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이 에세이 역시 그런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실려있는 에세이 중 여러 편은 시처럼 또는 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시인의 개인적인 여러 모습들을 책의 내용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저자의 섬세하면서도 곧은 성품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다만 일부 글들의 경우에는 특별한 느낌이 느껴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다.

     

    다음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들이다.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어 이 말은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해봤거나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합...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어 이 말은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해봤거나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더는 울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더 좀 울라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겠지요. 그건 그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울고 나면 속시원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라는 글귀를 읽으면서 많이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제법 들어서 우는 게 창피하다고도 생각되고 아무 ˖나 막 울수도 없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면 확실히 힘을 얻는 것 같거든요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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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박 준

    시인,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8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있다.

     

    이 책은 산문집이지만 시집처럼 산문처럼 읽힌다. 젊은 시인인데 세심하게 묘사한 글들이 마음에 든다. 웬지 팬이 될 거 같은 기분이랄까. 제목이 마음에 들어 고른 책이다. 마음이 찡한 대목은 시인이 아버지와 통화했던 대목이다.

     

    "한번은 미아리 극장에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최무룡씨가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갔어. 너 최무룡씨 알지? 몰라? 그때 극장들은 로비에 벤처스류의 경음악을 크게 틀어놓았거든. , 신나지. (중략) 그때가 양복점 일하기 전에 창동으로 고물 주우러 다닐 때니까 행색이 말이 아니었지.(울먹이시다 끝내 오열. 겨우 그치고) 그 영화 줄거리가 꼭 내 이야기 같았어. 주인공이 고아인데 나랑 처지가 비슷하더라고. 영화가 끝나고도 집에 갈 때까지 울었어. 당시 홀아비로 살던 네 할아버지가 나보고 왜 우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푸른 하늘 은하수>보고 오는 길이라고 하니, 할아버지는 먼저 그 영화를 봤나봐, 그러더니 나더러 더 울라고 (다시 오열)"

     

    "아이참. 슬픈데 웃기네."

    "그런데 너는 어떤 영화로 글을 쓸 건데?"

     

     

    편지

    몇 해 전 누나를 사고로 잃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그녀가 살던 오피스텔을 쫓기듯이 며칠 만에 서둘러 정리했다. '키타로'라는 이름의 러시안블루 고양이는 누나의 친구가 데리고 갔고 가방과 옷은 태웠으며 책은 버렸다. 하지만 단 하나도 버리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녀가 이제껏 받은 편지였다.

    나는 편지들이 궁금해 손에 잡히는대로 펼쳐보았다. 한참 읽어보다 조금 엉뚱한 대목에서 눈물이 터졌다. 1998년 가을, 여고 시절 그녀가 친구와 릴레이 형식으로 주고받은 편지였는데 "오늘 점심은 급식이 빨리 떨어져서 밥을 먹지 못했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10여 년 전 느낀 어느 점심의 허기를 나는 감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것으로 편지 훔쳐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울음과 숨

    통곡, 사람, , 울음소리, 구슬프다,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울음, 그사이, 들리는, 숨소리, 울음에 쫓기듯, 급히 들이마시는, 숨의 소리, 울음, 울음 보다 더 슬픈, 소리.

     

    시인이라는 직업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 마음이 쓰이는 구절이다.

     

    시가 돈이 되지 않듯, 시인이 직업이 될 수 없으니 내가 한 일들은 그동안 빈번하게 바뀌었다. 두 해 가까이 오류동의 마트에서 배달을 했고, 강서구의 청과물 경매장에서 지게차를 몰았고, 교정지와 함께 눈을 뜨고 교정지 위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야 하는 출판사의 편집 일도 했다. 관람객들이 잘 찾지 않는 문학박물관에서 큐레이터 일을 하며 허허로운 시간을 보낸 적도 있고 꽤나 좋은 조건으로 홍보직 공무원 생활을 한 적도 있다.

     

    시인은 여행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서 통영을 사랑한다고 한다. 나도 통영에 두 명의 친구가 있고 통영을 좋아하는 데 지금은 갈 수가 없다.

     

     

    통영을 사랑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마음으로 한 철을 함께 보낸 애인도 통영을 사랑했다. 시인 백석과 도종환과 청마 유치환도 통영을 사랑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많은 미인들이 통영을 사랑했을 것이다. 백석은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이라 말했고 도종환은 "섬 사이로 또 섬이 있었다 굳이 외롭다고 말하는 섬은 없었다" 고 이야기했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청마 유치환의 사랑 이야기 또한 우리를 즐겁게 한다.

     

    1947년 마흔 살의 유치환은 통영여중 교사로 갓 부임한 한 교사에게 반해 하루도 빠짐없이 통영우체국에 들러 편지를 보냈다. 1967년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간 그가 보낸 편지는 약 5천 통에 달했다. 그 수많은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바로 이영도 시조시인이었고 유치환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그동안 받은 편지를 엮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고아

    아버지는 서울 태생입니다. 그림을 그렸던 친할아버지도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서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자하문 근처 살던 가난한 아버지의 유년이 며칠씩 생으로 굶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촌에 살던 가난한 어머니의 유년에는 그래도 수제비나 옥수수, 감자가 있었으니까요. 아버지의 자랑이라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정도이니까 역시 서울은 자랑할 게 못 됩니다.

     

    아버지의 세발자전거 이야기 그때가 1953년이나 1954년 즈음입니다. 당시 며칠씩 생으로 굶던 처지의 어린 아버지가 갖기에는 값비싼 물건입니다. 그 자전거는 사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한 물건이었습니다. 며칠씩 울기만 하는 아들이 불쌍했는지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것이지요. 분명 자전거도 좋았겠지만 '엄마'라는 것이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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