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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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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쪽 | A5
ISBN-10 : 899270870X
ISBN-13 : 9788992708708
국가의 죄수 중고
저자 자오쯔양 | 역자 장윤미 | 출판사 에버리치홀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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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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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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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4일 톈안먼 광장에 민주는 없었다! 자오쯔양은 1989년 톈탄먼 사태 때 민주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도록 명령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에게 저항하다 숙정된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다. 톈안먼 광장에 총성이 울려 퍼진 후 자오쯔양은 모든 직책에서 쫓겨나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야했다. 이 책은 그가 당의 감시를 피해 손자들 장난감 옆에 일부러 방치했던 30개에 이르는 육성 테이프를 비서였던 바오퉁의 아들 바오푸가 4년간 다듬어 묶어 낸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자오쯔양
저자 자오쯔양(趙紫陽, 1919~2005)의본명은 자오시우예(趙修業), 1919년 허난(河南) 화(滑)현 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다. 13세에 공청단에 가입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자오쯔양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농민운동으로 성공하여 중국 공산당 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46세에 최연소의 나이로 광둥성위 제1서기에 오른다. 문화대혁명 당시 비판을 받아 하방되어 노동 개조에 참여한다. 1975년 쓰촨에서 정무를 주관하면서 농촌경제개혁에 성공한다. 당시 ‘식량을 구하려면 쯔양을 찾으라’라는 말이 유행했고 그의 명성이 갈수록 높아져 덩샤오핑의 중용을 받았다. 1980년에서 1987년까지 중국 국무원 총리를 맡았고 1987년에서 1989년까지 중공중앙 총서기를 맡았다. ‘6·4’ 톈안먼 사건에서 학생들을 동정하다 16년간 연금을 당했으며 2005년 향년 85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저자 : 바오푸
저자 바오푸(鮑樸)는 자오쯔양 생전의 비서 바오퉁의 아들. 홍콩에서 신세기(新世紀)출판사를 세웠다.

역자 : 장윤미
역자 장윤미는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중국 베이징 대학교 정부행정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중국 노동조직의 변화와 성장', '중국의 체제전환과 러시아', '중국 기층사회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과 인민의 일상'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 어느 조반파 노동자의 문혁 10년》이 있다.

역자 : 이종화
역자 이종화는 목원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중국 베이징 대학교 정부행정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는 '중국 지역발전전략의 특징과 함의', '중국 산시성과 쓰촨성의 자율성 편차에 관한 비교연구', '경제개혁에 관한 중국식 분권화와 지방정부 역할의 재조명', '중국의 정치체제개혁과 당내민주의 발전' 등이 있다. 공편으로 《중국의 부상》이 있다.

목차

서문 역사는 인민이 쓰는 것이다
머리말 자오쯔양 녹취 회고의 역사적 배경

Ⅰ. 1989년 6·4 사건
1장 | 1989 학생운동의 시작
2장 | 4·26 사설
3장 | 학생시위와 정치투쟁
4장 | 무력 진압
5장 | 속죄양
6장 | 2차 문화대혁명
7장 | 큰형님 덩샤오핑

Ⅱ. 연금의 심정
8장 | 당과 국가의 심판
9장 | 고군분투

Ⅲ. 개혁개방의 13가지 문제
10장 | 덩샤오핑과 천윈 간의 논쟁
11장 | 1981년의 완충 역할
12장 | 대외개방의 진통
13장 | 경제 건설의 새로운 길
14장 | 후야오방과는 다른 경제적 견해
15장 |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16장 | 점진식 경제체제개혁
17장 | 경제 과열과 연착륙
18장 | 국제무역으로 장점을 살리다
19장 | 농촌 농가생산책임제
20장 | 연해 지역의 대외경제 발전 전략
21장 | 연해로 전국을 선도하다
22장 | 부패에 직면하여

Ⅳ. 후야오방 시대에서 자오쯔양 시대로
23장 | 후야오방의 하야
24장 | 1987년 반자유화의 한 해
25장 | 좌파 안의 좌파
26장 | 중국 사회주의 노선을 확립하다

Ⅴ. 거대한 변화, 1988년
27장 | 13대 이후의 서광
28장 | 상품질서를 찾다
29장 | 경제 후퇴
30장 |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물가개혁
31장 | 개혁이 후퇴하고 체제가 과거로 돌아가다
32장 | 실권 잃은 총서기
33장 | ‘자오 타도의 바람’이 불다

Ⅵ. 개혁의 이름으로
34장 | 덩샤오핑의 행정개혁
35장 | 중국의 이름 없는 공포
36장 | 후야오방의 사회주의민주
37장 | 민주와 법제 사회

주·416
부록1 연해 발전 전략에 관한 단독 녹취
부록2 민주와 법제의 궤도에서 문제를 해결하자
부록3 5월 19일 톈안먼 광장에서의 즉석연설
부록4 6·4 사건에 관한 해명 발언
자오쯔양 연보
인명록
옮긴이 후기

책 속으로

당시 학생시위에 대해 유혈사태를 피하고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다른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당시 나는 ‘민주와 법제의 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는데 바로 이와 같은 결말을 얻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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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생시위에 대해 유혈사태를 피하고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다른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당시 나는 ‘민주와 법제의 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는데 바로 이와 같은 결말을 얻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패 근절과 정치개혁을 요구했지 공산당 타도와 공화국 전복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학생들의 행동을 ‘반당·반사회주의’로 보지 않고, 그들의 합리적인 요구를 받아들이고 인내심을 가지고 협상하고 대화하며 소통했다면 사태는 진정되었을 것입니다. -본문 145쪽

루겅은 야오방에게 당신은 왜 덩 어르신이 있을 때 군사위를 장악해 군사위 주석이 되지 않느냐고도 말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다가 향후 군의 우두머리가 당신에게 반대한다면 그러한 국면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야오방은 그런 문제는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과 자오쯔양 둘은 지금 경제와 당 문제로 바쁘며, 군대 안에서는 서열을 굉장히 중시하고 또 지금은 전쟁 때도 아니니 덩샤오핑에게 이 직무를 맡겨야 자신과 자오쯔양이 경제와 당 업무에 힘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터뷰 중 루겅은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천윈, 왕전, 후차오무, 덩리췬에 대해 나쁜 말을 했다. 이러한 얘기가 덩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군사위 주석을 거론한 부분에서 덩은 매우 언짢아했다. -본문 266쪽

스탈린과 마오쩌둥 말년의 심각한 교훈, 그리고 덩 자신이 문혁 중에 겪었던 처지를 감안한다면 덩이 사회주의국가 정치제도의 폐단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그 역시 당 내부와 사회에서의 민주를 확대하고 가부장제를 폐지하며 소련의 영향이 미친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종종 언급했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정말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 정치를 건드려야만 한다. 허나 덩의 신조는 공산당의 집정 지위에 도전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고도로 집중된 권력 정치와 독재제도는 그가 특히나 마음에 들어 하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민주, 즉 지도자의 특권을 폐지하고 봉건주의 사상의 영향을 제거하는 것 모두 실현할 수 없는 것으로 빈말에 불과하다. -본문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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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중국 정부의 눈을 피해 미국에서 출간,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 2009년 홍콩에서 20주년 기념에 맞춰 출간되자마자 매진, 타이완, 홍콩에서 현재 베스트셀러 행진!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 어떤 내용이기에…… ...

[출판사서평 더 보기]

중국 정부의 눈을 피해 미국에서 출간,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
2009년 홍콩에서 20주년 기념에 맞춰 출간되자마자 매진,
타이완, 홍콩에서 현재 베스트셀러 행진!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 어떤 내용이기에……


중국 역사의 빈자리,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돌아보다

올해는 1989년 6월 4일 중국 톈안먼 광장에서 유혈 사태가 발발한 지 21년이 되는 해이다. 아울러 개혁가이자 민주주의를 꿈꾸다 6·4 운동의 희생양이 된 자오쯔양(趙紫陽, 1919~2005)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서거한 지 6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에서 6·4는 우리의 5·18 광주 학생운동을 떠올릴 만큼 중국이 민주화·현대화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여전히 민주화 항쟁이 아닌 ‘6·4 톈안먼 반란과 학생과 시민들의 폭동’으로 부르고 있어 민주화를 위한 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매장하고 있다. 21년 전 이날 무력 진압에 의해 죽어간 학생과 인민의 수가 얼마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 영원히 복직되지 못했는지, 가해자와 책임자는 누구인지 공개된 자료도 없다. 당시를 기억하는 지식인, 학생들은 끊임없이 ‘6·4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1989년 6·4 민주화 운동은 여전히 중국 역사에서 빈자리로 남아 있다.
《국가의 죄수》는 톈안먼 운동 때 광장에 모인 학생들을 독려하고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 덩샤오핑에게 숙정된 당 총서기 자오쯔양이 가택 연금 중에 과거를 돌아본 회고록이다. 자오쯔양은 누구보다 오랫동안 덩샤오핑을 보필하며 중국 경제의 선진화를 이끌었으나 1989년 계엄이 선포된 톈안먼 광장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 후 무려 16년간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2005년 85세로 사망했다. 중국 총서기를 지내며 인민의 사랑을 받았던 그는 지금 중국 서적과 잡지, 신문, 심지어 역사에서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6·4 이후 그는 죽어서도 국가의 죄수로 남아 제대로 평가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자오쯔양에게 붙여진 죄목은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6·4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으로서 그는 가택 연금 중 차분히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솔직담백하게 회고한다. 그리고 자신이 신념으로 삼았던 개혁개방과 이에 반대하던 세력과의 당내 갈등, 덩샤오핑에 대한 서운함 등을 2000년 무렵 30시간 분량의 육성 테이프 30개에 남겼다. 이 책은 당의 감시를 피해 일부러 손자들 장난감 옆에 방치하듯 보관해오던 테이프를 그의 사후 바오푸(鮑樸, 자오쯔양 생전의 비서 바오퉁의 아들)가 미국으로 가져가 4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이후 홍콩과 타이완에서 출간되자마자 매진되는 사태를 빚었고 중국은 금서로 지정했다.
이 책은 자오쯔양이 톈안먼 유혈 진압에 이르기까지 당내의 갈등부터 1980년대 주요 경제정책, 정치개혁에 대한 구상, 가택 연금에 대한 그의 심경 등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자오쯔양이라는 한 정치가의 고백서라기보다 중국 개혁사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향후 중국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간에 그에 대한 평가는 톈안먼 사건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더불어 중국의 정치적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후야오방의 죽음이 불러온 풍전등화의 6 · 4 전야

자오쯔양과 함께 양쪽에서 덩샤오핑을 보필하던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이 1989년 4월 15일 사망하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톈안먼 광장에 모여 그를 애도했다. 이들은 당의 부패와 개혁개방의 후퇴에 대한 불만을 후야오방을 추도하는 형식을 빌려 나타냈다. 일부 과격한 학생들은 개혁개방을 진두지휘하다 1987년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후야오방의 명예 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중국공산당사로 몰려가기도 했다.
공식적인 추도식이 끝났으나 학교로 돌아가달라는 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시위 세력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당시 당서기 자오쯔양은 4월 23일~30일 북한을 방문 중이었는데 그의 부재 시 대리인이었던 리펑(李鵬, 1928~)과 야오이린(姚依林, 1917~1994) 등 보수파는 상황을 무력 통제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동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덩샤오핑에게 보고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덩샤오핑은 시위대의 성격을 ‘반당?반사회주의 동란’으로 규정짓고 적의에 가득 찬 4·26 사설을 발표한다.
학생들은 그동안 ‘반당·반사회주의’라거나 ‘계획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사설 발표 이후 분위기가 일순간에 격해졌다. 원래 중도 입장이었던 사람들도 급진적인 쪽으로 변했다. 자신들의 요구가 묵살되자 시위대는 더욱 분개하여 가두시위와 연좌단식 농성에 돌입했고 이들의 가두행진을 지켜보던 도로변의 군중들은 박수로 환영하며 지지를 나타내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가두행진을 저지할 책임을 맡고 있던 경찰조차도 형식적으로 저지하면서 사실상 가두행진을 허용하는 태도를 취했다.

학생들에게 총을 겨눈 총서기가 될 수는 없다

북한에서 돌아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자오쯔양은 4·26 사설을 정정하는 보도를 내보내 학생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수밖에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강하게 그를 나무란다. 그리고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하는 마오쩌둥 시절부터 내려온 내란 진압 정책을 밀어붙여 군대 동원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비극의 발생을 저지하고자 자오쯔양은 톈안먼 광장으로 달려가 단식을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가달라고 설득하는 연설(본문 <부록3>에 연설문 전재)을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은 학생들에게 전해지지 못한다.
이미 당내에 무력 진압하자는 세력이 대세를 이루었을 때, 자오쯔양은 1919년의 5·4 운동을 기념해 5월 4일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연설을 한다. 학생시위는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고, 중국에서 내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요지의 연설이었다. 그러나 정적들은 4·26 사설과는 방향이 다르고 ‘하나의 당에서 두 개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한다.
5·4 연설 내용과 달리 정부에서 어떤 움직임도 없자 실망한 학생들은 고르바초프가 방중한 기간(1989년 5월 15일~18일)을 이용해 대규모 가두시위와 단식을 감행한다. 학생들은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절호의 기회이며 국빈을 접대하기 위해 정부가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과감한 요구는 오히려 무력 진압의 구실이 되었다.
4·26 사설의 정정 발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5·4 연설마저 분열을 조장했다는 당의 비난을 받기에 이르러 자오쯔양은 더 이상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덩샤오핑의 집에서 열린 계엄 결정 회의에서 덩샤오핑은 반대의사를 밝히는 자오쯔양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그를 밀어내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자 자오쯔양은 스스로 역사적 사명을 다했음을 감지한다. 이날 상무위원의 표가 3 대 2로 계엄 쪽으로 기울었다고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사실은 공식적인 투표조차 없이 계엄이 결정된다.
인민에게 총을 겨눌 수 없었던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그는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맘먹고 집에 머물며 덩샤오핑에게 계엄 결정을 번복해줄 것을 편지로 청원한다. 그러나 결국 집 안에서 6월 4일 총성을 듣는다.

‘식량을 구하려면 쯔양을 찾아라’

자오쯔양은 이 책에서 6·4의 배경이 되었던 당내 정치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즉 개혁개방을 주장하며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고자 했던 자신과 보수 세력 간의 갈등에서 사태의 원인을 찾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실각하지 않았다면 중국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빨리 개방의 문을 열게 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중국에서 경제 발전의 원칙은 오랫동안 ‘자급자족’이었다. ‘쌀 없이 밥을 짓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은 원자재부터 시작했다. 철강의 경우 우선 광산을 찾아 콜타르를 만들고 다시 철로를 놓고 그런 다음 제철, 제강, 강철을 압연하고 다시 각종 기기설비를 만들었다.
그러나 1978년 쓰촨성위의 제1서기 자오쯔양의 주재 아래 자율권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개혁 실험이 진행된다. 자오쯔양은 이때 프랑스를 방문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는 기후가 건조해 여름에도 비가 내리지 않는데 중국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곡식을 심기 위해 자연환경을 바꾸고 대대적인 수리 공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포도와 가뭄에 잘 버티는 각종 작물을 심었고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프랑스 포도주를 만들어냈으며 농민들은 상당히 부유했다. 폐쇄적이지 않고 대외무역에 의존해 자신들의 물건을 수출하고 필요한 물건은 수입했던 것이다.
이후 자오쯔양은 산둥 지역 특성에 맞는 면화를 심는 등 개혁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결과 불과 1~2년 사이에 면화가 대폭 증산되었다. 1985년에는 면화가 많아지자 ‘재앙’이 되어 팔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개방정책을 실시하여 부족한 식량은 외국에서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자급자족은 힘이 많이 들고 성과는 적을 뿐’임을 몸소 겪게 된 자오쯔양이 개혁가로서 진일보하는 계기가 된다. 개혁에 성공하자 ‘식량을 구하려면 쯔양을 찾아라’는 민간 노래가 성을 넘어 베이징으로 전해지기에 이른다.

“쯔양 이자는 외국의 것을 너무 많이 배웠어. 이렇게 하다가는 안 되지.”

그러나 원로들, 경제학자들은 개혁개방에 심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원료를 들여온 다음에 수출할 수 있을지, 이렇게 크고 사람도 많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생산한 물건을 모두 팔 수 있을지, 대국으로서의 품위를 버릴 수 있는지, 즉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어찌 노동집약형 제품의 수출을 강조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전통적인 폐쇄 정책을 고수했다.
영향력 있는 원로 중 리셴녠(李先念, 1909~1992)의 말에 당시의 분위기가 잘 나타난다. “쯔양 이자는 외국의 것을 너무 많이 배웠어. 이렇게 하다가는 안 되지.”
그러나 모두의 반대에서 불구하고 덩샤오핑의 적극적인 지지 하에 자오쯔양은 뜻을 펼칠 수 있었다. 덩샤오핑은 1978년 쓰촨성위 제1서기로서 자오쯔양이 보여준 개혁개방의 성과를 인정하고 무슨 일을 하든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중국 지역은 매우 크고 각 지역의 상황이 다른데도 오랫동안 계획경제를 실시해오면서 전국적으로 기회 균등을 강조해왔다. 개혁가로서 자오쯔양의 사명은 당과 국가가 농민과 기업에게 양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1987년 가을부터 1988년 1월 초까지 푸젠, 광둥, 저장, 장쑤 등의 지역을 장기간 시찰하고 중앙 관련 부서와 충분히 의견 교환을 한 뒤에 연해 지역을 전략적으로 대외형 경제 발전 특구로 발전시키기로 결정한다. 해안에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며 기초시설 역시 내륙보다 좋고 노동력도 풍부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처럼 경제개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다방면에서 접근을 시도하던 자오쯔양은 경제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밖의 주장을 펼친다. 상품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생겨난 금권거래와 권력으로 사리를 꾀하는 일이 사회적 감시가 없어 부정부패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는 크게 보아 시스템보다는 사람에게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는 독재 정치제도에 반대의사를 내비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당의 원로들은 후야오방도 차마 하지 못한 일을 자오쯔양이 하려 한다며 심하게 비판하기에 이른다.

덩-자오 체제가 막을 내리다

그 와중에 6·4 사태가 발발했다. 이때부터 자오쯔양은 반대 세력과는 물론, 덩샤오핑과도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특히 고르바초프와 회견 당시 당내에서 덩샤오핑이 차지하는 지위와 관련한 자오쯔양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덩샤오핑은 당시 원로 중의 원로로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당내의 주요 정책 결정자로서 그의 지위는 ‘상무위의 시어머니’로서 결코 변함이 없었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왜 상무위원이 아닌 덩샤오핑에게 보고를 하는가?’ 같은 말을 외부로부터 적지 않게 들어야 했으며 이른바 ‘수렴청정’ 같은 비난의 말이 퍼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것을 분명히 밝히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자오쯔양은 그의 이미지를 보호하려는 좋은 마음에서 덩샤오핑의 특수 상황에 대해 일부러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덩에게 통보하고 자문을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집에서 직접 회의를 하며 중대한 문제는 그가 결정할 수 있게 하자는 것도 논의하여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자오쯔양은 의도적으로 덩샤오핑을 음해하려 했다는 커다란 오해를 사게 된다. 덩샤오핑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자오쯔양이 학생시위의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덩샤오핑을 매도했다는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가 이러한 오해를 가지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나는 진실로 원치 않았다.’
자오쯔양은 보수파와의 갈등에서 언제나 자신 편에 서주었던 덩샤오핑에게 한시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가택 연금되어서도 오해를 풀기 위해 수차례 덩샤오핑에게 편지로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한 차례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그는 오해를 안은 채 1997년 2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자오쯔양, 최후의 증언

이 책을 들여다보면 6?4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정부와 학생들 간의 이념 갈등이라는 표면적 이유 이면에 통치 엘리트 내의 정견 불일치와 이데올로기적 논쟁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눈치채게 된다. 자오쯔양 스스로 인정한 물가개혁의 실패, 1988년 예금 대량 인출 사태와 사재기 현상 등 총서기로서 잘하고 잘못한 일도 흥미롭게 읽힌다. 개혁개방의 선두주자였던 만큼 총서기가 되지 않고 국무원 총리로 남아 계속해서 연해 발전을 이끌었더라면 훨씬 빨리 개방의 물결에 합류하게 됐을 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책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중국식 사회주의’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한 사람의 독재가 심해 법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이유로 든다. 오히려 서구식 민주주의가 인민이 주인 되는 진일보한 제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1989년 자리에서 물러난 뒤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따라 나는 중국정치체제개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과거에는 서구 선진국들이 실시하는 의회민주제에 대해 인민이 주인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련식의, 사회주의국가가 실행한 대표대회제도라야 인민이 주인 됨을 실현할 수 있고 이는 서구의 의회제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한층 더 민주를 실현할 수 있는 형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우리 사회주의국가에서 실행한 민주제도는 완전히 형식에 치우쳐 있고 인민이 주인 되지 못하며 소수, 심지어 개인이 통치하는 것이다.”
-본문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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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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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dern 68: 『국가의 죄수』, 자오쯔양 지음, 바오푸 정리, 장윤미․이종화 옮김...
     
     
    Modern 68: 『국가의 죄수』, 자오쯔양 지음, 바오푸 정리, 장윤미․이종화 옮김, 에버리치홀딩스(2010), 495쪽............(중국 톺아보기 23)


    1989년 6월 4일은 ‘피의 일요일’로 상징되는 톈안먼(天安門)사태가 벌어진 날이다. 올해로 벌써 24주년이다. 하지만 인민해방군 소속 계엄군의 무차별 사살로 희생된 3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원혼은 아직도 ‘국가의 공적’으로 낙인찍힌 채 구천을 떠돈다. 톈안먼사태는 ‘5.18광주사태’를 상기시킨다. 우리는 ‘5.18광주사태’를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재정립하여 질곡의 역사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톈안먼사태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톈안먼사태에 대한 진실규명과 학살 책임자 처벌 등 재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저지른 추악한 역사를 청산하는 일은 공산당 일당독재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톈안먼사태의 역사적 격동 속에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이 있었다. 그는 톈안먼 광장의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와 개혁 요구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했고,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 결국 숙청당해 외부와 철저하게 고립된 16년간의 가택연금생활 끝에 2005년에 사망했다. 그는 ‘반당(反黨), 반(反)사회주의 동란’을 방조하고 나아가 격동시킨 ‘국가의 죄수’다. 중국 공산당이 덧씌운 죄가 그렇다.

    이 책은 ‘명목상’ 국가 최고권력자였던 총서기에서 ‘국가의 공적’으로 낙인찍힌 자오쯔양의 비밀 회고록이다. 1989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중국을 뜨겁게 달구던 톈안먼광장의 대학생들은 과연 ‘반당(反黨), 반(反)사회주의 동란’을 획책한 범죄자들인가? 당시 자오쯔양 총서기는 직무를 유기하고 대학생들에게 동조하며 ‘동란을 확대시켜 국가를 전복시키고자 기도했던 것일까?

    톈안먼 대학살의 만행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수천 명의 무고한 학생과 인민을 학살한 만행은 현대 인류사회에서 빚어진 가장 끔찍한 범죄행위였다. 그 무슨 구실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 ‘6.4톈안먼 사태’가 ‘6.4톈안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될 날이 언제 올 것인가? 톈안먼 대학살 책임자의 처벌과 희생당한 순결한 혼령들의 신원(伸寃)이 없이 중국 공산당은 허울뿐인 인민의 민주와 자유, 법치를 논할 자격이 없다.
  •   "나는 역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 절대로 학생들을 진압한 총서기를 하지 않겠다." (我要ल...


    이 리뷰는 사계 백일장 : 봄 응모작 입니다. 백일장 바로가기
     
    "나는 역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 절대로 학생들을 진압한 총서기를 하지 않겠다."
    (我要对历史负责,绝不做镇压学生的总书记。- 赵紫)
    이 문장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의 목소리를 다시 글로 담은 책 '국가의 죄수' 겉표지에 쓰여진 문구이다. 자오쯔양이 어떠한 인물인지, 그리고 1989년 6월4일 중국에서 발발한 유혈사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저 문구를 보았을 때, 자오쯔양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 뜻을 대강 이해할 것이다. 저 문장 속에 왜 자오쯔양이 이런 녹취록을 남겼는지에 대한 이유와 함께 역사의 진실을 알리겠다는 결연함이 묻어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 책을 알게 된 경로가 어느 날 중국관련 기사를 이리저리 보던 중 눈에 띄는 기사를 한편 접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천안문사태와 관련된 인물 '자오쯔양'의 목소리를 다시 글로 옮긴 '국가의죄수' 라는 책을 소개하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 당시 홍콩에서는 이 책이 출간되지마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팔려나갔고, 이와 반대로 6.4 천안문사태 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도 불편해하는 중국본토정부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등 중국공산당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중국본토에서 '금서'로 지정했다는 것과 '천안문사태' 그리고 '자오쯔양'의 3가지 단어만 보고 필자는 이 책을 꼭 한번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현재는 한국에도 번역판이 나왔으나 필자가 이 책을 보겠다고 결심했을 당시 한국에는 아직 번역판이 나오질 않았고, 대만에서 1년간의 교환학생으로 있는 동안 한 서점을 기웃거리던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현대 중국사에서 6.4 천안문사태는 아직도 아무런 평가도 내리지 않고 아무런 언급도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오쯔양의 비밀회고록은 전 중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을 터이다. 천안문사태 그 당시에만 해도 중국 공산당의 거의 최고지도자급이라 할 수 있는 총서기 자리에 있던 간부가 그리고 덩샤오핑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던 그런 인물이 어떻게 한순간에 지위를 박탈당하고 2005년 세상을 뜰 때까지 가택연금생활을 했어야 하는지에 대해 또한 그 당시 당내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이 책은 하나하나 본인이 목소리로 그 과정을 해명해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자오쯔양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로운 점과 덩샤오핑과의 갈등 그리고 당내의 경제개혁에 관한 문제 등등 정말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되었다. 특히 이 책을 읽기 전에 필자는 자오쯔양을 단순히 '천안문 사태 당시 당 내의 고위간부 중 유일하게 학생들의 편에 섰으며, 유일하게 민주화를 지지한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세상에 경제전문가 라니 새삼 놀라웠다. 마오쩌둥 사후 중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하락선을 그리고 있었는데, 거의 경제붕괴직전 상황까지 갔었고 공산당은 경제회복을 위한 대책이 절실했다. 그 당시 당의 실세로 떠오른 덩샤오핑은 솔직히 말하자면 경제쪽으로 능통한 인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경제전문가는 이 국가의 죄수 책 속 중국경제를 논하는 부분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 천윈(陈云)과 자오쯔양이였다. 그렇기에 덩샤오핑은 이들과 손을 잡고 개혁의 동지로써 마오쩌둥 노선을 몰아내고 덩샤오핑 노선으로 중국의 경제를 대대적으로 수술하게 된다.
     
    이런 자오쯔양이 덩샤오핑의 미운털이 된 첫 번째 이유는 1989년 4월달에 일어난 학생운동에 대한 평가 때문이었는데, 자오쯔양이 학생들의 시위가 합법적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했고, 이에 따라 당은 관료부패와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회의를 소집하여 개혁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학생운동을 '동란'으로 낙인찍은 덩샤오핑과 당의 다수의견에 반하는 행위였고, 자오쯔양을 비난함과 동시에 계엄령을 내리기로 결정한다. 결국 6.4 천안문 유혈사태의 도화선이 되는 것이다. 천안문 사태는 학생진압으로만 끝나지 않았고, 그 화살이 자오쯔양과 같은 학생시위지지 인사에게도 돌아왔다. 결국 이때 자오쯔양은 당의 판결에 따라 2005년 사망할 때까지 자택에 연금되는 신세가 되었다.
    실제, 중국현대사를 잘 살펴보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숙청의 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의문점이 든 것은 덩샤오핑의 의도였다. 원래 자오쯔양은 총서기가 아니라 그의 특기인 경제적능력을 발휘할수 잇는 총리직이었다. 그런데 이런 자오쯔양을 총서기로 발탁한 것은 덩샤오핑이였고 실제로도 자오쯔양이 본격적으로 당내투쟁과 논쟁의 중심이 서게된 것도 총서기직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책에도 나와있다. 왜 덩샤오핑은 굳이 경제전문가인 자오쯔양을 이런 정치적 성격이 강한 직책에 올려놓았을까? 무슨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확실하게 자오쯔양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만들어 당을 장악할 의도였을까? 그리고 자오쯔양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 앞 총서기인 후야오방이 덩샤오핑의 눈밖에 나(?) 해직을 당하는 것을 생생하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책을 진정으로 맡길 원했을까? 아직 덩샤오핑의 정치적인 성향이 어떠한지 자신과는 정치적 노선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일까?
     
    책 내용으로 미뤄본 결과, 자오쯔양은 왜 덩샤오핑이 공산당 독재를 그토록 선호하는지 왜 학생시위를 반사회주의분자들의 폭동으로 확정짓는지 그리고 왜 민주화에 대해 반감을 나타내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듯 보인다.
    스펜서의 책 현대중국을 찾아서를 우선 인용하자면,
    " 덩샤오핑이나 문화혁명 때 숙청당했던 원로들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통제불가능한 대중운동 속에서 한 세력이 다른 세력에 대항하여 새로운 청년 폭력의 물결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중국공산당이 붕괴되거나 무력화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중운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 - 조너선 D. 스펜서 지음
     결국 덩샤오핑과 당시 공산당의 원로들은 자신들이 옛날에 핍박받았던 문화대혁명이라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청년 운동이라 던지 이런 큰 규모의 운동을 어떤 이유에서라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더 드는 의문은 그렇다면 덩샤오핑이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았다면 '민주화'와 '학생운동' 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하는 것이다.
     
    보통 자오쯔양을 평가할 때, 중국정치계의 비운의 인사 혹은 정치계비극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자오쯔양의 행보에 대해 약간의 답답한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일단 책속에서 자오쯔양이 당이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리면 항상 ‘당의 결정은 존중하나~’로 시작되며, 항상 그에게도 ‘당’에 대한 언급이 제일 먼저였다. 물론 그에게는 당의 최고지도자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당이라는 존재가 정말 중요하겠지만 보는 필자의 입장으로서는 이런 자오쯔양의 행동이 당과 반대노선을 걷는 주장을 할 시, 적극성이 모자라다고 비춰질 때도 있었다. 이런 자신의 행동을 반성이라도 하는 것일까? 제일 앞에서 언급한 "나는 역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 절대로 학생들을 진압한 총서기를 하지 않겠다." 라는 문장을 다시 되새겨보면 그 당시 학생들에게 천안문 앞에 가서 연설한 것 밖에 해줄 것이 없었던 즉 당의 '엄연한' 총서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무기력했던 자신을 탓하는 행위도 어느 정도 보여진다. 그리고 이 책은 비록 자오쯔양이라는 한 정치가의 개인 회고록이라고만 하기에는 책의 성격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 듯 하다. 또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초반부분은 즉 천안문 사태를 전후로 한 부분은 그나마 쉽게 읽히고 이해도 잘되지만 후반부 즉 자오쯔양이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 고찰한 부분이나 혹은 개혁개방이 구체적인 방향에 있어 덩샤오핑과 당 내 타 인물과 논쟁하는 부분은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한 개인의 회고록으로만 규정짓기에는 자오쯔양이 녹취록을 남긴 진정한 이유를 국한시키는 것만 같아 괜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현재 중국에서 자오쯔양은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중국 공산당이 지정한 ‘국가의 죄수’ 중 한 사람이다. 언제쯤 이 오명이 벗겨질지는 모르겠으나 차기 지도자의 성향이나 최근 인민일보에서 보여지는 정치개혁에 대한 태도 그리고 '국가의 죄수' 로 낙인찍혀진 또 다른 한명 '류사오보'를 대하는 태도로 미루어 보아 아마 당분간은 힘들 듯하다.
    책 속에 보면 중국인민들이 자오쯔양이 사천성지부 서기로 있을시에 그의 경제적인능력에 대해 '식량을 구하려면 자오쯔양을 찾아라' 라는 민요를 부르며 칭송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당시 사천성 전역에 돌았다고 한다. 만약 자오쯔양이 현 중국의 경제노선인 절대적 위치인 덩사오핑의 자리를 대신 자치했다면 그에 대한 칭송의 민요가 중국대륙 전역에 울려퍼졌을까?
  • 국가의 죄수 | as**220 | 2010.06.26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신체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헌법 조항에서나 보았지 실제 실감은 못해봤다.자유란 그 자유를 박탈당해야 느끼게 되고, 공기도 ...
    신체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헌법 조항에서나 보았지 실제 실감은 못해봤다.
    자유란 그 자유를 박탈당해야 느끼게 되고,
    공기도 늘 곁에 있기에 우리는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미래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없이
    평화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역시 역사 속 누군가의 용기있는 선택으로 인한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한 것임을 한번더 확인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던 시절...
    당을 위기에 처하게 하고, 사람들을 호도한다는 명목으로 힘들게 살아온
    중국 정치인의 롤러코스터 같던 인생의 후반부를 다루고 있다.
    문화대혁명 때 존재했다는 가택연금...
    아기들이 아파서 주말 이틀 외출이 금지되는 것만으로도
    갑갑하고 답답해서 아이들도 부모인 나도 힘이 드는데
    무려 15년간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던 자오쯔양의 삶이 얼마나 불우했을까...
    솔직히 그 시간들이 내겐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중간중간 나오는 사진 속의 가족들 사진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비록 처벌을 받는다 해도 본인이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에 납득이 간다면
    그 상황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는내내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가 아~ 라고 이야기해도 어~ 로 받아들여지면 나의 의도는 어~가 되는 그 시절...
    차분히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절절히 써내려간 편지를 보고 있노라니
    사면초가 상황이 무엇이며 정말 체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기약없이 속절없이 세월만 흘려보내야 했던 그 까맣게 타들어간 속은 누가 알겠는가...
    다행히 손주의 장난감 주위(아무도 상상을 못했을 위치라고 생각한다)에
    육성으로 녹음해두었던 그의 이야기가 비서의 아들에 의해 밝혀지고 정리되어
    중국이 아닌 타국에서 책은 발간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금서로 정해져 사람들로 하여금 눈과 귀를 막고 가렸지만
    언론의 자유는 공산사회에서도 이제 더이상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점점 깨어가는데 체제와 이념만으로 사람들을 더이상 옭아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사후에 그의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아쉽지만 그나마 지금에서라도 사람들에게 조명을 받을 수 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국가의 죄수 자오쯔양... | ne**oer | 2010.06.20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정상을 다투는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작은 거인’...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정상을 다투는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작은 거인’ 덩 샤오핑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이를 경제발전의 동인으로 삼고 지금까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미국과는 ‘전략경제대화’라는 협상을 통해 머리를 맞대고 세계경제를 논하는 G2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모습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텐안먼 민주화운동’...

    내가 대입을 앞두고 있던 1989년 6월 초여름 어느날...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자료화면에서는 공산당의 표현대로라면 국가를 위태롭게하고 체제안정에 위협(?)이 되는 폭도들을 진압하기위해 텐안먼 광장에 나타난 탱크앞에 비무장을 한 젊은이가 양복 웃옷을 벗어제끼고 가로막는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공산당체제하에서도 저렇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구나?’ 그리고 얼마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신에서서는 텐안먼사태가 진정되었고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전력투구만 남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한때의 충격으로 남았었던 그 텐안먼사건이 중국에 미친 영향은 지금의 중국이 가진 명암을 그대로 내포했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국가의 죄수>는 바로 이 텐안먼 민주화 운동에서 정치적 패자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야했던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살아생전에 남긴 회고록이다.


    텐안먼 민주화 운동은 지금의 중국이 있기까지 덩샤오핑과 공산당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한편의 ‘인생극장’이었다. 정치적 식물인간이 된 자오쯔양은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한 외로운 인물이었고..


    이 책에서 저자가 담담히 돌아보는 텐안먼 민주화 운동을 즈음한 긴박했던, 하지만 신념에 찼던 저자의 선택은 지금 중국이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덧 한계상황에 한발두발 다다르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 선택적이고 지역편차가 큰 경제발전에 따른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적 불만... 도시와 농촌간의 부의 엄청난 차이로 인한 빈곤계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점차 확인되고 있는 불안요인...공산당 1당 체제하에서의 부작용 등이 그것이다.


    ‘흑묘백묘’로 대변되는 덩샤오핑의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의 정당치 못함에 대한 용인은 의도하지 않았았겠지만 부패로 직결되기 시작했고 친인민적이고 부패에 대해 청렴하며 개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후야오방의 사망이후 내재해 있던 불안감과 공산당의 정치에 대한 불만이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텐안먼 민주화 운동을 낳게 된 것이다.


    <국가의 죄수>는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긴박했던 그날의 순간을 중국정치의 중심부에서 이를 수습하려 했던 자오쯔양 개인의 시각이라해도 거침없이 읽어나가게 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볼땐 <국가의 죄수>는 패자의 기록이다. 중국 핵심권력층에서 배제된채 16년이라는 가택연금에서 사면되지 않은 채 숨을 거둔 자오쯔양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 회고록이 언제까지 패자의 기록으로 남을지는 미지수이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국가의 죄수 | so**l25 | 2010.06.1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중국 공산당의 시초가 된 모택동의 혁명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다큐형태로 써 내려간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별"을 읽었을 ...
    중국 공산당의 시초가 된 모택동의 혁명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다큐형태로 써 내려간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별"을 읽었을 때의 감탄, 부러움.. 그리고 자각.. 깨달음.. 감동을 또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쳤다..  이 책은 굳건하게 60여년을 버텨온 중국 공산당의 권위에 도전한 지식인 세력에 대한 국가의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군사적 탄압에 반대한 한 정치인 자오쯔양의 자서전이다..

     자오쯔양은 70평생을 단 한번의 물러섬이나 실패도 없이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며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이른 사람이었다.. 또한 중국의 경제적 개방과 개혁을 덩샤오핑과 함께 주도한  개혁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정치적인 개혁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공산당의 권위와 권리를 지키며 경제적인 개혁, 개방만을 주장한데 반해 그는 경제적인 개혁과 정치적인 개혁을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공산당의 최고 권력자 두 사람의 갈등은 지식인 사회의 분열을 가져 왔고.. 그 결과 1989년 6월 3일과 4일 인민의 유혈이 낭자한 톈안먼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무력진압을 명령한 덩샤오핑과 무력진압 반대를 주장한 자오쯔양.. 그리고 결국 톈안먼 사태는 국가를 전복하려한 동란으로 규정되었고.. 그 동란을 조장한 자오쯔양은 모든 권력을 실각한 채 가택연금 되었다.  그렇게 가택에 연금된 그는 15년 뒤.. 2005년 사망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면서 까지 인민의 편에 섰던 자오쯔양은 사망 후에도 인민의 추앙을 받지 못한 잊혀지고 실패한 정치인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톈안문 사건이 우리 사회의 개혁과 민주화의 힘이 되었던 .. 그 저변에 깔린 자유에의 갈망이.. 우리의 것과는 달랐다는 것에 이유가 있다..

    우리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지식인.. 그리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부당함.. 부패함.. 정당하지 못함에 대한 저항과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있었다.. 내 세대에서 이루어 지지 않더라도.. 내 자식의 세대는 이런 국가에서 살게 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 그것이 우리 사회를 이만큼 변화시켜 왔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원동력으로 .. 가능성으로.. 그리고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우리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 내가 사는 사회를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리의 젊은이들을.. 당당하게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러나 톈안문 사건은.. 지식인들이 경제적 개혁.. 개방으로 인해 자신들이 그동안 누려 왔던 특권을 .. 다른 계층과 나눠야 하는데서 오는.. 박탈에 대한 반감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 이후 중국 공산당이 자신들의 특권을 보장하고.. 권력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자 그들의 정치, 경제적 노선에 아무런 반기도 들지 않은 채 편입되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한 채 기존의 체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톈안문 사건은 그 역사적 배경이 우리의 민주화 운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톈안문 사건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정치인 자오쯔양 역시 우리 민주화 투사들과는 다른 역사적 평가를 받는게 아닌가 한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톈안문 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의 붉은별"을 읽으며 느껴던 감동이나.. 부러움은 일지 않았다..  모택동처럼 위대한 영웅을 가지진 못했지만..  우리는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특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줄 줄 아는 선배와 동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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