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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한국통사: 선사시대-대한제국 편
| | 176*246*43mm
ISBN-10 : 1130627403
ISBN-13 : 9791130627403
이덕일의 한국통사: 선사시대-대한제국 편 중고
저자 이덕일 | 출판사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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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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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도서 외관은 새책과 다름 없내요 5점 만점에 5점 choioo*** 2021.01.17
111 Aaaaaaaaaaaaaa 5점 만점에 5점 hugekha*** 2021.01.16
110 굿 조아요 아주 조아요 정말 5점 만점에 5점 apple*** 20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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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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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를 넘어 대륙과 열도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리다! 노론이 망한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노론사학이 식민사학과 한 몸이 되어 횡행하고, 중국의 역사공정에 의해 실재했던 우리 역사마저 축소되는 현실을 보면서 서기전 4,500년경에 성립했던 홍산문화에서 1910년 대한제국 멸망까지 식민사관과 소중화주의에 의해 숨겨지고 뒤틀려 있던 역사를 바로잡고 있는 그대로의 한국통사를 다시 복원해내기 위해 쓴 『이덕일의 한국통사: 선사시대-대한제국 편』. 역사적 통념에 정면 도전하며 기존 학설을 180도 뒤집는 흥미진진한 고증과 서술, 300여 컷에 달하는 화려하고도 정밀한 도판으로 새로운 한국사를 제시한다.

세계 최고最古문명으로 떠오르는 홍산문화가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국경이 지금의 중국 난하 유역까지였는지,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가 일본 열도에 분국을 설치했는지, 강조와 요나라 성종이 결전했던 동주는 함경도 선천인지 중국 영안인지, 중국과 고려·조선의 국경선이 철령과 공험진을 잇는 두만강 위쪽 280km 지점이었는지, 몽골에 저항했던 삼별초는 오카나와까지 진출했는지, 조선의 문신들이 고려 무신정권의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왜 아직도 이완용의 비서 이인직이 선각자 대접을 받는지 날카로운 호흡으로 논파한다.

저자소개

저자 : 이덕일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역사학자로서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왔다. 한국사의 통념에 정면 도전하는 역사서와 강단사학의 주류를 이루는 식민사학을 해부하는 책들을 펴냈다. 방송, 신문, 잡지의 기고와 강연 등의 활동을 통해 대중을 역사현장으로 이끌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로 꼽힌다. 조선 노론이 나라를 팔아먹은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노론사학이 식민사학과 한몸이 되어 횡행하고, 중국의 역사공정에 의해 실재했던 우리 역사마저 축소되는 현실을 보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책에서는 서기전 4500년경에 성립했던 홍산문화에서 1910년 대한제국 멸망기까지 식민사관과 소중화주의에 의해 숨겨지고 뒤틀려 있던 역사를 바로잡고 있는 그대로의 한국사를 다시 찾아냈다. 펴낸 책으로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1~3》(10권까지 근간),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조선 왕 독살 사건》, 《리지린의 고조선연구》(해역), 《북한학자 조희승의 임나일본부 해부》(주해),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조선 왕을 말하다》, 《근대를 말하다》 등이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과 신한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신주류 사학의 정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목차

서설 국사를 보는 눈

1장 선사시대와 우리 민족의 형성
1. 선사시대의 전개
· 인류의 기원과 구석기인*빙하기 ·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의 탄생
2.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 구석기시대 · 신석기시대 유적과 유물
3.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 홍산문화와 민족 귀속성 · 요하문명의 내용*민족의 기원*동이문화와 삼첩층*중국은 왜 역사공정을 계속할까?*고대인들의 치아 수술 흔적*《규원사화》와 《환단고기》에 대한 시각

2장 고조선과 열국시대
1. 고조선
· 단군조선의 건국과 강역*고조선의 거수국들*고조선 · 기자조선과 기자동래설*중국의 다른 기자 유적 ·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갈등*패수의 흐름 · 조한전쟁*고조선 항신들의 운명 · 낙랑군과 한사군의 위치 · 고조선의 사회와 문화*고대 중국인의 지리 개념*갈석산과 난하*낙랑군은 313년에 멸망했나?*낙랑군 위치에 대한 세 학설*고조선 중심지에 대한 세 학설*신의 손, 세키노 다다시*낙랑군 호구부
2. 열국시대
· 열국사의 시간과 강역*중국과 한국의 역사 서술 · 부여*부여의 건국 사화*부여 · 고구려*고구려의 건국연대*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 옥저*개마대산은 개마고원인가? · 읍루 · 예 · 삼한*신채호의 전후 삼한론 · 최씨낙랑국 · 신라*난생사화*신라는 대륙에도 있었는가? · 백제*비류백제의 수도 미추홀*요동태수 공손도 일가와 대방군의 위치*생각하는 한국사3 백제의 건국연대*백제라는 국호의 의미

3장. 열국시대에서 사국·삼국시대로
1. 가야
· 가야 건국 · 가야와 왜
2. 임나일본부설 비판, 가야는 임나인가?
· 《일본서기》 추종하는 강단사학*주갑제라는 요술 방망이 · 북한학계의 분국설 · 분국설을 비판하는 남한 강단사학 · 가야 멸망
3. 고구려의 성장
· 고구려와 선비족의 각축 · 요동 정세의 혼미와 백제와 공세*낙랑군 교치설 비판 · 고구려의 흥기 · 광개토대왕과 비류백제*덕흥리 고구려 벽화무덤 ·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4. 백제의 시련과 흥기
· 고구려의 남하와 개로왕의 전사*구이신왕과 일본의 소아씨 · 해양백제와 후국 왜*왜 5왕은 누구인가? · 대륙백제의 요서 지역 장악
5. 신라의 흥기
· 마립간에서 왕으로*신라 김씨 시조는 성한왕? · 삼국의 격돌*진지왕의 사망 원인*신라 임금에게 내린 낙랑군공*무왕은 진평왕의 사위인가?
6. 동아시아 대전
· 고수 대전 · 고당대전*경관
7. 삼국통일 전쟁
· 전쟁의 발단과 백제의 멸망*일본 열도의 조선식 산성 · 대제국 고구려의 종언*당나라 안동도호부는 지금의 평양이었나? · 신라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통일신라의 강역은?*한국어와 일본어의 계통*백제 유민 흑치상지와 고구려 유민 이정기

4장. 남북조시대
1. 북조 대진국(발해)
· 대진의 건국 · 대당 전쟁과 진국의 발전 · 진국의 쇠퇴와 멸망*요나라 왕실은 고구려의 후예인가?*진국은 독자적 문자를 갖고 있었나?
2. 후기 신라의 번영과 진골의 분열
· 인구 100만의 서라벌 · 진골의 분열과 6두품 · 농민봉기와 호족의 대두
3. 후삼국과 고려의 건국
· 후삼국 시대 ·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5장. 고려시대
1. 황제국 고려의 이상과 현실
· 호족연합정책의 성과와 한계 · 왕건의 고구려 제국 재건의지 · 이상과 현실의 충돌 · 혜종의 즉위와 호족들의 반발
2. 중화 사대주의 세력의 득세
· 광종의 왕권강화 정책 · 과도기 경종과 유교정치를 지향한 성종*서희와 강동 6주 · 서경세력의 도전과 좌절*강조가 요나라 성종과 싸운 동주는 평안도인가? · 국풍파의 도전, 묘청의 봉기*금나라 시조는 고려 사람인가?*철령과 공험진
3. 무신정권
· 의종의 실정과 무신들의 봉기 · 무신정권의 지배기구와 사병들 · 최씨 무신정권과 몰락 · 교종의 저항과 팔만대장경 · 민중들의 봉기
4. 대원항쟁과 원나라의 간섭
· 무신정권, 강화도로 천도하다 · 계속되는 몽골의 침략 · 강도 정부의 출륙과 삼별초의 항전*삼별초는 오키나와까지 갔을까?*다시 일어난 고구려 부흥운동
5. 고려의 위기와 개혁의 시대
· 토지제도의 붕괴와 국왕들의 개혁 ·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고려 말에도 유행했던 족내혼 · 우왕의 요동 정벌과 신흥사대부의 부상 · 철령위는 함경남도 안변이었나? · 위화도 회군과 사대주의 득세
6. 고려의 멸망과 새 왕조 개창
· 이성계의 군사력과 정도전의 사상의 결합 · 조선의 건국이념, 성리학 · 과전법과 조선 개창*고려에 망명한 중국의 왕족 가족들*조공과 회사

6장. 조선 전기
1. 조선 개창과 유교정치 체제 구축
· 공신들의 시대 · 2차 왕자의 난*정도전 아들들의 운명 · 피의 숙청으로 반석 위에 선 왕권 · 천인들도 출세할 수 있는 사회 · 조선의 국경은 철령에서 공험진 · 태종의 유산*태종우
2. 세종시대의 명암
· 수령고소금지법 · 종모법 환원 · 천인 등용과 북방 강역 수호 · 세법 개정에 전 농민의 의사를 묻다 · 민족문화의 창달과 훈민정음 창제*훈민정음 이전에 고유 글자가 있었을까?
3. 문종·단종 시대와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
· 문무겸전의 문종 · 문종의 종기와 급서 · 풍수 예언과 계유정난 · 단종, 쫓겨나다*《노산군일기》와 《단종실록》
4. 공신들의 시대
· 상왕복위기도 사건 · 공신들의 낙원, 백성들의 지옥*사육신과 삼중신*세조와 공신들의 후회 · 예종의 개혁과 급서 · 성종의 친정과 사림의 등장
5. 사화와 사림의 집권
· 조의제문과 무오사화 · 갑자사화와 중종반정*연산군은 백모를 성폭행했나? · 기묘사화 · 을사사화와 사림의 재기*율곡 이이의 조광조에 대한 평가

7장. 조선 후기
1. 사림의 집권과 임진왜란
· 이황의 이기이원론과 이이의 이기일원론 · 동서분당과 이이의 조제론 · 임진왜란과 무너지는 지배체제 · 류성룡의 개혁정책과 의병들의 분전*이이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는가?*선조의 이순신 제거 비망기*천민 수문장 신충원의 몰락
2. 인조반정과 정묘·병자호란
· 광해군의 즉위와 대북·소북 분당*명나라의 장기주둔 시도와 둔전 · 광해군의 혁신정치와 그 한계*광해군의 밀서는 존재했는가? · 서인들의 쿠데타, 인조반정 · 친명 사대주의가 부른 정묘·병자호란 · 소현세자의 꿈과 좌절
3. 북벌과 예송의 시대
· 북벌, 말인가 실천인가? · 효종의 정통성을 둘러싼 기해예송 · 제2차 갑인예송*현종 11~12년의 경신대기근
4. 당쟁과 탕평의 시대
· 서인의 재집권과 노·소 분당*청나라 삼번의 난과 북벌 · 남인의 재집권과 실각 · 노론의 쿠데타와 경종 독살설 · 영조의 즉위와 이인좌의 봉기 · 영조 탕평책의 한계와 사도세자의 죽음
5. 개혁군주 정조의 꿈과 좌절
· 개혁군주 정조의 험난한 즉위 · 정조의 개혁정치와 노론의 저항 · 미래를 향한 개혁 · 정조의 의문사와 과거 회귀
6. 세도정치와 대원군의 개혁
· 세도정치와 민중들의 봉기 ·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개혁정치*황사영 백서

8장. 대한제국사
1. 실학과 개화사상의 등장
· 개화사상의 뿌리, 실학 · 개화사상의 형성
2.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 갑신정변 · 갑오개혁과 그 한계 · 개화에 대한 반발, 위정척사운동
3. 동학농민혁명과 의병전쟁
· 동학의 창건과 중심사상 ·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와 전주화약 · 동학농민군의 제2차 봉기 · 의병전쟁*일제의 남한대토벌과 의병의 국외이주
4. 대한제국의 멸망과 새로운 시작
· 대한제국의 수립 · 일제의 국권강탈 · 대한제국의 멸망과 지배층의 동향*이완용의 비서 이인직과 국사교과서

· 부록1 한국왕조계보도 · 부록2 한국사연표 · 부록3 한국사의 쟁점들에 대한 각국 학계의 시각

책 속으로

북한 역사학은 그 관점에 동의하든 동의하든지 그렇지 않든지를 떠나서 서술이 일관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남북한 역사학계가 걸었던 사학사史學史가 있다. 이기백이 유물사관으로 분류한 학파는 사회경제사학이라고 불렀다. 맑스의 사적유물론을 지지하는 학자들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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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역사학은 그 관점에 동의하든 동의하든지 그렇지 않든지를 떠나서 서술이 일관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남북한 역사학계가 걸었던 사학사史學史가 있다. 이기백이 유물사관으로 분류한 학파는 사회경제사학이라고 불렀다. 맑스의 사적유물론을 지지하는 학자들로서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함께 일제 식민통치에 맞서 싸운 학자들이었다. 북한은 분단 직후부터 역사학을 체제경쟁의 주요한 수단으로 삼았는데, 그 일환으로 1946년 7월 말경 북한은 남한에 파견원을 보내 역사학자들을 대거 초청했다... 북한학자 홍기문은 1949년 《력사제문제》에 북한 역사학계의 과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에 성공하자 그들의 소위 력사학자들은 조선력사에 대해서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과연 어떠한 것들인가? 첫째 서기 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500 년 동안 오늘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漢나라 식민지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요, 둘째 신라·백제와 함께 남조선을 분거하고 있던 가라가 본래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요(〈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상·하)〉, 《력사제문제》, 1949)”... 1949년에 북한 역사학계는 ‘낙랑군=평양설’과 ‘임나=가야설’을 일제 식민사학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그 극복에 나섰다.
_〈서설 : 국가를 보는 눈〉 중에서

윤내현 교수는 《한국열국사연구》에서 남낙랑을 최리崔理가 왕으로 있던 나라라는 뜻에서 최씨낙랑국으로 명명했다. 고구려 대무신왕 15년32 옥저를 유람하던 왕자 호동을 낙랑왕 최리가 보고 “그대가 어찌 북국신왕北國神王의 아들이 아니냐?”라면서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고구려를 ‘북국’이라고 부른 점에서 고구려 남쪽에 있던 나라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북한의 리순진은 《평양일대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에서 “락랑국은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였던 만(위만)조선이 무너진 후에 평양 일대의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나라였다”라고 말했다. 북한 역시 낙랑국과 낙랑군을 구별하고 있으며, 평양 일대의 낙랑 유적들은 한사군 낙랑군 유적·유물이 아니라 고조선 후예들의 국가인 낙랑국 유적·유물이거나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조작이라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해방 후 평양 일대에서 3천여 기의 고대 무덤을 발굴한 결과 단 한 개의 한漢나라 무덤을 찾지 못했다면서 새로 발굴한 유적·유물들은 대부분 최씨 낙랑국 무덤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남한 강단사학계는 북한에서 발표한 낙랑‘국國’을 낙랑‘군郡’으로 변조해 북한도 평양을 낙랑군 지역으로 인정한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해왔다. 남한 강단사학이 분단에 기생해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한 사례이다.
_〈2장-2 열국시대〉 중에서

북한학자 김석형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서기』는 서기전 7세기부터라고 하는 ‘천황’들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북규슈로부터 기내 야마또로의 천황가 세력(대체로 백제-가라 계통이 우수한 세력)의 동천(東遷)이 6세기 초에 있었던 일일진대 『일본서기』의 모든 기사내용은 6세기 이후의 일일 것이다…4~5세기 북규슈에 있었을 시기에 이 왜 세력이 백제와의 관계에서 가졌던 일들이 외곡 윤색되어 기내 야마또에서 있었던 일처럼 만들어서 『일본서기』에 실렸다고 본다(김석형, 『초기 조일관계사 하』).” 북한 학계는 서기 4~5세기에 가야계가 북규슈에 진출했다가 6세기 이후 기내 야마토로 천도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4~5세기에 왜와 백제 사이에 있었던 일도 6세기 이후의 일처럼 시기를 조작해 서술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61년에 ‘한사군=한반도설’을 해체시키고, 1963년에 ‘임나=가야설’을 해체시켰는데, 남한 강단사학계는 아직도 이 두 학설을 도그마로 섬기고 있으니 남한을 아래로 보는 것이다.
_〈3장-2 임나일본부설 비판, 임나는 가야인가?〉 중에서

『세종실록지리지』는 윤관이 고려지경이란 비석을 세운 공험진, 선춘령을 두만강 북쪽 688리라고 쓰고 있고, 조선에서는 통상 700리라고 말했다... 『태종실록』 5년(1405) 5월 16일조는 태종이 김첨을 통해서 “공험진 이북은 요동遼東으로 환속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그대로 본국本國(조선)에 붙여 달라”는 태종의 요청을 명 태조가 받아들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고려 말 우왕이 명 태조 주원장에게 확인 받았던 철령~공험진까지였던 고려의 국경선이 그대로 조선의 국경선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때의 철령은 지금의 요녕성 심양 남쪽 진상둔진이고, 공험진은 흑룡강성 영안 부근이다. 조선 후기 지도에도 공험진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명기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의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한국사의 강역을 축소시키기 위해 공험진을 함경남도 안변에 그린 것을 지금껏 남한 강단사학계가 추종하면서 각종 국사교과서에도 고려 국경이 함경남도까지였던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윤관이나 우왕, 태종이 지하에서 통곡할 노릇이다.
_〈5장-2 중화 사대주의 세력의 득세. 생각하는 한국사2 : 철령과 공험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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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국사교과서는 왜 이완용의 비서를 선각자로 가르쳤을까?” 역사조작과 왜곡이 넘치는 시대,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독보적인 역사책 300여 컷에 달하는 화려한 도판으로 읽는 새로운 한국사! 내몽골 깊숙한 곳에 고구려 토성이 남은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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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는 왜 이완용의 비서를 선각자로 가르쳤을까?”
역사조작과 왜곡이 넘치는 시대,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독보적인 역사책
300여 컷에 달하는 화려한 도판으로 읽는 새로운 한국사!

내몽골 깊숙한 곳에 고구려 토성이 남은 이유

중국 내몽골 파림좌기에는 거대한 토성을 그곳 사람들은 고구려성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대륙 깊숙한 내몽골에 고구려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일까? 고구려 동천왕은 서기 242년 후한의 요동 서안평을 공격했다. 남한 강단사학계는 이곳을 압록강 대안의 단동으로 비정해왔다. 그러나 《요사》 〈지리지〉에 의하면 이곳은 요나라 수도인 상경임황부 자리로서 지금의 파림좌기 지역에 해당한다. 역사는 가끔 이렇게 우리를 상상 밖의 곳으로 이끈다.

저자 이덕일은 노론이 망한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노론사학이 식민사학과 한몸이 되어 횡행하고, 중국의 역사공정에 의해 실재했던 우리 역사마저 축소되는 현실을 보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책에서는 서기전 4,500년경에 성립했던 홍산문화에서 1910년 대한제국 멸망까지 식민사관과 소중화주의에 의해 숨겨지고 뒤틀려 있던 역사를 바로잡고 있는 그대로의 한국통사를 다시 복원해낸다. 세계 최고最古문명으로 떠오르는 홍산문화가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국경이 지금의 중국 난하 유역까지였는지,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가 일본 열도에 분국을 설치했는지, 강조와 요나라 성종이 결전했던 동주는 함경도 선천인지 중국 영안인지, 중국과 고려·조선의 국경선이 철령과 공험진을 잇는 두만강 위쪽 280km 지점이었는지, 몽골에 저항했던 삼별초는 오카나와까지 진출했는지, 조선의 문신들이 고려 무신정권의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왜 아직도 이완용의 비서 이인직이 선각자 대접을 받는지 날카로운 호흡으로 논파한다. 강단사학계의 역사적 통념에 정면 도전하며 기존 학설을 180도 뒤집는 흥미진진한 고증과 서술, 300여 컷에 달하는 화려하고도 정밀한 도판으로 읽는 새로운 한국사. 역사조작과 왜곡을 반복하는 시대에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독보적인 역사서라 할 만하다.

홍산문화는 누구의 것인가?
요하문명은 중국의 하북성·내몽골·요녕성 일대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동이족 문화를 뜻하는데 세계 4대문명이라는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1,000년 정도 빠르다. 요하문명에서 중요한 것은 홍산문화인데, 중국 장박천은 홍중국 고대 오제五帝의 첫 인물이자 중화민족의 시조라는 황제黃帝의 후손들인 황제족의 문화라고 보았고 주도세력은 황제의 손자인 전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제의 아들 소호가 동이족이라는 점에서 황제는 동이족일 개연성이 높다. 소호는 태호太昊의 도를 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중국의 부사년은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에서 “태호 복희가 동방의 부족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 공인되어온 일이다”라고 말했고, 1920년대~40년대 중국학계를 풍미했던 고사변파의 양관도 〈중국상고사도론〉에서 태호를 동이족이라고 말했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도 “신라 사람들이 자칭 소호 금천金天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金이라 한다”고 하였고, 〈김유신비문〉에도 “헌원황제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라고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모두 황제의 아들 소호가 동이족이라는 뜻이다. 황제의 아들인 소호가 동이족이 명백하기 때문에 사마천이 황제를 하화족의 시조로 삼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었다. 우하량 유적의 구릉에서는 제사 유적과 신전 및 신상 등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동이족의 신성 숭배 성향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제단·신전·무덤이 완비된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강력한 고대국가가 등장했음을 말해준다. 홍산문화의 이전 문화인 흥륭와문화에서 보이는 빗살무늬토기, 적석총, 비파형동검 등은 ‘시베리아 남단→몽골초원→만주→한반도→일본열도’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북방계통 문화와 연결되는 동이족 문화이다. 홍산문화에서는 곰, 새, 돼지 등 다양한 동물 모양의 옥기가 출토되어 곰, 새, 돼지 토템족들의 공존을 암시한다. 곰과 새는 고조선과 동이족 국가 은나라의 주요 토템이다. 요하문명의 흥륭와문화에서 발견된 옥귀걸이와 같은 것이 강원도 고성 문암리에서도 발견되었다. 또한 홍산문화 사용한 석관묘는 고조선과 동일한 묘제다. 홍산문화는 소하연문화를 거쳐 초기 청동기 문화인 하가점 하층문화로 연결되는데 이 시기에 고조선이 출현한다. 중국 소병기는 고대 국가발달과정을 고국古國→방국方國→제국帝國으로 분류했는데, 홍산문화 시기에 ‘고국’ 단계가 시작되었고, 하가점 하층문화 시기에 ‘방국’으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이 시기 요하 일대에 존재했던 방국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고조선밖에 없다.

일본에 있었던 임나일본부
《일본서기》는 신라·고구려·백제·가야가 모두 야마토왜의 식민지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가을 9월 고구려인, 백제인, 임나인, 신라인이 같이 내조했다.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명하여 여러 한인들을 거느리고 연못을 만들게 했다. 그래서 그 못을 ‘한인韓人의 연못’이라고 한다.” 고구려·백제·임나·신라 사신이 동시에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쳤다는 《일본서기》 응신 7년은 서기 276년인데, 주갑제를 적용해 120년을 끌어올리면 396년이 된다. 〈광개토대왕비문〉은 이해 광개토대왕이 백제 정벌에 나서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백제 임금의 아우와 대신 10명을 데리고 개선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일본서기》는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왜곡이 심하다고 해도 역사서 전체를 거짓이라고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북한학계에서는 분국설分國說이 나왔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에 대한 기사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본국들이 일본 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분국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북한의 김석형이 1963년 〈삼한 삼국의 일본 열도 내의 분국설에 대해서(《력사과학》)〉에서 최초로 주장한 분국설은 일본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 열도 내에는 지금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계 유적·유물과 지명이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 특히 규슈와 나라 부근에는 가야와 백제의 유적, 유물이 많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가야와 백제의 분국이 그곳에 있었다고 말하면 적당할 정도다.
임나일본부설의 모순은 많다. 일본인 학자들은 서기 369년 가야 7국을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서기》에 ‘일본부日本府’라는 명칭이 처음 나오는 것은 서기 464년의 기록이다. 신라에서 일왕 웅략 즉위 후 8년 동안 조공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정벌당할 것이 두려워서 고구려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호 요청을 수락한 고구려가 보낸 군사가 100명이라는 것이 《일본서기》의 내용이다. 《삼국사기》는 한 해 전 신라가 “군사를 크게 사열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군사를 ‘크게 사열〔大閱〕’했을 경우 최소한 몇 만 명은 되었으니 ‘크게’라는 형용사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니 100명의 군사로 보호할 수 있는 나라는 《삼국사기》의 신라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일본이라는 국호는 701년에 처음 사용했고 그 전까지 국명은 왜였다. 그럼 일본 열도 내 임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일본서기》에서 임나의 위치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는 숭신 65년(서기전 33)조이다. “임나는 축자국에서 2,000여리 떨어져 있고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으며 신라의 서남쪽에 있다.” 숭신 65년(서기전 33년)은 가야가 건국된 서기 42년보다 90년 빠르니 임가는 가야가 아니다. 또한 가야의 북쪽은 바다가 아니다. 북한학계는 김석형의 뒤를 이어 조희승이 이 분야 연구를 크게 진전시켰다. 조희승은 오카야마현 기비 지역을 임나라고 본다. 오카야마 현과 히로시마현 동부를 과거에는 기비라고 불렀는데, 해발 397m의 귀성산에 쌓은 귀성은 5세기 무렵 가야인들이 쌓은 산성이다. 오카야마 이과대학에서 복원한 옛 지도를 보면 과거에는 오카야마 깊숙한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니 숭신 65년조 기사에 부합한다. 남한 내의 민족사학자들 중 다수는 대마도라고 보고 있고 일부는 규슈라고 보고 있는데, 앞으로 북한 학계의 연구 성과가 소개되면 오카야마설이 널리 퍼질 가능성이 있다. 임나는 한반도 남부에 있지 않았다. 서기 4세기 말에서 6세기 말까지 한반도 남부에 임나가 존재했다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신라본기〉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을 리 없다.

두만강 북쪽 280km의 고려·조선 국경선
우리는 국사교과서에서 고려의 북방 강역은 청천강 부근, 조선의 북방 강역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했다고 배워왔다. 과연 그럴까? 《고려사》 예종 3년(1108) 2월조는 “윤관이 여진을 평정하고 여섯 성을 쌓은 것과 관련하여 글을 올려 축하하고 공험진에 비를 세워 경계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도 “이 지역에 9개의 성을 설치하고 공험진에 있는 선춘령에 비를 세워 이곳을 경계로 삼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공험진 선춘령에 ‘고려의 땅〔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 공험진에 대해 강단사학은 함흥평야 또는 길주 이남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일본인 이케우치 히로시 등의 반도사관을 지금껏 추종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험진의 위치에 대해 《고려사》 〈지리지〉는 “선춘령 동남쪽, 백두산 동북쪽, 혹은 소하강변에 있다고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백두산 동북쪽에 있다는 기술은 공험진이 지금의 함경남도에 있을 수 없음을 말해준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수빈강에 대해서 “두만강 북쪽에 있는데, 그 근원은 백두산 아래에서 나오는데, 북쪽으로 흘러서 소하강이 되어 공험진·선춘령을 지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으로 688리 지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빠져 두만강 북쪽 280km 지점에 있던 고려 강역 공험진을 남쪽으로 400km도 더 넘게 끌어내려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태종실록》 5년 (1405) 5월 16일조는 태종은 김첨을 통해서 “공험진 이북은 요동으로 환속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그대로 본국(조선)에 붙여달라”는 태종의 요청을 명 태조가 받아들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고려 말 우왕이 명 태조 주원장에게 확인받았던 철령~공험진까지였던 고려의 국경선이 그대로 조선의 국경선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왕 14년(1388) 명나라에서는 왕득명을 고려에 보내 철령위 설치를 통보했다. 철령위 위치에 대해 현재 남한 강단사학계는 함경남도 안변의 철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 또한 이케우치 히로시가 왜곡한 것을 아직껏 추종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명나라의 정사인 《명사》 〈지리지〉 도 철령위를 함경도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철령은… 서쪽에 요하가 있고, 남쪽에 범하가 있는데 모두 요하로 들어간다… 동남쪽에 봉집현이 있는데 옛 철령성 자리이고,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명사》는 철령위 서쪽에 요하가 있다고 말한다. 명나라 때 요하는 지금의 요녕성 요하다. 그리고 이때의 봉집현은 지금의 요녕성 심양 남쪽 진상둔진이다.

왜 이완용의 비서가 선각자인가?
이인직은 국사교과서에서 신소설 《혈의 누》를 쓴 선각자로 가르쳐왔다. 《혈의 누》의 내용은 청일전쟁 때 청나라 군사에게 겁탈당할 뻔한 조선 처녀를 일본군이 구해준다는 내용이다.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긴 이후인 1906년부터 《만세보》에 연재되었으니 대한제국을 빨리 점령해 달라는 정치소설이었다. 1910년 일본 육군대장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3대 통감으로 부임하자 데라우치가 합방청원을 제출하던 일진회와 손잡고 대한제국을 병합할까 다급해진 이완용은 비서 이인직을 시켜 나라를 팔아먹는 비밀협상을 하게 했다. 이인직은 도쿄 유학 시절의 스승이었던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츠를 만나 비밀협상을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이인직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총살당했을 때 대한신문사 사장 자격으로 추도식에 가서 추도사를 낭독했던 인물이었다. 그간 국사교과서는 이런 인물을 선각자로 가르쳐온 것이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역사가 만들어진 이유는 해방 이후 식민사학자들이 남한 역사학계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식민사학의 특징은 한국사를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식민사학은 한국 고대국가들의 성립연대를 끌어내려 시간을 줄이고, 한반도 북부의 한사군과 남부의 임나일본부를 통해 공간을 줄인다. 이 책에서는 서기 4500년경 시작된 홍산문화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시원을 추적하고, 반도를 넘어 대륙과 열도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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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이덕일의 한국통사 | as**aea717 | 2020.09.17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이 책에서 역사를 바라본 저자의 관점은 서설 국사를 보는 눈만 읽어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다. 국사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관점...
    이 책에서 역사를 바라본 저자의 관점은 서설 국사를 보는 눈만 읽어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다. 국사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이 가지는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다. 역사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게 역사인듯하다. 하지만 역사 연구의 기본 바탕인 실증 주의적 접근 방법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강단사학'이라 서술한 '식민사관'이 그들을 '실증사관'이라 포장하며 '사대주의 사관'까지 더해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었다는 아니 아직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평소의 재미보다는 계속 보여주는 역사 왜곡의 증거들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역사 교육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이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어느 쪽의 이야기가 되었던 증명된 역사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이덕일의 한국 통사/이덕일/다산초당 ...

     

     

    이덕일의 한국 통사/이덕일/다산초당

     

    중고등 시절,

    내가 제일 어려워했던 과목은 국사다.

    시험 기간 내내 죽어라 외우고,

    시험 본 후 바로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그래서 싫어했던 과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사와 관련된 책을

    자주 읽으려고 노력한다.

    나의 취약점을 보완하고자.... ^^

    (그래도 여전히 어렵지만)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역사지만

    읽는 것이 재미있어 <이덕일의 한국 통사>도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

    .

    .

    서설 '국사를 보는 눈'을 읽으며

    나에게 너무 어려운 책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기백, 이병도, 실증사학, 식민사학

    낙랑군=평양성, 낙랑군=대동강설, 낙랑군=요동설

    임나일본부설, 임나=가야설 등등

     

    도대체 무슨 말인지......

    글자를 읽고 있지만, 내용을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이기백, 이병도, 이덕일... 등

    서설에 나온 인물을 괜히 검색해 봐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버렸다.

     

    안타깝지만 역사와 역사관에 대한

    나의 내공을 좀 더 쌓은 다음

    정독해서 읽어야겠다.

     

     

     

  • 이덕일의 한국통사 | di**ni | 2020.01.1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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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초당 / 이덕일의 한국통사 / 이덕일 지음

    이덕일 교수님의 책들을 봐온지 꽤 오래되었다. 그 때는 모든 사학의 길이 같은 방향인 줄만 알았었다.

    하지만 이후 방향이 여러개임을 알게 되었고 역사책을 접할 때마다 사실 그 방향이 흔들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읽게 되는 건 그만큼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덕일 교수님의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서두에 언급되는 국사 인식의 문제점을 다룬 글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상대방을 고집어 반박하는 글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꽤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모습으로 비춰져 책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이덕일의 한국통사>는 들어가기 전부터 국사의 의미에 대한 그의 생각을 확고하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큰 사건들을 개인적인 관점과 왜곡이 아닌 기록과 고증에 입각한 관점으로 바라봐야하며 개인적인 관점이 불러온 역사의 왜곡이 어떤 위험성을 초래하는지도 엿볼 수 있다. 그러하기에 역사를 제대로 잘, 아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미래에 미치는 영향까지 짚어볼 수 있다.

    이 책은 1장 선사시대와 우리 민족의 형성, 2장 고조선과 열국시대, 3장 열국시대에서 사국. 삼국시대로, 4장 남북조시대, 5장 고려시대, 6장 조선 전기, 7장 조선 후기, 8장 대한제국사의 방대한 양을 다루고 있다. 두께감은 꽤 있지만 300여판의 도판이 첨부되어 있어 보기 쉽고 이해력을 높여주어 역사를 좋아하는 이들도 한번에 읽어내는게 쉽지 않은 역사서를 편하게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맨 마지막 장에는 왕들의 계보가 나와 있어 부러 다른 책을 찾아보지 않아도 되어 왕들의 계보가 꼬일 때마다 찾아볼 수 있어 더욱 편했던 것 같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시작된 원시인류의 진화는 4만 년에서 3만 년 전에 자리잡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통해 우리나라의 선사시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이어 세계 4대 문명이라고 알려진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1,000년이나 빠른 요하문명과 홍산문화가 나오는데 만주사변 당시 일제가 홍산문화를 만주국을 중국 관애와 분리시키기 위한 역사적 도구로 이용한 이야기와 남한의 강단사학계에서는 홍산문화 연구 자체를 외면하는 이야기는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고 있다.

    일본에 의해 여러모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삼국시대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비교하며 생각할 수 있게 설명되어 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는 쪽으로 기운 임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왜곡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아직까지도 말도 안되는 주장을 피력하는 이유와 이를 좌시하던 그동안의 우리나라의 대응이 또 다른 위험성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 또한 함께 들었던 것 같다.

    현재 우리가 존재하게 된 뿌리를 찾아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 고된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기록조차 각각의 관점에서 해석되기 마련이고 그조차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면 승리자의 입장에서 왜곡되기 마련인데 그것이 수난의 역사였든 찬란함의 역사였든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왜곡되는 일들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하기에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역사를 다르게 인식하는 이들이 펼치는 주장에 반박하는 글들을 보는 것은 객관적인 우리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뗄래야 뗄 수 없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유물과 기록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모두 들지 않았을까 싶다.

  • #이덕일의한국통사 #이덕일 #다산북스 그동안 우리가 어설프게 알고 있던 한국사에 대한 통념을 부수고 제대로 ...

    #이덕일의한국통사 #이덕일 #다산북스


    그동안 우리가 어설프게 알고 있던 한국사에 대한 통념을 부수고 제대로 된 역사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 그동안 교과서를 통해서 강제로 배웠기 때문에 재미없다고 생각한 한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는 일본의 식민사관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또한 중국은 대대적인 동북공정을 통해서 호시탐탐 우리의 고대사를 노리고 있다. 그런 왜곡된 논리들을 격파하기 위해 저자는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을 근거로 삼아 객관적인 시각에서 한국사를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사진 자료들과 함께 도표로도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읽기에 더욱 좋았다. 또한 책 마지막 부분에는 왕조계보도와 한국사 연표를 정리하고 있어서 한눈에 한국사의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500여 쪽의 매우 두꺼운 책이지만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의 우리 역사를 자세히 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는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국사 교과서보다 훨씬 자세하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동안 모르던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또한 쟁점이 되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 저자의 관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학계 및 북한, 중국, 일본학계의 시각을 모두 실어놓아서 역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기존의 역사를 해석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고,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 


    우리의 고대 역사를 선사시대-고조선-삼국시대 이런 순으로 알고 있었는데 인류 4대 문명인 황허문명보다 더 앞선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동국공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도 아예 말이 되지 않는 왜곡이기 때문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우리가 제대로 된 사료가 근거로 반박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목소리에 잠식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도 되었다. 우리 교과서에서 크게 강조하지 않는 부여와 가야 그리고 발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좋았다. 그동안 우리가 단지 한반도라는 지역에 묶여서 만주 지역에 넓게 펼쳐져 있던 우리의 역사 무시하고 좁은 시각만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닐까.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지만 제도적인 면에서는 역으로 사대부들을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는 점도 처음 알았다. 또한 팔만대장경에 창제에 대한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이규보의 해석을 당연하게 배우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그동안 교과서에서 보여주는, 혹은 몇몇의 역사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만 배우고 있던 걸까. 내가 배운 한국사가 과연 객관적이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 책도 저자의 개인적인 해석이 없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사료를 근거로 해석을 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대한제국까지 정리가 되어 있으니 앞으로 근현대사 책이 새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현재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한국사에 더 관심을 가져야지.


    #다산책방 #한국사 #한국통사 #역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책읽기 #독서 #신간 #책 #도서 #책추천 #도서추천 

  • 이덕일의 한국통사 | ma**wolf | 2020.01.12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제국주의에 가해야 할 비판을, 제국주의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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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에 가해야 할 비판을,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민족주위에 가하는 것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꾸짖는 것이자 강대국의 지배를 용인하는 것이자 극심한 학문 사대성의 결과이다.

     

     

    우리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망가지고 부서진 채로 이제껏 이어져 왔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36년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현재에도 곳곳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음이다.

     

    나에게 역사는 언제나 목마른 대상이었다.

    학교 때는 그저 암기과목으로만 치부해서 시험에 나오는 대목만 죽어라 외웠지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다.

     

    중국도 일본도 다들 자기네 역사를 부풀리고, 확장시키기 바쁜 와중에 우리만 스스로 축소시키고, 외면하는 이유가 친일파들의 득세로 인해 역사계가 암묵적으로 지켜오고 발전시켜온 대가라니 참으로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덕일의 한국통사는 그런 답답함을 어느 정도 통쾌하게 알려 준 책이다.

    아직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었다.

     

    고구려 제국을 재건하려던 왕건의 유훈을 저버린 고려 문신들은 하대하던 여진족의 금나라를 부모의 나라, 임금의 나라로 섬기는 사대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내부 권력만 차지하면 된다는 행태인데, 이런 사대주의는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찬란하던 조상들의 역사의 무대를 스스로 축소시키고 자신들의 안위만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그래서 그 관점을 조금 더 넓게 보게 해주는 이 책이 나에게는 목마름을 조금 해갈시켜 주었다.

     

    고려 시대에 아버지의 성 말고 어머니의 성을 따라 임씨가 되어 광종의 후궁이 된 사례를 읽으며 이렇듯 자유로운 사고가 어째서 한쪽으로만 굳어졌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자신의 왕권을 위해 공신들을 특권층으로 만듬으로써 법치국가 체제를 무너뜨린 대목에서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시발점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답답했다.

    어떤 죄를 지어도 후손들까지 공신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사하여 준다니 이런 무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기득권은 이때에 만들어진 패단인 거 같다.

     

    우리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훑어보면서 내가 외우고 있었던 역사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시간이었다.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의 끝을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노력으로 우리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덜 왜곡시키고, 덜 조작하려 애쓴 흔적을 발견하는 시간도 내게는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제대로 된 역사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더 쏟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에게 남는 건 결국 제 몸 담그고 살았던 제 나라에 대한 역사뿐이라는 걸 우리가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조상이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그 후손들이 반드시 위대한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그 기상을 배우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남이 쥐여준 역사를 믿고 살아가는 한심함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되풀이 된다더니 지금 이 시기도 우리가 늘 되풀이 했던 역사와 다를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 삶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물불 안가리는 정치권을 보자니 후세에 이 현실이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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