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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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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쪽 | A5
ISBN-10 : 8952765508
ISBN-13 : 9788952765505
예루살렘 전기 [양장] 중고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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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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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 5점 만점에 5점 ke***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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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왜 그런지 박스에 담배냄새가 진하게 배서 책도 약간 냄새가 나네요. 그외에는 모두 좋습니다. 5점 만점에 4점 jy***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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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좋은 책 잘 받았어요. 5점 만점에 5점 ji***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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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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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과 인간의 탐욕이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의 역사를 파헤치다!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예루살렘 전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탄생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까지,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를 담은 책이다. 단순히 종교나 분쟁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목적론적 서술로 모든 역사가 필연적이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예루살렘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기원과 탄생, 전개를 통해 하나의 신을 모시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마치 자기들 종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 종교와 함께 진행되어 온 화려하고 복잡한 예루살렘의 역사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는 1965년 출생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템킨Catherine the Great and Potemkin》으로 새뮤얼 존슨상, 더프 쿠퍼상, 마시 전기문학상의 최종 후보명단에 올랐다. 《스탈린 : 붉은 짜르의 궁전Stalin : The Court of the Red Tsar》으로는 2004년 영국출판대상 ‘올해의 역사책상’을, 또 다른 저서 《젊은 스탈린Young Stalin》으로는 코스타 전기문학상(영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전기문학상(미국), 크라이스키 정치저술 상(오스트리아) 등을 수상했다. 또 소설 《사센카Sashenka》를 썼다. 그의 저서는 현재 전 세계 35개 언어로 출간되는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필연적으로 예루살렘에 관심을 갖게 된 저자가 오랜 세월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쓴 진짜 예루살렘 이야기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예루살렘의 역사를 가장 중립적이고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역자 : 유달승
역자 유달승은 이란ㆍ중동 문제 전문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동지역정치를 공부한 후 이란 국립테헤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2000년에 하버드대학교 중동연구센터에서 초빙학자로 지낸 후, 2003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중동은 불타고 있다》, 《이슬람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등이, 옮긴 책으로는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 엿보기》, 《중동의 비극》,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숙명의 트라이앵글 1, 2》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글
옮긴이의 글

프롤로그 _ 예루살렘의 새벽

제1부 유대교

1장 다윗의 세계
2장 작은 자의 큰 성공
3장 왕국과 성전
4장 유다의 왕들
5장 바빌론의 창녀
6장 페르시아인들
7장 마케도니아인들
8장 마카베오 가문
9장 로마의 등장
10장 헤롯 왕조
11장 예수 그리스도
12장 헤롯 왕조의 최후
13장 예루살렘의 죽음

제2부 이교
14장 계속되는 유대전쟁

제3부 그리스도교
15장 비잔티움의 전성기
16장 비잔틴의 쇠퇴

제4부 이슬람
17장 아랍의 정복이 시작되다
18장 우마이야조, 성전의 회복
19장 압바스조, 원거리 군주들
20장 파티마조, 관용과 광기

제5부 십자군
21장 순례의 길을 떠난 군사들
22장 우트르메르의 부흥
23장 우트르메르의 황금시대
24장 교착상태
25장 문둥이 왕의 용기
26장 살라딘 이야기
27장 제3차 십자군
28장 살라딘 왕조

제6부 맘루크조
29장 술탄의 노예
30장 맘루크조의 쇠퇴

제7부 오토만제국
31장 술레이만
32장 신화와 메시아
33장 가문들

제8부 제국
34장 예루살렘의 나폴레옹
35장 신낭만주의
36장 알바니아 정복
37장 복음주의자들
38장 새로운 도시
39장 새로운 종교
40장 아랍 도시, 제국 도시
41장 러시아

제9부 시온주의
42장 시온, 그들의 나라를 위하여
43장 예루살렘의 우드 연주자
44장 세계전쟁
45장 밸푸어 선언
46장 크리스마스 선물
47장 승전국들과 전리품
48장 영국의 위임통치
49장 아랍의 반란
50장 더러운 전쟁
51장 유대의 독립, 아랍의 재앙
52장 종파의 분열
53장 6일 전쟁, 역전과 상실

에필로그 _ 예루살렘의 아침

부록(가계도, 지도,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우리는 또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장소 가운데 왜 하필 예루살렘인가? 그곳은 지중해 해변의 무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물도 부족하고 여름에는 태양이 작열하며 겨울에는 바람이 살을 에고, 돌산들은 험해 생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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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장소 가운데 왜 하필 예루살렘인가? 그곳은 지중해 해변의 무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물도 부족하고 여름에는 태양이 작열하며 겨울에는 바람이 살을 에고, 돌산들은 험해 생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성전의 도시로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결정적이자 사사로운 면도 있고 생태적이자 진화적인 면도 있다. 즉 그 도시가 그만큼 오랫동안 성스러웠기 때문에 신성이 점점 더 강화된 것이다. 성스러움에는 영성과 신앙뿐 아니라 합법성과 전통도 요구된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급진적인 예언자는 이전 수 세기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용인된 거룩함의 언어(앞서 계시를 내렸던 예언자들이 사용한 언어)를 사용해 이미 오랫동안 신성시되어온 장소에서 자신의 계시를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 들어가는 글 p.12

3세기 동안 지속된 새로운 ‘암흑기’에 히브리인들은 유일신을 숭배하며 좁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기이하고 작은 민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은 세계의 창조, 자신들의 기원 그리고 그들과 신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에 나타나 있다. 그들은 그 구전 기록들을 대물림했으며, 이후 신성한 히브리 문자로 기록했다. 그것이 훗날 펜타튜크Pentateuch, 즉 모세5경(구약 성서 맨 앞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함)으로 종합되었으며, 유대인의 경전 《타나크Tanakh》의 첫 번째 부분이 되었다. 성서는 이 세상 최고의 책이 되었지만 하나의 문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시대에 알려지지 않은 필자들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기록하고 편집한, 뒤얽힌 텍스트들의 신비로운 도서관이다. ■ 제1부 유대교 pp.57~58

당시에는 그가 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건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그는 끔찍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어머니 헬레나를 숭배했는데, 헬레나는 초기 그리스도교 개종자였다. 그의 개인적 개종이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바울의 개종만큼이나 극적이었다면 그의 정치적인 그리스도교 수용은 점진적이었다. … 그러나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콘스탄티누스의 개인적 변덕에 따른 것이었다. 312년 당시에는 마니교Manichaenism와 미트라교Mithraism가 그리스도교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중에 한 가지를 쉽게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유럽은 오늘날 마니교나 미트라교 국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 제3부 그리스도교 p.258

무함마드는 영감이 뛰어난 몽상가였다. 그는 쉽게 습득 가능한 의식들과 삶과 죽음에 관한 규정들을 통해서 보편적 계시와 평등과 정의의 가치만이 아니라 순수한 삶의 미덕을 대가로 한 유일신에 대한 복종(이슬람)을 설교했다. 그는 개종자들을 환영했다. 성서를 존중했으며 다윗과 솔로몬, 모세와 예수를 예언자들로 간주했다. 그러나 그의 계시는 앞선 계시들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한 계시도 중요한데 무함마드는 그가 심판, 마지막 날 또는 그 시간이라 부른 계시를 강조했고, 그 계시가 곧 실현될 것이라는 긴박감으로 초기 이슬람에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쿠란》은 “오로지 신만이 아시는 심판이 가까웠음을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하리오?”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문헌은 그것이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 제4부 이슬람 p.297

십자군은 한 사람에게서 나온 생각이었다.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에서 유력자들과 일반 백성들을 모아놓고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묘교회를 해방시키자는 연설을 했다. 우르바누스는 가톨릭교회의 권력과 명성의 회복을 자기 일생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교황청을 부활시키기 위한 성전의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고 죄의 구속을 대가로 이교도 청산을 합리화시켰다. 이는 무슬림 지하드를 그리스도교식으로 변형한 미증유의 방종이었지만 예루살렘에 대한 대중적 숭배와 잘 들어맞았다. 종교적 광기의 시대, 기적의 증표의 시대에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도시였으며 최고의 성지인 동시에 천상의 왕국으로 여겨졌다. 그러면서도 설교, 순례자들의 이야기, 예수 수난극, 그림, 유물 등을 통해 환기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숙한 곳이었다. 그러나 우르바누스는 또한 순례자들의 학살과 투르크멘의 악행을 상기시키며 성묘교회의 안전에 대한 염려에 불을 지폈다. ■ 제5부 십자군 p.355

11월 9일, 밸푸어는 선언문을 발표했고 로스차일드 경의 이름을 기입했다. 선언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여왕 폐하의 정부는 유대인 자치지역을 팔레스타인에 건설하는 것을 환영한다. 기존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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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신의 축복과 인간의 탐욕이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의 전 생애를 파헤치는 최초의 시도! 하나의 신이 사는 집, 두 민족의 수도, 세 종교의 사원. 이와 같은 수식어는 지구상에서 단 하나의 도시, 오직 예루살렘에만 붙일 수 있다. 그 땅은 ...

[출판사서평 더 보기]

“신의 축복과 인간의 탐욕이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의 전 생애를 파헤치는 최초의 시도!


하나의 신이 사는 집, 두 민족의 수도, 세 종교의 사원. 이와 같은 수식어는 지구상에서 단 하나의 도시, 오직 예루살렘에만 붙일 수 있다. 그 땅은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단 한순간도 지속적인 평화를 가진 적이 없으며 파괴와 건설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예루살렘을 소유한 사람들은 영원히 그 땅을 갖고 싶어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빼앗고 싶어 했다. 그렇게 여러 번 주인이 바뀌어오면서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가장 분쟁이 많은 도시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왜, 그 땅의 운명은 그래야만 했는가? 무엇이 그 땅을 그토록 소유욕에 불타는 도시로 만들었던 것인가?
신간 《예루살렘 전기》(Jerusalem : The Biography) 는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 땅의 장대하고 성스러운 역사를 비롯하여 그곳에 살고 배회하며 소유하려 들었던 수많은 개인과 민족의 역사를 담았다. 이 책은 단순히 종교나 분쟁에만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며 목적론적 서술로 모든 역사가 필연적이었음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예루살렘에 대한 가장 깊고 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예루살렘을 전방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가장 적절하고 명쾌한 해답을 내려준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자행되는 국제 사회의 분쟁과 테러, 갈등과 번민이 거의 모두 예루살렘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세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국제 사회에 대한 올바른 식견으로 이어진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성서 속에서만 성스럽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 땅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말을 거는, 성스럽고도 처절한 도시로 존재한다.

어디에도 없었던 이야기,
사실 그대로의 예루살렘을 서술하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ag Montefiore는 유대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루살렘을 배회해오면서 가장 사실로서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또한 예루살렘과 유대인을 위해 힘쓴 시온주의의 선구자 모지스 몬티피오리 경의 후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는 어쩌면 예루살렘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가장 적합하고 유일한 서술자일 것이다.
몬티피오리는 수많은 예루살렘 관련 책을 보았지만 사실에 가장 가깝고 예루살렘의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책을 찾을 수가 없어 자신이 직접 펜을 들었다고 한다. 책을 쓰기로 결심한 후에는 오랜 시간 방대한 자료조사를 거쳤다. 교수, 고고학자, 가문들, 정치인들을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으며 발이 닳도록 고고학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그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또는 한 번도 활용된 적이 없던 자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한 모든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잘 버무려져 있다.
저자는 일생에 걸쳐 이 책의 집필을 준비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고백한다. 지상과 천상에 존재하며 신앙과 정서에 의해 지배되는, 그 어떤 말로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예루살렘은 그의 손끝에서 재탄생되었으며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아브라함의 세 종교,
그 땅을 향한 욕망의 역사를 펼치다


이 책 《예루살렘 전기》에서 우리는 긴 호흡으로 펼쳐지는 역사 가운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기원과 탄생, 전개를 만나게 된다. 하나의 신을 모시지만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같은 장소를 가리키지만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같은 곳에 있지만 마치 자기들 종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드러나고 있다.
아브라함의 세 종교는 모두 예루살렘을 소유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서로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해왔기 때문에 어떤 종교가 그 땅의 실소유주인가는 명확하지 않다.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예루살렘에 거주해왔다. 그들은 신의 축복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으며 이 믿음은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분할로 본격적으로 해외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살면서 유대교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의 거주지)에 살면서도 그들은 메시아가 시온에 올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확고히 했으며 19세기 후반 드디어 예루살렘으로의 재입성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땅에 마침내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시작되었다. 예수를 신으로 믿느냐 아니냐 하는 논란 등으로 많은 종파가 생겨나긴 했지만 비잔틴제국의 국교로 선정되면서 평탄한 미래를 맞는 듯했다. 후에 이슬람의 지배로 탄압의 역사를 걸었던 그리스도교는 서구 사회에서 시작된 십자군전쟁으로 반등을 노렸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은 시간이 거듭되면서 애초의 정신을 잃어가고 갈등의 씨앗이 되고 만다.
이슬람은 무함마드의 창시로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은 그가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 하늘로 승천한 곳이었다. 따라서 이슬람에게 예루살렘은 성지였고 그곳을 지켜야만 했다. 세력을 확장하며 1,500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살아온 이슬람 아랍인, 즉 팔레스타인인들이 시온주의라는 맹랑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들의 땅을 침략해오는 유대인들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저항을 시작했고, 둘 사이의 불편한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세 종교와 함께 진행되어온 예루살렘의 역사는 무척 화려하고 복잡하다. 그것은 신에 대한 믿음 이상이었고 어쩌면 신앙은 정복을 위한 도구였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그들이 지나온 것은 투쟁의 역사이며 피의 역사, 눈물의 역사임이 틀림없다. 이는 예루살렘을 막연히 종교의 아름다운 성지쯤으로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어쩌면 충격으로 다가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실상을 파악할 때 신앙은 더욱 확고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오늘 아침의 예루살렘 이야기까지,
반복되는 역사의 끝나지 않은 마침표


《예루살렘 전기》는 21세기 예루살렘까지로 이야기를 넓혔다. 박제된 역사를 넘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따끈따끈한 현황까지 이 책은 예루살렘의 오늘 아침, 아니 다가올 내일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1917년 영국 내각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밸푸어 선언이 이루어지고 난 후 예루살렘에서는 소유를 위한 본격적인 현대적 분쟁이 시작된다. 그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중동전쟁과 인티파다가 발생했다.
1993년 이후로는 길고 긴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 긴 협상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둘 중 어느 하나도 예루살렘을 공유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나선 양측의 회담도 성과는커녕 냉랭한 기운만이 감돌았을 뿐이었다. 예루살렘의 현재는 과거 헤롯 시대, 십자군 시대, 영국령 예루살렘 시대처럼 똑같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과연 예루살렘에 평화라는 것이 도래할 것인지, 몇 십 년 후에도 예루살렘이 존재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책을 번역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유달승 교수는 옮긴이의 글에서 이 책은 어쩌면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사랑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수천 년을 지속해온 그 땅에 대한 열망과 집착. 그것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 것이며 사그라지지 않는 욕망으로 국제 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루살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며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인 이유다. 예루살렘은 오늘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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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예루살렘 전기 | js**jy | 2019.01.2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예루살렘 역사가 아니라 전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이런 기구한 운명을 타고 등장한 역사적 장소가 과연 이곳 말고도 ...
    예루살렘 역사가 아니라 전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이런 기구한 운명을 타고 등장한 역사적 장소가 과연 이곳 말고도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과 팔레스트인인들이 다투던 곳.
    한때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걸출한 임금이 나와 강력한 독자적인 왕국을 가졌지만 결코 도덕적이지 못했던 왕조는 이후의 역사를 암시해주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바빌론의 통치로 나라 잃은 땅이 되더니 로마의 통치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세계 제일의 종교로 성장한 그리스도교 때문에 또 복잡하게 얽혀드는 나라.
    그리스도교-이슬람교-신교-그리스와 러시아의 정교...
    세상의 모든 분쟁의 씨앗이 되는 종교가 혼재된 화야고 중에서도 뇌관이 된 듯하다.
    성서가 유일한 자료였던 고대사부터 현재 우리의 귀에 이름이 익숙한 라빈, 메이어, 다얀 등의 이름이 나오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예루살렘을 장악하기까지 정말로 잘 정리가 된 것 같다.
    에필로그에서는 현재의 상황과 문제점까지 잘 제기하고 있다.
    예루살렘이 역사가 아닌 전기로 다루어질 인물이라면 단 한 마디로 '만신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듯하다.
    두꺼운 책인데 볼륨감에 다소 압도되는 느낌은 있었으나 내용은 재미있어서 비교적 잘 읽히는 편이다.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에 한번 갈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
    그 문제의 땅이라니 말이다...
  • 13-03-13   문제 1.처음 1,000년간 배타적인 유대교 지역이었다가, 다음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이...
    13-03-13
     
    문제 1.
    처음 1,000년간 배타적인 유대교 지역이었다가, 다음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이었고, ‘최근’ 1,300년간은 이슬람지역이었던 곳이면, 최종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문제 2.
    1095년 클레르몽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십자군 호소에 대해 군중들이 “데우스 불트 Deus vult!(하느님이 원하신다!)”라고 연호했는데, 과연 ‘하느님’이 진짜 원하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문제 3.
    유대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각각이 유일신 종교이교, 그 유일신이 동일한 ‘하느님’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함께 합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각 문제의 답으로는 ‘알 수 없음’이 정답일 것 같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답이 정답이 되는 예루살렘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참으로 특별한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세계 3대 종교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곳이라면 그만큼 많은 은총과 복락을 누려야 함에도, 수 천년의 세월이 대부분 투쟁과 정복으로만 점철된 비극의 도시였고, 이제는 이 도시의 상황이 일상적인 종교간 관계를 뛰어넘어 국가들간의 관계와, 그럼으로써 불가피하게 각국의 평범한 국민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이와 같은 도시는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약 3천여년간의 예루살렘의 역사를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배타성’이란 말로 예루살렘 역사의 대부분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에 기반한 또는 종교로 인한 배타성... 이는 황당 차원을 넘어 암담하기까지 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관용과 공유 그리고 포용과 같은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3천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예루살렘을 지배해 온 것은 다윗왕도, 로마의 황제도, 살라딘도 아닌 편견, 배타성, 집착이었던 셈입니다. 배타성의 문제가 최우선적으로 풀리지 않는다면, 예루살렘은 언제 다시 정신분열적 자기파괴 증세가 발병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낡은 역사의 침대위에서 수액을 맞고 있을 환자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책에서 나온 예루살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이 문제를 푸는 것, 즉 예루살렘에서 '배타성'을 없애고, ‘배려’와 ‘관용’을 되살리는 것이 전혀 불가능할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1192년 살라딘이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제한없이 성묘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것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슬람식 기사도에서 나온 것이라할지라도) 그와 같은 관용의 경험들이 단편적으로나마 존재한다는 사실은 예루살렘의 역사에서 배려와 관용을 다시 소환해내는 것이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비록 지역은 달랐지만, 732년 뿌아띠에 전투로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간 경계선이 명확해진 이후로 1492년 그라나다 함락전까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가 상호협력했다는 이른바 ‘콘비벤시아’의 경험이 있었던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문제는 수 천년간 얽히고 설켜 이미 제도화되고,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문제입니다. 이를 무 자르듯이 단칼에 잘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그런 것이 있었다면 선혈이 낭자한 3천여년의 세월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래의 3천년을 또 그렇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과거와 같은 도륙이 발생하면 예루살렘은 바로 아마겟돈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 종교의 선택된 도시 예루살렘은, 이미 10년이 지나버린 21세기에도 묵시론적 음울함 속에서 ‘죽은자들의 도시’로 남을지, 아니면 지난 3천여년의 속박을 끊고 새로운 천년을 시작할 수 있을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갈림길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세 종교와 연결된 세계 각 국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미래는 선택에 의한 창조의 산물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갈림길들에서 마주쳤던 것들을 떠올린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분명합니다. 오늘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각자의 유일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이 과거와 같은 마니교적 선택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기를...
  •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종교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위한 바티칸 콘클라베를 주목하고 있다. 의학의 힘으로 치유가 어려운 난치병의 완쾌를 기원하기 위해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으며, 삶을, 제 신앙을 되돌아보기 위한 순례길에 오르는 이들 역시 상당히 많다. 모든 종교는 평화를 갈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개별 종교들은 만나면 아웅다웅하다.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급기야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키도 한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또한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이 믿는다는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현재도 이 곳은 정체성이 복잡하다. 세계를 호령(?)하는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맞닿은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결과다. 때때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이에 맞선 무장군인들의 폭력도 일어난다. 세상은 제 편의에 따라 어느 한쪽의 뜻만을 받든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서, 서방의, 특히 미국의 시선에 길들여진 나머지 아랍인들은 모두가 테러리스트라는 다소 위험한 시선을 견지할 때가 많다.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를 내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 현재의 시점에 고착되어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였으니,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의 모든 것을 훑는 이 책을 통해 나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예루살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종교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위한 바티칸 콘클라베를 주목하고 있다. 의학의 힘으로 치유가 어려운 난치병의 완쾌를 기원하기 위해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으며, 삶을, 제 신앙을 되돌아보기 위한 순례길에 오르는 이들 역시 상당히 많다. 모든 종교는 평화를 갈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개별 종교들은 만나면 아웅다웅하다.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급기야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키도 한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또한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이 믿는다는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현재도 이 곳은 정체성이 복잡하다. 세계를 호령(?)하는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맞닿은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결과다. 때때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이에 맞선 무장군인들의 폭력도 일어난다. 세상은 제 편의에 따라 어느 한쪽의 뜻만을 받든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서, 서방의, 특히 미국의 시선에 길들여진 나머지 아랍인들은 모두가 테러리스트라는 다소 위험한 시선을 견지할 때가 많다.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를 내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 현재의 시점에 고착되어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였으니,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의 모든 것을 훑는 이 책을 통해 나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예루살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1,000년간 예루살렘은 배타적인 유대교 지역이었다.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이었다. 1,300년간은 이슬람 지역이었다. 그 세 종교들 중 어느 것도 칼, 투석기, 또는 곡사포 없이는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서술이 사실임은 목차에서부터 명정하게 드러난다. 유대교에서 출발한 책은 이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온주의도 일종의 믿음으로 간주한다면 종교의 개수는 더 늘어난다고 볼 수 있겠다. 실체가 존재치 않는 믿음으로 인해 인간이 다툰다? 어찌 보면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모두가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이기에, 이들 종교 중 어느 하나를 믿는다는 것은 곧 다른 종교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이교는 좀 다르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섬기는 신이 많다 하여 그 종교의 관용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지배적인 종교가 갈릴 때마다 이전 종교가 만들었던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는데, 이는 이교 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종교와 정치가 결합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오늘날 저와 같은 독재 정권이 견고히 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 국가에 속한 사람들을 보면 의구심은 곧 해결된다. 정권에 대한 광적인 믿음 덕에 외부에서는 ‘악의 축’ 취급을 받는 정권일지라도 굳건히 유지되고는 한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기강을 다지는 데 종교만한 수단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 종교들이 한 사회를 풍미했던 시절은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고치 않았을 때다. 종교가 지닌 순기능과 종교적으로 신실한 이들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나 종교가 이러한 차원에서 번성할 수도 있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십자군 전쟁과, 오늘날에도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 등도 이와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조금은 쉬워진다. 어찌 보면 서글프지만, 종교 역시 결국에는 세속의 일인 것이다.
    저자는 예루살렘을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라 하였다. 너무나도 위험해 보이는 그 땅을 꿈꾸다 마침내 어떠한 연줄도 없는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아무 일 없이 어제까지 거주하던 땅을 빼앗긴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 그 땅을 선점했는지를 따져가며 그 땅의 주인이 누군가를 논하는 것은, 왠지 지금의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지 싶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를지라도 서로를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태도다. 아플지라도 서로를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땅으로, 진정한 축복의 공간으로 예루살렘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다.
  • 예루살렘 전기 - 신의 약속과 인간의 타락의 땅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와 큰 판형 그리고 두꺼운 표지...

    예루살렘 전기 신의 약속과 인간의 타락의 땅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와 큰 판형 그리고 두꺼운 표지의 양장으로 일단 그 모습부터가 부담 그 자체인 겉모습과 반드시 읽고 말리라! 는 도전 의식 사이에서 몇 일을 고민하게 만든 책이다. 고민의 결과는 어이없게도 더 읽을 책이 없어서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고민의 보람(?)도 없이 책장을 열수밖에 없게 되었다. 필자는 책을 지하철로 이동 중에 읽기 때문에 이 큰 책을 한 달 넘게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장서의 경우 가방에 넣고 다니면 몇 일이 안되어 표지의 네모서리가 뭉개지고 책 등의 위, 아래 날개가 파손된다.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스스로 뭉개지거나 가방 안에서 다른 이웃들과 뒤 엉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집이나 사무실 한 곳에 고정해 두고 읽는다면 필시 매일 읽는다고 해도 1년은 걸릴 것이고 읽다 지쳐 어느 순간 내 책장에 떡 버티고 나를 집착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들고 다닌 책은 할아버지가 되어서 책장에 가지런히 꽂혔다.  아직은 생생한 겉 표지를 뒤집어 쓰고 아직 생생한 청년인 것처럼 천연덕스럽다.





    청동기에서 21세기의 어느 아침까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예루살렘의 한 도시와 관련된 사람들, 관련된 국가들 이 기이한 도시 주변의 국제정세를 광범위하게 다른 지루한(?) 연대기이다. 예루살렘이라는 실존 도시와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역사서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예루살렘의 현재 이스라엘의 작은 도시 이면서 종교적으로는 3개의 종교가 신성시하는 도시이기도 하고 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종교적 시선이 분명히 필요하기 때문에 이 책의 애매한 장르일 수 밖에 없다.


    이 도시는 유대교와 유대교에서 파생된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모두가 가장 중요시 하는 종말과 구원이 일어나는 장소이기 때문에 세속적 중요성과는 별개로 반드시 차지해야 할 곳이다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 다른 종교(유대교와 그리스도교기반의 국가의 번영을 저지하고 위해서 반드시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시켜야 하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자신의 종교 권에서 수장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영향을 확보해야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

     

    성경에 따르면 아주 오래 전 신은 이 땅을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에게 주기로 약속을 한다우르(현재 이라크 주변으로 알려진지역에 살던 이 믿음의 조상(유대교기독교이슬람 공통의 조상)을 팔레스타인으로 이끌어 이 곳에 정착하게 한다이집트로 이주하기 전의 이 선택 받은 가족들은 다양한 민족으로 분화가 되는데 아브라함의 아들 중 하나인 이스마엘은 후에 이슬람민족이라 불리게 되는 아람족의 선조가 되며 이삭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민족들의 조상이 된다.

    야곱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돌아왔을 때 처음 교전을 했던 지방의 부족들은 블레셋 같은 페니키아 족들과는 달리 모세가 이끄는 유대민족과는 혈통적으로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지만 이미 종교적 성숙을 이룬 이집트 출신 유대민족들과 여러 신을 믿는 토착민들과는 공존을 할 수 없었다.  야곱의 가족들이 이집트로 들어갔던 때만 해도 이들은 신앙은 체계적이지 않았고 그들 역시 이교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그 지역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를 갖추 이집트에서의 400여년의 동안 그들 은 이집트의 체계화된 종교를 경험하게 된다이를 통해 자신들의 종교를 체계화하는 기회로 삼았다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은 이미 팔레스타인의 옛 이웃들과는 공존할 수 없었다.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면서 몇 천년 걸친 아이러니의 역사가 시작된다.  성경의 관점에서 지적했듯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면서 남겨둔 토착민들의 종교와 문화는 평화시기에 유대국가의 타락(혼란여호와 하나를 믿고 율법적으로 매우 엄격했던 유대민족들 사이에 기복적이고 쾌락적인 토착민들의 종교가 쉽게 퍼지면서 그들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을 부추겼다한때 중동지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솔로몬 시대유대 가 약해지고 이집트의 영향력도 약해지자 주변에 새로 생겨나는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자주 유린하는데 앗시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가 그들이며 이집트 역시 유대민족의 구원자를 자처하면서도 약탈로 돌변하기도 했다.


    역사시대로 넘어와서도 그들은 알렉산더제국과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로마의 지배는 유대의 역사상 가장 길고도 가장 굴욕적(유대인 입장에서는)이었다고 한다이 시기에 예수가 등장한다현재의 인류는 개인의 종교관과 상관없이 예수탄생과 죽음에 포괄적인 영향을 받을 만큼 이 사건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다예수를 따르던 초기 그리스도인이 로마 장군 티투스의 예루살렘 함락과 그 전후의 박해를 피해를 아시아와 유럽을 흩어진 유대(디아스포라출신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 곳에 소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써 그리스도교가 생성된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우리가 현재 보고 겪고 있는 세상의 분란은 크게 3가지 정도의 원인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국가민족종교 가 그것이다국가 영토의 확장에 기인한 이권분쟁민족간의 해묵은 싸움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분쟁이다종교분쟁은 크게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의 분쟁이 주류를 이루면 그 규모는 작지만 파급효과가 큰 것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간의 분쟁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3종교는 그 기원을 하나에 두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모세가 활동하던 시기를 공유하고 여호와라 부르는 신을 섬기며 이슬람은 알라라 불리는 신을 섬긴다유대교와 기독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점을 인정 하느냐 여부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유대교는 예수를 선지자 중 하나로 보고 지금도 메시아(그리스도)를 기다린다이슬람은 그 한참 후에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모하메트를 선지자로 발생한다.  이슬람도 그 믿음의 기원을 아브라함으로 보고 있고 유대교와 다르게 이삭이 아닌 아브라함의 첫 아들(신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몸종에게서 얻은이스마엘이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한다이슬람교에서는 이스마엘을 유대교에서는 이삭을 신께 희생 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하는 곳 모리아산이 바로 예루살렘이다그래서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 모두에게 공통적인 성지가 되는 것이다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경우에는 예루살렘의 중요성은 크지 않았다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던 지상의 성전보다는 다시 올 성전 즉 천상의 예루살렘과 예수의 승천 이후 각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자리잡은 성전(성령)을 더 중시했다그러나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에 위협받게 되자 정치 목적의 성지회복이라는 명분론이 주장되면서 그리스도교 사이에도 예루살렘은 중요한 도시가 된다이런 분위기에 바로 자극 받아 일어난 사건이 십자군 전쟁이다.

     



    뒤섞인 민족뒤엉킨 종교구분 없는 영과 속


    서로마의 붕괴이후 예루살렘의 행정적인 지배는 투르크계가 주로 맡아왔다이들은 굳이 구분하자면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이었지만 혈통적으로 혼혈적이었고 소위 말하는 노예 왕조이면서 실용적인(세속적인것을 중시해서 왕조의 정통성과 종교적 색채도 약했다십자군 전쟁 이후 일어난 성지순례 붐은 예루살렘과 주변에는 유럽혈통의 그리스도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퇴각한 후에도 항구도시 자파는 오랫동안 유럽의 원거리 식민지로 남아있었고 자파를 통해 유럽과 러시아(‘로마노프 왕조는 동로마 제국의 왕위를 계승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원했고 정부주도의 이민과 성지순례를 지원했다.) 순례자들과 이민자(주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이 유입되었다맘루크 왕조는 중부 아프리카인과 동유럽의 아르메니아 그리스도인들을 용병으로 사용하면서 현재까지 예루살렘에는 아르메니아 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예루살렘은 한때는 유대인 도시였고 잠시 유럽의 도시였고 그리고 오랫동안 이슬람의 도시였지만 어느 때이고 각 종교나 민족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지는 못했다그 때나 지금이나 예루살렘에는 로만 카톨릭그리스정교회유대교회당이슬람사원이 존재해 왔으며 그 안에서는 그들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신에 대한 경배가 늘 있어왔다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 각자에게 가해진 박해나 호해는 달랐지만 어느 시기도 명분 따위는 없었다매우 세속적인 방법으로 각자의 문제를 해결해 갔다각 사원(교회)들은 정세에 따라 그리스도 교회가 되었다가 모스크로 바뀌기도 했고 심지어 칸을 나누어 각기 다르게 신을 섬기기도 한다성전(교회안에서는 가지각색의 예배와 찬양을 하며 신비스럽고 위험한 의식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사제나 신도들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도 종종 일어났다신 보다는 주먹과 돈이 먼저였다.

     

    예수가 성전 문 앞에서 대속재물을 팔던 장사치들을 좆았던 옛날부터 예루살렘은 순례자들이나 명절 시기에 몰려둔 방문객들을 상대로 장사가 번창했다이전 투구에는 관리성직자 할 것 없이 달려들었고 타 종교도 간의 잦은 싸움들도 세속의 이전투구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지각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런 성지의 모집은 역겨운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늘 사람들이 들끓었다그들에게는 이세상이 끝나고 찾아갈 세상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고 사는 동안 지은 셀 수 없는 죄를 용서받고 다른 누구보다 먼저 부활할 필요가 있었다러시아의 가난한 농부나 게르만 왕이나 죽음 앞에서는 다를 것이 없었다이런 필요가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낳고 그것은 더욱 과장이 되어 더 많은 욕심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든다.

     



     

    21세기 예루살렘


    결국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독립국가를 세웠다현재 예루살렘은 동서를 나누어져 있다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도 예루살렘에는 민족 별로 거주 구역이 확실했다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가거나 통행이 금지된 구역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그럼에도 예루살렘에는 타 종교타 민족간의 묵인 하에 공존(그것이 지극히 세속적이라고 해도…)이 존재했다. 21세기 어느 아침 예루살렘의 동과 서는 두꺼운 벽과 철책으로 분리되었다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공격을 막자는 의도이지만 이 벽은 돌이킬 수 없이 너무 나가버린 잘못된 것의 상징물 같다.

     

    한편 예루살렘의 다른 한 쪽에서는 천년 넘게 이어진 어색하지 않은 어색한 일들이 지속된다이른 새벽부터 그리스정교회로만 카톨릭 그리고 이슬람의 예배가 이루어지고 같은 교회의 다른 방에서는 콥트교와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방법과 언어로 예배를 드린다몇 십대를 세습(맘루크 왕조 때부터)한 교회 관리인은 전통(?)을 이어 각 종파의 예배시간에 맞추어 교회 문을 연다

     

    현대의 예루살렘은 신을 믿지 않거나 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방문객들이 더 많다이 거룩한(?) 도시의 정체성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인간의 나약함과 역겨움으로 읽어 나가기 힘들다 생각하게 하지만 쓰레기 더미 사이를 헤집어 돌아 다니다가 집에 돌아와 따스한 물에 샤위를 하고 안정을 찾은 듯한 느낌이다.


  • 9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 페이지의 리뷰로 옮기는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책은 예루살렘의 기록 아닌가. 예루...
    9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 페이지의 리뷰로 옮기는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책은 예루살렘의 기록 아닌가. 예루살렘에는 종교와 문명, 역사와 인종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것을 하나씩 풀어 헤쳐 온전히 날것의 예루살렘을 꺼내보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을 딱 한 번 읽고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번역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예루살렘의 역사는 현기증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복잡하다. 수 천년의 역사 동안 그 땅에는 얼마나 많은 예수와 요한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무하마드와 알리가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성전과 요새와 왕조가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인종과 종교가 있었는지! 어느 순간 독자는 홍수처럼 밀려 오는 지명과 이름의 압도적 물결에 휩쓸려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된다. 불과 1분 전에 읽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페이지를 뒤로 돌리는 건 예삿일이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미궁 속을 헤매는 운명을 겪기 마련이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한 권의 책에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넣을 작정을 한 것 같다. 이 책엔 아브라함에서 부터 네타냐후(2009년 부터 재직 중인 이스라엘 총리)에 이르는 유대인들의 기록이 있으며 이는 거의 4,000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400년이 아니다. 4,000년 이다. 

    앞에서 나는 이 책을 딱 한 번 보고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말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딱 한 번 읽는 것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지. 하지만 이 책 딱 한 권만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 있는 것도 사실이네. 




    여기 예루살렘이 있다. 그곳에 처음 뿌리를 내린 사람은 아마도 아브라함으로 보인다. 그에겐 이삭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이삭은 야곱과 에서라는 아들이 있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야곱은 에서에게 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가로챘다. 나중에 야곱은 낯선 자와 씨름을 벌이는데, 그 사람은 나중에 신으로 밝혀지고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그는 열 두 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것이 바로 유대의 12지파가 되었다. 

    그들의 역사처럼 파라오의 호의를 입은 건지 아니면 노예로 끌려 갔던지 그 사실 여부를 따질 수는 없지만 그들이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이 대탈출의 기적이 바로 모세 5경 중, 출애굽기(이집트=애굽)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 후 예루살렘엔 다윗과 솔로몬이 있었다. 성전과 요새가 지어졌고 역사상 유래없는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번영은 길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다윗 왕가)로 갈라선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의해 멸망하고 만다. 디아스포라의(유대인들이 세계 각지로 뿔뿔히 흩어지게 된 것) 시작이었다.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 보낸 것은 중동의 새로운 강자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멸망 시키고 유대인을 해방 시켰다. 해방된 유대인은 또 다시 페르시아를 꺽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 점령 당했다. 아시다시피 알렉산더는 이민족의 문화에 관대한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명은 길지 않았다. 유럽에선 그리스 문명을 이어 받은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었다. 로마는 자기가 정복한 나라의 속국들을 이어 받았고 거기엔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로마인 총독은, 

    폰티우스 필라테(본디오 빌라도)였다.




    폰티우스 필라테는 성난 유대 군중들을 향해 강도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풀어줄 것이냐고 물어봤다.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원했다. 폰티우스 필라테는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그러자 군중이 대답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p. 197)

    오늘날까지도 많은 천박한 기독교인들이 이를 근거로 유대인의 박해를 정당화 한다(저자에 따르면 이 마태복음의 구절이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 한다. 저자는 폰티우스 필라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완곡, 부드러움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피를 보기 전에 손을 씻을 필요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p.197).)

    이후 세계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도교였지만, 그게 그리스도교의 우월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변덕쟁이에 야심가였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중요한 내전을 치르기 전날 밤(312년) '하늘에 빛으로 된 십자가'가 '이 신호와 함께 너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겹쳐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군인들의 방패에 크리스투스의(Christos. 영어로는 Christ) 첫 두 글자인 키로(Chi-ro)를 그렸다. 그는 승리했고 로마를 차지했다. 당시 로마는 곧 세계였으며, 이로인해 그리스도교가 세계의 종교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300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적수가 없었다.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이슬람교는 많은 무지한 기독교인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 예수, 성경, 마리아 등의 개념을 공유하는, 기독교와 아주 유사한 종교다. 실제로 이슬람교가 등장한 초창기엔 종교간 충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슬람교가 마호메트를 선지자로 규정하자 상황은 달라졌고 수 백년이 흐르는 동안 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이제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성지가 되었고 역사상 유례없는 핫 플레이스가 되버렸다. 여름에는 작렬하는 태양이,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존재하는, 전략적, 경제적 가치도 없는 바위 투성이의 쓸모없는 땅이 말이다.

    이 각축전에서 먼저 승기를 잡은 건 이슬람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과 군사력을 앞세운 이슬람은 유럽의 스페인과 중동의 대다수 지역을 정복했고 예루살렘은 보너스였다. 그런데 이슬람은 많은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자비하고(칼이냐 코란이냐) 문란한(할렘 문화)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매우 관대했고 이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과 이슬람 교도들이 사이 좋게까지는 아니었지만 '공존'하는게 가능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종교적 광신에 빠진 중세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성지를 이교도의 손에서 빼앗고자 피의 축제를 벌였고 이게 바로 4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다.

    그러나 이 대혼란 속에서 유대인은 단 한 번도 승기를 잡아본 적이 없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 마다 심한 박해를 받았고(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박해) 그저 더 관용적인 침략자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길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들이 이 땅을 다시 차지하게 된 건 1948년이 되어서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유대인 유력자들 사이에서 '시온 주의'가 발흥하게 된다. '시온 주의'란 뿔뿔히 흩어진 유대인들, 세계 각지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는 모든 형제들을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모아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었다. 유럽의 왕들 중 일부는 '기생충 같은 유대인들을 내 땅에서 없앨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또 일부는 '유대교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으로 또 일부는 '불가사의한 예언의 광신'에 휩싸여(예언에 따르면 유대인이 다시 예루살렘이 돌아왔을 때 메시아가 강림한다) 이 운동에 참여했다. 유대인들의 땅으로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우간다 등이 제시됐다. 그러나 그 무엇도 예루살렘이 가진 거대하고 위대한 상징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유대인의 지지를 얻고 싶었던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시온 주의자들은 드디어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영국을 도왔다. 마침내 영국은 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인들은 영국이 프랑스와 아랍인들에게도 똑같이 팔레스타인을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온 주의는 물거품이 됐고 예루살렘은 영국의 통치하에 그리스도인과 유대인과 이슬람인이 공존하는, 유대인들로서는 예전과 전혀 다를게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유대인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때 까지도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없었는데, 영국인의 배신에 실망한 일부 유대인들은 히틀러가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음에도 영국이 아닌 독일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유대인들은 결국 무력 항쟁을 통해 영국군을 몰아 내고 마침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옛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망한지 2,700년이 지나서였다.

    이 후 이스라엘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이들은 호시탐탐 예루살렘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고 각지에서 폭탄 테러와 유대인 살인이 벌어졌다. 2,700년 만에 되찾은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멸망의 위기로 몰아 넣은 것은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였다.

    단 하나의 아랍 국가를 원했던 민족주의자 나세르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고 싶었다. 그는 주변 아랍국을 선동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게 현대 전쟁사의 최고 드라마 6일 전쟁이다. 

    아랍 연합군은 50만의 병력, 5,000대의 탱크, 900대의 비행기를 확보했다. 이스라엘은 27만 5,000명, 1,100대의 탱크, 200대의 비행기를 확보했다.(p. 814)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심지어 이스라엘인 조차도 자국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과감한 선제 기습 공격으로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1967년 6월 5일 오전 7시 10분, 이집트로 날아간 이스라엘 조종사들이 그들의 공군을 궤멸시켰다. 이스라엘은 불가사의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것은 마치 2,700년 간 유보해왔던 축복이 한 순간에 내려진 것 같았다. 이제 그 누구도 유대인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빼앗을 수 없었다.




    역사는 언제나 가해자의 잔인함을 고발하지만 동시에 복수심에 불타는 피해자 어떻게 가해자로 변신하는지를 주목하기도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겪어온 폭력과 멸시의 고통을 이슬람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가자 지구를 폭격해 수 많은 민간인을 사살하고 폭탄 테러의 위협으로 부터 유대인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비인간적인 격리를 실행하고 있다. 끔찍한 게토의 추억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이 말이다.




    아브라함에서 시작한 예루살렘의 전기가 2000년대 이스라엘의 모습에 이르러 마무리 지어지면,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세계의 역사를 단숨에 들이킨 듯한 자신감이 충만해 온다. 

    이 책은 유대인들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예루살렘에 대한 책이다. 예루살렘에는 수 많은 종교와 민족과 국가가 존재해왔다. 저자는 그 모든 것들을 어느 일방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어쩌면 그의 의도가 예루살렘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것을 두고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의도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종교 때문에 폭탄 테러와 비인간적인 학살이 자행되는 곳이다. 아이러니한건 그 곳에 사는 사람 모두가 정의와 평화를 꿈꾼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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