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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1
| A5
ISBN-10 : 8993285713
ISBN-13 : 9788993285710
조선 왕 독살사건. 1 중고
저자 이덕일 | 출판사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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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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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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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대중 역사 저술가 이덕일, 3년 만에 팩션형 역사서로 귀환! 『조선 왕 독살사건』제1권.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를 낱낱이 파헤치는 책. 저자는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왕들의 독살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특히 잘 알려진 기존의 정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었던 야사 속에 나타난 사실들까지 총정리 하여 살펴본다.

이 시리즈는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등 독살설에 휩싸인 왕들의 최후 순간을 되짚어보며 그 속에 숨겨진 권력과 암투, 음모와 배신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독살 여부를 밝히는 데 멈추지 않고, 왕의 갑작스런 죽음이 초래한 정치적 파장까지 흥미진진하게 그려내었다.

개정증보판으로 1권과 2권으로 나눠져 출간된 이번 책은, 전편에 이어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사도세자의 후예들, 효명세자 등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의 독살 미스터리가 더한다. 더불어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져 왔던 연산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전편보다 더 흥미진진한 조선왕들에 관한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저자소개

저자 : 이덕일
저자 이덕일은 1961년 충남 아산 출생.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우리 역사》를 첫 책으로 본격적인 역사서를 쓰기 시작하여 《사도세자의 고백》,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학문적 깊이와 인간 중심의 사관을 바탕으로 역사 연구의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역사 서술에 주력, 2000년 이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역사에게 길을 묻다》, 《오국사기》,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등을 내놓았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1권]

서문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1장.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죽음 - 제5대 문종
종기와 어의 전순의, 그리고 수양대군

2장. 사대부들의 한으로 남은 왕 - 제6대 단종
계유정변과 상왕 복위 기도 사건

3장.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 - 제8대 예종
족질과 오래된 공신들

4장. 쿠데타와 폭군 만들기 - 제10대 연산군
학질과 소리 없는 죽음

5장. 대윤과 소윤, 그리고 사림파 사이에서 - 제12대 인종
이질 증세와 주다례

6장. 방계 승통의 콤플렉스와 임진왜란 속에서 - 제14대 선조
중풍과 찹쌀떡

7장. 조선의 꿈의 좌절 - 소현세자
학질과 의관 이형익

책 속으로

꿩 고기는 종기와 상극이었다. 꿩이나 닭, 오리 등은 껍질에 기름이 많아서 종기 환자에게는 절대 처방하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종기 환자에게 꿩을 처방하는 것을 독살의 증거로 삼기도 한다. 꿩 고기가 종기에 금기인 것은 반하半夏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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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고기는 종기와 상극이었다. 꿩이나 닭, 오리 등은 껍질에 기름이 많아서 종기 환자에게는 절대 처방하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종기 환자에게 꿩을 처방하는 것을 독살의 증거로 삼기도 한다. 꿩 고기가 종기에 금기인 것은 반하半夏 때문이기도 하다. 반하생半夏生의 준말인 반하는 천남생과의 다년초로서 그 괴근塊根(덩이뿌리)은 맵고 독성이 있으나 담痰, 해수咳嗽, 구토 따위를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한다. 특히 음력 4월경의 반하는 독성이 매우 강해서 사람도 반하 한 숟갈을 먹으면 죽을 정도라고 한의사들은 말한다. 문종이 종기로 누웠을 때가 음력 4월인데 전순의가 꿩 고기를 올렸다는 것이었다. 꿩 고기는 겨울철 대지가 얼었을 때에 올려야 하는데, 전순의가 이를 무시하고 문종에게 계속 섭취시킨 것은 고의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처방인 것이다.
-1권 1장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죽음 - 제5대 문종> 중에서

정희왕후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기대승奇大升의 문집인 《고봉집高峯集》에는 선조 2년(1569) 아침 경연에서 기대승이 선조에게 삼년상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중 예종 사망에 대한 정희왕후와 공신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 눈에 띈다.
“성종께서 어린 나이로 즉위하시고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당시 대신 중에는 세조조의 공신이 많았습니다. 예종의 소상小祥(사망 후 1년 뒤에 지내는 제사)이 겨우 지나자, 대비전에서 진풍정進ㆍ呈(대궐 잔치)을 거행하면서 대신들에게 대궐의 뜰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때 전교하기를 ‘취하도록 마시라’ 하였으므로 신하들이 종일토록 대취했는데, 한명회와 정인지 등은 일어나서 춤을 추기까지 하였답니다.”
-1권 3장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 - 제8대 예종> 중에서

연산군이 폐비 윤씨와 관련된 신하들은 죽이되 그 재산은 다른 신하들에게 주었다면 쫓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재산을 분배받은 신공신들은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빼앗은 재산을 혼자 차지함으로써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중종반정 당일까지 영의정, 판서, 승지로 근무하던 벼슬아치들이 반정 세력에게 붙은 핵심적 원인은 이 때문이다.
-1권 4장 <쿠데타와 폭군 만들기 - 제10대 연산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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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조선사 최고의 논쟁을 일으킨 새로운 대중 역사서, 《조선 왕 독살사건》 최종 완결판 1,2권 동시 출간!” 우리 시대 최고의 대중 역사 저술가 이덕일 3년 만에 팩션형 역사서로 귀환! 문화계에 팩션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해 《바람의 화원...

[출판사서평 더 보기]

“조선사 최고의 논쟁을 일으킨 새로운 대중 역사서,
《조선 왕 독살사건》 최종 완결판 1,2권 동시 출간!”

우리 시대 최고의 대중 역사 저술가 이덕일 3년 만에 팩션형 역사서로 귀환!

문화계에 팩션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해 《바람의 화원》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영화 <미인도>가 개봉되면서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이 바람은 올해 <쌍화점>과 <천추태후>의 열기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 상품들 중 팩션 상품이 가장 먼저 출시된 곳은 출판계였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정조 독살설을 배경으로 상상력이 가미된 팩션 소설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팩션적 경향은 역사서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중 대표 상품이 된 것은 대중 역사 저술가 이덕일의 《조선 왕 독살사건》이다. 조선 중기 이후 임금인 인종부터 고종까지 조선 왕 4명 중 1명이 독살설에 휩싸였다는 충격적 미스터리를 흡입력 있는 문체로 그려낸 이 책은 30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의 저자 이덕일은 대중적 역사서의 새 지평을 연 우리 시대의 거장이다.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을 살아온 역사가로서 주류, 즉 기존의 역사 해석에 의문을 던지며 동시대인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제공해 왔다. 저자는 2005년 그의 대표작 《조선 왕 독살사건》이 출간된 이후 3년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사도세자의 후예들, 효명세자 등 다수의 인물이 독살되었다는 결과를 도출해 내면서 이번에 최종 완결판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문종에서 고종까지의 왕조사를 독살사건이라는 프리즘으로 통찰하면서 충의의 명분 뒤에 가려진 살아 있는 조선사를 펼쳐 보인다. 이는 단순히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가능성들을 통해 오늘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풍부한 사료에 근거한 역사적 고증과 치밀한 추론은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숭실대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방송과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면서 더 많은 독자들을 미지의 역사로 이끌고 있으며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필두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의 여인열전》 등을 집필했다.

《조선 왕 독살사건》 최종 완결판, 전편과 무엇이 다른가?
1,2권으로 나눠진 이번 최종 완결판에서 저자 이덕일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사도세자의 후예들, 효명세자 등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의 독살 미스터리가 더해지는 것이다. 특히 세종의 뒤를 이을 현군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문종의 의문사를 파헤치면서 국왕 독살이 조선 500년사를 꿰뚫는 키워드임을 증명한다. 그간 문종의 죽음은 자연사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만약 수양대군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 사건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이후 단종의 죽음, 그리고 수양대군의 아들인 예종의 의문사까지 이어지면서 조선 전기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게 된다.
뿐만 아니라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져 왔던 연산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그동안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연산군이 악정을 일삼았고 그 악정에 분노한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저자는 연산군이 폐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처벌한 사대부들의 재산을 빼앗아 독차지한 데 있었다고 말한다. 만약 빼앗은 재물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반정은 없었을지 모르며 연산군을 폭군으로 묘사한 기록들은 사관들의 과장이자 쿠데타 세력의 연산군 폭군 만들기 일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인물인 효명세자에 관한 기록도 이채롭다.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횡행하던 조선 말기에 단 2년 동안의 대리청정을 통해 조정의 면모를 일신해 놓았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은 아버지 정조의 꿈을 이루지 못한 순조가 던진 역전의 승부수였다. 이로 인해 안동 김씨 일문의 차세대 주자였던 김유근이 귀양에 처해질 정도로 정국은 일변했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의 기운이 막 싹트던 무렵 효명세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고 이후 세자의 측근들은 제거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회생의 기운을 보이던 조선의 정치 체제가 생명을 다하고 말았던 것이다.
대중들은 조선을 충효의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독살이라는 프리즘으로 보면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진다. 조선 왕 3명 중 1명이 신하들에 의한 독살설에 휩싸이고 많은 왕손들이 죽음을 당한 나라가 바로 조선이라는 진실은 다시 한 번 역사학계의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역사적 상상력에 목마른 대중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은 분명 우리 역사에서 묻어두고 싶은 어두운 과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어둡고 밝음을 떠나,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모두 밝혀질 필요가 있다. 그 모든 면의 산물이 현재의 우리 자신의 모습이자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밝은 면만 보려는, 그래서 긍정적으로만 서술하려는 자세는 이해할 만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한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세상이 아름다워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부정의 극에서 최상의 긍정을 찾는 것이 역사이며, 극한까지 추구했을 때만 그 속살을 보여주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그 부정의 극한까지 다다르면 우리는 ‘반성反省’이란 단어를 만나게 된다. 역사는 사회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되돌아 생각하는 반성을 요구한다.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역사를 어디에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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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김정희 님 2014.01.14

    정의가 승리하는지, 승리한 것이 정의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의도 승리하고 나면 정의로 포장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기 마련이고 때로는 이런 기도가 성공하기도 한

  • 최형석 님 2013.06.12

    등을 시켜 위사 20여 인을 거느리고 자을산군의 본저本邸에 가서 맞아오려고 하였는데, 미처 계달하기 전에 자을산군이 이미 입궐하였다가 부름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예종실록》 1년 11월 28일② 위사를 보내어 자산군을 맞이하려고 했는데, 미처 아뢰기 전에 자산군이 이미 부름을 받고서 대궐 안에 들어왔다.-《성종실록》 즉위년 11월 28일궁 밖의 사람을 국왕으로 모실 경우 잠저로 많은 군사를 보내 삼엄한 위의威儀가 펼쳐진 가운데 옹위해 와야 했다. 그러나 이때 신숙주와 한명회·권감 등이 자을산군의 본저로 보내려 한 위사는 겨우 20여 인이었다. 그나마 자을산군은 위사의 호위를 기다리지 않고 제 발로 궁궐에 와 있었다. “이미 부름을 받고서 대궐 안에 들어왔다”는 《성종실록》의 기록은 자신이 국왕으로 결정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궁중 세력의 대표인 정희왕후와 공신 세력의 대표인 한명회 사이에 사전 합의된 계획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희왕후와 한명회가 한명회의 사위 자산군을 세우기로 합의한 후 다른 공신들을 선택적으로 끌어들여 예종이 죽는 날

회원리뷰

  • 조선왕 독살사건 | 54**bs | 2012.01.08 | 5점 만점에 4점 | 추천:1
    남편의 강력(?)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읽고 나니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고  이 덕일님의 다른 책을 골랐다. ...
    남편의 강력(?)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읽고 나니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고  이 덕일님의 다른 책을 골랐다.
     
    이 책은 조선의 왕들중에 독살 설이 있던 임금에 대해서 객관적 사료를 통해 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나는 이런 왕들에 대해서 타살일걸란 생각을 충분히 한다. 실록은 늘 실세의 사람들에 의해 씌어졌고 때론
    고쳐(?) 지기도 했기 때문에 물증이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개연성 있는 설득력으로 독자를 안내 한다.
     
    1권은 문종에서 소현세자(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  그리고
    2권에선 효종에서 고종(효종, 현종, 경종, 정조, 효명세자, 고종) 까지의 독살설이 있는 왕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나간 역사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지만 , 그 만약이란 상황으로 뒤엎을 수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 누가 왕을 죽였는가? | ks**n87 | 2009.11.0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누가 왕을 죽였는가???법률용어중에 미필적고의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왕을 죽인것이다.왕을 죽이고도 안죽인척 하...
     

    누가 왕을 죽였는가???

    법률용어중에 미필적고의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왕을 죽인것이다.
    왕을 죽이고도 안죽인척 하는 이들, 뻔히 왕을 죽인지 알면서도 외면하는 이들, 역사에 그런적은 없다는 가르치는 이들, 그말을 사실로만 받아들이고 잊어버린 이들. 바로 이들 모두 우리가 왕을 죽인것이다. 아니 역사를 죽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말안듣는 이단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님의 <조선왕 독살사건>은 그동안 항간에 떠돌던 야담수준이라고 일축했던 조선왕들의 독살설혐의에 대해서 많은 점을 시사하는 책이다. 특히 저자의 그동안 저술행위으로 보아선 이들 정통학자들에겐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저술중에 하나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여타의 역사적 사초에 의거하여 어느 왕이 어떻게해서 독살설의 가능성이나 개연성 있었고 그래서 그동안 야사나 야담수준의 내용을 좀더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하면는 오산일 것이다. 그동안 저자의 다른 저작에서 일관되게 피력하고 있는 사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역시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암시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 독살사건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얼마전 정조대왕의 어찰이 새로이 발견되면서 이 나라의 강단학계는 또다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그네들의 주장은 바로 발견된 정조어찰이 정조독살설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증거이고 정조독살설은 산간시골에서 떠돌던 야담이었다고 일축했다. 정조독살설 부정함으로서 재야학계의 연구자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한바탕의 해프닝을 결론지어 졌지만 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해방된지 60년인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식민사관에 대한 그 뿌리가 대단함을 보여 주는 사례일 뿐이라고 본다. 

    저자의 의도는 바로 이러한 사관에 대한 부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중기부터 내려온 노론적인 입장에서의 역사관과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식민사관이 만나면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금까지 가져온 것이다. 이런 정통사관에서 보면 당연히 조선시대에 국왕의 독살설은 부정된다. 아니 있을 수도 없고 있었도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관을 우리는 그대로 강요당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번 <조선왕 독살사건>의 완결판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그런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강요하게 하는 그 이면을 엿볼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조선시대 국왕들의 독살의혹을 뛰어넘어 우리 한국사 전반에 걸쳐 있는 큰 숙제인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조선왕 독살사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은 왕을 죽였는가???

    유독 군왕의 독살설이 많은 나라가 조선이다. 조선왕조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물게 500여년을 넘게 장수한 왕조이다. 역대 군왕만 태조를 시작으로 27명이 제위에 올랐던 국가였다. 공식적인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거의 과반수에 가까운 군왕과 차기 대권주자가 독사설에 휘말려 있는 왕조 또한 세계사를 통틀어 조선왕조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과반수에 가까운 독살설 음모속에서도 500여년이라는 기간을 유지한 왕조 또한 눈을 씯고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러면에서 조선왕조는 대단히 아이러니한 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정권교체의 불안정속에서도 긴 세월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라는 의구심이 자연히 든다. 바로 이점이 군왕의 독살설과 많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선이라는 국가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여말선초시대에 부패한 왕조에 대한 반동으로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뭉친 신진사대부들과 이성계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 둘은 권력창출을 위해서 이와 잇몸 같은 존재였고 상호간에 확실한 대의명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출발한 조선이라는 국가는 시작부터 왕권과 신권에 대한 상호간에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은 왕자의 난을 계기로 하여 태종의 왕권이 정도전의 신권에 판정승하게 되지만 태종의 뒤를 이은 군주에게 이러한 일련의 왕권강화조치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조선초기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등의 독살설 의혹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가장큰 시각차이는 다름 아닌 사대부는 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사대부중의 제1일자로 간주했고 국왕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동상이몽을 꿈꾸면서 정치적 여건이 안정적일 때는 큰 문제가 대두되지 않았으나 약간의 흔들림(이는 사대부에서 공신으로 둔갑한 훈구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 질 경우)이 있을때는 국왕을 배제한 사대부들의 강력한 단결력을 이끌어 낸 신조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택군론에 의해 자기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서게 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차기대권을 노리는 정치세력과의 결탁도 한 몫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의 멸망때 까지 계속된다. 차이점이라고는 신권의 중심세력이 공신, 훈구세력에서 배제되었던 또 다른 사대부들(사림들)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중심세력의 권력이동은 많은 점에서 조선초기의 양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된다. 사림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성리학의 기수들이었다. 성리학으로 철저히 정신무장한 그들의 대의명분은 그동안 훈구세력의 정치적 행보에 비해 많은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대의라는 큰 범주내에서 보다 확실하면서 적극적으로 왕권을 견제하였던 것이다. 

    훈구세력의 몰락이 가져다 준 정치판은 사림들의 분당과 당쟁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이제는 대놓고 왕권에 대한 위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수많은 국왕과 차기대권주자가 독살설 이나 반정등에 휘말리게 된다. 이들은 국왕보다 같은 당파 당수의 의견을 절대시하였다. 그런 당파성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절대군주까지 교체해 버릴 정도로 대범한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저자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보듯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군왕의 나라가 아니라 노론의 나라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그 어떠한 정책이나 인물(그가 비록 군왕이라고 하더라도)은 철저히 제거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면에 그들의 정신적 모태인 성리학의 왕도정치 실현이라는 대의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태조 이성계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지하에서 목놓아 후회를 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사대부들의 정치적인 힘이 클 수 밖에는 없는 태생적 구조를 가졌던 것이 국왕에 대한 많은 독살설 의혹을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독살설에 휘말린 국왕이후의 정치적인 행보를 보면 더욱더 독살설에 대한 혐의를 둘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효종의 경우 치세기간 동안 캐치플레이었던 북벌의 잔재를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행위나 정조의 개혁정치 역시 정조 사후의 반동정치에서 보듯이 국왕사후에 철저하게 선왕의 치세를 지우는 작업을 최우선시 했다는 점이 다름 아닌 그들의 행동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조선멸망의 근본원인이 무능한 몇몇의 군주에게 있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100%로 신뢰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앞서 보왔듯이 조선의 군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유일하게 태종 이나 숙종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국왕도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갈 수 가 없었다. 한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군주로 추앙받은 세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종도 신하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정책을 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정책실현에 길게는 18여년이 걸린적이 있을 정도?정적으로 보면 이러한 왕권과 신권의 줄달리기가 성립해서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단일왕조로 장수를 했던 비결중에 하나라고 하면 그나마 위안거리일 것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조선왕 독살사건>을 통해서 통찰해야 할 것은 다름아닌 각론적인 역사적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정조대왕의 어찰(편지)이 발견되면서 학계와 언론은 흥분의 도나기속에 빠졌다. 그동안 재야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정조 독살설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근거가 어찰을 통해서 확인되었다고 하면서 모처럼 재야에 대한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뒤로 저자의 주장에 의해 독살설이 더욱더 힘을 얻게 되므로서 지금은 아주 조용한 때를 보내고 있다. 

    바로 이점이 아주 큰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각론적인 관점에서 부터 시작된 왜곡된 사관이 결국 한국사라는 크나큰 정체성에 대한 위기로 대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에게는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국사교과서를 봐도 알 수 있고, 한나라의 역사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국립박물관에 가봐도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다름아닌 대한민국 사학계의 정설이다. 우리가 아무리 주장해도 통설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저자는 이러한 식민사관의 잘못된 점을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지적해 왔다.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에서 부터 작게는 여인열전에 이르기 까지 그동안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식민사관의 제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저작 역시 저자의 일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독도의 영유권문제나 중국의 동북공정을 대할때면 나라전체가 들썩거린다. 그러다가 시간만 지나면 언제그랬냐듯이 조용해진다. 그러는 동안 역사왜곡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왜곡은 다름아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사에 대해서 일가견 있다는 학자들이 자국사라고 인정하지 않는 역사를 과연 세계의 그 어떤 나라가 인정해 주겠는가? 

    조선왕 독살사건은 이러한 역사적 왜곡에 대한 빙산의 일부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군주에 대한 위해사건은 얼마든지 있었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 해석은 하늘과 땅차이만큼 거리감이 커지는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행간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바로 그 행간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그동안 가려왔다고 하면 이는 큰 문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와 같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올바른 눈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관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저서임에 틀림없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 왜 그들은 왕을 죽였는가? 조선왕 독살사건이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창공을 나는 새에게는 오른쪽날개와 왼쪽날개가 있다. 아주 단순한 논리이지만 어느 한쪽 날개로는 날수없는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역사를 재단하는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한쪽 날개에 의존한 역사비행을 했다면 이제는 정말 올바른 역사비행을 해야할 때이다.

  • 조선은 우리나라 역대 왕조국가 중에서 국왕의 힘이 가장 없던 나라였다. 그 이유가 뭘까? 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어야 할 국왕이 힘이 없어서 신하들에게 휘둘려 뜻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

    조선은 우리나라 역대 왕조국가 중에서 국왕의 힘이 가장 없던 나라였다. 그 이유가 뭘까? 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어야 할 국왕이 힘이 없어서 신하들에게 휘둘려 뜻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이성계명분도 없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웠기 때문이다. 대개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려면 왕이 폭정을 펼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등을 돌려야 하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하였던 이성계는 아무 잘못이 없던 군주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왕에 등극했다. 이것은 명백한 쿠데타지 결코 혁명이 아니다. 혁명이라고 불리려면 많은 백성들과 신하들이 이를 지지하고 따랐어야 했다. 그러나 실상 이성계가 나라를 세웠을 때 이를 추종하고 지지하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이 이성계를 비난했고 두문동에 들어가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던 사람들도 꽤 많이 있었다.

     

    이를 통해 보면 조선은 정통성도 없고 명분도 없는 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세운 나라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서 조선이란 나라가 세워졌으니 국왕에게 명분과 정통성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였을까 조선의 왕들은 신하였던 사대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을 펼치면 어김없이 독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신하들의 의지에 의해서 왕으로 추대되는 웃기는 광경을 빈번하게 연출했다. 만약 이성계가 사대부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까지 많은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면 과연 조선의 왕들이 힘이 없었을까? 만약 이성계가 충분한 명분을 내세워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면 신하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자신의 자손들이 갈리는 그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역시 명분이란 이래서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조선왕들 중에서 독살설에 휘말린 왕들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사관이 남긴 실록 혹은 일기 등을 바탕으로 조선왕의 독살설이 실은 단순히 설이 아니라 진실임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설명한 당시의 시대적 배경알력관계를 보면 저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를 비롯하여 태종 이방원 그리고 선조·영조장수를 한 것을 보더라도 유전자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헌데 적지 않은 국왕 혹은 세자들이 젊은 나이에 급서했다. 즉 유전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돌림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당시의 국왕 혹은 장차 국왕이 될 자들이 갑자기 죽은 것이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음모가 있지 않고서야 좋은 것만 먹고 보약을 달고 살았던 귀하신 분들이 갑자기 세상을 뜰 리가 있겠느냐 이 말이다. 급서한 국왕의 의료를 담당했던 자들의 이상행동과 공도 없던 자들이 새로운 국왕이 등극하자마자 갑자기 공신으로 책봉되었던 정황을 살펴보면 저자가 주장한 국왕 독살설이 충분히 일리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권으로 되어 있고 각각 7장씩 총 14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문종과 단종의 독살 혐의를 받고 있는 세조 ’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세조는 우리에게 수양대군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이었던 수양대군은 원래 왕 자격이 없는 신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문종에게 아들인 단종이 있었기 때문에 문종이 갑자기 죽더라도 수양대군에겐 왕위가 돌아올 수 없었다. 만약 조선이 제대로 된 명분으로 세워졌고 왕위가 맏이에서 맏이로 이어진 국가였다면 수양대군은 결코 꿈에도 왕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양대군은 태조인 이성계가 명분도 없고 백성의 지지도 없이 무력을 통한 쿠데타로 왕이 된 것과 태종 이방원골육상잔(왕자의 난)으로 순서를 무시하고 왕이 된 것을 잘 알았기에 왕이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아버지는 셋째인데도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첫째 형인 양녕대군을 제치고 왕이 되지 않았던가!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상들이 본보기로 잘 보여줬기에 수양대군은 아버지에 이어 나라를 잘 다스렸던 문종을 어의 전순의와 짜고 독살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정통성에 따라 단종이 왕이 되었을 때 태종 이방원처럼 힘으로 윽박질러 조카에게 양위를 받아 자신이 왕이 되고 후한을 없앤다는 이유로 어린 조카 단종을 죽여 버린 것이다. 이로써 조선은 비극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하된 자가 국왕을 독살시킨 것도 모자라 새로 등극한 왕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었으니 이 또한 태조나 태종처럼 명분 없는 선례를 남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양대군의 후손들이 신하들에게 독살당하거나 폐위당한 것은 인과응보다. 수양대군은 지하에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광해군과 소현세자의 독살 혐의를 받고 있는 인조’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인조는 세조와 마찬가지로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인물 중에 하나였던 왕이다. 능양군이었던 인조가 만약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최고의 자리에서 오랑캐로 여겼던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굴욕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광해군이 그대로 왕을 하면서 계속 중립외교정책을 펼쳤더라면 청나라가 쳐들어와 조선의 백성을 학살하는 정묘호란 따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선은 나라보다는 자신들의 영달만을 추구했던 사대부들인조가 연합하여 광해군을 왕의 자리에서 몰아내는 바람에 겪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 만다. 하지만 조선은 다시 기사회생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이유는 인조의 맏아들이었던 소현세자가 청에 인질로 있으면서 동아시아의 정세를 파악했고 조선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조선의 앞날이 밝을지를 잘 터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도 없었고 정통성도 없었던 인조가 자식에게 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소현세자를 독살시키는 바람에 조선이 극동아시아의 강대국이 될 수도 있었던 기회를 잃고 만다. 어차피 죽으면 자식에게 물려줄 자리인데도 명분도 없이 강제로 빼앗은 자리를 자식에게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장차 명군이 될 수도 있었던 자식을 인조는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난 이런 인조를 조선 시대 왕 중 최악의 왕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조도 수양대군과 마찬가지로 지하에게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길 바란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경종의 독살 혐의를 받고 있는 영조’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굶겨 죽인 것으로 유명한 왕이다. 연잉군이었던 영조는 이복형인 경종을 독살한 후 왕세제에서 왕으로 등극한다. 국왕이 죽으면 후사를 왕자가 이어야 마땅했지만 불행히도 경종은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죽었다. 조선의 상속법에 후사가 없으면 양자를 들여 뒤를 이어야 했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 때 형인 정종허수아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이 왕세제로 있다가 즉위한 선례가 있었기에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은 이에 근거하여 정통성을 무시한 채 이방원이 취한 방법을 따라 영조를 왕위에 앉힌 것이다.

     

    영조의 이복형이었던 경종은 아버지인 숙종의 뒤를 이어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권력은 신하들인 노론이 장악하고 있었고 국왕인 자신 경종에겐 힘이 없었다. ‘신축환국’을 일으킨 만큼 경종은 과단성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노론과 당색이 달랐던 이유로 노론과 영조에 의해 독살당하고 만다. 만약 경종이 당색이 다른 대비가 보낸 게장과 생감을 먹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세제였던 연잉군 즉 영조가 올린 인삼과 부자를 먹지 않았더라면 36세인 한창인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뜨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욕에 눈이 먼 사대부들과 배다른 동생 영조에 의해 경종은 급서하고 만다.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당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조가 경종 독살설에 맞물려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명분과 정통성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영조도 형과 아들을 죽인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길 촉구한다.

     

    나라가 세워짐에 있어서 명분과 정통성은 상당히 중요하다. 명분 없이 장악한 권력은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다. 쿠데타는 아무리 잘 포장을 해도 쿠데타일 뿐이다. 이성계가 명분이 있는 상태에서 조선을 세웠더라면, 이방원이 형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수양대군이 형인 문종과 조카인 단종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정통성에 입각해서 더 번창할 수 있었을지 모르고 극동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과거를 잘 반성해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한국민이라면 모두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 조선 제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가 신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密札)가 무더기로 공개되어 정조의 독살설에 대...

    조선 제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가 신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密札)가 무더기로 공개되어 정조의 독살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정조를 독살한 것으로 추측되어온 노론벽파 심환지와 상당 기간 많은 양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독살의 가능성을 낮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정조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바와 같이 개혁군주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가였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대파의 영수와 국가 대사에 대한 비밀의견을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신하들에 대해 폄하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최근 이덕일이 쓴 <조선 왕 독살사건 1>(다산초당, 2009년)을 읽은 나로서는 많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덕일은 이 책에서 조선 왕들 중에 독살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왕들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왕을 둘러싼 움직임, 당시의 세력관계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뜻하지 않게 죽어간 왕들이 사실은 독살당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는 조선의 왕들이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어린 나이에 비명횡사했다고만 생각해 왔었다. 그리고 독살이 추측되는 왕들의 수가 극히 일부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조선 왕들의 죽음이 단순한 신체상의 이유만은 아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던 중에 정조의 편지가 대거 공개된 것이다. 정조의 독살에 관한 부분은 <조선 왕 독살사건> 2권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그 내용은 이 책에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일부 왕들은 명백한 독살임을 알 수가 있다. 다음으로 왕이 된 이들의 면모와 당시의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특히 단종과 같은 이의 죽음은 신하들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었다. 당시에도 죽음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육신, 생육신이란 말도 생겨났다. 국왕을 중심으로 통치되던 조선에서 왕을 독살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권력’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수긍할 수도 있는 문제다. 당파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조선의 세력 관계를 추적해보는 것도 조선 왕 독살을 이해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된다. 적자를 중심으로 왕위가 계승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해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복잡한 일이 되고 말았다.


    조선 왕 독살에 대한 일련의 기술은 단지 왕이 독살당했다는 사실로만 한정해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정조의 친필 편지 등장으로 정조 독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왜 독살이라 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왕 독살’이란 키워드로 다시 생각해보는 조선왕조는 권력투쟁이 끊임없이 지속된 시대였음을, 소모적인 당파 싸움이 만연했던 때였음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하겠다.


    by 꽃다지, 2009년 2월 15일

  • 이 책은  "누가 왕을 죽였는가?" http://blog.naver.com/shinsson/90006953777&nb...

    이 책은  "누가 왕을 죽였는가?" http://blog.naver.com/shinsson/90006953777 와 그 개정판 "조선왕 독살 사건"의 또 다른 개정증보판이다.

    "조선 왕 독살사건"은 초판 90쇄까지 나갔으니 요즘 보기드문 베스트셀러 역사책인 셈이다.

    많이 팔렸다는 얘기는 그만큼 대중적 재미가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한권으로 출판되었던 전편을 보강하여 두권으로 늘려 나왔으니 좀 더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 책은 독살이냐 아니냐라는 과학적 死因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정치적 상황의 속에서 왕의 죽임이 역사에 어떠한 변곡점을 형성했는가를 작가의 시각으로 바로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추리물이 아니라 역사서인것이다.

     

    역사란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 기록이다.

    우리에게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귀중한 기록문화유산이 있어 그 시대를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 방대한 기록들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인문학의 샘물이 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샘물에 자신의 성공에 대한 절반의 공로를 돌릴 수 있다.

    하지만 正史인 조선왕조실록은 어쩔수 없이 정권의 승리자의 입장에서 쓰여지고 미화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저자도 서문에서 "정의가 승리하는지, 승리한 것이 정의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그래서 이면의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P4)"라고 말하고 있다. 

    정사의 한계는 사적 문집 등 야사로 매꿔간다. 실록 행간을 읽어내고 야사로 그것을  유추해나간다.

     

    개정증보판이 이전의 책보다 진일보했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 책이 개별적 왕의 죽음에 대한 파편적인 의심과 미스터리를 유추하고 있다면, 개정증보판에서는 문종-단종-예종-연산군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한 꿰미로 엮고 있다.

    왕과 신하의 권력관계 속에 절대 왕권도 절대 신권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는 비극의 토대가 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조선왕 독살사건"이라는 이덕일의 책에서 가장 큰 주제이다.  

    이덕일의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라는 지나간 기록 속에서 현재를 사는 지혜를 구해볼 수 있다.

    얼마전 용산 철거민 농성 진압과정에서 6명의 인명이 죽어나가는 참사가 벌어졌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고 역사에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살펴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조선500년사의 최고 폭군이라 일컬어지는 연산군 시대의 철거현장 기록에서 현재의 우리 모습과 유사한 상황을 비춰 볼 수 있다.

    조선에서는 궁궐 담장 아래 100척 이내에는 집을 짓지 못하는 것이 국법이었다. 하지만 불법주택들이 들어서고 심지어는 궁궐을 내려다 보는 곳에도 불법주택들이 자리를 잡으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요즘으로 얘기하면 청와대 옆에 집을 짓고 청와대를 내려다 보고 있는 셈이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과연 연산군이 폭군이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연산군은 불법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철거시킨 것이 아니라 당상관을 보내 먼저 집주인을 설득시키게 하고, 집에 헐리는 사람들에게 당시 화폐이던 무명을 보상금으로 나누어주게 한다. 또한 쫓겨난 사람에게 대체 토지와 임시 거주지를 마련해 준다.

    이것이 왕조사회에서의 철거정책이다. 민주사회를 살아가면서 어째해야할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역사에는 假定이 없다. 과거의 사실이 역사인 것이고 다만 우리는 해석하고 논평할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주관적 행위 속에서도 가정이 없는 역사에 아쉬움을 갖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소현세자의 아쉬움이 그러하다. 우리는 세계사적 흐름에 당당히 나아갈 기회를 상실한 중요한 포인트에서 어찌 아쉬움이 없으랴.

    소현세자가 삼전도의 치욕을 가슴에 안고 볼모로 심양땅을 살아갔음에도 부정적 복수심이 아니라 긍정적 현실감으로 자신을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인조 이후 우리 역사에 또다른 변곡점을 형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가정과 아쉬움을 갖는다.

    그러한 소현세자의 긍정적 현실감은 세계로 열린 시각과 경험에 기인한다고 본다. 아담 샬을 만나고 서양의 문물을 접함으로써 성리학의 조선이 얼마나 작은 세상에 있었는가를 깨우쳤을 것이다. 쓰러져하는 明을 붙잡고는 발전이 없을 것인데 그를 고집하는 조선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 그가 굴욕의 세월을 이기고 돌아와 두달만에 싸늘한 시신에 되었으니 어찌 의문이 생기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정리하지 못한 며칠사이에 정조의 비밀편지들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편지들을 통해 정조의 성격과 그동안 제기되었던 정조 독살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덧붙여졌다.

    정조의 독살설은 "조선 왕 독설사건 2"에서 이야기 되고 있으니 이 책 "조선왕 독살 사건1" 에 이어 읽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곁가지..

    책이 참 이쁘게 디자인되었다.

    읽고 싶은 만이 쏙 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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