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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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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8954639631
ISBN-13 : 9788954639637
피에로들의 집 [양장] 중고
저자 윤대녕 |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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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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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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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의미와 어감이 휘발되어버린 ‘가족’이라는 단어를 새로운 의미와 감각으로 느끼는 시간!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이후 11년 만에 펴내는 윤대녕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피에로들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작품이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는 가족의 해체를 비롯,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이러한 도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해왔던 저자는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실패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김명우는 ‘마마’의 제안으로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입주한다. 이곳에는 수난의 현대사를 외롭게 통과해온 마마와 그녀의 조카로 생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위태롭게 살아가는 김현주, 남들보다 조금 더 안정적이고 조금 더 기득권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그동안 경쟁적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살아왔음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진작가 박윤정,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충격적인 죽음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휴학생 윤태와 고등학생 정민이 입주해 있다.

사랑했던 여자 난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후, 관계를 끝낼 수도 그렇다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김명우는 그녀의 자취를 좇는 한편, 일층에 위치한 북카페 ‘아몬드나무’를 운영하며 무너져버린 삶의 리듬을 차츰 되찾아간다. 또한 그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모인 존재들의 상처를 돌보고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김명우는 ‘줄리’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난희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저자소개

저자 : 윤대녕
저자 윤대녕은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단국대 불문과 졸업.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누가 걸어간다』 『제비를 기르다』 『대설주의보』 『도자기 박물관』,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추억의 아주 먼 곳』 『달의 지평선』 『미란』 『눈의 여행자』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여행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음식기행문 『어머니의 수저』,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목차

피에로들의 집 _007

작가의 말 _247

책 속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은 오히려 그 기억을 잊을 수 있지. 세월이 흐르면서 말이야. 하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법이지.(58쪽) “일정한 주기의 반복이 가져다주는 삶의 에너지라는 게 존재하는군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순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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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받은 사람은 오히려 그 기억을 잊을 수 있지. 세월이 흐르면서 말이야. 하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법이지.(58쪽)

“일정한 주기의 반복이 가져다주는 삶의 에너지라는 게 존재하는군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순환이라고 봐야겠죠. 모든 존재는 순환하면서 나이를 먹고 성장을 거듭하니까요.”(92쪽)

“지금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들 모두가 실은 난민이나 고아 같은 존재들이니까요. 어쩌면 당신도 난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마마로 살아가는 거겠죠. 남달리 외롭게 살아온 분이거든요.”(93쪽)

“자신을 건사하지 못하는 인간은 남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야. 심지어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그 때문에 비난을 받는 순간에도 말이야.”(135쪽)

아무리 선의라 할지라도 상대와의 수평적 합의와 동의 없이 행해지는 일들은 상대를 한갓 객체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마마는 모르고 있는 듯했다.(136쪽)

“제가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우선 조건은 권위나 능력을 떠나 책임의식의 존재 유무라고 봐요. 그게 참다운 의미의 기득권일 테고요.”(144쪽)

“윤정씨나 나나 타인과의 유대감을 느낀 지가 오래된 것 같습니다. 혼자라는 건 결국 허상일 뿐이겠죠? 요즘 들어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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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는 세상의 난민 같은 존재들 외롭게 헤매는 마음 위로 첫눈처럼 내리는 ‘가족’이라는 말 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로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탐색해온 작가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이 출간되었다.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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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난민 같은 존재들
외롭게 헤매는 마음 위로 첫눈처럼 내리는 ‘가족’이라는 말


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로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탐색해온 작가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이 출간되었다.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고요히 찾아드는 희망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2005) 이후 꼭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당시 제목은 ‘피에로들의 밤’이었다)되었던 이 작품은 본연의 얼굴을 잃은 채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바로 그 ‘피에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듯, 윤대녕은 수년 전부터 ‘도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해왔다. 가족의 해체를 비롯,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을 주시해왔던 터이다. 결국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됨으로써 심각하게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이들을 통해 작가가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물이 바로 『피에로들의 집』이다. 인물들이 입은 상처가 너무도 깊어서 도저히 상대를 향해 열릴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슬며시 그 빗장을 풀 때쯤, 우리는 이 황폐한 세계 안에서 고유의 의미와 어감이 휘발되어버린 “가족”이라는 말이 어느덧 새로운 의미와 감각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절대적인 타인이 존재하지 않듯이, 절대적인 자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아.
다만 관계라는 게 존재할 뿐이지.”


실패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김명우가 ‘마마’의 제안으로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입주하면서 피에로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곳에는 수난의 현대사를 외롭게 통과해온 마마(‘대비마마’의 줄임말로 설명되지만, 상처 입은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거처 안으로 불러들인 ‘어머니’로서의 마마이기도 하다)와 그녀의 조카로 생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남의 집 정원에 심어놓은 나무”처럼 위태롭게 살아가는 김현주, “남들보다 조금 더 안정적이고 조금 더 기득권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그동안 경쟁적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살아왔”음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진작가 박윤정,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충격적인 죽음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휴학생 윤태와 고등학생 정민이 입주해 있다.
사랑했던 여자 난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후, 관계를 끝낼 수도 그렇다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김명우는 그녀의 자취를 좇는 한편, 일층에 위치한 북카페 ‘아몬드나무’를 운영하며 무너져버린 삶의 리듬을 차츰 되찾아간다. 또한 그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모인 존재들의 상처를 돌보고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문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돕는 방법이 달라 마마와 대립하기도 하고, 침몰중인 배에 탑승한 채 질식해가는 악몽을 꾼다는 윤태의 고백을 들으며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의식을 깨닫기도 한다.
이렇듯 그는 점차 “실제적인 감각으로 순수한 타인에 대한 감정을 회복”하게 된다. 언제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연결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유대감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함께 그는 ‘줄리’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난희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저녁이 되면 다들 돌아올 겁니다.”

혈연이나 제도가 아닌 오로지 상처의 유대만으로 세워진 이 집에서 유독 눈여겨보게 되는 행위는 바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밖에서 헤매던 그들은 어찌되었건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고, 긴 여행을 떠나면서 곧 돌아오겠노라 약속하며, 오랫동안 집을 비우려는 이에게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까닭에 어쩌면, 『피에로들의 집』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 바로 ‘아몬드나무 하우스’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유대감을 잃어버린 채 홀로 남았다고 여기는 이들을 한데 모으고 품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이며 제 호흡을 찾도록 돕는 바흐의 [평균율]이 흐르고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의미가 담긴 고흐의 [꽃 핀 아몬드나무]가 걸린 일층의 북카페. 마마, 현주, 윤정, 윤태, 정민, 명우 여섯 명이 모두 둘러앉아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누는 긴 목제식탁이 놓인 이층 마마의 집. 각자의 방이 위치한 삼층과 사층, 그리고 유리로 만든 온실을 갖춘 옥상까지.
윤대녕이 11년 만에 내놓는 이번 작품에는 여전히 작가 특유의 배경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빛나고 있다.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내부와 이를 둘러싼 외부 성북동의 모습이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져가는 지금 여기의 풍경을 영원히 남기려는 의지처럼. 이와 함께 유독 이번 작품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작가의 모습이다. “소설의 상상력으로는 미처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재난들을 지켜보면서 그때마다 무력한 화자(話者)로 전락한 느낌이 들어 매번 진저리를 쳤다”(‘작가의 말’)는 고백처럼,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로들의 집』 안에 사회적 재난, 그 참혹한 광경의 조각과 동시대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새겨넣었다. “삶은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존속되게 마련이므로 다시 또 쓸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감”을 말하는 윤대녕의 이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어떤 집에는 상처받은 존재들이 찾아와 거주한다. 거침없는 수완가로 전 세대의 역사를 지나온 마마의 지붕 아래 모인 그들은, 비틀린 가족사라든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갖고 있다. 상처받은 자들의 이 임시 거주지에 전직 연극배우이자 실패한 극작가 김명우가 입주한다. 자신의 삶도 책임지지 못하던 피폐한 김명우가 마마와 마마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들여다보고 그들의 생애에 위로의 입김을 불어넣는 과정은 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집이란 ‘삶의 생태를 복원’하면서 ‘타인에 대한 감정을 회복’해가는 공간이라는 의미, 혹은 세대와 세대 사이의 보이지 않는 빚을 인정하고 갚아가는 공동체라는 의미……
오늘 우리는 거짓 웃음과 시장의 언어와 얄팍한 재주가 담긴 짐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윤대녕의 ‘피에로들의 집’에 머물러도 좋겠다. 그 집에는 자신과 타자를 하나의 선 위에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집에 한쪽 발을 들여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밤마다 ‘익사당하는’ 악몽에 시달려야 하는 난파당한 시대에 우리는 함께 탑승해 있으므로…… _조해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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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왜 나만 이리도 힘든걸까. 무어가 됐건 하는 족족 꼬인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내 눈엔 눈물이 고였다. 태생적으로 생존을 위한 능...
    왜 나만 이리도 힘든걸까. 무어가 됐건 하는 족족 꼬인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내 눈엔 눈물이 고였다. 태생적으로 생존을 위한 능력이 결핍되기라도 한 것인지, 남들 다 하는 것들조차도 난 겨우겨우 해내거나 아니면 시도조차 못하고 있었다. 불만이 마음을 뚫고 얼굴로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 사람들이 말했다. 너만 힘든 거 아냐. 겉으로는 번지르르해 보이는 사람들도 실상 속은 곪고 있다는 걸 그때쯤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물론 여전히 나 아닌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긴 하지만.

    어디에도 뿌리내릴 여유를 전혀 지니지 못한 사람들. 현대인은 또다른 의미에서 유목민과도 같다. 여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만은 사실임에도 모두가 불안에 떤다. 실체가 없는 것 같지만 이따금씩 끔찍한 사건이 되어 부메랑마냥 우리 삶에 파장을 일으킨다.
    극단적인 형태 같기도 하나 한편으론 주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도 있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을 띠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깊은 상처 역시도 우리 자신의 것 같아 보였다. 어쩜 저자는 이토록 문제적 인간들을 한 자리에 모을 생각을 했던건지. 그래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들이 거주하는 집에 '아몬드나무 하우스'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아몬드나무라니. 내겐 너무도 생소해서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시도했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아몬드나무의 특색에 대해선 나오지 않았다. 대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등장했다. 고흐가 아직 광기에 사로잡히기 전 작품인건지 배경으로 쓰인 색은 은은했으며, 꽃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는 듯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알고 있는 고흐의 불운했던 삶에 대해서만큼은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많고 많은 나무를 놔두고 아몬드나무를 택한 저자의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다. 그랬음에도 내 눈에 작가는 술에 찌들어 거의 폐인이 된 상태에서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옮겨온 주인공에게 고흐의 인생과도 같은 강렬한 경험을 선사하려 작정이라도 한듯해 보였다. 뜬금없이 그를 찾아온 노파의 존재가 우선 으스스했으며, 그의 방이 된 장소에 살았던 이의 기구한 삶 또한 그러했다. 월례회 마냥 둘러 앉은 같은 집 거주자들은 하나같이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은 상처를 끌어안고 있었다. 제 상처가 너무 깊으면 남의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당연히 편치 않았다.

    책 제목을 접하자마자 김완선의 노래가 떠올랐다. 바로 '피에로'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광대 분장을 한 이의 얼굴에선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모인 이들은 모두가 피에로였다. 그들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서로에게 건드려선 안 되는 상처가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을 따름이었다.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불안한 평온. 저자는 주인공 격인 명우라는 인물에게 이를 허무는 중책을 맡겼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하나의 불행에 독자들을 마냥 붙잡아 두지 않는다. 처음엔 가장 커 보이던 명우의 아픔이 마음 한 구석으로 밀려난다. 빈 자리가 생겨나는가 싶겠지만 이˰를 앞둔 스물두 살의 청년과 작품 활동을 위해 이따금 아몬드나무 하우스를 비우는 사진작가,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의 고등학생, 자신이 누군지 알기 위해 노력 중인 김현주 등의 상처가 연달아 그 자리를 메운다. 게다가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존재 '마마'의 상처까지. 이 즈음되면 저자가 자비와는 담을 쌓은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선과 악은 제 허물을 벗는다. 등장인물들에게 상처를 준 존재들이 마냥 악하지만은 않고, 역으로 그들 또한 세상이 강요한 운명의 희생양임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마다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악랄하고 포독함으로 치장한 말 이면에는 여리디여린 마음이 숨어 있었다. 실상 모든것은 제 상처를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속하지 않았다.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그곳을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이미 난 상처를 굳이 보듬으려 애쓴 건 아니었고 일부러 따스한 말을 내뱉지도 않았다. 어쩌면 순간순간 서로를 아프게 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정착은 아파도 끌어안는 게 사랑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외따로 떨어진 별개의 존재였던 인물들에게 저자가 선사한 건 성숙이었다. 

    세상 누구도 완벽하게 외롭지는 않다. 짙은 분장 속에 제 진면모를 감추고 있는 피에로에게도 지친 몸을 뉘일 집이 있고 마음을 나눌 지인들이 있는 곳이 우리 세상이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다. 모두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들의 연속뿐일지라도, 그래도 아몬드나무 하우스마냥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믿고 싶다.
  • 피에로들의 집 | ia**2 | 2016.06.1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문학동네    내게는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는 평범한 느낌의 작가인 윤대...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문학동네

     

     내게는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는 평범한 느낌의 작가인 윤대녕의 신간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난 사랑방 독서모임에서 이번에도 비교적 신간을 선택했다. 다행히 시립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한 상태의 책을 겨우 찾을 수 있어서 대출해서 읽었다. 나의 짧은 소감은 '비현실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따져서 어떤 점이 그렇고, 왜 비현실적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순간적으로 딱! 떠오른 생각이 비현실적이라는 단어였다. 마마도 그렇고 김명우라는 화자도 그렇고, 김난희나 박윤정, 김현주, 정민과 윤택 같은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 한 곳에 모여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피에로 피에로 란 팬터마임·서커스·희가극에 등장하는 익살꾼.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인 남자명 피에르(Pierre)의 애칭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삐에로가 맞는 철자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는 왜 책 제목으로 피에로를 떠올리고 정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로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탐색해온 작가 윤대녕의 장편소설로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고요히 찾아드는 희망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이후에 11년 만에 출간한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본연의 얼굴을 잃은 채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바로 그 '피에로'들에 관한 이야기로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2015년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당시 제목은 '피에로들의 밤'이었다)되었던 작품이 장편소설로 나왔다.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듯이 수년 전부터 '도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해온 작가 윤대녕은 가족의 해체를 비롯,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을 주시해왔던 터이다. 이들과는 다르게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나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온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감사해야 할 듯 싶다. 소설 속에서는 결국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됨으로써 심각하게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이들을 통해 작가가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 『피에로들의 집』이라고 할 것이다. 작가는 참으로 특별난 사람들인 것 같다. 생각한 것, 고민한 것, 그리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이렇게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될테니까 말이다.
    인물들이 입은 상처가 너무도 깊어서 도저히 상대를 향해 열릴 것 같지 않던 마음이 슬며시 그 빗장을 풀 때쯤, 우리는 이 황폐한 세계 안에서 고유의 의미와 어감이 휘발되어버린 '가족'이라는 말이 어느덧 새로운 의미와 감각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윤대녕의 피에로들과 만나면서 나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을, 그리고 내 곁에 같이 머물고 있는 가족이 있다는 소소한 행복을 감사하는 주말이 된다.

    2016.6.11.(토)  두뽀사리~

  • 삶의 생태를 복원하다 | ch**yong | 2016.05.1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2016년 4월 1일, 윤대녕 작가를 만났다. 젊은 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으로 가슴을 뛰게 한 작가를 한 번...
     

    2016년 4월 1일, 윤대녕 작가를 만났다. 젊은 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으로 가슴을 뛰게 한 작가를 한 번만이라도 꼭 만나고 싶었다. 새 책을 읽지 않고 작가를 만나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었기에 별 부담 없이 갔다. 최근에도 소설집을 한 권 읽지 않았던가. 작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문장처럼 절제의 미학이 묻어났다. 그런데 독자 한 명이 이전 작품들과 새 장편소설이 다르다는 지적을 했다. 예전의 빛나는 문장이 보기 힘들다는 불만이었다. 작가는 부정하지 않았다. 시적 문장은 당신의 큰 장점이지만 언젠가부터 이전과 다른 작품을 쓰려고 하는 당신을 봤다고 한다. 그 마음을 따르고 있다고 했다. 자기 자신에 충실한 작가였다. 


    그즈음의 내 인생이란 비 내리는 아침에 난데없이 유실물 처리장으로 끌려간다 해도 달리 불평이나 저항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8쪽)


    첫 문장이다. 서른여섯 살의 전직 배우이자 극작가인 주인공 ‘나’(김명우)가 무력하고 피폐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누드 연극’으로 위험한 도박을 한 뒤 연극계에서 쫓겨나고, 사랑했던 여자 난희마저 실종된 상황이다. 그러한 그에게 ‘마마’가 다가온다. 마마는 현대사의 본류를 험하게 통과해 왔지만 상처 입은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거처 안으로 불러들이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난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4층으로 된 연립주책 ‘아문드나무 하우스’에서 거둬 돌보고 있다. 1층에는 북 카페가 있는데 방치되어 있기에 그것을 맡아달라고 제안한다. 김명우는 부담스러운 제안을 고민하지만 마침내 받아들인다. 겨울에 ‘아몬드나무’ 운영자가 된 주인공은 그곳 사람들을 겪으며 삶의 생태를 복원한다는 게 기본 얼거리다.


    4층짜리 연립주택 2층에는 마마와 김현주가 살고 있다. 김현주는 방송 작가로서 바쁘게 살고 있지만 생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위태롭다. 3층에는 사랑하는 여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휴학생 윤태와 고등학생 정민이 살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삶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박윤정이 살고 있다. 주인공이 입주한 4층이다. 그이는 남들보다 조금 더 안정적이고 조금 더 기득권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그동안 경쟁적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살아왔음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다. 뼈아픈 이혼을 경험한 뒤 국어교사에서 사진작가가 되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어요. 보름달이 떠 있는 호주의 해변이 나오더군요. 수만의 바닷게들이 숲에서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 바다로 몰려가고 있었어요. 지나가는 트럭이나 승용차에 무더기로 깔려 죽으면서도 말예요.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단순한 의문에 사로잡혔죠. 왜 저들은 죽기 살기로 길을 건너 바다로 향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내 알게 됐죠. 그들이 번식을 위해 떼지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예요. 그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용암처럼 뜨거워지더군요. 그때 생각했어요. 지금부터라도 내 삶의 생태를 복원하겠다고 말예요. 내게 부여된 고유한 삶 말예요. 동시에 내가 자연의 일부이고 고귀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물론 그후로도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웬만큼 내 몫의 삶을 회복한 것 같아요.” (91 - 92쪽)


    ‘나’는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작가의 말」)과 ‘유사 가족’을 경험한 뒤 자신의 삶을 회복해 간다. 유사 가족의 중심에는 ‘마마’가 있지만 문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방법에서는 대립하기도 한다. 침몰중인 배에 탑승한 채 질식해가는 악몽을 꾼다는 윤태의 고백을 들으면서는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했던 여자 난희가 ‘피에로’처럼 살아가던 영화배우에서 벗어나고자 프랑스로 떠나 ‘줄리’로 살아간다는 것도 알게 된다. 김현주의 생부가 마마의 전남편이라는 것도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된다. 유사 가족의 식구들을 겪으며 마침내 혼자 여행을 떠나는데 공교롭게도 그 길은 박윤정이 앞서 거쳐 간 길이다. 그리하여 여행이 끝나갈 무렵 박윤정에게 전화를 건다. 마지막 단락이다.


    밖엔 가을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늘로 검은 구름이 휘휘 몰려가면서 그 틈을 비집고 달이 떠올랐다. 나는 밖으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방파제 쪽으로 걸어갔다. 먼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등대의 불빛을 보고 항구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245쪽)

  • 피에로들의 집 | ap**t | 2016.04.25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이 연못으로 밤새 커다란 바람이 불어갔어요. 아침이 되자 겨우 잠잠해졌답니다. 바람이 지금 어느 쪽으로 몰려가...

     

    -이 연못으로 밤새 커다란 바람이 불어갔어요. 아침이 되자 겨우 잠잠해졌답니다. 바람이 지금 어느 쪽으로 몰려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140p

     

    늦은 밤,

    평소 알고는 지냈지만 고백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남자에게 고백 받은 여자가 있다. 

    외국 여행 중이었던 여자는 다음 날 아침 그 고백남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낸다.

    밤새 바람이 불었던 연못 사진을.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있다가 이 부분을 읽고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여자보단 남자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된 상태였다. 소주도 안 마셨는데 ‘캬아~’소리가 났다.

    두근두근했다.

    봄밤이었다.

     

    이렇듯, 단 두 페이지로 내 마음을 왈랑왈랑하게 만든 윤대녕 작가님의 <피에로들의 집>을 읽으며

    그의 이전 작품활동 목록을 봤다.

    그 많은 것 중에 읽어본 작품이 없었다. 왠지 한 권쯤은 읽지 않았을까 싶게 낯익은 이름이었는데 기억에 없다.

    그러니까 <피에로들의 집>는 내가 처음 읽은 윤대녕 작가의 작품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빨책에서 다룬다고 하기에,
    요즘 소설 읽는 게 재밌기도 해서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우리나라 소설 몇 권을 담았다.

    사은품으로 종이로 만든 탁상 시계와 가방이 왔다.

     

    IMG_7270.jpg


    그리고 제일 먼저 이 책을 읽었다. 거의 하룻밤만에 다 읽었다.

    이틀 동안 6건의 인터뷰가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시내 곳곳을 다니느라 몸도 정신도 피곤한 상태였는데 읽다보니 마지막 장이었다.

     

    연애소설은 아니다.
    읽다보면 갑질 논란, 연예인 성상납, 샤덴프로이데, 가정폭력, 세월호가 떠오른다.

    출판사 서평과 작가의 말에서는 ‘도시 난민’과 ‘유사 가족’이란 단어를 썼고.


    피에로들의 집인 ‘아몬드나무 하우스’와 성북동, 혜화동로터리 인근이 묘사된 것처럼

    이 작품엔 작가의 현실 인식과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음... 뭐랄까. 친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조바심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런 작가의 목소리가 다소 크게 들렸다. 그것 빼고는 다 좋았다.

     

    왜냐면 바흐와 생선 요리, 원두와 핸드드립 커피, 반 고흐와 에드워드 호퍼가 쓱- 나오면서

    청각, 미각, 후각, 시각을 자극시키는데

    중요한 건 여기에 사람의 체온, 그러니까 촉각이 더해지고

    그 오감으로 피에로들의 짙은 분장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클렌징 후의 개운함을 느끼게 해준달까.

     

    <피에로들의 집>엔 7명의 피에로가 등장한다.

    마마, 명우, 현주, 윤정, 윤태, 정민, 그리고 난희.

    이 중에서 봄밤, 서른 일곱 먹은 처녀의 심장을 두드린 관계는 명우와 윤정이었지만

    내게 인상적인 관계는 윤태와 명우다.
    나는 윤태에게서 명우가 보인다. 상희에게서 난희가 보이는 것처럼.

    과거에 누군가를 떠난 적 있던 마마는 명우에게 중간에 이런 얘길 한다. 


    여자가 남자를 떠날 때는 다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는 거야. 차마 말못할 이유나 진실 말이야.
    p41


    난희와 상희는 지금 그들 곁에 없다.

    명우는 윤태가 그랬던 것처럼 상황이 어찌됐든 난희 곁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 죄책감은 윤태에게 여행 경비를 보태줌으로써 스스로 씻은 건 아닐까 싶고. 

    ‘냉면 먹는 것조차 사치’인 윤태와

    마트에서 부부 혹은 연인이 함께 장보는 일상이 ‘인생의 가장 좋은 한때‘라고 느끼는 명우가

    내 눈엔 데칼코마니처럼 보인다.

     

    바흐의 평균율을 찾아 듣고,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

    그리고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검색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캐릭터가 정말 생생해서 영화로 만들면 어떤 배우가 어울리까 상상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이야기에 폭 빠져 밤을 새워 읽은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냥 밤도 아니고 봄밤이니까.

     

     

     

     


    근거 없는 호의나 배려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짐으로 작용하는지, 또한 지속적인 긴장을 요구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p8

     

    몸과 마음이 중심을 잃고 삶을 허비하게 되면 어떤 기회라도 늘 다른 이의 몫으로 돌아가게 마련이었다.
    p13

     

    어떤 상황에 직면해서 누구나 최선의 경우를 선택하려 들지만 그것은 사실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선택은 차선에 속한다고 봐야 하리라.
    p33

     

    “오직 마음에 있는 것만 눈에 보이는 법이라고 하더군요. 풍경은 늘 거기에 늘 그대로 있는 거고요. 물론 아름답긴 하지만 경전선이라고 해서 달리 특별한 것은 없단 뜻이죠.”
    p57

     

    내일부터는 밥 좀 끓여먹지그래. 그게 사는 일의 시작이고 삶을 챙기는 구체적인 방법이야.
    p60

     

    왜 이런 말이 있잖습니까. 사는 건 사는 거지 생각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생각이 지나치다보면 오히려 삶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더군요. 때로는 생각이 삶은 좀먹기도 하고요.
    p68

     

    누구나 자신의 삶을 꾸려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고유한 리듬에 맞춰, 순환의 반복이 가져다줄 인생의 순간을 고대하며.
    p99

     

    입에 빨간 사탕을 물고 유혹했겠지.
    p111

     

    바쁘다는 말처럼 뻔한 거짓말이 어디 있을까. 단지 바쁜 척할 뿐이지.
    p114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주기적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오고 있는 사이였다. 그렇다면 머잖아 다시 만나게 될 터였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는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셈이었다.
    p117

     

    누구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이토록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쪽을 진심으로 염려한다면 말이죠.
    p118

     

    나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어떤 사람이 무대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조명이 바뀌는 순간 홀연히 등장하지 않을까요? 이쪽에서 받아들일 준비만 돼 있다면 말이죠.
    p119

     

    약 한 시간 전부터 당신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고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후회한다 해도 어쩔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상처받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해질 무렵의 해바라기처럼 쓸쓸하게 웃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한 시간 전부터? 그럼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상탠가요?”
    “아뇨,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더 그립네요.”
    “또 하고 싶은 말은요?”
    “지금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닌지 염려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알 것 같은데요, 왜 그런지.”
    “……”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나는 불현듯 목이 메어왔다.
    .
    .
    .
    아침녘에 그녀가 휴대폰으로 내게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연꽃이 가득 피어 있는 연못을 찍은 사진이었다. 연못 뒤에는 오래된 탑이 하나 서 있었다. 사진 아래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이 연못으로 밤새 커다란 바람이 불어갔어요. 아침이 되자 겨우 잠잠해졌답니다. 바람이 지금 어느 쪽으로 몰려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139-140p

     

    어떤 사람에게는 냉면 한 그릇을 먹는 게 사치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p145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버리지 못하더라고요.
    p155

     

    여행지에서의 시간과 현실은 그 흐름과 농도 자체가 다르잖아요.
    p157

     

    어찌됐든 또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에 짓눌리는 압박감을 말하는 것이리라.
    p158

     

    사람은 자신이 누구라는 걸 알기 위해서라도 늘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 법이었다.
    p165

     

    “오늘 아침에야 이렇게 말하기로 마음억었어요.”
    “어떻게요?”
    “그냥 이대로 좋아하는 사이로 지내면 안 되겠냐고요.”
    “그냥 말입니까?”
    나는 무뚝뚝하게 되받았다.
    “그럼, 그냥은 빼고요.”
    p165

     

    사람들이 붐비는 매장에서 교대로 카트를 밀며 장을 본 다음 푸드코트에 마주앉아 있자니, 인생의 가장 좋은 한때가 지나가고 있는 속절없는 생각이 몰려왔다.
    p173

     

     


     

    아몬드꽃피는나무.jpg
    고흐 <꽃피는 아몬드나무>. 고흐가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나자 선물로 그려준 그림이란다.
    이 때 고흐는 정신병원에 있을 때였는데 같은 해 고흐는 죽는다. 테오는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로 지었단다.
    아몬드나무는 보호막이 되는 잎이 없단다. 겨울에 바람을 견디고 이른 봄 일찍 꽃을 피운단다.
     

    밤을지새는사람들.jpg
    에드워드 호퍼 <밤샘을 하는 사람들>
     

    주유소.jpg
    에드워드 호퍼 <주유소>
     

  • 오랜만에 윤대녕이 신작을 냈다. 볼까 말까.. 그랬었다. 그의 감성적 접근이 내 위태한 일상을 흔들어 놓을 ...

    오랜만에 윤대녕이 신작을 냈다. 볼까 말까.. 그랬었다.

    그의 감성적 접근이 내 위태한 일상을 흔들어 놓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니 실은 너무 오랜만에 만난 윤대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다.

    10년전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읽을때에는 새내기 직장인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타인에 대한 배려따위는 없이 오로지 나의 이야기만이 존재하던 시간들이었다. 타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에 대한 관심이 훨씬 중요하던 때였고, 에고이즘과 나르시즘에 별표를 치고 있던 내가 그때 존재하고 있었다. 돌이켜 그렇게 나 자신이 소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착한 이야기들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착하지 않은 나였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때는 막연히 착한 존재들이 살아갈 세상이 아닌거라고, 그럼에도 나는 살아남을거라는 확신에 찬 자신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있었더랬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고 나는 이제 나이를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고, 때로는 10년전 한없이 무기력하고 능력없어 보이던 선배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비슷한 대접을 받고 그래서 서글퍼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윤대녕이 신작을 가지고 나왔다. 쉐어하우스에 우연과 필연으로 모여든 사람들과 그들의 상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라는 위로 같은 것들이 순간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 따뜻함이 어쩐지 통속적인 느낌처럼 다가왔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마지막 작품은 내용따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제주도 바다와, 제주 바다에서 건저올려 요리되어지는 주인공의 생선들과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 착함... 그래서 더 이상 그의 글을 읽지 말아야지 했다.

     

     기억을 잃고 삶의 자리를 떠나고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이 현재 자신의 공간일 수 도 있고 죽음일 수도 있는 이야기 그런것들이 초창기 윤대녕의 글글에 있었다. 그런데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에는 그런 윤대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랫더랬다 10년전 그 책을 읽고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내가 젊음을 잃어가는 것이라. 그리고 그보다 훨씬 나이들어 만난 이번 작품은 상실도 회귀도 없다. 죽음이 있지만 자연스러운 죽음이고 통속적 아픔이 있을 뿐 깊은 절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생선 요리가 등장하지만 생선은 날뛰지 않고 수산시장에서 타인을 위한 요리를 위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켠에 커피가 자리잡았을 뿐...

     

    오롯이 감상만을 남겨보자

    <삐에로의 집>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상처를 나누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고, 타인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이며, 어디까지나 우연으로 연결된 고리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따뜻하지만 단순하다.

    "상처를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게 마련이니 드러내 놓고 아파하라"

    내가 이책에서 읽어낸 이야기는 이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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