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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1: 요석 그리고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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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쪽 | 규격外
ISBN-10 : 8937431793
ISBN-13 : 9788937431791
발원. 1: 요석 그리고 원효 [양장] 중고
저자 김선우 |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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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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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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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가 써야 할 이야기, 오로지 김선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김선우가 기어코 해낸 이야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날카로운 산문가 그리고 통찰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 김선우의 네 번째 장편소설. 원효와 요석의 사랑 그리고 당시 신라의 사회상과 원효의 사상을 균형감 있게 다룬 작품이다. 김선우 특유의 유려하고 맵시 있는 문장이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이 소설은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와 영화적 상상력으로 당시 서라벌을 눈앞에 온전히 펼쳐보인다.

왕이나 귀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불국토를 꿈꾸었던 원효, 그리고 요석. 김선우의 손끝에서 원효와 요석은 오랜 전쟁과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하는 ‘부처의 마음’과 존재와 존재로서 서로를 사랑으로 구원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지닌 입체적 인물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선우
저자 김선우는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96년 《창작과비평》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물의 연인들』과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가 있다. 청소년 소설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그 외 다수의 시해설서가 있다. 현대문학상과 천상병시상을 수상했다.

목차

635년 서라벌

1부 빛바랜 화랑의 꿈

2부 아미타림, 그리고 요석

3부 첨성대의 애달픈 넋들

책 속으로

“말해 보라. 왜 하필 서라벌이냐?” 휘몰아치는 노인의 기세에 주저하던 그가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지금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흐읏! 희한하게 한 번 웃은 노인은 다그치기를 멈추고 삿갓을 다시 눌러쓰더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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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보라. 왜 하필 서라벌이냐?”
휘몰아치는 노인의 기세에 주저하던 그가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지금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흐읏! 희한하게 한 번 웃은 노인은 다그치기를 멈추고 삿갓을 다시 눌러쓰더니 삼태기를 추어올리며 휙 몸을 돌렸다.
“흥, 꼴값 좀 하겠구나.” -1권 138~139쪽

백스무날의 낮과 밤. 그동안 원효의 내면에 일었다 사라진 것들이 공기 속에 스미어 모든 생명의 찰나를 구성하는 물질들로 화한 것 같았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기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스민 어떤 강력한 물질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지난 밤, 그는 하산의 때가 왔음을 그저 알아차렸다.
서라벌에 와 네 해. 귀족과 화랑, 전쟁, 아미타의 벗들, 출가, 사찰, 승려, 왕의 알현까지 가장 높은 이들과 가장 천한 이들을 두루 겪었다. 많은 인과들이 한꺼번에 출현하여 원효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네 해가 지났다. 그 모든 인연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지 확언할 수는 없었으나, 이제 원효는 새로이 펼쳐질 길을 성심을 다해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느꼈다. -1권 206쪽

원효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나는 부처로 살겠다!”
산을 내려오너라. 흉내 내지 말라. 너는 스스로 온 자, 배움의 장소가 산속에 따로 필요한 자가 아니다. 만나는 모두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자, 그것이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다. -1권 207쪽

혼돈에 가득 찬 물음들 저 너머에 육신을 벗어 놓고 저세상으로 간 소녀의 얼굴이 자주 보였다. 단아, 너는 지금 괜찮은 것이냐. 나도 너처럼 육신을 그만 벗고 싶구나. 단아, 너와 내가 가져야 하는 힘이란 무엇이냐. 힘없는 백성 속에서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어떤 힘을 가져야 참으로 힘인 것이냐. 단이를 부르며 원효는 울었다. 육체가 흘릴 수 있는 눈물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으므로 산산이 찢긴 몸을 붙들고 한 줄기 마음이 울고 또 울었다. -1권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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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강신주(철학자) 한 세상을 발원하고 한 여자를 사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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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강신주(철학자)

한 세상을 발원하고 한 여자를 사랑한 원효
한 시대를 이겨내고 한 남자를 은애한 요석
단아한 문장과 화려한 전개로 다시 태어나는 서라벌
원효의 사상과 사랑을 오롯이 담은 독존적 소설


김선우 장편소설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날카로운 산문가 그리고 통찰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 김선우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발원』은 원효와 요석의 사랑 그리고 당시 신라의 사회상과 원효의 사상을 공중제비를 도는 주령구처럼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 특유의 유려하고 맵시 있는 문장은 소설의 읽는 맛을 더해 주며,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와 영화적 상상력은 당시 서라벌을 눈앞에 온전히 펼쳐 놓는다. 왕이나 귀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불국토를 꿈꾸었던 원효, 그리고 요석. 소설을 읽은 독자는 원효와 요석이 나눈 1400년 전의 사랑을 통해 지금 우리 시대의 갈등과 번뇌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발원』은 작가 스스로 밝히는 것처럼 다른 여지가 없을 만큼 김선우가 써야 할 이야기였고, 오로지 김선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며, 김선우가 기어코 해낸 이야기인 것이다.

■ 다시 살아난 원효, 다시 깨어난 서라벌

원효의 일대기는 후대의 필요에 따라 각색되거나 축소, 과장되었고 이 또한 그 수가 많지 않다. 때문에 원효의 삶은 우리에게 피상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김선우는 시인 특유의 유려한 문장과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로 역사 속 인물 원효를 우리 곁에 인간 원효로 탈바꿈시킨다. 또한 원효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요석 공주 또한 주변부 인물이 아닌, 운명에 맞서는 당당한 여성으로 그려 낸다.
작가의 손끝에서 원효와 요석은 오랜 전쟁과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하는 ‘부처의 마음’과 존재와 존재로서 서로를 사랑으로 구원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지닌 입체적 인물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선덕여왕과 김춘추, 의상 등의 실존 인물과 작가에 의해 탄생한 여러 인물이 서라벌을 배경으로 작가의 문장에 걸음을 맞춘다. 그들의 걸음은 간혹 비장하고도 경쾌한 춤과 같아서, 책장을 넘기는 박자를 가볍게 한다.
인물뿐만 아니라 공간 또한 『발원』의 세계관 안에서 다시 탄탄한 생명력을 얻는다. 황룡사와 분황사, 첨성대와 같은 실제 배경뿐만 아니라, 아미타림 등의 상상적 공간까지도 원효와 요석의 궤적에 의해 신라인의 숨결이 묻어 있는 왕경, 즉 서라벌로 다시 구성되고 일어선다. 『발원』을 읽는 것은 신라 시대를 살아 내는 것이며, 원효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 혼탁한 세상에 온몸으로 스미는 소설, 모두가 부처인 세계를 발원하다

이렇게 소설『발원』을 통해 살아난 원효와 요석 그리고 서라벌은 끝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진짜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백성의 고통은 정녕 멈출 수 있는가. 진실된 사랑을 이룰 수 있는가. 원효는 “막히고 갈라져 서로 대립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는 세계로, 한 몸처럼 세상과 만나는 세계로 돌아오”길 촉구한다. 우리는 부처이자 곧 중생이고,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기도 하며, 당신의 사랑은 즉 나의 사랑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작품 해제에 이렇게 쓴다.

“왕이나 귀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불국토를 꿈꾸었던 원효, 사랑과 자비는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걸 내어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던 원효. 김선우 작가는 너무나 근사하게 매력적인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어느 육두품 출신 영민했던 소년이 어떻게 우리가 알던 바로 그 어여쁜 원효가 되어 가는지, 요석이 원효에게 어떤 인연의 여인네였는지, 진정한 자비는 국가와는 무관하게 중생들 마음 하나하나를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닌지,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

김선우의 『발원』은 원효와 요석 그리고 신라의 수많은 민초들을 비추는 유리창이자 지금 우리 시대의 오래된 청동거울이기도 하다. 『발원』을 통해 되돌아본 우리 모습 뒤로, 우리는 어떤 간절한 발원을 올릴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소설은 이미 당신에게 스며 들어간 후일 테다. 이렇듯 『발원』은 우리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인물의 삶을 통해 오래되고 동시에 새로운 호소를 독자에게 설파하는 참이다. 우리는 혼탁한 세상에 온몸으로 스미는 이 소설에 귀를 기울여 설복당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 해제에서

20년 전 대학원 시절부터 소망했던 나의 꿈, 언젠가 원효에 대한 근사한 소설을 쓰리라는 꿈을 이제 나는 접을 것이다. 이건 모두 김선우의 소설 『발원』 때문이다. 나는 그냥 『발원』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일까, 『발원』을 읽은 뒤 나는 그만 김선우 작가에게 설복당하고 말았다.-강신주(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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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불설佛說’이 부처님 말씀만을 뜻하는 게 아닌 것처럼‘불행佛行’도 부처님 당신의 삶 하나만을 가리...

     

     

    ‘불설佛說’이 부처님 말씀만을 뜻하는 게 아닌 것처럼
    ‘불행佛行’도 부처님 당신의 삶 하나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수보리 존자에게 하신 말씀 중
    ‘경전 속 가르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빼어난 공덕이
    반드시 경전經典과 설법說法의 형식으로만 이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동아시아 불교계가 추앙하는 선각자 원효元曉를 두고
    그동안 우리 불교계에 드러내놓고 자랑하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분위기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른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둘째 딸 요석과의 염문 때문이었다.
    비록 선대인이 그것을 설화라고 적어두기는 했지만
    불자든 비불자든 어려서부터 보고 들어 배운 앎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고
    천 년도 훨씬 더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이 땅의 불교가 청정비구의 전통을 대세로 유지해 오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김선우가 풀어가는 《발원》 속 원효와 요석의 이야기는
    여왕 선덕이 신라를 통치하던, 두 사람이 아직 어린 날로부터 시작되는데
    붓다와 마찬가지로 태어나자마자 모친을 잃은 ‘새벽(훗날의 원효)’과
    요석瑤石에서 ‘曜夕(빛나는 저녁)’으로 이름이 바뀐 김춘추의 둘째 딸이 주인공이다.

    새벽은 어려서부터 ‘신라를 사랑한다면 신라와 싸워야 할 것’이라고 배우면서 자랐고,
    요석은 왕의 꿈을 가진 부친 김춘추의 정치적 야망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 길을 모색하며 자랐는데,
    두 사람의 인연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어져
    마침내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숙명적 반려 같은 사이로 발전해간다.

    화랑이 되기 위해 고향 압량을 떠나 서라벌로 간 새벽은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뒤 화랑의 꿈을 접고 출가해서 원효가 된다.
    그러나 삼한일통을 향한 전쟁의 열기에 휩싸인 나라에서
    끝내 칼을 손에 잡지 않는 사람으로 겪어야 할 숱한 난관들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그럴 때마다 몸과 마음이 함께 부서지는 고통의 시간을 맞게 되지만
    요석을 비롯하여 원효를 아끼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헌신으로
    원효는 ‘부처로 살아가자’는 자신의 뜻을 굳게 지키며
    헐벗고 굶주리고 의지할 것 없는 사람들 속에서
    ‘모두가 부처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꿈을 함께 꾸어 나간다.

    *****
    사람들이 모시는 불상엔 부처의 생명이 없습니다.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 이는 출가한 스님들입니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실천할 때 불상은 생명을 갖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의 실천에 온 생애를 바친 부처의 맨발은 사라지고 중생의 행복을 위한 바라밀행이 망각된 자리에 황금 좌대와 비단 가사만 펄럭입니다.
    -「아미타림, 그리고 요석」 중에서

    원효가 보는 부처는 자신에게 절하는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부처였다.
    부처 자신이 한평생 ‘너 자신이 부처로 살라’는가르침을 전파하고 다녔지만
    세상에 넘치는 것은 불상佛像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와
    무서운 줄 모르고 법을 팔고 이용하여 배부르고 호화롭게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원효가 출가한 황룡사를 뛰쳐나온 것도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당나라 유학의 목전에서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린 것도
    모두가 말로 하는 불법과 깨달음이라는 장식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 삶에 직접 보탬이 되는 부처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였고,
    파계라는, 출가 수행자에게 치명적 결함이 되는 것까지도 망설이지 않고 받아내며
    전쟁에 반대하는 원효와 그런 원효를 사랑하는 딸 요석을 제거하기 위해
    왕이 된 김춘추가 마련해 놓은 함정 속으로 저항 없이 들어간다.

    원효가 가고자 했던 길은 '머무는 곳 없이 머무는 길'이었고,
    '부처를 사랑하는 길보다 부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길'이었다.
    요석도 요석의 길을 갔다.
    ‘가질 수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것도 나의 운명’이라고 선언한 것도 그녀였고
    ‘그대는 나의 사람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는 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대의 길을 가서 꼭이루시라’고 원효를 응원한 것도 그녀였다.
    원효는 또 그런 요석의 지혜로운 절제와 헌신을 통해
    ‘열심히 산 자기 삶 속에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권력의 부름이나 협박에 의연히 등 돌리거나 마주설 수 있었으며
    마침내 수행자의 옷까지도 벗어 던진 뒤 비루한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
    '원효' 대신 '소성小性(작은그릇)’이라는 이름의 거사가 되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뿐만 아니라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까지 실천하면서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신을 먼저 바꾼 부처의 삶을 살았다.

    《발원》에서 원효와 요석의 이야기는 주요 사건이면서 또한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사건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삼한일통의 비원을 향한 신라 왕실의 야망과 고뇌 속에서

    국가 발흥의 수단으로 불교를 활용하려는 왕실과 귀족의 의도에 부화하거나 저항하는 승려들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과 수탈로 인해 고통의 세월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민중들 속에서

    씨 뿌려지고 싹이 돋고 줄기와 잎을 키워낸 끝에 피어난 질기고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다.

    위인전에 실린 이야기로만 읽은 김춘추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는 것도 신선하고

    유학승 의상과 자장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흥미진진하며

    황룡사와 분황사를 대비시킨 구도도 오늘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어 예사롭지 않다.

    읽는 내내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저자 역시 원효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원효와 요석의 이야기를 저자 자신의 피와 살로 소화해내지 못했다면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을 이렇게 천의무봉한 하늘사람의 옷처럼 지어내기 어려웠을 것이고
    수도 없이 듣고 보고 읽어서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이야기를
    이렇게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우의 소설 《발원》이
    오랜 세월 원효에게 망령처럼 덧씌워졌던 파계자의 허물을 씻어주는 데 공헌했다면
    전생애를 보살행菩薩行에 몸 바쳐 산 원효의 진면목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일은 이제
    부처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서원한 모든 불자들에게 던져진 과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의 단초는 저자의 첫시집이 출판된 어느 해 경주여행에서 마련되었다.
    입전수수入廛垂手, 단 며칠의 경주 소요逍遙 뒤 김선우의 가슴에 각인된 말이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혹시라도 그날 저자가 가슴속에 새겨둔 한마디와 이야기가 변질되었거나 잊혀졌다면
    스스로를 일깨우고 서로를 다독이며 고통의 바다로 들어가 꽃이 된 원효와 요석의 이야기는
    이토록 절절하고 생생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2권의 말미에는 또 뜻밖의 선물 하나가 감춰져 있는데
    오래전부터 원효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는 철학자 강신주가 쓴 해제에는
    '원빠'임을 자인하는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기초한 원효와 의상에 대한 비교분석에서부터
    그동안 알려진 적 없는 원효와 의상의 여인, 곧 요석과 선묘에 관한 보다 더 상세한 이야기와
    강신주 자신의 (원효 이야기로 쓰는) 소설 포기 선언이 들어 있는데
    김선우의 소설과 강신주의 해제가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소설 속 이야기는 가정된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적 상상으로까지 확장된다.

    의도하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강신주의 해제는 어쩌면 원효 이야기의 대반전의 복선이 될 수도 있다.


    김선우의 소설《발원》이 분명 머지않은 어느 시기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도
    불자가 읽으면 잘못 산 불자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 같고
    비불자가 읽어도 불교적 가르침에 자연스럽게 눈뜰 수 있을 것 같은,
    그래서 아깝다는 마음 없이 별 다섯 개를 쾌척하고 싶게 만드는 뛰어난 작품성 때문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 두 권을 읽는 데 나흘이나 걸릴 만큼
    독후기를 써야 할 사람의 책 읽는 집중력이 형편없이 나빠진 것 하나뿐.

     
     
     

  •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 | ch**yong | 2015.08.14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진리란 무엇인가. 윤구병 선생님에 따르면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한자말인 ‘진리’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이 ...
     

    진리란 무엇인가. 윤구병 선생님에 따르면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한자말인 ‘진리’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듯 여겨 쉽게 대답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질문은 참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바꿔야 한다. 세 살배기 아이들도, 까막눈 어르신들도 알아듣는 말로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럴 때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참이란 무엇인가. 있을 것은 있고 없을 것은 없는 게 참이다. 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는 말이 참말이고, 좋은 것은 있고 나쁜 것은 없는 세상이 참세상이다. 그러니 진리란 참된 이치, 곧 참된 길이다. 


    원효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첫째 권은 13살부터 26살까지를 다루고 있다. 원효는 어머니의 기일에 태어난다. 어머니가 원효를 낳자마자 돌아가신 것이다. 슬픔을 안고 태어난 목숨이다. 아버지는 말과 표정을 잃는다. 대신 숙부로 인해 새벽은 유년의 어둠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곱 살 새벽을 향해 내민 숙부의 따뜻한 손과 다정한 등. 그것은 새벽이 자신 속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 버릴 수 있도록 격려해 준 가느다란 빛이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어린 가슴에 심어 준 빛이었다. 그런 숙부마저 새벽이 13살이 되었을 때 승려의 길을 권하며 훌쩍 떠나버린다. 홀로 고독한 훈련을 3년 동안 쌓은 새벽은 서라벌로 떠난다. 16살이 되어 아명인 새벽을 버리고 원효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준다.


    원효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온통 가시밭길이다. 그렇더라도 원효가 올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인물들이 있다. 혜공 스님. 지금 여기서 극락세계를 가꾸리라는 의미로 아미타림을 만든 분이다. 숲에 다섯 동의 산채를 지어 장애인, 혼혈인, 전쟁고아들, 그리고 가혹한 주인을 피해 탈출한 노비들을 받아들인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모두 함께 음식과 약재와 의복을 나누어 함께 사는 평등 세상이다. 스스로를 위한 춤이 저잣거리로 흘러들어 백성을 깨울 수 있다면 좋다고 여기는 참스승이다.


    백제의 소년병 수파현도 원효가 참된 길을 가도록 돕는 인물이다. 수파현은 포로가 되어 죽을 처지가 된다. 포로를 죽이도록 몰리는 상황에서 원효는 다른 선택을 한다. 신라의 맥박은 뛰지 않으나 소년병의 맥박은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원효 자신에게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경계 지어 놓은 삿된 국경보다 더 큰 조국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귀족들의 사찰인 황룡사의 장륙존상에 올라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이야기하려다 꽃이 되어 떨어진 단이도 원효가  참된 길을 가도록 돕는 인물이다. 고통이라는 진리,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말하는 진리, 고통이 소멸된 진리, 고통을 소멸시키는 길인 진리, 이 모든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님이 중생이며,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부처가 있다는 것을 단이의 죽음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서라벌에 온 지 1년 만에 남산에서 처음 만난 요석이다. 김춘추의 딸로 선덕여왕의 총애를 받는 소녀. 요석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원효의 내부에서 발아하기 시작한 요석에 대한 마음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요석은 원효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찾아왔고, 가장 좋은 도반과 더불어 가장 충일하고 평화로움을 준다. 요석의 존재가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일은 없었으며, 오히려 그녀의 존재가 원효의 갈 길을 또렷이 비추었다. 빛나는 저녁(요석)과 신새벽(원효)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듯 두 사람은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의 관계가 된다.


    요석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원효를 바라보는 눈동자만큼은 흔들림 없이 맑고 투명했다. 서로의 눈동자 속에 든 눈부처를 바라보는 찰나가 영원임을 그 순간 알았다.

    영원이란 시간성을 벗어난 말이로구나. 영원이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현재로구나. 깨어 있는 현재만이 영원이구나! (283쪽)


    원효와 대척점에 선 인물들도 있다. 현실 세계에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이들. 여왕을 부정하며 강한 왕을 꿈꾸는 귀족 세력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할 비담과 그를 보좌하는 야신이 대표 인물이다. 부패한 승려들도 있다. 그리고 귀족과 대항할 때는 적극 지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원효의 길을 가장 흔드는 인물이 있다. 전쟁의 비참함을 경험한 뒤 화랑도를 파하고 출가 사문이 된 원효에게 승병을 조직해 전쟁을 수행하라고 명령하는 선덕여왕이 곧 그이다. 거부하면 요석이 위태로운 처지에 몰리게끔 하는 치밀함도 갖추었다. 그러니 원효는 가장 큰 궁지에 몰리고 만다.

  •     635년 서라벌....『 발원 』1권의 시작은 아주 머나먼 역사언저리에서 시작된다. ...

     


    발원표지.jpg


     

    635년 서라벌....『 발원 』1권의 시작은 아주 머나먼 역사언저리에서 시작된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마치 내가 635년 서라벌에 있는 듯 책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지난 5월,  김선우 장편소설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철학자 강신주의 극찬을 이끌어낸 사실만으로도 『 발원 』이 너무 궁금해졌다.

     빛바랜 옛 신라, 서라벌에서 일어난 1400 년 전의 이야기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시인이자 소설가 김선우의 펜 끝에서 나온 글이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날카로운 글 위에 주인공 요석과 원효가 있었다.

    그들의 사랑이 당시 신라의 사회상과 얼마나 반한 일이었던가.

    작가는 원효스님과 태종무열왕(김춘추)의 딸인 요석공주의 정략적 결탁이 아니라 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여기에 원효의 사상을 잘 버무린 스토리전개에 대하드라마 한편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님 『 발원 』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떨까. 그 또한 좋으리라.

     

       

     “누구냐. 넌? 신라 도성 한복판에 백제군 병사를 업고 오다니! 대체 네 놈 정체가 뭐냐?”

     찢어져 피가 난 청년의 입술이 힘겹게 달싹 거렸다.

     ...“가장······어두운······새벽······”...“나는······ 원효요.”

                                                                                                                    (발원 1권 p.10)

      

    글의 첫 대목 강렬하게 등장하는 원효. 이 얼마나 매력적인 첫 등장인지..

    김선우 작가의 이 짦지만 강렬한 첫 대목에서 원효의 이름이 가진 신비로운 기운과 원효의 사상까지 버무려 나온 최선의 문장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완벽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멋지지만은 않은 등장에 원효가 어떻게 그려질지 너무 궁금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가장 어두운 새벽 난 2권까지 읽고서야 책을 놓고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1부「빛바랜 화랑의 꿈」에서 원효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내면과의 싸움이 유려하게 읽혀진다. 원효를 낫다가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못해 슬펐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얻은 원효를 화랑으로 키워 출세시키고 싶어 한 아버지, 그리고 원효에게 화랑대신 승려의 삶을 제시해주는 숙부까지 원효가 본인의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가시밭길 가운데서 흔들어대고 있었다.

     

       ...“말해 보라. 왜 하필 서라벌이냐?” 휘몰아치는 노인의 기세에 주저하던 그가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지금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발원 1권 p.138)



     이 대목이 저자 김선우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왜 하필 서라벌이냐. 왜 원효와 요석일 수밖에 없었느냐. 지금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뿐이라는 원효의 대답이 작가의 대답처럼 느껴진 건 나만의 착각일까.


     혼란스런 그에게 요석의 존재는 얼마나 절대적이었을까. 승려를 선택한 그의 삶에 온전히 들어온 그녀를 그는 얼마나 사랑했을까. 원효와 요석은 전쟁과 지배층의 핍박으로 인해 지친 백성을 위하는 ‘부처의 마음’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동시에 서로를 사랑으로 구제하고자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글 위에서 숨 쉬고 있었다.

     

     ...백 스무날의 낮과 밤. 그동안 원효의 내면에 일었다 사라진 것들이 공기 속에 스미어 모든 생명의 찰나를  구성하는 물질들로 화한 것 같았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기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스민 어떤 강력한 물질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지난 밤, 그는 하산의 때가 왔음을 그저 알아차렸다... 

                                                                                                                      (발원 1권 p.206)

     

     서라벌에 와 있었던 4년 동안, 그는 귀족과 화랑, 전쟁, 아미타의 벗들, 출가, 사찰, 승려, 왕의 알현까지 가장 높은 이들과 가장 천한 이들을 두루 겪었다. 그 모든 인연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지 확언할 수는 없었으나, 이제 원효는 새로이 펼쳐질 길을 성심을 다해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느꼈다. 이 대목에서 왜 내 무릎은 한 대 치고야 말았다. 원효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부분이 나올 때 마다 그에게 어느새 감정이입이 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효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나는 부처로 살겠다!”
      산을 내려오너라. 흉내 내지 말라. 너는 스스로 온 자, 배움의 장소가 산속에 따로 필요한 자가 아니다.

      만나는 모두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자, 그것이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다.

                                                                                                                   (발원 1권 p.207)


    연이어 등장한 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위대한 스승의 모습으로 살기위한 길이 바로 부처로 사는 것임을 깨달은 원효의 외마디 외침은 본인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오래 각인될 것이다. ‘나는 부처로 살겠다!’ 나도 이 대목에서 원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에 갑자기 봉은사 대법당안으로 뛰쳐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럼 내가 짊어진 이 무거운 물욕들이 조금을 줄어들지 않을까 번민에 빠진 중생 코스프레라도 하고 싶었다. 이 글을 읽어갈수록 강신주 님이 왜 원효에 관한 소설을 쓰지 않겠다 포기하신 연유를 조금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게냐, 너를 바꾸고 싶은 게냐?”

                                                                                                                 (발원 1권 p.334)

     

    이 대목에서 원효의 등짝을 후려치면서 하는 혜공의 따끔한 충고가 원효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흐응, 그렇지, 깨달음은 좋은거야.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빠져 있으면 깨달음이고 뭐고 다 귀신 밥이지.

     흐응, 너도 알겠지? 젤로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응? 깨달아서 뭣에 쓰게?"

                                                                                                                 (발원 1권 p.342)


     깨달음에 관한 질문을 계속 던지다가 마지막에 ‘깨달아서 뭣에 쓰게?’라는 물음에 잠시 침묵하게 되었다. 원효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부처를 사랑하는 것과 부처가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로 현현하고 종내는 서로 통하여 어우러질 것이 아닐까...저자의 말처럼 그런 것이리라.


    “왕이나 귀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불국토를 꿈꾸었던 원효, 사랑과 자비는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걸 내어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던 원효. 김선우 작가는 너무나 근사하게 매력적인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어느 육두품 출신 영민했던 소년이 어떻게 우리가 알던 바로 그 어여쁜 원효가 되어 가는지, 요석이 원효에게 어떤 인연의 여인네였는지, 진정한 자비는 국가와는 무관하게 중생들 마음 하나하나를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닌지,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

    -강신주(철학자) 


    강신주의 해제에서 내가 입안에서 되뇌이고 찾아다니던 답이 여기에 있었다. 높이 숭상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가까이 두고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불국토를 꿈꾸었던 원효의 세상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발원』을 읽는 것은 신라 시대의 원효 사상을 통해 현재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 내는 깨달음의 과정인 것은 아닐까. 우리 지금 세상에서 원하는 절실함이 원효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니 그 울림이 더 커진 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도 원효와 같은 지도자가 있었음 하는 작은 바램을 가지면서 이 책을 덮었다.

     

    1년이 지난 후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다시 읽게 된다면 그 때도 나에게 똑같은 울림이 있을지, 더 큰 깨달음을 줄지 문득 궁금해졌다. 『정글만리』를 읽고 떨렸던 것처럼 내 심장을 가쁘게 하는 『발원』을 다른 독자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소설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나처럼 ‘발원’하게 되지 않을까. 발원의 뜻이 '어떠한 일을 바라고 원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라는 뜻인 동시에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다짐하는 맹세, 또는 부처나 보살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뜻하는 종교 용어로 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여러분도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를 읽고 ‘발원’하게 되길 바래본다.

  •  어둠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곧 촛불 대신 어둠에 익숙해진다. 어둠을 온전히 걷...

     어둠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곧 촛불 대신 어둠에 익숙해진다. 어둠을 온전히 걷어내려면 더 많은 빛이 필요하다. 자신을 태우며 빛을 발하는 수많은 촛불의 희생 말이다. 하나의 촛불이 다른 촛불을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버려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신념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학습이나 세뇌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스스로 깨쳐야 만 가능한 일이다.

     

     삶의 진리를 깨우치는 게 쉽다면 신과 구도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이 아닌 어떤 이상을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산다는 건 고행이라는 말은 맞았다. 화랑이 되기 위해 서라벌에 온 원효가 화랑 대신 출가를 선택한 이유는 고통을 나누고 싶어서다. 왕이나 귀족, 진골, 성골을 위한 나라가 아닌 백성 모두를 위한 신라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촛불이 되는 혜공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라를 이끌 수 있는 강렬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진리,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말하는 진리, 고통이 소멸된 진리, 고통을 소멸시키는 길인 진리. 이 모든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님이 바로 중생이다.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부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죄 없이 죽어 간 저 소녀의 가슴 위에서 자고 깨어날 것이다. 거기가 내 감옥이 될 것이며 해탈문이 될 것이다.’ (1권, 254쪽)

     

     왕실을 위해 점점 화려해지는 황룡사를 보면서 과감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원효뿐이었다. 백제, 고구려와 싸움으로 지쳐가는 백성들의 절망을 원효는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런 원효를 김춘추를 비롯한 왕실에서 곱게 보지 않았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원효를 반역의 주동자로 몰아내고 싶었다. 의상에게 국사라는 거대를 제시해 함께 서라벌에서 당으로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려진 대로 해골물 일화로 원효는 백성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고통 속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킨 한 여자, 요석이 있다. 신라 전부를 다 가질 수 있는 김춘추의 딸 요석.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딸에게 정략결혼을 요구하는 아버지에 반기는 드는 요석. 원효라는 운명을 위해 전부를 내어주기로 작정했다.  

     

      “나는 말이다. 목숨을 바쳐도 좋을 만한 일을 하면서 살 거다. 사랑도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말이다.” (2권, 83쪽)

     

     병자와 약자를 돌보고 원효와 함께 새로운 신라를 만들고 싶었던 요석. 요석과 원효의 사랑은 신분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의 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김선우가 재탄생시킨 원효의 일대기가 빛을 발하는 이유다. 단순히 요석과 원효의 사랑만 그려냈다면 김선우에 대한 애정이 멈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선우는 달랐다. 1400년 전 원효를 현재로 불러와 법문을 들려주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문장 하나하나 아름답게 갈고닦아 성찰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나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고정된 나가 아닙니다. 나라는 실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환각을 벗어나면 우리 모두가 나입니다. 당신이 바로 나입니다. 남과 내가 둘이 아닙니다. 귀족과 평민이 둘이 아닙니다. 본래적 깨달음은 나에서 남을 보고 남에서 나를 봅니다.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나 자신과 내 가족과 가문을 소중히 여기듯 우리 모두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권, 163~164쪽)

     

     역사적 사건과 실제의 인물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논픽션으로만 어떤 재미와 감동을 안겨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황룡사와 분황사, 첨성대와 같은 역사적 공간과 비담, 김유신, 의상, 선덕여왕, 김춘추란 인물의 등장만으로 <발원>을 역사 소설과 불교 소설이라 선을 그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감히 철학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김선우는 원효와 요석과 불교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당신이라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각각의 당신이 내가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김선우는 이 소설을 통해 모두가 촛불이 되기를 발원한다. 그리하여 1400 년 전 원효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촛불이 발을 맞추어 걸어가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함께 밥을 먹고 단잠에 빠지는 세상을 소망하는 것이다. 촛불이 사라진 시대 소설로 촛불을 만드는 김선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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