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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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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5
ISBN-10 : 8937483947
ISBN-13 : 9788937483943
스티브 잡스 [양장] 중고
저자 월터 아이작슨 | 역자 안진환 |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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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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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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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 '스티브 잡스'가 밝히는 그의 모든 것! 『스티브 잡스』는 완벽에 대한 열정과 맹렬한 추진력으로 IT혁명을 일으킨 창의적인 기업가 '스티브 잡스'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과 그의 불같이 격렬한 성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의 웹사이트 기반이 아닌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디지털 콘텐츠로 새로운 시장의 문을 연 스티브 잡스. 매킨토시,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그는 세상을 변혁하는 제품을 내놓았고 '애플'이라는 지속 가능한 기업을 창출했다.

이 책은 부모 집의 조그마한 차고에서부터 시작해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된 애플의 놀라운 성장 비밀, 애플 I에서 시작해 매킨토시와 토이 스토리를 거쳐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는 혁신적 제품들의 탄생 비화,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전설의 프레젠테이션 준비 과정, 그리고 극도의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경영 비법까지 스티브 잡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20장과 40장에는 그동안 자세히 드러난 적 없는 그의 복잡한 가족사와 연애사들이 총망라되어 있고, 40장과 41장에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월터 아이작슨
저자 월터 아이작슨 Walter Isaacson은 1952년 미국 뉴올리언스 출생. 전문 전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워싱턴 DC 소재 초당파적 교육 및 정책 연구 기관 애스펀 연구소의 CEO로 재직 중이며, 《타임》 편집장과 CNN의 CEO를 역임했다.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와 「라디오 프리 유럽」등 미국의 국영 국제 방송을 관장하는 미 방송위원회의 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아인스타인―그의 인생과 우주』, 『벤저민 프랭클린―한 미국인의 삶』, 『키신저 전기』 등을 집필했으며, 에반 토만과 함께 『현명한 여섯 친구와 그들이 만든 세계』를 공동 집필했다. 현재 부인과 함께 워싱턴 DC에서 살고 있다.

역자 : 안진환
역자 안진환은 1963년 서울 출생. 경제경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 번역가이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번역 활동을 하며, 명지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 출강한 바 있고, 2011년 현재 번역에이전시 인트랜스(www.intrans.co.kr)와 번역 아카데미 트랜스쿨(www.transchool.com)의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영어실무번역』, 『Cool 영작문』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넛지』, 『아이디어맨』,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 『포지셔닝』, 『괴짜경제학』, 『온워드』, 『마켓 3.0』, 『실리콘밸리 스토리』, 『이유 없이 행복하라』, 『스틱!』, 『스위치』 등이 있다.

목차

서문-이 책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7

1 어린 시절 - 버려지고 선택받다 19
2 뜻밖의 커플 - 두 명의 스티브 47
3 자퇴 - 환각과 성찰 63
4 아타리와 인도 - 게임 설계 기술과 선(禪) 81
5 애플 Ⅰ - 켜고 부팅하고 교감하라 103
6 애플 Ⅱ - 새로운 시대의 여명 125
7 크리스앤과 리사 - 자신이 버림받은 사람이었기에…… 147
8 제록스와 리사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157
9 기업공개 - 부와 명성을 모두 얻은 남자 173
10 맥의 탄생 -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라 183
11 현실 왜곡장 - 자신만의 규칙을 고집하는 보스 197
12 디자인 - 진정한 예술가는 단순화에 목숨 건다 209
13 맥 만들기 -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225
14 스컬리를 영입하다 - 펩시 챌린지 245
15 매킨토시 출시 -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 263
16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 두 궤도의 교차 283
17 이카로스 - 올라가는 것은…… 299
18 넥스트 -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345
19 픽사 - 기술과 예술의 만남 385
20 보통 남자 - 사랑이라는 두 글자 403
21 토이 스토리 - 버즈와 우디 구조대 449
22 잡스의 재림 - 마침내 사나운 야수가 돌아오다 465
23 부활 - 지금의 패자는 훗날 승자가 되리니 483
24 다른 것을 생각하라 - iCEO 잡스 517
25 디자인의 원칙 - 잡스와 아이브의 스튜디오 537
26 아이맥 - 반가워 (다시 만나서) 549
27 CEO -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별난 563
28 애플 스토어 - 회청색 사암과 지니어스 바 581
29 디지털 허브 - 아이튠스에서 아이팟까지 597
30 아이튠스 스토어 - 피리 부는 사나이 623
31 뮤직 맨 - 그의 인생이 담긴 사운드트랙 651
32 픽사의 친구들 - ……그리고 적들 675
33 21세기 맥 - 애플을 차별화하는 것 701
34 1라운드 - 메멘토 모리 713
35 아이폰 - 혁신 제품 세 가지를 하나로 733
36 2라운드 - 암의 재발 749
37 아이패드 - 포스트 PC 시대로 771
38 새로운 전투들 - 그리고 예전 전투들의 메아리 801
39 무한대를 향해 - 클라우드, 우주선 그리고 그 너머 821
40 3라운드 - 말기의 분투 841
41 유산 - 가장 밝게 빛나는 창조력의 천국 871

인터뷰 889
참고 문헌 891
주석 893
인명사전 915

책 속으로

“애플의 많은 사람들은 웬만큼 돈을 만지기 시작하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고급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몰기 시작하고 집도 여러 채 장만하더군요. 각각의 집에 지배인도 두고, 나중에는 그 지배인을 관리할 또 다른 누군가를 고용하고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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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많은 사람들은 웬만큼 돈을 만지기 시작하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고급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몰기 시작하고 집도 여러 채 장만하더군요. 각각의 집에 지배인도 두고, 나중에는 그 지배인을 관리할 또 다른 누군가를 고용하고요. 그들의 아내는 성형수술을 자꾸 해서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정신 나간 짓이에요. 나는 돈이 내 인생을 망치게 만드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습니다.”(179쪽)

잡스는 최소한의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우드사이드 저택에 가구를 들이지 않았다. 침실에는 옷장과 매트리스, 식당으로 쓰는 공간에는 카드놀이용 테이블과 몇 개의 접이의자가 전부였다. 그는 주변에 자신이 감탄할 수 있는 것들만 놓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저 나가서 많은 가구를 사들이는 일 자체가 힘에 겨웠다. 하지만 이제 아내와,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평범한 동네에 살게 된 그는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쉽지는 않았다. 그들은 침대와 옷장, 그리고 거실에 놓을 스테레오 시스템을 구입했지만, 소파와 같은 가구들을 사들이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사실상 8년 동안 가구를 구입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한 셈이에요.” 파월이 회상했다. “우리는 반복해서 우리 자신에게 물었죠. 소파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가전제품을 사는 것도 단순한 충동구매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인 과업이었다. (438~449쪽)

잡스는 자신이 입을 유니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편리할 뿐 아니라(이것이 그가 주장한 이유였다.) 특징적 스타일을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는 이세이에게 제가 맘에 들어 하던 그의 검은색 터틀넥을 몇 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그 옷을 100벌 정도 만들어 주더군요.” 이 얘기를 듣고 내가 놀라는 걸 본 잡스는 옷장에 쌓여 있는 검은색 터틀넥을 보여 주었다. “이게 제가 입는 옷입니다. 죽을 때까지 입어도 될 만큼 있지요.”(569~570쪽)

잡스는 열정적인 장인 정신의 특징은 숨어 있는 부분까지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철저를 기하는 것임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이 철학의 가장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실천 사례는 잡스가 칩과 다른 부품 들을 부착하고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 회로 기판을 철저하게 검사한 경우였다. 어떠한 소비자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잡스는 인쇄 회로 기판을 심미학적인 토대로 비평하기 시작했다. “저 부분 정말 예쁘네. 하지만 메모리 칩들을 좀 봐. 너무 추하잖아. 선들이 너무 달라붙었어.” 새로 들어온 엔지니어 중 한 명이 끼어들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중요한 건 그게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 하는 겁니다. PC 회로 기판을 들여다볼 소비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잡스는 전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해. 박스 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야. 훌륭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장롱 뒤쪽에 저급한 나무를 쓰지 않아.” 몇 년 후 매킨토시가 출시되고 나서 한 어느 인터뷰에서, 잡스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교훈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서랍장 뒤쪽이 벽을 향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싸구려 합판을 사용하지 않아요. 목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밤에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222쪽)

“그는 제품에 대한 열정이 강박에 가까울 만큼 남달랐습니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는 열정 말입니다.” 반면 마이크 스콧은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실용주의를 우선시하는 타입이었다. 두 사람은 애플 II의 케이스 디자인을 놓고도 충돌했다. 플라스틱 케이스 색깔을 결정하기 위해 애플이 선택했던 색상 전문 업체 팬톤 사는 2000가지 종류의 베이지색을 갖추고 있었다. 스콧은 이렇게 회상한다. “세상에, 스티브는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했어요. 좀 더 다른 베이지색을 원했어요. 결국 제가 나서서 설득해야 했지요.” 케이스 디자인의 세부적인 부분을 조율할 때도 잡스는 모서리 부분을 어느 정도로 둥글게 만들어야 할지를 놓고 며칠 동안 고민했다.(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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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0월 24일, 전 세계 동시 출간!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참여한 유일한 공식 전기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

[출판사서평 더 보기]

10월 24일, 전 세계 동시 출간!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참여한 유일한 공식 전기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이 책의 말미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쩌면 평생을 신비주의로 일관하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유일한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를 써 달라고 요청한 것은 평생 살아오면서 쌓은 “약간의 지혜”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 약간의 지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내 열정의 대상은 사람들이 동기에 충만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2순위였다. 물론 이윤을 내는 것도 좋았다. 그래야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 부여였다.”
요컨대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것은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온 위대한 제품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 제품을 만들었던 위대한 조직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조직을 이끌었던 위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위대한 인간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은 이미 시중에 넘쳐난다. 하지만 잡스는 그 책들에 대해 늘 극도의 불만을 표시했다. 잡스가 자신의 허락 없이 출간된 전기를 두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 나머지 해당 출판사의 다른 책들까지도 애플 스토어에서 모두 치워 버리라고 지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평생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완벽한 제품을 추구해 왔던 그는 이번에 자신의 생애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평소 절친하던 《타임》의 전 편집장이자 CNN의 전 최고 경영자 월터 아이작슨을 불러서 전기를 써 달라고 의뢰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결심한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까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직접 내 얘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싶었지요.”
그러니까 이 책은 스티브 잡스가 유일하게 자신의 입을 열어 자기 삶의 모든 것을 밝힌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며, 그가 프레젠테이션 말미에 늘 입을 열어 사람들을 기대에 차게 했듯이 그의 생애 최후의 “And One More Thing”에 해당한다.
이 책에는 21세기를 새롭게 그려 나간 창조자 스티브 잡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애플도, IT도, 창조성도, 혁신도, 경영도,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도 말하기 힘들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부모 집의 조그마한 차고에서부터 시작해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된 애플의 놀라운 성장 비밀, 애플 I에서 시작해 매킨토시와 토이 스토리를 거쳐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는 혁신적 제품들의 탄생 비화, 그리고 애플의 CEO 사임 이후 두 달여에 걸친 그 마지막 순간까지 처음 공개되는 온갖 이야기들과 함께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전설의 프레젠테이션 준비 과정에서 극도의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경영 비법까지,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최종 멘토 스티브 잡스의 혜안이 빛나는 명언으로 가득 차 있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꿈꾸고 아껴 왔던 것들을 충격적으로 고백한 이 책의 내용은 그동안 잡스를 다루었던 유사한 도서를 모두 넘어선다. 그 모든 책들은 예고편에 불과했으며, 이 책은 그에 관한 온갖 낭설들과 추측들을 한 번에 정리해 버린 최종 버전인 셈이다.
저자 아이작슨은 2009년부터 2년간 잡스와 함께 어린 시절 집을 방문하거나 함께 산책을 하며 그를 40여 차례 집중 인터뷰했고, 그의 친구, 가족, 동료뿐만 아니라 그에게 반감을 가진 인물이나 라이벌까지 포함하여 100여 명의 인물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빌 게이츠를 비롯해,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핵심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그리고 애플의 후계자 팀 쿡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IT의 영웅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잡스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개인적인 일화부터 공식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까지, 그의 괴팍한 채식주의 믿음과 선불교로부터 받은 영향, 디자인 스튜디오에서의 일, 픽사에서의 비전, 애플의 혁신 정신 등 잡스의 개인사 전체가 담겨 있다. 잡스는 아이작슨이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약속받은 대로,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으며 사전에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 전기는 그의 내밀한 이야기가 어떤 가감도 없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20장과 40장에는 그동안 자세히 드러난 적 없는 그의 복잡한 가족사와 연애사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생모와 친여동생을 만나게 된 일화, 나중에 인정한 딸 리사와의 오르락내리락하던 관계, 그가 만난 여인들, 그리고 죽기 전까지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와 사실은 마주친 적이 있다는 사실 등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잡스는 이 전기에 실을 사진을 아이작슨과 함께 고르기도 했다. 그가 직접 고른 1장에 실린,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은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그리고 40장과 41장에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다.
비밀주의를 고수하던 스티브 잡스가 작가 아이작슨에게 이 책을 쓰게 한 또 다른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죽기 며칠 전 아이작슨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어 주진 못했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이유를 알기를,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평생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정열을 다했던 사람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남긴 이 사랑의 언어는 읽는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6개 산업 부문에서 놀라운 혁명을 일으킨 창조적 기업가이자 기술과의 소통 방식을 바꾼 미디어 혁명가, 기술의 대중 친화력을 중시한 기술의 미니멀리스트이자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시킨 디지털 철학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끝없는 열정에 미친 남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사랑하고 꿈꾸고 열망한 모든 것, 그동안 숨어 있던 모든 이야기가 지금 그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공개된다.

■ 추천사
IT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우리 삶의 방식마저 바꿔 버린 스티브 잡스를 두고 사람들은 IT 영웅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가 보여 준 혁신은 놀라운 것이었고, 그가 자신의 제품에 담으려고 했던 가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에디슨이 죽은 지 80년이 되었어도 우리 모두 그를 기억하듯이, 100년 후 사람들도 잡스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까지 잡스가 만든 제품과 애플의 경영 전략에 관심을 둔 책은 많았어도 그가 진정 어떤 인물이었는지 진지하게 접근한 책은 없었다. 모두들 그의 성공에만 관심을 가졌고, 그의 화려한 쇼맨십과 카리스마, 그가 이뤄 낸 것만 바라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를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진짜 이유는 그의 존재 방식에 있다. 이 책은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으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보여 주며, 그가 창조성의 아이콘이 된 원천을 밝혀낸다.
출신도 학력도 보잘것없었던 이가,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가난한 집에 입양되어 결국 대학도 그만두어야 했던 이가 어떻게 이 시대의 영웅이 되었는가. 그것은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혁신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 정신 때문이었다. 아무도 쉽게 따라갈 수 없었던 그의 진정한 재능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것에 고도로 집중하는 열정이었다. 잡스는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하여 세계에서 가장 가치 높은 기업으로 평가받는 애플을 만들어 냈다. 지금 자신의 허름한 차고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드는 힘, 바로 열정과 도전 정신일 것이다. 이 책은 이 시대 최고의 멘토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유산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2004년 12월 6일, 스티브 잡스와 처음 대면한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미래 IT 혁신의 전기가 될 비장의 무기를 주머니 속에 감춘 채 그와 마주 앉았다. 플래시메모리였다. 그의 압도하는 눈빛, 그리고 그가 내보이는, 우주를 품은 듯 미래를 읽어 내는 범접하기 어려운 혜안은 나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그날 이후 그와 나는 혁신의 시대를 함께 개척해 나갔다.
스티브 잡스는 위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는 자기를 희생해서 온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다 준 진정한 박애주의자였다. 인류는 그에게 큰 빚을 졌다.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그가 그렇게도 원했던, 사람과 기술이 쉼 없이 소통하는 세상을 완성시키는 것만이 남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추모가 아닐까? 이 책은 그 방법을 알려 준다.
미래는 대융합의 시대다. “더 이상 덧붙일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의 말이 지금 귓전을 맴돈다.
- 황창규(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장, 전 삼성전자 사장)

<책속으로 추가>

“스티브는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매킨토시 개발 팀은 단지 수익을 올리는 제품이 아닌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잡스의 열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잡스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설계 팀에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라고 독려했어요.” 허츠펠드는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잡스는 심지어 팀을 데리고 루이스 티파니의 유리 제품 전시회를 보러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은 적도 있었다. 대량생산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품을 창출하는 티파니의 예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06~207쪽)

매킨토시 출시 및 마케팅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스컬리는 맥 가격을 500달러 더 올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마케팅 비용이 생산비 못지않게 들어갈 것이므로 그 비용도 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잡스는 강하게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지향하던 신념이 완전히 깨집니다. 나는 맥으로 이윤을 짜내고 싶은 게 아니라 혁명적인 제품을 선보이고 싶은 거라고요.”(260쪽)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소!” 잡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열을 내며 말했다. “이 방 안을 둘러보라고!” 그는 화이트보드와 테이블 위, 그리고 모서리가 둥근 다른 직사각형의 물체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바깥을 내다보면 더 있소. 거의 보는 곳마다 다 있다고!” 그는 앳킨슨을 이끌고 산책을 하며 자동차 창문과 게시판, 거리의 표지판 등을 보여 주었다. “세 블록 왔는데 열일곱 가지 예를 찾았어요.” 잡스가 말한다. “그가 완전히 납득할 때까지 여기저기에서 다 찾아냈지요.” “그가 마침내 주차 금지 표지판에 다가갔을 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네, 회장님 말씀이 옳아요. 제가 졌습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을 기본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허츠펠드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빌은 다음 날 오후 만면에 웃음을 띠고 텍사코 타워스로 돌아왔어요. 그의 데모는 이제 모서리가 둥근 아름다운 직사각형들을 굉장한 속도로 그릴 수 있게 되었지요.” 리사와 맥, 그리고 이후 거의 모든 컴퓨터의 대화 상자와 창 들은 둥근 모서리를 가지게 되었다.(217~218쪽)

잡스의 제품 출시 쇼는 정교하게 구성되었다. 그는 청바지와 터틀넥을 입고 생수병을 든 채 무대를 느긋하게 거닐었다. 객석은 지지자들로 가득했다. 행사장 분위기는 기업의 제품 발표회라기보다는 어떤 종교의 부흥회와 비슷했다. 기자들 자리는 객석 중앙에 마련되었다. 잡스는 슬라이드에 들어갈 내용과 연설의 요점을 직접 작성하고 수정한 다음, 그것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동료들과 함께 심사숙고하며 개선해 나갔다. “그는 각각의 슬라이드를 예닐곱 번씩 수정해요. 프레젠테이션 전날 밤늦게까지 슬라이드를 점검하는 동안 저도 그의 곁에 함께 있곤 한답니다.” 잡스의 아내 로렌 파월의 말이다. 잡스는 그녀에게 슬라이드 세 가지 버전을 보여 주고 어느 것이 가장 나은지 묻곤 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심하게 집착하는 편이에요. 발표 예행연습을 한 차례 한 다음, 한두 가지 단어를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예행연습을 한다니까요.”(574~575쪽)

그는 친구가 찍어 준 결혼식 사진들을 찾아 두꺼운 종이 판지에 크게 출력해 우아한 상자에 넣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폰을 뒤져 그 상자에 넣으려고 쓴 편지를 찾아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20년 전에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요. 우린 그저 직감에 끌렸어요. 당신은 나를 황홀하게 했어요. 아와니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눈이 내렸지요. 수년이 지나 아이들이 태어났고, 행복한 적도 있었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나빴던 적은 없었어요. 우리의 사랑과 존경은 점점 더 커졌지요.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이렇게 20년 전에 시작한 그곳으로 돌아왔네요. 좀 더 늙고 좀 더 현명해지고 얼굴과 가슴에 주름도 늘었지요. 이제 우리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비밀, 경이로움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어요. 나는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낭송을 끝마칠 무렵 그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829쪽)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721쪽)

혁신을 꾀하려면 언제나 끊임없이 밀어붙어야 한다. 밥 딜런은 그저 저항 가요나 계속 불러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발전을 꾀해야 했고, 그리하여 1965년에 일렉트로닉으로 변화를 시도해 발전을 꾀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1966년 유럽 투어는 그의 가장 훌륭한 공연이 되었다. 그는 공연 때마다 먼저 일련의 어쿠스틱 기타 곡들을 들려주었다. 청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면 그는 훗날 ‘더 밴드’가 되는 백 밴드를 소개했고 그들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청중들은 여기저기서 야유를 보냈다. 한번은 그가 「라이크 어 롤링 스톤」 을 부르려고 하는데 청중석에서 누군가가 “유다 같은 배신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딜런은 말했다. “열라 크게 연주해!” 그들은 그렇게 했다. 비틀스도 똑같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나아가면서 그들의 예술을 갈고닦았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딜런이 말했듯이 태어나느라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885~886쪽)

그는 죽음에 직면하니 내세를 믿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시인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
니다.”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그는 또 한 번 멈췄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8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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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박준홍 님 2014.03.03

    중고 부품상이 아버지에게 자동차 부품을 구하는 낙원이었다면 잡스에게는 그 가게가 전자 기기를 접할 수 있는 천국이었다.

  • 이상우 님 2014.01.18

    잡스는 고객을 대우하는 방식에서 애플이 타사와 달라야 한다면서 애플 II의 제품 보증 기간을 1년으로 하자고 고집했다.

  • 이상우 님 2014.01.18

    잡스는 고객을 대우하는 방식에서 애플이 타사와 달라야 한다면서 애플 II의 제품 보증 기간을 1년으로 하자고 고집했다.

회원리뷰

  • 스티브 잡스 2013.10.3 | su**737 | 2014.10.3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8. 제록스와 리사 : GUI 불가능하다고는 아예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결국 해낼 수 있었던...

     

     

    8. 제록스와 리사 : GUI

    불가능하다고는 아예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결국 해낼 수 있었던 거지요.

     

    11. 현실왜곡장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어차피 뭔가를 만들거라면 이왕이면 아름답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12. 디자인 : 진정한 예술가는 단순화에 목숨 건다.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해. 박스 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야. 훌륭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장롱 뒤쪽에 저급한 나무를 쓰지 않아.

     

    밤에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책을 평가한다.

     

    13.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타협하지 마라."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언젠가 모두 함께 보낸 시간을 돌아보며,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잊어버리거나 웃어넘길 것이고, 그 때를 황홀했던 절정기로 여기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14. 펩시 챌린지

    "우리가 이 지구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잠깐입니다. 정말로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기회를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물론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젊음을 아직 잃지 않았을 때 많은 걸 이뤄 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17. 이카로스 올라가는 것은 ... ...

    "힌두교 경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첫 30년 동안은 당신이 버릇을 형성하고,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은 버릇이 당신을 형성한다.'"

     

    34. 메멘토 모리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화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은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 한글판 20은 영어판 20, 21로 구성되어 있고 약간의 text의 차이가 나타난다.   1. Joanne S...
    한글판 20은 영어판 20, 21로 구성되어 있고 약간의 text의 차이가 나타난다.
     
    1. Joanne Schieble의 아버지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딸의 이성교제에 엄격하였다. 그녀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에게 무슬림과 결혼하겠다고 말하기도, 낙태하기도 쉽지않았다. 그녀는 결국 대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부모에게 입양시키기로 결정했다. 첫 대상자는 변호사 부부였지만 곧 거절되었다. 잡스가 변호사의 양자가 되었다면 어쩌면 스마트폰도, SNS도 박원순 서울시장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잡스의 가방끈이 짧은 양부모는 대학에 꼭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입양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양부모는 어린 잡스가 그 때문에 놀림을 받고 울며 들어올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We specifically picked you out.)"
     
    잡스는 자동차정비도사인 아버지를 통해 전자공학을 배웠다. 잡스는 초등4학년때 이미 고2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월반했지만 오히려 외톨이가 되어 괴롭힘을 당하자 떼를 써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운좋게 그 집은 차고가 있는 집이었다. 고동학교 시절엔 Larry Lang을 통해 컴퓨터를 만날 수 있었고 Hemigway를 닮은 선생님을 통해 인문학의 깊은 맛을 볼 수 있었다.
     
    2.McCollum선생에게 수업을 듣던 시절 잡스는 Stephen Wozniak이라는 졸업생 선배와 친구가 된다. 여학생보다 트랜지스터가 더 친밀한 워즈는 Bill Fernandez의 차고에서 함께 컴퓨터를 완성시키고 잡스의 이름은 소개받는다. 만나자마자 동질성을 느낀 둘은 컴퓨터와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다. 둘은 장난을 통해 전자공학에 대한 내공을 쌓아가다 블루박스를 만들어 무료장거리통화를 시도해 성공한다. 키신저를 흉내내 교황청과 전화통화를 하기도 한다.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만약 블루박스가 없었다면 애플도 없었을 겁니다.(If it hadn't been for the Blue Boxes, there wouldn't have been an Apple.)"고 잡스를 회상했다. (2011.12.02)
     
    3.잡스는 고교3학년때 LSD를 시작했고 히피성향의 여친 Chrisann Brennan에게도 권했다. 양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오두막에서 동거하였다. Joanne Schieble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학진학을 양부모가 권하자 처음에는 거부하다 가장 등록금이 비싼 Reed대학을 선택했다. 입학식 때는 반항심 때문에 부모가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게 했다. 그곳에서 그는 채식주의와 선불교, 명상과 약물 환각과 록 음악 사이를 넘나들었다. 잡스는 현금을 얻기위해 타자기를 팔려다 Robert Friedland를 만났다. 그를 만나면서 수줍음을 타던 잡스가 세일즈하는 법 상황을 오픈하고 주도하는 법을 배웠다고 친구 Kottke가 말했다. 나중에 억만장자 광산업자가 된 그를 “젊은 시절에 영적 귀감으로 삼았던 인물이 나중에 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광산업자로 변한 모습을 접하는게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아시겠어요(It was a strange thing to have one of the spiritual people in your young life turn out to be, symbolically and in reality a gold miner.)고 잡스는 말했다.
     
    잡스는 필수과목 수강에 대한 불만과 대학학비부담을 이유로 대학을 자퇴했다. Reed대학이 수업청강을 허용해준 덕분에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Mac의 다양한 활자체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4. 1974년 2월 잡스는 비디오게임 제조사인 Atari에 입사했다. 잡스의 태도를 본 담당관은 상사에게 “경찰을 부를까요, 아니면 들어오게 할까요?”물었다고 한다. Alcon은 그 친구에게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말했고 다른 직원들의 반발을 혼자 야간근무를 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스티브는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철학적이었습니다.”창업자 Bushnell의 말이다.
     
    잡스는 인도에 다녀왔고 그 후에도 명상수련회에 계속 참석했다. 인도에서 돌아와 Atari에 재입사했을때 Bushnell은 게임프로그램 설계를 지시했다. 잡스보다 위즈의 능력을 기대한 것이다. 위즈는 다른 전문가들이 예상한 2~3개월 짜리 설계도를 사흘 안에 마무리했다. 하지만 잡스는 수입은 제멋대로 배분했다. Atari에서의 경험은 잡스가 사업과 설계에 대한 접근방식을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Bushnell은 잡스에게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Pretend to be completely in control and people will assume that you are.)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5. 반문화 운동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은 컴퓨터를 인간성 말살을 암시하는 불길한 기계로 Pentagon이나 권력자들이 이용할 도구로 보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21세기를 창조한 사람들은 결국 스티브 같은 서부의 히피들이었다. 그들은 다르게 사고할 줄 알았다. 미국의 동부, 영국,독일, 일본은 다른 사고방식을 장려하지 않았다. 1960년대의 무정부주의적 사고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잡스는 아침마다 명상을 했고 Stanford대학에서 물리학 수업을 청강했으며 밤이면 Atari에서 일하며 자기 사업을 꿈꿨다.
     
    Homebrew Computer Club에 가입한 워즈는 1975년 6월 29일 키보드의 글자를 쳐서 화면에 띄우는데 성공했다. 잡스는 흥분했다. 잡스는 Ron Wayne을 시켜 워즈를 설득하여 1976년 4월 1일 Apple사 설립계약서를 작성했다. 잡스는 Paul Terrell 의 주문을 받고 Creamer Electronics 부품상에서 외상으로 부품을 받아 제품을 만들어 수익을 남겼다. 그들은 1976년 노동절 제1회 개인용 컴퓨터 축제에 AppleⅠ을 안고 참석했다. AppleⅠ은 그것을 만든 두 스티브 만큼이나 애송이처럼 느껴졌다. (The AppleⅠ, on the other hand, appeared as scruffy as its creators.)
     
    6.Atlantic City의 PC축제기간에도 워즈는 AppleⅡ를 연구하고 있었다.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다. 잡스는 Mike Markkula를 소개받았다. Markkula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3가지로 정리했다. 공감, 집중, 인상이었다. 1977년 1월 3일 the Apple Computer Co.가 공식출범했다. AppleⅡ는 향후 16년간 600만 대 가까이 판매되었다. Regis McKenna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워즈는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지금도 컴퓨터 애호가들이 드나드는 상점에만 남아있었을 겁니다.(Woz designed a great machine, but it would be sitting in hobby shops today were it not for Steve Jobs.)
     
    7. Chrisann Brennan은 애인에서 친구로 다시 친구의 애인으로 관계가 변해갔다. 1975년 Brennan은
    Greg Calhoun과 인도여행을 함께 떠나 각기 돌아왔다. Brennan은 잡스와 Kottke가 사는 집에서 함께 지내더니 몇 달 후 임신을 하였다. 잡스는 방관자의 태도를 보였다. 잡스와 Brennan이 23살 때의 일이었다. San Mateo 법원의 소송으로 친자확인검사를 하였다. “친부일 가능성...94.41%(Probability of paternity...is 94.41%)"로 판정되었다.
     
    8.Apple의 판매량은 1977년 2500대에서 1981년 21만대로 급증했다. 그러나 잡스는 ‘잡스의 컴퓨터“를 원했다. 하지만 AppleⅢ는 실패했고 LISA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1977년 Xerox는 Apple에 투자의사를 보였다. 잡스는 PARC의 신기술을 보여주는 조건을 제시했다. 상호간의 눈치작전 끝에 잡스는 설명회에서 3가지를 알아냈다. 네트워크 시스템의 가능성.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작동방식 그리고 graphical interface와 bitmapped screen이었다. Apple이 PARC의 기술을 도둑질한 것을 잡스는 이렇게 변호했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발명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과 말했습니다.”(“Picasso had a saying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sl')
     
    9.1977년 1월 출범 당시 Raskin사의 가치는 5309달러였으나 1980년 12월 기업 공개시 17억 9000만달러가 되었다. 25세의 스티브 잡스는 2억 5600만 달러의 자산가가 되었다. 1981년 10월에는 <아이언시>잡지의 표지모델로 나오면서 ‘비즈니스를 영원히 바꿔놓은 인물’로 소개되었다. 부와 명예의 주인공이 되었음에도 잡스는 여전히 스스로를 반문화 히피로 여겼다. 그는 “1960년대를 휩쓸었던 이상주의 바람은 아직도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The idealistic wind of the sixties is still at our backs.")라고 말했다.
     
    10.1000달러 이하의 제품을 구상한 Jef Raskin과 우주에 흔적을 남길 수 잇는 제품을 만들려는 잡스는 충돌했다. 결국 Raskin은 Apple을 떠나고 그 자리에 Andy Hertzfeld를 앉혔다. 1981년 봄 무렵 잡스가 사람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기준은 제품에 대한 강력한 열정이 있는 지 여부였다.(Job's primary test for recruiting people in the spring of 1981 to be part of his merry band of pirate was they had a passion for the product.) 잡스는 Raskin에 이어 Mike Scott도 사장직에서 몰아내고 강력한 권한을 장악하게 되었다.
     
    11.Debi Coleman은 “한마디로 자기 충족적 예곡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불가능한 일을 해내도록 만들었으니까요.”(It was a self-fulfilling distortion, she claimed, You did the impossible because you didn't realize it was impossible.)
     
    Hoffman은 “그는 사람들의 약점이 뭔지, 그들을 위축되고 움츠러들게 만드는게 뭔지 알아내는데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었어요.”
     
    Mac팀은 1981년부터 매년 잡스에게 가장 당당하게 맞선 사람을 뽑아 상을 수여했다.
     
    12.Eichler주택에서 성장하면서 독특하게도 잡스는 단순하고 깔끔한 modernism을 이해했다. 아버지에게서는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즐겨들었었다. 1983년 잡스는 앞으로 sony style은 지고 단순성을 강조하는 Bauhaus 스타일이 뜰 것을 예측했다. 그는 Apple의 제품이 깔끔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디자인의 주안점은 사용자들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하여 그는 수도없이 Mac 팀을 들볶았고, 소리를 지렀고, 토론했다. 마침내 디자인이 완성되었을 때 잡스는 Mac 팀을 모아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Real artists sign their work.)”그가 말했다. 사인을 하며 그들은 우주에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를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13.잡스는 Apple의 이미지를 골리앗 IBM과 싸우는 반항아로 설정했다. Apple내에서도 Mac을 LISA와의 경쟁관계로 설정했다. Apple은 잡스를 통제할 수 없었다. 잡스의 독단은 1982년말
     
    잡스는 무능한 사람은 철저하게 무시했지만 주관이 있는 부하는 마음 속 깊이 인정해 주었다.
     
    14. 잡스는 Apple의 사장이 되기에는 아직 너무 거칠고 미숙하다고 평가되었다. 잡스는 John Scully에 주목했다. 잡스의 집요한 구애작전이 계속되었다. 서로 탐색과 협상이 교차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잡스는
     
    Scully를 도발했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Do you want to spend the rest of your life selling sugared water, or you want s chance to change the world)”
     
    결국 Scully는 연봉 50만 달러와 보너스 50만 달러의 조건으로 Apple에 영입되었다.
     
    15. 1984년 1월 16일 Mac팀은 Macintosh를 위한 code작업을 완료해야 했다. 1주일을 남기고 팀원들에게 bug가 발견되었다. 팀장은 잡스에게 전화를 해서 2주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잡스는 16일까지 할 수 있으니 하라고 명령했고 팀원들은 결국 해냈다. 잡스의 현실왜곡장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잡스는 광고 에이전시 Chiat/Day의 Lee Clow와 George Orwell에서 모티브를 삼아 “왜 1984년은 ‘1984년’과 다른가”를 컨셉으로 잡고 있었다. Macintosh를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용감한 전사로 만드는 광고를 만들었다. 청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지만 이사회에서는 최악의 광고로 평가하고 반대했다. 결국 이 광고는 이 시대 최고의 광고로 선정된다.
     
    Macintosh의 출시는 1월 24일 De Anza대학 강당에서 열렸다. 청중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있었다. 기자가 잡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장조사를 했느냐고 물었다. 잡슨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시장조삭같은 걸 하고 전화를 발명했습니까.(Did Alexander Graham Bell do any market research before he invented the telephone?)”
     
    16. 1984년 Apple의 연매출은 15억 달러에 달했지만 Microsoft는 고작 1억 달러였다. 당시에는 잡스가 왕이었고 게이츠는 신하였다. 잡스는 Microsoft에게 2년간 Excel을 오로지 Macintosh에만 독점공급하고 IBM PC버전을 만들지 않는다면 Apple에서 BASIC의 Macintosh버전을 개발하는 팀을 없애고 Microsoft의 BASIC에 대한 무기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자고 비밀협상을 했다. 이후 각종 협상에서 Microsoft가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그 후 게이츠가 독자적으로 GUI를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게이츠와 잡스는 충돌했다. 게이츠는 잡스에게 재치있게 반박했다. “글세요. 스티브, 이 문제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둘에겐 제록스라는 부유한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텔레비전을 훔치려고 칩입했다가 당신이 이미 훔쳐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I think it's more like we had this rich neighor named Xerox and I broke into his house to steal the TV set and found out that you had already stolen it.)”
     
    17. 1984년 5월 Scully가 합류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잡스는 감동적인 축하연을 벌였다. 1985년 2월 잡스는 서른 살의 생일잔치를 1000명을 초대해서 성대하게 치렀다. 하지만 그 당시 LISA의 매출은 전무했고 Macintosh는 월 1만 대 이하로 떨어졌다. Andy Hertzfeld가 휴직계를 냈고 Burrell Smith, Bruce Horn, 그리고 Steve Wozniak이 Apple을 떠났다. Mike Murray는 잡스 본인에게 그의 태도와 ‘인격말살식 경영방식’을 비난했다.
     
    Scully와 잡스는 회사개편안을 놓고 충돌했다. 임원회의는 Scully를 선택했다. 이제는 반란군 지휘관이 아닌 순종적인 병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There was no option left other than to play the good soldier rather than the renegade commander.)
     
    18. 1985년 9월 17일 잡스는 Apple에 편지를 보내 사임을 통보했다. 그리고 5명의 해적들과ㅏ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는 10만 달러를 들여 NeXT의 로고를 만들었다. 잡스에게 NeXT라는 이름과 로고는 세계적 수준의 감각과 정체성을 가진 사업체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But for Jobs it meant that NeXT was starting with a world-class feel and identity, even if it hadn't yet designed its first product.)
     
    얼마 후 자금난에 시달리던 잡스에게 Ross Perot가 나타났다. Perot는 자금과 신뢰도, 인맥을 연결해주었다. 빌 게이츠와는 경쟁관계였다. 잡스는 IBM의 CEO John Akers를 설득해 합작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큰 소득은 없었다. 1988년 10월 12일 NeXT의 새 컴퓨터를 멋지게 세상에 선보였다. 공장은 월 1만대의 생산준비를 갖춰 둔 상태였으나 한 달에 100대 수준으로 판매되었다.
     
    19. 1986년 1월 잡스는 Pixar를 인수했다. 1000만 달러를 투자해 회사의 70%를 소유했다. 한 동안은 Ed Catmull과 Alvy Ray Smith가 운영하게 놔두었으나 곧 자신의 역할을 확대했다. John Lasseter는 잡스와 죽이 잘맞았다. Lasseter가 만든 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Pixar가 노력해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 콘텐츠 세 영역 모두 손해가 나고 있었다.
     
    Lasseter가 만든 는 1988년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Lasseter가 잡스에게 축배를 건넸다. “위대한 영화를 만들라는게 당신의 유일한 부탁이었습니다.(All you asked is that we make s great movie.)"
     
    20. 잡스는 생모 Joanne Schieble을 찾아 만났지만 생부 Abdulfattah 'John' Jandali는 만나려하지 않았다. 친동생 Mona Simpson은 소설가였다. 친딸 Risa Brennan과의 사이는 변덕스러웠다. 잡스는 1982년 포크송 가수 John Baez와 만나 사귀다가 대학생 Jennifer Eagn과 사귀기도 했다. 만난 여인 중 가장 아름다웠던 Tina Redse에 대한 애정 표현은 열정적이었으며 1985년 Apple에서 물러났을 때 유럽 여행 중에 그냥 프랑스에 머물까하는 환상도 가져보았다. 하지만 그는 야심까지 버릴수는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 자신이 정의되는 거야,(I am a reflection of what I do.)"
     
    21. 잡스의 이상형을 데이터로 분석한다면 똑똑하고 가식이 없고 당당하고 평온하고 교육수준이 높고 독립심이 강하지만 양보할 준비도 돼 있어야 했다. 털털하면서도 천사같고 그를 다룰 줄도 알고 안정적 이어야하고 팔다리가 길고 금발에 유머감각이 있고 채식주의자여야 할 것이다. 1989년 10월 그런 여인이 나타났다. Laurence Powell이라는 여인이었다. 그 둘은 1991년 3월 18일 결혼식을 올렸다. 얼마 후 태어난 Reed와 95년생 Erin, 막내 Eve는 98년에 태어났다.
     
    잡스는 부를 과시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불교에 몰입하던 시절 잡스가 배운 교훈은 물질적 소유가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방해한다는 사실이었다.(The lesson Jobs learned from his Buddhist days was that materina possessions often cluttered life rather than enriched it.)
     
    22. Pixar의 잡스와 디즈니의 Jeffrey Katzenberg는 기질이 비슷했다. John Lasseter의 를 만드는 과정에서 Katzenberg의 입김이 강했으나 결과물은 실망스러워갔다. Lasseter는 자기 식으로 대본을 다시 수정해서 완성시켰다. 는 상업성, 예술성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Pixar는 개봉 일주일 후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잡스의 주식가치는 20배 이상 늘어나 12억 달러가 되었다. 잡스는 디즈니와 재협상을 완결지었다. 이제 잡스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기업 두 개 즉 Apple과 Pixar를 탄생시킨 인물이 되었다.(And he created two of the best of his era: Apple and Pixar.)
     
    23. 1988년 NeXT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곧 식어버렸다. 잡스는 몇 년 후 고통스럽지만 hardware개발을 포기했다. 잡스를 퇴출시킨 Apple의 주가도 1991년 70달러에서 14달러까지 떨어졌다. 1996년 위기에 처한 Apple의 CEO인 Gil Amelio는 Jean-Louis Gasse와 스티브 잡스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Amelio는 잡스를 선택했다.
     
    다음날 잡스는 Pixar를 찾아와 Lasseter에게 자신을 설명했다. “내가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유일한 이유는 애플이 죽지 않아야 세상이 더 살기좋은 곳이 되기 때문이야.(But the only reason I want to do it is that the world will be better place with Apple in it.)”
     
    24. 잡스는 Larry Ellison에게 Apple에 복귀하가 위한 전략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는 두 가지 욕심이 있었다. 위대한 제품과 영구히 지속하는 회사설립이었다. 잡스는 결국 Amelio를 몰아냈다. 하지만 바로 승리의 잔을 마시기보다는 서서히 이사회를 장악해 나갔다. 그는 Milk Markkula를 퇴진시키며 조언을 구했다. Markkula는 “회사를 재창조해서 다른 것을 하게 만들어야 해......나비처럼 탈바꿈하는 그런 조직이 돼야해(You've got to reinvent the company to do some other thing,.....You've got to be a butterfly and have a metamorphosis.)”라고 조언했다.
     
    잡스는 Microsoft와 타협점을 찾았다. Mac을 위한 software개발과 Apple에 대한 투자 두 가지였다. Apple의 주가는 26.31달러로 상승했다.
     
    25. 1997년 7월초 잡스는 Chiat/Day의 creative director인 Lee Clow에게 전화를 했다. 잡스의 간청에 Clow는 아이디어와 함께 나타났다. “Think Different"라는 구절이 잡스를 사로잡았다.
     
    잡스는 공석이 된 Apple의 CEO를 찾고 있었지만 공백이 길어질수록 임시직이었던 잡스의 위치는 영구직이 되어버렸다. 잡스는 Mac 호환제품생산을 중단시키고 end-to-end로 복귀시겼다. 잡스는 제품 종류의 70%를 없애고 직원을 3000명이상 해고했다. 잡스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은 ‘해야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Deciding what not to do is as important as deciding what to do.).”라고 말했다.
     
    26. 영국의 Ive는 Apple의 디자인 팀장으로 있었다. Amelio의 디자인에 대한 이해에 실망해 사직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었다. 디자인을 중시하던 잡스는 외부에 눈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으나 어느날 Ive와 대화를 나누고 의기투합했다. Ive와 잡스는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잡스와 Ive는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할 때마다 그것을 어느 정도로 단순화할 수 있는가를 놓고 씨름했다.(Jobs and Ive wrestled with each new design to see how much they could simply it.)
     
    27. 1998년 5월에 등장한 iMac은 가정 소비자시장을 노린 컴퓨터였다. disk drive가 장착되고 floppy disk drive는 제거되었다. Ive와 Coster가 스케치한 흥미로운 디자인은 단순성을 표현한 동시에 진정한 단순성이 수반하는 깊이까지 드러냈다.
     
    Ive의 팀은 Apple의 한국제조업체와 협력하여 케이스 생산공정에 완벽을 기했다.(Ive and his team worked with Apple's Korean manufacturers to perfect the process of making the case.)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단어가 나온 부분이었다.
    iMac은 1998년 처음 6주 동안 27만 8000대 그해 말까지 80만대가 팔리며 Apple역사상 가장 빠르게 판매된 컴퓨터가 되었다.
     
    28.Apple의 운영본부장을 맡은 인물은 Tim Cook이었다. 재직 초기 중국 공급업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에 그는 담당 간부에게 출장을 지시했다. 그 간부는 짐을 꾸릴 틈도 없이 곧장 San Francisco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는 Cook의 심복이 되었다.
    잡스는 그의 목표가 ‘머저리가 급증하지 않도록’ 즉 회사에 이류 인재가 넘치지 않도록 경계했다. “저는 A급 선수들은 A급 선수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But I realized that A players like to work with A players.)
     
    29. 잡스는 고객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 모두를 통제하고 싶어했다. 1999년 말 소매업전문가 Ron Johnson을 채용하여 직접 고객과 접하게 만드는 매장을 구상했다. Apple store를 만들자는 잡스의 제안에 이사회에서는 Drexler만이 지지했다.
    2001년 5월 19일 첫 번째 Apple store가 개점한 뒤 10년 사이에 317개가 오픈했다. 매장 한 곳당 평균 방문자 수는 일주일에 1만 7600명이고 평균 수입은 340만 달러이다.
     
    잡스의 아이디어를 Apple의 전 CFO였던 Joseph Graziano는 이렇게 비판했었다. “Apple의 문제는 치즈와 크래커에 충분히 만족하는 세상에서 아직도 캐비어를 대접하는 것이 성장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Apple‘s problem is it still believes the way to grow is serving cavier in a world that seems pretty content with cheese and crackers.)"
     
    30. 잡스가 새로운 디지털 혁명을 구상할 수 있는 이유 4가지를 들 수 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대가, 완벽주의, 단순미를 추구하는 본능, 승부사기질. 잡스는 컴퓨터가 디지털 허브로 진화한다는 비전을 품었다. Apple만이 hardware software 운영체제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잡스는 2000년 가을부터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개발을 추진했다. Jon Rubinstein은 Tony Fadell이란 인물을 찾아냈다. 2001년 10월 23일 잡스는 iPod을 처음 공개했다.
     
    잡스는 “만약 누군가가 애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 제품을 보이겠습니다.(If anybody was ever wondering why Apple is on the earth, I would hold up this as a good example.)“라고 말했다.
     
    31. 2002년 Apple은 불법 다운로드 문제에 봉착했다. 하지만 Apple은 극적으로 음반회사와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음악산업의 역사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2003년 4월 28일 iTunes Store를 처음 선보였다. 2003년 10월에는 윈도용 iTunes의 출시를 발표했다. 소니는 자기 잠식 효과를 두려워했으나 잡스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iPone이 iPod의 매출을 잠식하고 iPad가 lantop의 매출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잡스가 계획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2007년 1월 iPod의 매출로 발생한 수익이 Apple 전체 수입의 절반에 달했다.
     
    “나이가 들수록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준이 시시한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사람들이 음악이나 예술을 우리처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The Zune was crppy because the people at Microsoft don't really love music or art the way we do.) 우리가 승리한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음악을 사랑해서입니다.
     
    논어(論語)의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낙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새 버전인 듯하다.
     
    32. 2005년 초 이후 하얀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의 iPod에는 무슨 노래가 들어있지요.(What's on your iPod)?
     
    이제 iPod은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잡스의 iPod 역시 마찬가지였다. 잡스의 삶에 영향을 끼친 음악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Bob Dylan을 만나고 얼어붙은 잡스, The Beatles를 흠모하는 잡스가 담겨져 있었다. Bono와의 합의도 그런 바탕 위에서였다. 잡스는 Yo-Yo Ma를 설득해서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33. 1996년 초 Dream Works가 개미를 주제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재작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Lasseter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Antz' 때문에 Katzenberg와 잡스는 충돌했다. 결과는 Antz는 1억 7200만 달러, Pixar의 A Bug's Life는 그 두 배의 수익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즈니의 Eisner와 충돌했던 잡스는 Bob Iger가 디즈니의 수장이 되어 제의한 인수합병을 수락했다. Lasseter와 Catmull의 찬성을 얻고 계약은 성립되었다. 잡스는 “나의 목표는 언제나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위대한 회사를 세우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My goal has always been not only to made great products, but to build great companies.)”고 말했다.
     
    34. 2000년 출시된 Power Mac G4 Cube의 디자인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품에 선정될 정도로 매혹적이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시장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 60$에 이르던 Apple의 주가는 15$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잡스는 특이한 디자인을 추구해나갔다.
     
    잡스는 기꺼이 연봉 1달러를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량의 스톡옵션을 받고 싶어했다. (He wanted to be seen as someone willing to work for $1 a year, but he also wanted to have huge stock grants bestowed upon him.)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희생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35. 2003년 10월 그의 여의사가 CT촬영을 권했다. 검사결과 암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잡스가 가진 ‘마법적 사고방식’도 암에 대해서는 통하지 않았다. 수술을 하였지만 이미 전이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그는 Stanford 대학에서 연설할 것을 수락했다. 그는 자신의 3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학중퇴, 애풀에서의 해고, 암선고로 인한 깨달음
     
    Apple의 Rubinstein과 Ive는 계속 충돌했다.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잡스는 Ive를 선택했다. 잡스는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 직원은 아웃시켰다. “그는 일부러 논쟁시키려고 반대 입장을 취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결과가 나오니까요. 그러니까 의견충돌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절대 살아남지 못하는 겁니다.”(He takes contrary positions to create more discussion, because it may lend to a better result. So if you don't feel comfortable disagreeing, then you'll never survive.)
     
    하지만 문제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그의 성격을 나타낼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36. 잡스는 Microsoft의 엔지니어에게 자극을 받아 새로운 tablet 컴퓨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Ive의 의견을 받아들여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했다. 결국 widescreen iPod와 mobile phone 인터넷 통신기기를 하나로 결합한 iPhone을 2007년 1월 공개했다.
     
    2010년 말까지 Apple은 iPhone을 무려 9000만 대나 판매해서 전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창출된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거둬들였다.
     
    “스티브는 욕구를 이해하는 사람입니다.(Steve understands desire.)" Alan Kay의 말이다.
     
    37. 2008년 초 잡스의 암이 다시 퍼지고 있었다. 잡스는 건강 문제를 공개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잡스의 체중감소는 Apple의 주가를 2008년 6월의 188$에서 10월 초 97$까지 하락했다. 잡스도 결국 간이식에 동의했다. 2009년 3월 21일 교통사고가 난 20대 중반의 젊은 남자의 장기를 이식받았다. 잡스는 그 와중에도 병원마스크의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그러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겠다고 지시했다.(Though barely able
    to speak, he ordered them to bring five different option for the work and he would pick a design he liked.)
     
    38.태블릿 PC를 기획하면서 처음에는 인텔과의 공동 진행을 추진했다. 하자만 Tony Fadell이 사직을 거론하면서 반대했다. 결국 Apple은 P. A. Semi사를 인수하고 그들에게 A4라는 맞춤형 SoC칩을 개발토록하고 South Korea의 삼성에서 제조하였다.( 두 번째 나온 Korea 단어이다.)
     
    2010년 1월 27일 열린 iPad 발표에 대한 반응은 미지근했다. iPhone에서 apps의 허용을 반대하던 잡스는 결국 생각을 바꾸었다. 결국 iPhone앱스토어는 2008년 7월 iTunes에 문을 열었고 그로부터 9개월 후에 10억 번째 다운로드가 이루어졌다.
     
    잡스는 iPod으로 음악 산업을 변화시키고 iPad와 앱스토어로 출판, 저널리즘, 텔레비전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디어에 변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With the iPod, Jobs had transformed the music business. With the iPad and its App Store, he began to transform all media, from publishing to journalism to television and movies.)
     
    39. Google의 Android가 ‘개방형’ 플랫폼인데 반해 잡스는 통합형을 고집했다. Mark Fiore의 풍자 애니메이션 앱을 거부하고 포르노물도 거부하면서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로 보일 위험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010년 6월에 출시된 아이폰 4는 안테나에 작은 틈이 막히는 결함을 간과하였다. 안테나 문제가 확대디자 잡스는 4개 문장으로 이를 표현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는 완벽하지 않지요. 우리 모두 그걸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용자들을 만족시켜드리고 싶습니다.(We're not perfect. Phone are not perfect. We all knew that. But we want to make our users happy.)”
     
    40. 잡스는 병가중이었지만 2011년 3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iPad2 출시 행사에 참석하였다. 그는 또 한 번 인문학 거리와 과학 기술 거리의 교차로를 보여주는 슬라이드로 프리젠테이션을 마무리했다.
     
    그는결혼 20주년을 맞아 깜짝 파티를 계획했다. 예전에 묶었던 스위트룸을 비용에 상관없이 양보해달라고 청했다. 선약자는 흔쾌히 양보해 주었다. 그는 펀지를 낭독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비밀, 경이로움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어요. 나는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My feet have never returned to the ground.)
     
    그는 iCloud를 기획하고 본사 건물의 설계도를 꼼꼼하게 마무리했다.
     
    41. 잡스는 2010년 6월에 있을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꼭 가야한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신께 간청했다고 말했다. Reed는 잡스와 소름끼치도록 닮았고 잡스의 표정이 밝아지는 유일한 순간은 Reed가 들어올 때 뿐이었다.
     
    잡스는 Obama대통령에게 미국의 과제를 토론하기위한 미팅을 제안했고 이루어졌다.
     
    2011년 7월 암이 뼈와 다른 부분까지 퍼졌다. 8월 24일 그는 CEO직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는 편지로 자신의 사임을 발표했다. “안타깝게도 그 날이 왔습니다.( Unfortunately, that day has come.)"
     
    42. 내게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우리가 올라설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 준 사람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We try to use the talents we do have to express our deep feelings to show our appreciation of all the contributions that came before us, and to add something to that flow.)
     
    이것이 나를 이끌어 준 원동력이다.
     
     
     
    서문에서 저자가 강조한 잡스의 이 책에 대한 불간섭주의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저자가 과연 자신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겠고 좋게 바꾸고 싶은 욕구도 자연스러운 것인데, 또 평소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잡스의 성향에 비춰보더라도 놀라운 자제력이 아닐 수 없다. 당태종과 연산군은 그 유혹에 넘어갔고, 이성계와 세종대왕도 그 유혹 앞에서 갈등했었는데 잡스의 또 하나의 남다른 점이라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고 나니 미국의 특히 서부 실리콘 벨리의 생명력이 새롭게 느껴졌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손정의 등 20세기 IT왕조의 지배자들은 모두 그 문화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업적은 위대하지만 그 때문에 대중들은 더 행복해졌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기술 문명의 흐름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이미 내려올 수 없는 상황이다. 핸드폰없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청학동에서 원자폭탄의 폐해를 논하는 것처럼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제 이 시대의 Big brother들은 트워톨로지 등 핸드폰만 가지고도 개인의 모든 인간관계를 파악할 것이고 인터넷 접속 기록을 통해 당사자보다 본인을 더 잘 파악하는 사회가 이미 현실화되었다. 애플의 아이폰이 사용자도 모르게 개인의 위치정보를 수집 축적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전기에는 그에 관한 내용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잡스가 가진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성향에 비추어 볼 때 잡스는 무관하고 실무자들의 과잉충성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지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삼성 산하 제일기획의 X-파일 사건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든 정보를 알고있으려는 욕구.
     
    일본의 영화배우 기타노 타게시가 말한 ‘인류 총노예화 음모’라는 표현이 헛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것이다.
     
    잡스의 업적은 위대하다. 진시황 또한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진시황도 아버지가 둘이었다.) 당대에 6국을 병합하였고 한자를 통일시켰고 마차의 폭을 통일시켰고 도량형을 통일시켰다. 하지만 진시황 시대를 살아가는 평민들은 만리장성을 쌓느라 힘겨운 노역을 해야만 했다. 진승* 오광의 난이 일어난 연유가 그러하지 않았는가.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의 원조 격일 것이다.
     
    잡스는 이미 거대한 자본을 모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미국의 경제의 한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잡스의 존재는 미국경제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의 삶에 어떤 의미로든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잡스가 꿈꾸는 세상이 이루어지면 대중의 삶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잡스의 평소 삶에 비춰볼 때 대중의 삶에 관심이 있었을까. 인문학과 기술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는 달리 시리아나 대중의 삶에 관심이 있었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대중들은 핸드폰을 들고 인터넷을 사용하며 자발적으로 공물을 바친다. 매달 다달이 어떤 산정방법으로 누가 결정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사용한 통신비라는 공물을 바쳐야 한다. 물론 세금이 아니라 사용료를 납부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서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 또 하나의 월든 호수의 삶은 가능한 것인가.
     
    진시황 이후 초한지의 기록은 당대의 재상이었던 이사보다 풍운아 장량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IT시대에 장량의 꿈은 과연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   상당히 거북했다. 원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냉정히 평가해야하며 다양한 시각에서 다뤄야 하는데... 위의 인...
     
    상당히 거북했다.
    원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냉정히 평가해야하며
    다양한 시각에서 다뤄야 하는데...
    위의 인물이 사후의 오랜 시간과 평가를 거친 것도 아니고...
    맥과 아이 시리즈에 대해서 오해들이 많은데
    컴퓨터 시스템이나 mp3 시스템이 이 사람이 시초가 아니다.
    종종 착각을 하고 내가 모른다는 식으로 가르치려 드는 어이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컴퓨터 시스템이나 mp3 의 시스템을 최초로 만든 이들은 따로 있고
    그가 모든 것의 창조주나 기발함 혹은 혁신의 아이콘
    글쎄 여전히 애플도 많은 곳에서 소송을 이어가는 중이고
    하청업체인 폭스콘 사람들이 자살하는 등 문제가 있다.
    많은 디자인들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만들 것들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도 아니고...
    우리 나라 모 기업에 대한 평가를 할때 늘상 끼는 문제가 있다.
    그들의 재산 문제네 집안 문제네...
    이런 거를 들먹이면서 깍을때 난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 사람도 그렇게 치면 잘날거 없는데?
    내가 좋은 물건을 쓰는 거 같다. 예쁜 물건을 쓰는 거 같다.
    그래서 이 인물을 좋게 포장해야한다.
    이런 편견을 가지지 않고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물론 그가 만들어준 여러 시스템들 고맙고 잘 쓰고 있다.
    아이패드며 아이폰도 쓰고 있지만...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거나 혁신일수는 없다...
    이건 확실히 해둘 부분이다.
  • 배고픔미련과함께... | yo**y72 | 2013.04.06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스티브의 불꽃과도 같은 강렬한 삶에 대해 이렇게 자세한 전기를 볼수 있다는 것은 스티브 자신의 전기를 남기겠다는 의지로 인한 ...
    스티브의 불꽃과도 같은 강렬한 삶에 대해 이렇게 자세한 전기를 볼수 있다는 것은 스티브 자신의 전기를 남기겠다는 의지로 인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에서도 그 에너지가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집중되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생생한 전기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의 삶을 더 생생하게 경험 할 수 있다는 행운이다. 선택과 집중하는 삶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나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미국과 한정된 자원의 우리나라가 비교 되기도 한다. 노력하여 얻는 쟁취의 삶....아름다운 삶이지 않을까...
  • 신화 | ch**ju62 | 2013.01.3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묵직한 무게   그리고 디자인   많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에 대해 궁금해 했지만   그를...
    묵직한 무게
     
    그리고 디자인
     
    많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에 대해 궁금해 했지만
     
    그를 알 수 있는 통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 과정 중에
     
    이 자서전은 훌륭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두꺼운데
     
    나 역시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만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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