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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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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外
ISBN-10 : 8994054561
ISBN-13 : 9788994054568
헤세의 여행 [양장] 중고
저자 헤르만 헤세 | 역자 홍성광 | 출판사 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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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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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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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 『헤세의 여행』는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었다.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 외에 1901년과 1911년, 1913년의 이탈리아 여행, 1904년의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의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울러 자신의 원숙한 인생관과 독특한 문학관을 보여준다. 낭송 여행을 다니면서 헤세는 스위스의 로카르노, 취리히를 비롯하여 자신의 고향인 슈바벤 지방의 징엔,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등지의 유적지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옛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을 방랑자로 이해하는 헤세는 남쪽으로 가, 현대적인 탈경계의 시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헤세의 여행은 하나의 고행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헤세의 글은 불안하고 탐욕에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저자소개

저자 : 헤르만 헤세
저자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는 20세기 유럽의 작가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소개된 독일 출생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화가.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시인이 되고자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 15세 때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했고 탑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일했다. 이십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했다. 이후 자신의 질풍노도의 청춘기가 투영되고 삶과 자연에 대한 성찰이 담긴 《수레바퀴 밑에》《데미안》《싯다르타》《황야의 늑대》 등을 발표해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1943년 13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 《유리알 유희》를 발표했으며, 이 작품은 3년 뒤에 헤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국지적이었던 헤세의 명성은 6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인 반문화 운동의 기운 속에서 삶의 대안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헤세 붐이 일어났다. 이후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를 비롯해 헤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성장통을 겪는 모든 청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말년에는 집필 활동을 중단하고 수채화 제작에 오랫동안 몰두했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홍성광
역자 홍성광은 서울대학교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마의 산》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역서로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젊은 베르터의 고뇌], 헤르만 헤세의 [헤세의 문장론]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환상동화집》 《잠 못 이루는 밤》,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뷔히너의 《보이체크·당통의 죽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니체의 《니체의 독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중단편소설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카프카의 《성》 《소송》 중단편소설집 《변신》, 실러의 《빌헬름 텔·간계와 사랑》 등이 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목차

머리말: 헤세가 들려주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

1부 여행과 소풍
1. 여행에 대해
2. 머나먼 푸른 하늘
3. 한낮에 본 유령
4. 겨울 소풍

2부 보덴 호
1. 속물의 땅에서
2. 저녁이 되면
3. 여름을 향하여
4. 한여름
5. 보리수꽃

3부 이탈리아
1. 아네모네
2. 석호 연구
3. 크레모나의 저녁
4. 코모 호숫가 산책
5. 베르가모

4부 인도
1. 밤에, 수에즈 운하에서
2. 아시아의 저녁
3. 드라이브
4. 눈요깃거리
5. 어릿광대
6. 싱가포르에서 꾸는 꿈
7. 도항(渡航)
8. 펠라양
9. 갑판 위의 밤
10. 숲 속의 밤
11. 팔렘방
12. 물의 동화
13. 마라스 호
14. 캔디에서의 산책
15. 캔디에서 쓴 일기장
16. 페드로탈라갈라 산
17. 귀로
18. 아시아에 대한 추억
19. 인도에 대한 추억
20. 인도에서 온 손님

5부 방랑
1. 농가
2. 산길
3. 마을
4. 다리
5. 목사관
6. 농장
7. 나무
8. 비 오는 날
9. 예배당
10. 정오의 휴식
11. 호수, 나무와 산
12. 구름 낀 하늘
13. 빨간 집

6부 테신
1. 남쪽의 여름날
2. 남쪽에서 띄우는 겨울 편지
3. 테신의 여름밤
4. 조그만 길
5. 테신의 성모 마리아 축제
6. 몬타뇰라에서 보낸 40년 세월

7부 뉘른베르크 여행

헤르만 헤세 연보

책 속으로

현대인이 어떻게 여행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다룬 많은 책과 소책자가 있지만, 내가 알기로 좋은 책은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유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왜 그 여행을 하는지 아는 것이 좋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여행자는 그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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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어떻게 여행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다룬 많은 책과 소책자가 있지만, 내가 알기로 좋은 책은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유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왜 그 여행을 하는지 아는 것이 좋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여행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도시인이 여행하는 것은 여름에 도시가 너무 덥기 때문이다. 그가 여행하는 것은 공기를 바꾸고, 다른 환경과 사람들을 봄으로써 일에 지친 피로를 풀고 푹 쉴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가 산으로 여행하는 것은 자연과 땅, 식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이해되지 않는 갈망으로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로 여행하는 것은 그것이 교양 여행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여행하는 주된 이유는 그의 모든 사촌과 이웃도 여행을 가는데다, 또 여행을 갔다 와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하는 것이 유행이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무척 쾌적하고 안락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32쪽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여행의 시학은 호기심의 충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험에, 다시 말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데에, 새로 획득한 것의 유기적인 편입에, 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지구와 인류라는 큰 조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 증진에,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다. -36쪽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의 힘과 위안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장소로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널리 만연한 오류다. 뜨거운 거리를 피해 달아난 도시인에게 바닷가나 산속의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는 더 신선한 기분을 느끼고, 더 심호흡을 하며, 잠을 더 잘 잔다. 그리고 ‘자연’을 이제 제대로 즐기고 내부에 흡수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향한다. 그런데 그는 그 자연으로부터 가장 피상적인 것, 가장 비본질적인 것만 받아들이고 이해했으며, 가장 좋은 것은 발견하지 못하고 길가에 놓아두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런 자는 보고 찾아내며 여행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42쪽

나는 사춘기가 처음 시작되던 무렵, 가끔 홀로 높은 산 위에 서 있곤 했다. 그리고 머나먼 곳, 제일 뒤의 부드러운 언덕들 위에 피어오른 옅은 안개를 한동안 응시하곤 했다. 그 언덕들 뒤에는 세상이 깊고 푸른 아름다움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싱그럽고 열망하는 내 영혼의 모든 사랑은 커다란 동경 속으로 합류했고, 마법에 걸린 눈으로 멀리 부드러운 푸른색을 마셨던 눈에는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가까운 고향은 내게 너무 서늘하고, 너무 딱딱하며 분명하게, 안개나 비밀도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는 모든 것이 무척 부드러운 색조를 띠고 있었고, 듣기 좋은 음향, 수수께끼, 유혹으로 넘쳐흘렀다. -48쪽

날이 어두워진 지 몇 시간쯤 된다. 호수 너머 건너편에는 붉은 창이 있는 언덕의 마을들이 있다. 마을은 서로 비와 구름, 폭풍과 어둠으로 분리되어 있고, 나와도 마찬가지다. 낮게 깔린 구름이 폭풍에 휩쓸려 가는 정도에 따라 마을은 이 건너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사라진다. 이 마을의 모든 것이 내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스러우며, 모든 것이 벗이요 추억이다. 일요일엔 거기서 친구들과 보낸다. 비 오는 오후엔 거기 쇠장식이 박힌 창문 뒤에서 여주인, 주인집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헛되이 시간을 보낸다. 그곳의 저녁은 습하고 푸르며, 변두리의 포도원은 목가적이다. 별들이 반짝이고 바람에 마을의 음악이 실려 오며, 포플러나무와 과일나무의 시커먼 우듬지 뒤의 희미한 굴뚝에선 나직이 연기가 피어오른다.
오래 전에 꺼진 난로는 아직 은은한 온기를 내고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화덕 옆에서 자다가 가끔 몇 분간 깨어나서 그르렁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벽에는 수천 권의 내 책이 넓고 좁은 등을 드러내고 줄지어 서 있다. 창가에 가서 축축한 유리창을 닦을 때마다 저편 호수 너머 언덕 위의 은은히 이글거리는 창이 있는 마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하나의 추억이다. 세상에 들리는 소리라곤 나무 시계가 진자 운동할 때 생기는 소리밖에 없다. 창가에선 나직이 빗소리가 들리고, 가끔 졸고 있는 고양이가 조용히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낸다. 사람들이 이런 날 저녁이면 즐겨 그러듯이 나는 추억, 오래된 편지나 일기장, 열여덟이나 스무 살 젊은이였을 때 쓴 시들을 가지고 논다. 당시에 달리 어쩔 수 있었겠나. 그것을 읽어본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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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여행을 떠나고 이틀만 지나면 사람, 특히 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박지 않은 젊은이는 자신의 의무, 이해관계, 걱정 및 전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 즉 일상생활로부터 아련히 멀어지게 된다.” -토마스 만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

[출판사서평 더 보기]

“여행을 떠나고 이틀만 지나면 사람, 특히 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박지 않은 젊은이는 자신의 의무, 이해관계, 걱정 및 전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 즉 일상생활로부터 아련히 멀어지게 된다.” -토마스 만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

“나는 7월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 그 온도가 아니면 나는 고통스런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헤세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헤세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헤세의 여행과 사색 그리고 글쓰기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은 책.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 외에 1901년과 1911년, 1913년의 이탈리아 여행, 1904년의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의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아울러 자신의 원숙한 인생관과 독특한 문학관을 피력하기도 한다. 낭송 여행을 다니면서 헤세는 스위스의 로카르노, 취리히를 비롯하여 자신의 고향인 슈바벤 지방의 징엔,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등지의 유적지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옛 친구들을 만난다.
자신을 방랑자나 유목민으로 이해하는 헤세는 늘 남쪽으로 간다. 알프스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향하면서 남쪽과 북쪽의 경계를 무시하는 그의 생각은 현대적인 탈경계의 시각을 보여준다. 헤세의 눈에서는 높고 낮은 것, 귀하고 천한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만물이 평등해진다. 경계와 대립이 완전히 소멸되는 곳에 열반과 해탈이 있는 것이다. 그의 방랑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처럼 죽음으로 향하는 방랑일지도 모른다. 헤세에겐 도달한 목표는 이미 목표가 아니었고, 모든 길은 우회로였다. 휴식은 매번 새로운 그리움을 낳았다.
이처럼 헤세의 여행은 자신을 스스로에게 이끌어가는 하나의 고행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헤세의 글은 불안하고 탐욕에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책속으로 추가-
내일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뜨거운 방랑벽이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밤은 나의 것이었다. 나는 밤을 단호히 거절하려 하지 않았다. 밤이 기다리며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네거리에서 생각에 잠겨 머뭇거리자 강한 향수가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나는 숲과 언덕의 넓은 풀밭 뒤에 둥근 탑들이 있는 오래된 도시가 있는 것을 알았다.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한번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내 아름다운 청춘 시절의 한 자락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내게 회한과 향수를 안기기 위해 나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는 밤 시간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숲과 초지를 지나 아름다운 산길을 걸었다. 도시의 성문 앞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분수에 귀 기울였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또 친숙한 집들을 잠에서 깨우기 전에 다시 길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지나간 시절이며 둥근 탑들이 있는 옛 도시, 한때 그곳에서 겪은 것을 생각하노라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는 시커먼 밤의 세계를 지나 내 마을을 향해 컴컴한 호수 위의 높은 언덕을 꿈꾸듯이 걸었다. 비몽사몽간에 온갖 생각이 나래를 폈다. 젊은 시절 내가 무릎을 꿇었던 온갖 여성 형상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것과 최상의 것을 선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지 삶의 내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내 안에서 막연히 묻고 있는 목소리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75쪽

파리는 아름답다. 파리의 안전한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기분 좋고 유쾌한 일이다. 머리 위의 지붕은 안전하고, 주전자에는 믿을 만한 포도주가 들어 있다. 기름을 가득 채운 큰 등은 불타오르고 있다. 열린 문 옆에서는 한 여자가 피아노 옆에 앉아 촛불을 받으며 쇼팽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불현듯 비눗방울처럼 마음속에 질문이 떠오른다. 넌 정말 행복한가?
그렇다, 물론이다. 하지만 좀 기다려라. 아니,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 아니, 먼저 곰곰 생각해봐야겠다. 곰곰 생각해보니 행복에 관해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의 단어이자 무의미한 것에 불과하다.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질문이 변한다. 이제 나의 가장 기쁜 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던지 불현듯 알고 싶다. -82쪽

여름을 제대로 즐기려면 내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작열하고 찌는 듯이 더운 누런색 밭들, 높고 시원하며 말없는 숲, 그리고 많은 노 젓는 날들. 노 젓는 날 말이다! 난 호수와 산 너머 푸른 하늘이 찬란히 빛나는 날, 대기가 더위에 떨리고 태양의 열기에 배의 목재가 삐거덕거리는 그런 날을 생각한다. 그런 날 사람들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반나체로 눈부시게 빛나는 호수의 만으로 나가, 자주 멱을 감거나 호숫가의 짙은 수풀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하늘이 구름에 뒤덮이고 상쾌한 바람이 불 때 순전히 은색인 물 위를 가르며 노 젓는 날을 생각한다. 그리고 시커멓게 끓어오르는 물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질주하던 날, 산 위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피해 도망치던 날을 생각한다. 그때는 어둡고 거무스레한 수면 위에 하얀 포말이 일었고, 후려치는 강풍은 아주 가는 물보라를 일으켰다. 크게 자극받은 무더운 대기 속에서는 번개가 번쩍였다. -91쪽

어른이 아이가 되고 삶이 다시 기적이 될 시간이다. 하루하루가 뜻하지 않게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고, 잠깐 초원을 산책할 때마다 하나의 놀라움이자 동화기 때문에. 위엄 있는 계절, 여름이 다가온다. 낮엔 곡식이 익고 밤엔 뇌우가 친다. 자, 난 여태까지 겪지 못한 일을 또 한 번 체험하고, 과잉과 넘쳐흐르는 화려함의 날들을 볼 준비가 되어 있다. 난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농부가 너무 일찍 마차에 화환을 두르고, 탐욕스런 낫이 익은 곡식을 베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기 전에는. -93쪽

집에 돌아와 보니 책과 편지가 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나는 마지못해 일하기 시작한다. 15분 후에는 다시 이 모든 일을 내려놓는다. 이런 어리석은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직 들지 않은 것이다. 밖에서는 소나기가 맹렬히 쏟아졌고, 마을 골목은 누런 개울이 된다. 지붕은 쏟아지는 호우로 인해 하얀 빛으로 반짝인다. 호수 너머 저쪽에는 번개가 치고 우르릉 쾅 하고 천둥소리 울린다. 나는 이런 미쳐 날뛰는 광경에 소년 시절처럼 불손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긴 장화와 로덴 천으로 만든 비옷을 입는다. 머리에 모자를 눌러 쓰고는 크게 노한 시끄러운 뇌우 속으로 걸어 나간다. -100쪽

나는 젊은이로서 성년 남자와 전혀 다른 상상을 했었다. 이제 다시 기다림, 질문과 불안함이, 성취보단 그리움이 문제가 된다. 보리수꽃이 향내를 풍긴다. 방랑하는 도제, 꽃 따는 여인네들, 아이들과 연인들은 모두 하나의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나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노는 아이들의 까닭 없이 행복한 상태도 방랑자의 무심한 지나감도, 연인들의 몽롱하게 취한 상태도 보리수꽃 따는 여인들의 조심스러운 채집도 내게 주어진 몫이 아니란 사실 뿐이다. 내게 주어진 몫은 삶의 목소리를 따르는 일이다. 그 목소리는 내 안에서 그것을 따르라고 외치고 있다. 비록 내가 그 목소리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을 능력이 없다 해도. 비록 그 목소리가 나를 흥겨운 거리로부터 어둠과 불확실성 속으로 점점 이끌어가려 해도. -106쪽

당시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조그만 수첩을 지니고 다녔고, 거의 저녁마다 그 안에 기록하곤 했다. 수첩에 그러한 여행의 여운을 담아 고향에 가져가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첫 베네치아 여행기를 담은 두 권의 조그만 수첩을 손에 들고 있다. 방수포로 만든 수첩이다. 바야흐로 다시 이탈리아 여행을 하려는 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절과 그 여행의 놀라운 감정을 떠올리고 있다. 그때 내 형편이 얼마나 옹색했으며, 돈에 얼마나 의존했던가! 이따금 이탈리아 여행 일수를 남은 현금과 얼마나 불안하게 계산해보았던가! 그렇지만 여전히 한 주가 흘러갔다. 아끼며 살수록 나는 더욱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그때 나는 베네치아를 형편이 좋은 곤돌라 선원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17쪽

내 생각에 여행하며 밖으로 돌아다니는 생활은 좀 더 지적으로 된 우리 같은 사람이 더욱 창백하게 체험하는 삶의 한 조각을 일반적으로 대체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 생활은 우리 여러 민족들에게 거의 완전히 사라진 순전히 미적인 충동에 의한 활동도 대체하는 것 같다. 위대한 시기의 그리스인이나 독일인, 이탈리아인에겐 그런 미적인 충동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도 어디서나 아직 그런 충동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일본에서는 유치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은 목판화, 나무나 암석, 정원이나 하나하나의 꽃을 관찰하면서 우리에겐 흔치 않고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어떤 감각의 훈련, 원숙함과 전문적 지식을 향유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순수한 직관, 어떤 목적 추구나 의욕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관찰, 자체적으로 흡족한 눈과 귀, 코와 촉각의 훈련, 그것은 우리들 중 좀 더 섬세한 사람들이 짙은 향수를 느끼는 하나의 천국인 셈이다. 우리가 여행할 때 가장 잘 또한 가장 순수하게 추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러한 천국이다. 미적으로 훈련된 사람은 언제나 그러한 집중을 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불쌍한 사람들은 적어도 속박에서 벗어난 이런 날과 순간에나 그것이 가능하다. -131쪽

나는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곰곰 생각에 잠겼다. 여러 생각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한 수백 번의 여행에 대한 추억들과 합류했다. 내게는 다음 사실이 분명해졌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빼앗고, 아무리 늙게 되고 피곤해지며 좀 더 약해진다 해도, 우리 여행 충동의 진정한 의미인 체험은 자신의 광채를 결코 완전히 잃지는 않으리라. 내가 10년이나 20년이 지나 지금과는 다른 견해나 체험, 다른 삶의 감정으로 세상을 여행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지금과 같은 의미에서 일어날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온갖 차이나 매력적인 대립성을 넘어서 모든 인간성의 통일적인 의미는 내게 점점 더 많이 또 점점 더 분명히 다가올 것이다. -134쪽

날씨가 좋을 때 싱가포르에서 즐기는 드라이브보다 더 멋진 일이 있으랴! 릭샤에 타고 앉아 다른 풍경 외에도 움직이는 일꾼의 등을 계속 마음 편히 바라본다. 그 등은 박자에 맞춰 총총걸음을 하며 위아래로 출렁인다. 중국인의 구릿빛 등이다. 그 아래로 역시 구릿빛 두 다리가 보인다. 운동선수처럼 잘 발달된 튼튼한 다리다. 등과 다리 사이에 푸른 린넨 천으로 만든 빛바랜 수영 팬티를 입었다. 그 푸른색은 구릿빛 몸, 갈색 거리, 도시 전체, 대기, 그리고 세상과 매우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대부분의 거리 모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 역시 제대로 옷을 입고 다닐 줄 아는 중국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푸른색, 흰색, 검은색 옷을 입고 골목을 가득 메운다. -167쪽

사업상의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말레이 군도에 오는 유럽인은 자신의 소원 성취를 희망하지는 않더라도 반 찬테 섬의 풍경과 원시적인 낙원 같은 순진무구함을 자신의 상상과 소망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순수한 낭만주의자라면 이런 낙원도 가끔 발견할 것이고, 대다수 말레이인들의 선량한 어린이다움에 매료되어 자신도 잠시 원시 상태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그런 자기기만을 완전히 즐기는 일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세상과 멀리 떨어진 조그만 마을을 발견해서 그곳의 원시림에 한동안 손님으로 초대되어 고향집에서 지내는 것처럼 편안하게 지냈다. 내 기억 속에서 그곳은 수마트라 섬의 모든 밀림과 강의 결정체이자 표현이었다. -198쪽

나는 어리둥절해서 비틀거리며 번갯불에 흔들거리는 창문 구멍 쪽으로 다갔다. 구멍의 모서리는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기차의 연이어진 창문들처럼 밀려갔다. 거기 두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밀림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러 형태, 복잡한 가지, 무성한 나뭇잎과 줄기들이 얽힌 마구 휘저어진 바다였다. 바다는 물결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번갯불이 스치자 경련을 일으키며 움찔하는 검은 심장부까지 상처입고 절규하며 격앙되어 있었다. 난 창가에 서서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응시했다. 눈이 어질어질 했고 몸이 마비되었다. 나는 대지의 광분하는 생명이 쏟아지고 낭비되는 것을 또렷한 의식으로 느꼈다. 난 그 사이에 서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았고, 내 인생의 수많은 밤과 낮을 생각했다. 지켜보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에 끌리고 유혹되어, 이곳에서처럼 지구 어디서엔가 서서 낯선 사물과 현상을 관찰했던 모든 수많은 시간을 생각해보았다. 수마트라 섬 늪지 원시림의 남쪽에서 열대의 야간 뇌우를 바라보는 것은 한순간도 무의미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예감이 들었고,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쓸쓸히 호기심을 갖고 불가해한 것을 놀라워하며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었다. 내 안의 불가해한 것과 불합리한 것이 그에 대한 답을 주었으며 서로 친교를 맺었다. 이처럼 감동받아 무책임하게 지켜볼 때와 똑같은 느낌으로 나는 어린 시절 동물이 죽거나 나비가 나방에서 깨어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와 같은 느낌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눈이나 꽃받침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사물들을 설명하려는 바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으려는 욕구, 다시 말해 위대한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걸고 나와 내 인생이며 감각이 사라져서 무가치하게 되는 진기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구일 뿐이었다. 그냥 가는 고음이 심한 천둥을 일으키거나 또는 불가해한 일에 대해 더 심한 침묵을 야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214쪽

팔렘방은 강과 수백 개의 잔잔하고 운하 같은 지류들 가에 위치하고 있다. 강과 지류들은 아침에는 모두 저녁때와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매우 평평한 이 지역은 70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바다보다 2미터밖에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조 때는 매일 바다가 멀리까지 역류해 올라오므로 강물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이때 늪지는 호수로, 더러운 도시는 근사한 동화의 나라로 바뀐다. 그제야 도시 전체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된다.
만조가 되는 시간은 날이 가면서 바뀐다.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정오에 시작되었다. 만조 때가 되면 수천의 수상 가옥들은 갈색을 띤 잔잔한 수면 위에 은은하고도 매혹적으로 비친다. 무척 작은 운하 같은 지류 위에는 수백 척의 날렵하고 그림 같은 범선들이 조용히 생동감 있게 놀랄 만치 능숙하게 뒤섞여 우글거리고 있다. 벌거벗은 사내들, 몸을 가린 여자들이 가파른 나무 계단의 발치에서 멱을 감는다. 집집마다 그 계단에서 강물로 연결되어 있다. 뗏목 위를 떠다니는 깔끔한 중국인 수상가게의 호롱불이 아시아의 저녁생활과 수상생활의 놀라운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219쪽

악취와 모기에 시달리고 깨끗한 물에서 목욕할 기회도 없이 팔렘방의 시커멓고 조그만 운하 뒤편 뉴커크 호텔 뒤쪽에서 한동안 살아본 사람이라면 결국 어디로든 떠나야겠다는 간절한 갈망을 하게 된다. 다음 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편물을 받지 못한 지 한 달이 되었고 불면증으로 머리에 열이 났다. 특이한 도시에서의 삶과 더위에 지치고 목욕을 하지 못해 몸이 축 늘어졌다. 때문에 중국 증기선 마라스 호에 좌석을 예약했다. 금요일 아침 일찍 입항해서 토요일 중에 싱가포르로 떠나는 배였다. 그래서 희망을 품고 모기장 아래 누워 금요일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큰 상자를 싱가포르에 두고 왔기에 진작부터 더 이상 읽을거리도 없었다. 집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지도 어언 이주일이 되어 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매일같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피곤해지면 몇 시간씩 누워 기다리며 메모장을 들춰보고 말레이어 어휘를 익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제 배가 들어온다니 하루나 이틀 뒤면 떠날 수 있으리라. 그간의 위안을 주는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내 나날의 못마땅한 온갖 일이 기억 속에 오그라들어 사라지고 많은 아름답고 다채로운 일과 즐거웠던 체험만이 남으리라. -228쪽

어느 날 오후 나직이 비가 내리는 중에 나는 시골 같은 말라바르 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웃통을 벗어젖힌 싱갈인 청년을 보고 마음이 흐뭇해졌다. 아무런 걱정 없는 원시적인 자연인을 볼 때마다 격세유전의 편안함과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망스럽게도 열대의 전형적인 풍경을 보면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우리가 보통 ‘남국의 순결함’을 찾아 떠나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보다 이곳 인도에서 아름다움과 진지함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이곳 동방에는 지중해 연안 도시들에서 신문팔이와 성냥팔이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되는 양 미친 듯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끔찍한 소음 공해가 전혀 없다. 인도인, 말레이인, 중국인이 강도 높고 다채로운 힘찬 삶을 살아가며 인구가 많은 도시들의 수없이 많은 거리를 메운다. 그렇지만 이들의 삶은 마치 개미의 움직임처럼 소리 없이 진행되어 남유럽의 모든 도시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특히 싱갈인은 평소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진 않지만 다들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스러운 온순함과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로 단순하고 가벼운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생활을 해나간다. -235쪽

체험된 것이 추억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명백해지며 사라지는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얼마 뒤에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는 체험의 영상이 그 체험을 할 때 우리 마음속에 나타났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가끔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하고 3년이 지난 지금 동양을 떠올려보면 여행의 개별적인 구체적 영상이 약간 흐릿해지고 일반화되어 나타난다. 싱가포르는 콜롬보와, 쿠알라룸푸르는 이포와, 바탕 하리 강은 모에시 강과 대략적인 개성 면에서 더 이상 그리 선명하게 구별되거나 다르지 않다. 그 대신 몇 개의 커다란 연관성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사람들이 내게 오늘날 팔렘방이나 페낭 또는 잠비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세부 사항을 묻는다면 나는 자료를 찾아봐야 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끄집어내기 위해 약간 애를 쓴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의 전체 여행의 가치나 주된 인상에 대해 묻는다면 그 당시 귀국한 직후보다 더 잘 더 빨리 대답을 할 수 있다. -257쪽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긴 하지만, 모든 유럽인에게 뭔가 공통되고 서로를 묶어주는 요소가 있듯이, 모든 아시아인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게 더 멋지고 엄청나게 더욱 중요한 것은 때때로 온갖 감각 속에서 선명하게 되풀이되는 경험이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 즉 유럽과 아시아가 단일체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인류라는 하나의 소속이자 공동체가 있다는 경험이었다. 누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책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전혀 낯선 민족과 서로 눈을 맞대고 체험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무한히 새롭고 소중하게 된다. -269쪽

나는 메모지에 그 집을 그려본다. 내 눈은 독일식 지붕, 독일식 들보, 독일식 박공, 친숙한 것과 고향 같은 많은 것과 작별을 고한다. 이것으로 작별이기에 이런 고향 같은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사랑한다. 내일은 다른 지붕, 다른 오두막을 사랑하리라. 연애편지에서처럼 내 마음을 이곳에 남겨두지 않으리라. 오, 아니야, 내 마음을 함께 가져가야지. 산 너머 저쪽에 가서도 내 마음은 언제나 필요하겠지. 난 농부가 아니라 유목민이니까. 난 불충과 변화, 환상의 숭배자다. 내 사랑을 지구의 어느 지점에 붙잡아두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늘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나의 사랑이 한곳에 머물러 성실과 덕목이 된다면 그 사랑은 내게 미심쩍어진다. -282쪽

알프스 남쪽 발치의 이 축복받은 지역을 볼 때마다 유형지에서 귀향해 드디어 산의 진면목을 다시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은 태양이 더욱 진심으로 내리쬐고, 산은 더욱 붉은 빛을 띤다. 밤과 포도, 아몬드와 무화과가 이곳에서 자란다. 사람들은 가난하긴 해도 선량하고 예의바르며 친절하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모두 원래 자연 그대로인 듯 좋고 옳으며 친근해 보인다. 집과 담벼락, 포도원 계단, 길과 농작물, 테라스, 이 모든 것은 새 것도 낡은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노력하거나 머리로 짜내어 자연에서 빼앗은 것이 아니라 바위나 나무, 이끼처럼 저절로 생겨난 것 같다. 포도원 담벼락, 집과 지붕, 이 모든 것은 갈색 편마암으로 만들어졌고, 모두 형제처럼 잘 어울린다. 어느 것도 낯설고 적대적이거나 억지로 만들어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303쪽

나무는 내게 언제나 가장 감동적인 설교자였다. 나무가 대중과 가족 속에서, 숲과 정원 숲 속에서 자라면 그것을 존경한다. 그런데 나무가 한 그루씩 따로 자라고 있을 때는 더욱 존경한다. 나무는 고독한 사람 같다. 어떤 약점 때문에 몰래 도망친 은둔자가 아닌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하면서도 고독한 사람 같다. 우듬지에서는 세상 소리 살랑거리고, 뿌리는 무한함 속에 쉬고 있다. 하지만 나무는 쉬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하나만을 얻으려 애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법칙을 실현하고 자신의 형상을 완성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려 애쓴다. 아름답고 튼튼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모범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307쪽

우리가 슬픔에 빠져 삶을 더 이상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한 그루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 잠자코 있어! 잠자코 있어! 나를 봐라! 삶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아. 그건 어린애 같은 생각이지. 네 안의 신이 말하도록 해봐. 그런 생각이 잠잠해질 거야. 네가 불안해하는 것은 너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야. 하지만 발걸음 하나하나와 나날이 너를 새로이 어머니에게 다가가게 하는 거야. 고향은 여기나 저기에 있는 게 아니야. 고향은 네 안에 있지 다른 어디에도 있지 않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린애 같은 생각에 불안해할 때면 나무는 밤에 너무도 살랑거린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래 사는 만큼 생각도 길어 긴 호흡으로 차분히 생각한다. 우리가 나무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무는 우리보다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면 우리 생각의 짧음과 신속함, 어린애 같은 성급함은 비할 데 없이 기쁨을 얻는다. 나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이는 더 이상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고향이고 행복이다. -309쪽

우울증을 치료하는 좋은 약제가 있다. 노래, 경건한 마음가짐, 음주, 음악 연주, 시 짓기, 방랑이 그것이다. 은둔자가 성무聖務 일과로 살아가듯 나는 그런 약제로 살아간다. 때로는 저울의 접시가 아래로 기울었고, 나쁜 순간과 균형을 맞추기에는 좋은 순간이 너무 드물며, 너무 적게 좋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가끔 그와 반대로 내가 발전을 해서 좋은 순간이 늘어났고 나쁜 순간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악의 순간이라 해도 내가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은 좋음과 나쁨 사이의 중간 상태, 즉 견딜만한 미지근한 중간이다. 아니, 차라리 굴곡이 더 심한 것이 낫고, 차라리 고통이 더 지독한 것이 낫다. 그러면 복된 순간은 더욱 광채가 더할 테니. -334쪽

이 구름 낀 하늘, 자체 내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이 다채로운 하늘이 내 영혼 속에 반영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이 하늘로부터 내 내면의 상을 읽어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말하기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불확실해지는 것이다! 지상의 어떤 인간도 대기나 구름의 어떤 분위기, 색채의 어떤 음향, 어떤 향내, 습도의 변화를 작가나 방랑자의 오래되고 신경질적 감각을 지닌 나만큼 섬세하고 정확하며 충실하게 관찰할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드는 날들이 있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무언가를 보고 듣고 냄새 맡았는지, 내가 지각한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내 내면의 삶이 외부로 투사된 상에 불과한지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335쪽

작가는 빈둥거리며 불규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시간을 낭비 하며 미심쩍은 인생을 보낸다. 규칙적이고 틀에 짜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 그들은 매일 8시나 2시에 일을 시작하는 데, 전보를 받고 최단시간 내에 먼 여행을 떠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오후는 조그만 천국을 의미한다. 그들은 손목시계에서 맛보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물론 의무에 충실하며 나름의 규칙성과 인내를 가지고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일정한 아침 시간에 일을 시작해 끈질기게 책상에 붙어 있다. 그들은 날씨나 주변의 소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분이나 태만에도 동요되지 않도록 교육 받았다. 그런 영웅적이고 고귀한 사람들의 신발 끈이라도 풀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나로서는 그들을 본받으려 노력한다는 것 은 아예 시작부터 가망 없는 일이리라. -388쪽

내가 공개적인 낭송회를 꺼리는 것은 홀로 은둔해 지내는 사람으로서 사교적인 행사에 대해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만 은 아니다. 그런 것은 경우에 따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오히려 꺼리는 이유는 그런 데서 원칙적이고 깊이 뿌리박힌 무질서와 분열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아주 간단히 말해 그런 무질서와 분열은 문학 일반에 대한 나의 불신에 근거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낭송할 때뿐만 아니라 작업할 때 훨씬 더 나를 괴롭힌다. 나는 우리 시대 문학의 가치를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각각의 시대는 자신의 정치와 이상, 자신의 유행을 지녀야 하듯이 자신의 문학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시대의 문학이 덧없고 절망적인 것이며, 제대로 경작되지 않은 빈약한 토양에서 자라난 씨앗이란 확신을 결코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런 문학은 사실 재미있고 문제성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성숙하고 완전하며 장기간 지속되는 결과는 얻을 수 없다. 따라 서 실질적인 형상화나 진정한 작품을 이루기 위한 현대 독일 작 가들(당연히 나 자신을 포함해서)의 시도가 언제나 다만 왠지 불충분하고 아류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어디서나 천편일률적 인 낌새, 생명력을 잃은 모형이 감지되는 것 같다. -435쪽

나는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은 그것에서 오늘날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형식과 문체, 하나의 고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데서가 아니라 궁핍을 겪는 우리에게 최대한 솔직해 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피처가 없다는 데에 가치가 있을 수 있음 을 알고 있다. 솔직함과 고백, 최종적인 자기포기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한편 젊은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름다운 표현 에 대한 요구, 이 두 가지 요구 사이에서 내 세대의 전체 문학은 절망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자기포기에까지 이르는 최종적인 솔직함을 지닐 용의가 있다 해도 그런 솔직함을 위한 표현을 어디서 발견한단 말인가? 우리의 문 어文語나 학교 언어는 그런 표현을 제공해주지 못하며, 우리의 필체는 이전부터 틀에 갇혀 있다.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와 같은 절망으로 가득 찬 개별적인 책들은 하나의 길을 가리켜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길이 없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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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이건 번역이 아니다! | ke**meg | 2014.11.24 | 5점 만점에 1점 | 추천:0
    책을 읽으면서 계속 아래와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게 되었다. 1. 헤세가 이렇게 글을 이해하기 어렵...

    책을 읽으면서 계속 아래와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게 되었다.

    1. 헤세가 이렇게 글을 이해하기 어렵게 쓰는 작가였나?

    2. 내가 이렇게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나?

    3. 왜 이렇게 잘 읽히지 않지?

    4. 무슨 말이지?

     

    번역하신 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책의 문장들은 번역이라기보다는 원문에 충실하게 해석되어 있다. 독일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가 해석한 것처럼!

     

    그래서 헤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헤세에게도 미안하고, 번역하신 분에게도 미안하지만 더 이상 읽기가 힘들다.

    돈이 아깝지만 시간이 더 아깝다!

  • 읽고 배우는 헤세의 여행 | wh**0915 | 2014.10.06 | 5점 만점에 3점 | 추천:0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 되어야 하니까. - 『헤세의 여행』 p.7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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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 되어야 하니까.

    - 헤세의 여행p.7 머리말 중(번역 홍성광)

     

    이 구절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챙겨봤던 tvN 예능 <꽃보다 청춘> 덕분이었다. 유희열, 이적, 윤상 이 세 사람이 모여 함께 떠난 페루 여행. 세 사람 중 가장 새로운 눈을 갖게 된 사람은 윤상이었다. 27년 동안이나 술에 의지해왔다고 고백하면서 이번 여행을 통해 술을 끊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윤상. 그런 윤상에게 이번 여행은 단지 좋아하는 뮤지션들과의 동행이 아닌 장기간 의지했던 술을 벗어나 온전히 자기 힘으로 견뎌내는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윤상은 새로운 풍경들 앞에서 자주 망설였고, 여행을 함께한 동생들 덕분에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면서 새로운 눈을 갖게 된 그는 여행을 갈무리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행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며, “청춘이란 용기라고 말한다.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었다는 이 책 헤세의 여행에서 헤세가 말하는 여행 역시 이런 여행이다. 그 중 내가 인상 깊어했던 구절은 이 구절이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p.36)

     

    나 역시 일상을 도피하고, 바닥나버린 감성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헤세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면서 여행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날, 그 시각에 그 곳에 모인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보고, 한 방을 쓰는 '다른 일상'을 보내면서 비로소 여행을 하고 있구나 실감했던 것이다.

     

    낯선 풍경과 도시에서 단지 유명한 것이나 가장 눈에 띄는 것만 추구하지 않고, 본래적이고 더 심오한 것을 이해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파악하려고 갈망하는 자의 기억 속에는 대체로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이 특별한 광채를 지닐 것이다. (p.38)

     

    이 구절도 지난 남원 여행에서 경험한 바 있다. 전 날에는 전주에서 경기전이니 향교니 오목대니, 전주에 가면 꼭 보아야 할 것을 보았다면 다음 날 남원으로 넘어와서는 전혀 새로운 여행을 하기로 감행한 것이다. 친구와 나의 여행에 빠지지 않았던 코드 뚜벅이를 버리고,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종일 여행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남원의 랜드마크라 할 만한 곳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자전거 덕분에 위 구절에서 헤세가 말한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이 특별한 광채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울에 롯데월드가 있다면, 남원에는 남원랜드가 있다며 경험해보라던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의 말을 믿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 우리는 남원랜드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되돌아와야 했다. 주말이라 일찍이 영업을 종료했던 것이다. 산을 깎아 만들었다는 남원랜드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 힘들 정도의 경사지에 있어서 자전거에서 내려 직접 끌고 올라야 했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내려올 때는 남원랜드에서 타지 못한 놀이기구를 타는 것 마냥 신나게 내리막을 달렸는데, 넓게 펼쳐진 남원의 풍경 위로 저물어가는 노을이 내 눈에 가득 들어찼다. 지난 여행의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소중했다. 그날 진 노을은 여느 날의 노을처럼 사소했고, 내가 그 노을을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지만 그 어떤 것보다 특별했다. 헤세가 단언한 것처럼.

     

    부끄럽지만 나는 해외여행은커녕 여권도 없는, 국내여행이 전부인 여행 초보다. 헤세의 여행처럼 낯선 것을 체험하면서 무엇보다 그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시험을 견뎌내보는 여행을 당연히 해보지 못했지만, 이것 하나는 자신있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라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에 몇 번이고 공감하며 헤세의 여행과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얼마든지 꿈꾸는 것을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책 | su**ell | 2014.09.23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한 사람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관장하는 것이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감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

    한 사람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관장하는 것이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감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일상에서 한 사람의 모습은 그저 처세나 임기응변, 인간성, 지적수준 등 삶의 기교와도 같은 비교적 가벼운 것들만 드러날 뿐 그에게서 철학적 울림과도 같은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은밀하고 사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까닭은 자연의 품에 안긴 고독한 영혼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뒤섞이며, 홀연 자신을 잊은 채 자연과 하나 되기에 이른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가. 하지만 자연 속에서 느꼈던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우리에게 말과 글로 전하지 않는 한 그것은 전설처럼 떠돌 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지는 않는다.

     

    여행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일상의 체험이 아닌, 한 인간의 영혼과 자연의 만남, 처음으로 마주하는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대한 응시, 자신의 총체적인 삶을 계획하는 밑그림, 그 모든 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이 비로소 자연의 일부로 편입되었음을 인식하는 황홀한 경험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대 인간의 교류가 아닌, 영혼과 자연의 강한 입맞춤이어야 한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여행의 시학은 호기심의 충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험에, 다시 말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데에, 새로 획득한 것의 유기적인 편입에, 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지구와 인류라는 큰 조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 증진에,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다." (p.36)

     

    <헤세의 여행>은 가볍고 경박한,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천박하기까지 한, 여행에 대한 현대인의 잘못된 생각들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경제적, 육체적 부담에서의 일시적 해방, 이제껏 가본 적 없는 어느 바닷가의 일출, 고지대에서 바라보는 멋진 풍광, 오직 그것만이 다인 양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진을 찍어대는 현대인의 여행은 그것이 여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소만 바뀐 일상에 가깝다고 느끼게 한다.

     

    사실 유럽의 작가 중에 헤세만큼 동양적인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의 외삼촌이 불교연구의 대가였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가 동양적인 사고의 유럽 작가가 된 데에는 수없이 많았던 여행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게 여행은 삶의 목적이자 전부였다. 자신을 방랑자나 유목민으로 이해하는 헤세는 여행은 단순히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순수의 자신에게 이르는 고행의 한 방편으로 여겼던 듯하다.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p.33)

     

    헤세의 여행은 일견 구도자의 그것처럼 따분할 수 있다. 자신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그는 자신의 글에서 솔직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낭송을 목적으로, 때로는 휴식을 목적으로, 집필을 목적으로, 또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계속되었던 여행에서 그가 품었던 소회는 우리가 갖는 여행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가 여행 중에 남긴 담백하고 아름다운 글 속에는 자연을 관조하고 자신을 살피는 대문호의 겸손함이 묻어난다.

     

    "나는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은 그것에서 오늘날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형식과 문체, 하나의 고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데서가 아니라 궁핍을 겪는 우리에게 최대한 솔직해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피처가 없다는 데에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솔직함과 고백, 최종적인 자기포기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한편 젊은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름다운 표현에 대한 요구, 이 두 가지 요구 사이에서 내 세대의 전체 문학은 절망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자포자기에까지 이르는 최종적인 솔직함을 지닐 용의가 있다 해도 그런 솔직함을 위한 표현을 어디서 발견한단 말인가?" (p.437)

     

    헤세의 여정은 니탈리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보덴 호수, 뉘른베르크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지만, 그의 여행은 언제나 자연과 자기 자신, 인간과 삶에 대한 관조, 그리고 문학에 대한 열정 속에 있었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라고 한 '아나톨 프랑스'의 말은 헤세의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책, <헤세의 여행>은 그런 책이다.

  •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먹고 사는 문제나 주변 여건 때문에 그리 여행을 자주할 수 있는 형편은 못 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먹고 사는 문제나 주변 여건 때문에 그리 여행을 자주할 수 있는 형편은 못 된다.
    주로 속한 단체에서 떠나는 국내외 답사여행이나 잘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가이드하는 경북지역 여행 정도가 고작이다.
    혼자서 어디 다니기에는 별 재미도 없고 용기도 없는 편이다.
    사람들은 여행에 대하여 저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저 경치가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문화유적지를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는 중국의 장가계나 황산 같은 곳을 선호할 것이고, 후자는 서안의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후자쪽을 좋아한다.

    헤세는 그럼 어떤 여행을 좋아할까?
    헤세는 한 마디로 "여행은 체험을 의미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 책에는 없는 글이지만 『인간적인 것, 너무도 인간적인 것』에서는 여행의 등급을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다.
    1. 여행하면서 관찰의 대상이 되는 자
    2. 실제로 세상을 구경하는 자
    3. 관찰한 결과로 무언가를 체험하는 자
    4. 체험한 것을 체득해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5. 관찰한 것을 보두 체험하고 체득한 뒤 집에 돌아온 즉시, 또한 체함하고 체득한 것을 행동이나 일에서 반드시 실천해나가는 것

    헤세의 기준대로라면 나는 아마 두 번째나 세 번째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헤세가 여행을 다니면서 기록해둔 기행문을 모은 것이다.
    1959년의 기행문까지 수록되었으니 죽기 3년 전, 82세까지 여행을 다닌 것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어서인지 특히 인도 여행기가 인상적이다.
    나는 인도에 가본 적이 없지만 헤세는 동양에서 유럽인들에게는 없는 정신적인 면을 굉장히 높이 사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아마 중국을 여행했더라면 훨씬 열광했으리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실제 인도 여행에서 만난 중국인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호의적이다.

    마지막의 뉘른베르크 여행은 그의 자작문학작품 낭송을 하면서 다닌 기록이다.
    실제로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수필이다.
    작가로서 그런 낭송여행을 다니는 것을 퍽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행경비를 대부분 초층하는 측에서 대주고 또 자기를 아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나도 여행을 다니면 사진만 찍기보다는 멋진 기행문을 한편 써버고 싶다.
    내가 찍은 사진을 넣어서...
    이 책에도 조그만 사진들을 중간중간 넣고 있는데 배치가 참 좋다.
    보통의 경우라면 커다란 사진을 한 쪽의 절반 정도에 할애하고 나머지믄 글로 채울텐데 이 책에서는 작은 사이즈를 중간에 넣어 글은 넣지 않았다.
    그리고 챕터가 바뀌는 곳과 가끔은 사진 대신에 헤세가 그린 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헤세가 태어나던 해에 나는 태어났다.
    헤세가 살던 곳과 내가 사는 곳은 지구의 거의 반대 편에 있다.
    여러가지 시공간적인 제약상 그가 느낀 점이라던가 현재의 내가 그곳을 가본대도 시각적인 차이는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남긴 기행문이 100% 공감이 가느 것은 아닐지라도 이 책은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의미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그리고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고픈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 여행을 즐겨 하는 이라고 해서 다 방랑자는 아닐 것입니다. 여행 중에는, 물론, 기약 없는 여행, 넉넉하지 못한 여비 탓에 가...

    여행을 즐겨 하는 이라고 해서 다 방랑자는 아닐 것입니다. 여행 중에는, 물론, 기약 없는 여행, 넉넉하지 못한 여비 탓에 가는 길목마다 고생인 여행, 도중에 못된 현지인을 만나 떠나지 않음만 못하게 된 여행, 모든 여건이 다 구비되었으나 정작 본인의 마음 자세가 불민하여 타락한 탈선이 되어 버린 여행도 있습니다. 그러나 즐겁지 못한 여행이라 해도, 여행자에게 돌아올 집, 본향이 있는 이상, 그 여행은 종착점이 있고 복귀할 일상이 있는, 잠시의 도락에 불과합니다. 만약 그 여행을 통해 무엇을 꼭 배우고자 했었다면, 그를 두고 "수학여행"이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세(물론 우리가 아는 그 대문호 헤르만 헤세입니다)의 경우에는, 이 책을 다 읽은 저로선 이제 얄짤없는 방랑자라고 그를 불러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태생이 독일 순혈도 아니고(양친의 어느 쪽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태생이 그렇다 해도 어느 한 고장에 끈적한 정을 붙이고 아이텐티티를 형성할 수도 있었건만, 그가 거쳐 가는 그 어느 곳에도 최종의 귀속감을 두지 않고, 그저 일생을 두고 여기에서 저기로 떠됼았던 나그네였습니다. 우리는 그저 철학 깊은 명작, 눈물이 뚝뚝 들을 시(詩)만 쓴 책상 앞의 작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분은 언제 글을 쓸 시간을 냈나 싶을 만큼 세상을 돌고 돌았으며, 그가 나고 자란 고장 인근에서 지구 반대편까지 무던히도 바지런하게 왔다갔다한 천상 여행객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작가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이 사람을 그렇다고 해서 여행자라고 불러 줘도 안 됩니다. 여행(Reise)이라는 단어에는 불순물이 함유되어 있고, 여행자라는 개념에는 그가 그렇게도 혐오했던 속물적인 소비자들(이 책에 잘 나와 있죠)이 끼어 있습니다. 이 사람, 지독한 반골이자 고집불통 떠돌이를 두고는, "방랑자(Wanderer)"라는 세 음절 이름이 딱 어울립니다. 교통 발달도 시원치 않았던 당시 형편에 이처럼이나 천하를 주유하고 다닌 독설가에게 다른 이름이 어울릴 것 같지도 않습니다.

     

    대문호의 수필, 여행기가 밋밋하고 싱거운 설교와 점잔뻬는 미사여구로 가득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분께는, 아주 통렬한 뒤통수 한 방을 준비하는 장난속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아주, 처음부터 욕입니다. "열심히 일하며 된장끼 폭발을 준비한 당신, 여행일랑은 꿈도 꾸지 말고 방구석에서 썩어라!"를 외치고 있습니다. 헤세에게 있어 여행은,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겪으며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수련이요, 도제의 고통스러운 공붓길입니다. 현지인을 모독하고, 설익고 추악한 욕구를 풀기 위한 배설의 과정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여행을 사랑하고, 본디 고정된 호적을 두지 않은 채 지구 전체를 고향으로 간주했던 헤세는, 이 숭고한 의식을 모욕하는 그 모든 속물에게 침을 뱉습니다. 이어지는 여행기들은, "여행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을 일갈하며, 그 모든 종류의 타락한 여행을 통해 타지(他地)와 자아를 오염시키는 우리들에게 분노의 심판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원 이거 겁이 나서 앞으로 여행 한번 제대로 떠날까 싶습니다.

     

    저는 헤세의 여행기라고 하면 그저 스위스에 인접한 남독(南獨) 일대나, 호엔슈타우펜의 군주들, 아니 더 멀리 샤를마뉴 대제 이래 줄곧 만족(蠻族)의 동경 대상이 되어 왔던 이탈리아가 그 주된 소재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왔습니다. 이 책의 분량 절반 이상은 그러나 아시아를 두고 벌인 편력 로그입니다. 예전 일본의 어느 평론가가 헤세의 <싯다르타>를 두고, "서양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피상적인 판타지"로 폄하한 말이 생각납니다만, 그의 태생도 그렇고, 중년에 접어들어서도 찾고 찾고 또 찾아 맛본 아시아에 대한 그의 탐닉, 외경의 정도를 생각해 볼 때, 아무래도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싯다르타>를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읽고, 우리 자신도 미처 몰랐던 아득한 정신적 본향의 한 구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톨릭 수뇌부와 제후들이 모여 반항자 후스를 활활 태워 죽일 것을 그 예전에 결의한 보덴 호수에서 그는 유난히 노를 자주 저어 다닙니다(꼭 여기에서뿐 아니라 그는 노젓기를 참 즐기는 신사의 모습을 많이 드러내더군요).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보덴 호수는 유럽에서 보기 드물 만큼 넓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보리수의 향취를 즐기며 끝없는 상념에 빠져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향인들의 역겨운 속물성에 대한 자각도 끊임 없이 뇌리에 새깁니다.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정착에의 혐오, 경각은 그의 태생적 병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덴 호수는 물론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한, 서남 독일의 변방이자 원심력의 극한입니다. 고향 문제를 떠나서도, 이처럼 그가 이곳을 즐겨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태생적 방랑벽이 어느 정도 중증이었는지 짐작게 합니다. 그럼 어쩌겠습니까. 떠나야죠. 식당에서 버릇 없는 웨이터의 뺨을 냅다 치는 다혈질의 그가 아니겠습니까.

     

    이탈리아 반도가 좌우로 폭이 넓지야 않습니다만,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지리적 위치의 동서 이격을 떠나서, 그 역사적 배경과 풍토의 차이 때문에 오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동네들입니다. 이 책 3장은 바로 이 두 곳의 방문 기록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 꽃 파는 소녀가 거리를 누비고 거리의 택시를 곤돌라가 대신하는 베네치아는 석호의 도시입니다. 아드리아 해 가장 깊은 구석에 위치한 이 도도한 도시는 바닷물의 침식을 운명으로 간직하지만, 그 도시를 떠도는 물이야 당연 바닷물이 아닙니다. 기이하게도 베네치아의 물, 물은, 그러나 저 멀리 지중해의 그것처럼 에메랄드의 청록빛입니다. 헤세는 이 빛깔의 마법을 초자연성으로 규정합니다. "베네치아의 물빛에는 태양과 수면이 빚는 빛의 물리적 산란 외에, 자체적으로 뿜어내는 명도와 채도의 그 무엇이 있다."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만 헤세의 이 이국적 풍광에 대한 예찬과 열광은 극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외국, 이방이 좋다기보다, 제 나고 자란 고장에 대한 반(反) 근친혼적 혐오의 발로요, 건강한 (정신적) 번식욕의 일환 같습니다.

     

    그는 <싯다르타>에서뿐 아니라, 이런 여행기들에서 본격적으로 "인도의 시"를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동양인들도, 더군다나 요즘처럼 각종의 여행 상품이 잘 개발된 환경에서도 이처럼이나 많은 곳을 다니기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헤세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인도, 말레이시아, 남중국, 스리랑카, 인도네시아까지 잘도 돌아보고 그 아니면 절대 언술되지 않을 열정적이고 참신한 감상까지 토로하고 있습니다. 헤세는 인도 문화 뿐 아니라, 중국의 전통적 경전, 인문 텍스트의 내력과 평가에까지 훤히 밝은 소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못 배운 백인 특유의 동양 문화 경시 태도에 극렬한 경멸과 노여움을 표현하며, 총명한 동양 소녀의 눈에 잘 드러나는 무제한의 지적 호기심과 그 성취에 대해 경의를 표시합니다. 그냥 "그림"만 보러 다니는 관광객이 아니라, 그 지역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사람"에 대한 선이해를 갖춘 그입니다. 그는 관광객으로서 현지인을 관찰, 감상하지 않고(치를 떨며 싫어하더군요), 그 자신이 너그러운 피사체가 되어 현지인의 호기심에 노출되어 줄 줄 아는 대속(代贖)을 자청합니다.

     

    5장은 제목부터가 "방랑"이며, 뭔 의도인가 싶게 부제는 "수기"라고 붙어 있습니다. 이 장은 제목이 저리 붙었건만, 책 중에서 가장 차분하고 정적(靜的)인 필치로 쓰여진 부분입니다. 주제 하나를 정하고 깊은 성찰을 표현한 다음, 마무리는 그의 장기인 정갈한 시로 짓는 식입니다. 여행 욕구에 들쑤셔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싶을 때 읽으면 차라리 좋을 것 같습니다.

     

    6장에 소개된 "테신"은 단행본으로도 나온(한국어 번역도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저 앞 4장 역시 그 부분만 단행본으로 나오기도 했죠), 스위스 테신에서의 5년 체류기입니다. 여기에는 베를린의 벗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도 나오고, 좀 징그럽게 웃통을 벗고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그의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 겨울밤이 시(詩)의 친근한 소재라면, 여름밤은 매콤한 맛을 풍기는 수필의 반가운 글감이죠. "테신에서의 여름밤"은 우리가 여름의 한적한 정취와 밝아오는 내일의 유흥을 기대하는 설렘, 밤을 새워 정담을 나누고 노래를 불러도 시간이 아쉽고 아까운 그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이 검고 푸른 공감을 최대한 누리고 맛보려는 아이들에게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을 권합니다. 여기에는 또한 정돈되고 경건한 정신적 세계에서 그만의 순결을 지키려는 헤세가, 다른 편 세계에서 추한 물욕을 채우려는 세속인들을 어떻게 보는지, 반대로 그들은 헤세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편린적 진술도 나와 있습니다.

     

    7장의 뉘른베르크 여행기는 앞 장의 공간적, 시간적 속편입니다. 뉘른베르크는 바이에른에 위치해 있고, 완고하고 보수적인 고장으로 독일 내에서도 많이 고립된 정치적, 문화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죠. 대체로 이 책의 글들이 시간순을 따라 배열된 걸 생각하면, 독일에서 나고 자라 이례적이라 할 만큼 객지를 지향했던 그가, 그 편력의 마무리를 가장 변화를 거부하는 땅에서 체류하며 지었다고도 하겠습니다(물론 이 책의 세계를 한계로 잡아서요). 회귀의 구조로 파악한다면 그리 발전적인 여정은 아닌 셈이겠는데, 여기서 그는 토마스 만 등 그와 어깨를 나란히할 문인협회 거인들과 (대체로) 우호적인 회동도 갖습니다. 이 무렵의 그가 대략 40대 후반, 50 초엽이니, 생각이나 스타일, 철학 등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시기를 넘어 장렬한 낙조를 멀리서 볼 무렵입니다. 이 시기에 자리를 같이한 토마스 만과 같이 찍은 사진도 나오는데, 두 분을 다 팬으로 모시고 있는 제게는 정말 기적 같은 한 컷입니다.

     

    이 책은 단행본의 번역본이 아니고, 전집에서 발췌하여 한 권의 책으로 번역해서 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생전의 헤세가 그 의도를 매우 기꺼워하며 칭찬했을 것 같은, 충실한 구조와 이유 있는 짜임새가 돋보입니다. 문장도 매끄로워서 배경의 이국성이 아니라면 번역문이 아닌 것처럼 술술 읽힙니다. 격정과 성마름 속에 인간과 자연, 삼라 만상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간직한 위대한 영혼을 잘 알 수 있는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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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이므로 단순 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는 판매정가의 20%를 적용

2) 중고도서 : 반품/교환접수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접수되어 상품 확인이 어려운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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