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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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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쪽 | A5
ISBN-10 : 8971390840
ISBN-13 : 9788971390849
인간이 그리는 무늬 중고
저자 최진석 | 출판사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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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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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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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버릇없는 인문학 강의’『인간이 그리는 무늬』. 인문학에서 ‘문’이란 원래 무늬란 뜻으로, 인문이란 ‘인간의 무늬’를 말한다. 따라서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며, 교양이나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라고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말한다. 인간이 움직이는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곳곳에서 외치는 상상력과 창의성 또한 인문적 통찰의 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좋다’ ‘나쁘다’의 정치적 판단과 결별해야 한다. 세계의 큰 흐름과 방향을 보여주는 ‘조짐’을 읽어내는 데에 정치적 판단은 인식의 정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욕망에 집중해야 하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에 좀 더 애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로 살기를 원하는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나 ‘나’로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다.

저자소개

저자 : 최진석
저자 인간의 무늬를 그리는 철학자 최진석은 1959년 음력 정월에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태어나고, 유년에 함평으로 옮겨 와 그곳에서 줄곧 자랐다. 함평의 손불동국민학교와 향교국민학교, 광주의 월산국민학교, 사레지오 중학교, 대동고등학교를 나왔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成玄英的‘莊子疏’ 硏究?(巴蜀書社, 2010)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에 가르침을 받았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해 한다. 지금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쓴 책으로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2001)이 있고, 노자의소(老子義疏)(공역, 2007), 중국사상 명강의(2004), 장자철학(개정판, 1998), 노장신론(1997) 등의 책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齊魯書社, 2013)로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목차

인문의 숲 속으로 들어가며 ― 저기, 사람이 내게 걸어 들어오네

첫 번째 인문의 숲 ― 인문적 통찰을 통한 독립적 주체되기
인문학, 넌 누구냐?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
현재를 통찰하는 인문의 더듬이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라
내가 동양학을 공부하는 까닭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
이념은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다
그 무거운 사명은 누가 주었을까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두 번째 인문의 숲 ―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마주 서기
우리는 더 행복하고 유연해지고 있는가
요즘 애들은 언제나 버릇없다
인문학은 버릇없어지는 것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고유명사로 돌아오라
세계와 개념, 동사와 명사
존재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사건이다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
노자, 현대를 만나는 길
지식은 사건이 남긴 똥이다
인간의 무늬를 대면하라

세 번째 인문의 숲 ― 명사에서 벗어나 동사로 존재하라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덕’이란 무엇인가
툭 튀어나오는 마음
하고 싶은 말을 안 할 수 있는 힘
멘토를 죽여라
구체적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진리가 무엇이냐고? 그릇이나 씻어라
동사 속에서 세계와 호흡하라
나를 장례 지내기, 황홀한 삶의 시작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일’을 보라

네 번째 인문의 숲 ―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철학의 시작, 낯설게 하기
타조를 잡는 방법
내 털 한 올이 천하의 이익보다 소중하다
대답만 잘하는 인간은 바보다
자기를 만나는 법
욕망, 장르를 만드는 힘
장르는 나의 이야기에서 흘러나온다
욕망을 욕망하라
명사로는 계란 하나도 깰 수 없다
이성에서 욕망으로, 보편에서 개별로 회귀하라

인문의 숲 속에 머물며 ― 욕망으로 새기는 인간의 무늬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

소크라테스와 한나절만 보낼 수 있다면… 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손 안에 세계를 쥐어 주었다. 그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세계인이 열광하고 긴장했던 까닭이다. 즉 그는 세기(century)를 다르게 했기에 신화가 되었다. “소크라테스하고 한나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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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한나절만 보낼 수 있다면…

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손 안에 세계를 쥐어 주었다. 그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세계인이 열광하고 긴장했던 까닭이다. 즉 그는 세기(century)를 다르게 했기에 신화가 되었다.
“소크라테스하고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주겠다.”
잡스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언뜻 생경하게 들릴지 몰라도 잡스의 생각은 분명했다. 소크라테스 같은 위대한 철학자하고 한 끼 식사를 하면 그 밥값으로 지금 가진 재산을 다 쓸지언정 더 큰 돈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잡스가 이룬 성공이 아니다. “애플의 기술은 인문학과 결합되어 우리의 심장이 노래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라는 또 다른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 잡스는 ‘인문학’을 ‘생존’과 연관시키는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人文, 인간이 그리는 무늬

문(文)이란 원래 무늬란 뜻이다. 따라서 인문(人文)이란, 인간의 무늬를 말한다. ‘인간의 결’ 또는 ‘인간의 동선’이라 부를 수도 있다. 곧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와 인간의 동선을 알기 위함이다. 과거는 ‘인간의 동선’ 뒤쪽이고 미래는 앞쪽 방향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 ‘인간의 무늬’를 가늠하지 않고 가능할까?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교수에 따르면, 인문학은 고매한 이론이나 고급한 교양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인문학 열풍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도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이 아니라 기업인들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이 움직이는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야 성공할 수 있음을 기업인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앞다투어 말하고 있다.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최진석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상상력이란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의 방향이 어디로 움직일지 꿈꿔 보는 능력이다. 상상은 망상과 다르다. 망상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과 아무런 관계없이 멋대로 하는 생각일 뿐이다. 또한, 창의성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 꿈꿔 보고 또 꿈꿔 보다가 그 나아가는 방향 바로 앞에 점을 찍고 “우뚝!” 서 보는 일이다. 따라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인문의 향기를 피하면 안 된다. 상상력과 창의성을 최대의 핵심 문제로 생각하는 기업에서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인문학 없이 상상력이나 창의성도 없기 때문이다. 인문적 통찰의 힘, 그것은 바로 생존의 무기이다.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라

우리가 어떤 사태나 사건을 만났을 때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판단을 한다면, 우리는 그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일 뿐이다. 인문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길들여져 있다는 얘기다. 인문적 통찰은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이 세계가 움직이면서 그려 내는 도도한 흐름과 방향, 그 큰 흐름을 비밀스럽게 보여주는 작은 일이나 현상들을 최진석 교수는 ‘조짐’이라 말한다. 이 조짐을 통해서 우리는 밑바닥에서 도도하게 작동하고 있는 큰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 따라서 조짐은 문명의 방향이나 사태의 진행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데 조짐으로 읽힐 만한 어떤 현상을 보고 단지 ‘좋다’라거나 ‘나쁘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은 문명의 큰 흐름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단절시켜 버리고, 인식을 바로 거기에서 정지시켜 버린다. 인문적 판단을 하는 사람은 ‘좋다’라거나 ‘나쁘다’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인문적 통찰의 힘은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고 ‘조짐’을 읽는 능력이다.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는 사람은
“봄이 왔네!”라고 말하지 않는다

흔히들 우리는 “봄이 왔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봄’이 존재할까? ‘봄’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개념일 뿐이다. 땅이 부드러워지고, 새싹이 돋고, 잎이 펼쳐지고, 처녀들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그쯤 어딘가에 그냥 두루뭉술하게 ‘봄’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봄이 왔다!”라는 말은 진정한 의미에서 감탄의 언사가 될 수 없다. 익숙한 개념을 그저 답습하여 대충 말해 놓고, 무슨 큰 느낌이나 받은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기만이다.
진정으로 봄을 느끼는 사람은 “봄이 왔다!”라고 대충 말하지 않는다. ‘봄’이라는 개념을 무책임하게 내뱉지 않는다. 대신 바투 다가선 봄을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사건들을 접촉한다. 얼음이 풀리는 현장으로 달려가 손을 대보고, 새싹이 돋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땅의 온기를 살갗이나 코로 직접 느낀다.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사건으로 ‘봄’을 맞이한다. 존재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사건이다. 봄을 개념으로 말하는 사람과, 봄에 일어나는 사건을 직접 경험하는 예민한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성숙과 인격의 깊이 차이는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예민함이 유지되는 사람은 “봄이 왔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직접 새싹을 보지요.
예민함이 유지되는 사람은 이론을 보지 않아요. 문제를 봐요.
예민함이 유지되는 사람은 이성적 대답을 하지 않아요. 욕망에 기초한 질문을 해요.
문제에 집중하고, 일상에 집중하고, 구체에 집중하는, 이런 예민함이 유지되는 사람들은 유연해요. 욕망이 활동하기 때문이에요.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가

인간의 삶이란, 지식을 증가시키고 경험의 폭을 늘려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더 자유로워졌는가? 더 유연해졌는가? 눈매가 더 그윽해졌는가? 상상력과 창의성도 더불어 늘어났는가? 이런 질문들에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지식과 경험이란 게 우리에게 무엇일까? 지식을 쌓은 것이 정말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지식을 손 안에 놓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의구심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에 닿아 있다.
지식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우리는 ‘개념’이라 부른다. 개념(槪念)의 ‘개(槪)’라는 글자를 보자. 쌀가게에서 쌀 한 되를 살 때, 우선 됫박에 쌀을 수북이 담는다. 그리고 정확히 한 되가 되도록 싹 깎아 낼 때 쓰는 도구를 평미레라고 하는데, 이것을 한자로 ‘개(槪)’라고 쓴다. 곧, 공통의 틀 속에 들어가지 않는 여분의 것이나 사적인 것 또는 특수한 것은 제외하고, 공통의 것이나 일반적인 것만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 이것이 바로 개념이다. 따라서 개념은 출발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식은 이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어떤 특정 유형을 잠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 ‘개념’에 굴복 당한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일’ 대신에 ‘바람직한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 대신에 ‘해야 할 일’을, 내가 ‘좋아하는 일’ 대신에 ‘좋은 일’을 하는 데 애쓴다. 자기 욕망을 대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과 이념에 이끌리는 사람은 사명감에 쉽게 포박 당한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겠다는 따위가 그렇다. 그 무거운 사명은 누가 준 것인가? 이념과 신념이 만든 ‘우리’는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

여러분은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바라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인문적 통찰은 우리 앞에 등장하는 사태나 사건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 위에다 올려놓고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 값진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냉철한 이성, 체계에 대한 습득, 본질에 대한 숭배, 정치적 계산, 이념에 대한 철저한 수행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최진석 교수는 묻는다. “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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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안정’이나 ‘완벽’은 죽음의 세계예요. 오히려 ‘불안’이 세계의&nbs...
    ‘안정’이나 ‘완벽’은 죽음의 세계예요. 
    오히려 ‘불안’이 세계의 진상입니다. 
    죽어 있는 것은 안정을 유지하고, 
    살아 있는 것은 불안정합니다. 

    불안을 피해 안정으로 나아가려는 꿈, 가능할까요? 
    불완전을 피해 완전이나 완벽에 도달하려는 꿈, 가능할까요? 
    가능하지도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없는 일이니까요. 
    불안과 불완전을 감당하고 가볍게 다루는 힘을 갖는 것이 맞습니다. 

    불안과 부정형성이 이 세계의 진상이고, 그것이 이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은 이념의 세계에 있지 않고, 일상에 있습니다.(p.208)
  • 인간이 그리는 무늬 | ks**592 | 2018.01.21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버릇없는 인문학 강의’『인간이 그리는 무늬』...
    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버릇없는 인문학 강의’『인간이 그리는 무늬』. 인문학에서 ‘문’이란 원래 무늬란 뜻으로, 인문이란 ‘인간의 무늬’를 말한다. 따라서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며, 교양이나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라고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말한다. 인간이 움직이는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곳곳에서 외치는 상상력과 창의성 또한 인문적 통찰의 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좋다’ ‘나쁘다’의 정치적 판단과 결별해야 한다. 세계의 큰 흐름과 방향을 보여주는 ‘조짐’을 읽어내는 데에 정치적 판단은 인식의 정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욕망에 집중해야 하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에 좀 더 애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로 살기를 원하는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나 ‘나’로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바라는 일 보다는 바람직한 일을,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 보다는 좋은 일을 택해왔던 ‘우리’ 중심의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기를 권유하는 책이다. 자기가 자기로 존재할 수 있도록,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에 자기 스스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이 인문학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임을 알려준다.
  • 인간이 그리는 무늬 | du**khan | 2017.12.10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모방송을 보다가 출연자 중 한분이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강력 추천하여 좋은 책일거라 생각해서 구매했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모방송을 보다가 출연자 중 한분이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강력 추천하여 좋은 책일거라 생각해서 구매했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이책 저책 가리지 않고 굉장히 많은 책을 보았다고 하는데(저와도 도서 취향이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잡식성인데...), 진행자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꼭 봐야할 책 한권을 추천해 준다면? 이라는 질문에 탁하고 튀어나온 책이 이 책입니다. 누군가가 망설임없이 권하는 책이라면 믿고 볼 수 있다는 신념이 작용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과연 추천할 만한 책이라는 감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우선 강의를 하듯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어,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읽어나갈 수가 있고, 인문학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인데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동선을 말합니다.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면서 질문하고 생각하며 인문학적 통찰력을 키우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며, 자신의 욕망(하고 싶은 일)을 표현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두번 세번 반복해서 보아야겠습니다.

  • 욕망으로 그리는 삶의 결 | se**0526 | 2016.12.09 | 5점 만점에 5점 | 추천:0
    “인문학에서 ‘문’이란 원래 무늬란 뜻으로, 인문이란 ‘인간의 무늬’를 말한다. 따라서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

    인문학에서 이란 원래 무늬란 뜻으로, 인문이란 인간의 무늬를 말한다. 따라서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며, 교양이나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동양 철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이자 사상을 전파하는 스승인 최진석 교수는 버릇없는 인문학 강의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대 사회에 동양 철학의 깨달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뜨겁게 역설하고 있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등의 저서와 중국사상 명강의』와 같은 역서를 출간하며 노자 사상의 전파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번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인문학의 정의와 배움의 당위성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한다. 인문학이 무엇이며 우리가 왜 배워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아주 쉬운 말로 이야기하듯 풀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정의하는 인문이란? 그것이 바로 인간의 무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건강한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의 확립이란 우리가 집단에 속하게 되면서 갖게 되는 이념, 가치관, 신념과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저자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용기의 필요성 대해 이야기하며 욕망이라는 표현을 쓴다.

     

    요즘 애들은 왜, 언제나, 하나같이 버릇이 없을까요? 그리고 버릇이란 게 대체 뭘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인류 역사상 버릇 있는요즘 애들이 존재했던 적이 있을까요? 언제나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었던 것 같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건대 인류 역사상 버릇 있는 요즘 애들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요즘 애들을 버릇이 없다고 비판하는 바로 그 사람도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릇없는 요즘 애들가운데 한 명 이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는 버릇없는 요즘 애들버릇 있는 어른으로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버릇없음으로 인식되기 쉽다저자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젊은이들을 일정 기준 안에 가두는 기성세대에게는 따끔한 충고를, 틀을 깨지 못하는 용기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따뜻한 격려를 던진다. 잔잔한 그의 이야기에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다. 틀에 갇힌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꿈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 수재라는 사람들도 대답은 잘하지만 문제를 느끼고 질문을 하는 주체적인 능력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는 명문대 진학, 대기업 입사와 같은 것을 꿈으로 여기는 젊은이들에게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 추구하며 욕망해 보아라며 애정 어린 충고를 던진다.

     

    우리로 살기를 원하는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나 로 설 수 있도록,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여 나만의 '무늬'를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   『인간이 그리는 무늬』인문학은 대체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사회...

      『인간이 그리는 무늬』
    인문학은 대체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사회는 가히 인문학 열풍입니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현 시대를 관통하는 풍경을 살펴보면 과장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장 서점에 가봐도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은 인문학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디 서점뿐일까요? 방송과 신문, 잡지에서도 인문학과 관련한 강의와 칼럼이 넘쳐납니다. ‚
      인문학 흥행은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왜 우리 사회는 인문학을 권장하는 사회가 된 것일까요? 아니, 이보다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해 봅시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인문학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걸까요? 인문학이 우리의 삶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요? ‚
      최진석 교수가 쓴 『인간이 그리는 무늬』(2013)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는 책입니다. 노자가 어쩌고,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말했고, 공자가 어떻게 말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선인들이 남긴 인문적 지식을 쌓기 보다는 인문학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일상에서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인문적 지식보다는 인문적 지혜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2015년 한 언론사에서는 우리나라 행복감에 대한 뉴스 브리핑을 실었습니다. 이 뉴스는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많이 웃으셨습니까?”, “누군가에게 존중을 받았습니까?”, “내일이 기다려질 만큼 오늘 하루 즐거우셨습니까?” 그럼 우리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볼까요? 한국 국민들 중에서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얼마나 행복한가요?’,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으로 전 세계 143개국의 행복감 조사를 한 결과,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평균 72점에 한참 모자라는 59점을 받아 118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상위 국가는 전통적인 부자 국가들이 아닌 파라과이, 콜롬비아, 에콰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순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최진석 교수는 이 문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합니다. 첫째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라는 것이 처음부터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는 중국에 막대한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체계로 세상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중국 사상과 이념을 그대로 받아들여 적용했던 것이지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일제 치하시기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 사상이 핵심 이념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이데올로기 문제가 바로 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즉, 우리가 만든 이념이 아니기 때문에 괴리가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모델과 정치 가치관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시킬 능력이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념 체계는 우리와 남을 구분 짓는 도구가 되어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시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이념 갈등의 원인이지요. 이념적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면 적어도 절반은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두 번째는 사람에서 찾습니다. 한국 사회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행복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우리의 이념과 신념입니다. 국가, 집단, 조직이 만들어 낸 이념과 신념을 마땅히 따라야 하고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칭송하며 진리로 확신합니다. 이념이나 신념을 기준으로 놓고 우리 자신을 평가하다 보니 아름답고 행복한 일상은 당연히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의 최종 목적지는 행복입니다. 너무 비약적으로 들리시나요? 천천히 살펴봅시다. ‘인문’이라는 말은 한자로는 人文이라 쓰고 영어로는 Liberal Arts 또는 Humanities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글, 인간에 대한 표현, 인간에 대한 생각입니다. 최진석 교수는 인문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고 표현합니다. 文은 원래 무늬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 됩니다.
      인문학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여 인문적 통찰력을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인문학에는 보통 문사철로 통용되는 세 가지 분야가 포함됩니다. 언어를 다듬고 아름답고 짜임새 있게 사용하여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게 해주려고 하는 것은 문학입니다. 사건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중심으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결의 정체를 알게 해주려고 하면 사학입니다.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는 범주와 개념들로 세계를 포착하여 인간의 동선을 알게 해주면 바로 철학이 되는 것입니다.
      인문학 통찰의 관건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의 정확히 반대편에 있습니다. 즉, 자기가 자기로 존재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나’는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나에게만 고유하게 있는 것, 나를 나이게 하는 어떤 것은 바로 나에게서만 비밀스럽게 확인되는 욕망입니다. 욕망이라는 표현이 조금 거슬린다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통찰력이 필요하며, 인문학적 통찰력의 관건은 바로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정해놓은 신념, 이념, 가치관이 아니라 ‘스스로’로 존재하는 것, 즉,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서 매몰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우뚝 서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인문학 열풍의 근원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요?


    인문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인문학적 지식을 축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문학적 통찰에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지식을 쌓는 것보다 지식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 대한 힘을 갖는 데 집중하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인문학을 통해서 지식을 다루는 힘을 기르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버릇없어지는 것’입니다. 버릇이 없어지는 것이라니 무슨 의미일까요? 어떤 아이가 버릇이 없다는 것은 그 아이가 아직 ‘우리’가 아니라는 말이죠. 어른들끼리 만들어 놓은 어떤 틀 안에 그 아이들이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익숙한 것, 당연한 것, 정해진 것들에 대해 한번 고개를 쳐들어보는 일입니다.
      철학은 그 출발부터 버릇없는 짓이었습니다. 인문적 사조가 시작되기 이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신을 믿는 일이었습니다. 생각의 출발이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믿음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인간 스스로 생각을 시작하기 시작하면서 인문학은 태동하였습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추앙 받는 탈레스(Thales)는 “이 세계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말로 철학의 시조로 우뚝 섰습니다. 신과 결별하고 인간을 독립적인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인문학의 출발은 처음부터 버릇없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창의적인 제품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목 말라 있습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어떻게 발휘 될 수 있을까요? 상상력과 창의력은 우리가 스스로를 독립적으로 대면했을 때 발휘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모르는 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상상력은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지 생각해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기 스스로 독립적인 주체가 되어 관심과 호기심이 일어나야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창의성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 바로 앞에 서보는 일입니다. 독립적 주체의 확립 없이 창의성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문학, 철학, 사학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되고 굳어진 것들을 녹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자기 자신을 믿고, 긍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주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하여 무한 애정을 갖는 것, 자신에 대하여 무한 신뢰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입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지적 호기심’을 쌓는 과정입니다. 지적 호기심은 무엇으로 시작하는가? 이는 바로 낯설게 보고 다르게 보는 힘으로 시작합니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이념, 통념, 신념, 가치관, 개념들에 대해서 낯설게 보고 다르게 볼 줄 아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그럼 어떻게 낯설게 보고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책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욕망에 귀 기울이고, 자기 욕망에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질문하는 것보다는 대답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직장, 사회 생활에서도 똑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문제를 찾아서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주어진 정답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져 있고, 시키는 일만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데 길들여져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질문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질문하지 못할까요? 비판 의식이 없고 궁금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지적 호기심이 없고 낯설게 볼 수 있는 능력도, 다르게 볼 수 있는 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조직’, ‘우리’가 지향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 열풍에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공자가 어떻고, 플라톤이 뭐라고 썼고, 아리스토 텔레스가 주장한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만 습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식은 단순히 구체적인 사실이 남긴 흔적일 뿐입니다.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가 황혼 녘 에야 날기 시작한다는 것은 사건이 번잡하게 일어나던 시간에는 가만히 있다가 사건이 마무리 되고 조용해지면 그때서야 활동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을 달달 외우는 것도 아니고 이론을 많이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실이 남긴 사건과 이론 사이에 작동하는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이론가,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문적 통찰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활동가이자 실천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문학은 이념과 개념에 사로잡혀 딱딱하게 굳어 버린 우리 생각과 태도, 그리고 행동을 부드럽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인문학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인 셈입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찾는 과정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큰 명제가 하나 있습니다. 집단이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것이고, 이성이 욕망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며, 보편성이 개별성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체계에서 개인은 항상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는 존재로 인식될 수 밖에 없습니다. 보편적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모두 다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보편적 이념과 일치하기 전에는 죄다 부족하고 모자란 인간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일상을 의미있게 보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진리’를 쫓기 위해서 우리의 일상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모여서 구성된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일상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삶은 사실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고상함이나 아름다움 혹은 이상적인 일들도 이런 잡다한 일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가장 훌륭한 인간은 구체적 일상을 같이 영위하는 가족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일 것입니다. 인간 성숙의 척도는 높고 크고 거대한 곳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사실은 일상에서 확인되는 것이 더 치명적이죠.
      우리가 진리라고 하면, 구체적인 세계를 넘어서서 어떤 무엇인가로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진리는 어쩐지 변화무쌍한 구체성과는 다른 어떤 것 같습니다.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어떤 형상을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런 것은 조작된 것입니다. 가공물이고 인공물이지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건 구체적인 실재의 세계뿐이에요. 진리는 이 세상을 벗어나 있지 않아요. 진리는 저기 있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문학, 인간이 그리는 무늬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에 대하여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판(1943년) 서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책 안에서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에게 거친 말들이 퍼부어졌다면, 결코 그들을 깔아뭉개려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차라리 나의 이런 확신에 뿌리를 두고 한 소리다: 우리의 문명이 꺼지지 않고 계속 지탱되려면, 우리는 위대한 인간에 대해 그저 굽실거리기만 하는 버릇을 내던져 버려야 한다.”(이명현 역, 민음사)
      다소 강한 표현이긴 하지만 인문학을 한다는 것에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포퍼가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개념에 대해 작정하고 덤벼든 대상은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피히테에 이르는 수많은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인문학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 결, 동선을 파악하여 인문학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인문학적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욕망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국가’가 정해놓은 이념, 신념, 가치관, 지식, 개념에 정확히 대면하고 스스로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것들로 규정된 것들 것 대해 버릇 없어지고, 낯설게 보고,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해 보도록 만들 수 있는 촉매제가 인문학이라는 것입니다.


      MBA 과정에 처음 입학했을 때, 한 노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신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MBA에 왜 왔습니까?"
      "경영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얻고 싶었습니다.", "진로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갓 입학한 MBA 학생들은 대체로 이런 답을 했습니다. 저는 특별히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머리 속으로는 그들의 답에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은 굳어있는 제 머리 속을 부드럽게 해주었습니다.


       "MBA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지금 배운 지식은 당장 일년 뒤에 유효할 까요?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 데 죽은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MBA는 경영학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습득하기 위한 시간으로 보내야 합니다." 

      무릎을 탁 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CEO 중에서 MBA 출신이 절반도 안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에는 인문학적 통찰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누군가 꿈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회사 입사 자기소개서나 면접 전형에서 지원 동기를 묻는 경우에 우리가 하는 답변은 어떤가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무너진 법치를 회복하기 위해 판사가 되겠다, 올바른 경영이념을 실천하는 CEO가 되어 우리 경제에 이바지 하겠다,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인재로 성장하겠다, 이런 것들이 주요 답변 아닐까요?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사회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가득차게 만든 것일까요? 정작 우리 안에 우리는 어디가 버린 것일까요?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정한 이상은 우리는 결코 다다를 수 없습니다. 다다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들은 자기 스스로의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익숙함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이고, 거창하고 비현실적인 것을 쫓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조금씩 실행할 수 있는 용기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요.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 아닐까요? 


      물론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회, 조직, 학교,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혜를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생각하는 방식으로 담아두면 우리는 조금씩 행복한 삶에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인문학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께 입문서로 추천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다소 내용이 중복되거나 겉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반복적으로 보고, 자기 자신에 투영해 본다면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을 쫓고 개념을 쫓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 지혜를 탐구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인문학이 가진 힘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앞으로 문학, 사학, 철학 관련 인문학 도서를 읽고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기초체력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Reference: http://blog.naver.com/beatmi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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