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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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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쪽 | A5
ISBN-10 : 8972974943
ISBN-13 : 9788972974949
동양철학 에세이 중고
저자 김교빈 | 출판사 동녘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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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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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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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 전국 시대 제자백가의 주요 사상을 쉽게 설명한 입문서 <동양철학 에세이> 개정증보판. 인류 역사에서 학문적으로 가장 자유롭고 화려했다는 춘추 전국 시대 제자백가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 각 사상의 시대적 한계와 의미를 긍정적인 면과 아울러 부정적인 부분까지 함께 살펴보며, 쉽고 간결하게 동양적 특징을 지닌 사상들을 소개한다.

이 책은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을 비롯하여 비교적 덜 알려진 묵자, 명가, 법가 등 10여 개 사상의 핵심 주장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550년에 걸친 춘추 전국의 긴 혼란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애쓴 사상가들의 강한 실천 의지를 만나볼 수 있다. 이번 개정판에는 임금이나 백성이나 똑같이 농사지어 먹고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농사꾼의 철학 '농가'를 덧붙였다.

저자소개

° 지은이 김교빈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인문콘텐츠학회 회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냈고, 현재 호서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철학 에세이》(동녘)《하곡 정제두》가 있고,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 《강좌 한국철학》 《기학의 모험》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이 있으며,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 《중국 고대의 논리》 《중국 고대철학의 세계》 《중국 의학과 철학》 《기의 철학》 등이 있다. 이현구는 195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호서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동의과학연구소 편집위원 및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것》(동녘)이,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 《박물관에서 꺼내온 철학 이야기》《기학의 모험》 등이 있고,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 《중국 의학과 철학》《기의 철학》이 있다. ° 그린이 이부록은 1971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비디오아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에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를 펴냈고,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그림을 그렸다.

목차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책 머리에

바로보기 - 우리들의 동양철학
공자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자 - 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묵자 - 약자를 지키는 방패
장자 - 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맹자 - 유가의 파수꾼
순자 -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법가 -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한다
명가 - 상식을 부순 사람들
농가 - 영원한 농사꾼의 벗
주역 - 점쟁이와 철학자
돌아보기 - 남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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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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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21>동양고전7강-명가 | pi**mf | 2011.10.09 | 5점 만점에 4점 | 추천:0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7강 (2011.10.5)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7강 (2011.10.5)
     
    <명가-상식을 부순 사람들>
     
    솔직히 이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명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명가는 중국 전국시대에 나타난 제자백가의 하나로 이름[名]과 실재[實]의 관계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 인간 인식의 상대성과 제한성을 강조하였으며, 명실(名實)의 불일치를 극복하여 천하를 바로잡겠다는 명실합일의 정치사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학파로서의 성격도 불분명하며 남긴 저술도 별로 없다. 명가라고 불리는 혜시, 공손룡, 등석, 윤문자, 송경 등도 맹자와 장자 무렵의 사상가들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이렇다 할 관련성도 없다. 다만 名과 實 문제에 관심이 있어 그 둘의 관계를 바로잡아 사회 질서를 회복하려는 사람들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명가는 흔히 후세 사람들에게 변론가(辯論家)ㆍ형명가(刑名家)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국 전국시대에 학파가 발전했으나 당시에는 명가라는 명칭 대신에 일반적으로 변자(辯者)라고만 불렸다. 그러다 한(漢) 시대에 들어서면서 명가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주요한 이론적 관심을 이름[名]과 실재[實]의 관계에 둔 데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에 들어서 사회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예법을 정비하기 위해 사물의 명칭과 실체 사이에 나타나는 불일치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나타났다. 명가 사상은 초기에는 예법을 정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필요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인간의 인식과 개념ㆍ논리에 관한 추상적인 논변으로 발전했으며, 그 과정에서 명실(名實)의 관계를 바로잡아 사회의 혼란을 극복하겠다는 명실합일(名實合一)의 정치사상도 발달시켰다.
     
    명가를 대표하는 사상가로는 혜시(恵施)와 공손룡(公孫龍) 등이 꼽힌다. 혜시는 현상 세계의 공간과 시간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인간 인식의 상대성을 밝혔고, 공손룡은 언어적 개념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서 인간 인식의 한계를 밝혔다. 특히 혜시는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오늘날에는 <장자> 천하편에 기록된 역물십사(歷物十事) 등을 통해서만 그 사상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역물십사는 사물의 이해에 관한 10가지 역설적인 명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혜시는 명분과 경험에 얽매인 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비판하며 인식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대동(大同)은 소동(小同)과 다르다. 이것이 소동이(小同異)이다. 만물은 어느 면에서는 모두 같고, 어느 면에서는 모두 다르다. 이것이 대동이(大同異)이다”라는 다섯 번째 명제는 모든 사물이 차별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식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혜시는 진리의 상대성을 강조하여 큼과 작음, 높음과 낮음, 과거와 미래, 중심과 주변 등의 절대적인 분별에서 벗어나 천지일체(天地一體)의 관점에서 만물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였다.
     
    명가는 다양한 비유를 통해서 인간 인식의 상대성과 제한성을 강조하여 상식과 경험에 기초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극복하려 했다. 즉 인간은 경험적 감각 기관에 따라 인식이 제한되어 결국 물(物) 자체의 전체 속성을 이해할 수는 없다며 인식의 제한성과 상대적, 주관성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서양학자들은 대놓고 명가를 궤변론자, 논리학파, 변증론자라고 부를 정도로 궤변처럼 보이는 주장도 나타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백마는 ‘백마’이지 ‘말’이 아니라는 공손룡의 ‘백마비마론’은 후세까지도 궤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개념의 외연(外延)과 내포(內包)에 관한 엄격한 논리적 분석과 구분을 주장한 것으로, 명실(名實)의 관계를 바로잡아 천하를 교화시키겠다는 실천적인 문제의식의 표현이었다.
     
    명가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사상과 유사해 주목되기도 한다.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명가의 학설은 시간과 공간을 해체하여 인식의 상대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아킬레스는 먼저 출발한 거북이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과 비교된다. 그러나 명가 사상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철학적 방법론을 발달시켜 중국 고대 철학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후대에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어 체계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는 동양적인 사유 체계에서는 분석적인 방법이 주류를 이루지 못해, 명가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개념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상적 토양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 상황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진나라가 통일 국가를 이루면서 그 뒤를 이은 한나라도 도량형이나 문물 제도를 통일 시키는 정책을 쓰면서 상식을 부정하는 명가 사상이 후대로 이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말에 한 일간지를 읽다가 다음 문장을 보고 빵 터졌다."한나라당은 한심하고, 민주당은 민중을 모르고, 민주노동당은 북한 노동당 같고, 국민참여당은 국민이 참여 안 하고, 진보신당은 자기네만 진보인 줄 안다." 춘추전국 시대의 명가가 돌아와 작금의 작태를 보고 저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名인가? 實인가?
     -끝-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6강 (2011.9.28)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6강 (2011.9.28)
     
    <법가-인간을 조직하고 활용하라>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이 두명을 말하라고 하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마오쩌둥과 등소평을 꼽게 된다. 이들 둘을 읽고 연구하지 않고는 오늘날의 중국과 내일의 중국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특히 그중에서 마오쩌둥은 법가사상에 경도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가는 중국 고대의 여러 학파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성이 강한 이론을 냈다. 소년 마오가 존경했던 이는 2,500년전 진나라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상앙이다. 상앙은 법가사상을 바탕으로 냉혹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렸다. 진나라는 그의 부국강병책으로 마침내 일곱 나라로 갈라져 서로 싸우던 전국 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한비자를 비롯한 법가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생각이다. 한비자가 순자의 학문과 연관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순자의 성악설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순자 '성악'편의 첫 문장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인간이 선한 것은 위(僞)다” 로 시작된다. 여기서 '위'는 '거짓'이라는 의미가 아나라 '인간의 노력'을 뜻하며, 순자의 이 명제에서 방점은 '인간의 노력'에 찍힌다.
     
    법가 사상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기적 동물로 보았으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이익을 탐하는 욕심으로 물들어 있다고 말한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는 사랑말고 그 무엇이 있다. 아들이 태어나면 부모는 서로 반가워하고, 딸이 태어나면 죽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딸은 다같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일 때는 기쁨이 따르고, 딸일 때는 죽음이 따르는 것은 어째서인가, 부모는 나중에 편할 것을 생각하고 장기적 이익을 계산한다. 부모까지도 자식과의 관계에서 이해 타산적인 계산을 하고, 이에 따라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중국에서 모계 사회가 부계 사회로, 즉 가부장제로 바뀌는 시기를 대개 기원전 11세기 경의 은주 교체기로 본다. 따라서 한비자의 시대에는 이미 부권 사회가 확립되어 있었다. 또한 농업 사회에서 사람(노동력)은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다. 아들은 나중에 자라서 일손을 하나 데려오지만, 딸은 커서 다른 집으로 시집가 버리니 손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개인주의와 자유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부모 자식의 관계가 이기적이라고 말하기를 꺼리는 것을 생각하면, 법가 사상가들의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다.
     
    “하인이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그가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에 대한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인이 하인을 잘 대우하는 것은 그가 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인이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은 이용 가치에 집중되고,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한다.”<한비자, 외저설 좌장>
     
    “사람은 이기적 목적으로 주고 받는다. 이해 관계가 맞으면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화목하게 살 것이고, 이해가 충돌한다면 아비와 자식 사이라도 서로 충돌할 것이다.”<한비자, 육반>
     
    “옛날 정나라의 무공은 호나라를 정벌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딸을 호나라 왕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렇게 하고 신하에게 물었다. “나는 타국을 치고 싶다. 어느 나라를 치면 좋은가?” “호나라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부 관기사가 말했다. “호나라는 우리와 인척 관계가 아닌가. 호나라를 치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무공은 몹시 화를 내고 관기사를 죽였다. 호나라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안심하여 정나라에 대한 방비를 게을리 했다. 그 약점을 이용하여 정은 호나라를 공격하여 차지하였다.“ <한비자, 설난>
    “미자하라는 미소년이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위나라의 법률로는 왕의 수레를 탄 자는 다리 자르는 형벌을 받는다. 어느 날 미자하는 어머니가 급한 병이 들었다는 연락을 받고 왕의 명령이라 속여 왕의 수레를 사용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죄를 묻기는커녕 도리어 칭찬을 했다. 과연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생각한 나머지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잊다니. 또 어느 날 미자하는 왕을 따라 과수원에 산책하러 간 일이 있었다. 복숭아를 먼저 먹어 본 미자하는 맛이 있자 먹다만 복숭아를 왕에게 권했다. 왕은 “제가 먹을 것도 잊으면서 나를 주다니”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미자하의 아름다움이 시들자 왕의 총애는 멀어졌다. 왕은 미자하의 지난날의 잘못을 끄집어내어 화를 내었다. “이놈은 거짓말을 하고 내 수레를 사용한 적이 있다. 또 먹다가 만 복숭아를 나를 먹게 했다.” 미자하가 취한 행동은 달라진 게 없었으나, 앞서 창찬 받은 그 일로 뒤에 벌을 받게 된 것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한비자, 설난>
     
    동아시아의 역대 국가는 실제로 유가의 도덕적 인간관을 기초로 한 예악 문화와 법가의 사상이 동전의 양면처럼 어울리며 통치 질서를 유지하였다. 안으로 법가를 뼈대로 삼으면서, 겉으로 유가의 도덕규범을 이용하여 통치한 것이다. 법가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심리와 변화하는 상황의 변수를 기초로 인간의 일반 심리와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법 개념은 서양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진나라를 제외하고, 중국에서 법은 2000년 이상 거의 무시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은 듯하다. 중국인들은 법의 지배보다는 윤리적인 심성을 지닌 관료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서양의 법이 신이나 자연의 높은 질서를 인간사회에 구현해놓은 것이라면, 한비로 대변되는 법은 군주를 위한 통치의 기술을 체계화해놓은 것이지 일반 백성들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점이 한비가 주창한 법체계에 이미 비극이 서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관용보다는 차디찬 법이 판치고 백성들보다는 단 한 사람의 군주를 위한 생각들이 판치는 세상이 된 진 제국은 한세대는커녕14년만에 망해 결국 중국에서 가장 단명한 국가가 되고 말았다. 또, 상앙은 반대파들에게 붙잡혀 온몸이 찢기는 거열형으로 죽었고, 한비자는 친구 이사의 모함으로 감옥에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법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끝-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5강 (2011.9.21)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5강 (2011.9.21)
     
    <묵자-겸애와 반전평화 ; 약자를 지키는 방패>
     
    “피와 혼돈의 춘추전국시대.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둔 조나라 대륙의 10만 대군은 마지막 길목에서 조그만 양성함락을 눈앞에 두었다. 인구 4천명의 작은 성 양성. 그들은 '묵가'에게 지원 부대를 요청하지만, '묵가'에서 온 지원군은 단 한 명 혁리(유덕화 분)뿐. 홀홀 단신 양성을 돕겠다고 찾아온 혁리는 양성의 모든 이에게 비웃음을 사지만 한발의 화살 공격으로 조나라의 기를 꺽으며, 그 후 전략적인 방어 전술로 조나라의 공격을 기적처럼 막아낸다. 점차 양성의 사람들은 혁리를 따르게 되고, 양성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위태로움을 느끼고 혁리를 제거 할 음모를 꾸며 성밖으로 내쫓는다. 심지어 혁리를 따르던 성민들까지 처벌 하는데. 혁리의 방어로 무고하게 희생된 부하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조나라의 10만 대군을 이끌고 양성을 기습한 항엄중(안성기 분). 필살의 공격으로 양성은 초토화 되지만 항엄중의 목적은 단 하나, 혁리를 이기는 것이다. 막아야 하는 자와 침략해야 하는 자. 혁리와 항엄중의 최후의 대면. 과연 혁리는 양성을 평화롭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2007년 1월에 개봉했던 영화 <묵공>의 줄거리다(네이버에서 인용). 당시 이 영화를 볼때만 해도 묵공이라는 영화제목의 뜻도, 영화의 중심사상을 이루고 있는 ‘묵자’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유덕화를 보기 위해 선택한 영화였다. 그런데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5강에서 ‘묵자’를 들으면서 비로서 이 영화가 이해 되었다.
     
    묵자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은 적(翟)으로 출생은 송나라설과 노나라 설이 있다. 墨刑을 받아 묵이라는 설과 피부가 검어 묵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가 하층민이라는 근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묵가 집단의 초대 지도자였던 묵자는 방어용 무기를 개발하는 등 뛰어난 기술자로 벼슬이 송나라 대부까지 오르게 된다. 묵자집단인 묵가들의 구성원 대부분은 하급 무사나 기술자 같은 하층민으로, 엄격한 조직력과 동지적 결합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들은 비좁은 네모 방에서 기둥에 조각하거나 벽을 꾸미지도 않고 음식은 질그릇에 옥수수나 조밥에 국 하나로 대신했고, 짐승 가죽이나 베로 옷을 해 입고, 나막신과 짚신만 신었다. 밤낮 쉬지 않고 일하면서 극한의 고통 속으로 자신들을 내몰았다. 또 묵자는 사치와 낭비를 줄이고, 규범으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겉치레에 흐른 예악도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검소와 절용(節用)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상을 위해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등 무사들의 직업윤리를 승화시켜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철학으로 오직 약자를 위한 방어전쟁만을 수행했다. 묵자는 초기에는 유가를 공부했지만, 후기에는 유가를 비판하게 된다. 공자가 전설적 제왕인 요임금과 순임금을 높인 것과 달리, 묵자는 황허를 다스리는데 공이 컸다는 우임금을 높였는데 이 점 또한 묵자가 기술과 일의 효용을 중시했음을 보여 준다. 묵자 사상은 피지배 계층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공자 이후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다. 맹자가 “세상이 양주와 묵적의 주장으로 가득 찼다”고 한탄한 것을 보면, 당시 묵자의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묵자의 사상은 묵자 자신과 뒷사람들의 저작이라고 알려져 있는『묵자』에 잘 나타나 있듯이 겸애와 교리에 바탕하고 있다. 겸애는 정치적 평등에 대한 요구, 교리는 경제적 평등에 대한 요구로, 한마디로 말하면 차별없이 사랑하고, 서로 이익을 나누자는 것이다. 당시로 볼 때 묵자의 주장은 가히 혁명적이었으며, 그는 민중의 편에 가장 가깝게 선 사상가였다고 하겠다.
     
    그런말이 있다. 20대에는 묵자처럼 치열하게 살다가 30〜40대에는 한비자처럼 영악하게 살고, 50〜60대에는 공자나 맹자처럼 근엄하게 살다가 70〜80대에는 노자나 장자처럼 유유자적하며 사는게 어떠냐고. 아마도 이 강의가 다 끝나게 될쯤이면 여기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수 있게 되겠지. -끝-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4강 (2011.9.14)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4강 (2011.9.14)
     
    <노자와 장자>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날, <동양고전강의>가 벌써 4강으로 접어 들었다. 바깥날씨도 여름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음을 실감하지만, 강의장 수강 분위기 역시 여전히 뜨겁긴 마찬가지다.
     
    먼저 도가와 도교를 구분해야 한다. 도가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말한다. 도교는 도가사상에 무속, 신선술, 불교 등의 사상이 합쳐져 민간의 주술적 신앙과 결합했다. 노자는 《도덕경》이라는 81개 장, 5000자가 조금 넘는 분량으로 이루어진 운문(철학시)을 남겼다. 노자의 도는 도덕경 1장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노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유가의 도덕 규범은 그들이 지어낸 도일 뿐,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노자는 정치를 생선 굽는 일에 비유하여, 자꾸 이리저리 뒤적이면 생선이 다 부서지고 타 버리는 것과 같이, 정치가 백성들에게 끼어들수록 천하가 뒤죽박죽이 된다고 했다. (뭘 해도 제대로 되는게 없다고 한탄하는 요즘 위정자들이 무릎을 칠 만한 대목 아닌가!) 노자의 정치론은 다음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최고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고 칭송을 듣는다. 그 다음 수준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 아래는 백성들이 그를 경멸한다.” -도덕경, 17장
     
    노자는 실존 여부가 불투명한 인물이지만, 장자는 맹자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동양고전 중《장자》만큼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책도 드물다. 철학서로서, 또 문학서로서 빼어날 뿐만 아니라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비유와 역설이 담겨 있다. 그것은 삶의 지혜로 가득 찬 우화집으로 읽힐 수도 있고, 특유의 도가적 상상력으로 포장된 신화적 사유의 보고가 될 수도 있으며, 또 그런 주제들을 탁월한 레토릭으로 버무려낸 한 편의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오죽하면 미국의 시각으로 신비화되어 서구의 우월감을 관철하는 역할을 했던 라즈니쉬도 그의 강연에《장자》를 인용하기 일쑤였고,《장자》를 저본으로 한 많은 책들을 남겼을까.《장자》를 천의 얼굴을 가진 고전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자는 침략 전쟁으로 나라를 훔치는 군주에게 봉사하는 지식인들의 이론이 어떠한 맹점을 지니고 있는가를 깊이 문제 삼았다. 그는 당시 지식인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이론들은 어떻게 말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나와 그대가 논쟁을 했다고 하자.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나는 그대를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그대가 옳고 나는 그른 것일까?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는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내가 옳고 그대는 그른 것일까?
     
    그 어느 쪽은 옳고 어느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 모두가 옳거나 우리 모두가 그른 것일까?
     
    나나 그대나 모두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본시부터 멍청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을 해줄 수 있겠는가?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을 해줄 수가 있겠는가?
     
    나나 그대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나 그대와는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올바로 판단을 해줄 수 있겠는가?
     
    나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이미 나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을 해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나 그대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논리를 믿겠는가? 《장자, 제물론》
     
    “물론 도가 사상에는 회의와 부정, 풍자적 비판 같은 소극적인 모습도 있다. 그러나 노장 사상의 참모습은 허위 의식에 대한 비판과 평등 의식에 대한 갈망이다. 그들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을 보면서 모두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제 역할을 다하는, 모두가 주체로 어우러지는 평등 사회를 바랐던 것이며, 이 같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 주체적 삶을 가로막는 온갖 사회 제도와 허위 의식을 부정하고 비판했던 것이다.” (『동양철학 에세이』324-325쪽) -끝-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3강 (2011.9.7)   ...
    “고전에서 길을 찾다” - 르네21 <동양고전교실> 제3강 (2011.9.7)
     
    <유가의 파수꾼 - 맹자>
     
    3강의 주제는 맹자와 순자다.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 나서 298년에 죽었다. 공자가 죽은 뒤 100년쯤 지나서 태어난 셈이다. 유가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 시대다. 전국 시대는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 시대보다 혼란이 더 심했다. 어느 날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났다. 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천릿길을 멀다 않고 저희 나라를 찾아 주셨으니 저희 나라에 무슨 이로운 일이 있게 될까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임금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를 따지면 벼슬아치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에 이로울까를 따지게 되고, 선비나 일반 민중은 어떻게 하면 내게 이로울까를 따지게 됩니다. 그러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맹자》<양혜왕 상>
    요즘 세태를 대입해 봐도 여전히 유효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왕이 하루는 당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아래로 어떤 신하가 소를 한 마리 끌고 지나갔다. 물끄러미 보고 있던 제선왕이 신하에게 물었다.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예, 흔종(새로 만든 종의 갈라진 틈을 소의 피로 메우는 의식)에 쓰려고 합니다.”
    “놓아 주도록 해라. 벌벌 떨면서도 죄도 없이 죽으러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못 보겠구나.”
    “그러면 흔종을 그만둘까요?”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도록 해라.” (중략)
    “임금께서는 소는 보셨지만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셨을 뿐입니다.” (『동양철학 에세이』150-151쪽)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 순자>
     
    순자는 여러 면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유사하다. 순자 이전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모든 것의 근원을 하늘에서 찾았다. 만물을 낳아 준 것도 하늘이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도 하늘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만물 생성의 근원일 뿐 아니라 인간 도덕의 근원이기도 하다. (중략) 성악설로 대표되는 순자의 철학은 운명론에 대한 부정이었고 인문정신의 극치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순자의 이런 점에 주목해 유물론 철학의 창시자라고 평가한다. 순자는 폭군을 길길이 뛰는 난폭한 말이나 철모르는 갓난아기에 비유하였다. 그래서 백성을 위하지 않는 군주는 물이 배를 뒤엎듯이 혁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순자의 혁명론은 맹자의 혁명론과 다르다. 맹자의 혁명론도 민중이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민중의 뜻에 근거를 둔 것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늘의 뜻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순자는 하늘을 끊어 버렸다. 순자의 혁명론은 민중의 의지에 직접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동양철학 에세이』180-198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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