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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눈 아래에서(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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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4쪽 | 양장
ISBN-10 : 8994606548
ISBN-13 : 9788994606545
조상의 눈 아래에서(양장본 HardCover) [양장] 중고
저자 마르티나 도이힐러 | 역자 김우영 | 출판사 너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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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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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깨끗하고 보기에도 편하고 좋아요 5점 만점에 5점 sune*** 20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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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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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사 연구의 획기적인 이정표! 세계적인 석학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난 50년 동안의 열정을 다한 한국사 공부를 집대성한 『조상의 눈 아래에서』. 신라시대 초기에 생겨나 가장 대표적인 사회 단위로 뿌리내린 한국 고유의 출계집단(씨족 또는 족, 겨레라 불리는)에 초점을 두고 신라 초기(4~5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한국 출계집단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경상도의 안동과 전라도의 남원을 선택하여 그들이 만들고 다진 촘촘하게 짜인 사회구성을 들여다본다. 연구의 초점은 출계집단이지만, 여러 대에 걸쳐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 것은 각 출계집단을 대표하여 행동한 개인들이었다. 저자는 안동과 남원에 정착하여 공동체를 다져나간 그 주역들의 공적인 삶을 들추어내는 가운데 사회적인 것이 한국인의 삶 구석구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내앞의 의성 김씨, 유곡의 안동 권씨, 주천의 진성 이씨, 둔덕의 전주 이씨, 안터의 순흥 안씨 같은 집단과 행동했던 개인들에 대한 내러티브에 지성사,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를 엮고,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고 왕조의 경계를 뛰어넘은 친족 이데올로기의 검토를 통해 얻어낸 통찰을 통해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나아가 그 유구한 역사의 성격과 작동방식을 다시 평가하게 한다.

저자소개

저자 : 마르티나 도이힐러
193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라이덴대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 규장각에서 연구하였고, 1972년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특별연구원이 되었다. 1975년부터 1988년까지 취리히대 교수를,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런던대의 아시아·아프리카 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런던대 명예교수이다.
『한국의 유교화 과정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으로 1993년 위암 장지연상을, 2001년에는 용재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영국학술원 회원이며 2008년 1회 한국국제교류재단상과 2009년 미국동양학회 아시아연구공로상을 수상하였다.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The Opening of Korea, 1875~1885』, 『Culture and the State in Late Chos? Korea』(공 편저) 등의 저서와 다수의 한국사 관련 논문이 있다.

역자 : 김우영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코넬대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역사학과 인류학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대표적인 역서로는 『전염병의 세계사』, 『세계의 역사 1, 2』, 『중세의 사람들』, 『멩켄의 편견집』, 『문화의 숙명』,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등이 있다.

역자 : 목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 인류학과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From Paddy Field to Ski Slope: The Revitalisation of Tradition in Japanese Village Life』, 『동아시아 문화전통과 한국사회』(공저), 『조선양반의 생활세계』(공저), 『교토 니시진오리의 문화사』 등이, 역서로 『문화의 해석』 등이 있다.

목차

지도와 그림 목록
머리말

서론: 친족, 신분, 지역성

1부| 한국사회의 토대
서언

1장 신라와 고려의 토착적 출계집단
신라의 토착적 출계집단 |고려 초 건국 엘리트층의 형성 |과거제도: 중앙집권화의 도구 |고려 전기의 저명한 출계집단들 |고려 전기 귀족층의 성격 |고려 후기의 엘리트 출계집단: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기 |고려 후기 엘리트의 면면

2장 정체성의 위기: 새 왕조의 모험
실패한 개혁 노력: 변화의 적 |권문: 고려 후기의 악당 |신유학자: 국가 부흥의 이론적 선도자 |조선 초기의 출계집단 |세족 엘리트층에게 다시 힘을 실어준 새로운 관료적 질서 |권력경쟁: 귀족의 과두정치 대 왕의 독재

3장 신유학의 도전
신유학에 대한 양면적 접근 |과거제 개혁과 경연 |도학 이상주의의 발전 |사림의 부상 |한국 ‘도통’의 구성


2부| 지방의 재구성
서언

4장 지방의 재점령: 재지 엘리트 출계집단의 형성
지역적 배경 |초기 엘리트의 형성: 안동과 남원의 토착 출계집단 |이주와 초창기의 선구적 정착자들 |공동체의 강화를 통한 지역의 안정화

5장 조선 중기 재지 엘리트 세력의 공고화: 사회적 차원
안동의 재지 엘리트 |남원의 재지 엘리트 |적절한 혼인망의 구축 |엘리트와 서자

6장 조선 중기 재지 엘리트 세력의 공고화: 경제적 차원
경제적 기반의 확립 |노비: 도처에 편재한 사족 엘리트의 ‘수족’ |공동체적 노력을 통한 안동의 지역적 발전 |시대별 경제적 전략: 유산의 관리 |안동과 남원의 토지와 노비: 비교

3부| 유학: 학문과 실천
서언

7장 유학자로서의 사족 엘리트
안동의 초창기 사림 |전라도의 초창기 유학 |안동의 관학과 사학 |퇴계의 제자가 된 사족의 자손 |학문과 과거: 유생들의 딜레마 |처사: 초야의 유학자 |경상도 남부의 처사: 남명 조식 |안동 최초의 서원 설립 |퇴계의 지적 유산 전승을 둘러싼 갈등

8장 의례적 실천과 재지 종족의 초기 형성
관습적인 상례와 제례 |주희의 의례 개념에 대한 한국적 이해 |종법의 초기 신봉자들 |오래된 종교적 관행과의 경합 |개혁된 의례: 엘리트 문화의 발현 |묘제집단의 개혁 |조상묘의 재발견과 묘지의 재배열 |정체성과 초기의 족보 기록 방식 |의례의 혁신과 사회적 변화

9장 공동체의 계층화와 지역사회의 지도력
공동체적 관계의 실천: 동계 |엘리트 신분의 각인: 향안 |안동의 향안 |지배의 규범: 향규 |유향소 |유향소 대 국가 |공동체의 방위: 임진왜란 |안동의 전후 복구 |전후의 개조: 새로운 향안과 향규 |도덕의 회복: 향약의 개정 |남원의 전쟁피해 |17세기의 문턱에 선 재지 사족

4부| 분열과 결속
서언

10장 중앙과 지방: 이해의 상충
중앙과 지방 사이의 점증하는 격차 |안동의 사례 |남원의 사례 |지방에서의 정치적 대결 |안동의 사례 |남원의 사례 |국가의 향촌 침투

11장 종족제도의 성숙: 정체성과 지역성
승중자의 입지 강화 |조상을 모시는 삶 |특이한 의례적 관행 |유교적 원리에 도전한 서자 |부계제의 안전장치: 친족 결사체로서의 문중 |성숙한 재지 종족조직 |지방화와 동성마을의 발달 |정체성과 출계의 역사 |정체성의 상실과 회복: 드문 이야기 |존경의 표지: 친족의 통합요인

12장 학문과 정치: 정통성을 둘러싼 경쟁
퇴계 사후의 지적 재편 |사족의 보루: 안동의 서원들 |붕당의 이해에 매몰된 유교의 도 |붕당의 갈등과 딜레마 |전라도의 사례 |영남 내부의 불화와 세력경쟁 |안동과 1728년 이인좌의 난 |영조 치하의 영남: 깨어진 화해의 희망 |노론 침투 압력하의 영남 남인 |18세기 후반의 영남

5부|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서언

13장 안정 속의 변화: 사족 신분의 유지
신분 유지를 위한 농업책 |농촌공동체 생활의 에토스 |선비의 ‘경제적 형편’ |분쟁의 대상이 된 위토와 묘소 |엘리트의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모임 |조상에게 바치는 기념물: 사우 건립과 문집 편찬 |신분의 배타성: 족보의 차원 |사족의 계층분화와 경쟁

14장 사족 우위의 종말?
안팎으로부터의 도전 |구세력 대 신세력: 당파적 동기로 인한 갈등 |압력집단으로 부상한 서얼 |사족의 보루에 침투한 서자 |전국적인 서자운동 |안동과 남원에서 재부상한 향리 |“통제 불능의 하급자들” |전통적 사회신분제의 종말

결론

부록 A: 문서자료
부록 B: 안동과 남원의 주요 출계집단의 세계도

참고자료
감사의 말
찾아보기: 본관별로 나열된 인명 | 기타 출계집단 | 인명, 지명, 용어

책 속으로

‘권’은 주로 ‘강력한’으로 번역 되지만, ‘상황을 저울질’하거나 ‘사태의 긴박성을 판단’한다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기회주의적’이라는 의미를 띨 수도 있다. 이 해석이 옳다면, 권문은 ‘강력한 가문’보다는 ‘기회주의적 가문’을 나타낸다. 물론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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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 주로 ‘강력한’으로 번역 되지만, ‘상황을 저울질’하거나 ‘사태의 긴박성을 판단’한다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기회주의적’이라는 의미를 띨 수도 있다. 이 해석이 옳다면, 권문은 ‘강력한 가문’보다는 ‘기회주의적 가문’을 나타낸다. 물론 권문이라는 용어에는 ‘권력’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권문은 과거제의 틀 밖에서 왕의 은총을 입어 권세를 잡은 다음 협잡과 뇌물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평민을 괴롭힌 사람들, 요컨대 부도덕한 행위로 전통적인 사회정치적·경제적 질서를 위협한 사람들을 지칭했다.
통상적인 역사서는 대개 권문과 세족을 하나의 단어, 즉 권문세족으로 뭉뚱그려 ‘오랫동안 권세를 누리면서 타락한 고려 후기의 기성 정치세력’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지만, 최근에 박용운은 그 두 용어가 당대의 문헌에서 합성어로 쓰인 적이 없고, 사실은 상이하게 구성된 두 집단, 즉 ‘기회주의적 가문’(권문)과 지체 높은 세습 엘리트층(세족)에 별도로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바 있다. 이 통찰은 고려 후기의 권력구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족과 권문 사이의 경계선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두 용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1300년대 초반에 두 집단의 권력관계가 사상 최초로 역전되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_ 본문 77~78쪽

주인과 노비의 관계는 종종 군신관계에 비유되었다. 이는 상호의존성을 암시함으로써 지배와 종속의 가혹한 현실을 은폐하는 방법이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노비의 본분이고, 그 공로에 보답하는 것은 주인의 권한이다.” 그럼에도 주인이 노비의 신체, 노동, 재산, 자손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다는 사실은 그 관계의 극심한 불평등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주인과 노비의 관계는 긴장과 적대감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유학자의 인도적 양심에 위배되는 상황에 날마다 직면했던 일부 엘리트 노비주는 엄격함과 인자함을 적절히 안배하여 노비들을 다루는 방침을 마련했다.
노비의 관리는 당대의 수많은 ‘가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예컨대 본인이 노비주였던 이퇴계는 아들 준에게 권위만 내세우지 말고 자애심을 갖고 노비를 다루라고 충고했다.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노비들이 원한을 품지 않게 하라고, 또 “무지한 여자노비를 관대한 마음으로” 대하라고 배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규율에 따르게 하라고 준에게 타일렀다. 하지만 “비협조적이고 방자한” 노비들이 가문을 망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면서, 소심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들의 불복종을 부추기지 말라고 훈계했다. 그는 노비란 천성적으로 완고하고 태만하므로 엄격하게 감독하지 않으면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비료를 주는 적기를 놓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게으른 노비 한 명을 골라 매질하면 다른 노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또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노비들이 수령의 관아에 자주 출입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서로 싸움질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분명히 퇴계는 노비들을 단호하면서도 관대하게 통제하고자 했다. _ 본문 256~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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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한국을 향한 노대가의 열정, 한국 사회사 연구의 획기적인 이정표 세계적인 석학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의 50년 한국사 연구를 집대성한 역작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난 50년 동안의 열정을 다한 한국사 공부를 집대성한 신...

[출판사서평 더 보기]

한국을 향한 노대가의 열정, 한국 사회사 연구의 획기적인 이정표
세계적인 석학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의 50년 한국사 연구를 집대성한 역작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난 50년 동안의 열정을 다한 한국사 공부를 집대성한 신작『조상의 눈 아래에서』를 내놓았다. 이 책은 신라시대 초기에 생겨나 가장 대표적인 사회 단위로 뿌리내린 한국 고유의 출계집단(씨족 또는 족, 겨레라 불리는)에 초점을 두고, 신라 초기(4~5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한국 출계집단의 역사를 다룬다.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이 친족 이데올로기는 출생과 출계를 기반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를 창출했고, 엘리트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내구력을 부여했다. 중국에서 차용한 과거제와 신유학은 위계질서를 허무는 데 실패했다. 엘리트의 월권에 제약을 가하기는커녕 괄목할 만한 방식으로 엘리트의 지배를 강화했던 것이다. 도이힐러 교수는 신유학의 변혁능력을 강조한 기존 한국사의 관점은 이 토착적인 친족 이데올로기의 지속성을 간과했다고 한다. 엘리트에게 유교식 사회의 윤곽을 제시한 신유학은 종종 후기 조선사회의 경직성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엘리트 제도’를 존속시킨 것은 신유학이 아니라 내구성 있는 친족 이데올로기였다.

저자는 경상도의 안동과 전라도의 남원을 선택하여 그들이 만들고 다진 촘촘하게 짜인 사회구성을 들여다본다. 예컨대 내앞의 의성 김씨, 유곡의 안동 권씨, 주천의 진성 이씨, 둔덕의 전주 이씨, 안터의 순흥 안씨 같은 집단과 행동했던 개인들에 대한 내러티브에 지성사,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를 엮어 넣는다.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경제적·지적 문제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 저자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신흥사대부 조선 건국론’에 대해 신흥사대부의 출현은 애초에 없었다며 고려의 세족(世族)이 조선의 사족(士族)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라는 점, 고려 말의 권문(權門)과 세족은 엄연히 다른 집단이기 때문에 권문세족이란 용어는 폐기하자는 점, 당쟁은 정치적 현상이었을 뿐 아니라 엘리트층의 신분과 신분 유지에 직결된 사회적 현상이었다면서 붕당의 끈질긴 생명력은 친족 집단과의 관련성이 기인한다는 점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고 왕조의 경계를 뛰어넘은 친족 이데올로기의 검토에서 얻어지는 저자의 통찰이,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나아가 그 유구한 역사의 성격과 작동방식을 다시 평가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사회사 연구의 획기적인 이정표라 할 만하다.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는 1960년대에 한국에서 조사 및 연구를 수행한 최초의 서양인들 가운데 한 명이다. 해외 한국학을 선도하는 학자로, 중요한 저서 몇 편을 쓴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로운 상을 다수 수상했다. 저자는 역사와 사회인류학의 방법론을 결합하여 한국의 역동적인 역사와 사회를 관통해온 메커니즘을 재평가하는 참신한 틀을 만들어냈다.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 인터뷰

도이힐러: 이 책은 출계집단(族, descent group)에 대한 논의이다. 나는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핵심을 파고들고자 했고, 엘리트 사회의 기본단위는 출계집단이라고 판단했다. 출계집단은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본인들의 혈통을 추적하는 친척의 집합체이다. 따라서 매우 명확하게 정의되는 집단이다.
이 출계집단은 5세기 무렵에 나타났는데, 초기 출계집단 시스템, 다시 말해서 전통 한국사회의 기본 특징은 그것이 여러 신분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 출계집단은 정치권력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런 지적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집단의 존재감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나의 결론은 사회적인 것이 한 개인의 정치 참여 수준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을 분류한 것은 정치체제(political system)가 아니라 사회체제(social system)였고, 따라서 사회체제, 곧 개인의 사회적 신분이 그가 정치체제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가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출계집단들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귀족가문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거주하면 엘리트층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라의 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이 귀족들이 지방으로 이주했고, 이 무렵에 그들은 ‘김’이나 ‘이’나 ‘왕’ 같은 중국식 성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 가운데 예컨대 동해안의 강릉으로 이주한 김씨들은 강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강릉 김씨와 같은 성과 본관의 결합은 엘리트층의 이름표 구실을 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흥미로운 주제는 이 출계집단은 워낙 중요한 존재였기에 온갖 역사적 변화를 겪어내고 심지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질문: 그 집단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도이힐러: 조상숭배, 즉 제사이다.

질문: 사회체제가 사회와 가문에서 한 사람의 지위를 결정했던 것인가?

도이힐러: 그렇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각자의 신분에 따라 조상을 모시는 사당 앞에 도열하는 순서도 달라졌다.

질문: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계층구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도이힐러: 정확한 통계수치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엘리트 집단은 인구의 10~12%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들과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있었다. 다른 두 집단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양인으로, 대부분 논밭을 가는 농민들이었다. 나머지는 거대한 노비 집단이었다. 조선 초, 즉 15세기 초엽에 노비는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노비들은 특히 엘리트의 경제생활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엘리트는 그들을 위해 무보수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비들의 무리 없이는 엘리트로 존재할 수도, 엘리트 노릇을 할 수도 없었다. 노비 신분은 세습되었으므로, 노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날 때부터 노비였고 평생 노비로 살아야 했다.

질문: 그런데 노비제를 비롯한 신분제는 19세기에 한국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나?

도이힐러: 아니다.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한국의 근대화가 더디게 진행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매우 엄격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질문: 그렇다면 이런 구제도는 지금은 영향력을 상실했는가?

도이힐러: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자식의 결혼을 앞둔 부모는 결혼상대가 유서 깊은 엘리트 가문의 후손인지에 대해 대단히 신경을 쓴다. 물론 노비 집안 출신을 자녀의 배우자로 맞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분의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질문: 그러면 옛 신분제는 정치적으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이힐러: 아니다. 사회적으로 강력하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적 기능도 수행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역구 의원들은 사회적 기반이 견고하기 때문에 국회에 입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뿌리 없이는 당선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신분의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른바 엘리트가 사회적 엘리트에서 경제적 엘리트로 바뀌고 있지만, 상당히 부유한 경제적 엘리트도 오래된 사회적 엘리트와 관계를 맺고자 애쓴다. 후자는 아무리 빈곤해졌다 하더라도 유서 깊은 가계(家系)를 자랑하기에, 경제 엘리트는 그 후광을 입으려고, 나아가 그들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 편찬 붐을 일으켰던 족보는 개인의 출신을 보여주는 보증서로, 누군가의 이름이 그것에 등재되어 있다는 것은 그가 엘리트층의 일원임을 증명해준다.

질문: 책 세 권을 내셨는데, 만약에 네 번째 저서를 쓰신다면 그 책의 주제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도이힐러: 네 번째 책을 쓸 여력은 없을 듯하지만, 나는 이미 일종의 소규모 연구에 착수했다.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한국사회가 출계집단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개인은 이 출계집단의 일부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출계집단에 기초한 사회가 어떻게 개인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근대화된 민주사회로 전환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식민지 시대나 현대에 한국인이 겪은 변화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아무도 “개인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이 인터뷰는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스위스 취리히대 명예박사 학위수여를 기념하여, 2018년 같은 대학 민족학 박물관에서 처음 상영관 <한국을 향한 열정> 4부작 필름 중 네 번째인 Passion for Korea-Under the Ancestors’ Eyes(2015) (Producer Rolf Probala. Z?rich 2017)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려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사회적인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것에 우선했다”

한국사회 고유의 친족 이데올로기는 신분의 위계와 신분의 배타성을 찬미하면서 운명의 붉은 실처럼 신라 초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한국의 역사를 관통했다. 귀족, 세족, 사족, 양반 등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엘리트층은 스스로를 출계집단(族, descent group)에 의거하여 정의했는데, 이 집단은 양계적으로, 다시 말해 부계와 모계 모두를 통해 출생과 출계의 기원을 찾았다. 성취적 속성보다는 귀속적 속성을 자랑스러워하는 엘리트는 출계집단 모델에 뿌리를 둔 사회적 기준을 이용하여 국가와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조상의 후광이 엘리트의 사회정치적 토대였으므로 실력에 기반을 둔 중국의 엘리트층과는 달리 신분에 대한 법적 정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도이힐러 교수는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합법화된 위계와 지배의 패턴은 신라의 골품제에서 발단한 이후 전통시대 한국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제도들의 성격과 작동방식을 규정했다고 간주한다.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보다 우선시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친족 이데올로기는 정치의 세계를 규정했으며 왕조 교체를 뛰어넘은 동인이었고, 나아가 한국 사회가 그토록 오랫동안 연속성이 보장된 까닭이기도 했다. 때문에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토착적인 출계집단의 출현과 발달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라 초기(4~5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한국의 출계집단의 역사를 추적하는 한편 공간적으로는 경상도의 안동과 전라도의 남원을 가로지른다. 두 곳이 지리, 인구, 경제의 측면에서 대조적일 뿐 아니라, 공적인 역사자료는 물론 고문서, 문집, 족보, 읍지 등 풍부한 역사 기록을 보존하고 있으며 주요하게는 한국에서 가장 저명한 몇몇 재지 출계집단의 기원과 발달을 연구하는 데 안성맞춤인 곳이기 때문이다. 안동의 의성 김씨, 안동 권씨, 광산 김씨, 진성 이씨, 풍산 유씨, 고성 이씨, 남원의 전주 이씨, 삭녕 최씨, 광주 이씨, 순흥 안씨 들이 그 예이다. 연구의 초점은 출계집단이지만, 여러 대에 걸쳐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 것은 각 출계집단을 대표하여 행동한 개인들이었다. 저자는 안동과 남원에 정착하여 공동체를 다져나간 그 주역들의 공적인 삶을 들추어내는 가운데 사회적인 것이 한국인의 삶 구석구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1부 ‘한국사회의 토대’에 포함된 세 장은 유교 도입 이전의 한국사회에 대한 새롭고 폭넓은 관점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이 관점은 나중에 조선왕조에서 이룩되는 사회적·지적·정치적 발전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하다. 첫 두 장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출현한 토착적 출계집단의 기원과 초창기의 발달을 추적하고, 중국식 과거제도가 맹아기의 정치제도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탐구한다. 세 번째 장은 고려에서 조선 초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루어진 신유학의 도입을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이라는 넓은 맥락 속에서 논의한다. 2~5부는 조선시대 엘리트층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본다. 2부 ‘지방의 재구성’은 엘리트 출계집단이 ‘지방화’를 체험한 두 군데의 주요 지역인 안동과 남원을 소개한다. 3부 ‘유학:학문과 실천’의 주제는 지방에 정착한 엘리트들이 젊은 시절에 유학을 공부하던 방법과, 이런 학습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된 유교의 예법을 자신들의 친족집단에 적용하던 방식이다. 3부는 지방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연고지에 대한 강력한 지배권을 어떻게 주장하고 확대했으며, 16세기 말의 임진왜란과 1620년대와 1630년대의 만주족의 침략에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된다. 4부 ‘분리와 결속’은 17세기에 접어들어 점차 벌어진 중앙과 지방의 간극과, 그것이 엘리트의 사고와 행동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또한 그로 인한 학문적 분열과 붕당을 해명하고, 종족의 제도적 성숙을 조명한다. 5부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는 마지막으로 18세기의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재지 엘리트층의 전략, 그리고 사회적 경계의 타파를 시도하던 경합세력의 등장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각 부는 당대의 특수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조건들을 개관하는 간략한 ‘서언’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개별 장들의 내용을 한국사라는 더 큰 틀 속에 놓고 바라보기 위함이다.


과거제와 신유학은 한국사회의 위계질서를 허무는 데 실패했다

중국식 과거제도의 도입(958년)과 신유학의 도입(14세기 후반)은 한국사회와 출계집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었다. 경쟁에 기초한 인재 등용인 과거제의 도입은 귀속적 자격과 정치적 성취의 관계에 대한 엘리트층의 생각을 바꿔놓았고, 신유학에 의한 부계출계율의 보급 및 확대는 토착적 출계집단의 구조를 혁신했다. 그러나 이 책이 밝히는 것처럼 종국적으로 과거제와 신유학이 위계질서를 허무는 데는 실패했다.
실력을 중시하는 중국식 과거제는 정치 참여가 생득권이었던 한국의 전통에 반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사조(四祖)를 입증할 수 있는 자에게만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출계가 우선이고 실력은 그 다음으로, 한국의 과거제는 중국의 모델과 확연하게 달랐다. 조정은 여전히 귀족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처럼 정치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을 보완하는 것쯤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사회 안에 포섭된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왕의 권한에 영향을 미쳤다. 귀족적 관료제는 왕의 지배력을 약화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역사에서는 왕의 독재가 애당초 불가능했다.
도이힐러 교수는 고려-조선 왕조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평가하려면 여말선초의 과도기에 대한 통념, 즉 사회정치적 균열을 틈타 '새로운' 세력이 '구체제 옹호세력'을 대체했다고 가정하는 이른바 '신진사대부' 설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고려의 세족이 조선의 사족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므로 친족 이데올로기의 연속성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권력은 여전히 신분에 내재되어 있었고 누대에 걸쳐 한정된 범위의 동일 출계집단들 내에서 순환되었다. 그 결과 고도로 사유화된 정치가 생겨나 왕권에 제약을 가했다.

한편 신유학은 부계 출계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한국사회 고유의 양계와 중국식 부계 사이의 갈등을 야기했다. 하지만 부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엘리트의 지위는 계속해서 양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엘리트들은 신분의 양계적 귀속이라는 가장 중요한 전통을 지켜내면서도 유교식 부계제라는 이데올로기적이고 구조적인 요소를 받아들임으로써 조선 후기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유서 깊은 지배권을 계속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붕당의 토대는 친족이었고, 붕당의 끈질긴 생명력 또한 출계집단과의 관련성에 기인했다

도이힐러 교수의 유명한 전작『한국의 유교화 과정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1992)이 고려-조선 교체기의 엘리트 사회가 고유의 양계제에서 유교적 부계제로 이행하는 역사적 과정이 주제였다면, 신작 『조상의 눈 아래에서』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는 16세기 중반 이후 출계집단 구조의 획기적인 변화였던 '종족제도'의 출현이다. 그녀는 한국사회에서 종족의 출현이란 지방화된 엘리트가 심혈을 기울여 구상한 '차별화 전략'으로, 국가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는 동시에 향촌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다고 정의한다.
15~16세기 초반 한국사회에는 사회 엘리트들의 지방의 각처로 대거 이주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은 다양했다. 녹봉체계의 붕괴로 토지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이른바 ‘사화’와 같은 끔찍한 사건들을 피하기 위한 은신처의 필요 때문이기도 했다. 고래로부터 이어온 ‘처가거주혼’에 따라 지방에 눌러 앉은 엘리트들은 신유학을 공부하여 지역 공동체를 촘촘하게 짜인 사회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자신의 터전인 농촌공동체를 수호하라는 요구에 직면했을 때 지방화된 엘리트들은 축적된 부와 사회적 연결망을 동원하여 외적에 맞서 싸웠고, 이들이 전쟁의 패자가 아닌 승자로 부상한 것은 이후 국가에 맞서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조선이 건국되고 150여년이 지난 시점에 종족이 지방에서 처음 생겨나 자리를 잡게 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교식 부계제가 농촌이라는 환경에서 엘리트를 조직하는 매력적인 모델이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한국의 종족제도는 지적·의례적·경제적·정치적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로 그 요인들이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하나의 요인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를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한다.
신유학의 역할을 살펴보자. 첫 번째 유교화가 여말선초 '치국'의 실학이었다면 두 번째 유교화는 사화를 거치며 사림이 주도권을 행사한 '수신'에 기초한 도학의 정치화였다. 도이힐러 교수는 한국에서 국가 정학이라 불릴 만한 것이 출현할 수 없었던 주된 이유로 16~17세기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추종하는 양대 신유학파 사이에서 벌어진 경쟁과 갈등 때문으로 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올바른' 학문임을 주장하던 두 학파 사이에 투쟁은 오직 승자와 패자만을 낳았으며, 그 균열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를 벌려놓았다. 끝없이 지속된 당파적 논쟁 속에 지방화된 엘리트들은 그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다. 저자는 붕당의 토대는 친족에 기초하였으며 붕당의 끈질긴 생명력 또한 출계집단과의 관련성에 기인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당쟁은 정치적 현상이었을 뿐 아니라, 엘리트의 신분과 신분의 유지에 직결된 사회적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서인이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앙에서 주도권을 잡음에 따라 퇴계의 후계자인 남인은 정계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17세기 이후 과거 급제나 관직 제수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 경상도와 전라도의 재지 엘리트들의 급선무는 자신들의 신분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교식 종족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들의 상황에 대처했다.

종족은 과거 급제 없이도 재지 사족의 신분을 유지해준 대안이었다

종족이란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일정한 수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긴밀하게 조직된 부계집단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뒤따랐다. 장자의 지위가 상속에서는 물론 제사의 주제자로 격상됨에 따라 남동생들의 의례적·경제적 입지가 축소되었는데, 이는 평등한 형제관계를 강조하던 고래의 전통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형제들 사이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좀 더 폭넓게 구성되는 조직인 '문중'이 만들어졌다. 문중은 평등한 형제관계의 이상을 되살린다는 취지에서 출계집단의 모든 성인 남계친을 포함시키는 사회단위로 - 장자가 제사를 지냈다면 - 이들은 시조나 현조를 기리는 묘제를 봉행했다. 이처럼 한국의 부계제가 문중에 의해 균형이 맞추어지지 않았다면, 엄격하게 조직된 중국식 부계제는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 저자는 해석한다. 이 또한 한국의 사회적 전통이 중국식 모델을 변용시킨 예이다. 종족은 재지 엘리트가 중앙으로부터의 소외, 국가의 지방에 대한 통제와 압력이 가중되는 17세기 상황에서 과거 급제 없이도 사회적 우위를 인정받는 대안이자 사회정치적 도구였으며 재지 엘리트의 신분을 정당화하고 유지시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또한 붕당과의 결연을 통해 정치적 성격을 띠며 국가와 사회 사이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다.
도이힐러 교수는 서울에서 벼슬을 하던 소수 엘리트 출계집단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반면, 재지 엘리트의 출계집단의 손에 ‘토지’가 집중된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라 기술한다. 또한 중앙과 지방의 분리에서 지역 차별은 결코 서북 지방에 국한되었던 현상이 아니라 영남(남인)과 전라(남인과 서인) 또한 소외당했다 한다. 한국사회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교화된 국가로 일컬어지지만, 토착적 친족 이데올로기의 힘과 내구성은 중국식 과거제와 부계화 같은 외래의 영향을 무력화하거나 변용시켰다. 출계집단 모델은 외국의 영향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그 자체의 필요에 따라 패턴을 수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역동적 모델이었다.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전통적인 신분제가 붕괴되었다

한국식으로 해석된 유교는 사회적 차별을 완화시키기보다는 강화시켰다. 향리와 서얼은 엘리트층에 가깝다는 이유로 주변화되었고, 특히 평민과 노비를 소외시켰다. 향리가 조선 초기에 정권을 장악한 엘리트층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대하려 할 때 '문제'가 된 집단이었다면, 서얼 문제는 고려시대에서 선례를 찾을 수 없는 전적으로 새로운 현상이었다. 고유의 양계에 부계라는 독특한 조합이 서자 문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재지 양반층이 책의 주연이라면 향리와 서얼은 조선 후기 양반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독립적으로 제각기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던 조연들이다. 일부 양인과 노비는 자신의 생활여건을 개선하여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사족의 체면은 손상시켰다. 조선후기 재지 엘리트들은 갈수록 다양한 대항세력에 시달리며 운신했다. 실제로 지방이라는 무대는 '향전鄕戰'이라는 신조어가 시사하듯이 유동적이었고 때로는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지 사족은 자신들의 물질적, 상징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자신들의 신분상 우위를 방어하고 유지하려 했다.
무엇이 이 불평등한 사회를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로 묶어왔을까? 사족은 단순한 억압과 착취로 대부분이 문맹인 인구를 통제했을까? 아니면 사족이 전파한 사회계약의 도덕률이 수직적으로 분배된 권한과 수평적으로 작동되던 공동체성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신분집단들 사이의 관계를 중재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지배 엘리트들이 그런 가치와 관행을 보급한 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하급자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했던 현실을 감추기 위함이었을까? 그토록 오랫동안 양반 엘리트에게 특권을 부여했던 사회신분제는 조선 후기에 비엘리트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신분상승'을 꾀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개혁될 수 없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직함을 팔아서 그런 추세를 부추긴, 다시 말해서 그것을 산 자들에게 군역을 면제시켜줌으로써 적어도 사회적 입신의 환상을 심어준 것은 바로 정부였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구성된 '귀'와 '천'의 제도는 엘리트층이 변화하는 사회적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막았고, 비엘리트층이 부나 직함을 앞세워 양반 계층에 침투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런 까닭에 저자는 엘리트층의 몰락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을 것이라 한다. '제도'로 법제화된 적은 없었지만, 신분제는 한 사회집단이 사회의 나머지 집단들을 지배하는 것은 급변하는 근대세계에 설 자리를 찾고 있던 국가에서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간주됨에 따라 1894년에 돌연 철폐되었다.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전통적인 신분제도가 붕괴된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인 것’은 근대세계에서 그 규범적 힘을 상실했지만 감정적인 신비감을 간직하고 있었고, 한국사회의 ‘양반화’라고 적절하게 명명된 현상을 낳았다. ‘역사적인 실체로서의’ 양반은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는 비난에 자주 휩싸이지만, 양반의 신분을 내세우는 것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개인의, 나아가 지역과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할 때 여전히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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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회원리뷰

  • 우선, 비싼 가격... 내용도 두꺼워서 제본이 밑으려 쳐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분책하여 2권으로 출판할수도 없...
    우선, 비싼 가격...
    내용도 두꺼워서 제본이 밑으려 쳐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분책하여 2권으로 출판할수도 없었을 것이다.
    왜? 안팔리니가....

    그래도 '도이힐러'하면 나름 팔리는 미국연구자이기 때문에...
    조금은 팔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용면으로 보면..
    1.
    이렇게 읽기 힘든 책도 없을 것이다.
    자기만의 문장을 써야 한다라는 미국글쓰기 문화 때문일까?
    6단어?가 똑같으면 표절이라고 하기 때문일까?
    참신하다면 참신한거고...기발하다면 기발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연구서들에서는 좀 처럼 볼 수 없는 표현과 용어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미국은 '용어의 엄밀성' 인식은 희박한 것일까?

    2.
    참...한결같다...저자 스스로 전작이었던 유교화 과정 이후 집필했다고 하는데...
    원저는 2015년 출간인데...참고문헌은 2000년 중반을 내려오지 않는 것 같다...
    어쩜이렇게도 70~90년대 연구 위주로 인용했을까?
    그렇다고 당시의 연구를 두루 읽은 것도 아니다.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도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3.
    그러다보니, 읽기가 힘들다.
    사실 100여쪽까지 힘겹게 읽다가 내려놓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분노를 폭발시키고자 할 때 읽어봐야겠다...

    4.
    이 책의 결론은, 조금 거칠게 요약하면,
    고려 건국때 형성된 지배계급이(그 안에는 신라때부터 지배계급도 있고)
    조선후기까지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조선후기의 지배계급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내용과 연결시키면, 우리사회는 신라때부터 지금까지 지배계급이 바뀌지 않았다.
    고인물도 이런 고인물이 없는 사회인 것이다.

    5. 
    법적인 규정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도 참 신기하다.
    "과속 벌금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사실상 그 규정은 무의미하다. 지금도 과속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설득력있는 논리 같지만, 이런식이라면 규정은 무엇하러 만드는가?
    "피부색 차별(이른바 인종 차별) 금지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사실상 그 규정은 무의미하다. 지금도 차별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설득력있는 논리인가? 그래서 결론은 미국=피부색차별국가=미국??

    6.
    전작에 대한 서평은, 최재석의 서평이 있으니 참고해보시길...
    노학자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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