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로 여겨지던 해석학은 20세기 들어 어떻게 철학의 반열에 올랐을까? 해석학이 상대주의적 사유라는 오해를 벗어나 21세기에도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해석학을 처음 성립한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에서 출발해 리쾨르와 가다머에 이르기까지 12명의 해석학자를 중심으로 철학적 해석학의 발전과 흐름, 앞으로의 과제를 한 권에 담아낸 입문서.
저자소개
저자 : 장 그롱댕 1955년에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현재 몬트리올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신학, 철학을 공부했고, 논문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진리개념에 관하여(Zum Wahrheitsbegriff Hans-Georg Gadamers)>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라발대학교와 오타와대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1991년부터 몬트리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해석학적 물음에 꾸준히 천착해왔고, 주된 연구 주제는 칸트, 하이데거, 가다머, 철학적 해석학 등이다. 이와 관련된 많은 책을 썼는데, 특히 《해석학의 보편성(L’universalit? de l' herm?neutique)》은 1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철학 저널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러한 연구 활동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캐나다인에게 수여하는 몰슨(Molson) 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해석학적 진리?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진리개념(Hermeneutische Wahrheit? Zum Wahrheitsbegriff Hans-Georg Gadamers)》, 《철학적 해석학 입문(Einf?rung in die philosophische Hermeneutik)》, 《해석학을 위한 감각(Der Sinn f? Hermeneutik)》, 《해석학의 근원(Sources of Hermeneutics)》,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일생(Hans-Georg Gadamer. Eine Biographie)》, 《하이데거에서 가다머로, 해석학으로 가는 길(Von Heidegger zu Gadamer, unterwegs zur Hermeneutik)》 등이 있다. 이외에도 가다머의 저서를 번역해 소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역자 : 최성환 독일 본(Bonn)대학에서 철학을 주전공으로, 교육학과 비교종교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고, <딜타이의 체계사상>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중앙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해석학회와 한국현대유럽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철학 오디세이 2000》, 《오늘 우리는 왜 니체를 읽는가》 등을 공저로 펴냈고, 옮긴 책으로 니체 전집 중 한 권인 《유고(1880년 초~1881년 봄)》,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철학적 해석학 입문》, 《행복의 철학사》, 《현상학의 지평》, 《철학의 본질》 등이 있다. 발표한 논문으로 <딜타이 철학에서의 심리학적 연구의 의의>, <음악작품과 해석>, <방법과 진리>, <해석학과 수사학>, , <해석학에 있어서 자연의 문제>, <해석학과 마음의 문제>, <다문화 인문학과 해석학> 등이 있다.
목차
서론 해석학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1장 해석학의 고전적 이해 2장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19세기, 더 보편적인 해석학의 성립 3장 하이데거: 해석학의 실존론적 전회 4장 불트만: 하이데거 이후 해석학의 성립에 대한 암묵적인 기여 5장 가다머: 이해사건의 해석학 6장 베티, 가다머, 하버마스: 해석학과 이데올로기 비판 7장 리쾨르: 해석들의 갈등에 직면해 제시된 역사적인 자기의 해석학 8장 데리다, 가다머: 해석학과 해체(주의) 9장 로티, 바티모: 탈근대적(포스트모던적) 해석학 결론 해석학적 보편성의 용모들
책 속으로
우리가 어떤 작품을 해석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어떤 시대의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슐라이어마허는 그의 입장에서 이해권역의 ‘잠재화 가능성’을 제한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객관적이며 주관적인 표지들을 정립하고자 시도했...
우리가 어떤 작품을 해석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어떤 시대의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슐라이어마허는 그의 입장에서 이해권역의 ‘잠재화 가능성’을 제한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객관적이며 주관적인 표지들을 정립하고자 시도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가 생각하기에 작품은 그것이 속한 문학적 장르에 기초해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보면 작품은 또한 저자의 사태이다. 작품이 바로 저자의 삶에서 일부분을 형성하며, 삶에 대한 앎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_41쪽 2장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우리는 이미 현존재가 해석학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현존재는 그 근본에서부터 하나의 이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이데거는 다시 한번 오래된 전통과 단절한다. 그는 ‘이해한다’에서 인식함보다는 할 수 있음, 어떤 능력, 어떤 노하우, 혹은 숙련성을 발견한다. 이를 위해 그는 독일어 관용구 ‘무엇에 숙달하다’, 즉 ‘어떤 일을 훤히 알고 있다’, ‘어떤 것에 능력이 있다’를 증거로 제시한다. ‘무엇에 숙달함’은 재귀동사인데, 이 동사는 실행에 나를 포함시킨다. 그것은 항상 그곳에서 전개되는, 또한 이해에서 어떤 것을 감행하는 내 자신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해는 ‘할 수 있음’이며, 이러한 ‘할 수 있음’에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항상 나 자신의 가능성, 따라서 ‘자기이해’이다. _64쪽 3장 하이데거
가다머는 언어가 이미 사물 자체의 존재를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점을 확고히 한다. 이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서 존재뿐만 아니라 이해도 발견되는 보편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이 둘을 근원적으로 서로 융합하는 결속이다. 존재와 이해의 ‘언어성’이라는 이러한 보편적 요소는 해석학이 보편성 요구를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를 통해서 해석학은 정신과학에 대한 반성이라는 지평을 넘어 우리의 세계경험과 세계 자체의 언어적 성격에 대한 보편적이며 철학적인 반성으로 나아간다. _117쪽 5장 가다머
해석학은 어떻게 고유한 철학이 되었을까 철학적 해석학의 기원과 흐름을 한 권으로 정리하다!
해석학(Hermeneutik)은 서양 철학의 여러 분야와 역사를 관통하는 학문으로서 서양 철학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학문의 역사에서 해석학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세기에 슐라이어마허가 보편적 해석학을 선구적으로 기획하기 전까지 해석학은 신학, 법학, 문헌학 등의 텍스트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기예’에 불과했다. 이때의 ‘올바름’은 당대에 요구된 규범이나 지침에 가까웠기에 해석학은 사실상 ‘보조학문’이었다. 이러한 ‘기예론’이 철학적 위상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로 접어든 이후다.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그 방법적 엄격함이 정신과학에도 요구되었고, 해석학은 정신과학의 방법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후 ‘해석’의 의미는 방법론을 넘어 점차 “삶의 한가운데서 발견하는 기초적 사건들”로 확장되었는데, 이때 니체와 하이데거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해석의 대상이 텍스트에서 실존으로 옮겨가면서 인간의 이해 능력이 주목받았고, 해석학이 언어적?역사적 차원에서 고유한 철학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석학 입문서로서 이 책은 큰 발자취를 남긴 학자나 특정 시대에 집중해 소개하기보다는 해석학의 이러한 흐름을 전반적으로 짚는다. 서양 철학 전반에 걸쳐 있는 학문이라는 해석학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서술방식은 적절해 보인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해석학이라는 학문에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현대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학문으로서 해석학의 미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부터 로티와 바티모까지 가다머에 가려진 위대한 해석학자들을 재조명하다!
이 책이 다른 해석학 입문서와 구별되는 큰 특징은 가다머에 치우쳤던 기존의 서술방식을 벗어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가다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이자 ‘철학적 해석학’의 창시자다. 따라서 해석학의 흐름과 역사를 다루는 기존의 책들은 불가피하게 그를 중심축에 두곤 했다. 물론 현대 해석학의 거목인 그를 빠뜨리지도, 그의 철학에 매몰되지도 않으면서 해석학의 흐름을 개괄하려는 시도는 무척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여기서 저자 장 그롱댕이 손꼽히는 가다머 연구자라는 점은 오히려 이 책의 의도적인 ‘축소’ 서술을 신뢰하게 만든다. 그 결과 이 책은 가다머 외에도 낭만주의 해석학에서 나타난 보편적 해석학을 위한 노력들, 보편성을 향한 슐라이어마허의 도약, 해석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딜타이의 이념, 이에 대한 하이데거의 인용과 접목, 로티와 바티모의 탈근대적 해석학 등을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 특히 불트만에 대해서는 “하이데거의 해석학 이해가 어떻게 텍스트 해석의 고전적인 물음들에 고용되어 제시될 수 있는지 보여준 최초의 위대한 사상가”라고 극찬하며 새로이 평가한다. 아울러 리쾨르의 해석학을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가다머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중요하게 다룬 것 또한 이 책의 성과다. 저자는 리쾨르가 가다머의 해석학과 하버마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신뢰와 의혹’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해석학으로 구별 지었던 점을 강조하고, 그가 “윤리학 없는 해석학은 공허하고 해석학 없는 윤리학은 맹목이라는 점”을 일깨우며 해석학의 실천적 의의를 추구했던 학자라고 평가한다. 현대 해석학이 앞으로도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옮긴이는 가다머와 데리다의 만남, 그리고 데리다가 가다머의 죽음을 추모하며 발표한 글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1981년의 역사적인 만남에서 가다머가 데리다를 ‘아버지나 선생님처럼’ 가르치려 해서 데리다가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여기서 철학적 사유에서 평등한 대화의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적한다. 실패로 끝난 줄 알았던 두 석학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음은, 오랜 세월이 흘러 가다머의 죽음을 마주한 데리다의 절절한 추모사에서 그 전말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철학적 사유에서 대화의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의 의지임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