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위상의 개념은 파동의 중첩을 다루는 데 무척 중요하다. 즉, 위상이 서로 다른 파의 중첩 결과는 위상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파동역학으로도 불리는 양자 역학으로 양자계의 현상을 다룰 때는 파동함수들의 위상변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위상의 계산은 매우 기계적인 것이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흥미있는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 양자역학적인 위상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양자물리계에 나타나는 위상의 기하학적 성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잘 알려진 동역학적위상과는 성질이 전혀 다른 기하학적 위상의 개념은 시간에 따라 천천히 변하는 양자계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1983년 베리M. Berry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러한 기하학적 위상은, 고전적인 예인 푸코 진자의 진동면 회전에서부터 광학에서는 광섬유를 통과한 빛의 편광면 회전, 아하로노프-봄 효과와 핵자기 공명현상 및 분자물리 부야 등에서 구체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베리의 논문 이전에도 기하학적 위상과 관련된 형상들에 대한 연구가 있었지만, 이러한 현상들에서 나타나는 위상의 물리적인 의미와 수학적인 이해가 확실히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베리의 연구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베리는 다양한 물리현상들에 나타나는 기하학적 위상을 게이지 포텐셜로 이해하고, 특히 결합된 물리계를 게이지 이론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반적인 틀을 제공하였다. 특히 결합된 물리계에서 계산되는 게이지 포텐셜이 게이지 마당이론에 나타나는 자기홀극과 같은 특별한 해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많은 연구를 통하여 기하학적 위상은 양자홀 효과를 비롯, 게이지 이론의 비정상(anomaly)의 설명 및 강입자의 구조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양자 상태가 얻는 물리적인 위상이 수학의 기하학적인 이론의 틀 속에서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수리물리적 흥미를 일으켰고, 또 한편으로는 수학적으로 정의된 양이 실제 물리적 상황에서 기하학적 위상으로 측정된다는 사실은 자연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해주고 있다.
이 책은 최근 물리학적 기하학적 위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입문서로서 집필되었다. 내용은 양자역학과 마당이론의 기본적 개념을 알고 있는 대학원생이 접근하기 쉽도록 중요한 개념과 기본적인 틀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을 통해 양자물리계에 나타나는 위상의 기하학적 성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